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장] 서예가 문관효 “한글은 한 마디로 예술이에요”
강이슬 기자
입력 : 2013.10.10 07:57
ㅣ 수정 : 2014.02.06 16:38

▲ 서예가 문관효가 병풍에 쓴 훈민정음 언해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양문숙 기자]
2013년 10월 9일. 22년 만에 공휴일로 지정된 한글날이 567돌을 맞아 여기저기 한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무수히 많은 반대 세력에도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께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지난 22년의 세월 동안은 그런 생각들에 무심하지 않았나 반성이 되기도 했다. 지났다고 잊지 말자. 한글의 고마움!
세종대왕이 전세계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청농 문관효 서예가를 만났다. 그를 찾아간 곳은 문관효 서예가의 서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 한국미술센터였다.

▲ 청농 문관효 [사진=양문숙 기자]
■ 세종대왕 얼을 담은 ‘청농 문관효 서예전’
이번 서예전이 뜻 깊은 이유는 그가 지난 3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8M에 이르는 훈민정음 언해본 서예작품을 완성해 걸었기 때문이다.
문관효 서예가가 선보인 ‘훈민정음 언해본’은 기존의 한자 중심의 문헌과는 다르게 한글 중심의 붓글씨로 써 단순히 붓글씨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한자보다 더 크게 써서 민족의 정신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뜻을 높이 산 작업이다. 다시 말해 한글의 사랑을 듬뿍 담은 것이다.
또한 ‘2013 대전 국제 푸드앤 와인 페스티벌’에 (주)한국와인이 생산한 오디와인도 볼 수 있는데, 와인병에 붙여진 ‘동행’이 그의 작품이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 서예전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렇게 와인에 쓰여진 서예도 볼 수 있고, 네모가 아닌 원에 쓰여진 서예도 볼 수 있는 볼거리 풍성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 이번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15세기에서 19세기 한글의 전통에서 넘어와 21세기 현재 우리가 쓰는 한글, 우리 세대에 우리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한글을 썼어요. 다시 말해 전통을 살려서 현재의 한글을 만들귀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볼 수 있는 전시죠.”
- 전시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올해 회갑이기도 하고, 붓을 잡은 지도 50년 정도 돼요. 그 정도 되다보니깐 남들이 안 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훈민정음 언해본을 보고 나서는 ‘이거다’ 한 거죠. 그런데 언해본을 처음 볼 당시에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제대로 할 수가 없어 못했어요. 2010년 직장을 그만 둔 뒤에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서예 강의를 했습니다. 하면서 느낀 것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조명을 해보자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생각이 맞아 언해본을 전문으로 쓰게 된 거죠.”
- 언해본은 어디서 어떻게 보게 됐나요.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할 때는 남의 작품을 보지 않고 꼭 원본을 보러가요. 공모전 준비를 위해 중앙도서관을 애용하는데, 다른 자료를 찾다가 언해본을 보게 됐죠. 그게 20년 전이에요. 20년간 누군가 쓰면 안 쓴다는 생각으로 지켜봤고, 회갑전시 하기 전 까지 아무도 안 쓰면 내가 한 번 써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쓰게 된 겁니다. 하지만 원본과 똑같이 쓰려고 하진 않았어요. 예전에는 한문을 가지고 한글을 설명하다보니 한문을 크게 쓰고 한글을 작게 썼지만, 지금 21세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세계적으로 한글이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 있기 때문에 한글을 앞세워 써보자고 생각을 한 거죠. 우리글이 참 멋있어요.(웃음)”
- 또 원본과 다른 점이 있나요?
“훈민정음을 제일 처음 쓴 ‘해례본을 보면 모음이 점으로 처리됐고, 13년 뒤에 발표한 언해본에서는 모음이 짧은 선 처리로 나왔어요. 그래서 8M 언해본은 선으로 했고, 병풍 작품은 점으로 썼어요. 뭐라도 다르게 하고 싶었거든요.”
-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아무래도 언해본이겠죠? 작업 일화가 있을까요?
“그렇죠. 3년 전부터 시작해 정성을 쏟은 작품입니다. 작가 한명이 작업을 하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이 분야에 뛰어난 학자의 눈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훈민정음에 박식하고 저를 도와줄 수 있는 학자를 찾는데 만 6개월이 걸렸죠. 중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대학교 교수까지 정말 수소문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세종대학교 김슬옹 교수가 이 분야에서는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학자는 찾았지만, 전화번호를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 분이 출간한 책을 보고 무작정 출판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쉽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진 않았지만 제가 이런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 분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며 교수님께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께 전화가 왔고, 그렇게 만나게 됐죠. 어떻게 학자도 생각하지 못 한 작업을 서예가가 생각해 낼 수 있냐고 놀라시더니 이렇게 완성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 언해본은 이번 전시뿐만이 아니라 서예가 인생에서도 가장 대표작이겠네요.
“그럼요.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해 온 작품 중에서는 대표작이라 생각합니다. 완성한 순간 정말 뿌듯했어요. 올해 567돌 한글날인데 오늘 날까지 한글을 앞세워 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 더 자부심을 느껴요. 하지만 반면에 쓰면서 힘들기도 했어요.”
- 어떤 부분에서 힘드셨나요.
“글씨가 고문이다 보니, 그와 관련된 전문 지식이 많지 않아 어려웠죠. 그래서 김슬옹 교수님께 자문을 많이 구했어요. 혼자 할 순 없고, 교수님과 계속 같이 할 수도 없으니 자문을 구하고 작품으로 옮기고 하는 과정들이 어려웠죠.”
“10번 이상을 다시 썼어요. 쓰다가 방점하나 잘 못 찍으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으니까요. 아무래도 한문과 한글을 바꿔서 쓰다보니까 실수가 많았죠. 지난 5월~6월 즈음에 글을 다 썼어요. ‘아 드디어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배접을 하는데, 그 때 먹이 번져버렸어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시 칩거하면서 몰두했습니다.”
- 어디서 칩거하셨나요.
“연구실이 있는데, 이 작품 할 때는 집에서 했어요. 연구실에서 하면 아무래도 방문객이 많아요. 못 오게 할 순 없으니, 집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열중했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남이 하는 거 다 하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자제를 하면서 정말 몰두 한 거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정말 작업만 했어요.”
- 한 종이에 쓰신 건가요?
“8M가 조금 넘는데, 저렇게 큰 종이가 없어서 종이 4장을 이어서 했습니다.”

