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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공군 이야기 (18)]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③ 멘토가 된 대대장과 스나이퍼 스토리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리스트] 강원도 부대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고 좋은 점도 있었지만,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훌륭한 분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즉, 필자가 군생활 하는 동안 정신적인 스승으로 삼았던 선배 장교를 알게 되었고, 지금도 만나서 격의없이 지내는 동료 장교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후에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멘토가 되었던 분은 체감온도 영하 55도일 때 장교들에게 순찰을 지시했던 대대장, 그분이다. 이 분은 사관후보생(현재는 학사장교)으로 임관한 분으로서 이 분의 지휘 스타일은 처음에는 엄격하게만 보았다. 그러나 이 분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많이 배웠다.   훈련 후 중대원들과 함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진=최환종]   예를 들면, 어느 조직이나 ‘규정’이 있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까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데,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거나 애매한 경우에 일부 지휘관(또는 상급자)들은 결정을 유보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분은 본인이 가진 권한과 책임 내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주저없이 시행하는 성격이었다. “그것은 내가 책임진다. 시행하라.” 이런 식이었다. 물론 불합리한 것은 위에서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분이었다.   훗날 본인이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필자가 사관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과 더불어 나도 모르게 이 분의 지휘 스타일을 따르고 있음을 느꼈다.   ■ '정의'를 실천했던 군의관 장 대위, 지금은 명망있는 의사로 활약   친하게 지낸 장교 중 1명은 군의관인데, 필자가 군생활을 하면서 본 훌륭한 군의관 2인 중 한명이다. 군의관 중에 그렇게 직업의식(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책임감 있는 군의관은 거의 못보았다. 부대 군의관인 '장 모(某)' 대위는, 일과 중에는 군의관으로서 환자 진료에 충실함은 물론이고 가끔 버릇없는 병사들이나 복장 위반하는 병사가 있으면 현장지도는 물론, 불응하는 병사일 경우에는 헌병반장(중위)에게 얘기해서 잘못된 점을 시정토록 하는 ‘정의’가 살아있는 장교였다. 그러다보니 대대장도 당연히 군의관을 신뢰하였고, 우리들도 좋아했다.   군의관 ‘장 모(某)’ 대위는 일과 이후에는 늘 책을 보면서 공부를 했다. 이 분은 전역 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 00병원에서 중요 직책을 역임하였고 지금도 명망 있는 의사로 활약하고 있다. 필자는 군의관 ‘장 모(某)’ 대위와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인생의 선배인 그에게 여러 가지 많은 조언을 들었고, 룸메이트가 매일 저녁공부를 하니 필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영어 공부라던가 독서 등은 군의관 ‘장 모(某)’ 대위에게 받은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도 만나는 장교는 2명이 있는데, 두 장교 모두 학사장교 출신으로 단기장교로 근무했다. 한명은 필자와 동기급으로 인사장교였고, 다른 한명은 필자보다 1년 후배 기수로서 보급장교였는데, 서로 나이가 엇비슷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셋이서 같이 강원도 부대에서 같이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거친 환경에서 동고동락하면서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가끔 만나 골프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필자가 부대 배치받은 다음 해 봄, 부대는 공군작전사령부 전투태세 검열을 받게 되었다. 부대 특성상 작전분야를 제외한 부대원의 전투태세 검열 주 내용은 제식훈련, 총검술 등 기본군사훈련 과목이 주가 되었다. 당시 장교중에 필자가 가장 막내이자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라는 이유로 필자가 기본군사훈련 전 과목에 대한 교관 및 지휘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때 기본군사훈련 전 과목을 지휘하면서 부대 부사관 및 병사들과 많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약 한 달간의 준비를 거쳐서 드디어 검열 당일이 되었다. 검열대상으로 무작위 선정된 부대원들을 지휘하여 한 과목씩 무사히 진행해 나갔다. 3번째 과목이 되자 검열관은 필자를 보더니 “또 귀관이 지휘하나?” 하면서 씩 웃는 것이었다. 기본군사훈련 모든 과목 검열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사격 평가에 들어갔다.   ■ 스나이퍼 수준이었던 필자의 사격 실력, 총구에서 나가는 탄두 볼 정도로 시력 좋아   필자는 권총 사격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38구경 권총으로 사격을 실시했는데, 검열관은 그해 검열한 부대중에 필자의 사격점수가 가장 우수한 점수라고 얘기했다. 옆에서 사격을 지켜보던 부대장은 이 얘기를 듣자 얼굴이 환해지더니 그 자리에서 필자에게 특별휴가(4박 5일)를 주었다. 세상에! 난 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휴가라니! 검열관과 부대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검열이 종료된 후 필자는 오랜만에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뵈었다.   사격 얘기가 나왔으니, 그 당시 필자의 시력과 사격 성적을 잠시 얘기하자면, 거의 스나이퍼(Sniper) 수준이었고, 시력도 좋았다. 시력이 얼마나 좋았는가 하면, 중위때 필자가 사선에서 사격 통제를 할 때였는데, 타 장교가 권총사격 시 38구경 권총 총구에서 탄두가 나가는 것을 순간적으로 보았다.   권총 총구에서 탄두가 나가는 것을 본 것은 이때가 유일한데, 그 만큼 필자의 시력이 좋았다. (필자는 지금도 시력이 2.0이 나올 때가 있다.) 중위 때는 20대이고 공기 좋은 산속에서 생활했으니 시력이 매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초원에 사는 몽고 사람들의 시력이 어머어마하게 좋다는 얘기같이.   그리고 M-16 소총, 권총(38구경) 사격은 합격 불합격이 문제가 아니고 부대원 중에 누가 1등이냐 2등이냐를 다툴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표적지 한가운데에 담배를 붙여놓고 사격해서 순위를 정할 만큼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는 전역할 때까지 공군 지상사격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공군 지상사격대회 출전자는 무작위로 선발하는데, 필자는 그 무작위 명단에 선발되는 행운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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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3-19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8) 중대장 시절의 이기심,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지름길
    편안할 때에 위기를 생각하고(居安思危). 대비태세가 되어 있으면 근심이 사라진다(有備則無患), 선승구전(先勝求戰), 먼저 승리를 만들어 놓은 이후에 전쟁을 한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왕 도공(悼公)에게는 사마위강(司馬魏絳)이라는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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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3-03
  • [나의 공군 이야기](17)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② 추운 여름에 만난 '반면교사(反面敎師)', 선풍기 찾다 야전잠바 요구한 검열관
    ▲ 눈 쌓인 어느 따뜻한(?) 겨울. 선배 장교와 함께 [사진=최환종] 어느 일요일 아침 날이 밝지 않아? 밤새 내린 눈이 장교숙소 전체를 덮어[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초급장교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지역은 겨울철에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부임하던 날(4월 중순인데도), 마을의 시외버스 정류장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고 지난 회에 얘기를 했는데, 필자가 그곳에 근무할 당시 가장 눈이 많이 내렸던 기억은 따로 있다.두 번째 겨울의 어느 일요일 오전! 필자는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눈을 떴다. 그런데 아직도 창밖이 어두웠다. ‘아직 해가 안떴나?’ 하고 더 잤다. 한참을 자다가 다시 깨어서 창밖을 보니 아직도 어둡다.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시계를 보니, 시간은 낮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장교숙소 현관으로 가보았다. 순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이 장교숙소 지붕을 덮고, 숙소 현관도 눈이 쌓여 밖으로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상황실에 전화를 해서 눈이 얼마나 왔는지 확인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장교숙소(1층 건물) 전체를 눈이 덮을 정도니 적설량이 최소한 1.5 m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전부대가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영내에 있는 전 병사는 이미 부대내 제설작업(주요 통로 개척작업 위주)을 하고 있었다.   1.5m높이로 쌓인 눈을 삽으로 치우며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 길을 뚫어  그날 장교 숙소에는 필자와 야간 근무를 한 장교 1~2명이 있었는데, 상황실에서는 제설작업에 치중하다보니 필자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의 통로개척 제설작업이 시작되었다. 장교숙소와 내무반 사이의 거리는 대략 농구장 두 개 정도의 거리였는데, 이 거리를 삽으로 제설작업(폭 1.5 미터 정도의 통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병사 두어 명이 비교적 눈이 적게 쌓인 지역을 돌아와서 장교들과 합류 후, 제설작업을 했다. 내무반쪽과 장교숙소 쪽에서 각각 눈을 퍼내며 통로개척 제설작업을 하는데 약 3 ~ 4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도 바람은 불지 않았고, 삽으로 눈을 퍼내다보면 땀이 나서 야전상의를 벗을 정도였다.   제설작업 중간에 눈구덩이(정확히 표현하면 양 옆으로 눈이 어른 키만큼 높이 쌓인 통로 속)에 앉아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었다. 쉬면서 건빵과 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다. 에스키모인들이 이렇게 살았을까? 그리고 드디어 양쪽에서 눈 치우던 병사들과 서로 만났다. 매일 보는 병사들인데도 얼마나 반갑고 흐뭇하던지. 병사들과 진한 전우애를 느꼈다.   강추위와 제설작업 등으로 힘겨웠던 경험은 지휘관의 소중한 자산돼돌이켜보면, 그 당시 겪은 추위, 눈 등은 그때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그때 겪은 추위나 제설작업, 식수 문제 등 여러 가지 경험은 필자가 이후 부대를 지휘할 때 정말 귀중한 자산이 되었는데,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을 때의 작전수행, 또는 부대원들의 애로사항이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한 예이다.요즘 TV에서 가끔 “시베리아(또는 알래스카)에서의 생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나서 출연자의 고통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 당시에 그런 추위와 눈을 경험한 결과, 요즘은 일기예보에서 “금년들어 첫 강추위! 오늘 최저 영하 10도!” 이렇게 얘기를 하면, 속으로 웃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봄날이네!”. 물론 필자가 체감하는 온도는 춥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영하 10도는 추위도 아닌 것이다.겨울의 추위가 어느 정도 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부대내 BX(육군은 PX라고 한다)는 인행계장 소관인데, 친하게 지내던 인행계장이 어느 날 이런 푸념을 하는 것이다. “BX 창고에 있는 소주가 모두 얼어서 터졌어...” 당시 소주 도수는 24도로 기억한다. 24도라면 왠만한 추위에는 얼지 않을텐데, 얼마나 추웠으면 소주가 얼어서 소주병이 터졌을까. 대단한 추위였다.    여름에 찾아온 공군본부 검열관, 선풍기 찾다가 야전잠바 요구해 부대사정도 모르고 검열하겠다는 상관은 존중받을 수 없어기상에 따른 에피소드는 한가지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아마 둘째 해 여름으로 기억하는데, 8월의 어느 여름날, 공군본부에서 검열팀이 온다고 연락이 왔다. 인근 비행장을 거쳐서 필자의 부대로 오는데, 헬리콥터 편으로 온다고 한다. 헬리콥터로 온다는 것은 헬기 운용이 가능한 ‘양호한 기상’이라는 얘기다. 그날 기상은 보기 드물게 맑은 날씨였고 시정은 매우 양호했다. 바람도 구름도 없었고. 따라서 제 3자가 보았을 때 경치가 매우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8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야전상의를 착용하고 있었다.