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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 (47)]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를 둘러싼 FDA와 식약처 간의 ‘비극적 대결’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코오롱생명과학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를 둘러싼 논란이 아군과 적군이 뒤바뀐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직성'을 의심받게 된 한국의 생명공학기업에 대해 한국정부가 '사형선고'를 내린 후 법적 조치를 마무리하기 위해 질주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정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인보사의 '성분변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미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11일 인보사의 약효를 검증하기 위한 환자투약을 뜻하는 임상3상 시험 재개를 허가했다. 하지만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FDA의 결정이 성분변경이라는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사유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세계최초로 개발했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 신약 '인보사'의 성분변경을 둘러싼 한미 보건당국 간의 '비극적 대결 구도'의 향배가 주목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 인보사가 미국서 품목허가 받으면 식약처는 수구세력?   생명공학분야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과 함께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갈 대표적 신성장동력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나름대로 전도가 유망했던 한국 기업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한국정부는 회생을 돕는 우군 역할을 하고 외국정부는 처벌을 외치는 '응징자'가 되는 게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풍경이다. 인보사 사태는 정반대인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식약처는 미국의 FDA보다 논리적으로 불리한 처지이다. FDA는 유보적인 스탠스를 취한 데 비해 식약처는 이미 결론을 내려버렸다. FDA는 인보사의 '약효'와 '안전성'이라는 두가지를 평가하는 반면에 식약처는 '안전성'만을 따진다.   인보사가 미국에서 ’한국 생명공학기술의 승리‘로 평가될 경우 식약처는 혁신을 거부한 수구세력으로 비난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인보사가 실패작으로 귀결돼도 FDA는 신약개발을 위해 외국기업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유연한 잣대를 적용한 ’미담의 역사‘를 쓰게 된다.   코오롱이 인보사 시초약 개발에 성공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6년에 FDA와 한국의 식약처가 인보사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당초 속도전에서는 역시 한국이 한 수 위였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해결하기 위한 치료제 개발경쟁에서 한국기업들이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식약처는 2017년 7월 12일 인보사 국내 판매 허가를 내주었다. 인보사가 골관절염 환자 치료효과와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주사 한 대에 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보사를 국내 환자들에게 투약해 왔다.   ■ 까다롭게 굴던 FDA ’성분변경‘ 드러난 후 오히려 유연한 태도   반면에 미 FDA는 훨씬 까다롭게 굴었던 것으로 보인다. FDA는 2018년 7월에 인보사의 임상 시료 사용을 승인했다. 이후 임상 1,2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됐으나 '인보사 성분 변경 사실'이 한국에서 공론화 되면서 임상 3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인보사는 골관절염 치료제인 만큼 연골세포 활용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인간의 연골에서 추출된 제1액과 연골세포의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유전자형질전환세포(TC)가 함유된 제2액을 3대 1로 혼합해 주사하는 세포 유전자 치료제다. 그런데 제2액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 유래세포(GP2-293)인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인보사 개발과 미국내 임상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코오롱티슈진은 이 같은 사실을 지난 2017년 7월 13일 코오롱생명과학에 통보했다. 공교롭게도 식약처가 인보사 국내 판매허가를 결정한 다음 날이었다. 티슈진은 코오롱 생명과학의 자회사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성분변경 사실을 2년 가까이 숨기다가 2019년 3월 식약처에 보고했다. 식약처는 즉각 판매중지 처분을 내렸다. 그해 5월 3일 FDA도 인보사 3상 시험중지를 지시했다. 식약처는 훨씬 강경했다. 5월 28일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및 제조사 형사고발 조치를 취했다.    이 대목에서 FDA의 태도가 주목된다. FDA가 성분변경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은 2017년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보사의 미국내 임상 실험을 허용했다. 한국에서 대대적으로 인보사를 맹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정부와 사법당국이 강경조치를 취하자 3상 중지를 지시한 것이다.   성분변경 사실이 공론화 된 이후 한국에서 코오롱생명과학은 벼랑끝으로 추락했다.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티슈진의 상장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보사가 ‘사기극’으로 판명됐다고 본 셈이다. 코오롱생명과학 이우석 대표는 지난 2월 인보사 관련 약사법 위반 등의 7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티슈진 주주와 인보사 투약 환자 등은 11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오너인 이웅렬 전 코오롱 회장은 지난해 6월 성분변경 사실을 알고도 인보사를 판매한 사실 등으로 인해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식약처가 인보사 성분변경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부작용 위험’ 때문이다. 신장세포는 종양유발 가능성이 있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의약품 원료라는게 식약처의 설명이다. 인보사를 투약한 국내 환자들은 3707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상당수는 부작용을 호소한다고 한다.   ■ 미 FDA, 한국에서 ‘사형선고’ 받은 인보사에게 ‘구원의 동아줄’ 내려   그러나 FDA는 식약처와 근본적으로 접근법이 다르다. 인보사 2액이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 유래 세포(GP2-293)라는 사실을 치명적 결함으로 여기지 않는 입장이다. FDA는 지난 해 5월 28일 식약처가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및 제조사 형사고발 조치를 취하기 전인 같은 해 5월 3일 인보사 임상시험 중지 결정을 내렸다. 인보사에 대해 식약처가 사형선고를 내린 반면에 FDA는 선고를 유예한 셈이다.   이에 코오롱티슈진은 지난해 8월 FDA에 대해 임상재개 요청을 했다. 그러나 FDA는 임상중단(Clinical Hold)상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추가자료를 요구했다. 