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16)] 일년에 고소만 50건…아파트 부녀회장 자리 둔 ‘명예훼손’ 싸움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7.28 05:05 |   수정 : 2020.07.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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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라는 직업은 보람도 많이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다지 좋은 직업이 아닐 수도 있다. 늘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서 잘못한 사람을 처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적성에 맞으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좋고 아름다운 일도 많은데, 싸움의 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강력사건이나 성범죄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하다. 하지만 계속적인 거래관계에 있던 사람들은 누가 고소를 하느냐에 따라서 고소인이 되고 상대는 피고소인이 될 뿐 누가 정의롭고 누가 정의롭지 않은 것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단편적 사실만 보면 누가 잘못한 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다를 수가 있다. A가 B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오는 과정에서 B가 A를 한번 때린 사건의 경우, A가 B를 고소하면 B가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배경에는 A가 수도 없이 B를 괴롭힌 일이 있는 것이다.
 
또는 A가 B로부터 1억원을 빌리고 계속 변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주지도 않고 약속도 어기다 보니 분을 참지 못한 B가 A한테 욕설을 했는데 A가 B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면 명예훼손죄는 성립할 수 있지만 과연 A가 B보다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누가 잘한 사람이고 잘못한 사람인지 구분이 안가는 사건이 굉장히 많다.
 
■ 아파트 부녀회장직 두고 시작된 싸움…매주 고소장 제출

서울 북부지검에 근무할 때, 어느 아파트에서 부녀회장직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부녀회는 사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C가 당시 부녀회장을 맡고 있었다. 부녀회장직을 노리는 입주민 D가 “C씨가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 업자로부터 뒷돈을 먹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C는 돈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나는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D가  사람들에게 내가 돈을 먹었다고 이야기를 했다”면서 명예훼손으로 D를 고소했다.
 
아파트 부녀회장은 아파트 관련 사업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부녀회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싸움이 벌어진다. 두 사람은 서로 아파트에 공고문을 붙이고, 상대방의 공고 내용, 자신의 공고에 대해 상대방이 한 말을 트집 잡아 명예훼손이라고 고발하는 등 싸움이 이어졌다. 이러다보니 서로 고소가 거의 일상화 돼 일년에 고소를 50건이나 할 정도였다. 일년에 50건이면 거의 매주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고소사건은 검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내용도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불분명하다. 다른 할 일이 태산 같고 시급한 사건도 많은데 이런 사건을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다 보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소장이 접수된 이상, 명백하게 그 사건이 죄가 안되는 경우 외에는 수사 시스템은 가동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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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난방비 문제로 국회에서 증언하는 배우 김부선 씨 (이 기사의 특정내용과 상관없음). 사진은 연합뉴스

 

■ 명예훼손 사건은 끝없는 분쟁으로 이어져…용서까진 아니라도 잊고 사는 자세 필요
 
명예훼손 사건은 간단한 것 같아 보여도 검사 입장에서 보면 다루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단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인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인지 구분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할 때, 일단 그 말을 했는지 여부를 가려 내는 것도 힘든데 만약 그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데는 사실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죄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성범죄에서 강간 여부를 가려내는 것하고 큰 차이가 없다. 말밖에 없기 때문에 허위사실인지 사실인지 알아내기도 힘들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싸울 때는 대부분 ‘아파트의 발전’을 대의명분으로 삼는데, 공익을 위한 사실 적시는 정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공익 목적인지도 구분해내야 한다. 제대로 하자면 한 건 한 건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허위사실 여부와 공익적 목적 유무를 판단해서 죄가 된다고 판단하면 처벌해야 하는데 통상 그 수위는 벌금 100만원 내외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검사입장에서 이런 사건에 열정을 갖고 수사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간의 감정적 싸움에 수사기관을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예훼손도 여러 가지다. 만약에 인터넷 상에서 연예인이 누구하고 어떤 모텔에서 나오는 걸 봤다더라, 누구한테 돈을 받았다더라, 이런 허위 사실을 지어내서 댓글을 퍼뜨리는 것은 굉장히 악의적이고 무거운 범죄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투면서 한 이야기를 가지고 명예훼손이라고 꼬리를 물고 싸우는 사건까지 과연 수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명예훼손죄가 인정돼서 한쪽이 벌금 백만원을 낸다고 분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벌금을 낸 사람은 고소인에 대해 “나를 고소해서 전과자로 만들다니, 너도 맛 좀 봐라”하는 마음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말을 꼬투리 잡아 다시 고소하고 그러면 상대방이 또 고소하는 식으로 분쟁이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벌금 처분은 분쟁을 종식시키는 것 보다 더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당사자간에 끊임없는 다툼 속에서 발생하는 명예훼손 사건은 벌금형보다 두 사람을 함께 불러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싸우는지,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양쪽 당사자들로부터 들었다.