중령이 선임자인 검열팀은 대대본부에 도착하여 상황실에서 부대현황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도중에 검열관이 이렇게 얘기한다. “너희들은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근무하니 좋겠구나!” 자기들은 격려한다고 한 것 같은데, 우리들은 순간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부대는 1년 중 안개일수가 80% 이상이고, 부대 업무의 많은 부분이 추위와 자연과의 싸움인데, 날씨 좋은 날 헬기를 타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 정도라니.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당신들도 여기 일주일만 있어보시오. 그런 얘기가 나오나!’브리핑 이후 복도에서 우연히 필자를 만난 검열관은 “중위! 날씨가 더운데 선풍기 없나?” 하는 것이었다. 하긴 자기들은 무더운 여름날에 인근 비행장에서 있다가 왔으니 더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부대는 한여름에도 야전상의를 입고 다니는 부대인데, 선풍기가 있을리 없다. 필자는 “부대에 선풍기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그러자 검열관 왈 “어떻게 부대에 선풍기도 없나? 형편없는 장교구만!” 표현을 점잖게 해서 그렇지 검열관의 말투는 필자를 경멸하는 욕설이 섞인 말투였다. 황당했다. 공군본부에서 올 정도면 예하부대 사정을 잘 알고 올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하다니.......한 시간 정도 후에 다시 그 검열관과 마주쳤다. 그리고 필자에게 묻는다. “중위! 야전잠바 없냐?” 이번에는 추운가보다.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그때 그 ‘검열관’들의 언행은 필자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고, 이후 필자는 타군 또는 타부대 검열을 가거나 지휘순찰을 갈 때 절대 그런 ‘무책임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장교, 부사관들에게도 그 얘기를 들려줬다. 그런 ‘무책임한’ 언행을 하지 않도록.   틈틈이 공부했던 영어가 많은 도움이 될 줄은...한편, 부대로 숙소를 옮긴 이후, 퇴근 이후에는 몇 백 미터 떨어진 숙소에 가서 생활을 하니 저녁에 가용시간이 많이 남았다. 물론 주말에는 가끔 인근 도시에 가서 목욕도 하고 밀린 빨래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부대로 복귀했지만, 타부대로 이동할 때까지 주로 부대 내에서 생활했다. 그 부대에서 근무기간은 거의 3년이었고, 그중 2년여는 부대 장교숙소에서 생활했다.장교숙소에서 거주한 기간에는 일과 이후에 비교적 책도 많이 보았고, 영어 공부도 했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 강의 같은 좋은 교보재가 없던 시절이라 영어 공부는 예전에 보던 영어 참고서, 영어 회화 카세트 테이프 등을 이용해서 공부를 했다. 그때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때 틈틈이 공부하며 기초를 닦은 것이 후에 많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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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2-27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7) 화천 만산동 계곡의 '취약지 상주훈련', 의기에 찼던 그 시절
    ‘무소불비 무소불과(無所不備 無所不寡)’와 ‘피실격허(避實擊虛)’는 선택과 집중, 집중과 절약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의미, 평시 심심산골 취약지역에 침투간첩의 은거/활동 가능 때문에 취약지관리 필요, 행군 간 계곡 및 벼랑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 고개길에서의 휴식 회피, 장거리 행군에 따른 허기 때문에 미숙한 야전취사로 인한 설익은 밥도 꿀맛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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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2-27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5) 유격훈련 중 찾아온 잔인한 불청객과 신부된 정훈장교의 축복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간부들의 일년 365일 중 퇴근 날은 약 150일, 힘들고 어려운 근무 여건…심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자신감을 배양하는 유격훈련의 의미…잔인한 4월에 찾아온 죽음의 불청객은 결국 심장마비 훈련병을 데리고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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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31
  • [나의 공군 이야기](16)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생활① 영하 55도에서 소변이 어는 방식을 실험하다
    ▲ 겨울철 어느날, 부대 주변 계곡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선택한 '마을 자취', 음주 잦아져독서와 자기개발 위해 부대안 장교 숙소로 이사[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자대 배치 후, 필자는 부대에 인접한(인접했다고 하지만 부대에서 마을까지는 트럭으로 40~50분, 걸어서 3~4시간 거리이다) 마을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사관학교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다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으니 굳이 부대 안의 장교 숙소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지만, 일과 이후에는 부대를 벗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자취를 선택했다. 그러나 마을에 살다보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어려웠다. 퇴근 후에는 선배 장교들이나 중대원들과 어울리는 횟수가 많았고, 이들과 어울려서 음주 또는 당구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내 생활이 없다시피 했다.자대 배치 후 6~7개월 정도가 흐른 시점에서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지? 매일 술이나 마시고...’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되겠다. 부대로 숙소를 옮겨서 퇴근 후에는 책도 보고 공부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부대장의 허락을 얻어, 며칠 후에 부대 안의 장교숙소로 짐을 옮겼다.부대안의 장교숙소는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부대는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때로는 저산소증(Hypoxia)이 생긴다고 할 정도로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다. 난방이나 급수 문제는 오히려 병사들 내무반이 더욱 좋았다. 여기서 잠깐 그 지역의 기후를 얘기하면, 겨울은 9월말에 시작해서 다음해 5월 중순까지 지속된다.즉, 9월 말 정도에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한겨울에는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 내외다. 거기에 강풍까지 불면 체감온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뚝 떨어진다. 그리고 5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 정말 기나긴 겨울이다. 돌이켜보면 강원도 부대에서의 생활은 추위나 눈, 강풍 등을 비롯한 자연과의 싸움이 가장 컸다.부대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안개(산 밑에서 보면 구름)가 많았고, 이런 환경이다보니 늘 습기가 많았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신선들이 구름속에서 살고 또 구름을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구름속에서 사는 것이 무슨 신선놀음을 하는 줄 안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이다. 안개(산 밑에서 보면 구름)가 많은 지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습기와의 싸움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숙소내부와 피복류는 늘 눅눅하고, 장비(특히 전자 장비) 관리에도 엄청 많은 신경이 쓰인다. 사람 몸에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장교 숙소는 병사 내무반보다 시설이 열악그래서 일부 24시간 운영부서에서는 1년 내내 경유 난로를 가동(난방 및 습기 제거 목적)했고, 또 겨울이 일찍 시작하는 관계로 9월부터는 부대 전체가 난방을 시작했다(때로는 8월 말부터도). 물(식수 및 생활용수)도 부족했다. 지하수 또는 지표수를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기간에 한번씩 제한급수를 하는 여건이었고, 장교들도 개인별로 양동이 한 개에 물을 받아서 일주일 정도를 사용했다. 이 물로 식수 및 세면을 하는데 이용했다.화장실의 경우 수세식 화장실은 있으나 물이 부족한 관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대부분 야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겨울철에 야외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또다른 고통이었다.또한 그곳은 여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8월 한여름의 일주일 정도(서울에서 폭염이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영상 10도 내외에 안개가 끼어 있을 때가 많아서 체감온도는 낮았고, 그래서 여름철에도 늘 야전잠바를 입고 생활해야 했다. 온수 공급은 거의 없었기에 한여름에도 샤워를 하려면 30분 정도 운동을 해서 신체 온도를 높인 후에 해야만 했다.따라서 겨울철은 물론이고 한여름에도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 후, 끓인 물을 찬물에 섞어서 냉기만 겨우 없앤 물로 머리를 감던가 제한적인 샤워를 해야했다. 혹자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반문한다. 공군에도 그런 부대가 있느냐고.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군에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을 가진 부대가 있었다.고지대에 위치해 체감 온도 55도로 떨어지기도추운 날씨와 관련해서는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가장 추웠던 날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즉, 두번째 겨울의 어느 날 아침! 상황보고 시간에 기상파견대장(상사)이 그날의 기상을 보고한다. “대대장님! 현재 기온은 섭씨 영하 35도, 풍속 25~30노트! 따라서 현재 체감온도는 영하 55도 이하입니다.”영하 55도라는 수치도 체감온도 환산표에서는 더 이상 환산할 수 있는 데이터(섭씨 영하 35도, 풍속 25~30노트)가 없기에 환산표에 있는 최저치인 영하 55도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즉, 실제 체감온도는 더 낮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말에 모두들 눈이 동그래진다. 이 부대 창설 때부터 근무했다는 부사관도 이런 추위는 처음이란다. 이에 대대장이 지시한다. “현 시간부로 초병 등 최소 근무자를 제외하고 건물 밖 출입을 금지한다. 단, 장교들은 2명씩 조를 편성해서 야외 순찰을 실시해서 혹한에 따른 피해가 있는지 또는 피해가 예상되는지 확인하라!”영하 55도라! 생전 처음 듣는 수치에 기가 질렸다. 그러나 대대장님의 지시인데 즉각 이행해야지. 장교들은 조를 편성해서 부대를 돌아보았다. 한편 필자는 순찰에 앞서서 전투복 안에 겨울 내의는 물론이고 체육복까지 껴입고, 방한모에 스키 파카(뒤집으면 흰색인 겨울 위장용 파카인데, 보온기능은 없다고 봐야 한다)까지 입고 순찰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영하 55도의 위력은 대단했다. 건물 밖을 나선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도 뼈속까지 추워지는 느낌이 온다. 춥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이런 세상에...순찰돌던 선배장교와 함께 '소변 실험' 실시, 만화책의 '오류' 확인아무튼 부대를 한바퀴 돌아보고 이상유무를 확인한 후에 대대본부로 향했다. 이미 몸은 걸어다니는 ‘동태’ 수준이다. 북극이나 남극 탐험가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대략 상상이 갔다. 그러나 이러한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머릿속에 반짝하는 것이 있었으니, 어릴때 만화책에서 보던 장면이 생각났다. 즉, 극심하게 추운 곳에서 소변을 보면 소변을 보는 순간 얼어붙는 장면이었는데, 같이 순찰을 하던 선배 장교에게 제안을 했다. “0중위님! (소변 보는)실험 한번 해볼까요? 순찰도 끝나가는데!” 같이 있던 선배 장교는 킥킥 웃으면 그러자고 했다. 체감온도 영하 55도, 야외에서 소변을 보면 언제부터 얼기 시작할까?실험 결과 소변은 땅에 떨어지면서 얼기 시작했다. 즉, 몸에서 배출될 때는 체온 때문에 얼지 않다가 땅에 닿으며 튀는 순간 얼음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만화책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영하 55도의 고통은 잊고 서로 웃고 있었다. 한편, 장교숙소의 난방은 전기히터로 천장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24시간 가동되는 것이 아니고 일과 이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한번에 1~2시간씩 두세번 가동하는 식이었다. 건물의 외벽이 얇아 단열효과는 거의 없어서 히터 가동이 끝나면 방안의 온도는 빠르게 내려갔다.밤새 추위에 시달리다 따뜻한 병사 내무반으로 달려가그런데, 그마저도 히터 가동이 안 될 때가 있었으니 그때는 야외 혹한기 훈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환경에서 잠을 자야했다. 즉, 외부에서 공급되는 전기가 강풍 등으로 중단될 때가 있는데, 이때는 부대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여 부대 내에 전기를 공급한다. 그러나 장교숙소는 전기공급 우선순위가 가장 낮아서 상황에 따라서는 전기 공급이 안 될 때가 있었고, 그럴 때는 전기히터 가동도 안되고 전기장판도 작동이 안되니 자다가 추워서 잠을 깬다.새벽녘이 되면 실내 온도는 거의 영상 2~3도 정도로 떨어진다. 추위가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때 많이 경험했다. 기상 시간이 되면 몸은 웅크려져서 마치 거북이가 손, 발, 머리를 자기 몸 안에 넣고 있는 그런 형태가 된다. 24시간 난방이 되는 병사 내무실에 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럴 수는 없고, 빨리 출근 시간이 되어서 사무실에 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음에 계속)·예비역 공군 준장·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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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1-29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4)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굼벵이의 '구르는 재주' 발견