코오롱생명과학에 따르면, FDA는 지난 해 9월 20일 공문에서 “임상 중단 상태를 해제하려면 인보사에 포함된 제1액 연골세포(HC)의 특성 분석 자료와 인보사 제 2액 형질전환세포(TC)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및 방사선 조사 전후의 변화와 관련한 확인 자료의 보완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인보사 제 2액 형질전환세포(TC)’는 신장 유래 세포이다. 신장 유래 세포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및 방사선 조사 전후의 변화와 관련한 확인 자료의 보완’이란 골수암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입증하라는 주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신장 유래 세포의 안전성을 입증하라는 데 FDA의 핵심요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신장 유래 세포를 사용한 인보사가 골관절염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고, 종양 유발과 같은 부작용만 없다면 품목허가를 내주겠다는 게 FDA의 의지로 해석된다.     FDA는 지난 11일 코오롱티슈진에 보낸 공문을 통해 “모든 임상보류 이슈들이 만족스럽게 해결됐다”면서 "코오롱 티슈진은 인보사의 임상시험을 진행해도 좋다"고 밝혔다는 게 코오롱측의 설명이다. FDA가 ‘안전성’ 문제에 대한 의심이 어느 정도 해소됐으니 미국인 환자들을 상대로 신장 유래 세포를 사용한 주사액을 투입해 골관절염 치료 효과가 있는지 입증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다.   인보사의 주사 2액이 당초 설계와는 달리 연골세포가 아니라도 안전하고 약효만 있으면 된다는 게 FDA의 판단이다. 돌발변수가 난무하는 생명과학산업을 키우는데 유리한 사고방식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FDA의 임상 3상 허용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FDA에 대한 모욕이다. 미국인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진다는 FDA의 소명의식에 침을  뱉는 행위이다. 어떤 정부의 보건당국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면 임상 3상 시험을 허가할 수 없다.    물론 코오롱생명과학이 미국에서의 임상 3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서 FDA의 인보사 품목허가를 따낼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인보사가 FDA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을 손에 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시장은 일단 식약처보다는 FDA의 입장에 반응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코오롱생명과학은 물론이고 코오롱 계열사들이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투자자란 돈 냄새를 쫓기 마련이다. FDA가 인보사를 품목허가 트랙에 다시 올려놨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FDA의 현재 판단이 맞아 떨어져 한국 식약처가 궁지에 몰릴 때, 한국생명과학이 진보의 역사를 쓰게된다는 ‘비극적 구도’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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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
    2020-04-16
  • [이태희의 JOB채(46)]배달의민족이 비난받은 ‘진짜 이유’와 김봉진의 '인수합병' 묘수풀이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국내 음식 배달앱 1위인 배달의민족이 5조원대 ‘빅딜’을 앞두고 위기에 처했다. ‘오픈 리스트’로 명명한 새로운 수수료율 체계를 도입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아 ‘전면 백지화’라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독과점 이슈’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계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 민족을 인수할 경우 DH코리아가 운영중인 요기요와 배달통을 합치면 배달앱 시장 점유율이 99%에 달함으로써  ‘거대한 독과점 기업’이 탄생한다는 지적이다.   그렇게 되면 배달의 민족은 ‘가격 결정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공급자가 한 명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급자가 시장가격을 결정할 힘을 갖게 된다.   지난 해 12월 17일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왼쪽)가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본사에서 김범준 차기 대표와 함께 직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사진제공=우아한형제들]   ■ 화려한 명성과 다른 배달의민족 속사정, 지난해 적자전환   공정거래위원회도 3개 배달앱 기업의 합병이 독과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주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론의 풍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향후 DH에 의한 배달의민족 인수합병을 처리하겠다는 기류가 분명하게 감지된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은 절박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4월 1일 도입한 오픈서비스 체계를 전면 백지화하고 이전 체제로 돌아가고자 한다”면서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아한 형제들은 저희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밝혔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진 것 자체가 잘못된 실수였음을 인정한 셈이다.   김봉진 의장으로서는 사과를 했지만 억울한 측면도 있다. 오픈 서비스에서 채택한 수수료율은 매출의 5.8%에 불과하다. 이는 요기요의 수수료율인 12.5%보다 훨씬 낮다. 5.8%는 글로벌 배달앱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게 우아한형제들 측의 해명이다. 더욱이 개편 취지가 영세 자영업자의 불이익을 해소해주기 위함에 있었다.   기존의 정액제(울트라콜)는 월 8만8000원에 불과하지만 기업형 음식점의 경우 울트라콜을 수십 개 등록하는 ‘깃발꽂기’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광고효과를 독점해온 측면이 있다. 개편안은 앱 상단에 노출되는 울트라콜의 개수를 3개로 제한하는 대신에 하단에 ‘오픈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었다. 즉 개편안은 ‘자본의 횡포’를 저지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있었던 ‘선한 개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 개편을 통해 배달의 민족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려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배달의민족은 수익성이 악화되는 추세였다. 명성만큼 내실이 화려하지는 않다. 지난 2018년에는 매출 3193억원, 영업이익 586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지난 해 실적은 좋지 않다. 매출은 전년대비 79.8% 증가한 5654억원에 이르렀지만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364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지난 2010년 6월 출시된 배달의민족은 2년만인 2012년 10월 이후 부동의 1위 위치를 지켜왔다. 누적투자금은 5000억원이고 연간 거래액은 5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돈을 벌지 못한 셈이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이번 논란 와중에서 김 의장과 배달의 민족에 대한 비판여론을 격화시키는 데 선봉장 역할을 했다. 지난 4,5일 이틀간 SNS를 통해 배달의 민족이 도입하려는 ‘오픈 서비스’는 독과점의 횡포라고 주장하면서 대안으로 ‘공공 배달앱’ 개발을 선언했다. 