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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철의 검사수첩 (12)] 사법불신과 전관예우, 그리고 어떤 할머니의 돈봉투 투척사건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어 의뢰인과 상담을 해보면 우리 국민들의 뿌리 깊은 사법불신을 체감하게 된다. 검찰의 처분이든 법원의 판결 선고든 결과적으로 패소한 의뢰인 중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검사의 처분, 법원 재판에 지면 늘 “저쪽 변호사가 판검사와 친해서...” 누군가를 고소했는데 무혐의 처분이 나왔을 경우, “상대방, 즉 피고소인이 선임한 변호사가 담당 검사하고 친해서 무혐의 처분이 나온 것 같다. 이번에는 담당 검사와 재판부하고 좀 더 친한 변호인을 선임했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검찰의 처분이나 법원 판결에 대해 불신이 많을까 생각을 해봤다. 일단은 법원이나 검찰이 몇몇 정치적인 사건에서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과 처분을 내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일들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추락시켜온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1년간 검찰에서 처리하는 사건만 최소 몇십만건이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사건 또한 수십만건이다. 국민의 관심을 끄는 정치적인 사건 한 두 개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 날 수는 있지만 나머지, 거의 대부분의 사건은 변호인과 재판부 또는 담당 검사와의 친분관계에서 좌우되지 않는다.   변호사들의 책임도 큰 것 같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평생 검찰청이나 법원은 물론 경찰서 마당 한번 밟아보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한번 고소고발이나 재판같은 쟁송(爭訟)에 휘말리면 변호사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는데, 패소한 변호사 중 일부는 “이거 우리가 이겨야 되는 건데 저 판사, 저 검사가 상대방 변호사하고 친하다보니까 우리가 졌다”식의 변명을 한다고 들었다.   ■ “저쪽 변호사가 판·검사와 친해서...”는 거의 대부분 사건에 진 변호사측의 변명 변호사가 증거를 통해 사실관계를 입증(立證) 하는데 실패했거나, 애당초 법리적으로 이길 수 없는 사건을 무리하게 진행한 측면도 있을 텐데, 변호사는 그것을 인정할 경우 그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그러니까 의뢰인들한테 “재판부나 주임검사가 상대방 변호사와의 친분 때문에 억울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변명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내가 검사로 현직에 있을 때, 친한 변호사가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변호사가 온다고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특히 혐의의 유무에 대해서는 검사에게는 재량이 없다고 봐야한다. 정말 친한 변호사의 경우에는 제출하는 자료들을 가급적 꼼꼼히 보고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변호사와 아무리 친하다고 해서, 죄가 있는데 없다고 하거나, 반대로 없는 죄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위공직자 전관예우 방지방안에 관한 공청회. 사진은 연합뉴스  ■ 전관예우의 실체는 의뢰인의 기대감 내지 심리적 안정감일 뿐   이런 뿌리깊은 사법 불신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왔다고 본다.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것도 그렇다. 언론에서 전관예우를 마치 제도인 양 문제를 많이 지적하지만, 사실 전관예우라는 것이 사회적 현상이지 법률, 제도적인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검찰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 절친한 선·배, 후배 검사들이 많다. 그런데 그 동료나 선후배 검사들이 내가 검사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너는 이제 변호사가 됐으니까 더 이상 나하고 친하게 지낸 수는 없어’라는 식으로 인간관계가 갑자기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담당 판검사와 친했던 사람이 변론을 할 경우 절차적인 면에서 냉랭하게 대하기는 쉽지 않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아마 이런 것이 언론에서 말하는 속칭 전관예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전관예우가 모든 걸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요즘 법원 검찰의 사법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주임검사가 만약에 A라는 결정이 맞는데 변호사와 친하기 때문에 B라는 결정을 할 경우, 내부적으로 결재시스템이 있어 결재자인 부장검사와 차장검사가 부당한 결정을 그대로 통과 시켜 주지를 않는다. 만약 결재를 통과하더라도 기소 이후에는 재판 시스템이 있고, 불기소 결정일 경우에는 불복해서 항고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잘못된 처분을 해도 결국은 시스템적으로 바로 잡혀지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전관 변호사가 아무리 판검사와 좋은 관계라고 해도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절대로 다 해줄 수 없다. 오히려 의뢰인들이 기대감, 즉 전관 변호사이기 때문에 주임검사나 담당 재판부에서 변호사가 원하는 대로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감, 이것이 바로 전관예우의 실체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전관예우가 마치 형사소송법에 있는 어떤 제도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가? 사실 근절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함께 근무하면서 맺은 인연을 제도에 의해서 단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정 변호사가 같이 근무했던 검사의 사건은 맡지 말라고 법으로 막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는 대부분 부패한 모습이다. 간혹 정의로운 검사상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야비하고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변호사나 정치인들, 기업인으로부터 향응과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검사로 그려진다. 그래서 나는 검사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안보는 편이다. 너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어떤 시골 할머니의 돈봉투 나 스스로도 모든 검사가 다 깨끗하고 정의로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검사들이 다 부패하고 출세지향적인 기회주의자로 묘사하는 것은 분명 사실과 큰 괴리가 있다.  검사 시절, 사건 당사자 중 나에게 돈을 주려고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대전지검 홍성지청에 근무할 때였는데, 한 할머니가 사기피해를 입은 사건을 맡았다. 형편이 넉넉치 않았는데, 어떤 사기꾼이 할머니를 속여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쌈짓돈 몇천만원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그 돈이 없으면 할머니의 노후생활이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   할머니로서는 가해자의 처벌보다 돈을 돌려받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민사소송을 통해 돌려받기는 어려웠다. 민사소송을 이긴다 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으려면 강제집행 할 재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기꾼들 중에 자기 명의로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기꾼들이 돈이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명의만 타인 명의로 해 놓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검사실에 와서 그 사람이 감옥에서 실형을 살든, 집행유예를 받든 그 것이 중요하지 않고, 돈을 돌려받아야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하소연 하였다. 나는 사기꾼에게 할머니에게 돈을 돌려주면 그 점은 충분히 처분에 반영이 된다고 설득했다. 다행히 사기꾼은 할머니의 돈을 되돌려 줬고, 나 또한 그 점을 참작해서 사기꾼에게 감경된 처분을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어느 날 검사실에 찾아와서 검은색 비닐 봉투를 책상 옆 휴지통에다 휙 던져놓고 나가는 것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봉투를 열어보니 만원권 몇 다발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황급히 나간 상태였기에 수사관이 허겁지겁 뒤 따라가 할머니에게 돌려드린 적이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검사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선배 변호사가 사건이 없는 상태에서 사주는 식사는 같이 하기도 하였으나 그나마도 요즘은 사라진 풍속도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너무 부패한 검사상 만이 그려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산더미 같은 일에 파묻혀서 살고 있는데, 검사와 검찰조직 전체를 부패한 집단,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는 것처럼 그려지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 사법의 권위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 법원과 검찰은 권위가 서야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판결이나 처분을 하면 사람들이 승복하고 따를 수 있는 신뢰와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심에서 졌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2심, 3심까지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게 다 돈이고 비용이다. 사건이 폭주하면 결국 결정이 느려지고 이게 다 사회적 비용이다.   이런 이유로 권위주의는 청산되어야 하지만 법과 사법기관의 권위는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기본 장치인데, 이런 최후의 보루까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울러 사법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반성도 필요하다. 검찰이나 법원은 과거처럼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잘못된 결정과 판결을 해서는 안된다. 언론과 영화 같은 미디어도 흥미만 추구하기 위해 현실과 지나치게 다른 과장 묘사가 불러올 부작용을 생각해봐야 한다. 변호사들 또한 패소(敗訴)의 원인을 사법부패 탓으로 핑계 대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추락된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을까 싶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7-02
  • [민경철의 검사수첩 (11)] 거의 모든 성범죄 사건의 핵심은 상대방의 동의 여부
      최근 여러 가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면서 이에 대한 처벌과 법적용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당사자, 남녀 간의 동의 여부에 관한 것이다.   내가 변호사로서 피해자나 가해자와 상담을 해보면, 성범죄 발생 후 대부분의 남성은 주로 상대방인 여성의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은 그런 적이 없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스킨십‧성관계, 묵시적 동의로 이뤄지는 경우 많아 갈등 소지   남녀 간 성관계나 스킨십에 대한 동의는 명시적, 확정적인 경우가 거의 없고 묵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남녀가 사귀는 사이 또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분위기에 맞추어서, 또는 음주 상태로 스킨십도 이뤄지고 성관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키스해도 되나요”, “나 지금 이 순간 당신과 성관계를 가져도 되나요?”라고 묻고, 승낙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남자는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여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상반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전지검 홍성지청에 근무할 때 있던 일이다. 어떤 남자가 강간치상 혐의로 경찰로부터 기소의견으로 송치가 됐다. 그런데 이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였다. 강간치상은 7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죄인데, 경찰이 기소의견이면서 불구속으로 송치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사건을 살펴봤다.   이런 내용이었다. 남녀가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음날 제주도에 함께 놀러가기로 합의를 했다. 그런데 늦은 새벽까지 놀다보니 피곤했기 때문에, 모텔에 가서 자고 난 뒤 다음날 제주도에 가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 남녀는 술이 많이 취한 것도 아니었고, 모텔에도 자발적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먼저 씻고 침대에 알몸으로 누웠고, 여자도 씻고 타월을 두른 상태에서 같은 침대 위에 누웠다.   남자는 “이 정도면 나와의 성관계를 허락한 것이다” 라고 생각에, 타월을 벗긴 뒤 여자의 몸을 만지며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 하지만 여자는 피곤하다면서 “그냥 자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남자는 “으레 그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성관계를 시도했다.   여자는 급기야 “내가 싫다는 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화를 냈고, 남자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함께 모텔에 들어왔고 이렇게 샤워를 하고 벗은 몸으로 누워 있는데 이제 와서 관계를 안 하겠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서로 다퉜다. 다툼 끝에 남자가 옆에 있던 곽티슈를 여자 얼굴에 던져서 여자의 얼굴에 상처까지 생겼다.   남자는 화가 나서 모텔에서 나왔고, 여자는 남자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내가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저 남자가 억지로 성관계를 하려 했고 끝까지 거부하니까 곽티슈를 던져서 내 얼굴에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있었던 게 15년쯤 전 일인데 당시 검사들 사이에서이 사건이 혐의가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어떤 검사는 “이건 남자 말이 맞다, 그런 상황에서 같이 모텔에 들어갔고 샤워하고 벗은 몸으로 함께 침대 위에 누웠는데, 그건 성관계를 하겠다는 묵시적 동의로 봐야한다”고 했다. 또 다른 검사는 “동의가 있더라도 명시적으로 하기 싫다고 했으면 더 이상 남자는 성관계를 시도하지 말았어야 된다, 그럼에도 계속 시도를 한 것은 죄가 된다”라고 주장했다.   묵시적 동의가 있었기에 죄가 안 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명시적으로 거부했기에 죄가 된다는 입장도 일리가 있었다. 아무튼 실제 성관계가 있던 것도 아니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다 보니 사건 자체는 그렇게 중대한 일이 아니어서 서로 합의가 되었기에 고민 끝에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명시적인 의사가 묵시적인 의사에 우선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여자가 “나는 요즘 외로워” 라는 등 술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라든가 “성관계 할 사람이 없어” 라는 식의 대화가 오고가는 상황이라면 남자들은 “이게 나와 관계를 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스킨십을 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라고 혼란스러워지면서 착각을 할 수 있다.   