    ▲ 군부대 내 노후 된 막사 외부의 주변환경(좌측)과 당시 생활관 내부의 유일한 보온시설 이었던 페치카 화구안에 조개탄을 넣는 모습 [사진자료=3사단/김희철] ‘생자필멸(生者必滅),거자필반(去者必返),회자정리(會者定離)’는 세상사의 진리 사단 구원투수로 칭찬받았지만 전출간 친구의 빈자리는 허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부재자 투표가 끝나고 정상적인 부대운용으로 돌아오자 사단에서는 GOP교대 준비 지시가 하달되었고 연대는 GOP투입전 교육을 시작했다.필자가 속한 대대는 예비로 지원임무가 하달되었고, 신원조회가 통과된 일부 간부 및 병사들은 GOP투입부대의 인원보충을 위해 전출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접 10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동기 고(故) 한황진 대위([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35) ‘호국보훈의 길에도 통하는 미스트롯을 키운 힘’ 참조)는 GOP투입 대대로 떠났다.생자필멸(生者必滅, 산 사람은 반드시 죽고),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정한 이치이다)라는 명언처럼 “모든 것이 무상함을 뜻한다”는 법화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부재자 투표로 늦어진 GOP투입준비 때문에 공식적인 환송회식도 못하고 그를 아쉽게 떠나 보내야 했다. 승리부대 전입동기로 2년전 GP장 시절부터 정도 많이 들었는데…, 적과 대치하는 GOP중대에서 건강하게 근무 잘하고 기회가 되면 침투하는 간첩을 잡아 영웅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그가 떠난 지 일주일이 되자 다른 대대는 GOP투입 준비에 바쁘게 보내고 있었지만 필자가 속한 대대도 전투준비 및 부대관리에 대한 사단 감찰검열이 있어 정신이 없었다.다행이도 새롭게 보강된 대대작전장교 지동수 소령(전 사단교육장교)이 치밀하고 깐깐하게 준비했고, 대대장의 명확한 지도가 있어 수감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감찰참모가 검열결과 강평시 구원투수로 부임해 나름의 역할을 한 작전장교와 보직 해임된 중대에서 몸부림을 쳤던 필자를 칭찬해주어서 보람을 느꼈으나, 왠지 GOP투입부대로 전출 가버린 인접 중대장 동기생의 빈자리가 너무도 허전했다.‘상호 현상태보존' 원칙을 안지킨 막사는 폐허 수준 문제병사 전입 많아 180명으로 늘어난 중대원 관리에 난감드디어 GOP부대 교대가 이루어졌다. 중대는 대성산 전방에 위치해 유격장을 담당했던 부대에서 예비임무인 적근산 후사면의 좁고 깊은 골짜기 지역으로 이동했다.부대교대는 많은 에피소드를 낳는다. 상급 부대에서는 부대교대 원칙인 ‘상호 현상태 보존 후 인원만 이동’을 강조했다. 이것은 노후 된 막사 생활을 위해 시설을 보강하고 소소하게 설치했던 편의시설과 부착물들을 그대로 남겨놓아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방지하자는 지침이었다.그러나 교대전에 지휘관들은 사전 협조회의에서 이 원칙을 준수하기로 상호 약속하지만 부대원들은 새롭게 이전한 부대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모두 떼어갔다.따라서 상호교대 후에 지휘관들은 교대전 좋은 관계에서 교대후에는 서로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시에도 부대 이동후 인수한 막사에 들어서니 거의 폐허 수준이었다. 이른 봄의 문턱에서 기온은 약간 올라 낮 양지녁에는 따사하지만 밤이 되면 전방 골짜기의 삭풍은 막사안에서도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중대원들은 1~2년 뒤에 또 이동할 막사이지만 내 집으로 생각하고 정리를 시작했다.마치 신축 건물에 입주한 것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보강해야 했다. 전방의 봄은 오히려 겨울보다 더 춥다. 그래서 창문에 바람 막는 문풍지도 붙이고 당시 유일한 보온 수단이었던 페치카도 보수하는 등 분주하게 편의시설을 보강했다.그러던 중 부대원이 하나 둘 씩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GOP투입은 하였지만 추후 신원조회가 불분명하거나 사고뭉치로 판단된 병사들이 GOP에 적응을 못하고 예비인 필자의 중대로 전입오기 때문이었다. 지난 사단의 감찰검열 이후 연대에서는 부적격이나 GOP근무에 회의를 품은 병사들까지 타 중대도 있는데 모두 필자의 중대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소대장과 선임하사관들은 전입 면담부터 이러한 문제사병 관리에 짜증을 내고 있었고, 연대에서 중대장인 필자를 믿고 맡기는 것도 좋지만 이런 전입자를 포함한 중대원이 180명까지 늘어나자 시설도 부족하고 신상 등의 부대관리에도 부담감이 늘어나 난감할 지경이었다.▲ 중동부전선 GOP철책과 우측, DMZ 에서 국군장병들이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는 모습 [사진자료=국방부] 폭우로 전방 GOP철책 150m가 전도되어 경계에 취약점 발생GOP근무 '부적격 병사'가 맹활약해 공사기간 단축에 기여 부적격 병사는 '구르는 재주' 가진 굼벵이어느덧 여름이 되어 폭우가 일주일 동안 쏟아지자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더 중차대한 임무가 부여되었다.퇴근 후 관사에서 모처럼의 휴일을 즐기던 일요일 밤에 군용 전화벨이 힘차게 울렸다. 중대 막사는 관사에서 약 3분 거리로 인접해 있어 전화가 뜸했는데 그것도 밤에 걸려온 전화라 급박한 위급상황이 발생했는지 걱정이 되었다.“나 연대장인데, 9중대장 지금 쉬고 있지?”하며 연대장이 대대장도 아닌 중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동안의 폭우로 전방 GOP철책이 대규모로 전도되어 다음날 아침에 중대원들을 인솔하여 GOP 철책복구를 위해 투입하라는 지시였다.필자는 연대장 통화가 끝나고 바로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대장도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소대장들을 비상소집 시키고 중대로 들어갔다. GOP 철책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원이었다. 중대원의 3분의 1이 새로이 전입 온 GOP 근무 부적격자로 실제 투입가능한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보안부대 담당관은 부적격자들을 모두 제외한 인원들만 투입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어쩔 수 없이 투입지역에서 근무하다 전입 온 병사와 면담을 했다. 보안부대 담당관의 이야기처럼 그가 변심해서 월북이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하지만 이 병사를 제외하고 투입할 때에는 그는 중대원들에게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도 그 병사는 자신을 꼭 데리고 가달라고 건의했다. 그 지형도 잘 알고 있으며 동기들도 많이 있어 이번 공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간청했다. 소대장들도 그 병사가 중대 전입 후 생활을 잘했다며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했다.결국 “중대장이 직접 관리하면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보안부대 담당관을 강력히 설득하여 투입인원에 포함시켰다. 밤새 공사도구를 점검하여 부족분은 연대에 건의하고 GOP 지역에서는 3인조 행동을 하는 원칙준수를 위해 조편성도 마쳤다.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에 연대에서 지원 나온 트럭을 타고 출발했다.공사지역에 도착에서 숙영준비부터 했다. 마침 그 지역은 필자가 DMZ 에서GP 장으로 근무했던 곳으로 작전시 늘 다니던 익숙한 지형이었다. 그곳은 위의 좌측 사진 같이 경사진 곳으로 GOP 철책 150미터 정도가 폭우에 쓸려 내려가 흔적도 없었고, GOP중대에서 경계병을 촘촘히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숙영지 편성 중에 공사용 철책들이 도착했다. 현장지도 나온 연대장은 “최대한 빨리 철책을 설치하는데, 2주내에 완료하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전도된 GOP철책 지역으로 간첩이 침투하거나 변심한 인원들이 월북하기에 용이하다는 취약점이 있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 같다.중대원을 2개 팀으로 편성해서 양쪽에서 동시에 시작하기로 했고 철책설치조, 시멘트비빔조, 운반조, 기타 지원조로 편성했다. 물론 GOP중대의 경계병 외에 일단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탄을 휴대한 상태로 자체 경계조도 배치했다.쏜 화살처럼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있었다. 소대장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야간 작업을 건의했다. 보안부대 담당관이 "야간 작업은 병력관리에 특히 위험하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주간작업만 하는 것은 연대장의 조기 공사완료 지침을 해소하기에는 안일한 조치 같아 야간 작업을 감행했다.곳곳에 횃불을 만들어 대낮같이 밝힌 상태에서 중대원들은 참으로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고 필자는 중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특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속담처럼 GOP근무 부적격자로 낙인찍혀 중대에 전입왔던 그 병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GOP 소대에서 근무용 간식인 라면과 빵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도구 등을 확보해 중대원들에게 나눠주며 그 누구보다도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녀 중대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처음에 연대장이 2주로 공사 기간을 한정했던 것 보다 4일을 단축시킨 10일 만에 완료되었다. “남아(男兒)는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말처럼 굼벵이(?)까지 포함된 중대원들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정확히 129m, 43칸의 철책설치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 겸임교수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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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23
  • [나의 공군 이야기](15) 초급장교 생활① 희망을 품고 부임한 첫 임지에서 깨진 고정관념들
    ▲ 소위 시절, 복장을 보니 8월 한여름에 촬영한 사진 같다 [사진=최환종]강원도 첫 임지로 가는 길에 대설 만나 시간 지연 무슨 일이 생겨도 시간 엄수? 군대도 사람 사는 곳[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이란 우연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이제까지의 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이끌려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일까?” 첫 임지에서 3년간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 필자에게 주어지게 될 많은 임무와 연관이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작전사령부에서 보직을 부여 받은 후, 필자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임지로 향했다. 그해 4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필자는 전투복 차림에 무거운 군용 잡낭(Duffle bag. 아마도 ‘f’ 발음이 어려웠던 사람들에 의해서 ‘더블백 또는 따블백’으로 불려왔던 것 같다)을 들고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강원도 00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작전사령부에서 발급한 부임증에는 ‘00년 0월 0일 20시까지 00부대에 부임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그날 서울은 약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시외버스 안에서 졸다가 밖을 보니 주변이 온통 흰색이었다. 순간 ‘강원도는 비가 흰색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잠을 깨고 다시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에! 4월 중순인데 눈이 오다니.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 남들이 잘 모르는 공군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흥미진진한 ‘나의 공군 생활’이 ...잠시 더 졸다가 눈을 떴는데, 버스가 서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 무슨 일인가 하고 상황을 보니, 고속도로 제설 작업이 지체되어서 차량들이 제자리에 서있는 것이었다. 거북이 걸음으로 버스가 운행하다가 중간 휴게소에 들렀다. 