이 발표는 SNS상에서 “역시 이지사가 일은 잘한다”는 평가를 낳았다. 개인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감각과 실행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 지사가 배달의 민족 파문에서 또 한 건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용자인 자영업자들은 배달의민족에 대해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경기도가 지난 2월 만 18세 이상 도민 1,100명을 대상으로 배달의 민족·요기요·배달통' 등 3개 업체 합병과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소비자의 84%와 자영업자의 75%가 “배달앱 서비스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볼 때,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배달앱이 하는 일 없이 중간에서 수수료만 챙기는 ‘봉이 김선달’이라는 최근의 비판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선동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배달앱의 등장으로 배달음식 시장이 커져,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늘어나고 소비자의 편익 또한 증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장을 키워낸 배달의 민족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처럼 큰 돈을 벌지는 못했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다.   ■ 배달의민족에 대한 비판은 ‘적대감정병존’ 현상, 분노는 사랑의 크기에 비례해   그렇다면 대중은 배달의민족에 대해 왜 분노했을까. 일종의 ‘적대감정 병존(ambivalence)’현상이다. 사랑이 크면 배신당했을 때 증오도 커진다. 한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별다른 증오도 느끼지 못한다. 그게 적대감정 병존의 논리이다.   김봉진 의장은 양극화가 철칙으로 굳어진 21세기에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한국의 대표 기업인이다. 인문계도 아닌 공고 출신이다. 대학은 가지 못했다. 디자이너 일을 하다가 창업을 했으나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았다. 음식점 전단지 5만장을 일일이 수거해 초기 배달앱을 구축했던 ‘남루한 창업기’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더욱이 B급 문화와 탁월한 언어감각을 배합한 광고 및 마케팅전략을 구사했다. 이는 ‘배민 문화’라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승격됐다.   몸짱과 웰빙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배민신춘문예를 열어 “치킨은 살이 안쩌요, 살은 내가 쩌요”, “피자는 둥그니까 자꾸 먹어나가자”등의 광고문구를 발탁해 수상했다. 2018년 개최했던 ‘치믈리에 자격시험’에는 58만명의 청년들이 몰렸다. 상류층의 상징과도 같은 와인을 감별하는 소믈리에가 각광을 받는다면, 배달의민족은 흙수저 청년들이 사랑하는 음식인 치킨을 감별하는 치믈리에를 선발한다는 ‘도전적 메시지’에 열광한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병의 주범으로 몰린 치킨을 와인과 대등한 반열에 올린 셈이다.   요컨대 치믈리에라는 개념은 김 의장이 시도한 ‘B급 문화혁명’이었다. 그 문화혁명은 치킨이 건강에 좋지 않아도 먹어치우겠다는 청년층의 ‘반항적 열정’을 자극했고, 영세한 치킨집 사장님들은 매출 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고구려 벽화 ‘수렵도’를 패러디해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고 외치는 광고 포스터를 제작한 것도 배달의 민족이라는 상호가 언어적 유희의 일환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배달’은 ‘배달(delivery)’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한민족(韓民族)’을 포함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같은 ‘문화 마케팅’은 김 의장이 주도했다. 그리고 배달음식의 핵심 소비계층인 청년층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 ‘게르만의 민족’은 포퓰리즘이 만든 ‘허구’, 김봉진은 DH의 최대주주   열광이 순식간에 비난으로 변질된 것은 ‘오픈 서비스’라는 수수료개편 때문만은 아니다. 독일기업인 DH가 한민족의 대표적 배달기업을 인수한다는 사실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게 ‘배신감’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배신감은 대단히 위험한 감정이다. 21세기에 민족기업은 존재하기 어렵다.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외국자본이 들어와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삼성전자나 현대차도 외국계 자본이 대주주라고 볼 수 있다.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 형제들의 현재 지분율도 그렇다. 김봉진 의장 등을 포함한 경영진의 지분율은 13%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지분은 외국 자본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갖고 있다. 40억 달러(4조 8000억원)에 합병될 경우, 기존 투자자들은 큰 폭의 투자 차액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명의 벤처기업에 돈을 태웠다면, 이득을 보는 게 정의로운 일이다.   요컨데 독일기업인 DH가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다고 배달의 민족의 정체성이 ‘게르만 민족’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 기업에서 외국기업으로 변질됐다는 비판 포인트는 어리석은 대중을 득표의 도구로 삼으려는 ‘얄팍한 포퓰리즘(populism)’에 다름 아니다. 배달의 민족은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기업이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김의장이 악화된 여론을 돌파하고 예정대로 DH와의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는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본인이 지난 10일 사과문에서 강조했던 ‘사회적 책임’의 실체를 밝히고 이행하는 데 있다. 그건 ‘일자리 창출’이다. DH에 의한 인수합병 이후, 배달의민족에서 일하는 배달원들이 늘어나고 수익이 증대된다면, 김봉진 의장의 선택은 지지받아야 한다. '배달의민족'이 '게르만의민족'으로 변질됐다는 논리로 대중을 조작하는 정치적 선동을 단죄하는 게 국민적 이익을 지키는 길이다.   배달의민족은 현재까지는 자영업 시장의 크기를 키워왔을 뿐만 아니라 흙수저 청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 배달원들은 근무시간에 따라 300만~400만원의 월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우아한 형제들의 2019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증가에 상응하는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종업원 급여 지출이 2018년 629억 2039만원에서 2019년 1091억 8600만원으로 증가했다. 2019년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됐다는 것은 회사와 투자자의 몫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배달원들의 몫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김 의장의 위치도 업그레이드된다. 인수합병이후 김 의장은 DH와 우아한형제들이 싱가포르에 설립하게 될 ‘우아DH아시아’의 회장으로 취임해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12개국 사업을 책임지게 된다. 김 의장 등의 지분 13%는 DH 주식과 맞교환된다. 이를 통해 김 의장은 DH의 최대주주가 될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장은 배달의 민족 수장에서 다국적 기업인 DH의 최대주주로 변신하는 빅딜을 진행중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허구인 '게르만의민족' 논리에 파묻혀 있는 실정이다.   ■ 전쟁 앞두고 일자리 비전 제시해야 ‘청년층 열광’ 돌아와   글로벌 온라인 음식배달 시장에서 1위는 텐센트가 최대주주인 중국의 메이투안이다. 그 뒤를 미국의 우버이츠(2위), 영국의 저스트잇(3위), DH(4위)등이 추격하고 있다. 김 의장은 아시아 시장에서 메이투안과 혈전을 벌여야 할 운명이다.   김 의장은 그동안 탁월한  문화마케팅 능력을 발휘하면서 배달로봇 상용화를 위한 인공지능(AI) 및 로봇기술 투자에 집중해왔다. 이는 DH가 메이투안과의 전쟁을 이끌 총사령관으로 김 의장을 낙점한 이유이다.   하지만 전쟁에 앞서 ‘일자리 청사진’이 필요하게 됐다. 배달로봇 상용화를 추진하면서 인간 배달원의 일자리를 어떻게 지켜내고, IT개발자들에게 어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때, 청년층의 열광은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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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