술에 취해서 벌어지는 성폭행사건에서는 묵시적 동의여부가 큰 쟁점이 된다. 사진은 영화 엽기적 그녀의 한장면으로 기사와 상관없음   ■명시적인 의사표현은 묵시적인 것 보다 우선... ‘묵시적 동의’ 인정 엄격해지는 추세   남녀 간 스킨십이나 성관계는 일반적인 사회생활 또는 업무와는 다르다. 계약서도 없고, 분위기에 이끌려서, 술을 먹고 이루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싫다는 명시적인 의사표현은 늘 항상 아무 말도 안하는 묵시적인 상황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명시적인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쪽으로 종종 인정해주곤 했지만 최근의 법적용은 점점 이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여자가 성관계에 관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성관계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늘 보면, 성범죄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성관계나 스킨십이 실제 있었느냐 여부, 둘째 합의에 의한 것인지 또는 일방적인, 강제적인 것이었는지 여부다. 여기서 합의는 명시적 합의와 묵시적 합의를 다 포함한다. 그런데 피해자인 여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묵시적인 합의를 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 사는 곳에 형법의 잣대가 너무 깊숙이 들어오는 것에 우려   술에 취하면 분명 멀쩡하게 행동을 해놓고도 다음 날에는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보면 묵시적 동의가 있었지만 여성 입장에서는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나는 동의한 기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나와 성관계를 했으면, 넌 나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범죄자다” 라는 논리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풍토 때문에 요즘에는 남녀 간에 애인이라 하더라도 명확하게 서로 합의를 하고 성관계나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풍조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형사적 처벌, 법의 잣대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너무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어떤 변호사와 점심 식사를 하다가 들은 이야기다. 그 변호사가 검찰청에 갔는데 잠시 기다리는 동안 80세가 다 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와서 “뭐 좀 물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얘긴즉 자신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아서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다가 옆에 앉아있던 여성의 신체를 건드렸는지 그 여성이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이런 경미한 사건은 사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끝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모든 일을 법에만 의존해 해결하려는 풍조는 잘못하면 서로 간에 벽을 만들 수 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가급적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잘 지내다 헤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성범죄 중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라는 것이 있다. 과거 강간이라고 하면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을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 뒤 성관계를 하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그 사람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은 폭행이나 협박에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강간으로 봐야한다. 이런 취지로 만들어 진 것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다.   이 죄는 내가 생사여탈권을 가진 상황에서 내 의사를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을 상대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자고 했을 경우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강간으로 보고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너무 넓게 해석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남자 교수와 여학생의 관계로 따져보자. 교수가 총각일 수도 있고 여학생이 나이가 많을 수 있다. 둘이 진실로 사랑할 수도 있다.   서로 사랑해서 성관계를 가졌는데, 사랑한다고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고,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나중에 사이가 틀어져서 학생이 이것을 문제 삼았다고 했을 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범위를 너무 넓히면 범죄가 안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좋을 때는 로맨스였다가 나중에 틀어지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인사권을 가진 간부와 평직원 사이에 사랑이 있을 수 있다. 위력이나 지위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닌 진정한 남녀 간의 로맨스가 나중에 사이가 틀어졌다고 형사사건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범죄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하에서 이런 일이 범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인 점을 감안할 때 현재는 과거보다도 균형 감각이 더욱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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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25
  • [민경철의 검사수첩 (10)] 아동학대, 계모의 구타에 의한 8살 아이 사망사건
      최근 부모의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여러 형태로 자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구지검에 있을 때, 비슷한 사건을 처리했던 경험을 되새겨 본다.   당시 계모가 아이를 때려서 사망한 사건이 경찰에서 송치됐다. 경찰은 계모를 구속해서 송치했지만 뚜렷하고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죽은 아이의 온몸에는 멍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계모는 자신이 훈계 차원에서 간혹 때린 적은 있지만, 아이가 죽기 전날에 아이를 때린 적은 없다며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었다.   반면, 죽은 아이의 언니가 있었는데, 자신이 동생이 죽기 전날 인형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때리고 밀었다고 주장했다. 죽은 아이가 만 8세였고, 언니가 12세였다.   ■ 계모는 완강히 부인, 12세 언니가 “내가 때렸다” 주장... 주변의 증언이나 직접증거 없어   경찰은 과거에 계모가 아이를 때린 적이 있으니 이번에 아이가 사망한 것도 계모가 때렸을 것이라는 추정 하에 사건은 계모를 폭행치사죄로 송치하였다. 하지만, 때린 것과 사망한 결과 간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폭행으로 아이가 죽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을 텐데 일주일 전에 때린 것 만으로는 사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계모한테 물을 수는 없었다. 또, 언니가 자기가 때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구나 계모를 무턱대고 기소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12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세게 때렸기에 동생이 죽었을까? 계모나 아빠의 강요나 회유 때문에 자기가 때렸다고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을 갖고 이 사건을 조사했다.   사건을 받은 다음, 일단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계모라고 모두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 가정은 계모와 아이들 간에 화목하고 원만하게 지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보통 아동학대는 집 안에서 일어나기에 주변 사람들이 집에서 엄마가 아이를 때리는지 여부를 알기가 어려웠고, 평소에 계모가 죽은 아이를 때려왔다는 증언은 확보할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언니에게 “네가 동생을 때렸다는 것을 나는 납득할 수가 없다. 장난감을 가지고 서로 다투다가 밀 수도 있지만, 동생은 배를 맞아서 죽은건데 네가 동생을 때렸다 한들 죽을 정도로 그렇게 세게 때릴 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언니는 막무가내로 “내가 때린 것이 맞다, 엄마 아빠는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때 나는 언니에게 내 배를 때려보라고 했다.   “네가 한 번 아저씨 배를 때려볼래? 사람이 죽으려면 상당히 큰 충격이 배에 가야 되는 건데 아저씨는 12살 밖에 안 된 여자 아이가 사람의 배를 때려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안된다.”   ■ 동생 배를 때려 죽였다는 언니에게 “내 배를 때려봐라”   그때 검사 생활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의자한테 맞는 경험을 해봤다. 아마 아이도 직감을 했던 모양이다. “이거 세게 때리지 않으면 저 아저씨가 날 안 믿어주겠구나”라고. 그래서 얼마나 세게 때리던지, 이거 정말 얘한테 맞아서도 죽을 수 있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어른인데 이 정도로 충격이 온다면 상대방이 어린 아이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 동생과 사소하게 다투다가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서 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을 하고 계모를 불러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경찰에서 사건이 송치되면 피의자가 구속된 상태에서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은 20일 밖에 안된다. 거기에 주말은 빠지니까 10일에서 15일 정도가 조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계모를 불러 거듭 설득하면서 가까스로 “전날 때린 건 맞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완강하게 부인하는 사람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수사하면 다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한 물증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먹고 부인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다음 문제는 무슨 죄를 적용해 처벌할 것인가. 계모를 살인죄로 의율할 것이냐 폭행치사죄를 적용할 것이냐 두 가지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룬 칠곡 계모 아동학대사건 [사진캡처=SBS]   ■ 가까스로 받아낸 계모의 자백, ‘고의성 여부’가 처벌의 관건   살인죄와 폭행치사의 차이를 설명 드리면, 먼저 살인죄는 사람을 때리면서 “이 사람을 죽이겠다”거나 “죽어도 상관없다”,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직간접적 고의성을 갖고 사람을 때려서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살인죄다.   폭행죄는 고의적으로 폭행을 했지만 “이 사람을 죽이겠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상황에서 때렸는데 맞은 사람이 죽었을 때 폭행치사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폭행은 고의범이고 사망은 과실범이 된다. 예를 들면 화가나서 가볍게 손으로 뺨을 때렸는데 맞은 사람이 지병이 있어 뇌출혈로 사망한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그런데 계모는 때린 것은 맞는데, 그 횟수가 한 번밖에 안된다고 했고 달리 여러번 때렸다거나 물건을 가지고 때린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없었다. 그 후 행적을 보니 가족들끼리 밖에 나가서 외식도 했다. 만약 복부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때렸다거나 아니면 몽둥이나 야구방망이 같은 것으로 때렸다든지, 때린 부위가 명치 같은 급소였다든가, 이런 것이 입증이 된다면 때리면서 상대방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배를 한번 때렸을 뿐인데, 아이를 죽이려고 때렸다고 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때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 계모에게 살인 아닌 폭행치사죄 적용... 가해자 엄중처벌 여론과 법률적 판단 사이의 괴리 결과적으로 계모에게 폭행치사죄를 적용했다. 당시 나는 어린 아이가 죽었고, 죽은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수사를 했고, 증거에 따라 최고로 중하게 법적용을 했다. 그렇다고 칭찬을 바라지는 않지만, 계모를 기소한 이후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서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아이를 죽을 정도로 때렸는데 살인죄로 기소 안하고 폭행치사로 했느냐”는 것이었다. 여론과 시민 여성단체의 심정도 충분이 이해가 가지만, 나는 수집된 증거에 의해서 인정되는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법률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살인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판단될 만큼 여러 가지 정황, 증거가 수집이 되느냐가 검사 입장에서는 고민거리다. 심정적으로야 살인죄로 기소하고 싶지만 증거상으로 인정되는 사실관계를 가지고 살인으로 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에도 그런 문제가 있다. 대형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왜 살인죄로 처벌 안하느냐고 하는데 담당 검사들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과실범이 맞는데, 여론이 들끓고 가해자 처벌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강하니까 고의범인 살인죄를 적용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검사들의 고민이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 아동학대범죄, 주로 보호자가 가해자...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 증거수집 어려움   이 사건에서 아동학대 범죄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계모든 친부든 죽은 아동의 보호자가 오히려 학대를 했다는 것이다. 아동범죄는 이런 경우가 많다. 보호자로부터 학대가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 아동이 보호자 손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보호자가 가해자이기 때문에 아동 입장에서는 그 상황에서 “엄마 아빠를 신고하고 나면 나는 누가 돌봐주지? 엄마 아빠를 신고하는 게 맞나”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웃, 선생님, 친척 등 주변에서 아동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동의 몸에 이유 없는 멍자국이 많이 나거나, 성격이 갑자기 이상해 진다든가, 너무 야위어 간다든가, 이럴 경우에는 혹시 보호자에 문제가 없는지 관심을 갖고 담당기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대처가 가능하다.   아동학대 범죄는 또한 증거수집이 굉장히 어렵다. 아동학대는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다. 평상시 멀쩡하던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들어와서 아이를 때리는 경우도 있고, 아동이 아주 어릴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장기간에 이루어 지기도 한다.   그때 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일기에 쓰는 것도 아니고, 바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나중에 수사하게 되면 언제 어떻게 맞았는지 일시나 장소, 방법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증거수집이 어려운 만큼, 아동 범죄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판단해서 다소 범죄사실이 추상적이어도 전체적으로 진실이면 유죄로 판단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아동학대는 한 아이에 불행에 그치지 않는 사회적 문제, 관심과 배려 필요   아동학대 범죄는 단순히 아동이 맞고 학대받는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피해 아동들에게 가정은 공포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보호자가 공포를 조성하는 주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가 많다.   범죄자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정확한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강도나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 있던 친구들이 많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대받는 가정에서 성장한 친구들이 정신적 트라우마가 생겨 폭력적 성향을 갖는 경우를 많이 봤다.   때문에 아동학대는 단순히 학대받는 아동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아동의 보호자 차원에서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한편 따뜻한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23