이미 시간은 18:00. 이런 운행속도라면 부임증에 적혀 있는 20시까지 부대에 도착은 어림도 없다.공중전화로 부대에 전화를 걸어서 “신임 소위인데, 눈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20시까지 갈수 없다‘고 얘기를 했더니 상대방은(누구였는지, 계급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걱정하지 말고, 부대 근처 마을에 오면 전화하란다. 생도 4년간 ’시간 엄수‘를 철저히 교육받고 생활화했던 필자는 너무 여유 있는 대답에 잠시 적응이 안되었다.눈은 계속 내렸고, 거북이 걸음으로 가던 버스는 마침내 부대 근처 마을의 작은 버스 정류장에 멈췄다. 그때 시간이 대략 21:30. 눈은 무릎까지 쌓여 있었다. 부대에 전화를 해서 지금 도착했다고 하니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부대로 출근하란다. 당시 필자로서는 이해가 안되었다. 군(軍)은 시간엄수가 생명인데 이렇게 해도 되나???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그날 밤에 부대로 갈 수 없음을 확인한 필자는 마을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여관을 찾아 짐을 풀었다. 그런데 여관 주인이 양초를 하나 준다. 정전이 되었으니 방에 촛불을 켜라고. 마을 도로에는 가로등이 켜 있었는데, 이 여관만 정전인가보다. 다시 60년대 시골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4월 중순에 내리는 눈, 부임시간에 별 관심 없는 부대원, 여관에서 주는 양초 등등... 신임 장교의 눈에는 많은 것이 신기했다.모두 '엄한 상급자'? '자상한 ' 중대장도 있어여관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필자가 배치받은 부대의 중대장(즉, 필자의 직속상관)이라 하면서, 00다방에 있으니 나오라고 한다. 직속상관 명령인데 즉각 나가봐야지. 재빠른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고, 00다방에 가서 중대장을 만났다. 중대장 얘기인 즉, ‘오후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퇴근 버스 운행이 중지되었고, 중대장은 필자가 오늘 부임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필자를 만나기 위하여 걸어서 퇴근했다’는 것이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상급자는 엄한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분이 있다니. 이래저래 그날은 필자의 ‘공군에 대한 관념’이 바뀌어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리고 중대장이 필자에게 묻는다. ‘최 소위! 맥주 한잔 하겠나?’. ‘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은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부대로 가는 트럭(정확히 표현하면 트럭과 버스를 합한 그런 형태다)을 타고 부대로 향했다. 전날 확인한 사항이지만 부대는 마을과는 꽤 떨어진 곳에 있고, 마을에는 부대원 가족들이 거주하는 군 아파트가 있을 뿐이었다.부대에 도착했다. 같은 중대의 선임장교가 대대본부에 가서 신고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대대본부가 어떤 건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건물이 창고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부대는 전시(戰時)에 이동을 하는 부대라 모든 건물을 조립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사관학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사항들이다. 더구나 필자는 비행단은 가봤어도 이런 소부대는 가본 적이 없기에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무튼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출발하면서 놀라움의 연속이다.전자장비 관련 보급이 첫 업무, 영관급된 후 그 가치 깨달아혈기왕성한 신임 소위가 소부대에 가자마자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이 부대는 전자통신 관련 부대로서, 지상전투가 아닌 ‘첨단 전자장비’를 운용하는 것이 주임무인 부대에서 신임소위는 작은 부서의 ‘관리자’였을 뿐이다. 필자에게 처음 1년 간 주어진 임무는 전자장비와 관련한 보급 업무였다. 처음에는 보급 업무가 대단히 따분하고 ‘나는 통신 장교인데, 이런걸 왜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훗날 영관 장교가 되면서 이때의 보급 업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보급 업무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필자에게 대단히 도움이 되었다.특히 중령 진급 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할 당시, 연합작전계획을 공부하면서 전쟁수행에서 ‘군수(보급)’의 비중이 엄청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수업무를 경험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군수(보급)의 개념을 이야기하면 ‘의식주 정도를 지원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큰 그림에서 볼 때 ‘군수’는 실로 어마어마한 개념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전쟁 = 군수’라고 할 정도다.한편 부임 후에 필자에게 주어진 중대장의 첫번째 지시사항은 ‘관련 규정’부터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규정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술 잘먹는 장교가 일도 잘한다"는 속설이 군림하던 시절한편, 사관학교 4년간 술, 담배 등을 하지 않았던 필자는 임관 이후부터 술을 배웠다.사관학교에서는 3금(禁) 제도가 있는데, 이에따라 생도생활 4년간 세가지(술, 담배 등)는 금지사항이다. 그러나 담배는 배우려 해도 몸에서 받지 않았는데, 담배를 배우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술도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담배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하지 않는가.그 당시 분위기는 ‘술을 잘 마시는 장교가 일도 잘한다’는 다소 억지스런 주장이 인정되던 때였다. 필자도 일과 이후에는 마을에서 선배 장교들과 ‘누가 누가 술을 많이 마시나’ 하는 경쟁을 벌이다시피 했다. 어떤 면에서는 강원도에서의 초급장교 시절이 필자의 군 생활 기간 중 가장 마음 편할 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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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20-01-20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3) 정치적 중립 고민속에서 체험한 '기쁨', 겨울아이와 선거혁명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배워왔던 필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 부대별로 지지도 확인하여 해당 지휘관의 지휘능력 평가에 반영, 민병돈 장군의 정치적 중립 처신은 반전되는 재평가 받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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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8
  • [나의 공군 이야기](14) 중등비행훈련의 '뼈아픈' 기억과 개인적 미숙함
    ▲ 1년 전, 팔라우(Palau) 상공에서! 바다색이 환상적이다. 중등비행 훈련때 광양만 상공에서 보았던 남해 바다도 깨끗하고 환상적인, 연하고 투명한 에메랄드색이었다. [사진=최환종] 즐거웠던 초등 비행훈련과 달리 '긴박했던' 중등비행훈련[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초등 비행훈련 중반 이후에는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즐겁게 비행훈련을 즐겼는데, 중등비행훈련 입과해서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더위가 한창인 어느 여름날, 중등 비행훈련에 입과했다. 오전에 00 비행단으로 출발할 때는 모두들 자신감 있고 활기찬 분위기였는데, 이상하게도 비행단에 다가오면서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비행교관들의 우리를 맞이하는 분위기도 초등 비행훈련 대대와는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숙소를 배정받고 다음 일과를 준비했다.다음날, 기본적인 행정 처리와 더불어 정밀 신체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술교육! 공부해야 할 양이 초등비행훈련에 비해서 두세 배 이상 많아진 것 같았다. 암기해야 할 것도 많고. 당시 중등비행훈련은 ‘T-37C’ 라는 쌍발 제트엔진 항공기를 사용했다. T-41B 와 가장 큰 차이점은 엔진이 제트 엔진이라는 것이다. 항공기 시스템도 복잡했고. 항공기 외부점검은 물론 조종석 내부점검, 시동 절차 등 이륙하기 전의 기본적인 절차도 T-41B 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복잡했고 공부할 것도 많았다.고3때 만났던 선배 생도를 반갑게 해후, 신분은 '비행교관'소정의 학술교육 기간이 끝나고 첫 비행하는 날이 왔다. 중등훈련에서 첫 비행할때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미 초등훈련을 거친 이후라 자신있게 첫 비행에 임했다. 한편, 첫 비행에 배정된 교관은 안면이 있는 분이다. 다름아닌 고교 3학년때 ‘주말에 사관학교를 안내해줬던 그 생도’가 비행교관(중위)으로 와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러나 고교 선배라고 마냥 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항공기 시동을 걸고, 유도로(taxi way)에 진입하는데, 교관은 필자에게 적정 속도를 맞추어 활주로까지 taxi(항공기가 이륙 직전 또는 착륙 직후에 활주로에서 천천히 달리는 것을 말함)를 해보라고 한다. 이정도쯤이야 하고 생각하며, 자신있게 대답하고 taxi way에 진입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유도로 상에서 방향유지가 잘 안되었다. 교관이 쳐다본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지상에서 taxi 하는 방법이 T-41B와 약간 다른데 필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륙 후 훈련공역에 도착해서, 비행교관은 나에게 마음대로 비행기를 조종해 보라고 한다. 마음대로 조종해봤자 기본적인 상승, 강하, 선회 등등인데(실속 등등의 과목은 아직 비행기 특성을 모르니 함부로 못했다), 수평선회를 할 때 고도계가 마구 요동을 친다. 필자는 기종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니 아직 익숙하지 않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잠시 후, 교관이 어떤 기동을 보여줄까 묻기에 루프(loop, 공중회전) 기동을 보여 달라고 했다. 교관은 필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루프를 하였다. 5~6G 정도의 중력 가속도가 몸에 가해지는 것을 버티면서 말로만 듣던 루프를 체험했다. 첫 비행은 나름 뿌듯한 기분으로 마치고 돌아왔다.건강에 문제 생겼지만 제대로 대처 못해 아쉬워 한편, 중등비행 훈련에 입과할 즈음해서부터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휴가 기간에 뭘 잘못 먹었는지, 아니면 훈련 비행단이 바뀌면서 마시는 물이 몸에 맞지 않았는지, 중등비행훈련 입과 이후에 계속해서 위장(胃腸)이 좋지 않았다. 식사 후에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잦았고, 의무대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고교 3학년 때도 위염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었는데,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위장(胃腸)이 좋지 않으니 답답했다.자연스레 학술교육 집중도가 떨어졌고 체력도 떨어짐을 느꼈다. 위장은 이후에도 가끔 문제를 일으켜서 업무에 힘들 때가 있었다. 특히 지휘관 임무를 수행할 때 주로 발생했다. 신경성인가? ... 지금 같으면 비행교관에게 건강 문제를 얘기하고 비행차수를 연기해달라고 건의한다던가 집중 치료를 받는 등의 조치를 강구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비행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했을텐데, 그때는 그렇게 할 생각을 못했다. 돌이켜보면 답답한 상황이었다...T-41B와 T-37C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중등훈련 초기에 적응하기에 조금 어려웠던 것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었다. 처음 착용하면 약간의 고무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에도 적응을 해야 하고, 약간의 공중기동을 하면 호흡이 가빠질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심호흡하기가 다소 불편했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다.한편, 요즘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당시에는 훈련 상태가 교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로 물리적인 스트레스(당시 군복무를 했던 대한민국 남자들은 ‘물리적인 스트레스’가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가 많이 가해졌다. 중등훈련 당시에 ‘물리적인 스트레스’가 심할때는 며칠 동안은 조종석에 앉을 때마다 정말 조심해서 앉아야 했다. 전투조종사(또는 제트 훈련을 받는 학생 조종사)가 조종석에 앉을 때는 낙하산을 메고 앉는데, 이때 좌석에는 방석같은 사각형의 두툼한 물체를 깔고 앉는다. 조종석의 '생존키트'가 물리적 스트레스 되는 아이러니이 두툼한 물체는 생존키트(Survival kit)로서, 그 안에는 비상탈출시 생환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무전기, 비상식량, 신호탄 등등)이 들어있고, 이 생존키트는 낙하산 하네스와 연결되어 있어서 비상탈출시에 조종사가 땅(또는 수면위)에 착지 후에 생존키트를 열어서 필요한 물품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생존키트에 들어있는 물품들 때문에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평소에 그 위에 앉을때도 엉덩이에 뭔가 뾰족하거나 둔탁한 것이 닿는 느낌이 있는데(잘못 앉으면 비행 내내 불편하다), ‘극심한 물리적인 스트레스’이후에 생존키트위에 아무 생각없이 앉게 되면 (울퉁불퉁한 표면 때문에) 많은 통증을 느낀다.이러한 ‘물리적인 스트레스’는 초등훈련때는 레크레이션 수준이었으나 중등훈련때는 도가 지나칠 때가 가끔 있었다...아무튼, 중등훈련 첫 비행 이후 비행시간은 늘어나는데, 필자의 비행수준은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 교관의 기대에 미칠 수 있겠는가? 아무튼 건강문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여기서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다... 이 글(중등 비행훈련 부분)을 쓰는 며칠 동안은 그때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만큼 중등 비행훈련은 필자에게 있어서 너무도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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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8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2) 전방오지 산짐승과 눈싸움 그리고 셋방살이 오강의 추억…
