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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경을 이긴 연예인 (9)] ‘보이스트롯 스타’ 박세욱, 25년 무명 탈출 향한 3가지 도전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박세욱[사진캡처=MBN]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박세욱이 MBN ‘보이스트롯’을 통해 스포트라이트에 섰다. 박세욱의 강점은 고운 미성과 풍부한 감정 표현력이다. 호소력 짙은 가창력에 트로트 감성의 꺾기가 더해져 심사위원과 트로트 팬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박세욱의 원래 직업은 노래하는 배우, 뮤지컬 배우다. 무대에 올라서는 꿈을 이뤘지만, 25년 간 무명 생활을 보내야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했다. 열정의 원동력은 언제나 그를 응원해주는 부모님이었다.   ■ 초등학교 때 처음 본 뮤지컬에 운명 느껴…아들의 행복을 지지한 1호팬 ‘부모님’   박세욱은 1987년 안양시에서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집안 내력이었다. 스스로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누나는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를, 남동생은 실용음악을 하는 음악인으로 성장했을 만큼 음악을 사랑하는 가풍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뮤지컬 ‘알라딘과 요술램프’를 보고 배우를 꿈꾸게 됐다. 다음 해부터 안양의 극단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중학생 때 연극 ‘출세기’로 첫 무대에 올랐다. 고등학교 때는 전문적인 노래 훈련을 받았고, 2005년에는 전국청소년대중예술경연대회 개인연기부문에서 1위를 수상하는 등 재능도 보였다.   단국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2007년 연극 ‘안 내놔, 못 내놔’로 데뷔했다. 이후 뮤지컬 ‘십이야’ ‘햄릿 프로젝트’ ‘넌센스 잼보리’ ‘김종욱 찾기’ ‘더 초콜릿’ ‘카페 명동성당’ ‘마리아 마리아’ 등 숱한 무대에 올랐다. 좋아하는 노래와 연기를 업으로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늘 열정적으로 임했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서 유다 역을 연기하는 박세욱[사진제공=박세욱 인스타그램]   하지만 혹독한 길이었다. 뮤지컬 배우는 수입이 불안정한 직업이고, 스포트라이트는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역을 따내지 못하면 무대에 설 수도 없는 데다가 공연이 무산되는 일도 잦은 업계다. 박세욱도 고달픈 무명 생활을 했다.   가장 면목이 없을 때는 부모님을 대할 때였다. 성인이 되어 직업이 있으면서도 용돈이라도 드리기는 커녕 뒷바라지를 받는 처지였다. 오래 전 다리를 다친 아버지가 계속 일을 하며 자신을 지원하는 것에 늘 마음이 괴로웠다.   부모님이 어느날 “그 일을 하면 행복하냐”고 물었다. 박세욱은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그럼 해야지”라며 어려운 길을 가는 아들을 항상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판데믹이 전세계를 덮치며 공연업계가 얼어붙었고, 상황은 더욱 막막해졌다.   ■ 팝페라 팀 ‘트리니티’‧유튜브 ‘세우기TV’·‘보이스트롯’…새로운 도전으로 극복 나서   박세욱은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고만 있지 않았다. 스스로와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펼쳤다.     첫 번째로 가수인 김병수, 염동언과 함께 팝페라 3인조 팀 ‘트리니티’를 결성하고, 올해 3월 서정적인 발라드 곡 ‘Remember’을 선보였다. 연인과 이별한 슬픔을 노래하는 가사를 팝과 오페라를 오가는 스타일로 웅장하게 담아냈다. 길거리 버스킹과 공연 무대에 나서기도 했다.     [사진캡처=유튜브 박세욱 세우기TV]   두 번째로 ‘박세욱 세우기TV’ 채널을 통해 유튜브에 진출했다. 노래와 Vlog 외에도 ‘속설 궁금증 타파’ 콘텐츠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추가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방송이나 ‘보이스트롯’에 출연한 영상도 올라와 있다.   세 번째로, ‘보이스트롯’에 도전했다. 보이스트롯은 트로트 열풍을 타고 만들어진 MBN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토르트 가수를 제외한 배우, 아이돌, 가수, 유튜버 등 톱스타 80여 명이 펼치는 트로트 서바이벌이다.   전원주, 슬리피, 홍경민, 하리수, 김보성, 심형래, 대도서관 등 유명인들 속에서 박세욱은 처음부터 두각을 보였다. ‘목포행 완행열차’를 멋지게 불러 심사위원단에게 박수를 몰아받고, 대선배 진성에게 “보이스트롯에 진짜가 나타났다”는 평을 받았다.     [사진캡처=MBN]   뮤지컬로 다진 실전 가창력에 애절한 트로트 스타일을 제대로 녹여내어 얻은 성과였다. ‘봉선화 연정’ ‘대전 블루스’ ‘인연’ 등 회차를 거듭할수록 가창력이 무르익었다. 박세욱의 영상과 기사마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났냐’며 감탄하는 팬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박세욱은 ‘보이스트롯’에 모든 열정을 바치고 있는 중이다. 노래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극심한 다이어트까지 감내하고 있다. 엄격한 덴마크 다이어트식으로 식이를 조절하며 일주일만에 3㎏를 감량하기도 했다. 모든 삶을 ‘보이스트롯’을 중심으로 두고 전념하고 있다.   박세욱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오랜 무명 세월 끝에 자신의 노래를 수많은 청중 앞에 선보일 수 있는 지금의 순간이 마치 꿈만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녹화 날 ‘노래하니 행복하냐’라고 물어보시는데.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습니다. ‘보이스트롯’에 출연한 뒤 인생이 확 달라졌어요.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이 가장 행복합니다”   보이스트롯에서 박세욱의 목표는 탑3에 오르는 것이다. 지금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니 달성 문턱 앞에 선 셈이다. 서바이벌의 결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앞으로 그가 트로트 가수로서 보여줄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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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8
  • [역경을 이긴 연예인 (8)] 2020 ‘이효리 신드롬’, 부침 겪어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이효리 [사진제공=이효리 인스타그램]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이효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디바 중 한 명이다. 카리스마 있는 무대와 매력적인 눈웃음, 시원스러운 성격, 몸을 사리지 않는 예능감까지 한국 연예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1990년대 후반을 ‘핑클’의 멤버로 주름 잡고, 2000년대를 솔로로 휩쓴 이효리는 올해 가요계 뉴트로 열풍을 타고 소환된 뒤에도 쾌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30년 가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좋은 날만 있지는 않았다. 아프고 힘든 시간 또한 걸었다. 하지만 부침을 겪는 시기에 좌절하기보다는 더욱 성숙해졌다.   ■ 사당동 이발소 막내딸이 ‘이효리 신드롬’ 열기까지 이효리의 어린 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1979년 충청북도에서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고, 7살 때 가족과 함께 서울 사당동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 딸린 2평짜리 방에서 여섯식구가 함께 살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효리는 이발소 일 외에도 과일좌판을 펴고, 인력사무소에 나서는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책임감이 강한 딸로 자랐다. 아버지의 일을 돕고 손님들의 말상대를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으로 성장했다. 이효리는 고등학교 때 귀가하던 중 핑클을 기획 중이던 DSP미디어 고(故) 이호연 전 대표이사에게 발탁됐다. 당시 세상 물정에 어둡다보니 한 연예기획사와 부당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는데, 이호연 대표가 원 소속사에 위약금까지 물어내며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이효리는 1998년 1세대 걸그룹 핑클의 리더로 데뷔하며 가요계를 휩쓸었고, 2003년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도 ‘10 minutes’ ‘Get Ya’ ‘U-Go-Girl’ 등 연타석 홈런을 치며 ‘이효리의 시대’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MC들과 활약하며 예능계에서도 존재감을 알렸다. 이효리는 대중가요의 최고 스타로 활동하면서도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고 신인 작곡가의 곡을 메인 타이틀로 사용하는 등 모험적인 모습을 보였다. 핑클 때부터 직접 곡의 가사를 쓰기도 했기에 단순한 아이돌이 아닌 솔로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다.   4집 앨범 H-Logic  ■ 도전 정신‧시원스런 입담 때로는 ‘독’ 되기도…말보다 행동으로 극복해 이효리 커리어에 남은 가장 큰 상처는 2010년 발매한 솔로 4집 ‘H-Logic’다. 실험적인 비주얼을 내세우고, 이효리가 처음으로 프로듀서로 이름을 직접 올릴 정도로 공을 들인 앨범이었다. 하지만 작곡가 바누스의 사기행각으로 인해 대대적인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결국 4집 활동이 중단되고, 표절 확정곡들은 앨범 트랙에서 제외됐다. 이효리도 단순 ‘싱어’가 아닌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탓에 더욱 혹독한 책임론이 일었다. 의욕적인 도전이 오히려 해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효리는 가만히 앉아 좌절만 하지 않았다.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원작자들과 협의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또한 사회봉사활동을 하며 자숙하는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실수를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여론도 차츰 우호적으로 변했다. 결국 이효리는 2013년 5집 ‘MONOCHROME’으로 성공적으로 컴백했다. 5집에는 자작곡 ‘미스코리아’ 등 직접 제작에 참여한 곡이 담겼으며 어쿠스틱, 컨트리, 재즈, 일렉트로닉,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해 음악에 대한 열정도 여전함을 보여주었다. ■ 코로나 방역 수칙 부주의 & 중국 예명 ‘마오’ 논란 이효리는 올해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TV에 모습을 비추며 환호를 받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쳤던 여름에 ‘싹쓰리’로 청량감을 주며 시청자들에게 힘을 북돋았다.   혼성 그룹 싹쓰리 [사진캡처=다시 여름 바닷가 뮤직비디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면 그림자가 드리우는 법, 또 구설수에 올랐다. 우선, 지난 7월 라이브방송을 진행하던 중 소녀시대 윤아와 코로나19 전파 고위험 시설인 노래방을 찾으면서 경솔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효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직 조심해야 하는 시국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점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지난 8월에는 ‘환불원정대’로서 활동할 부캐명을 정하는 중에 “글로벌을 노린 중국식 예명으로 ‘마오’가 어떻겠느냐”고 발언했다가 일부 중국 네티즌들이 “마오쩌둥을 비하한 것”이라며 이효리의 인스타그램에 악성댓글을 20만 개 가까이 쏟아내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한국 네티즌들이 “‘마오’는 중국의 한 성씨이고, 다른 욕이나 비하 발언도 없었는데 트집이다”며 반박하면서 양국 네티즌의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이에 ‘놀면 뭐하니’ 측은 “특정 인물을 뜻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VOD의 해당 장면 삭제 및 사과로 대응했다. 이효리는 다음주 방송분에서 유재석이 예명에 대해 “‘만(萬)옥 어때요?”라고 묻자 “그보다 낮은 천(千)옥으로 할게요”라고 언급하는 식으로 해당 이슈에 비하 의도가 없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사진캡처=이효리 인스타그램]     ■ 이효리의 힘…“남 위한 것 아닌 내가 원하는 것 추구”   이효리는 데뷔 이래 슈퍼 스타로 군림하며 많은 주목을 받아온 만큼 종종 부정적인 이슈의 중심에 섰지만,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고 책임을 지는 꿋꿋한 모습으로 오히려 지지를 얻어왔다.   이효리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좌절할 뿐만 아니라 더욱 성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4집 앨범의 실패로 깊이 낙담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 동안 남의 눈에 화려한 명품가방은 샀지만, 정작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휴지 한 통을 직접 사본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남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자”는 방식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고, 타인에게든 스스로에게든 더욱 진솔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지금도 “임신할 경우 환불원정대 활동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발언할 만큼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효리는 뉴트로 열풍 속 ‘좋았던 시절’의 상징으로 대중에게 돌아왔다. 최근 ‘마오 논란’으로 인스타그램 중단을 선언할 만큼 마음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효리를 지지하는 대중의 응원도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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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2
