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전쟁사](38) 보훈의 달, 잊혀진 우리의 혈맹 에티오피아

김희철 기자 입력 : 2020.06.02 18:02 |   수정 : 2020.06.03 09:32

6.25남침전쟁동안의 치열한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별명을 얻은 연합군 군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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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의 이념 갈등과 냉전이 심화되었다.

특히 한반도는 얄타 회담과 포츠탐 회담에 의해 남북으로 분리되었고 이념 갈등은 극에 달했으며 드디어 1950년 6월25일 공산주의인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은 민주주의인 남한으로 침공을 개시하여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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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호소에 꽃다운 청춘들은 6.25남침전쟁에 참전했고,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는 253전 253승의 신화를 남긴 모습[자료제공=보훈처/동영상캡쳐]


태국군 ‘리틀 타이거’, 영국군 ‘글로스터연대’, 호주군 ‘가평대대’, 남아공 ‘창공의 치타’ 등 

6.25남침전쟁은 최다국가 참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듯이 유엔의 결정에 따라 세계 평화를 위해 67개국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파병과 물자, 의료지원 등으로 참여했다. 그들 국가중 치열한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여 새로운 별명을 얻은 군대도 있었다.

동남아 국가인 태국군은 ‘포크찹 전투’에서 5배 넘는 중공군과 맞서 백병전을 불사하고 고지를 사수해 임전무퇴의 귀감이 되는 ‘리틀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공군 춘계공세시 율동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필리핀군 제10대대전투단을 미 3사단장 로버트 소울 소장이 ‘The Fighting Filipinos’라 별명을 붙였고, 자국에서는 ‘’The Fighting Tenth’라고 칭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영국군 제29여단은 ‘설마리 전투’에서 1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3일 동안 중공군의 진격을 처절한 피로써 지연시켜 서울 침공 의도를 저지하였다. 전쟁후 중공군과 맞서 싸운 235고지를 '글로스터(Gloster Hill)'고지라고 명명하고 인접 도로가에 추모공원과 전적비를 세워 영혼을 달래고 있다.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에 후퇴하던 연합군은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반격을 도모할 때 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영국 연방국들로 이뤄진 영연방 제27여단은 3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특히 영국군과 호주군은 부대원의 40%가 피해를 입으면서도 사투를 벌여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냈다. ‘가평 전투’에서의 승리 후 호주 육군 3대대는 '가평대대(Kapyoung Battalion)'로 불리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창공의 치타(Flying Cheetah)’ 제2전투비행대대는 1만2405회 출격으로 36명의 희생자를 냈지만 스트랭글 작전에서 철도 궤도를 파괴해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시키며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저지했고, 프레셔 작전에서는 적 발전소 폭격에 성공하는 등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에티오피아 파병부대의 별명은 ‘강뉴(Kagnew)부대’로 당시 에티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황실근위대로 그야말로 에티오피아 제국 최정예의 일당백 용사들이었다.

6.25남침전쟁에서 전설이 된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의 아픔 

최근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한 빈국(貧國)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에티오피아는 오늘날과 달리 우리의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일 때 이미 3000 달러 수준의 부국(富國)이었다. 한창 공산주의와 전쟁 중이었던 1951년,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 6000명의 최정예용사들을’ 파병해준 나라였다.

에티오피아는 전설 속 솔로몬 왕의 후예들이 삼천 년을 이어온 나라였지만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으로 국민 27만명이 희생되고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영국으로 망명했었다. 

그 후에도 투쟁은 계속됐고, 1941년 영국군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몰아내고 다시 집권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을 겪는 나라가 없도록 집단안보를 주창하는 평화주의자였다.

6.25남침전쟁이 발발하여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자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에티오피아 제국 최정예 용사인 황실근위대로 ‘강뉴부대’를 편성해 파병하였다.

대한민국으로 파병온 그들의 이름인 ‘강뉴(Kagnew)’는 암하라어로 ‘평정(平定)’과 ‘초전박살(初戰撲殺)’이라는 뜻이다. 

1951년 7월 한국으로 온 ‘강뉴부대’는 미군 7사단에 배치되어 그해 9월에 벌어진 ‘적근산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이후 한국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던 ‘철의 삼각지 전투’에 투입되어 ‘강뉴’ 이름의 의미처럼 단 한 번도 고지를 적에게 넘겨준 적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뽐내며 파병 동안 무려 253전 253승이라는 무패(無敗)의 신화를 이루었다.

‘강뉴부대’ 용사의 활약은 전쟁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53년 이후 그들은 우리의 재건을 위하여 월급을 모아서 서울 동두천에 ‘보화 고아원’을 설립하여 전쟁고아들을 1956년까지 보살피며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英雄)의 상(像)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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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남침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와 전쟁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일마 벨라처 씨가 강뉴부대 2진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남긴 책과 힘들게 수집한 자료들을 전쟁기념사업회에 기증하는 모습[사진제공 =동영상캡쳐/국방부]

 

현재 강뉴부대는 최빈곤층 전락, 공산주의자들이 물러난 지금도 어려운 삶 영위

하지만 에티오피아에 7년간의 극심한 가뭄이 들자 1974년 쿠테타가 일어나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더그’라는 공산주의 쿠데타 주동자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를 폐위시켰고, 이 고마운 ‘강뉴부대’ 용사들은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이유로 사회의 최빈곤층으로 전락하여 공산주의자들이 물러난 지금까지도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혈맹의 황제와 용사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허망하게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부끄럽게도 너무나도 긴 세월을 그들에 대해서 잊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방문과 함께 그들에 대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많은 NGO 및 보훈단체들이 모금활동을 통해 지원을 했으며, 최근에는 코로나의 위기 속에 마스크를 보내주기도 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평화(平和)’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싸운 6.25남침전쟁에서 전설이 된 잊혀진 혈맹,  일당백 ‘강뉴부대’의 나라, 에티오피아 제국! 대한민국 국민으로 에티오피아 제국을 잊지 않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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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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