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14)] 음주운전 피의자로 만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과 동창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7.10 05:05 |   수정 : 2020.07.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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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시절 몇 차례 아는 사람이 사건에 관계돼 나에게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문제가 된다거나 사건 처리가 곤란한 건 아니지만, 정말 친한 사람이거나 특수관계인의 경우에는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하기도 하고, 공정성 문제가 없는 경우에는 그대로 처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검사도 사람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피의자나 사건 관계자일 때는 당혹스러운 건 사실이다.

 
내가 고향 쪽인 대전지검 홍성지청에 근무할 때 일이다. 그 당시 검사는 월 300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했다. 그 중에는 음주운전, 폭력, 교통사고, 사기 등 사건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음주단속 피하려 불법 유턴으로 도망치다 조사받으러 온 담임 선생님
 
그 중 한 사건은 어떤 사람이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데 앞에서 경찰관이 도로를 막고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음주한 상태이다 보니 “걸리면 안되겠다” 싶어서 불법 유턴을 해서 도망을 갔다. 도망가는 과정에서 옆에 있는 차를 살짝 건드렸고 결국 붙잡혔다.
 
이런 사건의 처분은 통상 불구속 구공판이다. 불구속 구공판은 구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불구속 구공판 처분을 내릴 때는 당시에는 자백하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검찰에서 통상적으로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를 하고 처분을 한다.
 
처음에 사건기록을 봤을 때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 그래서 담당 계장한테 피의자를 조사하도록 했는데 어느 날 검사실에 소환되서 온 사람을 보니 낯이 익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그 사건의 피의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검사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창피하다 보니 이야기도 못하고 조사받으러 온 것 같았다.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육공무원이라서 음주운전에 걸리면 신분상에 큰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에 도주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구속되지는 않지만 처벌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보니 재판을 받으셔야 한다”고 설명을 드렸다. 나도 당황스럽고 선생님도 계속 겸연쩍어 하는 모습이었다.

어릴 적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이다 보니 “잘해달라, 용서해달라” 이런 말도 못했다. 나도 선생님에게 사안을 설명드리고 구속될 사건은 아니기 때문에 위로해 드린 후 통상적인 기준에 따라 처리했다.
 
■다음날은 초등학교 동창이 음주운전 피의자로
 
희한하게도, 그 다음 날에는 음주운전을 세번째 한 사람이 소환돼서 왔는데 알고보니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시골 친구들은 특별한 게 있다.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만나면 반갑기는 해도 서먹할 법도 한데, 그들은 만나자마자 말을 놓고 비속어까지 쓰는 경향이 있다. “경철아 너 오랜만이다”... 사적인 장소면 모르는데 검사실에서 피의자로 불려온 상태에서 그러니까 당황스럽긴 했지만 친한 정도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이 친구는 세번째 음주운전을 했기 때문에, ‘삼진아웃’ 원칙에 따라 다른 검사가 영장을 청구해서 구속이 된 상태에서 사건이 나한테 배당된 것이었다.
 
어릴 적 친구지만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검사의 처리도, 판사의 재판도 기준이 명확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기소해 주는 것 밖에 없었다. 빨리 기소해서 빨리 재판받고 집행유예로 선고되면 빨리 석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음주운전 처벌이 많이 강화됐지만, 당시 친구의 정상은 실형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 한번 구속되면 구속기간을 고려해서 집행유예로 많이 풀어줬다. 처음 한두번은 벌금액수를 높이고, 그 다음에도 또 입건되면 불구속 재판 청구했다가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그리고 집행유예 기간을 도과해서 또 입건되면 구속해서 재판 청구하면 한번 정도는 구속기간을 고려해서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그 다음 번에도 입건이 되면 실형이 나오고 이렇게 순차적으로 처벌이 가중되는 식이었다.

그 친구는 법원에서 집행유예가 다행히(?) 선고되었고, 총 구속되어 있던 기간은 약 두달 정도였다.
 