  • [뉴스 속 직업] e스포츠 황제 ‘페이커’ 이상혁,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보다 연봉 높은 3가지 이유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13일 하나은행이 세계적 e스포츠 기업인 SK텔레콤 CS T1 소속 선수 66명에 대한 자산관리 전담팀을 출범시키면서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연봉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66명 중 1위인 페이커의 연봉은 30억원. 여기에 각종 상금까지 더하면 실제 그의 연봉은 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연봉 1위인 이대호 선수(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연봉 25억보다 많은 금액이다.   'e스포츠'는 온라인상의 컴퓨터게임 대회나 리그를 지칭한다. 페이커의 직업은 '프로 게이머'인 셈이다. 1등 프로 게이머가 1등 프로야구선수보다 2배 가까운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프로 게이머들에 대한 종합자산관리서비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소득과 소비 시기가 불일치하는 직업의 특성을 감안한 조치라고 한다. 이는 역으로 상위층 프로 게이머들은 금융기관이 관리해 줄 만한 소득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젊은 시절에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이 프로 게이머인 것이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와 실제 플레이 화면 [그래픽=뉴스투데이]   ■ 이상혁이 이대호보다 부유한 이유?...글로벌 스타 /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 / 'e스포츠’ 산업의 폭발적 성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연봉 1위보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첫째, 이상혁 선수가 유일무이한 기록을 가진 글로벌 스타이기 때문이다. 이대호 선수가 국내 프로야구 리그의 스타인 것과 대조된다. 이상혁은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국내외 대회 최다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월드챔피언십 대회에서 3회 우승, 국내 리그에서는 총 9회 우승했다. 국제전 통상 100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e스포츠는 게임 종목별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스타크래프트가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최대 시장으로 굳어졌다. 이상혁은 최대 프로게이머 시장의 절대 강자인 것이다.   그는 올해 4월 치러진 ‘2020 롤(LOL) 챔피언스코리아(LCK) 스프링’에서 또 한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면서 역대 최연소 우승자 타이틀과 함께 최고령 ‘미드라이너’ 자리에 올랐다.   둘째, 세계 e스포츠 시장에서 한국이 종주국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그의 높은 연봉 수준에 한 몫을 한다. e스포츠 분석사이트 ‘e스포츠차트’에 따르면 지난 4월 25일 LCK 스프링 결승전을 본 시청자는 무려 1787만명 이었다. 이 중 한국인은 약 70만명이고, 그 외는 모두 외국인 시청자였다. 글로벌 e스포츠 팬들이 세계 대회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한국 리그에 집중한 것이다.   셋째, e스포츠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도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게임 전문 시장분석업체 뉴주(Newzoo)는 지난해 글로벌 e스포츠 산업 매출 규모는 11억달러(한화 약 1조3천억원)라고 밝혔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매출 규모인 107억달러(한화 약 12조)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e스포츠 시장은 2018년 32%, 2019년 26.7% 등 매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만약에 이대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스타였다면 당연히 이상혁 선수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을 것이다.   올해는 e스포츠 산업이 더 높이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온라인 게임 이용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올 11월 개최될 ‘한·중·일 e스포츠 국가대항전’을 포함한 다양한 e스포츠 리그와 관련 콘텐츠들이 계획되어 있다.   '2020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결승전에서 이상혁 선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과 '2020 LCK 스프링'에서 경기중인 이상혁 선수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 SKT T1] ■ 선생님과 아버지의 지지 아래 학교 중퇴, 프로 게이머 선택 / ‘페이커’의 한 달 지출은 20만원 / "은퇴 후 기부하고파”   이상혁 선수는 1996년 5월 7일 서울 출생이다. 올해로 만 24세이다. 마포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선생님과 아버지의 지지 속에 학교를 중퇴 후 18세에 LCK 스프링 시즌에 데뷔했다. 학교와 가정이 이상혁은 게임에 미친 문제아로 비난하는 대신에 '게임 영재'임을 알아 본 셈이다.      이후 현재까지 이적 없이 T1 소속으로, 압도적인 기량과 경기력을 뽐내며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관련 기록으로는 ‘롤드컵(League of Legends World Championship)’ 3회 우승과 ‘Mid-Season Invitational(MSI)’ 2회 우승을 포함한 총 우승 21회, 준우승 8회, 주요 MVP 5회 선정이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던 페이커는 “월 20만원 정도만 쓴다”, “은퇴 후 번 돈을 기부하고 싶다”고 밝혀 수십억 대 수입을 올리는데 비해 검소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페이커는 지난 2월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T1의 공동 주주(파트 오너)가 되었다. 선수 생활 이후에도 회사 경영자(임원)로 남아 e스포츠 선수 양성에 힘쓸 예정이다. e스포츠 팬들은 앞으로 지도자로서 그리고 경영자로서 또 다른 그의 행보에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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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6
  • [역경을 이긴 연예인 (7)] 가수 박혜경, 소속사 사기·성대결절 극복하고 ‘레인보우’로 재기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노래하는 박혜경. 사진제공=박혜경 유튜브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박혜경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면서 청아한 목소리로 사랑받은 가수다. 사랑스럽고 맑은 노래로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지만 박혜경 본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고, 마침내 꿈을 이뤘지만 거듭된 시련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기도 했다. 병으로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되면서 다른 삶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난관을 극복하고 가수의 길로 돌아왔다.   ■ 10살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빨리 돈 벌고 싶던 장녀   박혜경은 1974년 10월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다. 박혜경에게 처음 찾아온 시련은 10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세 동생과 함께 자라며 큰딸 박혜경은 빨리 커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중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오디션을 다녔다.   하지만 꿈을 이룬 것은 성인이 되어서였다. 21살이던 199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 더더그룹의 보컬로 데뷔했다. 2집 이후 더더그룹을 나와 솔로 활동을 하면서 낸 앨범 4개가 모두 히트하면서 가수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박혜경은 허스키하면서도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독보적인 가수였다. 포카리스웨트 CF송으로 사용된 히트곡 ‘내게 다시’를 비롯해 ‘It’s you’ ‘주문을 걸어’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등 17곡이 각종 CF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CF송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 연이은 법적소송.. 스트레스로 병까지 얻어   탄탄대로일 것 같던 박혜경의 가수활동은 2005년 ‘서신’ 발표 후 위기를 맞게 됐다. 소속사가 자신의 동의 없이 공연을 강요하는 것에 반발하다가 소속사에서 계약위반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4년 간 법정싸움을 이어 가느라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소속사와 싸움에서 겨우 승소했나 했더니, 2010년에는 사업을 하던 신사동 피부관리실을 건물주 동의 없이 재임대했다는 혐의로 연이은 법정다툼을 하게 됐다.   재판은 승소했지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다. 소송비용을 대느라 재산도 모두 처분하고, 스트레스로 성대에 악성 종양까지 생겼다.   성대 진단받는 박혜경. 사진제공=MBC 사람이 좋다   2012년 성대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종양을 제거하니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가수로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한 박혜경은 절망에 빠져 마지막 남은 재산인 차를 팔고 해외로 떠났다. 가수로 살 수 없다면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 슈가맨으로 재기 꿈꿨지만 소속사 사기 당해   박혜경은 파리와 런던을 거쳐 중국으로 날아갔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원래 손재주가 좋았기 때문에 박혜경은 꽃을 만지는 플로리스트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꽃다발을 만드는 플로리스트 박혜경. 사진제공=MBC 사람이 좋다   그러다 중국 공항에서 우연히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하 슈가맨)’의 신여진 작가를 만났다.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닌데 중국에서만 네 번을 마주치다 ‘슈가맨’이 뭐 하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연약속을 했고, 뒤늦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섣불리 약속을 잡은 것을 후회했지만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2016년 ‘슈가맨’에 출연해 다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좋지 않은 목상태로도 ‘고백’ ‘레몬트리’ 등 옛 히트곡을 부르자 청중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다시 가수로 재기하고 싶다는 꿈이 피어올랐다. 한국으로 돌아와 소속사를 찾았고, 성대재활훈련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반 제작을 도와주겠다던 소속사에 사기를 당했다. 소속사 대표는 앨범 제작비와 홍보비를 들고 사라져버렸다. 희망도 잃고 돈도 잃은 박혜경은 여성 전용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4개월 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 옛 매니지먼트 직원의 도움으로 재기.. 신곡 ‘레인보우’로 컴백   박혜경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사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응원해준 제작 매니지먼트 덕분이었다. 사기를 친 소속사와 일을 했을 때도 박혜경의 곡을 매니지먼트 해준 사람이었다. 소속사가 돈을 들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박혜경이 대신 그에게 빚을 갚아야하는 상황이 됐는데, 돈이 없어서 10만원, 20만원씩 나누어서 한참을 갚았다.   하지만 제작 매니지먼트는 박혜경을 믿고 지켜봐주었다.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응원도 해주었다. 결국 박혜경은 용기를 내어 그와 함께 2020년 3월 신곡 ‘RAINBOW’를 제작해 발매했다.   사진캡처=신곡 레인보우 뮤직비디오   사람들은 옛 가수의 노래를 그리워하지만 옛 가수가 내놓는 신곡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옛날과 달라진 음원시장에서 노래의 존재를 알리기도 어렵다. 박혜경도 모처럼 낸 신곡으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낙담보다는 계속 가수로서 살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박혜경은 SBS ‘불타는 청춘’과 2019년부터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혜경이랑 with Heykyoung’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유튜브를 통해 팬들을 모아 여기서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그런 날이 올 거라고요. 돈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고 없게 되는 지긋지긋한 날들에서 벗어나, 그저 서로를 위로하고 울고 웃으며 노래할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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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2
  • [역경을 이긴 연예인 (6)] ‘허무개그’ 손헌수, 재입대 아픔→‘드림북’과 인생전환점 삼아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손헌수[사진제공=손헌수SNS]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손헌수는 MBC출신 개그맨이다. 혜성같이 등장해 ‘허무개그’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전성기는 짧았다. 병역 문제에 연루되어 군대를 두 번 가기도 하고, 영화제작, 연예기획사 등 사업에 실패해 억대 빚을 지기도 했다. 타고난 긍정마인드로 시련을 이겨내고 코미디 크리에이터와 트로트 가수 등 여러 분야에 다시 도전 중이다.   ■ 가난했지만 밝았던 어린시절.. 효심 깊고 ‘끼’있던 아이   손헌수는 1980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원래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세 살 무렵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집안이 무너졌다. 좁은 단칸방에서 부모님, 형과 함께 네 식구가 살게 됐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가난하지만 밝았던 어린시절이었다. 손헌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로 번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다.   끼도 넘쳤다. 50원, 100원씩 입장료를 받아, 박스로 만든 무대에서 스스로 연출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가정형편 상 미대진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자 포기했다.   ■ 행운 함께한 데뷔 초.. 초스피드 데뷔에 ‘허무개그’로 전성기 맞아   고등학교 2학년 때, 형이 신문에서 ‘코미디 모델 아카데미’ 광고를 봤다. 키가 184cm였던 형은 모델을 꿈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손헌수도 하고 싶어져 덩달아 다녔다. 형제가 함께 막노동으로 한 돈으로 학원비를 대면서 연예계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좌절이 찾아왔다. 수능점수가 낮아 원하는 대학교의 연극영화과에서 모두 떨어진 것이다. 막막해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자신이 MBC 개그맨 공채 오디션을 보는데 도우미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친구는 경험이 없었지만 손헌수는 학원에서 배운 가락이 있었다.   결국 친구는 떨어지고, 손헌수는 2000년 MBC 공채 11기로 합격했다. 6개월 만에 동기 이진환과 함께 한 ‘허무개그’가 대박이 터지면서 무명시절 없이 최고 개그맨 자리에 올라섰다. 2001년 신인상은 물론 백상예술대상 인기상까지 수상했다.   왼쪽부터 MBC ‘코미디하우스’(2003), ‘웃으면 복이와요’(2005), ‘코미디에 빠지다’(2013)   ■ 막막했던 재입대..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겠다” 결심   ‘허무개그’는 무언가 할 것처럼 기대감을 올리다가 ‘어, 그래’로 마무리지어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개그였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스타일이 대중에게 먹혀들었지만, 달콤했던 인기는 빨리 지나갔다. 드라마 ‘야인시대’에 ‘눈물의 곡절’ 역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도 했지만, 개그맨으로서는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못하며 암흑기가 찾아왔다.   심지어 방위산업체 부실 복무 논란에 휩싸여 현역으로 재입대 하면서 ‘군대 두 번 간 연예인 1호’라는 불명예까지 얻었다.   당시 그는 공고 디자인과를 나와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도 오산 방위산업체에서 기술직 요원으로 복무 중이었다. 하지만 서울권에 있는 요원들이 부실복무를 했다는 논란이 터지면서 같이 조사를 받게 됐다.   “조사를 받기 전부터 연루됐다고 기사가 쏟아졌어요. 연루라는 단어만 됐는데 막 9시 뉴스에 나오고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 거예요. 너무 수치스럽고, 죄송스럽고... 저는 특히 개그맨이니까 저를 보는 사람이 불편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조사 한 번 받고 두 번째 조사 받기 전에 그냥 현역 재입대를 해버렸어요”   방위산업체에서 있던 기간도 없어지고 처음부터 군 생활을 다시 하게 된 것이 2007년이었다. 그는 재입대 둘째 날부터 남몰래 매일 울었다. 