    고등군사반(OAC) 과정 수료 후 이사도 못한 채, 한달 가까이 영내 근무, 별빛에 반사된 산짐승의 눈빛 보다 사람의 인광이 더 강해, 옛날 혼수였던 ‘오강’, 전방 오지에서는 필수 생활용품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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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20-01-02
  • [나의 공군 이야기](13) 중등비행훈련, 특기교육 그리고 졸업식의 파노라마
    ▲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후 진행된 졸업반지 증정식 [사진=최환종]중등훈련 중에 착륙바퀴 내려오지 않아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언젠가 하와이에서 C-172로 단독비행을 할 때였다. 해질 무렵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착륙을 위한 접근을 하고 있었는데, 관제탑에서 ‘타 항공기에 비상 (emergency)상황이 발생해서 그러니 잠시 현재 위치에서 holding 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중등비행 훈련 시절이 생각났다.한번은 이착륙 훈련 중에 Landing gear(착륙바퀴) down이 되지 않았다. 즉, 착륙하려면 바퀴가 내려와야 하는데, 동체 안에서 바퀴가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그때 T-37 C 비행시간이 7~8시간 정도 되던 때였다. 비행교관도 잠시 당황하는 것 같았다. 순간 필자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교관이 하는 조작을 잘 지켜보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체착륙을 하면 되지 않겠어?’ 이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비행교관이 몇 가지 조작을 한 후에 다시 Landing gear down lever를 당기니 착륙바퀴가 내려왔다. 착륙바퀴가 정상으로 내려갔는지 여부는 조종석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항공기 비상상황’이라고 하면 엔진 고장 등에 의한 불시착을 주로 생각하는데, 위와 같이 착륙 바퀴가 내려오지 않거나, 무전기 고장, 플랩(Flap. 고양력 장치의 일종) 비정상 작동 등 정상적인 항공기 운항에 저해되는 상황이 모두 포함된다.비행 중 통신두절 등 비상상황 겪으면서 안정감 얻어필자가 개인적으로 비행할 때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중 황당한 경우가 Radio failure(무전기 고장) 상황이었는데, 비행장 외곽 7~8 마일 정도에서, 아무리 관제탑을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 착륙 단계라서 고도가 낮으므로 최악에는 휴대폰으로 관제탑에 연락을 하려했다(참고로 고도가 너무 높으면 휴대폰 통화가 안된다.필자 경험에는 3000 ~ 4000 ft 이상 고도에서는 통화가 안되었다). 혹시나 해서 계기판의 Circuit breaker를 reset 하고 교신을 시도하자 그제서야 관제탑과 교신이 되었다. 관제사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이런 비상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면(이를 해결하면) 비정상 공중상황 조우시 훨씬 안정감 있게 대처할 수 있다.손 흔들어 주는 등산객은 비행중 최고의 위안한편, 그해따라 무더운 여름이 지속되었다. 그 당시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다만 학과장 내에만 대형 에어컨이 있어서 비교적 시원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항공기 조종석 내부에도 냉방기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조종석 내부 전체가 시원하지는 않고 국부적으로만 시원함을 느끼는 정도였다. 게다가 엔진 출력 정도에 따라 에어컨의 냉각기능이 차이가 생겼다. 즉, 100 %로 엔진 출력을 높이면 냉방기능이 좋아졌고, 엔진 출력을 줄이면(착륙 접근시 등등) 냉방기능이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비행을 마치고 내려오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제트 비행시간 12시간째이던가. 지리산 부근 공역에서 공중조작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려운 몇가지 공중조작 훈련을 마치고 다음 과목을 준비하면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봉우리에 사람들이 보인다. 등산객들이었다. 갑자기 교관이 조종간을 잡더니 산 정상 부근에서 배면비행을 한다. 몇 초간의 짧은 순간, 필자는 등산객들이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왠지 그들이 우리를 격려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행교관이 얘기한다. “(몇 초간) 휴식 잘 했지? 다음 과목을 진행하자”. 정말이었다. 몇 초간의 배면비행이, 등산객들이 흔들어 주는 손이 심신을 맑게 해주었다.어느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비행하기 전에는 훈련지역의 기상예보를 미리 확인하는데, 그날은 예보도 좋았고, 훈련 공역의 실제 기상도 좋았다. 대기중에 먼지도 구름도 없는 깨끗한 하늘에서 훈련비행 중이었고, 광양만 20,000 ft 상공에서 바라본 지상과 해상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이렇게 깨끗한 하늘과 같이 비행도 잘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신감의 저하와 함께 비행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비행적성 부적합 평가 받고 참담함 느껴초등 비행훈련 때는 그렇게도 자신만만하고 즐겁게 비행훈련을 즐겼는데, 중등비행훈련 입과해서는 건강문제로 인한 체력저하 등등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하는가...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행훈련은 계속 진행되었고, 드디어 평가일이 되었다. 교관과 같이 비행기에 탑승해서 공중으로 올라갔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비행을 했다. 그러나 비행후 브리핑 결과는 좋지 않았다.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해서 재평가를 받으라는 내용의 디브리핑이었다.며칠 후, 다른 교관과 함께 재평가 비행을 하였다. 나름 재평가 비행은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행교관은 필자에게 비행적성이 맞지 않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취지의 설명을 하면서 브리핑을 마쳤다. 초등 훈련 때같이 한번 더 기회를 달라는 얘기도 나오지 않았다. 참담했다. 공군에서의, 인생에서의 첫 실패라고나 할까...공군에서 조종사가 안된다는 것은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나이어린 4학년 생도이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이제 생도대로 다시 돌아가서 나머지 학과 수업과 졸업식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4학년 가을...얼마 후 생도대로 돌아와서 다시 생도 일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졸업식이 있는 다음해 4월 초까지 시간은 필자에게는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희망도 꿈도 없는...그해 겨울에 교육사령부로 특기교육을 받으러 떠났다. 필자는 통신 특기를 신청했고, 통신 특기를 부여 받았다. 다음해 2월 말까지 특기교육을 마치고 생도대로 복귀했다. 3월 초가 되어서는 각종 특기 교육을 받던 모든 동기생들이 모였다. 졸업식 전까지 약 한 달 동안 생도대에서 임관전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기간에는 졸업식 예행연습 및 장교임관에 따른 각종 교육을 받았다.4월 초에 졸업 및 임관식이 거행되었다. 한 시간 정도의 졸업식이 진행되었고,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모든 졸업생이 단상에서 그 유명한 옆걸음으로 가면서 주요 귀빈 및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것이다. 지난 4년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 악수 장면이 나에게도 현실이 되었음을 가슴으로 느끼며, 주요 귀빈을 거쳐 대통령 앞으로 나아갔다.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필자가 대통령 앞에 서자 필자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최 소위! 축하하네!’ 라고 짧고 묵직하게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필자가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사관학교 졸업 후 첫 임지는 '금시초문'인 강원도 지역 부대드디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가 되었다. 양쪽 어깨에는 소위 계급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4년 간의 험난한 과정을 거친 후 얻은 영광(졸업 및 임관)인데, 왠지 허전했다. 비행훈련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느낌이었으리라.그러나 돌이켜보면 사관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4년간은 폭풍같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비록 비행훈련은 끝까지 마치지 못했지만,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멋진 군 생활을 하자고 필자 스스로에게 다짐했다.졸업식 이후에 며칠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휴가 이후, 필자를 비롯한 다수의 동기생들은 작전사령부로 집결해서 약간의 행정처리 이후에 차후 보직을 부여 받았다. 필자가 가야하는 부대는 강원도 모 지역의 부대이다. 왠만한 공군부대는 생도 시절에 명칭이나 위치는 들어 보았는데, 이 부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부대이다. 그것 참.......(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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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19-12-31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1) 분노로 떨리는 손끝에서 떨어지는 낙담의 담뱃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해임통지도 못 받았던 전임 중대장은 결혼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 병사를 친자식처럼 아끼는 행보관, ‘이런 부대에 사고 많았지..?’하는 의구심, 1984년 12월 18일 유난히도 살을 애는 듯한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 날씨 속에서 전임자 없는 중대장 취임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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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19-12-30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50) 중대장 생활의 희비쌍곡선, 시작은 '박격포' 사고난 중대에서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배치부대 미정으로 가족을 광주 백일아파트에 두고 먼저 사단사령부로 전입, 본인의 뜻과 다르게 과거 근무했던 연대의 안전사고가 잦은 중대로 보직, 1984년 12월 고등군사반(OAC)과정이 끝나자 당시의 방침에 따라 다시 대성산으로 원대복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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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9
  • [나의 공군 이야기](12) 4학년 생도생활의 절정, 최초 단독비행
