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제약기업(4) 전문가 진단 (상)]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원장 “계륵이 된 제약산업법 개정해야 신약 허브 만들 수 있어"
최정호 기자 입력 : 2022.10.10 06:21 ㅣ 수정 : 2022.10.10 08:54
확실한 약가 우대 정책으로 아스트라제네카나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의 아시아 허브로 키워야
윤석열 대통령이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을 위해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현재까지 윤 정부는 위원회 설립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설립된다 하더라도 ‘제약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약산업법)에 의해 정부는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을 통해 산업을 키워야 만하는 상황이다. 만일 윤 정부가 새로운 방식으로 제약 산업을 육성하려면 법을 개정을 해야 된다. 그동안 혁신형 제약 기업으로 육성된 국내 제약사들 입장에선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지난 2012년부터 운영된 혁신형 제약 기업 분석을 통해 윤 정부가 그려야 할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정책을 조망해 본다.<편집자 주>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 원장(대표) [사진=최정호 기자]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 제도가 신약 개발을 통한 국가 경제력 제고와 난치・희귀병 환자 치료 등을 위해 도입됐지만 그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 제도의 모법(母法)인 ‘제약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약산업법)이 이름과 달리 규제 일변도의 누더기 법안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오명을 벗고 본래의 취지를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 규제 일변도 제약산업법으로 인해 정부 지원 효과 미미
혁신형 제약 기업으로 인증 받게 되면 정부로부터 많게는 20억원 적게는 7억원 내외의 개발비를 지원 받게 된다. 하지만 혁신형 제약 기업 중 상위 제약사들의 연구개발(R&D) 예산은 최소 300억원 이상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일부 세제 혜택과 약가 우대를 받는다고 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이에 대해 정윤택 제약산업연구원 원장(대표)은 7일 뉴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모델로 제약산업법이 제정됐으며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 제도를 통해 성공 기업을 만들려고 한 것인데 지원이 미미해 계륵이 됐다”고 말했다.
정윤택 원장은 “약가 우대를 준다고 하지만 기업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고 리베이트 관련해 인증 취소 요건이 강화돼 이중처벌 측면이 있다고 본다"면서 "리베이트는 의료법과 공정거래법에 의해 규제되는데 제약산업법 눈치를 보는 게 좋은 건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 "외국계 제약사, 약가 우대 정책 등으로 지원해야 낙수효과 커져”
현재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은 △일반제약사 △바이오벤처사 △외국계 제약사 등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이중 외국계 제약사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얀센’ ‘한국오츠카’ 세 곳이다.
정 원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에서 신약 개발을 할 시 가장 큰 장점으로 '월드클래스급 동반 성장’을 꼽았다. 따라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신약 개발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들이 많이 나오는데 지금은 마케팅(약품 판매) 중심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가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아시아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이들이 개발한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 우대를 해줘야 하고 사용량과 연동해 혜택을 줘야 우리나라를 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료=보건복지부, 표=최정호 기자]
정부가 외국계 기업도 혁신형 제약 기업으로 인증하는 것은 ‘낙수효과’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선진 기술들이 국내에 자연스럽게 도입되고 이들 기업들이 R&D센터 등을 건립해 운영할 경우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보니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 원장은 “제약산업법이 규제 일변도로 변하다 보니 다국적 제약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신약 개발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면서 “호주의 경우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데 그중 임상시험에 대한 지원이 강력해 신약 개발을 하고자 할 때 큰 메리트를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규제 일변도에 세월도 흐르며 혁신 제약 기업들의 ‘혁신 의지’도 퇴색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은 2012년에 시작해 10년 넘게 운영되면서 혁신성이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혁신성을 담보로 인증 기업들을 정부가 지원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혁신 신약 개발에 대한 의지가 느슨해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 받은 제약사와 벤처사가 후보물질만 다를 뿐이지 시장성이 큰 같은 질병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물론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개발이 꼭 필요하기는 하다.
정 원장은 “미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른바 ‘퍼스트 인 클래스 급’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보니 적용 기전이 다른 신약 개발에 기업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질환을 보고 혁신성을 갖고 개발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신약 개발 관련 글로벌 정책들이 바뀜에 따라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 관련 평가 지표가 다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의 신약개발 지원은 사회 환원 효과 있어...초고가 의약품 가격 낮추는 혁신신약 개발되면 건보재정에 도움 돼
정부가 2011년에 글로벌 강소기업 300개 육성을 위해 ‘월드클래스 300’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선정 기업에게 연구비 절반 이내에서 연 최대 15억원을 3~5년간 지원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대출 정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약 개발은 10~15년 이상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예산도 많이 필요하다. 알테오젠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대비 140% 이상을 신약 개발 예산으로 쏟아부었다. 이를 감안하면 월드클래스 300의 지원 수준은 매우 적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신약 개발 지원을 위해 6000억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 50여개의 혁신형 제약 기업에게 지원하게 되면 평균 120억원 규모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도 충분한 지원은 아니다.
정 원장은 “기금 조성을 위한 펀드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일본의 성공 사례를 참조해 보험사와 함께 자금 지원 체계 갖추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 국가 재정 투자가 수반되는 것에 대해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많은 재원을 마련해 장기적으로 투입할 경우 타 산업군에서의 반발도 예상되고 개발 실패 시 받게 되는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정 원장은 “희귀・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초고가 의약품들이 제법 등장하고 있는데 사용량이 늘게 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면서 “초고가 의약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혁신 신약이 개발이 된다면 건강보험 재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사회 환원 측면에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