막막한 군생활과, 사람들에게 잊히고 재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군대 시절의 손헌수 [사진캡처=MBC 사람이 좋다]   그러다 독기를 품었다. 이 힘든 시기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재입대 기간을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군대에서 300권의 책을 읽고, 미래의 목표를 상세히 적은 ‘드림북’을 쓰며 제2의 인생을 계획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점, 단점과 장점, 저축 계획,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콘텐츠들을 할 건지도 1안부터 4안까지 상세하게 적었다.   이때부터 그는 드림북에 세운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 제대 이후에도 시련 이어졌지만 ‘트로트가수’로 새 도전 시작   그는 군 제대 후 꿈꿨던 일들에 도전했다. 기획사를 차려 공연 제작자로 나서기도 하고, 영화감독에 도전해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가수에도 도전했다. 이렇게 다양한 도전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한 도전이 많았다. 심지어는 영화 제작자로 사채를 써 억대의 빚을 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있던 공연기획 회사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공연취소가 이어지면서 정리하게 됐다.   하지만 손헌수는 여전히 초긍정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디스코맨 트로트1집 전기뱀장어 MV   이번에는 ‘디스코맨’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가수에 도전했다. 그의 트로트1집 ‘전기뱀장어’는 신나고 구수한 멜로디에 “오빠는 너의 전기뱀장어야”라는 코믹한 가사를 담고 있다.   손헌수는 단순히 트로트 붐에 탑승하려는 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원래 가수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40살부터는 트로트를 하려고 계획했다고.   또, 작년에 유튜브 활동과 관련해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제가 8년 전에 유튜브 세상이 올거라 예상했어요. 그래서 PPT를 돌렸는데 다들 거절했죠. 그런데 작년에 한달 만에 회사 세 군데에서 연락이 온거예요”   이번에는 직접 대표를 하지 않고 공연 기획 역할만 담당할 예정이다. 다음 사업에 나서기 위해서는 빚을 갚아야하기 때문에 행사를 많이 나가려고 팔을 걷어부쳤다고 했다.   재믹스 채널을 홍보하는 손헌수   유튜브를 통해 개그 콘텐츠 기획에도 다시 도전 중이다. 작년에 ‘손헌수 특집’ 채널을 개설하여 동영상 크리에이터로 변신했고, 지난 4월 ‘재믹스 스튜디오’라는 신규 채널을 만들었다.   “작년에 또 회사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책에서 봤던 말이 떠올랐어요. 꿈꾸고 도전하고 행하면 우주의 기운이 바뀌어서 나를 돕는다는 그런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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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5
  • [역경을 이긴 연예인 (5)] 양상국, ‘개그콘서트→레이싱’ 좋아하는 일로 콤플렉스·우울증 극복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 양상국의 데뷔 초 닥터피쉬(2008년), 선생 김봉두(2010년), 해피투게더(2012년), 페이스북 캡처, 개콘복귀(2016년), 현대레알사전(2013년)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양상국은 2000년대 초반, KBS ‘개그콘서트’의 전성기 때 맹할약을 하며 일요일 저녁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던 개그맨이다. 특유의 ‘촌놈’ 캐릭터와 경상도 사투리로 사랑을 받은 그는 지금 레이싱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어릴 적 시골의 농사일이 싫어서 마냥 도시를 동경했고, 서울에 올라와 개그맨을 시작했을 때는 ‘촌놈’이라는 딱지에 콤플렉스를 느껴야만 했다. 개그맨으로서 정상 부근에 올라 어느 정도 꿈을 이룬 뒤에는 뜻밖에 허무함으로 우울중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낙천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양상국(왼쪽)   ■ ‘촌놈 콤플렉스’... 무대에서 오히려 개성으로 빛나   양상국은 1983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산부인과에서 태어나던 시절, 어머니가 양상국을 집에서 낳았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양상국의 어린 시절, 그가 제일 싫어한 계절은 가을이었다. 날씨가 좋아 단풍 구경을 다니는 청명한 좋은 계절에 그는 두 달 동안 학교가 끝나면 무조건 감을 따러가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창원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버스를 타고 등하교 하는데 한 시간씩 걸렸다. 고향에서의 삶은 아무런 즐거움과 희망을 주지 못했고 늘 도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개그맨의 꿈을 갖게된 것은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미팅을 하면서다. 잘 생긴 외모가 아니다보니 유머로 승부했는데, 자신에게 숨어있는 개그맨의 자질을 발견한 것이다.   그 때부터 다른 사람이 웃어주는 일에 행복을 느끼게 됐고 결국 군 복무를 대신한 방산업체 근무가 끝나자 마자 개그맨의 꿈을 품고 상경했다.   ■ 영등포에서 여의도까지 한시간 반 걸릴 줄 알고 새벽 여섯시 반 출발   2005년 1월 처음으로 KBS 공채 개그맨 시험 치러 올라왔을 때, 영등포역 근처 모텔에서 자고 새벽 6시반에 택시를 탔다.   “서울은 되게 클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여의도 시험장소에 9시까지 가야되는데 한시간 반은 걸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6시40분에 도착했어요. 시험장에 가서 두시간 이상을 기다렸죠.”   하지만 양상국이 개그맨 시험에 합격하기 까지는 2년이 걸렸다. 그동안 대학로 소극장의 개그 공연에 출연해 한달에 20~30만원 정도를 벌어 생활비로 썼다.   당시 살았던 영등포쪽의 월세가 25만원으로 한 달 생활비가 총 50~60만원은 들었으니 턱없이 모자랐다. 부모님이 부쳐주시는 돈으로 모자라는 용돈을 메꾸고, 어머니가 직접 가져다 주거나 보내주는 음식, 라면으로 식사를 끼니를 떼웠다. 좋은 옷 한 벌 사입을 여유도 없는 궁핍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꿈이 있었기에 고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2007년에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데뷔 초기 그는 개그콘서트에서 개성있는 ‘촌놈’ 캐릭터로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배인 유세윤, 이종훈과 함께 했던 ‘닥터피쉬’라는 코너에서 가수를 쫓아 다니는 팬 역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이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었지만 개그콘서트 무대에 한번이라도 더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꿈을 쫓아 찾아 질주했던 그 때가 좋았다.   하지만 양상국이 어느 정도 목표를 이르고 성공했다고 느꼈을 때, 이상하게도 그의 몸속에 있던 행복함이 빠져나갔다. ‘네가지’ 코너 등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개그맨으로서 가장 잘 나갈 때, 오히려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   [사진캡처=유튜브 크큭티비]   “내가 서울에 올 때 진짜 큰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어느정도 다 이루게 되니까 더이상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구요. 무명이나 신인 때는 출연료 10~20만원짜리 행사만 있어도 갔었는데, 행사비가 200~300만이나 돼도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그냥 허무했던 것 같아요”   수입이 늘면서 주변에서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갑작스레 많은 돈을 벌면서 경제관념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번 돈을 거의 다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하기도 했다.   ■ 새롭게 찾은 삶의 목표 ‘레이싱’.. “오랫동안 재미있게,전문성 갖추고 싶어”   양상국이 새롭게 찾은 삶의 의미는 ‘자동차’와 ‘레이싱’이다.   양상국이 레이싱에 흥미를 가진 건 2015년 쯤이었다. 차를 좋아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호회 팀에 들어가서 타임 트라이얼 같은 간단한 대회에 나갔다가 2017년 아반떼컵, 2019년 벨로스터N컵 등 점점 전문적인 대회에 도전했다.   올해도 2020 벨로스터N컵, KIC컵 KF1600 코리안 포뮬러 대회 두 가지를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전남 영암서 열리는 KIC컵 KF 1600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KF1600은 국산화한 포뮬러, 경주용 자동차를 뜻한다.   2019년 벨로스터N컵 챌린지 클래스 5라운드에서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는 양상국   지난해 9월 8일, 2019 벨로스터N컵 대회 챌린지 클래스 5라운드에서 양상국은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때의 기쁨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20대초반의 어린 레이싱 선수도 많고, 저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서 처음으로 성과를 낸 거라 너무 행복했죠”   30대 후반, 적지않은 나이인 만큼 프로 레이싱 선수까지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재미있게 하면서도,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포뮬러 대회는 국제자동차연맹 FIA에서 주관하고 FOM이 상업적 주관을 하는 국제 자동차 프로 레이싱 대회다.   국내에서는 2010년 전남 영암에서 F1을 개최됐지만, 그 뒤로 포뮬러 대회가 없어졌다. F1을 개최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모든 장비를 들여오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고 사고가 났을 때 수리시간도 오래 걸려 대회를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한국형 KF1600 대회를 열어 국내 포뮬러 부활과 실력 있는 국내 프로 드라이버들이 F3을 넘어 F2, F1 선수로 올라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양상국은 유튜브에서 자동차 정보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에서 전문 강사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최근 지상파 마지막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가 방송을 중단하면서 개그맨들이 설 무대가 또 사라졌다. 양상국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공영방송의 특성상 개그프로에 대한 제재가 많아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자신들과 달리 유투브 시대를 맞아 후배들이 실력을 바탕으로 더 큰 인기, 흥행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웃찾사 없어지고 많은 개그맨들이 많이 유튜브로 진출했는데 ‘흔한 남매’를 비롯해서 거의 다 백만 유튜버가 됐거든요, 그래서 개그콘서트 포맷에서는 자기들의 끼를 발휘하기 힘들었던 후배들에게 오히려 또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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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9
  • [뉴스 속 직업 : 경찰대 출신 변호사]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대 출신 변호사 ‘몸값 급등’ 추세
    [뉴스투데이=김한경 기자] 올해 들어 경찰대 출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생이 처음으로 50명을 넘었다. 지난달 28일 사법시험준비생모임에 따르면, 출신학교 현황 공개를 거부한 중앙대를 제외한 전국 24개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졸업생은 최소 57명에 달했다. 매년 경찰대에 100명이 입학하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이 넘는 숫자다.   최근 5년간 경찰대 출신 로스쿨 입학생 추이를 보면 2016년 17명, 2017년 13명, 2018년 25명, 2019년 27명이었다가 금년에 57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경희대 로스쿨에만 경찰대 졸업생 11명이 올해 입학했다. 로스쿨이 첫 입학생을 받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졸업생은 모두 270명에 이른다.   경찰대 4기인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법안 통과에 따른 후속 조치 관련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학비·기숙사비 등 1억 원가량 국민 세금 쓰고 먹튀 논란   이번에 급격히 로스쿨 입학이 늘어난 이유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앞으로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진 독립적인 수사 주체로 인정받게 되자 대형 로펌들이 경찰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제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린 사건은 검찰의 판단을 받지 않고 불기소 의견으로 수사를 종결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찰대 출신의 로스쿨 진학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며,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사표를 낼 경찰관들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직 경찰관이 휴직하거나 업무를 병행하며 로스쿨에 다니기는 법규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어떤 부서에서 어떤 형태로 근무하던지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는 로스쿨을 졸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편법으로 로스쿨에 진학했다가 2015년 감사원에 적발된 인원은 39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경찰대 출신들의 지나친 로스쿨 진학이 드러나자 정치권에서는 경찰대생 1명이 입학 후 졸업까지 4년 간 학비와 품위유지비, 기숙사비, 식비 등 약 1억 원가량의 국민 세금이 쓰이는데 ‘먹튀 아니냐?’라는 식의 비난도 쏟아졌다.   ■ 총경 이상 간부 과반수 점유…치안감 이상 고위직 55.8%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럴 거면 경찰대가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냐?’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경찰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국가기관인데, 정작 졸업생들이 기회만 되면 다른 곳으로 진출하려고 하니 설립 취지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거의 대부분이 직업 군인이 되는 육·해·공군사관학교 등과도 비교된다.   2013년 말 기준, 경찰 내 고위직인 총경 계급의 45.6%, 경무관 계급의 53.5%가 경찰대 출신이다. 이후 자료가 공개된 바는 없지만 경찰 고위간부 중 경찰대 비중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여서 현재 총경 이상 간부 중 절반 이상은 경찰대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1월 기준 치안감 이상 고위직 34명 중 55.8%가 경찰대 출신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경찰대는 경찰 수뇌부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주요 요직들은 소수의 고시 출신을 제외하면 거의 경찰대가 과점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대 초창기 기수들의 고위직 싹쓸이와 순경출신 경찰의 근속승진 도입으로 경찰 간부의 진급 정체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초창기 7~80%에 달하던 경찰대 출신의 총경 진급률은 현재 기수 당 30%를 겨우 웃돌고 있다.   ■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 엘리트 그룹의 비전 변질시켜   이렇게 직업적 만족도가 과거보다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졸업생들이 로스쿨 등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 과연 비난만 받을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대는 여전히 경찰간부를 배출하는 최고의 교육기관이고 경찰 내 입지도 매우 좋지만, 현재 받는 대우에 비해 상당히 과도한 역차별과 견제를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20년 경찰대 입학생의 경쟁률을 보면 47대 1로 아직까지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18년의 68대 1과 비교하면 갈수록 경쟁률이 떨어지고 있으며, 경쟁률이 점차 상승하는 사관학교와도 대비된다. 전액장학제도가 부분장학제도로 바뀌었고, 의무경찰 소대장으로 병역을 대신하던 제도도 없어진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경찰대는 엘리트 경찰을 키워내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경찰대 출신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는 총 140명으로 전체 인원의 0.6%를 차지하며, 현재 약 300명가량의 경찰대 출신 변호사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약 13%가 대형 로펌, 10%가 판사, 4%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개혁 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찰 조직 내 엘리트 그룹의 직업적 전망을 변질시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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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7
