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야기쉼터
-
[전문가 칼럼] 군 복무 중 드론 자격증 취득이 필요한 이유
[뉴스투데이=이보형 초대 드론작전사령관 / 예비역 육군소장] 대한민국 청년 대부분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군 복무로 보낸다. 하지만 제대 후 사회로 복귀하는 길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병영에서 보낸 시간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군내 드론 교육과 자격증 취득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전체 장병 가운데 드론 자격을 가진 이는 1%도 안 된다. 일부 특수 병과나 특수부대에서만 교육이 가능하고, 일반 병사는 접근조차 어렵다. 현대전이 드론전으로 바뀌고 ‘미래전장의 게임체인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더구나 군에서의 드론 경험이 전역 후 민간 영역에서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드론 산업은 농업, 물류, 시설관리, 안전, 영상 촬영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지만, 군에서의 경험은 전역과 함께 사라지고 단절된 채 끝나는 구조다. 이제는 군 복무 중 드론 자격증 취득을 활성화하고, 전역 후에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군과 관련 정부부처가 앞장서 필요한 체계를 갖춰줘야 한다. 첫째, 병과에 상관없이 많은 장병이 드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열어야 한다. 일과 후 시간을 활용해 자발적으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부대 내 교육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시뮬레이터, 실습용 드론, 교보재를 보급하고, 온라인 콘텐츠나 이동식 실습장 등을 마련해 교육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내부 교관 양성과 민간 전문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외부 강사 지원 체계도 도입할 수 있다. 셋째, 자격증이 전역 후 ‘취업 자산’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군에서의 드론 교육과 운용 경험이 실제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와 연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자격 취득 기록을 군 인사자료에 반영해 예비군 동원 시 우선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드론은 단순한 군 장비가 아니라, 미래 산업을 이끌 도구이다. 군 복무 중 자격을 취득하고 이를 사회 진출의 기반으로 삼도록 하는 정책은 단순한 복지 차원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다. 일부에서는 “드론 자격증 교육이 군 훈련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민간 드론과 군용 드론은 조작 원리와 운용 개념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기본 자격을 갖춘 병사가 실전 운용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 현대전에서 드론은 보병, 기갑, 포병, 공병 등 전투 전 분야에 걸쳐 핵심 장비로 자리 잡고 있다. 자격 취득은 전투력 강화와 전역 후 취업 역량 제고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또 “군에서 자격증을 무상으로 취득하면 민간 교육 시장에 타격을 주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군에서는 대부분 2~3종 자격만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전역 후 1종 자격 취득으로 연계시키는 구조를 만든다면 오히려 민간 교육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 군과 민간이 함께 성장하는 방식이다. 군에서 배운 기술이 실전 전투력으로 이어지고, 전역 후에는 삶의 기반으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산업 발전의 자산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장병 드론 자격 취득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이보형 프로필 ▶ 항공우주연구원 전문경력인사, 초대 드론작전사령관, 前 육군항공사령관, 前 방위사업청 헬기사업부장, 前 육군 기획관리참모부 전력기획과장, 前 육군 국회업무담당관
-
[기자의 눈] 고삐 풀린 가계대출…금리 붙잡기에만 매달려선 안 돼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은행권이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대출금리를 4%대로 유지하며 대출 문턱을 높였지만 실제 대출 억제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높은 금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대출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가계부채를 제대로 관리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불과 보름 만에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이 3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돈을 빌려 주택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을 사들이려는 레버리지(차입) 투자‘ 수요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말 743조848억원이었던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15일 745조9827억원으로 2조8979억원 늘었다. 만약 월말까지 이런 속도로 대출 잔액이 늘어난다면 총 5조8000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8월 9조6259억원 이후 전달 대비 가계대출 증가폭이 최대 규모에 이를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그간 은행권에 가계대출이 급격하게 늘지 않도록 관리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은행들은 지난해 10월과 11월, 올해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가 낮아졌음에도 4%의 대출금리를 유지해왔다. 