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15)] ‘선의에 뒤통수 치는 사회’…학파라치‧약파라치 몰카 사건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7.17 05:05 |   수정 : 2020.07.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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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사건 수사는 대부분 고소 고발에 의해 시작된다. 고소 고발장이 접수되면 고소인의 고소내용에 따라서 피고소인의 혐의유무를 판단하는데,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검사로서는 처벌 수위를 결정함에 있어 형사처벌이 과연 정당한가를 놓고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서울북부지검에 근무할 때 한 사건이 생각난다. 죄명은 약사법 위반이었다. 약사가 전문의약품을 팔기 위해서는 의사의 처방전이 반드시 필요한데, 한 약사가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인 피임약을 환자에게 팔았다는 내용으로 당국에 의해 고발됐다. 약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범죄사실을 확인하고 증거물들을 살펴보는데 그 중에 USB가 있었다. USB에는 현장상황이 녹화된 동영상이 담겨있다고 기재가 되어있었다. 어떤 영상인지 궁금해서 동영상을 열어봤다.
 
■ 처방전 필요하다는 약사를 상대로 졸라서 전문의약품 구매 후 포상금 노리고 신고
 
환자가 약국에 들어갈 때부터의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약국에 들어간 환자는 약사에게 “내가 성관계를 가졌는데 임신하면 안되니까 사후 피임약을 주세요” 라고 말했다. 약사는 선반을 살펴보고 약을 건네줬는데, 환자가 “이 약 말고 다른 약을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약사는 “원하시는 약은 전문의약품이어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합니다. 의사의 처방전이 없이는 그 약을 드릴 수가 없어요” 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환자는 “저는 그 약을 먹어야 안심할 수가 있어요. 그 약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 병원 가서 처방받는 것도 그러니까 그냥 주세요”라고 계속 졸라댔다.
 
결국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아줌마 약사는 웃으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라며 “이번에는 부탁하시니까 드리지만 다음부터는 꼭 처방전을 받아오세요” 라고 하면서 그 약을 줬다. 그리고 나서 영상이 끝났다.

영상을 보고나니까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가 처방전을 가지고 오라는 약사한테 조르다시피 해서 전문의약품을 받아내고는 그것을 고발하는 행위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영상을 촬영하고 신고한 사람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검사실로 불러봤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검사실에 나온 신고자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왜 고발을 하게 됐는지 들어봤다.
 
신고자는 원래 학파라치를 했다고 한다. 학파라치란 ‘학원’과 ‘파파라치’를 합친 말로, 불법적으로 학원을 운영한 사람들을 사적으로 적발해서 당국에 고발하고 신고포상금을 받는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학원 영업시간을 밤 10시30분까지로 제한을 뒀는데 그 시간 이후에 학원을 운영하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 학파라치 활동 중 여유시간에 ‘약파라치’, 검사실까지 ‘몰카’
 

학파라치는 밤 10시30분이 넘어야 활동이 가능한데, 그 날은 너무 일찍 나와 시간이 남으니까 약국에 들어간 것이었다. 약사가 법을 위반한 모습을 찍어서 고발하면 어느 정도의 포상금을 주니까, 남는 시간에 약파라치(약국+파파라치)까지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약사가 먼저 처방전이 없는 상황에서 전문의약품을 팔겠다고 하는 것을 적발해서 신고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 건은 당신이 달라고 조르니까 약사가 어쩔 수 없이 준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이 고발을 한다면, 약사 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당신 또한 약사법 위반의 교사범(범죄를 하라고 지시한 사람을 일컬음)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신고를 하면 약사 입장에서 환자들을 어떻게 믿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신고자가 갑자기 울고불고 하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행동이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마치 내 모습을 찍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지금 검사실에서도 몰카로 영상을 찍고 계신 거 아닌가요?”라고 물었더니 화들짝 놀랐다. 직감적으로 지금 검사실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찍고 있는 거 보여주세요”라고 하니까 처음엔 없다고 발뺌을 하다가 계속 추궁을 하니까 자켓 속에서 주섬주섬 녹화장치를 꺼냈다. 그녀의 옷에는 구멍이 큰 단추가 있었는데 그 단추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자켓 안쪽에는 휴대폰 크기 만한 녹화장치가 숨겨있었다. 촬영한 영상을 확인해보니까 검사실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카메라를 켜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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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논현동 관세청 서울 세관 본부에서 세관 관계자가 전자파 적합 인증 절차를 피해 불법 수입된 안경형, 목걸이형, 라이터형, 차키형, 펜형, 넥타이핀형 등 각종 형태의 몰래카메라 압수물들을 몸에 착용하는 시연을 하는 모습. 사진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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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논현동 관세청 서울 세관 본부에서 세관 관계자가 전자파 적합 인증 절차를 피해 불법 수입된 안경형, 목걸이형, 라이터형, 차키형, 펜형, 넥타이핀형 등 각종 형태의 몰래카메라 압수물들을 몸에 착용하는 시연을 하는 모습. 사진은 연합뉴스.

직업본능이랄까. 그 사람의 모든 것은 ‘몰카’로 통하는 것 같았다. 검사실에서도 일단 ‘몰카’를 찍어서 행여라도 검사가 폭언을 하거나 실수를 하면 그걸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약사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그 약사가 백퍼센트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덫을 놓아 잘못을 유도하고, 그리고 제3자도 아닌 유발자가 상대방을 고발하고, 검찰이나 법원은 아무 문제의식 없이 고발된 대로 처벌을 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지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 선의로 한 행동까지 법적책임 묻는 것은 ‘팍팍한 사회’ 만드는 것
 
기본적으로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자 법치이지만 모든 잘못된 행위를 다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 나오는 세상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국민청원에도 올랐다고 하는데 어떤 한의사가 벌침을 놨다가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환자가 마비 상태가 됐다. 한의사는 바로 위층에 있던 가정의학과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처치를 하였고,  환자는 다른 병원에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그 유가족들은 한의사 뿐 아니라 가정의학과 선생님을 상대로 2년 동안 소송전을 벌였다. 한의사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따질 수도 있고, 소송할 필요가 있겠지만, 가정의학과 의사는 그저 위급한 환자를 도와주러 왔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결국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민사적으로도 형사적으로도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2년간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형사고소를 당했으니 조사받기 위해 수차에 걸쳐 수사기관에 불려 갔어야 할 것이고, 민사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정신적, 물질적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가정의학과 선생님이 또 다시 환자를 도와야 할 상황에 처한다면 이전처럼 도울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점점 미국처럼 ‘소송만능’ 사회로 가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송이 만연하고, 이렇게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한테까지 소송으로 책임을 묻는 풍토가 조성되면 안된다. 언제 어떻게 소송에 휘말릴지 모르기 때문에 남의 일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고, 돕지도 않는 세상이 될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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