▲ 청농 문관효 [사진=양문숙 기자]
■ 즐기다보니…
- 언제 처음 붓을 잡으셨나요.
“제 고향이 진도인데, 할아버지께서 학식이 높으신 외지 사람을 모셔다가 우리 집에서 서당을 운영하셨어요. 마을 청년들 모아다가 겨울 농한기에 글을 알려주셨죠. 할아버지께서 ‘글을 배우는 데 최소한 10살은 넘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형들, 삼촌들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공부하는 방에 못 들어오게 했어요. 그래서 만 10살을 꼭 채우로 10살이 되던 해부터 붓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 10살 되기 전부터 글을 빨리 배우고 싶으셨나요?
“그럼요. 글 읽는 소리 들으면 참 재밌었어요. 어린 시절에 부엌에서 불을 지필 때면 옆 공부방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요. 그럼 부지깽이로 글 읽는 소리에 맞춰 아궁이를 치기도 했죠. 우리 가락이 참 재밌잖아요? 글 읽는 소리에도 그런 가락이 있어서 신났어요.”
- 청농체를 개발하셨는데, 어떤 배경에서 하게 되셨습니까.
“사실 개발했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워요. 즐기면서 쓰다 보니까 이 글씨가 써진 거지, ‘서체를 개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게 아니거든요. 뭐든지 작가는 무의식중에 무언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 서예가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첫째는 즐겨야 돼요. 뭐든지 즐기면 안 되니까요.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서 서예 수업을 하는데,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 들이 오세요. 그 분들께 항상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붓 끝에다가 풀어버리세요. 2시간 즐기다 가세요’라고 해요. 즐기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늘 생각해야 돼요. 모든 글을 볼 때 어떻게 쓸까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무수히 많은 간판을 보잖아요. 그런걸 보면서도 ‘나라면 어떻게 쓸까?’라고 생각하고, 좋은 쓰임이 있다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새기고, 집에 와서 한 번 써보는 거죠.”

▲ 청농 문관효 [사진=양문숙 기자]
■ 한글 567돌, 22년 만에 공휴일로
“우리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도 어떻게 우리가 우리글을 등한시하고 있었는지…정치하는 분들이 잘못한거라 생각해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킬 때 솔직히 욕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글을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디서 대접을 받겠어요? 그래도 정말 이제라고 공휴일이 되어서 늦었지만 참 다행이고 감사하단 생각을 합니다.“
- 선생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한글은 한 마디로 예술이에요. 제가 붓으로 표현해보니깐 그야말로 예술이에요.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예술이 돼요. 한자에 비해 한글은 단조로워서 작품을 하기에 심심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단조로움 가운데서도 무언가를 찾아내야죠. 그게 작가의 몫이에요. 어떻게 표현하고 구성하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지니까요. 한글이 이렇게 아름답고, 예술적인 글씨를 우리가 표현을 못 했을 뿐이지 단조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정말 세종대왕님이 세계에서 그 보다 더 훌륭한 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 은어, 신조어 등 요즘 청소년들의 한글 파괴…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잘 못 된 거예요. 특히 교육정책이 잘 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는 당근과 채찍이 꼭 필요해요. 잘못한 아이들에게는 우리 서당에서 훈장님께서 쓰신 회초리를, 잘한 아이들에게는 아낌없는 칭찬으로 교육을 해야 요즘 청소년들의 잘못된 언행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청농 문관효 [사진=양문숙 기자]
■ 아직도 푸르다…청농(靑農) 문관효
- 가장 좋아하는 글귀를 꼽자면.
“이 전시에 있는 글귀들이 다 제가 좋아하는 글이긴 한데, 한 가지만 꼽자면 ‘함께 즐겨라’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독불장군은 없어요. 뭐든지 둘 이상이 함께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즐기는 걸 빼먹을 순 없죠.(웃음) 즐거워도 같이 즐거워야지 한 사람만 즐거우면 나머지 사람이 괴롭지 않겠어요?”
- ‘청농’이란 호는 어떤 뜻인가요.
“푸른 청(靑), 농사 농(農)을 쓰는데 푸른 농사를 뜻 합니다. 황농(黃農)은 이제 수확을 앞둔 늙은 농사로 비유하자면 (청농)농사가 푸르다는 것은 아직 젊다는 거예요. 언제나 젊게 지금처럼 작업을 하고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계획을 딱 정해놓고 가기 보단 오늘 하루 즐겁게 즐길 거리를 만들자는 생각이에요. 그렇게 살면 1년 후, 2년 후, 어느 시기에 기회가 왔을 때 제가 바로 할 수가 있거든요. 늘 노력해야 해요.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는 노력이 아니라, 즐기면서 노력하자.”
- 서예가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제가 만든 작품을 단 한 점이라도 역사에 남기고 싶어요.”
- 이 언해본이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건 역사가 평가해 주겠죠.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활동을 할 거예요.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서예가 문관효가 8M 훈민정음 언해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양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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