금리를 낮추면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가계대출 급증세는 더 이상 금리만으로는 대출 수요를 억제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금리보다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 환경에 따른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달 가계대출 급증은 지난 2월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으로 2~3월 사이 이른바 ’영끌‘을 통한 서울 일부 지역의 부동산 거래가 급증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통상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가계대출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4월부터 본격으로 가계대출 잔액 급등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되려 대출 수요를 키우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할 예정인데 이 경우 대출한도가 줄어들 수 있어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는 모습이다. 대출로 투자하는 '빚투' 수요도 가계대출 증가세에 불을 붙였다. 미국 관세정책에 따른 불안으로 국내외 주가가 출렁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수요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대출 증가세는 금융당국이 높은 금리를 유지해 단순히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방식보다는 대출 심사 강화 등을 통해 가계대출의 내실을 높이고 관리하는 것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일례로 지난 2월 금융위원회는 올해 가계부채 관리 방안 중 하나로 금융권의 여신심사 및 관리체계 점진적 개선을 제시했다. 대출자의 소득·재산·신용도 등에 따라 보다 정교하게 대출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가계대출은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막연히 대출을 억제하는 것보다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갚을 수 있는 만큼 빌려주고 관리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63)] 진급은 치열한 보직 쟁탈전의 승리자에게 우선(하)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대대장을 끝내고 정보참모로 보직으로 검토되고 있을 때, 인사참모는 필자에게 연락하여 다른 부대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타진하며 스스로 사단 참모 보직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길 종용했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진급을 위한 살벌한 보직 쟁탈전의 서막이었다. 대대장 근무중인 필자에게 사단장이 수시로 “사단 참모로 들어오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인사참모의 제시안이 사단장 뜻이냐며 필자가 사단장에게 직접 확인하겠다며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하여, 인사참모의 흑색 종용(?)을 뿌리치고 정보참모 보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정보참모 보직을 마치고 다음 목표는 현 작전참모의 뒤를 이어 차기 작전참모 보직까지 꿰차야 했다. 왜냐면 작전직능(530)의 장교들은 기본적으로 필수보직인 사단작전참모와 합참 등의 정책부서의 근무경력이 있어야 대령 진급심사에서 최소한의 경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제는 태도가 180도로 바뀐 인사참모가 필자에게 연말에 새롭게 부임한 작전부사단장이 차기 작전참모는 합참에서 근무한 장교를 받는 것이 사단 업무에 유리하다며 본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는 부사단장이 연대장 시절 예하 대대장이었던 육사 36기 장교가 정책부서인 합참에서 근무하지만 아직 작전참모를 못해 그를 위해 필자를 배제하려는 것이라며, 사단에서 대대장을 마친 자원이 사단참모를 하는 것이 우선인데, 그것을 깨버리고 타부대 근무 자원을 먼저 보직시키려하는 의도에 철저히 대비하라고 은밀하게 조언했다. 더불어 곧 계획된 국지도발훈련시에 정보참모로써 능력을 100% 발휘하여 기선을 제압하라는 고마운 충고도 곁들였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이번에도 작전참모 보직 쟁탈전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생겼지만, 변화된 인사참모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육사 선배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번에 필수보직인 작전참모를 양보하면 나중에 그 선배처럼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었다 ■ 정형진 장군, 20세기 마무리와 21세기를 맞이하여 사단뿐만 아니라 육군 전체의 작전을 책임질 준비 그런데 인사참모의 고마운 충고와 다르게 당시에 필자가 우선 전력투구할 업무는 3월에 계획된 상급부대 통제의 국지도발훈련보다 앞선 2월12일에 치루어야할 충북도청에서 개최하는 통합방위지방회의 준비였다. 정보사령부 정형진 참모장과 협조하여 통합방위지방회의에서 최근 확보한 적장비 및 물자로 효과있는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사단장에게 보고했지만 더 확실하게 매듭을 짓기 위해서 필자가 직접 정보사령부로 날아갔다. 필자가 근무했던 승리부대의 중대장 전임자였었고,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 근무시도 각별하게 맺은 인연을 가진 정보사령부 정형진 참모장은 필자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몸은 완전히 회복됐냐는 질문을 가장 먼저 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80~183)] ‘유달리 인연이 많았던 정형진 장군의 통합메트릭스 신화’ 참조) 정 장군이 무적태풍부대의 연대장과 사단 참모장으로 근무할 때에 필자는 사단 작전보좌관과 예하부대 부대대장 보직이었다. 