  • [민경철의 검사수첩 (9)]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올바른 대처법
      최근 발생한 유명 음악PD 사건 피해자의 변호사로서 피해자의 신속하고 올바른 대응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놀라고 당황해서 올바른 대처를 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옛날처럼 어두운 데 가다가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강간하는 식의 성범죄는 별로 없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성범죄는 ‘지인들하고 술을 먹었는데 만취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일어나보니까 남자의 방이었다, 혹은 모텔이었다’ 이런 사건이 대부분이다.   성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음악PD ‘단디’ 안준민 씨[사진제공=연합뉴스]   ■정신없이 술 먹다 아침에 일어나니 모텔...현명한 대처방식은?   예컨대, 모텔에서 일어나보니 내 옷은 다 벗겨져있고 옆에 남자가 자고 있는 상황을 가정하자. 일단 현명하게 대처를 해야 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것이 쉽지 않다. 이 경우 현장에서 남자를 자극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추가 범행이 발생하는 등 더 큰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일단 가장 가까운 친구나 지인한테 카톡 같은 SNS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술먹고 깨보니까 옆에 누가 있어...” 이렇게 먼저 메시지를 남긴 뒤 일단은 현장을 무사히 잘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성폭행이 있었을 수도, 없었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말을 바꿀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통상 사건은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관계는 했지만 동의해서 했다. 관계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즉각 112에 신고를 하면된다. 그러면 담당형사가 찾아오는데, 그 형사를 따라 해바라기센터로 가게 된다. 해바라기센터에서는 병원과 연결해서 몸속에 남자의 DNA가 남아있는지 이런 것들을 검사하는 과정을 가르쳐주는 등 대처법을 조언해 준다.   ■가해자가 “동의하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발뺌하면?   대부분 사건에서는 여성의 동의여부가 최대의 쟁점이 된다. 실제 여성이 동의했을 수도 있다. 일어나보니까 기억이 안 날 뿐이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의 여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술에 만취돼서 남자의 등에 업혀올 상황이었다면 애당초 동의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일행에게 당시 상황을 파악해보는 게 좋다. 술이 잔뜩 취한 여성을 들쳐매고 가서 모텔로 데리고 가서 성관계를 해놓고 동의 운운하는 것은 범죄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모텔 CCTV를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갔는지, 소위 ‘떡실신’ 된 상황에서 업혀서 들어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평상시 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던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면 성폭행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망설이지 말고 변호사를 찾거나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경찰관의 안내에 따라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가 개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취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조치인 것이다. 특히 DNA는 72시간이 지나면 검사가 안되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면 안된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19
  • [민경철의 검사수첩 (8)] 온라인 고스톱 처벌로 거물급 변호인단과 맞서
      서울북부지검에 근무할 때다. 온라인 포커와 고스톱이 사실상 도박이 되어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온라인 포커나 고스톱 게임을 하려면 사이버머니가 필요하다. 문제는 사이버 머니를 어떤 방식으로 취득할 수 있는 지다. 사이버머니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캐쉬(cash)라는 것이 있는데, 캐쉬는 일반인이 30만원을 주고 30만원씩 사는 것이다. 그 30만원의 캐쉬를 가지고 게임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구매할 수 있다. 캐쉬 30만원으로 사이버머니 1조원을 사는 식이다. 이렇게 구입한 사이버머니로 포커나 고스톱 게임을 하게 된다.   ■온라인 게임 포털, 사이버머니 한도 규정 우회해 도박판 조장   당시 법적으로는 성인 1인당 월 30만원까지만 캐쉬를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월 30만원으로 캐쉬를 사서 도박을 하다보면 사이버머니가 떨어질 수가 있다. 그래서 운영자들이 꼼수를 쓴 것이, 운세보기 사이트를 이용하는 식이었다. 운세보기를 결제하면 운세는 안 보고 거기에 경품처럼 지급되는 사이버머니를 대신 지급받는 것이어서 이 방법을 통하면 유저들이 사실상 사이버머니를 무한정 구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식으로 온라인 게임 포털에서 관련 규정을 우회적으로 회피한다는 정보였다.   또 다른 정보는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거래한다는 것이었다. 사이버머니는 그 자체로는 몇억원이든 몇조든 그냥 사이버머니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사이버머니를 실제 돈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이었다. 현금 10만원으로 온라인 게임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 1조원을 살 수 있다면 8~9만원에 파는 식이었다. 거래 방법은 고스톱 방을 만든 뒤 현금을 받고 사이버머니를 잃어주는 수법이었다.   사이버머니가 온라인 상에서 게임머니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래가 되고 또 법적으로 월 30만원으로 묶어놓은 것을 업체들이 운세보기 사이트 등 우회적으로 규정을 회피하는 것은 온라인 도박장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수사를 하게 됐다.   ■대기업 거물급 변호인단 상대... “법률적으로 위법한 행위인가” 치열한 공방 끝 기소   그런데 문제의 게임포털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었기에 수사가 매우 어려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고스톱, 포커게임을 심심풀이로 하고 있다. 심심풀이로 하는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데 실제 고스톱, 포커처럼 도박판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이 매우 불명확하고 심지어 게임업체에 유리하게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어 사실상 도박장을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수사가 시작되자 업체 측은 최고위급 검찰 간부를 지낸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관련규정 상 운세보기 형태로 사이버머니를 지급하는 것이 기존에 허가받은 게임 운영 방식을 변형한 것인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인데, 변호인단은 사이버머니를 지급하는 것은 게임 운영과는 무관한 것이어서 법률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실관계는 다 규명이 됐고, 다툼이 없는데, 이것이 과연 법률적으로 위법한 행위인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그래서 당시에 검찰 지휘부와 엄청나게 많은 토론을 벌여야 했다. 이게 과연 죄가 되는 행위냐, 그렇지 않느냐... 업체에서 선임한 고위급 검찰 간부 출신 변호인단이 와서 “이건 죄가 되지 않는 행위다”라고 주장하는데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검찰 지휘부에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그러다보니 수사는 물론 기소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믿어준 부장검사, 차장검사의 응원은 물론 검사장까지도 내 판단이 옳다고 지지했기 때문에 결국은 기소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게임 포털 사이트에서 이용자가 사이버머니를 거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방조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소를 했는데 1심에서 무죄가 나오고 말았다. 내가 북부지검을 떠났을 때 일인데, 다른 곳에서 근무하면서 그 소식을 들으니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죄가 된다고 강하게 주장을 해서 수사를 밀어 붙이고 위에 간부들까지 설득해서 기소했던 사건인데 1심에서 떡하니 무죄가 나니까 그분들 보기가 민망했다. 심지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나버렸다.   그런데 한참 뒤에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판결이 바뀌어 파기환송 되고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이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당시 게임회사 측 변호인단이 워낙 쟁쟁한 사람들이어서 기소된 사람들은 더러 구속도 됐지만 대다수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바다이야기’ 같은 아케이드 게임보다 온라인 도박게임 폐해가 더 심각 과거 우리 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했던 ‘바다이야기’는 아케이드 게임이다. 아케이드 게임이란 오락실에서 하는 게임을 말한다. 그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아케이드 게임은 거의 게임의 중심에서 멀어져갔다. 도심에서 성인오락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성인오락실이 바다이야기 이후로는 사양산업이 된 것이다.   실제 도박 중독자를 만드는 것은 아케이드 게임이 온라인 게임을 당해낼 수 없다. 이제 게임중독도 단순한 중독이 아니라 질병 코드로까지 분류되는 상황이다. 마약중독 못지않게 도박중독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하면 도박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허가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폐해가 아케이드 게임에 비해서 온라인 게임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온라인 도박은 사이버머니가 오프라인에서 실제 돈으로 거래가 되지만 않으면 도박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임이 도박적인 요소가 많더라도 실제 금전거래가 없으면 도박이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문제가 된 게임들은 실제 돈으로 환전이 됐기 때문에 기소했던 것이다.   현재도 암암리에 게임에서 취득한 사이버머니의 환전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환전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온라인 상의 사이버머니는 현금과 다를 바 없고 온라인게임은 도박장과 다를 바가 없다.   ■억대 잃는 정선 카지노는 합법, 백만원 잃는 동네 고스톱은 범죄?   보통 사람들은 남자가 도박을 더 좋아하는 줄 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은 남자가 더 많지만 중독 상태의 ‘도박꾼’은 여자도 남자 못지 않게 많다. 이상하게도 여성들이 한번 도박에 빠지면 남자보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꼭 필요하다.   동네에서 고스톱을 치던 사람들이 가끔 적발되어 사건화 되면 초범이면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하지만 재범일 경우 통상 벌금 처분을 받는다. 동네에서 하는 고스톱은 보통은 가족들이 신고를 많이 한다. 남편이 맨날 모여서 고스톱만 치니까 정신 차리라고 신고를 하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고스톱을 치다가 처벌받는 경우 실제로 잃은 금액은 몇 만원~ 백만원 정도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모습. 사진은 연합뉴스.   그런데 정선 카지노 VIP 룸에서 어떤 사람은 며칠 사이에 억단위의 돈을 잃는다. 국가에서 버젓이 운영하는 기관에서 어떤 사람들은 억단위를 잃는데 단지 장소가 정선 밖이라는 이유로 점백짜리 고스톱을 한 사람들은 처벌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적 경쟁력 가진 한국의 게임산업, 육성보다는 규제로 접근해 발전 가로막아   건전한 게임육성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게임 산업이라고 하면 바다이야기 이후로 완전히 ‘도박 노이로제’에 걸린 상태다. 아케이드 게임은 완전히 규제대상에 불과하고 대신 온라인 게임을 열어주는 양상인데 실질적으로는 온라인에서 더 많은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   내가 사법연수원생 시절 해봤던 게임 중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게임은 정말 대단했다. 시간과 자원을 배분하고, 어떤 전략을 선택해서 상대방을 이기는 전략 게임이었는데 하면 할수록 정말 잘 만든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게임을 만들기도, 하기도 잘하는데. 게임 산업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좋은 게임을 만들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지만, 게임에 대해 육성보다 규제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좋은 게임이 개발돼서 상품화 되기에 어려운 여건이다. 탁월한 한국의 게임산업이 규제에 막혀 세계적으로 더 웅비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게임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규제 일변도로 정책을 펼 경우 산업적 토양 자체가 황폐화 될 수 있지 않나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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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16