    ▲ 전역한 다음해 여름, 필자는 지인과 같이 부부동반으로 하와이(오아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하루는 오아후에서 Cessna-172 항공기를 빌려서 지인 부부를 뒤에 태우고 오아후섬 일주비행을 했다.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이륙하여 와이키키 해변을 지나 오아후섬 동쪽과 북쪽 해안을 거쳐 북서쪽 해안에 있는 작은 활주로에 내렸다. 준비해간 샌드위치와 삶은 달걀, 커피를 마시며 3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호놀룰루 공항으로 돌아왔다. 비행하면서 바라보는 지상, 특히 해안의 풍경이 그림 같다. 공군인(空軍人)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사진은 착륙전 활주로에 접근하는 장면, 호놀룰루 국제공항 [사진=최환종]비행교관이 없어 빈 옆자리, 압박감이 온몸 눌러[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긴장된 가운데 비행훈련은 계속 진행되었고, 어느덧 단독 비행(Solo flight)에 대비한 평가 날짜가 다가왔다. 이 평가를 통과하면 단독비행을 나갈 수 있고, 초등비행 수료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이다. 최초 평가에서도 많은 동기생들이 탈락했기에 동기생들은 ‘단독 비행전 평가’에 통과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그리고 ‘단독 비행전 평가’를 하는 날이 밝았다. 역시 긴장된 마음으로 평가 비행에 임했다. 긴장은 했지만 비행교관이 지시하는 과목을 대체로 잘 수행했다. 착륙 후 브리핑을 하면서 비행교관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얘기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성공적인 최초 단독비행을 준비하라’고 했다. ‘단독 비행전 평가’에 통과한 것이다.그리고, 최초 단독비행의 날이 밝았다. 컨디션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서 단독비행 전날은 푹 잤고,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기상조건은 좋았다. 최초 단독 비행은 ‘이착륙 단독 비행’이었다. 주기장에서 비행기 시동을 걸었다. 엔진의 소음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느껴진다.Taxiway를 거쳐 활주로에 다가서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몰려온다. 수없이 연습한 이착륙인데 왜 이렇게 새롭게 느껴지는지. 평소에는 비행교관과 같이 비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오늘은 비행교관이 내 옆에 없다. 허전하다. 옆에 있던 비행교관이 없으니 실수하면 의지할 사람도 없다. 갑자기 비행교관이 그리워졌다. 오로지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온몸을 눌렀다. 이륙 전 최종 점검을 마치고 활주로에 다가섰다. 긴장 끝에 이륙하면 자유의 느낌 엄습 , 착륙 후엔 성취감 만끽드디어 이륙허가가 떨어졌고, 엔진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서서히 비행기가 앞으로 전진한다. 이륙 속도에 이르러 조종간을 뒤로 살짝 잡아당기자 비행기는 부드럽게 공중으로 올라간다. 자유롭다. 이륙 전에는 혼자 비행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더니 공중에 혼자 떠 있으니 표현할 수 없는 자유를 느낀다.적정 고도에 이르러서 선회한 후에 고도를 맞추고 활주로와 나란히 비행하였다. 활주로 주변의 지형지물이 눈에 익숙하다. 어느 순간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착륙전 마지막 선회! 모든 것이 교육받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모든 제원 정상! 활주로 끝이 시야에 들어왔고, 원활한 착륙을 유도하는 대대장님의 목소리가 헤드셋으로 들려왔다.그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활주로에 접근! 착륙 속도에 맞추고 적당한 강하각을 유지하며 활주로 중앙으로 접근했다. 온몸의 신경은 조종간과 활주로에 집중되어 있다. 잠시 후 바퀴가 쿵 하고 활주로에 닿는다. 착륙했다. 해냈다. 이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속도를 줄여 주기장으로 향했고, 비행교관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최초의 단독비행! 10 여년 후에 ‘또 다른 성격의 단독비행’을 했지만 이날 ‘최초 단독비행’의 기억과 감동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최초 단독비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비행훈련에 자신감이 붙었고, 비행훈련 자체를 즐겼다. 비행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느낌이었다.이후 단독비행은 2~3회 정도 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비행교관과 동승하여 비행교육을 받았는데, 단독비행이던 동승비행이던 비행이 기다려졌다. 가끔 날씨가 나빠서 비행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공중조작 훈련 중 '실속'현상 이겨내며 교관과 신뢰 쌓아어느덧 초등비행훈련도 중반을 넘어섰다. 이착륙 단독비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공중조작 훈련이 중점이 되었다. 공중조작 훈련중 기억에 남는 것은 실속(失速, Stall)훈련이다. 실속이란 항공기의 받음각을 일정각도 이상으로 증가시키면 날개 표면에 공기 흐름의 분리가 생겨 비행 속도가 줄면서 항공기가 하강하는 현상으로서, 이런 훈련을 하는 이유는 항공기를 조종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도한 받음각을 유지하다가 실속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항공기를 강제로 실속 상태에 빠뜨려서 실속을 경험하고, 또 실속에서 회복하는 절차를 연습하는 것이다.항공기가 실속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항공기 기수가 갑자기 땅으로 향하면서 조종사는 ‘마이너스 G(Gravity, 중력)’를 받게 되는데, 이때의 느낌은 청룡열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갑자기 내려올 때 느끼는 그런 불쾌한 느낌이다. 이런 불쾌한 느낌은 직접 실속에 진입하는 조종사는 미리 그런 느낌을 예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불쾌하나, 동승한 조종사나 승객은 매우 불쾌한 느낌을 갖게 된다.한번은 실속 훈련을 하는데, 실속 진입시 경사각이 조금 깊었던 것 같다. 즉시 회복절차를 실시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즉각 자세 회복이 안되고 경사진 방향으로 회전을 계속했다. 순간 스핀(SPIN)에 들어갔나 하고 생각을 했다. 약간 긴장은 되었으나 회복절차를 재확인하고 기다렸다. 잠시 후, 1~2회 회전한 기체는 회전을 멈추고 정상 자세로 회복이 되었다.필자와 교관은 서로 쳐다보았다. 교관도 잠시 당황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머지 과목을 수행하고 기지로 돌아왔다. 그 이후 수료할 때까지 필자의 비행교관은 비행하면서 나에게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날 필자가 실속(또는 SPIN) 회복하는 것을 보고 필자를 믿었던 것 같다. 빨간 마후라 선물받으며 초등비행훈련 수료시간은 흘러 어느덧 초등비행 훈련 수료일이 다가왔다. 많은 종류의 군사훈련을 받았지만 훈련 수료가 아쉬웠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고 비행하는 것이 좋았다.초등훈련 수료식 전날, 학생조종사 몇 명이 담당 비행교관님을 모시고 조촐한 저녁식사를 했다. 비행교관은 우리들에게 덕담을 해주면서 우리의 무운장구를 기원했다. 다음날, 초등훈련 수료식이 있었고, 비행대대장이 우리에게 “빨간 마후라”를 기념으로 주었다. 아직 조종학생인 우리에게 의미는 없지만.그리고 며칠 후, 필자를 포함한 동기생들은 부푼 가슴을 안고 00비행단으로 향했다. 이제 중등 비행훈련에 입과하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Cessna-172'는 Cessna사(社)에서 만든 4인승 민수용 항공기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항공기이며, ‘T-41B’는 미 공군에서도 초등비행 훈련용으로 사용했다.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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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19-12-18
  • [이태희의 심호흡] 정의선 시대의 현대차 노사관계, 역사의 격랑위에 올라타다
    반자율주행 G80과 현대차 노조의 선택은 동전의 양면전기차로 재편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 내연기관차 근로자는 ‘직업 위기’역사의 수레바퀴 되돌리려는 이상수 신임노조위원장이 ‘실리파’? 두 자릿수 임금인상보다 정년 연장 및 해외공장 국내유턴이 더 강경 노선[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회사원 A씨는 최근 지방의 상가를 다녀오기 위해 지인의 차량에 동승했다. 그가 깜짝 놀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인의 차량은 ‘반자율주행’옵션을 장착한 G80이었다. 10년된 그랜저를 모는 A씨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을 체험했다. G80은 완벽한 반자율주행 실력을 발휘했다. 고속도로에서 최고 속도를 140km로 맞춰놓자 다양한 교통상황을 판단해 속도를 줄이거나 가속하면서 달렸다. 코너링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베테랑 운전자보다 부드럽고 속도도 빨랐다. 차선을 바꿀 때만 운전자가 핸들을 잡고 직접 운전했다. 차량이 이동수단이 아니라 생활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카피가 실감이 났다. A씨가 체험한 신세상은 현대자동차 노조의 선택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이다. 한 뿌리에서 비롯됐다. 4차산업혁명의 가속화에 따른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3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상수 후보를 새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다수 언론은 ‘실리파’가 ‘강경파’를 꺾고 당선됐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장이 그동안 노조활동을 통해 실리·중도 노선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정의선 수석 부회장 시대의 현대차가 ‘강성 노조’라는 불확실성 변수를 해소하게 됐다는 기대 섞인 분석도 흘러나온다. 이런 관측은 본질을 놓친 예단에 불과하다. 전임자들은 ‘귀족 노조’라는 비판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임금 투쟁’에 전념하면 됐다. 그 과정에서 파업도 불사했고, 평균연봉을 9000만원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앞에는 과거보다 더 수 십 배 이상 극단적인 상황, 즉 ‘생존투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 위원장의 핵심공약도 전의를 숨기지 않고 있다. 현행 60세인 정년을 61~65세로 연장, 해외공장의 국내 유턴(U-Turn), 조합원 고용 안정 등이다. 해외 생산물량을 국내로 돌려서라도 고용을 안정화시키고 더 나아가 정년도 연장하겠다는 스토리텔링이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자율주행차 및 전기차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함에 따라 기존 노동자들은 ‘직업 상실’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온건파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고강도 대응전략으로 평가된다. 정년 연장이나 해외공장 유턴이라는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사측과만 투쟁을 벌이는 게 아니다. 역사의 변화에 맞서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그 싸움은 현대차 노조 설립 이래 가장 격렬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자릿수 임금 인상 등의 공약이 없다고 온건파라고 예단하는 것은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파업 카드를 동원해 높은 임금 인상을 관철시킴으로써 강경파로 낙인찍힌 역대 노조위원장보다 ‘노동의 종말’을 막아내겠다는 이 위원장이 훨씬 더 강경하다.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사건이 선행됐다. 하부영 현 노조위원장이 주도해 구성된 노사고용안정위원회는 지난 10월 현대차가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쪽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할 경우 오는 2025년까지 현재 생산인력의 40%까지 감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따라서 이 위원장은 앞으로 내연기관차 근로자라는 직업의 감축규모를 노사협상 어젠다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협상은 배부른 협상이었던데 비해, 앞으로는 생존을 건 배고픈 협상이 진행될 참이다. 기본급 10% 인상을 요구하다가 5%로 깎아주고 생산라인에 복귀하던 시절은 차라리 낭만적이었다. 앞으로 생산라인의 40%를 감축해야 한다는 사측 제안을 받는다면, 어찌될까. 끈질긴 투쟁 끝에 감축 규모를 25%로 낮추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승리의 기쁨이나 환호는 없다. 회사를 떠나는 25%의 동료 및 선후배들 등 뒤에서 자신의 미래도 함께 걱정하면서 눈물지어야 한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이미 내연기관 근로자 대대적 감축 현대차, 4일 60조원 규모 '미래 모빌리티'청사진 발표현대차 노사관계, 달리는 역사의 격랑 위에 올라타 이런 직업 상실의 공포가 현대차 노조원들에게는 두려운 미래이지만, 글로벌 완성차 기업 근로자들에겐 이미 뼈아픈 현실이다. 독일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의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는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2025년까지 95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은 향후 5년간 7000명을 감원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등도 내연기관 근로자의 대대적 감축안을 제시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1년 전인 지난 해 연말 직원 1만4000명을 퇴출시켰다. 닛산은 1만여명, 혼다는 3500명의 직원을 감원한다. 이들 기업들은 전기차 생산라인을 증설할 방침지지만, 퇴출된 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는 아니다. 서구 완성차 기업들은 이처럼 시장변화에 따라 무자비한 생산라인 감축을 단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다르다. 생산라인 감축은 물론이고 증설조차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내연기관 라인을 40% 감축하고 전기차 라인을 증설하는 게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외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게 기술력만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노조가 동의해줘야 한다. 결국 현대차 노조가 선택한 이상수 위원장은 내연기관차 근로자들이 직면한 ‘노동의 종말’을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셈이다. 과거에 어떤 길을 걸어왔든지 간에 앞으로도 온건노선을 걸을지는 미지수이다. A씨의 지인이 구매한 G80과 같은 반자율주행차 혹은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될수록 이 위원장은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강경투쟁을 벌여야 하는 구조에 처해 있다. 더욱이 현대차는 4일 향후 5년간 60조원을 ‘미래 모빌리티’에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장기 혁신계획을 발표했다. 내연기관차에서 수소차, 전기차, 자율주행차, 개인용 비행체(PAV), 로보틱스 등으로 생산 역량을 이동시키는 한편, 인공지능(AI) 커넥티드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그룹을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정 수석 부회장의 원대한 구상이 빠른 물살을 타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달리는 역사의 격랑위에 올라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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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심호흡