  • [역경을 이긴 연예인 (4)] 외로운 소년 임영웅의 멘토가 된 ‘사범님’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임영웅이 무명가수 시절이던 2017년, 어릴 적 태권도 사범이었던 김종천 전 시장과 함께 시장실서 찍은 사진[사진제공=포천시청]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역시 임영웅이다. ‘감성장인’ 임영웅은 짙은 감성, 그러면서도 맑은 음색과 시원한 가창력, 스타성으로 방송 내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진’의 자리에 올랐다.   1991년생 임영웅은 경기도 포천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영웅이 되라’는 뜻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준 아버지는 5살 때 돌아가셨다. 임영웅에게 어린이날은 각별하다. 어린 영웅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라고 다짐했던 만화영화 주인공 캔디처럼 자신을 다독여야 했을 것이다.   ■열살 소년 임영웅이 만난 태권도 사범   30대에 혼자가 된 어머니는 미장원을 차려 아들을 키웠다. 그리고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던 임영웅을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때 미장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태권도장에 넣었다,   이때 임영웅을 맞은 포천시 송우리 태권도장의 관장이 김종천 전 포천시장이다. 북한 땅인 철원 북방 김화 출신 실향민 아들인 김 전 시장은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한국체육관이라는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종천 전 시장은 포천시 송우리에 있는 송우초, 송우중, 동남고를 졸업했는데 임영웅이 초 중 고교 후배인데다 영웅이 처럼 자신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바 있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김종천 전 시장은 임영웅의 첫 인상을 “어린 나이지만 키가 크고 예뻤다”고 기억했다. 같은 건물 5층에 태권도장이 있고 미장원은 1층이어서 임영웅의 어머니와 가족사정을 잘 알았던 김 전 시장은 영웅을 걱정했지만 생각과 달리 “성격이 쾌활하면서도 착하고, 반듯했다”고 말했다.   임영웅의 밝은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11살 때 양동이에 얼굴을 긁혀 작지 않은 흉터가 생겼다. 어린아이 얼굴의 흉터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기지나 않을까 성형수술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오히려 영웅이 위로했다. 어머니에게 “내 얼굴에 나이키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종천 전 시장과 임영웅의 인연은 중 고등학교와 대학생, 무명가수 시절을 거쳐 트롯황제가 된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예체능에 소질을 보였던 임영웅이 고교 및 대학생 때 까지 태권도를 계속해 인연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김 전 시장은 “영웅이에게 착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지겨울 정도로 타일러도 돌아오는 말은 늘 공손하게 ‘네’ 였고, 토를 달지 않았다”고 말했다.   ■ 어릴적부터 ‘끼’ 보였던 임영웅, 예체능에 두각   임영웅은 어린 소년 시절부터 태권도 뿐 아니라 예체능에 두각을 보였다. 김종천 전 시장은 “태권도장 관원들인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장기자랑을 하면 당시 유행하던 임창정이나 코요테 같은 가수들 노래를 부르는데 잘하니까 혼자서 여러곡을 불렀다”고 기억했다.   임영웅은 태권도 뿐 아니라 축구도 아주 잘해서 태권도장 간 시합은 물론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합 때도 대표로 뛰었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그의 몸속에 감출 수 없는 예체능 DNA가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꿈은 노래보다는 운동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선수를 꿈꿨고, 중학교 때는 태권도 교육 쪽으로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학교 시절 3년 간 반장을 맡기도 했다.   음악쪽으로 진로가 바뀐 건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야간자율학습에 싫증을 느껴 친구를 따라 실용음악학원에 발을 들였다. 친구는 학원 시험에 떨어졌지만 임영웅은 B등급으로 붙었다고 한다.   결국 경복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진학했다. 처음엔 발라드가수가 목표였지만, 가요제에서 계속 탈락했다. 그러다 2015년 포천 시민가요제에 참가했을 때는, 행사 분위기상 트로트를 불렀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임영웅은 2016년 전국노래자랑 포천 편에 일반인으로 참가했다. 맑은 목소리로 ‘일소일소 일노일로’를 열창하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트로트의 길을 걸게 됐다.   ■ 시장이 된 태권도 사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   김 전 시장은 2년 전부터 암과 싸우고 있다. 2017년 4월 보궐선거로 시장이 된 김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이 유력했지만 선거를 앞둔 어느날 병원의 암 진단서를 받고 출마를 접었다.   김종천 전 시장은 두 번의 시의원을 역임한 뒤 시장에 당선됐다. 태권도 관장으로서 성실하고 바른 자세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은 것이 정치로도 성공한 비결이었다.   올초 ‘미스터 트롯’ 경연이 한창일 때, 김 전 시장은 강화도에서 요양 중이었다. 두 사람은 경연 중에도 격려를 보내고 안부를 묻는 카톡을 주고 받았다. 임영웅은 김 전 시장의 하루하루 건강이 어떤지 걱정했고, 김 전 시장은 “실력은 네가 최고니까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해라”고 응원했다.   [사진제공=임영웅 인스타그램]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 1위, 진에 오른 것에 대해 김 전 시장은 “착하고 바르게, 성실한 노력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진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웅이 무명가수 시절 김 전 시장은 “꿈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격려했다.   또 “무명가수 시절 영웅이가 군고구마장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어긋난 길로 가지 않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을 보고 내가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전했다.   임영웅은 지난 3월14일 우승을 하자 “엄마만 남겨두고 떠난 것이 미안해 아버지가 준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릴적의 불행을 떨쳐버린 ‘착하고 반듯함’을 보여준 소감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류 공통의 명언이 있다. 스타는 스스로의 힘 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종천 전 시장은 트롯의 부활, 범세대적 인기를 만든 영웅을 도운 진정한 멘토이다. 임영웅[사진캡처=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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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5
  • [역경을 이긴 연예인 (3)] 정우성, 몸 눕힐 자리조차 없던 청춘→대한민국 대표 남신으로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정우성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정우성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남신’ 배우다. 잘 생긴 외모와 완벽한 기럭지로 1990년대를 풍미했고, 오늘 날까지 연기, 제작자, CF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우성은 있는 집 자식 같은 품격 있는 외모와 달리 여러 역경을 겪었다.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일찍 홀로서기를 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때로는 유혹의 검은 손길이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앞길을 개척했다.   ■사당동 판자촌에서 보낸 유년기 “가난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정우성은 1973년생으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재개발 지역의 판자촌에 있었고, 부엌과 방 하나가 전부인 공간에서 5명의 가족이 생활했다. 퇴거명령이 떨어지고 매일 불도저가 다른 집을 밀고 다녀도 마지막까지 버텼다. 옆집이 허물리면 그제야 짐을 쌌고, 아직 무너지지 않은 다른 판자촌의 빈 집으로 들어갔다.   정우성의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늘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나쁜 길을 걷지 않도록 보살폈다.   정우성은 유년기의 가난함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가난은 부모님의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키가 180cm를 넘었기 때문에 성인인 척 거짓말을 하고 여고 앞 햄버거 가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어린 나이에 돈벌이를 한 것은 좋은 경험이 됐다. 손님을 끄는 뛰어난 외모와 햄버거 굽기 실력으로 사장에게 인정을 받았고, 스스로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베풀면서 성취감도 느꼈다.   이 무렵 TV를 보다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연했다. 대신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고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교실에는 폭력을 일삼는 불량학생이 많았고 선생님들은 부모님의 재력, 성적, 사는 곳을 두고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와 얽힌 폭력서클 선배들이 정우성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결국 정우성은 고등학교를 1학년만 마치고 자퇴했다. 중졸의 학력으로 사회에 뛰어든 것이다.   ■중졸의 학력으로 시작한 모델일과 검은 유혹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배우의 꿈이 다시 떠올랐지만,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몰라 모델부터 시작했다. 옷가게 아르바이트로 수강료를 벌며 모델 센터를 다니고, 프리랜서로 CF 모델도 찾아서 했다. 하지만 당시 모델 일은 보수를 3~6개월 뒤에 주는 데다가 막상 돈을 받으러 가면 회사가 없어지는 등 불안정했다.   방송국 공채 탤런트 시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배우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모델 센터가 요구하는 장기계약을 하지 않았더니, 모델로서 쇼쪽의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세상에 자기 몸 눕힐 자리 하나 없는 것 같아 막막함을 느낄 때, 어두운 제의가 오기도 했다. “돈은 물론이고 아파트, 차까지 줄 테니 호스트바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유혹했다.   정우성은 거절했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무엇이든 잡고 싶었지만, 아무거나 잡더라도 꿈에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를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구미호   ■영화 ‘구미호’ 주연 발탁, 안방극장 오가며 스타 반열에   그러다 기회가 왔다.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잘 생긴 남자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연예계 관계자들이 정우성을 보러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94년 개봉한 영화 ‘구미호’의 남자주인공 오디션을 보고 주연으로 발탁됐다.   영화배우 데뷔를 앞두고 찍은 ‘센스민트’ 껌 광고도 대박이 났다.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를 배경음악으로 한 CF가 화제가 되면서 주목받는 신인이 됐다.   ‘구미호’에서 정우성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1997년 SBS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로 그해 ‘모래시계’ 이정재와 SBS 신인상을 공동수상했다.   영화 비트   이후 1990년대 청소년들의 로망이 된 ‘비트’의 ‘이민’ 역으로 절정에 오른 외모를 뽐내 강한 존재감을 남겼으며, 이정재와 출연한 ‘태양은 없다’로 대표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배우 데뷔 후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 ‘러브’와 ‘무사’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2000년대 초반에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흥행 성공보다 실패작이 더 많았다. 정우성을 두고 “외모가 전부인 배우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그의 연기가 꽃피기 시작했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2011년에는 배우 이지아와 스캔들에 휘말려 잠시 쉬다가 2012넌 JTBC 창사 드라마 ‘빠담빠담’을 통해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후 영화 ‘감시자들’, ‘신의 한 수’, ‘아수라’, ‘더 킹’, ‘강철비’ 등에서 절정의 연기력을 보였다.   영화 증인 포스터  2019년에는 영화 ‘증인’으로 배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백상예술대상 대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싹슬이했다. 2020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태영’이라는 호구캐릭터를 연기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감독·제작자로 활동 넓혀...“아직도 나를 완성하는 과정”   최근에는 배우를 넘어 영화감독과 제작자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우성이 감독을 맡은 상업영화 데뷔작 ‘보호자’가 지난 2월 크랭크인했다. 자신이 주연을 맡고, 김남길 박성웅 등이 출연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제작자로 참여한다는 소식도 있다. ‘고요의 바다’는 전 세계적인 사막화로 인해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미래의 지구에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정예대원들의 이야기다. ‘우주 SF 스릴러’라는 흔치않은 장르를 어떻게 담아낼지 관심이 모인다.   정우성은 현재의 삶에 대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스스로를 계속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지금 주어진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9년 찍은 커리어의 정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직업배우로서, 자신에게 상을 안겨준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들을 꾸준히 연기하고 싶다.   [사진제공=정우성 인스타그램]   정우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기로도 유명하다. 2015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2018년에는 예멘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공격을 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점점 커질 때 “사명감과 열정으로 혼신을 다하고 계시는 질병관리본부, 전국 보건소, 전국 의료시설 등의 의료진과 관계자, 봉사자 모든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는 글을 남기며 1억 원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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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2