  • [민경철의 검사수첩 (7)] 마약수사의 추억…“담배는 몸에 해로워서 안피운다”는 대마사범
      인천지검 강력부에서 마약사건 전담 검사로 근무할 때다. 마약전담 검사는 경찰에서 송치하는 사건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정보를 입수하여 하는 수사, 즉 인지수사도 해야 한다. 인지사건 실적이 없으면 검사는 상당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천지검에는 마약수사관들이 굉장히 많은데, 검사 한명에 소속된 마약수사관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10명 이상의 수사관을 지휘하면서 실적이 없다는 것은 지휘부에 상당히 미안한 일이고, 그래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약담당 검사실의 실적이라는 것이 하루에 몇 건씩 일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달 동안 한건도 없을 때도 있지만, 일단 수사가 개시되면 줄줄이 사건이 터지기도 한다. 그 무렵에는 인지할만한 사건 자체가 많이 없어서, 검사와 수사관들은 서로 만나기조차 뻘쭘한 상태였다. 검사는 수사관한테 “나가서 정보라도 수집해야지 왜 사무실에 가만히 있는 거야”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게 되고, 수사관들은 “없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 어학열풍 속 원어민 강사 ‘대마파티’ 정보 입수해 수사시작   당시는 어학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원어민 강사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와서 어학원 강사로 자리매김하면서 예전에는 없던 범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원어민 강사들이 한국에서는 대마를 구하기 힘드니까 대마초를 자국에서 항공택배로 몰래 들여와서 대마초 파티를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정보가 입수되고, 수사착수가 결정되면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항공 택배는 결국 세관을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수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세관과 긴밀하게 협조를 해야 했다. 인천공항 세관에 “항공택배를 각별히 조사해서 대마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자”라고 특별히 당부했고, 결국 어떤 택배 포장물에 대마초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대마든 필로폰이든 마찬가지다. 마약이 택배 화물 속에 들어있는 것이 확인되면 풀었던 택배를 다시 포장해서 배달원을 가장한 수사관들이 택배에 기재되어 있는 장소로 배달하는데 이것을 ‘통제배달’이라고 한다. 수사관들은 택배를 배달하고 그 장소에 잠복근무를 한다.   배달지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사람이 있어서 그 배달물을 수령하면. 잠복해있던 수사관들이 수취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수취인이 체포돼서 검사실로 오면, 그때부터 검사와 수취인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자기가 대마를 외국에서 들여왔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에 하나도 있을까 말까한다. 대부분 “난 모른다. 난 택배로 대마를 보내달라고 한 적이 없다. 이 택배가 왜 나한테 왔는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검사는 설득이나 여러가지 조사기법을 통해 부인하는 택배 수취인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   ■ 48시간 안에 자백 받아내야…한 명 잡히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검사한테 실질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체포시각으로부터 48시간이다. 48시간이 체포 시한이고, 사안이 중한 경우 48시간 내에 구속 영장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체포된 피의자는 구치소로 들어가야 한다. 구치소로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구치소 직원들의 계호(戒護)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피의자를 데리고 현장에서 수사하기는 어려워진다.   48시간 안에 자백을 받는 데 성공하면 그 다음 수사가 가능해진다. “대마 혹은 필로폰을 했으면 같이 한 사람이 있을텐데 누구와 함께 한 것인가요” 이렇게 물었을 때 자백한 사람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누구와 함께 했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한명, 어떤 사람은 대여섯 명을 진술하는 사람도 있다.   공범자에 대한 진술이 확보되면 그 자백하는 사람의 전화로 공범자들한테 전화해서 어디에서 보자고 한다. 주거지가 명확한 사람은 그 집에 가서 데려오기도 하는데, 주거지가 명확치 않거나 어디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불러내야하기 때문이다.   수취인을 데리고 가서 카페 같은 약속장소에 앉혀놓고 수사관들은 옆에 손님으로 가장해서 있다가 상대방이 오면 체포한다. 이렇게 한 명을 잡고나면 또 다른 관련자들을 수사하기 위해 사건은 긴박하게 흘러간다. 또 다른 사람 잡고, 그 사람 상대로 또 조사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사람을 또 잡으러가고. 마치 고구마 줄기에서 고구마 딸려 나오듯이 관련자들을 수사하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사범 한 사람 잡기가 어려운 것이지, 그 진술에 따라 공범들이 수십명까지 검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사나 수사관들은 그때부터가 전쟁이다. 수사관들은 나가서 잡아오고, 검사는 자백받고 공범을 확인하고...   ■ 언어‧문화 다른 외국인 수사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   외국인을 대상으로 수사를 하다보니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다. 내국인을 수사하는 건 별 문제 아닌데, 외국인을 수사할 때는 통역을 써야 한다. 그 당시에는 원어민 강사들이 주로 영어권이었기 때문에 영어를 쓰는 통역인을 동석시키고 조사를 했다. 혹시 검사가 영어를 할 줄 알더라도 통역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영어가 능통한 검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검거된 사람을 조사해야 하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통역인을 통해 조사를 하다보면 피조사자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지를 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피의자한테 검사가 직접 질문하면 충분히 그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지만 통역인한테 “사정이 이러이러하니까 당신이 지은 죄를 정확하게 사실대로 얘기하는게 좋다고 통역해주세요”라고 하면 통역은 해주어서 취지는 전달되지만 조사자의 뉘앙스가 전혀 살지 않았다.   검사가 추상같이, 직접 영어로 “컨페스(Confess, 자백해!)!"라고 호령을 하거나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사람한테 “당신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이게 당신이 주문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게 당신한테 배달될 수 있다는 건가요”라고 질책하는 것과, 통역인한테 “이렇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해서 통역이 전달하는 것 하고는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뒤로 그때 처음으로 “영어가 반드시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래 잘 하지도 못하지만 그나마도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영어를 그때 많이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한민국 영어교육은 읽고 쓰는 영어였지 듣고 말하는 영어가 아니었다. 검사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지만, 듣고 말하는 영어를 잘하는 검사는 없었다. 물론 요즈음 검사가 되신 분들은 영어에도 능통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비엔나에서 열리는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 UN Office on Drugs and Crime) 주최 국제 마약회의가 있는데, 대한민국 검사대표로 나간 적이 있다. 발표든 대표들간의 대화든 모두 영어로 해야되는데 영어실력이 짧다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많이 위축되면서 많이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 담배가 자백을 받아내는 특효약?   과거에만 해도 검사실에서 가끔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있었다. 나의 초임검사 시절에는 검사실이 담배연기로 뿌연 경우가 많았다. 검사도 피우고, 수사관도 피우고, 검사실이 너구리 잡는 굴처럼 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언젠가부터 검사실에서 담배가 사라졌다.   검사들이 가끔 사용하는 수사기법 중 하나가 담배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검사에게 조사받는 동안 몹시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여서 담배가 몹시 피우고 싶어진다. 용의자나 피의자를 치열하게 추궁하다가 자백할 무렵이 되면 검사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조사받는 사람한테도 담배를 권한다. 같이 담배를 피면서 “사실대로 이야기합시다” 말하면 심리적으로 우르르 무너지면서 사실대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마약사범인 외국인 원어민 강사들에게도 담배를 줬다. 대마를 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담배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원어민 강사의 대답이 너무나 뜻밖이었다. “검사님 저는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담배는 굉장히 몸에 해롭거든요”.   대마는 하는 사람이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안 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아니, 대마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담배는 안피우냐”고 했더니, “대마는 기호식품이라서 가끔 파티에서 하는것이지 담배처럼 매일 하는게 아니어서 몸에 그렇게 해롭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충격과 더불어 “아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마에 대해서는 각국마다 법률이 천양지차다. 요즘은 옛날같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대마에 대해서 굉장히 엄격한 나라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상당수 주 등 합법인 지역도 많다. 어떤 나라는 그냥 과태료나 벌금 정도고 경미한 범죄로 처벌하기도 한다. 팔거나 영리적인 목적으로 다루는 건 중대한 문제로 보지만 그냥 피우는 것 정도는 경미하게 처벌하는 나라가 꽤 있다.   그 원어민 강사도 그런 나라에서 자라서, 대마를 즐기던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이렇게 엄격한 줄 모르고 대마하다가 구속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이 사람들한테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와 너희 나라는 법률과 제도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교육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수십명의 외국인 강사들을 기소하면서, 이 사람들도 다 자국에서는 귀한 자식이고 귀한 남편이고 아내일텐데 형사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도적 차이점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다. 그 당시 인천과 경기지역은 외국인 강사들이 구청에 등록을 해야했다. 등록된 원어민 강사들을 전부 인천지검 대강당으로 가능하면 나오라고 연락했다.   민경철 인천지검 마약담당 검사가 2008년 1월 외국인 원어민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마약관련 법률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그때 각국의 대사관은 물론 나도 직접 원고를 써서 강연을 했다. “여러분의 나라와 우리나라는 이렇게 차이가 있다. 당신 나라에서는 대마를 피는 것이 큰 죄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선 큰 문제가 된다. 외국에서 처벌받으면 굉장히 두려운 일 아니겠느냐.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은 대마하지마라”. 당시 이런 내용의 교육이 형사처벌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 마약에 손댄 삶은 피폐 그 자체…젊은이들 신종마약 퍼지는 풍조 안타까워   마약검사를 오래했지만 마약사범은 단속만으로는 근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마약청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국민들 사이에서 ‘마약 근처만 가도 패가망신 한다’ 이런 공감대가 오랫동안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처벌수위도 예전보다 굉장히 낮아졌다. 대마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초범은 거의 구속하지 않는 실정이다. 용서도 해주고 벌금형에 그치기도 하니까 마약사범이 다른 재산죄를 저지른 일반사범처럼 취급되는 느낌이 든다.   또 마약사범들을 범죄자라기 보다 환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인권의식의 강화 등으로 인해 마약수사가 옛날보다 증거법적으로 더 엄격하게 보니까 수사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있어서인지 “이거 해도 괜찮은 것 아냐?”라는 의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어서 매우 걱정스럽다. 엄격한 단속이 부작용도 있지만, 엄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마약검사를 하면서 느낀점 하나는 정치가와 인기 연예인, 마약은 서로가 많이 다르면서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즐거움, 쾌락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돼도 재선, 삼선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고, 연예인이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기간도 장기간 유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약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마약을 하고 싶어도 아침, 점심, 저녁 내내 마약을 할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한번 하면 그때는 좋지만 안하는 기간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마약사범들의 삶이 피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약을 하는 그 순간만을 위해 나머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필로폰처럼 강도가 높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은 불행의 정도가 그만큼 더 크다.   나는 우리 사회가 마약 청정국인 상태가 좀 더 오래 유지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 중심으로 신종마약이 급속히 퍼져나가는 실정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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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11