또한 필자가 진해의 육군대학에서 대대장반 교육을 받으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입원치료와 퇴원후 재활치료를 받은 상황을 너무도 잘알고 있었고, 만나자 필자의 건강상태를 제일 우선으로 염려해주어 감사했다. 그는 정보사령부 적장비 전시 담당자를 직접 불러 가장 최근에 확보한 최신예 적장비 및 물자를 제공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보참모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라는 당부를 했다. 더불어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작전참모로 21세기를 맞이하여 사단 작전참모직책뿐만 아니라 육군 전체의 작전을 책임질 준비를 하라며, 아끼는 마음이 듬뿍 담긴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 상급부대의 압력과 작전부사단장 강권에도 불구, 작전참모는 사단에서 대대장, 참모로 근무한 장교로 선발한다는 원칙준수 유비무환(有備無患)라는 말처럼 국군 정보분야의 최고 전문수준인 정보사령부에서 제공한 ‘적 장비 및 물자의 전시’는 통합방위지방회의가 개최된 충북도청에 참석한 도지사, 시장, 군수 등 기관장들과 각부대 지휘관들의 호평을 받았고, 김선필 사단장 취임후에 민관군 전체가 모이는 첫 행사였던 통합방위지방회의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이후 3월에 시행된 국지도발훈련도 당시 작전참모였던 구인회 중령(삼사14기)과 궁합이 맞는 장군멍군의 협업이 잘 이루어지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통합방위지방회의와 국지도발훈련은 참모들의 노력도 한몫을 하며 극찬속에 마무리했지만, 사실은 김선필 사단장이 충청도 출신이라고 표명하며 지역 기관장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호응을 이끌어냈고, 훈련시에는 작전 전문가다운 명쾌한 작전 지침을 통해 일사분란하게 용병술을 발휘한 사단장의 리더쉽이 가장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단장 취임후 연초의 중요 이슈 행사 및 훈련을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사단 인사참모는 6개월 뒤인 연말에 보직을 이동할 것을 대비한 앞으로의 사단 참모 보직구상을 사단장에게 보고하고 구두로 결심을 받았다. 왜냐면 현 작전참모가 9월 계획인사로 참모를 마치고 타부대로 전출을 간다는 보직이동 사항이 확실해지자, 이를 인지한 작전부사단장 강권하는 36기 선배를 비롯해 상급 및 인접 타부대에서 근무하는 필자 동기들을 포함한 작전 직능 장교들이 물밀 듯이 보직 쟁탈전에 가세하며 더욱 혼란스런 난리에 봉착하게 될 것을 대비한 사전조치였다. 김선필 사단장은 꼿꼿했다. 상급부대의 압력과 작전부사단장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작전참모는 사단에서 대대장 또는 참모의 경력을 가진 장교로 선발한다는 원칙적인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5월에 사전 보직 결정문서에 결재하여 내외부에서 예상되는 불필요한 논쟁을 차단했다. 또한 합참에서 사단으로 보직예정인 그 선배는 교훈참모로 먼저 근무한 뒤에 작전참모로 활용하기로 결정됐다. 이로서 작전참모 보직 쟁탈전도 어렵게 통과했지만 ‘이런 갈등을 겪은 후에 작전참모로 보직되어 어떻게 보직 쟁탈전으로 빚은 갈등을 융합시켜 사단을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는 또다른 필자의 과제로 남았다.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
[기자의 눈] 이재명 후보 ‘커피 원가 120원’ 발언…정책 의도 왜곡된 채 정치 공방으로 확산
[전북/뉴스투데이=구윤철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군산 유세 과정에서 자영업자의 수익구조 현실을 언급하며 발언한 '커피 원가 120원' 표현이 정치권에서 의도와 다르게 소비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발언의 본래 취지는 자영업자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정책 방향에 있었음에도, 일부 정치권에서는 맥락을 무시한 채 발췌 인용을 통해 공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재명 후보는 군산 유세 현장에서 “5만원 주고 땀 흘리며 닭죽 한 시간 고아 팔면 3만원 남는다. 그런데 커피 한 잔은 8천원에서 1만원 받을 수 있는데, 원가가 내가 알아보니 120원이더라”고 언급했다. 이는 고강도 노동에 비해 수익이 저조한 자영업 구조를 지적하고 보다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갖춘 사업 환경으로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후 논란이 일자 이재명 후보는 TV토론에서 직접 입장을 밝혔다. “커피 원가 얘기를 한 것은 그 원재료 값이 이만큼밖에 안 드는데, 시설 잘 갖춰서 팔면 다른 전업하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 이야기를 한 것인데 이것을 왜곡해서 공격한 것”이라며, 본래 맥락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일부 세력의 정치적 공격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전체 비용이 아니라 원재료만을 언급한 것”이라며 수치 자체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발언을 허위로 인용하며 악의적으로 확대 재생산한 국민의힘 김용태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이 ‘무고’로 맞고발을 예고하면서 법적 대응으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정작 자영업자 보호라는 정책적 메시지는 묻히고 발언 일부만을 부각한 공세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당한 정책 논의가 실종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 불법 영업 구조를 정비하고 자영업의 공정성과 생존 기반을 확보했던 이력이 있다. 당시 상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불법 시설 철거 후 오히려 매출이 증가한 사례를 만든 바 있다. 이 후보의 커피 예시는 이와 같은 정책성과를 바탕으로 제시된 대표적인 비유였다는 분석이다. 전북 지역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발언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일방적인 비난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인정하는 반응도 나타난다. 