  • [역경을 이긴 연예인 (2)] ‘트바로티’ 김호중을 울렸던 5가지 고난, 때론 무릎 꿇었다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김호중 [사진제공=인스타그램]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최종순위 4위. 김호중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바로티’로 거듭났다. 트바로티란 트로트와 유명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합친 말로, 김호중이 원래 파바로티를 꿈꾸던 성악가 출신으로서 트로트 가수가 됐음을 의미하는 별명이다.   김호중은 한국의 아이돌 시대를 열었던 스타 작곡가 용감한 형제와 닮은꼴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길고 긴 방황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용감한 형제는 17살에 구치소에 2년간 수감 당했을 정도로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수많은 유명 아이돌들의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이면서 춤 동작을 창조해낸 안무가이기도 하다.   김호중도 노래의 꿈을 이루기까지, 조폭 노릇까지 한 어두운 청소년기를 겪었다. 어린 김호중을 수렁으로 몰고간 절망적 상황은 대략 5가지이다. 그가 언제나 그 절망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무릎을 꿇고 타락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겨냈다. 그게 중요하다. 항상 이기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에 이기는 게 중요할 뿐이다.    [표=뉴스투데이]   ■ 초등학교 3학년 때 찾아온 '부모님의 이혼', 첫 시련 앞에 힘없이 무너져   김호중의 첫째 고난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는 1991년생, 울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할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지만 외로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놀거나 상실의 아픔을 나눌 형제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늘 혼자였고, 잠자는 일 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문제아가 됐다.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는 놓았고, 대신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주먹 싸움에도 많이 끼고 다녔다. 첫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셈이다. 당장의 고난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고 자신을 너무 자학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김호중처럼 결과적으로 이겨내면 되는 것이다.    ■ '파바로티'를 꿈꾼 중학교 2학년 생, 고난극복의 동력은 '인내'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찾기   두 번째 시련은 중학교 시절의 타락이었다. 김호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공사장을 다닐 정도로 외모가 성숙하고 체격이 건장했다. 경호원을 꿈꿨을 정도로 운동을 잘했던 그는 울산에서 부산까지 원정 싸움을 다니는 불량학생이 됐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전환점을 찾는다. 성악가의 꿈을 처음 품게 된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러갔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듣고 돌연 감동에 빠졌다. "파바로티같은 성악가가 되겠다"고 속으로 되뇌였다.    음악의 길을 걷는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늦은 시작이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환경도 아니었다. 대신 성악을 하는 교회 지휘자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짧은 연습 기간이었지만 놀랍게도 경북예술고등학교에 단번에 합격했다.   ■ 예고생활이 만든 '상대적 박탈감', 자포자기하며 업소관리 '조폭' 생활에 빠져    셋째 시련은 가슴 가득히 설렘을 안고서 입학한 예고 생활에서 찾아왔다. 예고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너무 엄격했고, 생각보다 비싼 학비와 레슨비도 가정형편에 부담이 됐다. 집에 여유가 있는 다른 친구들은 오히려 레슨비를 추가로 내고 레슨을 더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됐을까. 어차피 난 쟤들한테 질 거야”라는 식의 좌절감에 빠졌다.    '상대적 박탈감'은 원망과 포기를 낳았다. 자신이 예고 입학에 대한 꿈을 품고 노력했던 순간들을 망각했다.   결국 김호중은 중학교 시절처럼 다시 나쁜 길에 빠져들었고, 성악의 꿈도 뒷전이 됐다. 폭력조직에 들어가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업소 관리를 하며 어린 조폭 노릇을 했다.   ■ 퇴학위기 앞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운명적인 멘토의 도움으로 재기   네번째 시련은 퇴학 위기였다. 김호중은 불성실한 학교 생활로 아예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남은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 위기였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앞에서, 운명적인 멘토가 나타났다. 경북예고에 있던 후배에게 “소리가 기가 막힌 꼴통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온 서수용 선생님과 만난 것이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도 풀지 않고 거침 없이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엘 루 체반 스텔레(별은 빛나건만)’를 부르는 것을 듣고 재능을 알아봤다.   서 선생님은 “넌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은 할머니가 남긴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라”는 유언과 함께 방황하던 마음을 돌려놓았다. 김호중은 서 선생님이 있는 김천예고로 전학을 갔다.   ■ 폭력조직의 협박과 폭력, 굴하지 않고 음악과 함께하는 미래 선택   다섯번째 시련은 음악의 길을 택한 김호중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폭력조직의 위협이었다. 폭력배들이 찾아와 7시간동안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김호중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가혹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조폭과 인연을 끊었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조폭생활을 정리할 때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대신 6개월간 김호중을 차에 태워 함께 등교하면서 새로운 학교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음악 인생을 열어줬다.    이후 김호중은 2008년 제4회 세종음악콩쿠르에 출전해 1위로 입상했고, 전문 테너들도 어려워하는 네순도르마를 고등학교 3학년이 완벽하게 부르는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고등학생 파바로티’라 불리며 SBS ‘스타킹’에 출연해 그의 사연과 재능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스타킹을 본 RUTC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제안을 받아 5년간 독일에서 유학을 한 뒤, 마침내 성악가의 꿈을 이뤘다.   영화 파파로티 포스터   ■ 영화 '파파로티'의 개봉과 미스터 트롯 출전은 삶을 바꿔준 2가지 행운   김호중의 삶은 2가지 행운을 거머쥐면서 달라졌다. 우선 2013년 김호중의 학창시절을 소재로 한 영화 ‘파파로티’가 개봉했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에 대한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다. 자신의 이야기로 조폭의 삶이 미화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어두운 과거의 꼬리표가 영영 따라붙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수락했다.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깜짝 출전했다. 김호중은 유학시절부터 ‘대중성 있는 성악가’를 꿈꿨고, 성악, 재즈, 트로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미스터트롯’은 그 꿈을 펼치기에 딱 알맞은 무대였다.   [사진캡처=TV조선]   첫 곡으로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불러 압도적인 가창력을 드러낸 이후, ‘이대팔’ ‘무정부르스’ ‘희망가’ 등 무대를 멋지게 소화했다. 특히 본선 3차전 에이스 대결 ‘천상재회’는 마스터들이 나쁜 평가를 내렸지만 시청자들이 ‘어떻게 더 잘하냐’고 들고 일어나 판정논란이 일어 화제가 돼기도 했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미스터트롯 결승전도 피해를 봤다. 결국 가족만 초청한 무관중 무대로 열렸는데, 김호중은 7명의 결승 진출자 중 유일하게 혼자 결승을 치르게 됐다. 이혼한 부모님은 각자 새 가정이 있고, 서수용 선생님은 확진자가 많은 대구에 있어서 서울에 오지 못했다.   김호중은 결승전에서 조항조의 ‘고맙소’를 선곡했다. 방황하던 시절 손을 잡아준 서 선생님을 위한 곡이었다. 비록 서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지만 훌륭한 무대를 펼쳤다.   “막상 선생님이 오셨다면 긴장도 더 되고 떨렸을 겁니다. 경연하면서 연락을 자주 하고 응원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너무 고생 많았고 기분이 좋다. 너는 성악이라는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노래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이 납니다”   김호중은 최종 순위 4위로 마감했지만, 미스터트롯을 통해 좋은 동료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을 얻었다.   김호중[사진제공=인스타그램]   그는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고 가장 만족하는 점으로 “청중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리아’는 외국말로 불러 알아듣는 청중이 적지만, 트로트는 한 소절을 불러도 100%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또 팬들과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팬카페에 일상적인 얘기들을 많이 올리고, SNS도 배우는 중이다.   새로운 분야를 향한 욕심은 여전하다. 요즘에는 ‘미스터트롯’을 통해 만난 윤대만 씨에게 민요와 소리를 배우고 있다. 윤대만 씨는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경기소리를 하는 가수로, 주현미의 ‘짝사랑’을 연습할 때도 도움을 받았다. 국악을 배우면서 몰랐던 발성을 익혀 새로운 무기가 생긴 기분이라고 한다.    김호중이 새로운 발성법으로 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이겨내지 못할 좌절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중의 솔직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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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1
  • [뉴스 속 직업 : 군법무관] 최강욱·전원책 등 방송에서 활약한 유명 법조인 산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최근 열린민주당 공천에서 2번을 받아 조만간 국회의원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제11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을 통해 10년 간 군에서 복무한 후 변호사 자격을 얻어 2005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한때 KBS에서 ‘최강욱의 최강시사’란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유명세를 탔다.   진보적 입장인 최 변호사와 달리 보수의 입장을 대변해온 전원책 변호사도 제4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을 통해 군에서 복무한 후 1991년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는 JTBC ‘썰전’과 TV조선 ‘강적들’은 물론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했고, 한때 TV조선 9시 뉴스의 메인 앵커로 활약하는 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군법무관 임용시험 출신인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왼쪽)과 전원책 변호사(오른쪽).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들이 모두 변호사가 되기 위해 거친 코스가 군법무관이다. 과거에는 사법시험 외에 군법무관 임용시험이 따로 있었다. 군대 조직이 워낙 크고 법조 인력이 필요한데 사시 출신들은 직업군인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아 별도로 만든 채용 방식이다.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10년 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 활동하는 변호사 중에도 군법무관 임용시험 출신들이 상당수 있다. 그런데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300명, 500명, 1,000명으로 점차 늘면서 군법무관 임용시험은 2005년 합격한 제19회를 마지막으로 2007년에 폐지됐고, 사법연수원 수료생 또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만 군법무관에 지원할 수 있게 바뀌었다.   ■ 중위로 임관해 3년 간 병역 의무 이행하는 단기 군법무관 인기 높아   2020년 현재 군법무관 선발의 경우 사법시험의 폐지로 인해 신규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자(합격 예정자)만을 선발하게 되므로, 로스쿨과 기성 변호사 외에는 군법무관으로 진입할 통로가 없게 됐다. 군법무관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단기 군법무관과 직업군인의 길을 가는 장기 군법무관으로 구분된다.   단기 군법무관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또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이 3년간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중위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한다. 단기 군법무관은 인기가 좋아서 사법연수원 수료자는 수료성적 상위 20~30% 안에 들어야 임용이 가능했다. 