    2020-04-12
  • [직장인 독서법 (2)] 블랙스완② 최태원 SK회장의 ‘사명 변경’에 담길 두 마리 블랙스완은 '기업비밀'
    [뉴스투데이=편집인 이태희]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경영철학인 ‘딥체인지’는 일종의 '긍정적 블랙스완' 대응전략이다. 나심 탈레브에 따르면, 블랙스완은 두 종류로 나뉜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의한 9.11테러나 금융위기 같은 '부정적 블랙스완'은 순식간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건설보다 파괴가 쉽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에 '긍정적 블랙스완'은 작은 변화들을 천천히 축적시킴으로써 출현한다. 물론 그 출현은 돌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 년 혹은 수십 년 간 동일한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진 데 따른 결과물이다. 이는 ‘블랙스완’의 핵심 개념과 모순된다. 블랙스완은 그동안 진행돼온 역사나 사건과는 정 반대 방향에서 출현하는 현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긍정적 블랙스완은 일종의 자기 모순이다. 하지만 탈레브는 이렇게 설명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3월 24일 오전 화상으로 개최된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SK그룹]   “마지막으로 의사결정에 대한 작은 규칙을 말해보자. 나는 긍정적 블랙스완에 노출될 수 있을 때에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긍정적 블랙스완은 피해가 적다. 반면에 부정적 블랙스완의 위협을 받을 때에는 아주 보수적이 된다. 나는 설명틀의 오류가 득(긍정적 블랙스완)이 될 때에는 아주 공격적이 되지만, 오류가 해(부정적 블랙스완)를 입힐 때에는 피해망상이 될 정도로 극도로 조심한다.”   긍정적 블랙스완은 잘못 파악을 해도 피해가 적거나 득이  되는 데 비해 부정적 블랙스완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벤처투자는 어차피 위험성이 겉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소액만 투자한다. 잘못돼도 손실액은 적다. 블루칩 종목은 위험이 숨어있다. 거액을 투자하기 쉽다. 따라서 블루칩 종목에서 블랙스완이 출현하면 그 손실은 막대하다.   탈레브는 부정적 블랙스완 현상에 집중한다. 하지만 부정적 블랙스완은 어차피 예측하거나 대응하는 게 불가능하다. 무기력하게 당하는 수밖에 없다. 탈레브가 목에 힘을 주고 블랙스완이 역사나 경제를 움직여왔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무기력하기는 우리들과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블랙스완을 탈레브가 예측했을 가능성은 0%이다. 블랙스완은 철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결코 진리나 본질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의 일종이다. 우리보고 어쩌라는 얘기인가. 탈레브의 지적 자만심과 공격본능을 과시하는 도구일 뿐이다.   ■ 파레토의 법칙은 ’흰 백조‘, ’롱테일 법칙‘은 ’긍정적 블랙스완‘   따라서 현실 속 시장경제 참여자들에게는 ‘긍정적 블랙스완’이 더 유용한 개념이다. 평균값을 관찰하는 인간의 이성과 분석력을 동원하면 사전에 관찰해서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탈레브는 긍정적 블랙스완의 사례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막대한 판매고를 올리는 책 등을 꼽는다. 이는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의 법칙’을 연상시킨다. 전통적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상위 20% 인기상품(헤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파레토의 법칙이 지배한다. 반면에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이 발달하면서 80%의 비인기상품(롱테일)이 20%의 인기상품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준다는 게 롱테일 법칙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흰 백조’인 데 비해, 롱테일 현상은 블랙스완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긍정적 블랙스완이다. 과거의 통념인 파레토의 법칙을 파괴하지만, 관찰을 통해 예측가능하다. 온라인 상거래가 유통시장을 지배함에 따라 수많은 ‘비인기상품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는 추세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제품이 시장을 장악해온 과정도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블랙스완에 가깝다. 노키아가 퍼스트무버(first mover)였으나 너무 빨라 실패했던 데 비해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인 애플은 대성공을 거뒀다. 긴박하게 뒤따라 나선 추격자인 삼성전자는 애플의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이라는 긍정적 블랙스완이 시장을 지배해나가는 과정은 시장의 참여자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누가 효율적으로 대비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릴 뿐이다.   ■ SK텔레콤의 ‘새 이름’이 관심을 끄는 이유, 두 가지 '기업비밀' 반영돼   최태원 회장이 역설해온 딥체인지는 거대한 전환 앞에서 근본적 변화를 실천하지 못한 기업은 더 이상 생존과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그 거대한 전환은 돌발적 사태가 아니다. 장기간 동일한 방향으로 지속되고 있고 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 블랙스완’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최 회장이 파악한 긍정적 블랙스완은 두 가지이다. 우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온라인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된데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획기적인 기술력이나 혁신제품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오프라인 시대의 수십 배, 수백 배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다수의 시장경제 주체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가치 독점의 중심에 서 있는 글로벌 대기업은 공존과 분배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때만 시장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인식인 것으로 풀이된다. 즉 아담 스미스가 기업의 유일한 목적으로 지목한 ‘이윤추구’는 흰 백조이고, 최 회장이 설파하는 ‘사회적 가치’는 긍정적 블랙스완이다.    딥체인지의 두 번째 포인트는 융복합이다. 기술격변으로 시장은 언제나 요동치는 상태이다. 