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05)] 멍게 비빔밥의 추억과 '심심한 행복' 찾기

윤혜영 선임기자 입력 : 2020.05.16 10:36 |   수정 : 2020.05.16 10:39

멍게향의 알싸함을 느끼려면 고추장보다 간장/그 풍미 속에 남쪽바다의 여유로움 느껴져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연두가 초록으로 짙어져가고 미풍이 따스한 온도를 머금는 요즈음 가을까지 부지런히 먹기 좋은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멍게 비빔밥인데요.

 

우렁쉥이라고도 불리는 멍게는 오월이 제철로 이맘때 크기도 적당하고 단맛이 올라 입맛 돋우기 좋은 여름철 별미입니다. 멍게는 붉고 둥근 몸통에 울퉁불퉁한 돌기가 돋아나 있죠. 마치 술이 덜 깬 아저씨를 연상시키네요. 심퉁맞은 외형을 가지고 있으나 속을 갈라보면 향긋한 주홍빛 속살과 특유의 톡 쏘는 향기가 일품인 식재료입니다.

 

1.png


멍게 비빔밥은 너무도 간단하여 레시피라고 메모할 할 것도 없어요. 찬물에 슬슬 흔들어 씻은 멍게를 물기가 빠지길 기다렸다가 밥 위에 올리고, 김가루와 깨, 참기름 한 스푼이면 족합니다. 오이채나 계란지단 등으로 멋을 내기도 합니다만, 부재료는 만드는 자의 기호대로 가감이 가능합니다.

 

주의할 점은 초고추장을 넣으면 고추장의 강한 향 때문에 멍게향이 묻히기에 조미된 김이나 최소한의 간장을 곁들이는 게 더 좋아요. 고수들은 양념 없이 먹는 것을 즐깁니다. 멍게 비빔밥은 제 고향 통영에서 별다른 반찬이 없을 적에 잘 해먹던 손쉬운 음식인데요.

 

반찬으로 먹거나 술안주로 내기도 하고 제철을 맞아 수확량이 많을 때는 젓갈로 만들어 두고두고 꺼내먹기도 했답니다. 문득 떠오른 멍게 생각에 마트로 가보았습니다. 수산물 코너 한쪽 귀퉁이에 먹기 좋게 손질되어 모셔져 있는 멍게는 장바구니에 부담 없이 넣기에 적당한 가격은 아니더군요.

 

몇 번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가격을 덧입고 내 손에 떨어진 멍게 한 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식은 보리밥에 비벼진 멍게는 미역국과 함께 5분 만에 내 밥통의 블랙홀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멍게는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밟히던 시절이라 굳이 돈을 내고 사먹는다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생선을 사면 덤으로 얹어 주거나 식당에서 서비스로 주는 군음식이었지요. 어느 해에는 멍게가 풍년이라 집집마다 항아리를 사와서 젓갈을 담기도 했지요. 멍게나 매실, 전어 같은 계절음식은 이와 같은 유행을 부르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소주에 곁들여 먹으려고 멍게 한보따리 사오면 그 양이 차고 넘쳐 손질하기 힘들다고 욱하던 어머니 생각도 나네요. 음식은 기억과 그리움을 떠오르게 합니다.

 

고향의 남쪽바다를 떠올리면 시퍼렇게 펼쳐진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자그마한 목선들과 파도에 일렁이던 부표들. 해풍에 실려오는 짠내와 선박용 디젤 냄새. 어시장의 비린내와 물고기 비늘처럼 빛나던 여름의 청량함, 그리고 알싸한 멍게향이 코 끝에 감도네요.

 

그리고 바닷물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무언가를 끝없이 영원처럼 노려보던 사내들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있네요. 해질 무렵 인적 드문 바닷가에 홀로 앉아 작은 물고기와 햇볕에 박제 된 새끼 복어, 불가사리, 소라 등을 동무삼아 소꿉놀이하던 나의 어린시절도 떠오릅니다.

 

요새는 심심함이 사라졌죠. 각종 전자기기들과 놀거리들이 흘러넘치게 산재해서 도통 심심할 틈을 주지 않아요. 부모님들도 아이가 심심하면 큰일날새라 각종 보드게임과 퍼즐과 장난감, 그림놀이 등을 사들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심심할 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발한 생각과 풍요로운 상상력과 자아는 심심함을 양분 삼아 자라나는 것이거든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심심한 시간을 좀 더 많이 누릴 필요가 있어요.

 

오늘 나의 계획은 멍게 비빔밥을 먹으면서 심심하게 오후를 보내는 것입니다.

 

 

 

윤혜영(수정).jpg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105)] 멍게 비빔밥의 추억과 '심심한 행복' 찾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