이에 탈락한 사람은 공익법무관으로 임용돼 각지의 검찰청, 법률구조공단 등에서 3년간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은 2014년에 입대한 3기부터 지원제를 도입하여 지원자가 정원보다 많으면 성적순으로 선발했고, 2015년에는 이를 사법연수원에도 확대 적용했다. 사법연수원은 여전히 상위권 수료자들이 과거의 기억에 따라 군법무관을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 대위로 임관하는 장기 군법무관, 로스쿨 도입 이후 경쟁 치열해져   장기 군법무관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또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 중 직업군인으로 복무하기 위해 지원하는 사람들로서 대위 계급으로 임관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원자가 부족해 인력난이 매우 심한 편이었다. 왜냐하면 변호사 개업을 해도 군법무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군법무관이 맡는 법률 사무가 한정적이어서 전역 후 개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이에 대한 유인책으로 임관 2년 만에 소령으로 진급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의무복무 연한을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하는 등 혜택을 주었지만 수요를 충족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급증하며 변호사 시장이 좋지 않자 조금씩 지원자가 늘어나 간신히 수요를 맞췄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군법무관 수당이 기본급의 40%로 상당히 높아졌으며,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적 장점도 있어 경쟁이 치열해졌다. 특히 여성과 지방대 로스쿨 출신들의 관심이 높아 첫 로스쿨 출신 군법무관을 선발했던 2012년에는 경쟁률이 8:1을 상회했고, 2014년에는 10: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육·해·공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법학전문대학원 위탁교육을 받고 군법무관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로스쿨 도입 이전에는 민간 법대에 학사 편입한 후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들은 소위 임관 당시 이미 장기복무 자원이므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당연히 장기 군법무관이 된다.   ■ 최고위직은 법무관리관(소장), 최강욱 제보 후 ‘개방형’ 직위로   군법무관의 진급 상한선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소장)이었다. 하지만 2002년 최강욱 군법무관이  법무관리관의 비리를 참여연대에 제보하면서 시끄러워졌고, 이후 개방형 직위로 바뀌어 2006년부터 민간 변호사가 임명되며 통상 장기 군법무관 출신 중에서 선발된다. 이외에 육군본부 법무실장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 등 2개의 현역 장군(준장) 직위가 있다.   첫 여성 군법무관이자 법무 병과의 최초 여성 장군인 이은수 변호사는 1990년 제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한 후 23년간 군 복무를 했다. 육군본부 법무실장을 거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전역했다. 로펌에서 인생 2막을 연 이 변호사는 “난 유리천장 깨는 전문가”라고 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홍준표 전 경남지사 등은 병역을 필하고 법조인이 돼 군법무관으로 복무하지는 않았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은 병역을 면제받은 케이스다. 그리고 이회창·천정배·강용석 등은 공군에서, 김기춘·황우여·조응천 등은 해군에서 단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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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9
  • [뉴스 속 직업 : 사이버 전사]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사이버작전사로 옮겨간 엘리트 장교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2012년 국방부는 국방 사이버 분야의 정예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고려대와 계약을 맺고 ‘사이버국방학과’를 신설했다.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는 사이버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할 사이버보안 전문장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로 이스라엘의 ‘탈피오트’를 모델로 삼고 있다.   이 학과에 입학하면 대학 4년간 등록금 전액을 군에서 지원하며, 매월 50만원의 학업 장려금도 받는다. 졸업 후에는 육·해·공군 장교로 임관해 7년 동안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근무하며, 전역 후에는 세계 보안시장을 선도하는 국내외 기업, 정부 및 공공기관, 관련 연구소의 스카우트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의대에 합격할 수준의 우수한 학생들이 매년 지원한다.   지난 2014년 2월 21일 대전 유성구 자운대 육군정보통신학교에서 '2014년 육군 해킹방어대회'가 열려 대회 참가자들이 해킹 방어능력 평가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처음으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학생들도 참여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 학과는 컴퓨터, 암호, 해킹, 디지털 포렌식, 보안성 평가, 블록체인, 인공지능, 개인정보 보호, 사이버 정책 분야 등에 역량 있는 20여 명의 교수진으로 구성된다. 사이버보안 분야 현장과 연구소 경험을 가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교수들이 많은 것도 교육의 질을 높이는 요인이다. 또 국내 최초로 해킹 공격과 방어를 실습할 수 있는 최첨단 워룸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뛰어난 교육 인프라와 군부대 실습을 포함한 다양한 해킹 실전을 연마해 각종 세계 해커 대회에서 수상하면서 뛰어난 역량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 해커 올림픽인 데프콘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2015년과 2018년 우승한 것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에서 열린 해킹 방어대회서도 우승과 상위권에 입상했다.   이들은 졸업하면 정보통신 장교로 임관하고 사이버 부특기가 부여된다. 7년간 의무 복무한 후 전역하지만 장기복무를 원하면 일부 인원은 계속 군 복무가 가능하며, 국내외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 위탁교육도 받을 수도 있다. 2016년 1기 30명(육군 24명, 해·공군 각 3명)이 처음 졸업했고, 현재 4기까지 120여 명이 장교로 임관해 복무 중이다.   ■ 1기부터 3기까지 ADD 배치했으나 활용 계획 부실해 성과 미흡   1기부터 3기까지는 임관 후 전원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3년간 근무한 다음 국방부에서 사이버작전사를 비롯해 정보기관 및 육·해·공군 사이버작전센터 등에 배치하고 있다. 현재 1기생은 지난해 7월에, 2기생은 지난해 12월에 ADD 근무를 끝내고 새로운 보직을 받은 상태다. 지난해 임관한 4기부터는 최초 3년간 근무하는 곳이 ADD에서 사이버작전사령부로 변경됐다.   고려대에 사이버국방학과를 만들 당시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었던 박대섭 세종대 교수는 “이스라엘의 엘리트 군인 육성 프로그램인 ‘탈피오트’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피오트는 이스라엘군이 히브리대 교수들과 함께 선발, 교육, 훈련, 복무, 활동 등 모든 과정에 대해 종합적이고 세밀한 검토를 거쳐 만들어진 제도임을 당시 국방부는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학과 신설 후 4년이란 시간이 있었지만 첫 졸업생이 나올 때까지 국방부는 이들을 군에서 어떻게 양성 및 활용할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 즉 탈피오트를 생각했지만 이스라엘이 인재를 양성하고 활용하는 과정은 정확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 결과 1기 30명의 진로는 졸업 직전 여러 가지 논란 끝에 ADD로 정해졌다.   당시 임종인 고려대 교수(전 청와대 사이버안보 특보)는 아직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야전부대에 곧바로 배치하기 보다는 ADD에서 인턴십 개념으로 각종 연구와 프로젝트를 경험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를 타당하게 여긴 국방부가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ADD가 이들을 받아들여 효율적인 사이버인재 양성이 가능할지는 국방부의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 3년이 경과했다. 지난해 8월 사이버작전사령부 관계자는 “ADD 근무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4기부터는 모두 사이버작전사령부로 배치해 3년 동안 근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사이버작전사에서 안착 중…인재 활용 효율성 두고 설왕설래도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중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역임)은 “인재 양성은 지속적인 진단과 관리·보완이 필요하며, 양성된 자원의 활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추적 관리가 되지 않으면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례가 계획적 인재 육성의 대표적 모델이라고 말했다.   정 전 소장은 “이스라엘은 분야별로 필요한 인재 소요를 판단하고,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먼저 식별한다. 그 다음 심리학자를 포함한 전문가팀이 분야별 특성에 맞는 자질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고, 학문적 지식을 갖추기 위한 전문교육에 이어 실무 경험을 쌓는 양성과정을 거친다. 그 후 목적에 맞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한국군 수뇌부들이 이스라엘처럼 사이버 인재 양성과 활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아 사이버국방학과 출신 장교들의 군 복무 시작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측면은 있었다. 하지만 사이버사령부도 창설 초기여서 이들을 수용할만한 역량이나 환경이 구비되지 않아 당시로서는 ADD 근무가 최선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ADD 근무를 마치고 새로운 자리로 이동한 사이버국방학과 1∼2기생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장교들은 근무하는 부서나 부대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각자 열심히 근무하면서 계속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다. 조만간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장교도 나올 것 같다.   이들이 이스라엘군 8200부대(사이버 첩보부대)를 이끄는 탈피오트 출신들처럼 한국의 사이버안보를 책임지는 인재로 거듭나려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사이버국방학과 출신 장교들의 양성 및 활용에 관심을 갖고 명확한 비전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파격적 지원과 혜택을 부여하여 ‘사이버 전사’로 군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길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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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1
  • [뉴스 속 직업 : 간호장교] 여성장군 나왔지만 대위로 대부분 전역, 직업성 보장 어려워
    코로나19 의료 현장에 투입된 신임 간호장교들이 지난 4일 국군대구병원에서 식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국가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국군대구병원은 지난 5일부터 대구지역 민간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일 현직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전격 방문했다.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코로나 19 대응 현장인 국군대구병원으로 전원 투입될 신임 간호장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원래 계획된 졸업 및 임관식을 1주 앞당겨 지난 3일 자체 행사로 간단히 마치고 곧바로 대구 현장으로 향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장교라고 해도 실전 경험이 없는 초급 간호장교들을 위험한 현장에 투입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방부는 선배 간호장교들과 같이 근무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간호장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육·해·공군의 간호장교들은 대부분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이다. 매년 80여명 정도가 임관하며, 70여명은 육군에서, 나머지 10여명은 해·공군에서 간호장교로 복무한다. 민간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장교시험에 합격해 임관한 간호장교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6·25 전쟁 중 간호 인력의 절대 부족을 해결하고 우수한 간호장교를 안정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1951년 3월 육군군의학교 내 간호사관생도 교육과정을 신설한 것이 모태였다. 1959년 5월까지 51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교육생 확보의 어려움과 임관 후 활용 저조 등을 이유로 폐지되면서 간호장교 양성은 민간학교 위탁제로 대체됐다.   그러나 간호장교 인력난이 지속되자 1967년 8월 대구에 육군간호학교가 설립됐고, 1971년 국방부로 지휘감독권이 이양되면서 ‘국군간호학교’로 개칭됐다. 이후 1980년 1월 간호전문대학 과정으로 변경되면서 ‘국군간호사관학교’로 개칭됐으며, 1981년 1월 3년제 전문대학에서 4년제 정규 간호대학으로 개편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 때 ‘폐교’ 결정 났다가 ‘존속’으로 번복돼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국방예산 감축 차원에서 학교 폐지론이 제기돼 김대중 정부에서 폐교 결정이 났다. 이 때 간호장교 출신을 중심으로 폐교 반대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져 건국 후 처음으로 국가가 집행한 행정행위를 뒤집고 존속이 결정됐다. 이 당시 2년 간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신입생을 선발했다.   존폐 위기를 계기로 사회 일각에서 여성 장군이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간호병과에서 최초의 여성 장군(양승숙 준장)이 배출돼 국군간호사관학교장에 임명됐다. 이후 타 병과에서도 여성 장군이 나왔지만, 2년마다 간호병과에서 여성 장군이 나와 국군간호사관학교장에 보직되는 것이 관례가 됐다.   2008년 이후 입학생은 정원의 10%가 교직 이수자로 선발된다. 전공이 간호학이므로 교직과정을 이수하면 졸업 시 보건교사 자격증이 나온다. 보건교사는 정년이 보장되는데다, 군에서 복무한 기간을 100% 호봉으로 인정받아 생도들이 선호한다. 2012년부터 남자도 국군간호사관학교 지원이 가능해져 매년 8명씩 선발됐고, 2016년부터 간호장교로 임관했다.     육·해·공사생도처럼 4년 공부해 임관하나 70%가 6년 복무 후 전역   간호사관생도들은 육·해·공군사관생도들처럼 4년간 기숙생활을 하며 181학점을 이수한다. 임상실습 시간만 1,080시간에 달하며, 기초 군사훈련은 물론 유격훈련, 야전간호, 전투외상간호, 재난응급간호 등 다양한 훈련들이 계속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해야 간호장교로 임관이 가능하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간호장교로 임관하지만 이들은 육·해·공군사관학교 출신처럼 장기복무 장교가 아닌 단기복무 장교이다. 따라서 임관 후 6년간 의무복무 후 장기복무자로 선발되지 못하면 전역해야 한다. 전문대 졸업자와 4년제 대학 2학년 이상 수료자 중 선발해 2년간 교육 후 장교로 임관시키는 육군 3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이들과 같은 단기복무 장교다.   하지만 고교 졸업자 중에서 우수자를 선발하여 4년간 전액 국비로 사관생도 교육을 실시한 후 국가고시까지 통과한 전문 인력은 간호장교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졸업생의 70% 정도가 겨우 6년만 군에서 복무하고 장기복무자로 선발되지 않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무런 보장 없이 사회로 방출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론 육·해·공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에게도 임관 5년차에 한 번 전역할 기회가 주어져 일부 인원이 사회로 나간다. 하지만 이 경우는 과거 사관학교 출신의 공무원 특채(일명 유신사무관 제도)로 생긴 전역 기회가 지금도 유지돼 일부 인원의 사회 진출 창구로 활용되는 것으로 본인들이 스스로 원해서 군을 떠나는 것이다.     30%대에 불과한 장기복무 비율, 간호병과 영관급 보직 늘려야   일례로, 육군에서 복무해온 국군간호사관학교 출신 간호장교들의 경우 과거에는 70여명 중 20여명이 장기복무자로 선발돼 장기복무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장기복무자로 선발된 20여명도 10여명만 소령으로 진급해 결국 50%는 대위 계급으로 군을 떠나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복무 비율(34%)과 소령 진급율(58%)이 조금 나아지는 추세이기는 하다.   반면, 간호장교와 같이 단기복무자로 임관하는 육군 3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장기복무 비율은 50∼60%에 이른다. 간호장교의 장기복무 비율이 낮은 이유는 간호병과의 영관급 자리가 적어서 발생한다. 한 간호병과 관계자는 “군의, 치의, 수의, 의무행정, 간호로 나뉜 의무 5대 병과의 공통 보직을 많이 만들어 간호병과가 갈 수 있는 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근원적 해결책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서는 의무행정 병과의 보직 중 일부를 간호장교에게 할당하거나, 간호장교 숫자를 줄이고 간호부사관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또 군 내부에서만 해결이 어려우니 현재 10%인 교직 이수 비율을 높여 전역 이후 보건교사로 근무할 길을 넓혀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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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4