전주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원가 120원이라는 말이 현실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맥락이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고마운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정치인이 이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며 현실 개선을 이야기한 건 오히려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군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또한 “우리는 매일 매출과 비용을 계산하며 하루하루 버티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자영업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이 후보가 직접 자영업 수익구조의 현실을 꺼내들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발언이 숫자 자체보다는 민생을 직접 언급하고 문제를 구체화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정책 후보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유세 현장에서 자영업자들의 문제를 단지 상징이나 구호가 아닌 '수익률 구조'라는 실질적 기준으로 설명한 사례는 드물었다. 이번 논란은 발언의 진의가 어떻게 왜곡되고 정치적으로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단순한 수치 하나가 쟁점화되는 구조 속에서 오히려 실질적 민생 정책과 문제 해결 의지가 묻히는 것이야말로 더 큰 손실이라는 목소리가 지역 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
[김연수의 식탁이야기(50)] 늘어나는 2030 고혈압, 생활 속 예방법은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고혈압 환자가 20~30대 사이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장년층의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과도한 음주‧흡연, 스트레스, 비만 등의 요인으로 2030 고혈압이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됐다. 대한고혈압학회 2024년 보고에 따르면 국내 20~30대 고혈압 유병자는 89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중 15%도 안되는 13만명만이 지속적인 병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성인 고혈압 유병자의 인지율은 77%에 달하며, 치료율은 74%, 조절률은 59%에 이른다. 하지만 20~30대는 그 절반 수준인 인지율 36%, 치료율 35%, 조절률 33%로 나타났다. 17일, 세계고혈압연맹이 정한 ‘세계 고혈압의 날’을 맞아 고혈압의 증상 및 관리법에 대해 알아본다. 고혈압은 대부분 증상이 없고, 젊은 환자일수록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기간 높은 혈압에 노출되면 심뇌혈관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실제로 젊은 환자가 갑자기 뇌출혈, 심부전 같은 질병으로 두통, 어지럼증, 호흡곤란 등으로 응급실을 찾는 사례가 적잖다. 전혀 증상이 없다가도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인 만큼 평소 관리가 더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고혈압은 생활 속 실천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환으로, 특히 젊을수록 건강한 습관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평생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혈압을 제대로 측정하고 진단하는 것이다. 가족력이 있다면 가정 혈압계를 통해 꾸준히 혈압을 측정해보는 것이 좋다. 혈압이 140/90 mmHg 이상 높게 나왔거나 가정 혈압이 135/85 mmHg 이상 반복되면 고혈압을 의심하고 진료를 받는게 좋다. 고혈압은 한번 측정으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측정 장소나 시간에 따라 혈압 자체가 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재거나 집에서 잴 때, 아침에 재거나 밤에 잴 때 혈압이 모두 다를 수 있다. 최근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측정 방법들이 나오고 있다. 혈압의 변동성이 커서 하루 중 혈압이 계속 달라지거나, 진료실이나 가정, 직장 등 재는 곳마다 혈압이 달리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는 진료실에서 처방받은 활동 혈압을 통해 하루 중 혈압의 변동이나 낮과 밤의 혈압 평균을 알 수 있다. 활동 혈압은 ‘커프’나 ‘반지 혈압계’를 착용해 측정한다. 하루 동안 일상생활을 보내면서 착용하고 있다가 반납하면 하루 중 혈압을 모두 측정할 수 있다. 활동 혈압을 측정하면 실제 고혈압이 맞는지, 밤에 혈압이 내려가는지, 아침에 혈압이 올라가는지 등 다양한 혈압의 변동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를 근거로 약물치료나 생활습관 개선 등 혈압관리를 진행할 수 있다. ■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짠 음식 줄이기‧체중 관리 등 생활 속 예방법 찾아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 습관 개선이다. 젊은 층일수록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사, 적절한 체중 관리로 고혈압을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다. 고혈압 예방을 위한 운동으로는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루 30분 이상, 주 5회 정도의 빠르게 걷기나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을 실천하면 혈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꼭 헬스장에 가지 않더라도 출퇴근길에 한두 정거장을 미리 내려 걷는 습관이나,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생활 속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식습관은 가장 먼저 짠 음식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찌개나 국물 요리는 국물보다는 건더기 중심으로 먹고, 소금이나 간장은 되도록 적게 사용해야 한다. 