사실 어떤 경우는 검사가 자기들 사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감정이 누그러지면서 서로 상대방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단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사실 어떤 일로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골이 생기면 상대방을 진심으로 용서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이끌어 내기도 쉽지 않다. 나는 그래서 당사자들에게 ‘이렇게 계속적으로 다투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싸우지 말고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합의를 하게 되면 비록 진정으로 용서는 안되지만 “그래, 너는 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자”라고 하면서 분쟁이 종식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부녀회장 C와 D의 경우도 일단 이렇게 합의를 시켰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 이후로도 갈등은 계속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 고소고발 천국된 대한민국...수사력 낭비에 피고소인에게 불필요한 고통 가중
 
이런 식으로 명예훼손 사건은 당사자간 싸움을 국가기관의 힘을 빌려 대리전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민사소송을 하려면 소송물의 가액에 따라 인지대를 내야 한다. 그런데 형사 고소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단순히 고소장만 내면 수사가 개시된다. 고소인은 막강한 검찰 경찰 등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피고소인의 죄를 추궁할 수 있는 것이다.
 
함부로 고소고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무고제도가 있지만 적용이 쉽지 않다. 무혐의가 인정되는 사건 중 극히 일부만 무고로 처벌할 수가 있다. 사실 오인, 또는 법리오해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비록 고소 사건에 대하여 무혐의 처분이 되더라도 무고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나한테 이렇게 욕을 했고, 내 명예를 훼손했다”라고 고소를 했는데, 욕을 하긴 했지만 사실을 약간 과장한 욕은 명예훼손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바로 이런 경우에는 고소인에 대해 무고죄도 안된다.
 
상대방이 돈을 빌려 가서 돈을 갚지 않는다고 사기죄로 고소를 했는데 이는 민사적인 성격의 사안이어서 사기죄가 되지 않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으로 원 고소 사건은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음에도 무고죄가 되지 않는 경우이다.
 
하지만 형사사건으로 일단 고소를 당하면 피고소인은 경찰이나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 변호인을 선임해야 될 수도 있고. 수사관으로부터 추궁을 받을 수도 있기에 조사받는 것 자체로 피고소인으로서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이렇게 고소고발이 비용도 안 들고 무고죄 처벌도 어렵다 보니 우리나라가 고소고발 천국이 되다시피 하는 것이다. 물론 고소고발이 자유롭기 때문에 장점도 있다. 고소고발이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형사 피해를 당하고도 고소를 할 수 없을텐데 이런 폐단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단점은, 민사적 사안이 형사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민사로 하면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소는 돈이 안 든다. 경찰과 검찰에서 다 조사해 주니까 일단 민사소송으로 해결 할 일도 형사 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고소사건의 70~80%는 불기소로 처리된다. 검찰과 경찰이 기소할 수 있는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불기소 되는 사건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수사력, 인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민사사건의 뒤치닥꺼리에 정작 형사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드는 폐단이 발생한다. 피고소인은 불필요하게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면서 조사를 받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무혐의를 받을 수 있다.
 
■ 검찰 경찰이 민사사건 뒤치다꺼리해서는 곤란...결국은 국민세금 낭비

미국에 잠깐 갔을 때 미국에 있는 사람과 한국의 고소고발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당사자간의 다툼에 불과한 범죄사실에 대한 고소고발은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내가 “그럼 우리나라 제도가 더 좋은 것이네. 우리는 고소고발을 다 받아주고 때론 합의도 시켜주고 하니까”라고 말했는데 미국에 있는 사람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그런 것을 다 경찰이나 검사가 처리해주려면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게 다 세금 아니냐, 우리는 세금이 많아지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고소제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고소고발이 많으면 수사력이 낭비될 뿐 아니라 피고소인은 불필요하게 수사기관에 와서 조사받는 폐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고소가 점차 폭주하는 현실 하에서 정말 수사기관이 수사기관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시점이 도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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