  • [역경을 이긴 연예인](1) 한현민, 차별받던 피부색→특별한 ‘1호 모델’로
    한현민 [사진제공=인스타그램]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요즘 가장 ‘핫한’ 모델로 꼽히는 한현민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이제 패션쇼의 런웨이 뿐 아니라 지상파에서도 자주 보이는 당당한 ‘셀럽’이다. 혼혈 모델 1호, 까만 피부에 언 뜻 농구스타 데니스 로드맨을 연상케 하는 외모로 모델계에 입문한 뒤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한국 1호’라는 타이틀로 세계 패션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개성은 패션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강점이다. 하지만 남과 다른 외모로 인한 차별, 가난이 합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이유기도 했다.     [사진제공=인스타그램]     한현민은 2001년생,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무역업을 하다가 만나 결혼했다. 많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가정 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한현민은 어릴 적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포기했다.   보통 한국인과 다른 심한 곱슬머리와 까만 피부색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을 서울 용산구 해방촌과 이태원 부근 등 그래도 외국인이 많은 곳에서 보냈지만, 주변의 손가락질은 매서웠다.   외모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아 울고 있으면, 어머니는 “너는 특별한 아이다. 기다리면 피부색이 까매서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며 위로하곤 했다. 이런 어머니의 따뜻한 애정이 있었기에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았다.   한현민이 모델의 꿈을 처음 꾼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방황하던 사춘기가 끝날 무렵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평소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옷을 좋아했고, 모델 활동을 하는 중학교 선배를 보고 꿈을 품게 됐다.   모델이 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델 아카데미의 높은 학원비가 집안 형편상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보려고도 했지만, 나이가 어려 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뜻밖의 장소에서 기회를 잡았다.  자주 가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형이 친척이 옷 사업을 한다며 룩북 촬영을 해보라고 추천해 준 것이다. 그렇게 촬영한 사진들을 SNS에 올렸는데, 모델쪽을 주로하는 연예기획사, SF엔터테인먼트의 윤범 대표가 사진을 보고 연락을 했다.    윤 대표는 한현민을 금요일 저녁 사람 많은 이태원 길거리로 불러내 테스트를 위한 워킹을 시켰다. 한현민은 한걸음 한걸음 침착하게 걸었고, 합격했다. 모델 아카데미를 못 다녀 워킹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무대에 설 만한 담력과 끼를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한현민은 2주 뒤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패션위크 무대에서 중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나이로 파격적인 데뷔를 했다.   “2주 전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내가 지금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걸 앞두고 있다니 꿈만 같았고 너무 떨렸다. 디자이너 선생님이 ‘네가 첫 번째로 나가서 빛을 발해라’는 말을 해주셔서 자신감이 생겨 무대에 올랐다.”    한현민이 2016 F/W 서울패션위크의 한상혁 디자이너 브랜드인 에이치 블레이드 무대 오프닝에 선 소감이다.     개성이 중시되는 패션계에 발을 들이면서, 아픔을 주었던 외모는 이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특별함’이 됐다. 어머니의 말처럼, 남과 다른 피부색이 수많은 비주얼의 모델 속에서 묻히지 않는 보물이 됐다.    한현민은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패션쇼, CF, 드라마, 라디오, 예능, 유튜브까지 폭 넓다. 한복 홍보대사, 다문화 홍보대사에, 올해 3.1절 기념식에도 참석해 한국 전통과 다문화 시대를 잇는 아이콘으로서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사진제공=인스타그램]   그는 2017년 미국 타임지에서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선정됐고, 포브스에서 진행한 2019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올해 성인이 된 것을 계기로 한현민은 더 좋은 모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하고 있다.     한현민은 가족 중 유일하게 영어를 전혀 못하는 편이었다. 현재는 샘 오취리, 그렉이 출연하는 유튜브 ‘인싸영어’에서 열공중이다.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목표를 위해서다.    한현민은 비비안웨스트우드,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등 유명하고 큰 브랜드쇼에 서는 것을 꿈꾸고 있다. 나태해지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한계는 없다고 스스로 되뇐다.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잡아줄 수 있는 연상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다. 정신을 못 차리고 방황하고 있을 때 저를 잡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다양성과 융합은 더 이상 새로운 물결이 아니라 보편화된 코드이다. 한현민은 이런 문화현상을 보여주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델계 뿐 아니라 연예계 전체의 기대가 크다.      [사진제공=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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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1
  • [뉴스 속 직업] 코로나19 기부금 집중된 전국재해구호협회, 50년 간 1조 4000억원 집행
    ▲전국재난구조협회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물품 구호를 배송한다 [사진제공=전국재해구호협회]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기업들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부금을 대부분 '희망 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에 전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은 300억원 규모의 구호물품과 성금 △현대차그룹 50억원의 성금 △포스코 50억원 △신세계그룹 10억원 등이 모두 이 단체에 기부됐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27일 기준 코로나19 피해 누적 기부 건수는 총 1만1261건이며, 총 금액은 530억6048만원이라고 밝혔다. 순식간에 쌓인 기업과 국민의 정성은 어떻게 사용될까.   전국재해구호협회 관계자는 27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부금의 향후 사용 방식에 대해서 "구호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라며 "모이고 있는 기부금은 배분 계획 논의를 거쳐 1차와 2차로 나뉘어 진행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구호 물품을 자가격리자 혹은 병상에 계신 분들에게 지원 중이다"며 "추가적으로 의료 쪽 지원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은 코로나19의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중점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1961년 전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설립한 순수 민간 구호기관이다.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하는 법정 구호단체로서 주택 복구, 임시 주택 지원, 세탁구호 등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국재해구호협회의 2018년 기준 대표적 활동으로는 △제19호 태풍 '솔릭' 피해 △제25호 태풍 '콩레이' 피해 △네팔 장기구호 △제천 복합건물 화재피해 등의 성금 모금 및 지원 등이 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언론사를 중심으로 지난 1961년 설립된 단체이다. 지난 25일 총회에서 중앙일보 사장 출신인 송필호 회장이 연임됐다. 이날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변재운 국민일보 사장, 박장희 중앙일보 사장 등을 새 이사로 선임했다. 이 단체의 역대 회장 10명 중 8명이 언론사 출신이다.   따라서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여러 언론사 및 방송사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방송협회 및 공중파 3사 △신문협회 및 전국의 신문사 △전국경제인연합회 등과 협력해 신속한 재난구호 활동을 펼친다.   특히 축적된 자료를 디지털화 및 재해석하기 위해 재난안전연구소, 재난관리팀 등의 전담부서를 꾸렸다. 이들은 데이터를 토대로 재난안전 정책을 연구하고 제시한다.   재해구호법 제29조에 설립근거를 두고 있는 법정구호단체인 만큼 성금의 투명한 집행 및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위해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성금 모금 및 배분을 건별로 외부회계감사를 진행하고 홈페이지, 신문 공고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지금까지 1조4000억원의 성금과 3000만여 점의 물품을 지원해 4차례 '재해대책유공기관'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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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7
  • [TV 속 인물] 유재석, ‘런닝맨→놀면뭐하니’, 계속 진화하는 ‘살아있는 전설’
    ▲ 유재석‘런닝맨’ ‘무한도전’ ‘놀면뭐하니’.. 계속 진화하는 ‘레전드’[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유재석은 한국 연예대상만 14번을 수상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긴 무명시절을 지나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았으며 2005년에 첫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십수 년간 톱의 위치를 지켜온 유재석은 ‘무한도전’이 끝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인기유지’에 그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10년 수성(守成), 원조 한류예능 ‘런닝맨’SBS ‘런닝맨’은 2010년 7월 11일부터 첫 방영을 시작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한류예능’의 시초다. 몸으로 하는 게임이 주내용인 ‘런닝맨’은 말이 달라도 쉽게 이해가 가능한데다가, 다양한 한류 아이돌과 배우들이 출연해 해외에 광풍을 일으켰다. 해외에서 정기적으로 콘서트, 대형 팬미팅을 개최할 정도니 국내 시청률이 저조해도 쉽게 폐지되지 않았던 이유다.유재석은 이러한 런닝맨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출발 당시 내부적으로도 말이 많아 어려웠지만 가장 인지도가 있던 유재석이 MC로서 다른 멤버들의 캐릭터가 잡힐 때까지 분투했다. 멤버들이 바뀌어도 공백을 메울 수 있던 것은 유재석이 뚝심 있는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올해 48세, 체력이 떨어질 나이지만 꾸준한 헬스와 식단조절 등 완벽한 자기관리로 왕성한 신체능력을 발휘하며 ‘런닝맨’이란 성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올해 7월 11일 런닝맨이 10주년을 맞이하는 순간, 유재석은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예능 역사상 최초로 3사 모두 20년 이상 활동하면서 10년 이상 진행한 사람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무한도전’ 막 내린 뒤에도 쉼 없는 도전10년 간 방영됐던 국민 예능 MBC ‘무한도전’이 2018년 3월 종영한 뒤, 우려 속에서 유재석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5월, 넷플릭스의 최초 예능인 ‘범인은 바로 너’로 새로운 미디어 채널에 도전했다. 8월에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시작했다. 조세호와 사람들의 일상을 직접 찾아 담소를 나누고 깜짝 퀴즈를 내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JTBC ‘미추리 8-1000, 요즘애들’은 요즘 애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살펴보고, 직접 만나러 가는 내용이었다.2019년 하반기, 김태호 피디와 같이 컴백한 MBC ‘놀면 뭐하니?’는 프로그램 자체로 ‘유재석의 무한도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트로트가수, 요리사, 하프연주 등 다양한 분야의 미션이 주어지면, 유재석은 본격적으로 도전한다.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은 2019년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으며, 최신화에서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하프연주자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는 모습이 예고돼 관심을 모은다.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발전하는 유재석, 또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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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2
  • [뉴스 속 직업] CJ ENM이 고른 '기생충 통역사' 샤론 최의 직업적 강점은?
