[나의 공군 이야기 (24)] 군산 방공포대장③ 물만난 물고기 시절, 육군·미공군 등과 폭넓은 소통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5.11 09:40 |   수정 : 2020.05.11 09:40

최상의 시설 갖춘 군산기지에서 골프,볼링 등 활발한 여가활동/새벽까지 운동 즐기면서 한쪽 귀는 무전기에 열어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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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당시 군산기지는 골프를 포함하여 테니스, 볼링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정말 좋았다. 오산, 군산기지는 미 공군(美 空軍)에서 골프장을 포함한 많은 운동시설을 운영하였고, 그 당시 군산기지 골프장은 한국군, 미군 할 것 없이 자기가 운동하고자 하는 날에 선착순으로 자기 이름을 적어 넣으면 그것으로 예약이 되었다. 비용도 엄청 저렴했다. 1개월 골프장 이용료가 대략 20~30달러였으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얘기다.

 

‘88 올림픽이 끝나고 그해 가을부터는 일과 이후 또는 주말에 선후배 장교들과 운동을 많이 했다. 때로는 주말에 부대내 바닷가에서 낚시도 했고, 어떤 토요일에는 오후에 골프, 그리고 저녁 식사 이후에는 볼링, 테니스를 새벽 3~4까지 했다. 혈기왕성한 시절이었기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이런 여가활동이 가능했다. 물론 모든 여가활동은 부대 내에서 하였고, 상황 발생시에는 즉각 포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한쪽 귀는 늘 무전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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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에 육군 포대장과 낚시를 즐기며 [사진=최환종]

 

美 공군 헌병대대가 파트너, 통역관 없어 영어로 대화 나눠

 

당시 군산기지 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았다. 부대 내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수준 높은 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굳이 군산 시내까지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강원도 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군산 시내는 가끔 포대 간부들이나 선후배 장교들하고 저녁 식사하러 갈 때 이외에는 나갈 일이 별로 없었다.

 

아무튼 군산기지에서 방공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필자는 임무수행 이외에도 개인의 발전(체력관리, 독서 등)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적극 활용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맛보는, 여러모로 재미있고 알찬 시간이었다.

 

한편, 대공방어 측면에서 필자의 업무 파트너는 미 공군 헌병대대였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미 공군 헌병대대에서도 대공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대공방어 측면에서 발칸 포대와 미 헌병대대간 협조는 필수적이었다. 필자가 발칸 포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미 공군 헌병대대 지휘부에서는 필자를 초청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포대 소속이 공군으로 변경되었지만 기본임무(대공방어)는 같으므로 지속적인 업무협조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필자도 신임 포대장으로서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많은 지도 편달을 바란다는 취지의 말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 통역관의 도움 없이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는데, 강원도 부대에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한 보람을 느꼈다.

 

이후에 미 헌병대대로 새로 부임한 미 공군 중위가 포대로 인사차 방문했다. 이 장교는 미 공군사관학교 출신에(졸업은 필자보다 1년 늦게 했다) 비행훈련 받은 수준(중등 훈련까지)도 필자와 비슷했다. 게다가 공통의 업무(대공방어)도 있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군산에 근무하는 동안 업무 파트너이자 형제같이 또는 친구같이 무척 친하게 지냈는데, 대공방어 관련한 전술토의는 물론이고 때로는 부대관리상 공통적인 애로사항도 서로 얘기하고 상의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이 장교는 후에 대령으로 진급해서 독일의 어느 미 공군 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이때 오산기지에서 대령으로 근무하던 필자와 연락이 되었다. 20여년 만에 연락이 되었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서로 잘살고 있음에 기뻐하고 반가워했다.)

 

상호협력관계 맺었던 육군 유도탄 포대장은 아직도 기억나는 '멘토

 

비행장 발칸 포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근의 육군 유도탄 포대장, 육군 해안대대장, 중대장과도 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육군 유도탄 포대장은 이 모(某) 소령이었고, 상당히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장교였다. 필자보다 4~5년 선배 장교로 기억하는데, 필자에게 절대로 하대(下代)하는 경우가 없었고, 필자에게 많은 지휘 조언을 해주었다. 육군 포대장은 가끔 한. 미 공군 측에 협조할 일이 있으면 필자에게 와서 협조를 구했고,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 드렸다.

 

한번은 육군 포대장이 자기 포대를 구경시켜주겠다고 해서 육군 유도탄 포대를 방문했다. 이 포대는 꽤 오래전에 미 육군에서 인수받은 포대라고 한다. 포대는 시설은 낡았으나 아담한 규모로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그날 무척 좋은 인상을 받고 부대로 복귀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육군 방공포병사령부 전체가 공군으로 전군하였고, 그로부터 또 몇 년 후에 필자가 그 포대의 포대장으로 부임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은 우연과 인연의 연속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근에 있는 육군 해안대대 0중대는 육사 동기생이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가깝게 지내면서 부대 지휘관리에 대해서 상의도 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우며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군산기지 발칸 포대장 시절이 계급은 비록 새파란 대위였지만 한국군(육군, 공군), 미 공군 등 상대방의 소속 군(軍)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가장 폭넓게 대인관계를 맺으며 자신감 있게 행동했던 시기였고, 그들을 통해서 시야도 많이 넓힌 시기였다.

 

전자공학 석사과정 교육 기회 앞에 두고 고민에 빠져

 

다양한 경험과 함께 포대장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해가 바뀌었다. 부임한지 1년이 지나면서 포대장 업무는 첫해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보다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초여름의 어느 날, 방공포 전대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국내 민간 대학교 위탁교육(석사과정) 소요가 나왔는데, 방공포 분야에도 인원이 할당되었으니 지원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전공과목은 전자공학!

 

며칠간 고민에 빠졌다. ‘사관학교 재학중에 전자공학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해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졸업한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공부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등등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부도 더 하고, 보다 폭넓게 세상을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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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최환종 칼럼니스트기자 3227chj@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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