이제 “한 우물을 파라”는 격언은 죽으라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오프라인 대형매장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승승장구했던 유통기업들이 불과 수 년 만에 온라인 유통의 강자들에게 짓눌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상은 단적인 사례이다.     국내 대형 유통기업의 대척점에 아마존이 서 있다.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한 아마존은 유통, IT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수합병(M&A)을 한 결과 글로벌 시장의 포식자로 성장해 버렸다. 한 우물을 판 유통기업은 흰 백조이고, 무차별적인 융복합을 성공시킨 아마존은 긍정적 블랙스완이다.   최 회장은 이 같은 딥체인지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계열사 사명변경을 주문한 상태이다. SK텔레콤, SK건설 등과 같은 주요 계열사들이 어떻게 이름을 바꿀지는 시장의 관심사이다. ‘새 이름’에는 기업비밀이 담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명의 행간을 읽어보면 그들이 추구할 ‘융복합의 방향’과 ‘사회적 가치’ 실천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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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
    2020-04-08
  • [이태희의 JOB채(45)] 금융위기 만든 월가와 다른 이재용의 삼성전자, 샌델의 정의론으로 평가하기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앞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 실업의 절망이나 심연의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에 빠져든 사람들 입장에선, 그 선택이 자신의 실존적 미래를 가늠케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기업이 현재적 타격에 휘청거린다면 사람들의 내면적 절망은 깊어진다. 반면에 기업이 최대한 생산활동을 지속하며 인재 채용과 미래투자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실낱같은 희망의 단초를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아담 스미스는 틀렸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국부론의 논리는 단편적 사고이다. 개별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면 그 총합인 국부가 증진된다는 논리는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다. 물론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금’이 아니라 ‘이윤추구’가 국부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중상주의 시대의 도그마를 깬 것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달 19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방문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하지만 전대미문의 팬데믹 앞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목전의 이윤만 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자비한 인력감축, 봉급 삭감 등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의 주요한 존립목적 중의 하나로 위기 이후의 ‘희망 만들기’가 절박하게 요구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이처럼 존재의 목적은 영구불변하지 않는다. 가변적이고도 확률론적으로 규정된다.   ■ 마이클 샌델, 금융위기 당시 월가의 보너스 지급을 ‘악덕’과 ‘부정의’로 규정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텔로스(목적)을 갖고 있다. 텔로스를 충족시키는 게 미덕이고 성공이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악덕이거나 실패이다. 그렇다면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미덕에 포상하고 악덕을 처벌하는 행위나 제도가 된다. 그 순서도가 뒤집어진다면 ‘부정의(不正義)’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하버드대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을 적용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뉴욕 월가의 행태를 분석했다. 샌델이 볼 때, 세계금융자본주의를 주물러온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악덕’이면서 ‘부정의’였다.  왜 그랬을까.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이나 AIG같은 보험회사의 임원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의 상징이었다. 부의 피라미드 정점에 올라서서 평범한 월급쟁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그들은 원망의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 그들의 이마에는 ‘탐욕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월가의 엘리트들이 그런 치욕스러운 낙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위기의 원인과 이후 대응과정을 살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수많은 금융상품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화근이었던 주택시장은 수직낙하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가정경제는 거덜이 났다. 그해 연말 기준 가계 손실만 11조 달러에 달했다.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이윤창출이라는 기업의 텔로스와 정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악덕’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 정부는 가계보다도 금융회사들을 먼저 챙겼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무려 7000억 달러규모의 구제금융을 풀었다. 이는 요즘 코로나19로 세계각국 정부가 앞다퉈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 조치의 효시였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달러를 찍어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빈사상태에 빠진 월가를 살리는 게 최대 목적이었다.   시장을 망친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 금융기관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구제금융을 받음으로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구제금융으로 임직원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는 점이다.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보험은 173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는데, 그중 1억6500만 달러를 무분별하게 파생상품을 구입해 파멸을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서의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하는 데 썼다. 직원 73명도 각각 100만 달러 이상의 상여금을 챙겼다. 경제를 망친 자들이 국민혈세로 축제를 즐긴 것이다.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AIG의 최고경영자는 천연덕스러웠다. 그는 “재무장관의 지속적이고 임의적인 개입으로 임직원들의 보수가 오락가락한다면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인재를 끌어올 수 없다”면서 “우리 회사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납세자들을 위해서라도 직원들의 재능에 부실자산이라는 짐을 얹어서는 안된다”고 반박했다.   