  • [민경철의 검사수첩 (6)]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사와 검경수사권 갈등 (하)
      이 사건은 또한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은 수사의 모델 케이스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검찰이나 경찰이 건축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건 관련자 중 애당초 학생들이 죽을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지만, 그렇다고 철골조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건물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지붕에 쌓인 눈을 그때그때 치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과연 사람이 잘못해서 건축물이 무너진건지, 관계 법령에 따라 모든 규정을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없는 눈이 내렸기 때문에 붕괴된 것인지가 관건인데, 이것은 굉장히 과학적인 영역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이런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조사를 요청했다. 국과수는 훌륭한 인적자원이나 장비를 갖추고 있고 경험도 풍부한 곳이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화재에 비해 건축분야는 취약했다. 인력과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폭설로 인한 재난, 인재(人災) 여부 규명 위해 최고의 자문단 구성   국과수에만 의존해서는 이 건물이 왜 붕괴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수사팀은 상당한 예산을 들여 건축 분야 최고의 교수님과 실무 경험자들로 수사 자문단을 만들어 이 사고가 눈 때문인지 사람의 잘못인지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아 내린 결론은 “이 건물이 무너진 것은 눈 때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규정을 준수하고 의무를 다했으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받는 수사 사례는 이후에도 판교에서 환풍구가 무너졌을 때, 지진 같은 재난으로 사망사고, 건물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같은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수사팀이 두달여간 수사를 진행한 끝에 상당히 많은 인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영장이 청구한 사람들은 모두 발부가 됐다. 이들은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에서도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2018년 6월21일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왼쪽 두번째)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맨왼쪽), 박상기 법무부장관(오른쪽 두번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경수사권조정합의문에 서명한뒤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사진=연합뉴스] ■검경 갈등 안돼.. 국민 위해 협업과 협력 필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검찰과 경찰 간의 협업,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대립과 갈등을 바라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사와 경찰 수사팀은 하나가 됐다. 함께 수사하고, 같이 고민하고, 함께 영장청구를 위한 작업을 하고, 영장이 발부되면 다 같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수사관들이 그전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 다른 조직끼리 협업해서 수사할 경우에 이렇게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나고 훌륭한 결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당시 나와 나이가 같았던 수사팀 책임자들하고는 친구가 됐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동생이 됐다. 지금도 서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그때를 회상한다.   검찰과 경찰이 서로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갈등을 빚는 모습에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검사는 검사역할을 충실히 하면 되고, 경찰 또한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면 되는데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검·경 스스로와 국민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무너진 건물 관리책임자에게 대한 인간적 연민   이 사건과 관련,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당시 리조트 책임자는 그 자리에 온지 두 달도 안된 상황이었다. 학력이 높지는 않았지만 입사 후 최고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전무의 지위까지 올라간 분이었다.   그는 폭설이 내리자 이를 방치하지 않고 전 직원을 동원, 진입로에 제설작업을 해서 손님들이 낙상하지 않도록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책임은 단지 눈 때문에 체육관이 무너질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당시 나는 “과연 내가 책임자라면 눈 때문에 체육관이 무너질거라고 예견할 수 있었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분은 검사실로 불려와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내 책상까지 정리해주려고 할 정도로 근면과 성실, 선함으로 똘똘 뭉친 분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했던 것이 마음 아프기도 했지만, 관리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인간적인 면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중에 그분이 징역을 살고 나온 뒤 통화를 했는데 검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실시공 방지 등 안전 확보 위해서는 문화를 바꿔야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천 물류창고 화재도 그렇고, 사고가 났을 때만 떠들썩할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대형 안전사고는 계속해서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남 얘기 할 때는 “튼튼하게 잘 지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자기 건물을 지을 때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달라진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튼튼하고 좋게 지어달라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떻게든 비용은 아끼고 빨리 짓기를 원한다. 비용을 아끼고 빨리 짓는 것과 튼튼하게 짓는 것은 양립되기 힘들다. 시멘트가 굳는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튼튼한 골조를 쓰려면 비용이 들어간다.   최저가 낙찰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도 살펴보아야 한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사람이 건물을 짓는데, 그 사람도 이득을 보려면 부실한 자재에 대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화 되려면 이런 최저가 낙찰제의 문제점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법률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항상 사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실시공이 되지 않게끔 충분한 비용과 기간을 들여서 건물을 짓는 사회적인 문화가 정착이 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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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08
  • [민경철의 검사수첩 (5)]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사와 검경수사권 갈등 (상)
      2014년 2월, 대구지검에 근무할 때였다. 야간 당직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경찰로부터 사건발생보고가 올라왔다. 경주에 있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리조트의 체육관 지붕이 붕괴돼서 마침 그곳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던 대학생들 다수가 사망하고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는 몇십년만의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상태였다. 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붕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이 사고로 신입생 등 10명이 사망하는 등 모두 2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중요사건으로 분류된다. 중요사건이 발생하면 대검에 보고도 해야되고 여러가지 할 일이 있는데, 당시 공안부 당직검사가 사건을 챙겨 보겠다고 해서 나는 당직근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 2014년 2월 경주 리조트 체육관 천장, 폭설로 붕괴, 신입생 등 214명 사상   대구지검 산하에 경주지청이 있기 때문에 리조트 관할 검찰청인 경주지청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직 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 두시쯤 전화가 왔다. 검사장님이 검찰청으로 들어오라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건 때문이구나 싶어서 대충 세수만 하고 다시 사무실로 나갔다.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등이 다 모여서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경주지청이 자체적으로 처리하기에는 경력이 많은 검사들이 부족하여, 대구지검에서 경력 검사를 지원해서 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나를 비롯한 몇 명의 강력부 검사들이 경주지청에 가서 수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회의를 마치고 아침 일곱시 무렵에 검사 세 명과 수사관 두 명이 서둘러 경주지청으로 갔다. 리조트는 상당히 높은 산에 위치해 있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쌓인 눈이 상당히 되었고 현장에는 경찰의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으며 기자들도 상당히 많이 와 있었다. 경찰은 검찰 수사팀에게 현장을 설명해줄 여력이 없을 정도로 현장 정리에 몰두해 있었다.   아직 사건 발생 직후다 보니 검사가 현장에서 사건을 지휘하기에는 상황이 적절치 않아 보였다. 일단은 인명구조가 가장 우선시되는 상황이었고 수사는 그 이후의 문제였다. 인명구조는 119와 재난안전본부의 소관이다. 일단 매몰된 현장에 있을 수도 있는 학생들과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장비와 인원이 동원되었다.   현장은 상당히 기온이 낮은 상태였다. 나는 현장에 갈 줄 몰랐기 때문에 얇은 양말, 구두만 신고 나오다 보니 발이 꽁꽁 얼 정도였다. 일단 현장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한 뒤 경찰 책임자에게 어떤 부분의 초동 수사가 필요한지 당부해 놓고 다시 경주지청으로 갔다.   경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사 현장에 급파된 소방대원들이 희생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사진은 연합뉴스.   ■ 철골에 깔려 시신 훼손된 대학 신입생 보며 ‘철저한 수사’ 다짐   사람이 사고로 죽거나 사인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검사는 변사체 검시(檢屍)를 하게 돼있다. 나를 비롯한 검사들은 유족의 입장을 고려해서 검시를 최대한 신속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망자들은 한 병원이 아니라 여러곳에 나뉘어져 안치되어 있었다. 각 병원으로 검사를 급파하면서 나도 그 중 한 병원으로 가서 검시를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것이, 병원에 안치된 학생들은 대학교 입시를 마치고 막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아이들이었다. 지붕의 철골조가 무너져서 사람이 깔려서 사망한 사건이다 보니 시체의 훼손 정도가 심했다. 다리가 부러지고 주요 부위가 골절이 된 상태였던 것이다.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겨우 입시에서 해방되자마자 끔찍한 사고를 당해 온몸이 부숴진 아이들을 보니,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 된다. 이 사고로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었는데 책임자를 규명하지 못하면 나는 검사로서 자격이 없다. 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이 사건을 수사하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신속히 검시를 마치고, 수사가 시작됐다.   경주지청에 있던 검사들과 대구지검에서 내려간 검사들이 한팀을 이뤄 수사가 진행됐다. 경찰에서도 경북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서 오십명 정도가 파견돼 경주경찰서에 수사팀을 꾸렸다.   ■ 대규모 검·경 합동수사팀 출범했지만 수사 초반기에는 갈등 상황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검경은 하나의 팀이 돼서 수사하기도 하지만 경찰에서 초동 수사를 하고 검사는 사건을 지휘하기도 한다. 당시 이 사건 수사는 후자의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검찰과 경찰간에 수사권 조정 문제가 첨예하게 이슈가 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검사가 지휘를 하려면 경찰에서 사건 진행상황을 보고해 줘야 하는데, 경찰은 스스로 수사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검사들은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는 등 지휘를 올려야 그때서야 기록을 보면서 사건을 파악해서 지휘가 가능하기 때문에 초동 수사 단계에서는 지휘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검사들하고 경찰 수사팀 수뇌부가 협의를 했다. 경찰에서 진행되는 수사상황을 검찰과 공유해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경찰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찰 스스로 수사를 하고 필요한 순간에 지휘를 올려서 지휘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누군가를 고의로 죽이려고 해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사고임이 명확했다. 이런 과실에 의한 사고는 관련자들의 과실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사고의 관련자들에게 어떤 의무가 있는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을 규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경찰은 사실관계를 규명하는데 수사를 집중하다 보니 법률적 측면이 간과되는 측면이 많았다. 검사들의 법률적 견해가 반영되야 되는데 처음에는 그런 것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검사들이 경찰 수사의 공을 가로채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수사가 잘 될 수 있도록 경찰 수사를 도와주겠다는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관련 판례들을 정리해서 보내주고, 어떤 사실관계가 수사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주, 두주가 지나니까 경찰들도 점점 수사팀 검사들을 신뢰하기 시작하였다. 수사 종반에는 검찰과 경찰은 조직적 괴리감은 전혀 없었다. 서로 협력하고 진정한 한팀이 되어 수사를 하였다.   ■ 대형 안전사고 발생시 언론보도 내용을 규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수사력을 소비   사건 수사는 두 가지 파트로 진행됐다. 설계 및 시공 파트와 리조트 유지 및 관리 파트로 나눴다.   이런 대형 안전사고 발생시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가 언론이다. 언론 보도는 때론 수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때론 수사를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언론의 보도 내용 중 상당히 많은 내용들은 추측성 보도이다.   이 사건 수사때만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제보했는데 리조트 체육관 지붕에 물 새는 것을 목격했다더라, 학생회에서 돈을 받고 원래 그 리조트 가면 안되는데 그 리조트에 갔다더라...’ 등등 이런 유형의 보도들은 나중에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언론보도에 민감한 검찰이나 경찰의 수뇌부는 이런 추측성 보도들이 나오면 수사팀에 보도 내용의 진위를 물어 볼 수 밖에 없다. 수뇌부에서 언론에서 이런 의혹을 제기했는데 어떻게 된거냐 수사팀에 물어보면 수사팀은 실제 필요한 수사보다 그 부분을 수뇌부에 소명하는데 시간을 쏟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수사의 핵심은 이 리조트의 체육관이 왜 붕괴됐는지를 그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가려내는 것인데, 이와 무관하게 언론이 보도하는 간접적인 의혹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다보니 수사력의 30%는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을 해명하는데 사용된 것 같아 사실 짜증이 났다.   여기에 수사력의 20%는 언론보도 내용을 취합하고 상부에 보고하는데 쓰이다 보니 실제로 수사할 수 있는 사람과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모든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의 사실관계 및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국민적 여론이 집중되면 수뇌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수사력의 상당 부분이 본질과 동떨어진 곳에 사용되는 것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대형 안전사고, 특히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에서는 유족들을 잘 보살피고 납득시키는 것이 수사팀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유족들이 분노하고, 오해가 생겨서 수사를 불신하면 수사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이 사건 당시에도 수사팀은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리조트를 운영하는 대기업의 오너가 직접 현장까지 달려와 진정성을 가지고 유족들에게 신속하게 사과하고 통상의 사망사고보다 상당한 액수의 금전적인 보상을 해 준 것은 수사팀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편에 계속)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6-04
  • [민경철의 검사수첩 (4)] “남편 친구가 저를 강간했어요”…성범죄 수사가 어려운 이유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경찰로부터 강간죄 고소사건이 송치됐다. 경찰은 피고소인에게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의견이었다. 하지만 강간사건이고 혐의가 있으면 중한 범죄여서 구속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구속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고소인의 남편은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상황이었고 피고소인 A씨는 남편의 아주 절친한 친구였다.   ■ 고소인 “강간이었다” VS A씨 “합의된 성관계였다” 주장 엇갈려   고소인의 주장에 따르면, 남편이 구속되자 의지할 데가 없어진 고소인은 평소 남편의 절친이어서 자신과도 허물없이 지내던 A씨에게 물적‧심적으로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남편 옥바라지를 하면서 변호사는 어떻게 선임해야 하는지, 합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세상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어서 당황스럽기만 하던 차에 A씨와 대부분 논의를 하였고, 자기 일처럼 도와주던 A씨가 고소인으로서는 무척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A씨가 고소인을 사무실로 불렀다. 고소인은 A씨가 남편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하려고 부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던 중 A씨가 돌변하여 자신을 강간하였다고 했다.   반면 A씨는, 고소인의 남편이 구속된 이후 여러 도움을 주다가 고소인과 많이 가까워졌고, 그러다보니 성관계를 맺은 것도 맞다. 하지만 강간은 아니다. 성관계는 고소인과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지, 절대로 고소인을 강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직접증거 없고 양측 주장 배치.. 고소인과 A씨의 잦은 만남에 의심   경찰은 양측의 주장을 토대로 수사를 했다, 하지만 사건 당일 목격자도 없었고 고소도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이뤄진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몇가지 보강수사를 마친 후 고소인의 말이 맞다고 판단하여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던 것이었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A씨는 고소인의 남편과 굉장히 친한 친구사이로, 친구가 구속된 상태에서 친구의 아내와 합의된 성관계를 맺는다는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이기에 경찰이 A씨 말을 믿지 않는 것도 일리는 있어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고소인과 A씨가 너무 자주 만났다는 것이다.   A씨 주장에 따르면 고소인의 남편이 구속된 이후 한 두번 상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해 음식점을 같이 가거나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길고 통화도 잦았다.   강간이 있었다고 한 시점 이후에도 고소인과 A씨는 계속 통화를 한 사실이 통화 기록에 나타나 있고, 고소인도 A씨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낸 사실에 대하여는 다툼이 없었다. 그래서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면밀히 사건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고소인과 A씨가 함께 갔다는 음식점들의 CCTV를 확인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영상이 지워진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CCTV 자체가 아예 없고,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어렵게 두 군데 정도의 영상을 확보했다. 영상을 보니 고소인과 A씨의 모습은 연인 같은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소인과 A씨를 각각 따로 불러 당시 상황과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 물었다. ■ 고소인 남편의 출소로 드러난 사건의 전말   조사 과정에서 고소인과 A씨가 성관계를 가진 이후 고소인의 남편이 출소한 사실을 알게 됐다. 출소한 남편은 우연히 아내인 고소인과 A씨 간의 관계가 연인관계로 발전해서 성관계까지 가진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고소인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A씨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지고도 허위로 고소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고소인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당신의 말을 다 믿고 싶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당신과 A씨가 성관계를 한 것은 남편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고, 고소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어놓고 이제와서 허위로 고소하여 A씨가 강간죄로 처벌된다면 그건 더 큰 잘못을 하는 것이다. 만약 고소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주기 바란다”   한참을 조사하다가 밤 아홉시쯤 됐을 때였다. 조사를 받던 고소인이 펑펑 울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구속된 상태여서 너무 힘들고 외롭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보니까 A씨와 가까워졌고 남편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됐고 그러다보니까 성관계까지 가지게 됐다. 너무 후회스럽다. 하지만 남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30분 동안 눈물을 쏟아내면서 고백한 진실은 이렇다.   출소한 남편이 자신과 A씨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성관계를 했는지 캐묻자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인정을 했다. 그런데 남편이 구속돼 있는데 바람이 났다고 하면 면목도 없고 맞아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실과 달리 강제로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러면 고소하자는 남편의 말에 따라서 고소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A씨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하고 고소인은 고의로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몬 죄, 즉 무고죄로 기소했고 결국 유죄가 선고되었다. 고소인의 무고 혐의는 죄질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구속하지는 않았다.   남녀간 애정관계 및 사회적 이해관계가 결부된 성범죄는 수사와 사건처리가 까다롭다. 사진은 영화 '해피엔드'   ■ 성범죄 사건에 대한 인식변화가 수사의 어려움으로 작용   대개 고소인의 주장과 피고소인의 부인 진술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검사, 수사관, 판사도 피해를 봤다는 여성을 대체로 믿게 돼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그런 피해를 당했다고 허위로 지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성범죄 수사가 굉장히 어려운 이유다. 이 사건처럼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허위로 고소할 수 밖에 없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금전적 이유로 합의하에 가진 성관계를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비록 아주 일부이긴 하지만 모든 사건에서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했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처벌 수위도 과거에 비하여 지금은 형량이 2~3배 이상 늘었다.   피해자를 조사하거나 재판에서 증언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급적 피해자는 한번의 조사로 종결되게끔 되었다. 법정에서 증언을 여러 번 한다거나, 피해자가 경찰에서 한번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에서 다시 조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주 예외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 여성인 피해자의 ‘가짜주장’ 의심 금기시되는 풍토는 문제   피해자 보호 강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극소수 사건이기는 하지만 허위로 고소한 피해자의 주장을 확인하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언젠가부터 여성인 피해자의 진술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수사기관에서 매우 금기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까 자칫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강간으로 몰려 무고한 죄인을 낳을 수도 있는 그런 위험성도 커진 것이다.   100건, 1000건 중 한 두 건 있을 수 있는 잘못된 고소사건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걸러져야만 되는데 그렇지 않을 않을 가능성이 생겨버린 것이다. 2차 피해는 반드시 막아야 되는게 맞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정말 가해자인지 명학하게 규명하는 것 또한 형사소송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강간사건에서 검사가 혐의없음 처분을 하거나 오히려 고소인을 무고로 기소할 할 경우 여성 시민단체에서 들고 일어나 검사의 처분을 비난하는 일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검사는 이럴 때 참 괴롭다. 그냥 여론대로 처분하면 뭇매를 맞을 일이 없겠지만 진실에 대한 판단이 여론과 반대일 때,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증거로 사실관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라면 검사가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상당수 사건은 당사자의 상반된 주장만 있을 뿐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애매한 상황에서 검사는 신념에 따라 처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원래 검사에게 주어진 사명, 의무는 여론 등 외부적 환경과 관계없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열심히 수사해서, 수집된 증거에 따라 판단하고, 그 판단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건에 대한 검사의 처분, 판사의 판결을 놓고 정치‧사회적 입장에 따른 비판과 논쟁으로 비화되는 일이 잦아졌다.   검사의 결정, 판사의 판결이 소신대로 이루어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풍토.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법치주의를 생각할 때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5-28
  • [민경철의 검사수첩 (3)] ‘무당 살인사건’으로 돌이켜 보는 검사의 고뇌