    ▲ 현지시각 지난 9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샤론 최(한국이름 최성제)가 봉준호 감독의 소감을 통역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봉준호 감독이 격찬한 '아마추어 통역사' 샤론 최CJ ENM이 지난 해 칸 영화제 통역사로 발탁 [뉴스투데이=김연주 기자] CJ ENM이 올해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통역사로 ‘영화감독 지망생’인 샤론 최(한국이름 최성재)를 선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 ENM은 그를 지난 해 칸 영화제, 올해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에서도 통역사로 발탁했다. 25살의 젊은 나이인 샤론 최는 영화감독 지망생이지 전문통역사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직업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아마추어 통역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이목이 쏠린 시상식에 샤론 최를 내세운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샤론 최의 영어 실력과 함께 영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 그리고 타고난 언어감각을 평가한 결과로 보여진다. 현재 샤론 최의 통역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유투브에서는 지난해 칸 영화제부터 가장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샤론 최가 한 통역을 모은 영상들이 줄을 이은다. 단순 의미전달을 넘어 맥락까지 해설해 ‘영혼까지 통역한다’, ‘봉준호 감독의 언어 아바타’라고도 얘기한다. 봉 감독은 전미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 수상소감에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통역사다. 그녀가 정말 언어장벽을 파괴하고 있다”고 극찬 한 바 있다. 샤론최의 통역의 강점은 문화, 맥락, 뉘앙스라는 고품격 통역의 3대 요소를 구현했다는 점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문화적 차이를 반영한 순발력, '쩨쩨한 머리'를 '옹졸한 계획'으로먼저, 샤론 최의 통역은 각국의 문화적 차이를 잘 파악했다는 평가다. 봉 감독과 배우들의 한국어 농담을 적절한 영어식 표현으로 대체했다. 봉 감독이 “아니 뭐 일부러 괴물의 속편 느낌을 풍기려고 그런 ‘쩨쩨한 머리’를 굴린 그런 것은 전혀 아닌데”라고 말 한 것을 샤론 최는 “So it wasn't as if I had this 'petty scheme(옹졸한 계획)' to make parasite seem like a sequel to the host”라고 말했다. ‘쩨쩨한 머리’라는 표현을 ‘petty scheme(옹졸한 계획)’으로 표현한 것이다. 배우 송강호가 한 무대에서 “나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라고 한 것을 “You will be almost sick of me after this film”이라고 표현했다.맥락과 뉘앙스를 반영한 해석, 송강호의 발언에 없는 '기생충'을 언급샤론 최는 단어 그 이상의 맥락과 의미를 짚어주기도 했다. 송강호가 "영화내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라는 공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샤론 최는 “Although Parasite, the title is parasite, I think the story is about co-existence and how we can all live together”라고 표현했다. 송강호의 당초 발언에 없는 '기생충'이라는 단어를 추가함으로써 ‘공생’에 대해 효과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처럼 ‘문화·맥락·뉘앙스’의 3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지는 통역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과 영어권의 문화적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영화라는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외고 국제반 졸업 후 미국 유학, '대치동 키즈'의 경쟁력 입증?샤론 최는 10살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해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대치동 P영어학원의 유치부도 다녔다고 한다. 이 학원은 대치동의 빅3 영어학원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기도 외국어고등학교의 국제반을 졸업한 후 미국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관련 행사에서 통역을 담당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이창동 감독 특유의 시적인 비유를 완벽하게 통역했다는 평가다. CJ ENM에서 샤론 최를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으로 전해진다. 전문적으로 통역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영화 ‘버닝’행사를 통해 실전 능력이 이미 검증됐다. 또한, 영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봉 감독과 배우들의 심도 깊은 발언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샤론 최는 영화감독 지망생인 만큼 영화제작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시상식과 관련한 영화를 기획중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전형적인 '대치동 키즈'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대치동 키즈의 경쟁력이 할리우드 시상식에서 빛을 발했다는 이야기도 온라인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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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3
  • [TV 속 인물] ‘불후의 명곡’ 전설 장욱조, ‘미우새’ 퇴장 김건모.. 씁쓸한 교차의 향방은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가수 김건모의 장인 장욱조 씨가 KBS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출연했다. 11일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는 ‘작곡가 장욱조’ 편으로 꾸며졌다. 작곡가 장욱조 씨는 가수 출신으로 조용필의 ‘상처’, 이미자의 ‘내 삶의 이유 있음은’,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최진희의 ‘꼬마인형’, 남지훈의 ‘천년바위’ 등 숱한 7080 명곡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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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2
  • [TV 속 인물] 2020년 기대되는 별들은? 방탄소년단(BTS)·송가인·펭수·박나래·김희철♥모모 등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방탄소년단 RM, 송가인, 박나래, 펭수방탄소년단·송가인·펭수·박나래·김희철♥모모, 새해 기대되는 6명[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새로운 2020년이 시작됐다. 2019년 연예계는 온갖 사건사고로 다사다난했지만, 풍파 속에서도 빛난 별들이 있다.부모님의 스타로 떠오른 ‘미스트롯’ 송가인, 하반기를 휩쓴 EBS 연습생 펭귄 펭수, 'MBC 연예대상‘을 안고 오열한 박나래 등 2019년을 빛내고 새해 행보가 기대되는 별들을 모아봤다. ▲ 방탄소년단[사진제공=연합뉴스]▶방탄소년단(BTS), 2020년에도 ‘정점’ 이어갈까?방탄소년단은 2019년에도 맹위를 떨쳤다. 작년 4월에 발매한 6번째 미니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가 뜨거운 인기몰이를 했다.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세번째 1위 등극, 영국 런던 웸블리 구장 공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파드국제경기장 등 세계 23개 도시 62회 공연에 206만 관객을 동원, 아메리칸뮤직어워드 3관왕 등 정점의 기록을 썼다.2020년 방탄소년단의 불안요소는 병역문제다. 정부가 대중문화예술인에게 대체복무 혜택을 주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멤버들의 군입대가 현실화 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최대 새해맞이 행사 ‘뉴 이어스 로킹 이브’ 무대에 초청되어 열광적인 공연을 펼치는 등 기대감도 공존한다. ▲ 송가인[사진제공=연합뉴스]▶2019년 최고의 뜬 ‘별’, 미스트롯 송가인송가인은 2019년 TV조선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을 통해 국악과 실전무대로 다져진 실력을 아낌없이 뽐내 우승했다. 수많은 부모세대 팬들을 사로잡았으며, 이들이 송가인 ‘덕질’을 하기 위해 인터넷 팬 문화 등 스마트문화를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효과까지 나타났다.2019년 한해 송가인은 콘서트는 물론 각종 광고, 행사, 시상식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활약했다. 무명 번데기를 벗고 날개를 펼친 송가인이 올해는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 펭수[사진제공=연합뉴스]▶연습생 펭수, EBS 아이돌 넘어 연예계 대세로EBS 연습생 펭수가 작년 하반기 인터넷을 강타했다. 펭수는 2019년 EBS에서 제작한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으로 남극에서 온 펭귄이다. ‘EBS 육상대회(이육대)’의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2~30대 성인층 사이에 인기가 높아졌다. 공공기관 출신인만큼 법제처, 외교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에 소환되는 등 독특한 행보를 보이면서도 ‘교육방송은 재미없다’는 틀을 깨는 센스 있는 유머코드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펭수는 발매되는 굿즈마다 완판 기록을 세우고, 2019년 대한민국 구글트렌드 ‘인물 및 펭귄’ 분야에서 10위를 했다. 2020년을 알리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이 되겠다”며 한국을 찾은 펭수, 올해도 기세를 이어갈지 궁금하다. ▲ 박나래[사진제공=연합뉴스]▶‘2019 MBC연예대상’ 안은 박나래, 2020년은? 박나래가 3수 끝에 ‘2019 MBC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오랜 기간 ‘나 혼자 산다’와, 새 예능 ‘구해줘 홈즈’를 안정적으로 이끈 공을 인정받았다. 박나래의 키는 149cm, 현역 개그맨 최단신이지만 ‘개그콘서트’, ‘코미디 빅리그’를 거쳐 대한민국 톱까지 오른 거인행보를 보였다.2017, 2018년 후보에 그쳤던 박나래는 마침내 상패를 안고 눈물을 쏟았다. 유쾌하고 편안한 입담과 안정적인 진행으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쾌조의 모습을 보인 박나래, 2020년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트와이스 모모(왼쪽)과 슈퍼주니어 김희철[사진제공=인스타그램]▶새해부터 ‘깜짝’.. 김희철♥모모, 슈퍼 아이돌 커플 탄생에 시선집중신정이 지난 바로 다음 날, 김희철♥모모가 폭탄을 떨어뜨렸다. 두 번째 열애설만에 열애를 인정하며 새해 첫 ‘아이돌 커플’이 됐다. 장수그룹 ‘슈퍼주니어’ 김희철과 최고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 모모의 조합은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를 오르내리며 큰 화제가 됐다.2019년 예능과 무대에서 눈부시게 빛났던 두 사람.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언제 사랑을 키웠는지 신기할 정도다. 축하와 탄식 속에서 공식커플이 된 두 사람이 새해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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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5
  • [뉴스 속 직업-TV뉴스 앵커]② 박광온·박영선·정동영·민경욱 등 국회의원이 되는 가장 확실한 길
    [뉴스투데이=이상호 전문기자] TV뉴스 앵커는 정당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회의원 후보 영입대상 1순위다. 앵커는 전 국민이 알아보는 인지도, 뉴스를 전달하면서 생긴 신뢰도와 호감도가 높기 때문에 치열한 경합지역에 공천을 할 경우 당선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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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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