미국인들은 격분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그 유명한 시위도 그래서 시작됐다. “그만 해먹어라 이 탐욕스러운 자식들아”라는 시위대의 구호가 월가에 울려퍼졌다. 월가의 정치자금으로 정치를 해온 부시 대통령과 하원도 분노의 대열에 합류했다. 나란히 손을 잡고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이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상여금의 90%를 환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구제금융으로 상여금을 나눠가진 금융기관에 대한 미국의 분노는 ‘탐욕’을 겨냥한 것이라는 게 당시 미 유력 언론들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샌델은 미국인들의 분노는 탐욕을 포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를 포상했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월가의 금융맨들이 돈을 잘 굴려서 큰 이득을 내던 시절에 그들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을 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성공을 포상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큰 실패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상여금을 받은 것은 실패에 대해 포상을 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러한 모순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게 샌델의 해석이다.   ■ 11년전 월가와 대조적인 삼성전자의 행보는 ‘미덕’, 칭찬하는 게 ‘정의’   삼성전자의 최근 행보는 11년 전 월가와는 대조적이다. 월가의 금융기관들이 위기의 원인을 제공해놓고도 스스로에게 포상하는 부정의한 짓을 저질렀던데 비해, 삼성전자는 전염병이라는 외부요인(외부불경제)에 의해 글로벌 경제가 전대미문의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대기업 총수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위기 이후의 희망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인 투자와 채용에 나서고 있다. 이는 무심코 넘길 풍경이 아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어두운 터널에 갇힌 사람들 입장에서는 용기를 갖게 만드는 사건이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초부터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 과정을 시작한다. 디바이스솔루션 부문 메모리사업부에서만 1300명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에만 최대 1만 3000여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강점인 D램, 낸드플래시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인공지능(AI), 5G, 전장사업 등 신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도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향후 3년 동안 180조원 규모의 신규투자와 4만여명의 직접 채용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채용과 투자에 대한) 2년 전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전의 사회적 약속을 팬데믹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주는 긍정적 효과는 숫자로 표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하다. 투자와 채용을 통해 풀려나가는 돈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초월하는 수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에 입각하면 이 같은 삼성전자의 선택은 ‘미덕’에 해당된다. 현 시점에서 기업의 존립 목적(텔로스)은 이윤창출에 그치지 않고 창출된 이윤을 바탕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팬데믹 앞에서 글로벌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선, 그래야 소비가 진작되고 시장경제는 선순환의 고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기업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곳간에 쌓아 놓는다고 하면 소비가 단절돼 시장 자체가 붕괴하기 마련이다.   미국인들이 월가의 탐욕을 부정의의 표상으로 지탄했던 것처럼, 삼성전자가 미덕을 실천하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칭찬과 포상을 하는 게 정의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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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
    2020-04-01
  • [직장인 독서법 (1)] 블랙스완① 삼성생명 전영묵 대표체제가 암시하는 2가지 극단값의 공포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레바논 출신 경제철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60)는 저서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서구의 주류학문인 경험과학을 맹비난한다. 정규분포곡선으로 대변되는 평균값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편집증 정도로 규정한다. 인류역사는 ‘극단값’에 의해 변동하고 진화했지만, 인간의 지식은 익숙한 평균값을 유일한 진실로 여기면서 언제나 대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요컨대 흰 백조는 평균값이고 블랙스완은 극단값의 일종이다.   2009년에 세계경제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금융위기, 2001년 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을 붕괴시킨 9.11테러 등을 대표적 블랙스완으로 꼽는다. 실제로 미국 금융자본가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무수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냈고,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19일 주총에서 선임된 삼성전자 전영묵 대표이사는 보험업계가 직면한 3마리 블랙스완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래픽=뉴스투데이]   탈레브에 따르면, 이는 주택시장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호황일 것이라는 확증편향이 빚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미주택시장의 거품이 정점을 찍는 순간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시장 전체가 폭발해버렸다. 산산조각 났다. 그 수백 배로 추정되는 파생금융상품도 고스란히 부실화됐다.   뉴욕 월가를 주물러온 투자은행들은 도산위기에 몰렸다. 막판에 파생금융상품을 최대한 팔아치웠던 골드만삭스는 살아남았고, 어리석게도 그 물량을 소화했던 리먼브러더스는 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블랙스완(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의 출현을 수시간전에 인지해 긴박한 대책을 실행한 반면에 리먼브러더스는 여전히 블랙스완은 없다고 우긴 결과물이다.   ■ 주인을 친구로 오인한 칠면조의 비극은 귀납법적 인식의 오류   탈레브는 블랙스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식론적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럿셀로부터 ‘칠면조의 교훈’을 차용해온다. 한 마리의 칠면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인간 주인은 칠면조에게 매일 먹이를 가져다 준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르면서 칠면조는 주인을 고마운 친구 정도로 인식한다. 내일도 주인은 먹이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1000일 간의 경험이 만들어낸 인식론적 오류에 해당된다.   