      내가 광주지검 형사3부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당시 형사3부는 경찰서에서 올라오는 사건 중에서도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을 전담해서 처리하는 부서였다.   2004년 11월 쯤, 경찰에서 사건발생 보고가 들어왔다. 어느 동네 무당집에 불이 났는데, 화재를 진압하고 보니 한 여성 무당이 불에 타서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보통 거주지에 불이 나면 어린 아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당시 무당은 40대였다. 왜 불길에서 빠져나오지 못 나왔을까 하는 당연한 의심이 생겼고 사인을 명확하게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부검을 하기로 했다.   ■ 불난 집에서 발견된 여성 무당에 대한 사실사건 수사 개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죽은 무당의 폐에는 연기 흔적이 없었다. 보통 사람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불이 나면 타 죽는게 아니라 연기에 질식해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폐에 연기가 들어가고 죽어서도 그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이 무당의 폐에서 연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불이 나기 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의미였다.    결국 이 사건은 화재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으로 판단되었고, 검찰은 경찰을 지휘해서 수사를 벌였으며 그 때 주임검사는 나로 지정이 되었다.   경찰은 우선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를 해보니, 불이 난 날 저녁에 무당이 집에서 동네 남자들 여러 명과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다섯 명을 용의선상에 놓고 넣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당과 어떤 관계인지, 그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이 다섯 명은 무당과 동시에 헤어진 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집을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나온 네 명은 무당집에서 나온 뒤의 알리바이가 명확한데, 마지막으로 나온 한 명이 알리바이가 명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다섯 번째 남자(이하에서는 갑이라고 한다), 유력한 용의자 갑은 자신이 무당집에서 나온 뒤에 인근에 있는 형의 집으로 걸어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갑의 주장은 객관적 인 증거와 맞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쓰면 기지국의 중계기를 통해서 사용한 지역이 나오는데 용의자가 무당집에서 나와서 주장하는 동선(움직인 위치)과 휴대전화를 쓰며 사용된 기지국의 동선이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갑은 계속 자신은 다른 사람들하고 고기를 먹은 뒤 그냥 형네 집에 갔을 뿐 다른 일은 없었다는 진술만 되풀이 했다. 결국 동네를 다 뒤지다시피해서 갑이 무당을 죽일만한 이유가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자 했으나 특별히 원한 관계였던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무당은 어느 정도 미모도 있었고, 나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갑이 무당을 강간하고 무당이 반항하자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당의 시체는 불에 타서 용의자의 DNA 같은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당과 주변 남자들의 치정(癡情) 관계를 살펴봤는데, 의외로 동네가 좁고 폐쇄적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간의 치정 관계가 굉장히 복잡하긴 했으나 그래도 갑이 무당을 죽일만한 이유가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 마지막으로 무당집에서 나온 유력한 용의자, 직접증거 없어 ‘범행 부인’   그래서 어떻게 더 수사를 진행할 지 고민에 빠졌다. 누가 봐도 갑이 유력한 용의자이긴 한데 직접적인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마지막으로 무당과 같이 있었다는 것, 알리바이가 객관적인 자료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 두가지 사실만으로 법정에서 갑이 살인범임을 입증할 수 있을까? 검사 입장에서 굉장히 고민이 됐다. 자료를 더 수집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나오는 것은 없었다. 우선 갑을 구속해야 할지 여부가 고민이었다. 구속을 하게되면 20일 내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구속해서 수사를 계속했을 때, 자백을 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부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계속 부인하더라도 기소해서 재판을 받게 할 수는 있지만, 법원 재판 과정에서도 끝까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 공소유지(검사가 기소된 내용에 대하여 유죄 선고를 받기 위해 하는 활동을 말함)가 가능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여러 검사들과 상의를 해봤지만, 당시 광주지검에는 목격자가 전혀 없고 직접적 증거가 없는 살인 사건을 처리해 본 검사가 아무도 없었다. 어떤 검사는 공소유지가 가능하다고 하고, 다른 어떤 검사는 살인죄로 기소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조언하기도 해서 나로서는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검사들도 의견 엇갈렸지만 ‘확신’으로 기소... 유죄인정 무기징역 선고 나는 정황 증거상 갑이 살인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갑이 살인범일 경우에는 그에게 최소 무기징역형을 구형해야 하고 법원이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그 정도 형량이 나올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만약 나의 판단이 잘못된 판단이라면 나는 무고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기소하게 되는 것이다. 검사가 증거 수집을 열심히 해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살인죄는 그 책임이 너무 막중하기에 최선을 다해서 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오판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설사 구속한 이후에 나의 심증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되면 다시 석방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갑은 구속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때 마침 인사이동이 있어 나는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었으나 내 사건을 승계받은 검사는 나와 절친한 동기였고, 동기 검사와 상의한 끝에 구속 영장을 청구하기로 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해 주었다.   갑이 구속된 이후에 검사는 갑을 구속한 기간 동안 갑으로부터 진실을 받아 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해야만 했다.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그를 하루종일 검사실로 불러내서 더이상 할 얘기가 없을 때까지 집요하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어릴 적부터 살아온 얘기까지 들어봤다.   하지만 갑은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나와 내 동료 검사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갑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이었다. 자신이 살인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구속이 됐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통은 굉장히 억울해하면서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무당을 죽이지 않았다고만 되풀이할 뿐, 구속돼서 조사받고 있는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의 동선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이런 간접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그가 무당을 죽인 게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갑이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였기에 무슨 이유로 갑이 무당을 죽인 것인지, 갑이 무당을 강간하였는지, 불은 어떻게 지른 것인지는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사실관계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갑은 구속기간을 거의 채운 후 기소되었고, 다행히(?) 갑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유죄가 선고됐고,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 검사들은 살인 강도 등 중대 범죄일 수록 진실규명과 범인 처벌을 위해 고심을 하게된다. 사진은 강력부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검사외전의 한 장면.   ■ 강력검사들, 살인 등 중범죄 다루는 스트레스 시달려 강력검사들은 중범죄 사건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항상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강도 살인처럼 형량이 무거운 범죄라도 목격자도 있고 피의자가 스스로 자백하면 오판의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만, 피의자가 범행을 부인하고 목격자나 객관적인 증거가 없을 때 갈등에 빠진다.   벌금 정도를 내는 가벼운 사안이면 재판 과정에서 다시 시시비비가 가려질 수 있다. 하지만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구형하는 정도의 사건이면 혹시라도 내 판단이 잘못돼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강력사건이 아닌 경제사범들을 다루거나 공안사건을 다루는 검사들도 평소 많은 고민 속에서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만, 중범죄를 많이 다루는 강력검사들은 나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누군가가 장기간 감옥에서 복역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독자들은 이태원 살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갑과 을 중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은 분명 있는데 서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검사는 증거에 의해 갑과 을 중에서 누가 사람을 죽였는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재판 결과로만 보면 처음 기소했던 검사의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회적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잘못 판단하여 억울한 사람을 중죄인으로 기소했다는 자책감에 많이 괴로워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강력검사들은 종종 이렇게 외롭게 판단하고 그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애환이 있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5-21
  • [민경철의 검사수첩 (2)] 날로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범죄단체조직죄’ 첫 적용
      나는 검사생활 15년 중 상당 기간을 강력부 검사로 일하거나 강력 사건을 수사했다. 강력부 검사들이 수사하는 사건은 주로 조직폭력, 소위 ‘조폭’과 마약범죄다.   칠성파나 서방파 등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조폭도 있고, 지역마다 소규모로 활동하는 조직들도 있는데 조폭이라고 해서 모두 법률에서 인정하는 범죄단체는 아니다.   법률에서 인정하는 범죄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체계가 갖춰지고 위계질서가 있어야 한다. 행동강령이 있어야 하고, 가입과 탈퇴에 일정한 요식행위가 필요하기도 하다   일단 판례에 의해서 법률상 범죄단체로 인정이 되면 그때부터는 정식으로 경찰의 관리대상에 오를 뿐 아니라 특별히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가입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폭력 조직만 범죄단체로 취급을 하였는데,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이나 불법 스포츠 토토, 최근에 문제가 된 N번방 사건 등 폭력 조직이 아니어도 일반 범죄를 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에 대하여도 범죄단체로 접근하려는 시각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검사로 근무할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을 범죄단체로 의율한 적이 있어 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경찰이 동남아에서 체포한 보이스피싱 일당을 국내로 압송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보이스피싱 피해자 대부분 고령자, 여성...피해액 회복 불가능한 ‘악질범죄’   내가 대구지검에 근무하던 2015년 무렵 전국적으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렸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많은 분들이 고령인데 노후에 쓸 돈을 날리게 되고 일단 피해가 발생한 후에는 돈을 회수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보니 그런 사정을 바라보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도 정말 안타깝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보이스피싱은 주범이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국내에는 관리자 등 중간조직과 말단 인출책이 활동한다. 피해자가 돈을 이체하면 순식간에 인출해서 그들이 만든 차명계좌로 옮겨지기 때문에 경찰이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설 무렵에는 돈은 이미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범죄단체로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그 조직원들을 모두 사기죄로만 처벌했다. 그러다 보니 법원에서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형량이 높아야 1년 안팎의 실형에 그치는 실정이었다. 보이스피싱 수법은 날로 지능적이고 교활해져서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 보이스피싱 전화요원은 어느 TV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것처럼 조선족 특유의 어눌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콜센터 근무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스카웃해서 활용하는 사례도 있었던 것처럼 표준말에 좋은 음성은 물론, 말솜씨도 화려하다.   행동도 점점 대담하고 과감해져서 “당신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다”면서 비밀번호 알려달라고 하면 잘 안알려주니까 검사, 금감원 신분증을 목에 건 사기범들이 직접 피해자 앞에 나타난다. 이들이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면 사기꾼 일당이 “예 검찰청입니다, 예 금감원입니다”라며 전화를 받는다.   최근에는 인터넷 뱅킹을 하려는데 컴퓨터가 다운되고, 조금 뒤 은행원을 사칭한 전화가 걸려오고 “고객님 지금 인터넷 뱅킹 오류가 나셨죠. 홈페이지에 오류가 생겨서 그런데 저희가 보내 드리는 프로그램을 깔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이렇게 말해서 프로그램을 깔고 나니 돈이 해킹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런 전문적인 수법까지 동원되면 사실 속아 넘어가지 않으면 그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이다.   ■ 보이스피싱 대부분 단순사기죄 1년 안팎 실형...범죄단체 적용 필요성 절감   2015년 대구지검 검사시절 나는 대구시경으로부터 30명이 넘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송치받아 조사하면서 보다 엄중하게 처벌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사건을 구성해보니 주범은 물론 중간 관리자도 있고, 중국 내 콜센터는 물론 국내에도 인출책과 관리책이 있는 등 충분히 조직도를 만들 수 있는 요건이 됐다.   최근 국가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n번방’ 사건처럼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하면 단순 가담자나 직접 범행에서 역할을 분담하지 않은 사람도 처벌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관련자들을 검거해보면 대부분 초범이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동네 사람들이나 지인들, 학교 선후배를 알바 형식으로 끌어 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초범에 단순가담자가 되다 보니 범단으로 의율하기 전까지는 처벌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마약 청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마약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 “마약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듯이 보이스피싱에 대해서도 최대한 강력하게 처벌해야 다시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지 않겠구나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결국 그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범죄단체활동죄를 적용해서 3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에 대한 구형공판이 열리는 날 법정이 발칵 뒤집혔다. 