라면이나 햄,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 배달음식도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시금치와 브로콜리, 오이, 감자, 샐러리 등 칼륨이 풍부한 채소는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바나나, 사과, 키위 같은 과일도 혈압을 낮추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곡류는 현미나 귀리, 퀴노아 같은 통곡물을 섞어 먹는 것이 바람직하며, 식이섬유가 풍부한 콩이나 두부 등도 자주 섭취하면 좋다. 체중 관리 역시 고혈압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복부비만은 혈압을 높이는 주된 원인이라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체중을 1kg 줄이면 수축기 혈압이 약 1mmHg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급격히 올리는 작용을 하며,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을 크게 높인다. 금연은 단순히 혈압 관리 차원을 넘어 심장과 뇌 건강을 전반적으로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음주는 삼가거나 줄이는 것이 좋으며, 불가피하게 마시는 경우에도 천천히 적은 양을 식사와 함께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과도한 음주는 혈압을 갑자기 상승시켜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건강관리 앱이나 가정용 혈압계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해 고혈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젊은층도 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혈압을 기록하고, 식단이나 운동을 함께 관리하면 병원 방문시 의료진에게도 유용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고위험군이라면 자가혈압을 정기적으로 측정해 조기에 건강 이상을 발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
-
[데스크 칼럼] 난임 극복, 남자 중요성 커져…우선 금연부터 해야
[뉴스투데이=최정호 산업 2부장 대우] 결혼한 남녀의 초산 경험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난임 환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필자 역시 난임 환자로 현재 46세이며 결혼 3년 차지만 아직 자녀가 없다. 시험관 시술로 2년 전 유산을 경험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임신을 시도하고 있는 상태다. 얼마 전 엄마의 전화를 받고 아내는 큰 상심에 빠졌다. “임신이 안되는 게 아내가 노산인 탓”이라는 식의 시어머니(필자의 엄마)의 발언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엄마에게 “내 정자가 이상해서 임신이 안되는 이유도 있는데 왜 며느리 탓만 하느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삐쳐서 5월 8일 어버이날 부모님 댁에 찾아가지도 않고 전화만 드리는 불효를 저질러 버렸다. 필자는 유산 직후 정자 정밀 검사를 받았었다. 검사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필자의 DNA가 기형인데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당시 주치의의 판단이었다. 또 기형정자증이라는 것도 충격이었다. 남자가 한 번 사정한 정자에서 정상 모양의 정자가 4% 미만일 경우 기형정자증이라고 한다. 필자는 검사 당시 3%였고 최근 1.0%까지 떨어졌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계속되는 시험관 시술로 정자를 채취할 때마다 늘 “정상 모양의 정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식 능력 향상과 정자 질 개선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영양제)을 매일 한 움큼씩 복용한다. 또 라이코펜이 정자의 DNA 복원에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 생 토마토 주스를 두 개나 마신다. 기자라는 직업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도 정중히 거절한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갈 때에도 의사에게 시험관 시술 중임을 알리고 생식 능력과 정자 질 개선에 좋지 않은 약들은 빼달라고도 얘기한다. 또 체지방이 정자 생성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지하철 세 정거장 정도 거리를 걸어가는 등의 노력도 했다. 다행히 정자의 활동성이 개선됐고 정상 정자 비율도 1.5%로 향상됐다. 난임 관련 전문의들은 정자의 질을 떨어트리는 주범으로 흡연과 사우나를 꼽았다. 흡연의 경우 정자의 DNA를 손상을 줘 난자와 착상 후 분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만든다. 또 유산이나 기형아를 임신할 확률이 높아진다. 설사 DNA가 좋다고 하더라도 정자의 운동 능력이 떨어지고 기형정자가 많을 수 있다. 사우나를 이용하면 정자 수가 최대 50%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환은 체온보다 약 2~4도 낮은 상태에서 정자가 생성되기 때문에 남자가 고온에 노출되는 것은 좋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생긴 정자가 3개월 전에 생성된 것이라 문제를 해결해도 효과가 늦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정자의 활동성은 시험관 아기 시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배율 현미경을 통해 좋은 정자를 난자와 착상시키기 때문이다. 활동성은 좋은데 다 기형정자라면 난자와 수정을 할 수가 없다. 여하튼, 난임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의 잘못된 생활 습관 등으로 정자의 질이 좋지 않아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돼 배아가 발달하는 시기에 정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난임 전문의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난임이거나 임신을 준비하는 남자라면 이제는 정자를 관리해야 된다.