이 오류는 최종 순간이 되기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1000일 동안 인간 주인은 칠면조에게 먹이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1001일이 되는 추수감사절날 주인은 먹이 대신에 식칼을 들고 온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칠면조를 잡아 가족과의 식탁위에 올리기 위해서다. 인간 주인은 친구가 아니라 도살자였다. 목이 잘려 나가려는 순간 칠면조는 “젠장”이라고 외칠지도 모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탈레브에 의하면, 거위가 주인을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이 ‘귀납법적 인식론’이 범하는 오류이다. 1000일 간의 아름다운 경험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물론 거위가 주인의 실체를 미리 파악했다고 해도 뾰족한 탈출구는 없다. 칠면조가 사육장을 탈출해 장수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은 다르다. 블랙스완의 출현을 감지한다면 큰 성공을 거두거나 진보의 주역이 된다. 헐리우드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으로 나온 ‘괴짜 투자자’ 마이클 버리(실존 인물. 크리스천 베일 분)는 금융시장의 폭락에 베팅하는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칠면조의 목이 잘릴 것을 예견하고,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를 친 것이다. 월가의 쟁쟁한 투자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해고당할 때, 버리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른다.   ■ 자산운용전문가인 전영묵 대표의 기용은 적시타, 세 마리 블랙스완 잡아야   19일 삼성생명 주총에서 선임되는 전영묵(56) 대표이사는 자산운용 전문가로 평가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 삼성생명에 입사해 2015년까지 29년 간 삼성생명에서 근무하면서 PF운용팀장, 투자사업부장,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지냈다. 마케팅과는 거리가 먼 투자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삼성생명 임직원이라면, 자산운용 전문가의 기용은 블랙스완의 출현에 대비하는 인사카드라는 판단을 할 것도 같다. 보험업계는 두 개의 극단값의 출현에 대비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와 ‘초저금리 시대’이다. 왜 그럴까.   국내보험업계는 수십 년 동안 인구증가 시대를 즐겨왔다. 보험가입자는 꾸준히 늘어났고, 한국의 금리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보험금 수입이 매년 늘어나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부담이 적었다. 금리가 높아 자산운용수익이 보험금으로 나가는 돈보다 크도록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았다. 보험업계가 경험해 온 ‘흰 백조’시대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귀납법적 경험론의 오류에 빠지면 곤란하다. 탈레브의 관점을 적용하면, 앞으로도 보험가입자를 늘릴 수 있다거나, 고금리에 편승해 손쉽게 자산운용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반드시 큰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주인이 내일도 먹이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칠면조의 비극을 직접 겪게 된다.   보험업 종사자들이 이미 만났을 가능성이 높은 ‘블랙스완’은 세 가지이다. 첫째, 앞으로 국내 보험가입자는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임여성 1명당 출산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지난 2018년 기준으로 0.977명으로 집계됐다. 현재 인구가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2를 약간 상회해야한다. 합계출산율은 부부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보험가입 대상은 반토막 이하로 떨어진다.   둘째, 기존 보험 가입자들은 오래 살면서 보험금을 많이 타먹는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한국의 남성들은 술과 담배에 찌들어서 60대에 사망했다.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여성 평균 기대수명은 85.7세,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79.7세이다. 그들은 이제 질기게 살아남아서 보험사들을 괴롭힐게다.   셋째, 깊어지는 초저금리시대에 보험사가 지금과 같은 투자전략을 유지하면서 현 시점의 자산운용수익률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기준금리가 25bp(1bp는 0.01%포인트) 떨어지면 이미 판매된 고금리 약정 상품의 역마진은 심화된다. 나아가 자산운용수익률도 떨어져 2차 역마진까지 발생한다. 장기국고채 등에 투자한 자산운용수익률이 보험금으로 나가는 돈보다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글로벌 코로나19 경제위기 징후에 대비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5%p 전격 인하했다. 우리나라에서 0%대 기준금리는 사상처음이다. 0%대 금리라는 블랙스완의 출현이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여전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추가금리인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 마리 블랙스완을 잡는 해법은 하나이다. 보험사가 가입자들에게 받은 보험금을 최대한 잘 투자해 이익을 늘려야 한다. 그 이익금이 보험지급금보다 많아야 살아남는다. 들어오는 보험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보험금을 투자해 돈을 불리는 데 전문성을 지닌 전영묵 대표의 기용은 시의적절한 인사이다. 하지만 그 앞에는 블랙스완이 헤엄치는 공포의 강이 흐르고 있다.  
    • 스페셜기획
    • 이태희의 JOB채
    2020-03-19
  • [이태희의 JOB채](44)파이썬의 교훈을 실행한 LG생활건강 차석용 대표, 주가는 오르겠지만
      LG생활건강 차석용 대표이사 부회장.[사진 제공=LG생활건강]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지난 2018년 9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안동지청의 사회복무요원 반병현(27)씨는 상사로부터 방대한 분량의 단순 작업을 지시받았다. 안동지청에서 최근 1년간 보낸 모든 등기우편 기록을 조회해 정리한 자료를 인쇄해 보관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소 무지막지해 보이는 이 지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노동청에는 임금체불, 실업급여 수령, 부정수급 등과 같은 다양한 노무관련 민원분쟁이 발생한다. 노동청이 해당 사항을 처리하면 등기우편으로 그 결과를 발송한다. 문제는 민원인이 “나는 그런 우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잡아떼면 소동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 조회 서비스를 이용하면 간편하지만, 우체국은 최근 1년 동안만 등기우편 발송기록 조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결과 1년 2개월이 지난 사안은 등기우편 발송 여부를 온라인상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된다.   반씨의 상사는 최근 1년치 기록을 인쇄해두면, 다음해에 관련 분쟁이 발생해도 손쉽게 등기우편 발송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동청이 우체국에 등기우편 발송기록 조회 서비스 제공기간을 5년이나 10년으로 대폭 확장하는 게 최선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료주의’의 두터운 벽을 감안하면 사회복무요원에게 단순작업을 시켜서 분쟁에 대비하겠다는 반씨 상사의 발상은 나름대로 ‘행정개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반 씨가 만약에 직접 1년치 등기우편 발송기록을 정리하려면 우체국 홈페이지에 접속해 등기번호 13자리를 입력해서 그 결과물을 모두 정리한 다음에 인쇄해야 한다. 