예전 같으면 단순가담자들의 검사의 구형량은 징역 1~2년 정도였는데 내가 단순 가담자들에게도 징역 5~6년을 구형하니까 범인들과 법정의 가족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등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나중에 검찰을 떠나 변호사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전국 교도소에 비상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보이스피싱으로 검거된 범인들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구지검의 어떤 검사가 범죄단체를 적용하는 바람에 단순가담자들도 대부분 3년 이상 실형을 받았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고 한다.   ■ “일일, 회당 이체한도 낮춰야” “남편과 상의하지 말라고 하면 보이스피싱”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첫째 이체한도를 낮춰야 한다. 일일 이체한도, 일회 이체한도를 낮춰야 피해액수를 줄일 수 있다.   둘째 전화를 한 사람이 “남편하고 상의하지 마라.” “다른 사람과는 상의하지 마라”고 하면 거의 100% 보이스피싱이다,   셋째, 검사나 금감원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의 수법이 점차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어 고도의 주의가 필요하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 중에는 초범에 단순 가담자들이 꽤있다. 부모들에게 이들은 그저 ‘착한 내 새끼’, 뭣 모르고 이용당한 또 하나의 피해자로 받아들여 질 뿐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이들의 책임을 엄정하게 물었다. 법정에서의 논고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속인 사람들은 바로 다름 아닌 당신들의 이웃이자 친척이다. 소중한 노후자금을 뜯어내면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당신들은 피해금 중 일부가 당신들의 인센티브가 된다고 쾌재를 부르지 않았느냐.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돈인데 대부분 단 한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구속되어 재판받고 있는 지금에서야 울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진정한 반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현재 자행되고 있는 범죄 중에서 가장 죄질이 불량한 범죄로 분류되고, 하루속히 사라져야 할 범행이라고 생각한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검사들은 대부분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게 묘사되는 문제점이 있다. 사진은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 TV나 영화에 나오는 검사의 가장 큰 문제점...“권한이 너무 세다”   사람들은 검사에 대하여 호기심도 많고 기대도 많고 실망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검사와 관련된 생각을 각 회마다 조금씩 써보고자 한다.   많은 국민들이 검사에 대한 인상을 TV나 영화를 통해 갖게 된다. ‘모래시계’에서부터 최근에 ‘더 킹’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와 ‘범죄와의 전쟁’, ‘내부자들’ 같은 영화는 검사가 등장해서 흥행을 거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거의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검사는 실재로 검사들이 행사하는 권한보다는 터무니 없이 세게 그려진다. 검사 개개인이 모든 사건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실제, 검찰의 사건처리는 매우 중첩적인 결재를 받아 이루어진다. 검사는 한명 한명이 단독 관청이지만 검찰조직에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여러 단계의 결재 시스템이 있다.   10년차 이상 ‘전결검사’가 돼도 벌금 얼마까지만 부장 결재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정도다. 나머지 사건 처리는 예외없이 부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과거 검찰의 부장검사와 평검사 관계는 지금과 달리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요즘은 부장의 역할은 관리자 같은 모습, 부장과 검사의 관계도 점차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다.   사회가 점차 투명해지고 간부 검사들의 사건외압 논란을 빚은 여러가지 사건들의 영향도 크다. 그러다 보니 검사들의 일상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5-14
  • [민경철의 검사수첩 (1)] ‘허상’ 아닌 진짜검사 모습, ‘사건과 세상’ 전할 것
    [뉴스투데이=민경철 객원기자] 사람들은 검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 정부 또한 검찰 개혁을 정권의 사명으로 여기고 검찰을 개혁하고자 한다. 국민들 중에서도 검사를 매우 정의롭고, 열심히 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권력을 누리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여기저기서 접대만 받는다는 인식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검사가 되고 싶었다. 검사가 되고 싶은 것이 나  스스로의 꿈이었는지 아니면 부친의 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검사가 되는 것은  당시로서는 공부 좀 하던 학생들이 많이 가졌던 꿈이었다.   그리고 검사가 되었고, 많은 사건을 다루었지만 주로 강력사건을 수사하였다. 검사로 재직할 때는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지낸 것 같다. 하루가 시작되면 어느덧 저녁이고, 한 해가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연말이었다.   그리고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해 보니 검사 재직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검찰의 문제점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열심히 수사하고 범죄자를 기소할 때의 뿌듯함이 그리울 때가 많다.   ■ 검찰, 검사에 대한 현실과 다른 인식, 영화나 드라마 통해 형성   나는 앞으로 쓸 글에서 내가 검사였다는 이유로 검찰을 옹호하거나 변호사 입장에서 검찰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사람들은 검찰이 어떤 곳인지 검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잘 모르는 것 같다.   또 검찰과 검사에 대해  대부분 현실과는 많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형성된 인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 경험을 바탕으로 검사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경험을 위주로 한 것이게에 다른 검사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198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는 검사를 긍정적으로, 얼마전 방영된 '더킹'은 부정적으로 다뤘다. 검찰과 검사에 대한 인식은 주로 영상물에 의해 형성됐다. [사진=연합뉴스]   우선 일선 검찰청의 조직을 살펴보면 각 지검별로 정점에 검사장이 있고, 검사장을 보좌하는 차장검사가 있고, 그 하부에 부서장 격인 부장검사가 있고, 부장검사가 부원인 검사들을 지휘하여 수사한다. 일반 회사는 통상 부장이 차장보다 높은 직급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가끔은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검찰은 차장검사가 부장검사를 지휘한다.   그리고 지금은 명칭이 다양해졌지만 전통적으로는 형사부가 있고, 특수부(현재 반부패수사부), 공안부(공공수사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강력부, 공판부로 나뉘어져 있다.   대다수의 검사는 형사부에 배치되어 일을 하고, 각 검사는 전담 사건이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담 사건만 하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사건을 처리하다가 전담 사건이 송치되거나 발생하면 그 사건을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 검사 대부분 형사부 배치, 경찰송치 사건 수사...고소는 검찰에 하는 것이 ‘유리’   형사부는 검찰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주로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처리한다. 경찰에서 송치되는 사건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죄명으로 보면 사기죄를 비롯한 재산죄가 가장 많다.   일반적으로 누가 고소를 하면 대체로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다가 최종적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내게 된다(이를 송치라고 한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는 경찰에서 수사한 내용이 충분하면 그 상태에서 바로 사건을 처리하기도 하고, 혐의 유무를 판단하기에 부족하다 싶으면 보강 수사 후 사건을 처리한다.   형사부라고 해서 송치사건만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송치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범죄에 대한 단서가 나오면 그 범죄를 수사한다(이를 인지 수사라고 한다). 하지만 형사부는 기본적으로 처리할 사건이 너무 많다 보니 검사들이 새로운 사건을 인지하여 처리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변호사를 해 보니 사람들이 종종 고소를 검찰에 하는 것이 좋을지 경찰에 하는 것이 좋을지 묻곤 한다. 검찰에 고소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건은 경찰에 지휘를 내리기 때문에 수사하는 주체 면에서는 사실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수사가 만연히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검찰에 사건을 고소하는 것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경찰에서 검찰지휘 사건을 특별한 사유 없이 시간을 끌기 어려워  가급적 주어진 기간 내에 수사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검찰이 해야 할 일 중에 정확한 사실 규명과 이에 따른 처분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 규명을 하려면 증거를 충분히 수집하여야 하고 그러다보면 사건 처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건 처리의 신속성은 정확성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 검사의 신속한 사건처리, 정확성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   만약 자기가 고소한 사건 또는 고소당한 사건이 장시간 동안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형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항상 뒷목이 무겁다고들 한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1.2년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해 하면서 지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일상적인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형사부 검사들은 한 달에 150~200건 정도 처리하고 많은 경우 300건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산술적으도 하루에 거의 10건 이상 처리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얇은 사건기록은 50~100페이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두꺼운 경우는 몇천 페이지가 되는 사건도 있다. 형사부 검사를 하다보면 이렇게 계속 밀려드는 사건 기록과의 싸움이 어렸을 적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으면 파도가 쓸어가고 또 다시 성을 쌓는 놀이하고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특수부는 공무원 범죄, 사회 주요 인사들과 관련된 범죄를 수사한다. 뇌물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건을 수사하다 보니 형사부보단 평상시에는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일단 수사가 개시되면 매우 바쁘기도 하고 사회적 파장이 크기에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형사부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안부는 기본적으로 선거, 노동관계, 대공 관련 수사를 한다. 선거철, 파업이 많은 때에는 상당히 바쁘고 24시간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관련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취합해서 보고해야 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공판부는 수사한 검사가 수사를 하고 재판을 청구하면 재판을 전담하는 부서이다. 과거에 비하여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공판 검사는 수사 검사가 수집한 증거기록을 파악하고 법정에서 증인신문이나 증거 제출로 기소된 공소사실을 입증하고, 입증 과정에서 허위 증언을 하는 증인을 위증으로 인지하기도 한다.   강력부는 전통적으로 조폭이나 마약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한다. 드라마나 영화가 깡패나 마약조직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출연하는 검사들은 강력수사를 하는 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검사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긍정적 이미지로 검사가 출연하는 대표적인 영상물은 ‘모래시계’나 ‘공공의 적’이 있고, 부정적 이미지는 ‘범죄와의 전쟁’, ‘더 킹’이 있다.   ■ 영화 속의 검사는 너무 한가해..."검사는 총을 소지하지 않는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를 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검사가 출연하는 영화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 속의 검사는 너무 한가하다. 한 사건만 가지고 몇 달을 수사하기도 하고 업무 시간에 사무실 밖에 나가기도 하는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또 어떤 영화에서는 검사가 총을 가지고 현장에서 범인 검거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검사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마약수사관이나 일부 수사관들은 ‘테이저 건’이라는 전기 총을 보급받아 현장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검사에게 총기가 지급되는 경우는 없다.   공공의 적에서 검사역을 맡은 설경구는 대규모의 경찰을 대동하고 범인 검거현장에 나간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현실에서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화두가 된 이후로 검경이 상호 협력하여 수사를 할 수는 있지만 검사들이 일방적으로 경찰관에게 지시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검찰이나 검사에 대하여 잘 아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시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검찰 개혁이 화두가 된 지금,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적 편견 없이 검사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최대한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자 한다.  
    • 스페셜기획
    • 민경철의 검사수첩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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