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12)] 사법불신과 전관예우, 그리고 어떤 할머니의 돈봉투 투척사건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7.02 05:05 |   수정 : 2020.07.02 05:05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min2.png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어 의뢰인과 상담을 해보면 우리 국민들의 뿌리 깊은 사법불신을 체감하게 된다. 검찰의 처분이든 법원의 판결 선고든 결과적으로 패소한 의뢰인 중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검사의 처분, 법원 재판에 지면 늘 “저쪽 변호사가 판검사와 친해서...”

누군가를 고소했는데 무혐의 처분이 나왔을 경우, “상대방, 즉 피고소인이 선임한 변호사가 담당 검사하고 친해서 무혐의 처분이 나온 것 같다. 이번에는 담당 검사와 재판부하고 좀 더 친한 변호인을 선임했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검찰의 처분이나 법원 판결에 대해 불신이 많을까 생각을 해봤다. 일단은 법원이나 검찰이 몇몇 정치적인 사건에서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과 처분을 내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일들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추락시켜온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1년간 검찰에서 처리하는 사건만 최소 몇십만건이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사건 또한 수십만건이다. 국민의 관심을 끄는 정치적인 사건 한 두 개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 날 수는 있지만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사건은 변호인과 재판부 또는 담당 검사와의 친분관계에서 좌우되지 않는다.
 
변호사들의 책임도 큰 것 같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평생 검찰청이나 법원은 물론 경찰서 마당 한번 밟아보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한번 고소고발이나 재판같은 쟁송(爭訟)에 휘말리면 변호사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는데, 패소한 변호사 중 일부는 “이거 우리가 이겨야 되는 건데 저 판사, 저 검사가 상대방 변호사하고 친하다보니까 우리가 졌다”식의 변명을 한다고 들었다.
 
■ “저쪽 변호사가 판·검사와 친해서...”는 거의 대부분 사건에 진 변호사측의 변명

변호사가 증거를 통해 사실관계를 입증(立證) 하는데 실패했거나, 애당초 법리적으로 이길 수 없는 사건을 무리하게 진행한 측면도 있을 텐데, 변호사는 그것을 인정할 경우 그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그러니까 의뢰인들한테 “재판부나 주임검사가 상대방 변호사와의 친분 때문에 억울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변명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내가 검사로 현직에 있을 때, 친한 변호사가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변호사가 온다고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특히 혐의의 유무에 대해서는 검사에게는 재량이 없다고 봐야한다.

정말 친한 변호사의 경우에는 제출하는 자료들을 가급적 꼼꼼히 보고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변호사와 아무리 친하다고 해서, 죄가 있는데 없다고 하거나, 반대로 없는 죄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111.jpg
고위공직자 전관예우 방지방안에 관한 공청회. 사진은 연합뉴스

 
■ 전관예우의 실체는 의뢰인의 기대감 내지 심리적 안정감일 뿐

 
이런 뿌리깊은 사법 불신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왔다고 본다.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것도 그렇다. 언론에서 전관예우를 마치 제도인 양 문제를 많이 지적하지만, 사실 전관예우라는 것이 사회적 현상이지 법률, 제도적인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검찰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 절친한 선·배, 후배 검사들이 많다. 그런데 그 동료나 선후배 검사들이 내가 검사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너는 이제 변호사가 됐으니까 더 이상 나하고 친하게 지낸 수는 없어’라는 식으로 인간관계가 갑자기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담당 판검사와 친했던 사람이 변론을 할 경우 절차적인 면에서 냉랭하게 대하기는 쉽지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아마 이런 것이 언론에서 말하는 속칭 전관예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전관예우가 모든 걸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요즘 법원 검찰의 사법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주임검사가 만약에 A라는 결정이 맞는데 변호사와 친하기 때문에 B라는 결정을 할 경우, 내부적으로 결재시스템이 있어 결재자인 부장검사와 차장검사가 부당한 결정을 그대로 통과 시켜 주지를 않는다. 만약 결재를 통과하더라도 기소 이후에는 재판 시스템이 있고, 불기소 결정일 경우에는 불복해서 항고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잘못된 처분을 해도 결국은 시스템적으로 바로 잡혀지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전관 변호사가 아무리 판검사와 좋은 관계라고 해도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절대로 다 해줄 수 없다. 오히려 의뢰인들이 기대감, 즉 전관 변호사이기 때문에 주임검사나 담당 재판부에서 변호사가 원하는 대로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감, 이것이 바로 전관예우의 실체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전관예우가 마치 형사소송법에 있는 어떤 제도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가? 사실 근절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함께 근무하면서 맺은 인연을 제도에 의해서 단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정 변호사가 같이 근무했던 검사의 사건은 맡지 말라고 법으로 막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는 대부분 부패한 모습이다. 간혹 정의로운 검사상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야비하고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변호사나 정치인들, 기업인으로부터 향응과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검사로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검사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안보는 편이다. 너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어떤 시골 할머니의 돈봉투