이처럼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이 ‘단순 반복 노동’을 통해 처리하면 6개월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반 씨는 시급 1600원을 받고 있었지만 ‘혁신가’였다. KAIST에서 바이오 및 뇌공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파이썬(Python)으로 크롤러(crawler)를 만들어서 단순노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파이썬(Python)은 비전공자들이 쉽게 이해해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간결한 로직과 높은 효율성 등을 인정받아 머신러닝, 그래픽 등의 분야에서 선호되고 있는 추세이다. 크롤러(crawler)는 웹상의 다양한 정보를 자동으로 검색해서 색인 작업을 하기 위해 검색 엔진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이다.   반 씨는 우체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안동지청의 최근 1년 간 발송한 등기우편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문서를 검색해서 정리하는 크롤러만들어냈다. 파이썬으로 등기우편기록을 검색하는 크롤러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술적 장벽에 직면할 때마다 ‘구글신’에게 물어봐서 해결했다.   반씨는 오전에 이 크롤러에게 작업을 시키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왔다. 그 동안 크롤러는 반 씨를 대신해서 단순 반복 노동을 완벽하게 끝내놓았다.     파이썬이 만든 크롤러는 ‘무서운 사건’, 단순 노동의 종말 선언 반 씨의 사례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단순 반복 노동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인간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단순 노동 작업자가 6개월 간 걸릴 작업 분량을 반 씨와 같은 혁신가가 반 나절만에 뚝딱 처리해버린다.    창의력과 기획력, 통찰력과 분석력을 발휘해야 사람 대접을 받게 된다. 반 씨는 파이썬으로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 간단한 크롤러를 만든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이는 ‘무서운 사건’이다. 파이썬, 구글신, 크롤러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 노동종사자일 확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썬을 활용하지는 못해도 파이썬으로 어떤 크롤러를 만들라는 지시 정도는 내릴 수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 시대에 ‘단순 반복 정신노동’은 진정으로 설자리가 없다는 게 ‘파이썬의 교훈’인 셈이다.     LG생건의 ‘알 파트장’은 반병현이 만든 ‘크롤러’와 정확하게 일치   LG생활건강(대표이사 부회장 차석용)이 지난 달 26일 단순·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업무자동화(Robotic Process Automation) 시스템 '알 파트장'을 도입했다고 밝힌 것도 사무직 종사자들에게는 위기경보이다. ‘로봇 파트장' 8대를 도입해 엑셀 업무, 전산시스템 조회 및 다운로드는 물론 이메일 송·수신도 가능해 결과 자료를 담당 임직원에게 전송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는 이야기이다.   LG생활건강의 알 파트장은 증권사와 같은 금융기관들이 4년여 전부터 도입해 온 AI 로보 어드바이저와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롱테일(소액투자자) 금융상품 시장을 확대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측면이 크다. 자산가들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인간 PB들의 역할은 로보 어드바이저로 인해 크게 위축되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장의 특성상 인간과 AI의 공존은 상당 기간 유지될 전망이다.   하지만 화장품 회사인 LG생활건강의 알 파트장은 단순 반복 노동이라는 인간의 영역을 직접 대체하고 있다. 8대의 알 파트장은 인간 직원 237명이 연간 총 3만 9000시간을 일해야 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3만 9000시간은 13.4년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알 파트장은 바로 안동 지청의 반씨가 만든 크롤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존재이다. 알 파트장은 LG생활건강 직원 237명분의 일감을, 반씨가 만든 크롤러는 반씨가 6개월 동안 할 일을 수행한다. 반씨가 단순 노동을 하지 않는 대신에 크롤러를 만들겠다는 기획력과 크롤러를 만들어내는 전문성을 발휘했듯이, 알 파트장이 빼앗아간 일을 해오던 LG생활건강 직원들도 다른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LG생건의 알 파트장, 연간 149억여원의 당기순이익 증가요인 한국의 직장인들에겐 ’반병현 되라'는 메시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재된 LG생활건강의 2018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 직원 4512명의 평균 연봉은 6300만원이다. 그동안 알 파트장의 업무를 담당해왔던 단순 반복 노동을 인간 영역에서 삭제시키면, 273명의 단순 작업 노동자 감축 요인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237명의 인력을 줄이면 연간 149억 3100만원의 인건비가 절감된다. 이는 고스란히 회사의 당기순이익 증가분으로 이전된다. 주주 가치를 제고시키는 주가 상승 요인이다.   차석용 대표는 실적 기반의 대표적 장수 CEO로 꼽힌다. 지난 2004년 12월 취임한 차석용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011년 12월에 부회장으로 승진해 실적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지난 해 8월 발표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시총은 2005년 1월 기준 4357억 원에서 지난 해 7월 말 기준 19조6321억 원으로 뛰어 올랐다. 무려 44배의 증가율이다. 알 파트장 도입은 ’효율성의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차 대표의 경영스타일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행보이다.   그러나 LG생활건강 임직원 중에서 단순 반복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온 사람들은 위치가 불안해 질 수 있다. LG생활건강만의 문제도 아니다. 알 파트장의 도입은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단순 반복 노동을 그만두고 반병현과 같은 직원이 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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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은둔의 경영자’ LG화학 신학철 부회장이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의 승리전략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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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28)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부거래 족쇄, 일본무역보복 '지원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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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JOB채](27) 트럼프 정조준한 '부유세’ 논쟁, 청년유니온'최저임금 공세’ 와 결이 달라
    청년유니온 '최저임금 공세’ 와 다른 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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