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라파엘과 기아자동차

정동근 입력 : 2019.07.18 16:20 ㅣ 수정 : 2019.07.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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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정동근기자] "최고의 차인 기아보다 못하지만 괜찮은 차입니다."

 

테니스 그랜드슬램 대회 가운데 하나에서 우승하고 부상으로 받은 메르세데스 벤츠를 앞에 두고 라파엘 나달은 퉁명스럽게 차량 품평을 내뱉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기아차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한 찬사가 없었다. 표현 뿐이었지만 그래도 명품 반열에 오른 셈이었으니까.

 

당시 장면은 한국 스포츠 마케팅 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세계 테니스 팬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는 나달이 토해낸 한마디로 기아차의 가치와 이미지가 한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스포츠 영웅과 기업 마케팅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시너지 효과의 좋은 표본으로도 회자된다.

 

기아차-나달 인연의 시작

 

기아차는 2004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테니스 대회에 임직원을 급파했다. 32강 경기 가운데 하나인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미 최고 수준의 선수에 도달했던 페더러는 17살 몇개월에 불과한 애송이 나달에게 세트 스코어 2-0으로 보기좋게 체면을 구겨야 했다.

 

나달은 당시 랭킹 50위도 안되는 햇병아리라면 햇병아리였다. 테니스 선수에게 흔한 발목 피로골절이라는 짐도 늘상 지고 있었다. 기아차 글로벌마케팅 임직원은 나달과 페더러의 경기를 지켜본 후 보고서에 "월드 스타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스폰서십 최종 결재자는 정의선 현대기아차 수석부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의 우려가 없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기아차는 젊은피 나달과 무려 10년짜리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는다. 복안은 나달의 조국 스페인을 필두로 전체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었다. 기아차는 즉각 나달을 브랜드 대사로 임명했다. 나달은 이듬해 롤랑가로스에서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머쥐며 기아차에 보답한다. 그는 그 다음해 기아차의 글로벌 브랜드 대사가 된다.

 

둘 사이의 파트너십은 기아차 입장에서는 도박이고, 나달 입장에서는 충격으로 표현할 수 있다. 기업이 무명에 가까운 스포츠선수에게 10년 스폰서십을 제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우승권에 다가서본 적 없는 신예 입장에서 수퍼스타 등급의 10년 계약 보따리는 더더욱 드물다. 나달은 당시의 감흥을 SNS 등에 고맙다는 말로 자주 표현해왔다.

 

나달은 2019년 상반기까지 12번에 걸친 프랑스 오픈 우승을 비롯해 18개의 그랜드 슬램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나달은 무엇보다 클레이코트에서 화려하고 섬세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선수다. 기아차는 나달 개인과 라파엘 나달 재단에 대한 후원은 물론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를 통해 청소년 테니스 토너먼트까지 지원하고 있다. 16년째 인연이다.

 

2019 호주오픈 우승으로 겹경사

 

이른바 테니스계의 고인 물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달, 조코비치, 페더러 등 그랜드슬램 우승제조기 3인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20년 동안 테니스 대회를 지켜보다 보면 매번 이들이 나와 우승과 준우승을 주거니 받거니 해서 생겨난 우스갯소리다. 최소한 나달이 이렇게 불리는 데 원인을 제공한 이는 기아차라고 해도 무방하다.

 

테니스는 지구력을 비롯한 체력, 유연성, 실수를 무난히 털어내는 멘탈 관리 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쳐야 우승컵을 안아들 수 있는 스포츠다. 하나의 대회를 마무리하고 나면 온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발바닥은 모두 뒤집어지고, 피부는 섬유에 쓸려 까지고, 발목은 골절 직전까지 도달한다.

 

안정적인 후원이 마련돼야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훈련이 이뤄지고 또 다른 우승컵을 안을 수 있다. 계약 10년이 만료된 2015년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이 돈 다발을 들고 나달을 찾았지만 결국 불발됐다. 나달은 앞날이 불투명한 햇병아리를 발탁해 후원해준 기아차에 의리를 지키겠다면 계약을 5년 연장한다.

 

나달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와중에 당시 상황을 다시 한 번 확인해봤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유튜브를 끊김 없이 즐길 수 있지 아니한가. 몇 번 검색으로 당시 영상을 찾을 수 있다. 나달 발언의 뉘앙스를 종합해보면 "기아보다 못하지만 (승차감이) 꽤나 괜찮네요"라고 보면 된다.

 

나달은 최근 개최된 2019 호주 오픈에서 결승에 진출하며 기아차에 큰 선물을 또 안겼다. 호주 오픈은 마침 기아차가 메인 스폰서십을 가진 그랜드 슬램 대회 가운데 하나다. 기아차의 입장에서는 스포츠 마케팅 부문에서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

 

2020년이면 기아차가 가진 나달에 대한 5년 후원도 또 마감을 하게 된다. 기아차는 과연 새로운 스포츠 신예를 발굴해 후원에 나서게 될까. 아니면 나달과 또 다른 계약을 이어갈까. 스포츠팬이라면 응당 가져야할 즐거운 상상이 동원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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