■검사가 고향에서 근무할 때의 장단점

검사들이 고향에서 근무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해프닝이 많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충남 예산에서 자랐다. 부모님 두 분이 다 선생님이었는데 부모님께서는 예산에서 공부해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나를 유학 보내기로 결단을 내리셨다. 부모님은 예산에 계속 계시고, 나는 서울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고향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하고 계속 친분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는 홍성지청이 고향인 예산까지 관할하다 보니 종종 뜬금 없는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내가 “민경철입니다. 누구세요”라고 하면 상대방은 자기가 누구인지도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뜬금없이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묻는데, 그러면 나는 직감적으로 아버지나 어머니 아시는 분인가 보다 생각하고 설명을 드린다. 법률적인 설명을 하면서 “그럴 땐 이렇게 저렇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고맙다면서 전화를 끊으시는데 결국 누구인지는 말씀 안해 주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어머니를 통해서 이야기가 들려온다. “누가 너한테 전화해서 뭐 물어봤다며? 고맙다고 하시더라...” 시골이라는 곳이 이렇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셨다. 모처럼 큰 아들이 고향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니까 든든하고 아들이 검사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시는 것 같았다. 검사가 되었다고 해서 부모님께 뭐하나 해 드린 것도 없는데 그래도 부모님께 그런 느낌이라도 드릴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또한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에 와서 지내니까 마음이 편안한 것도 장점이었다.
 
하지만 시골은 좁다보니까 아는 사람이 갑자기 피의자로 검사실에 나타나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문제였다. 내가 주임검사가 아닌데도 나한테 부탁을 하면 사건이 잘 처리될 것이라 기대해서 자꾸 상의하고 부탁을 하려 했다. 임대차 문제라던지 돈을 빌려주고 못받은 경우처럼 민사적인 문제로 상의를 하시면 부담없이 설명해드릴 수 있지만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난처했다.
 
나는 억울하지 않으려면 어떤 증거들을 수집하고 제출해야 하는지, 어떤 점을 주의해야할지 설명을 드리지만,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주임검사하고 같이 근무하니까 이야기 좀 잘해서 자기 사건이 잘 처리되도록 도와달라는 것이 속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고향에서 근무하는 경우 처신을 잘 하지 않으면 고향사람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고 고향을 뜨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옛날에 모셨던 부장검사님이 우스갯 소리로 한 얘기가 생각난다. 청탁을 하러 여러 사람이 온다. 대부분은 거절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구일까? 답은 ‘아이들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요즘은 선생님에게 학부형이 선물을 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는 일이 없어졌지만, 15년 전 특히 시골이다 보니 선생님을 예우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정말로 선생님이 피의자로 오는 일까지 경험하다 보니 선생님의 부탁은 거절이 어렵다고 한 부장님의 농담이 실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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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달리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처럼 왜곡해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은 배우 조민성이 검사로 나오는 영화 더킹의 한 장면

 

■형평성과 규정상의 처분기준 벗어날 수 없어.. ‘검사 마음대로’는 오해
 
검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인간관계가 형성돼 있다. 때로는 아는 사람이라든가 가까운 지인이 형사사건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도 아마 고향에서 근무하는 검사들은 그런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검사들이 사건을 처리할 때, 예를 들면 벌금 150만원이나 200만원 정도를 매기는 것은 어느 정도 재량이 있다. 200만원은 정답이고 150만원은 잘못된 처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판·검사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사안을 150만, 200만, 300만원으로 벌금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왔을 경우 벌금 처분을 할 사안이라면 깎아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검사들이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바로 형평성이다. 똑같은 사안에서 어떤 사람은 벌금 500만원을 매겨놓고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벌금을 300만원이나 100만원을 매기면 500만원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억울하지 않겠는가.
 
사안이 어느 정도면 최소 어느 정도 이상의 처분을 해야 한다는 검찰 내부 처리 기준도 있다. 검사들이 아는 사람이 왔을 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형평성과 이런 내부 기준이 검사 재량권의 한계를 분명히 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검사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오해다. 때론 검사에 따라 이런 기준을 무시하고 처분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는데 그런 처분이 내려지면 내려질수록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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