실시간 이야기쉼터 기사
-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62)] 진급은 치열한 보직 쟁탈전의 승리자에게 우선(중)
-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대대장을 마치고 보직 쟁탈전 서막을 치루면서 어렵게 사단 정보참모로 근무를 시작했지만, 전군적으로도 대군신뢰도가 추락하는 매우 시끄러운 위기 상황이 계속되었다. 얼마전에 포천에서 공군 훈련중 폭탄이 민가에 떨어져 공군참모총장이 공개 사과를 하는 등의 곤혹을 치루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반복되는 역사처럼 그때도 강화도에서 북한의 공작선을 해상에서 놓치고, 인천에서는 나이키가 폭발했으며, 동부 사단에서는 90미리 사격훈련중에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일산에서는 155미리 조명탄이 민가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총체적인 부실이 현실로 나타나자 군의 수장인 국방부 장관은 바늘방석에 앉아있게 됐고, 연일 계속되는 각종 언론에서는 군을 질타하는 목소리만 높아져 당시 IMF로 움추렸던 국가 경제와 정치 리스크를 덮으려는 듯 정치와 학회 및 언론계의 모든 화살은 군에 집중되어 쏟아졌다. 그래도 일선 부대들은 변함없이 계속 흘러간다. 연말이 되자 참모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영전하는 김유봉 대령(육사31기)이 “대령으로 진급하려면 반드시 사단 작전참모를 거쳐야 한다며, 이미 신임 사단장에게 필자를 추천하고 약속을 받았다”라며 더 잘하라는 독려의 말을 남기고 떠났다. 군의 사고가 계속되는 가운데 연말연시을 맞이하여 군은 통상적인 군사대비태세 강화지시가 하달되고, 최전방 GOP를 비롯해 전부대가 경계강도를 높힌 근무를 한다. 이때 직업군인인 장교 및 부사관들은 일반 사회의 민간인처럼 연말연시의 휴일을 즐기기보다는 반대로 군사대비태세 강화지시에 따라 더 바쁜 일과를 보내게 된다. 그 와중에도 각부대에서는 신년초 새벽에 사단장을 비롯한 참모 및 지휘관들이 정복을 착용하고 인근 충혼탑 참배로 한해를 시작하며, 사령부에서는 신년인사를 겸한 하례식과 간부식당에 모두 모여 떡국을 함께 나누었다. ■ 사단장의 탁월한 통솔력에 매료되어 “어쩌면 저렇게 훌륭한 지휘관이 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와 정기적인 인사방침에 따라 신임 사단장과 참모장이 보직되고 새롭게 편성된 참모들과 업무를 하면서 정례적인 신년 충혼탑 참배도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참모부의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사단장의 지휘방침에 감복하여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모습이었다. 군인들은 부대 근무시와 퇴근후에도 주로 전투복만을 입고 생활하여 우리의 전통복장인 한복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김선필 사단장은 설날이 되면 참모들에게 가능하면 한복을 착용하고 부부동반으로 사단장 공관으로 초대해 떡국을 함께 나누며 전우애를 돈독하게 나누며 우리 전통을 계승하도록 배려하였다. 사단참모로 보직후 3개월 정도를 보내며 어쩌면 저렇게 훌륭한 지휘관이 있을까?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사단장의 탁월한 통솔력에 매료되어 참모 모두를 사단장 신자로 만들었다. 또한 사단에서 보직을 마치고 타부대로 떠난 장교들도 새로운 보직에서 덕장(德將)인 김선필 사단장을 존경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내와 감동이었다. 따라서 신년초 선영제 군단장과 조영길 군사령관의 초도 방문이 있었지만 사단장 부임후 첫 업무보고가 성공적으로 치루워지도록 모든 참모들이 자발적으로 성심을 다해 협업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고, 결과 또한 극찬 속에서 마무리 되었다. 