    2019-12-0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9) ‘위·아래 막고 물 퍼내기’ 낚시식 학습방법, 교관 의도를 낚다
    고등군사반(OAC) 과정에서는 ‘새벽별 보기’식으로 치열하게 공부해야……'고추가루'에 의존보다는 무식한 전법으로 “막고 푸는 방법”을 택하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어린 시절에 시냇가에서 고기 잡을 때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상류쪽에 흙을 쌓아 물을 막고 하류 쪽마저 막은 후에 물을 모두 퍼내면 물이 빠진 웅덩이에서 물고기를 쉽게 건져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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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19-12-02
  • [나의 공군 이야기](11) 4학년 생도 피말리는 초등비행훈련, 천국과 지옥을 오가
    ▲ 꽤 오래전에 필자가 영관장교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둘째 딸을 Cessna-172에 태우고 비행을 했다. 뒷좌석에 앉아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딸의 얼굴이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몇 년전, 성인이 된 둘째 딸을 태우고 비행을 했다. 공중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조작을 했는데, 딸은 즐거워만 한다. 하늘에서 갖는 부녀간의 흐뭇한 시간이었다. 사진은 10여년 전 어느날, Cessna-172로 비행 중인 필자. 조종석이 매우 좁다.[사진=최환종]초등비행훈련의 최대 난관은 공중에서 수평잡기[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첫 비행은 교관의 설명과 시범을 보는 것으로 대부분 이루어졌고, 필자에게는 비행교관이 가끔씩 조종간을 잡아 보라고 했다. 그때 교관은 필자가 공중 상황에 적응하는지 여부를 보는 것 같았다. 첫 비행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비행훈련이 시작되었다. 이착륙 훈련과 공중조작 훈련이 병행되었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비행인지라 용어 익히기도 어려웠고, 공중에서 자세 잡는 것도 어려웠다.참고로 공중에서는 수평 자세를 잡는 것이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처음에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은 지상에서는 자신의 자세를 본능적으로 인식한다. 자기가 누워있는지, 경사진 곳에 서 있는지 등등. 그러나 공중(3차원 공간)에서는 그런 자세를 파악하기가 처음에는 어렵다.필자도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공중에서 수평을 잡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180도 방향으로 고도 1,000 ft를 유지하며 비행하라고 하면 처음에는 지시된 방향 및 고도 유지가 대단히 어렵다. 방향을 맞추면 고도가 틀려지고, 고도를 맞추려 하면 방향이 어느 순간에 틀려진다.많은 사람이 3차원 공간에서의 감각이 익숙하지 않으므로 처음에는 대부분 같은 경험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3차원 공간에 적응을 하게 되지만. (선배들의 얘기에 의하면 비행은 학과 성적이나 운동 신경과는 별개라고 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해도 공중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일까 늘 궁금했다) 아무튼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공중상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피말리는 비행훈련, 공중조작 훈련 등서 탈락하면 생도대로 돌아가야 첫 평가서 "생도대로 돌아가라"는 교관에게 '단호한 의지'로 반박한편, 비행훈련에 입과한 이후에도 필기시험과 구두시험은 매일 계속되었고, 비행 전에 실시하는 아침 브리핑 시간은 비행교관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비상조치 절차 숙지는 본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교관이 질문하지 않더라도 정확하게 숙지하여야 하는데, 교관이 질문할 때 즉각 대답하지 못할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비행교관으로부터 잘못된 부분을 매일 수차례 지적받고 시정하면서 이착륙 훈련과 공중조작 훈련에 집중하는 가운데, 어느덧 최초 평가일이 다가왔다. 여기서 탈락하면 생도대로 돌아가야 한다.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다.모든 군사훈련이 그렇듯이 비행훈련을 받을 때도 많은 평가가 있다. 최초 평가, 단독비행전 평가, 무슨 무슨 평가 등등. 수 많은 평가를 통과해야 조종사가 될 수 있는데, 초등훈련의 최초 평가는 그 많은 평가 중에서도 첫 평가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이 평가에 통과해야 초등훈련 수료에 한발 다가선다.노심초사하는 가운데 최초 평가일이 밝았다. 엄청난 부담을 가지고 항공기 외부점검을 마치고 시동을 걸었다. 최초 평가는 이착륙과 공중조작을 하면서 조종학생의 조종 능력 내지는 적응력을 평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따라 너무 긴장해서인지 실수가 조금 있었다.잠시 후 비행교관의 목소리가 뭔가 못마땅한 눈치다. 그러더니 이런 식으로 잔인하게 얘기를 한다. “생도 ! 고생하지 말고 생도대로 돌아가지 그래!” 순간 긴장했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지. 나는 비행교관에게 “생도대로 돌아가지 않겠다. 방금 전에 했던 조작을 다시 해보겠다”고 나름 내 의지를 보이며 강력하게 얘기했다. 천년 같은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잠시 침묵하던 교관이 필자에게 지시한다. 약간 부드러워진 말투로. “그러면 12시 방향에 보이는 산으로 수평 비행해 봐라. 현재 고도 잘 유지하고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현재 고도를 유지하면서 교관이 지정한 방향으로 접근했다. 잠시 후, 비행교관이 얘기한다. “알았다. 열심히 하라”.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착륙 후에 최초 평가를 받은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행교관이 내 의지를 시험해본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리고 그 생각은 맞는 것 같았다. 초등훈련에 입과한 조종학생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다들 비슷한 조건일텐데. 초기에는 ‘의지’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겠지...다음날부터는 이착륙 훈련이 중점적으로 실시되었다. 지금은 오랜만에 비행을 해도 이미 비행이 몸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비행을 즐길 수 있는데(물론 Cessna-172 기종에 국한된다), 당시는 착륙이 너무도 어려웠다. 어떤 날 '최고의 비행'으로 칭찬듣고 다음날 '최악'으로 질타받아 비행하면서도, 비행 후 브리핑할 때도 교관에게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갑자기 비행이 잘 되었다. 즉, 이착륙 단계에서 맞추어야 할 속도, 고도 등의 제원을 계기판의 눈금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맞추며 비행을 했던 것이다. 비행교관은 공중에서도 칭찬하더니 착륙 후 브리핑을 하면서도 칭찬이다. “여러분! 오늘 000 생도만큼 해봐라!” 지나가던 다른 교관도 한마디 거든다. “000 생도! 오늘 매우 잘했다면서?” 어느새 비행대대에 소문이 다 났나보다. 쑥스럽게도...그러나 다음날 비행은 죽을 쑤었다. 그러자 비행교관의 서릿발 같은 호통이 온몸을 질타한다. “어제는 잘하더니 오늘은 왜 그러나?”, “여러분! 오늘 000 생도 같이 하면 안돼!” ........하루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이었다. (다음에 계속)* 'Cessna-172'는 Cessna사(社)에서 만든 4인승 민수용 항공기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항공기이며, ‘T-41B’는 미 공군에서도 초등비행 훈련용으로 사용했다.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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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19-11-28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8) 고등군사반의 추억, 치열한 경쟁 속 소주잔의 행복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軍에서는 장교로 임관할 때 초등군사반(OBC), 대위 진급하면 고등군사반(OAC), 소령 진급하면 육(해공)군대학 등의 보수교육을 필수로 이수하게 되어있다. 물론 중령, 대령, 장군으로 진급해도 직책에 부합한 대대장반, 연대장반, 장군반 교육을 받는다. 헌데 상기의 육(해/공)군대학까지의 교육은 필수과정으로 졸업성적은 진급 및 보직을 검토할 때에 우수하고 능력있는 간부라고 평가받는 결정적인 고려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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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19-11-28
  • [이태희의 심호흡] SK 최태원 회장의 위기론이 겨냥한 조폭리더십
    미중무역갈등과 홍콩사태는 한 뿌리의 지정학적 리스크약자를 유린해 사익을 취하는 조폭 리더십 만연‘글로벌 집단지성’은 실체 없지만 해법 될만해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시위대와 경찰 간의 유혈충돌로 치닫고 있는 홍콩사태는 최태원 SK회장이 최근 제기한 ‘위기론’과 직결돼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일부터 사흘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와 베이징대학교 등에서 열린 ‘베이징포럼 2019’에 개막 연설을 통해 ‘지정학적 불안정 심화’와 ‘과학기술 변화’를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양대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중 무역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이슈가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SNS),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의 급속한 변화가 새로운 인류의 고민거리가 된다는 설명이다. 전자는 ‘현재 리스크’, 후자는 ‘미래 리스크’의 성격이 짙다. 홍콩 사태는 ‘현재 리스크’이다. 지난 11일 홍콩 경찰관이 맨손의 시위자를 향해 실탄을 발포해 중상을 입힌 사건은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증오하고 있다. 시위 지지자들은 총을 쏜 경찰관의 둘째 딸인 초등학생의 사진을 공개하며 그 위에 ‘나의 아버지는 살인자입니다’라는 글을 새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민들도 친중과 반중으로 엇갈렸다. 반중파는 논쟁을 벌이던 친중 시민의 몸에 불을 질렀다. 이성은 실종되고 짐승만이 날뛰는 형국이다. 홍콩이 증오의 도가니로 변하면 한국경제는 직격탄을 맞는다. 미-중 무역협상의 악재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홍콩사태를 격화시키는 뿌리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필두로 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라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상품에 대한 천문학적인 관세부과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또 다른 명분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연말까지 예정대로 대중국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도 이에 맞서 대미 관세를 부과할 경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든 한국경제는 발목을 잡아끄는 물귀신을 만나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지난 4일 발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양국이 그동안 공표한 관세부과가 모두 실천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은 0.34%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일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2.2~2.3%이상으로 잡았다. KDI분석대로라면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되면 1.96%를 넘기 어려운 셈이다.