나 스스로도 모든 검사가 다 깨끗하고 정의로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검사들이 다 부패하고 출세지향적인 기회주의자로 묘사하는 것은 분명 사실과 큰 괴리가 있다.
 
검사 시절, 사건 당사자 중 나에게 돈을 주려고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대전지검 홍성지청에 근무할 때였는데, 한 할머니가 사기피해를 입은 사건을 맡았다. 형편이 넉넉치 않았는데, 어떤 사기꾼이 할머니를 속여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쌈짓돈 몇천만원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그 돈이 없으면 할머니의 노후생활이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
 
할머니로서는 가해자의 처벌보다 돈을 돌려받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민사소송을 통해 돌려받기는 어려웠다. 민사소송을 이긴다 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으려면 강제집행 할 재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기꾼들 중에 자기 명의로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기꾼들이 돈이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명의만 타인 명의로 해 놓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검사실에 와서 그 사람이 감옥에서 실형을 살든, 집행유예를 받든 그 것이 중요하지 않고, 돈을 돌려받아야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하소연 하였다.
나는 사기꾼에게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주면 그 점은 충분히 처분에 반영이 된다고 설득했다. 다행히 사기꾼은 할머니의 돈을 되돌려 줬고, 나 또한 그 점을 참작해서 사기꾼에게 감경된 처분을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어느 날 검사실에 찾아와서 검은색 비닐 봉투를 책상 옆 휴지통에다 휙 던져놓고 나가는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봉투를 열어보니 만원권 몇 다발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황급히 나간 상태였기에 수사관이 허겁지겁 뒤 따라가 할머니에게 돌려드린 적이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검사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선배 변호사가 사건이 없는 상태에서 사주는 식사는 같이 하기도 하였으나 그나마도 요즘은 사라진 풍속도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너무 부패한 검사상 만이 그려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산더미 같은 일에 파묻혀서 살고 있는데, 검사와 검찰조직 전체를 부패한 집단,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는 것처럼 그려지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 사법의 권위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

법원과 검찰은 권위가 서야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판결이나 처분을 하면 사람들이 승복하고 따를 수 있는 신뢰와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심에서 졌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2심, 3심까지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게 다 돈이고 비용이다. 사건이 폭주하면 결국 결정이 느려지고 이게 다 사회적 비용이다.
 
이런 이유로 권위주의는 청산되어야 하지만 법과 사법기관의 권위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기본 장치인데, 이런 최후의 보루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울러 사법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반성도 필요하다. 검찰이나 법원은 과거처럼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잘못된 결정과 판결을 해서는 안된다. 언론과 영화 같은 미디어도 흥미만 추구하기 위해 현실과 지나치게 다른 과장 묘사가 불러올 부작용을 생각해봐야 한다. 변호사들 또한 패소(敗訴)의 원인을 사법부패 탓으로 핑계 대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추락된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을까 싶다.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민경철의 검사수첩 (12)] 사법불신과 전관예우, 그리고 어떤 할머니의 돈봉투 투척사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