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의 해소방안은 뭘까. 최 회장은 ‘글로벌 차원의 집단지성’ 발휘와 공동 행동을 꼽았다. 근본 원인은 리더십 위기에 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집단지성이 해야 할 일은 지구촌에 만연해가는 ‘조폭 리더십’의 청산이다. 지구촌의 양대 강국인 미-중 무역갈등만 해도 그렇다. 원인 제공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폭 리더십’이다. 급성장해 온 중국 제품이 미국시장을 점령하자 천문학적인 보복관세를 부과한 게 도화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탓이라고 외치지만 그렇지 않다. 미-중간에 체결된 조약과 다져온 신뢰를 휴지조각처럼 내던지고 상대방을 무릎 꿇리겠다고 선언한 장본인이 트럼프이다. 트럼프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약자 앞에서 폭력적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지닌 힘을 도덕적 고민 없이 휘두른다. 중국이 기존 경제협약을 깬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이 중국기업의 침공으로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줄어든다”는 선동적 구호를 트위터 등으로 날리면서 미중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원칙도 철학도 없이 상대방을 짓밟으면서 우리 편의 이익만 챙긴다. 한미방위비 분담금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연간 1조원대인 한국 측 분담금을 수백억원만 올리려고 해도 양국 간 협상은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한국은 부자나라”라는 단 한마디를 던지고 무려 5조원대의 분담금을 요구할 태세이다.이런 트럼프의 리더십은 빠르고 뜨겁지만 경박과 편견이 난무하는 SNS시대에 글로벌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다른 지도자들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미국 앞에서 상대적인 약자인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몸을 낮춘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트럼프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거나 비난하기보다는 달래면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 하지만 시진핑도 약자 앞에서는 트럼프와 비슷하게 군림한다. 홍콩에 대한 중국정부의 권위주의적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홍콩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있다. ‘폭도’는 역사적으로 불의하지만 힘센 자가 정의로운 약자를 유린할 때 동원되는 상투적 표현이다. ‘광주민주화 운동’이나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대다수 참여자들이 폭도가 아니었듯이 홍콩 시위대도 폭도가 아니다. 하지만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4일 시 주석을 만나 ‘재신임’을 받은 뒤 시민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는 시 주석의 분신처럼 보인다.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돌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전범기업의 위안부 피해보상을 결정하자, 이를 번복하라고 사실상 무력시위에 돌입한 것이다.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의 눈에, 약자인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낙인찍어도 꺼릴게 없는 ‘만만한 나라’인 것이다. 미국이 약속을 깨고 코너에 몰아붙여도 끽소리 한마디 못하는 게 역대 일본 지도자들의 숙명같은 태도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한국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을 문제삼아 한일경제관계를 결단 낼 기세로 위협하는 아베의 리더십 역시 조폭 리더십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처럼 2차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지도자들이 지향했던 인권과 민주주의, 협상과 절충이라는 가치관은 흘러간 유행가로 전락해버렸다. 지도자가 갈등과 반목을 해결하는 게 아니다. 지도자가 전쟁과 증오의 논리를 확산시킨다.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고, 해결의 실마리 찾을 기미도 없다. 그야말로 리더십 위기이다.최 회장이 언급한 ‘글로벌 차원의 집단지성’은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개념이지만 해법이 될 법도 하다. 2차세계대전 직후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 문인들이 앙가지망(engagement.현실참여)운동을 펼쳤듯이, 이제 전 세계 지성인들이 강대국 지도자들에게 ‘약자를 위한 리더십’을 호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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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의 심호흡
    2019-11-12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47) 부대 민방공 대피훈련이 관사지역 대피소동이 된 '웃지못할 사연'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신혼 초, 대성산 기슭의 쓰러져가는 부대관사에서 살림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쥐가 왔다갔다하는 산간벽지 방 속에서 한 겨울 연탄 아궁이 열로 방바닥 아랫목은 시꺼멓게 탔지만 이불 밖의 기온은 영하로 입김이 서렸던 추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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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2019-11-11
  • [나의 공군 이야기](10) 4학년 생도생활의 절정 '초등비행훈련'의 추억
    ▲ T-41B와 유사한 Cessna-172 type 항공기. 이 사진은 필자가 전역 후에 개인적으로 비행할 때 촬영한 사진이다. 비행훈련 때의 사진은 남아 있는 사진이 없다. [사진=최환종]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가끔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이런 생각을 했다.저 비행기는 어떤 사람이 조종하고 있을까?[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사관생도에게는 생도생활 4년 간 의식주(衣食住), 학습에 필요한 교재 등 모든 것이 국비로 지원된다. 게다가 소정의 교육수당까지 지급되어 사관학교 4년간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생활이 가능하다.그리고 임관 후에는, 본인의 사관학교 성적과 근무성적이 우수하면 국비로 석사, 박사 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다. 교육비가 만만치 않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떤 면에서는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자체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또한 군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거나 경험하기 어려운 사격, 낙하산 강하, 비행훈련 등 각종 고급 훈련을 이수할 수 있고, 최첨단 무기체계와 장비 등을 다루며,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특히 가장 멋지고 고귀한 일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가! 모험심 가득한 청년들에게 사관학교와 군(軍)은 육, 해, 공군 모두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의 적성에 맞아야 하겠지만.한편, 모든 것이 국비로 지급됨에도 불구하고, 1학년 때 어떤 선배 생도가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정말인줄 알았다.) 즉, 집안이 부유한 어떤 선배 생도는 학기가 바뀔 때마다 '등록금'을, 교재를 사야 한다고 '교재비'를, 사격훈련 한다고 '실탄 비용'을, 낙하산 강하 기초훈련 받을 때는 '낙하산 비용' 등등을 부모님께 받아서 사용했다는데...그러면 비행훈련 받을 때는 비행기 값도 받았을까? 아니면 연료비라도 ???말을 재미있게 하는 선배 생도의 얘기에 모두들 배꼽 잡고 웃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한편, 시간이 흘러 3학년 생도생활도 무사히 마치고 어느덧 4학년 생도가 되었다. 4학년 생도로 진급했을 때의 기분은 그동안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최고 학년이 되었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생도생활이 불과 1년 밖에 남지 않았고, 이제 1년 후면 장교로 임관한다는 생각에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1년 선배들의 졸업식을 마치고, 이제 남은 것은 비행훈련이다. 조종사 신체 등급에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정밀 신체검사와 ‘G(Gravity) 내성 훈련’(조종사는 급격한 공중기동시 중력가속도로 인하여 조종사 몸무게의 6~9배 또는 그 이상에 달하는 압력을 받는데, 이를 견디는 훈련)등 비행훈련에 입과하기 전에 받는 절차는 3학년 말에 모두 완료했다.4학년 늦은 봄에 초등 비행훈련 과정에 입과4학년 늦은 봄, 드디어 초등 비행훈련 과정에 입과했다. 그동안 선배들에게 수없이 들어왔던 비행훈련! 당시의 비행훈련은 초등, 중등, 고등 비행 훈련 등 3개 과정으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정든 생도대를 뒤로 하고 비행교육대대(이하 비행대대)로 향했다. 막연하게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던 비행대대의 분위기는 첫날부터 엄격했다.초등 비행훈련에 입과한 우리는 ‘조종학생(student pilot)’으로서 생도대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다. 초등비행훈련은 당시에는 ‘T-41B’라고 하는 ‘Cessna-172’ 항공기보다 성능이 향상된 단발 프로펠러 항공기를 사용했다. ‘T-41B’는 단발 프로펠러 엔진, 고익(High wing), 기본적인 계기판을 가진 4인승 훈련기이다. 지금 보면 단순한 비행기이지만 당시에 처음 비행기를 접한 필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학술대대에서 이론 교육을 마치고 비행기 시동과 비상절차 등등을 암기한 후에 첫 비행에 나섰다. 물론 비행교관과 함께. (비행훈련은 조종학생과 비행교관의 1:1 교육으로 진행된다.)4인승 훈련기로 첫 비행, 조종간에 손만 대고 비행은 '교관 몫'항공기 외부 점검을 마친 후에 조종석에 앉았다. ‘T-41B’ 조종석은 조종학생과 비행교관이 나란히 앉는 구조인데(조종학생은 좌측에, 비행교관은 우측에 앉는다), 생각보다 좁았다. 덩치 큰 교관이 앉으면 어깨가 닿는다는 말이 실감났다.조종석에 앉아서 비행교관으로부터 기본적인 설명을 들은 후, 첫 시동을 걸었다. 지금이야 비행기 타고 여행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비행기를 타 본다는 것이 귀하고 드물었던 만큼 비행기 시동을 건다는 자체가 엄청 긴장되고 신기했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귀한 시절이었으니...절차대로 여러 개의 스위치를 조작하니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교관의 설명과 시범에 따라 방향타를 조종하여 활주로로 나갔다. 그리고 이륙! 물론 이륙부터 착륙까지 비행교관이 조종간을 잡았고, 필자는 조종간에 손만 대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조종간을 살짝 당기자 비행기는 가볍게 이륙엔진 출력을 최대로 하자 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이륙 속도에 이르러 조종간을 뒤로 살짝 당기자 비행기는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뭔가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공중으로 뜰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륙이 간단하다. 어떤 선배는 이륙하자마자 속이 메스껍다는데, 필자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첫 비행하는 날은 기상이 좋아서 아주 편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공중에서의 느낌은 매우 편안했는데, 3차원 공간에 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마치 잘 닦여진 고속도로 위를 덜컹거림 없이 미끄러지듯 달리는 것 같았고, 때로는 속도감이 있는 듯, 때로는 속도감이 없는 듯, 여러 가지가 복합된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튼 최초의 비행은 공중상황이 어떠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다음에 계속)* 'Cessna-172'는 Cessna사(社)에서 만든 4인승 민수용 항공기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항공기이며, ‘T-41B’는 미 공군에서도 초등비행 훈련용으로 사용했다.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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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환종 나의 공군 이야기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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