특히 교훈참모 조규홍 중령(육사32기)은 먼저 진급한 동기들이 연대장을 이미 마치고 뒤늦게 보직되어 참모중에 최고 선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단장 최측근에서 솔선수범하며 동료 참모들을 리드하여 모범이 되었다. 이는 ‘정직, 성실로 최선을 다해 최상의 상태로 임무를 완수하라’는 사단장의 강조사항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 차기 작전참모로 필자를 추천하고 약속을 받은 희소식을 무색하게 만드는 조용한 음모가 진행돼... 신년초 군단장과 군사령관의 초도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계속 이어진 당면 업무들이 정신을 못차리게 했다. 2월 충북지역 통합방위지방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이어 군사령부 및 군단 임무형지휘토의와 국지도발훈련, 추풍령방호전술토의, 쌍용훈련, 예하연대 전투단훈련평가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보참모로 가장 중요한 이슈는 6월에 계획된 중앙보안감사였다. 이 감사는 단순하게 부대를 평가하여 우열을 가리는 과정일 뿐만이 아니라, 잘못이 발견되면 군생활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는 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 필자는 다른 어떠한 업무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염두에 두고 추진했다. 게다가 “2월 통합방위지방회의에서 적장비 전시를 하여 지역 기관장들의 안보의식을 높이는 것이 어떻겠냐?”는 사단장의 지침을 구현하려면 당시 사단이 보유한 적장비 품목으로는 효과가 미비하여 중앙의 지원을 요청할 필요가 있었다. 수소문해보니 정보사령부에서 적장비를 순회 전시한다는 정보를 포착했다. 해부대에 연락을 취하니 마침 정보사령부 참모장으로 정형진 장군이 근무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정 장군은 필자가 무적태풍부대 근무시에 각별한 인연을 맺은 선배였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80~183)] ‘유달리 인연이 많았던 정형진 장군의 통합메트릭스 신화’ 참조) 정 장군과 일단 전화로 협조한 후에 사단장에게 통합방위지방회의에서 정보사령부의 지원을 받아 최근 확보한 적장비로 효과있는 전시를 할 수 있다는 보고를 했다. 지휘관의 지침을 실제로 구현하는 참모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이 광경을 지켜보는 주변 참모들의 따가운 눈빛도 함께 느꼈다. 동시에 전임 참모장이 사단장에게 차기 작전참모로 필자를 추천하고 약속을 받았다는 희소식을 무색하게 만드는 조용한 음모가 진행됨을 인지했다. 연말에 새롭게 부임한 작전부사단장이 차기 작전참모는 합참에서 근무한 장교를 받는 것이 사단 업무에 유리하다며 인사참모를 압박했고, 사단장에게까지 보고하여 또다시 정보참모 보직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어서 작전참모 보직 쟁탈전이 시작됐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
- 이야기쉼터 > 칼럼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
- [신재훈의 광고썰전 236] 박보영의 삼다수 vs 40살의 백산수, 물 불 안가리는 물의 전쟁; 누가 누가 더 깨끗한가?
- [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삼다수와 백산수간의 양보 없는 물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백산수가 전지현에서 박서준으로 다시 임시완으로 모델이 바뀌는 동안에도 아이유를 계속 모델로 활용했던 삼다수가 박보영을 새로운 모델로 캐스팅했다. 박보영이 모델로 등장하는 첫 광고다. [제주삼다수 2025 TVCF _ 봄 인사 편] 노란 유채 꽃밭과 한라산이 어우러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 보인다 유채꽃 사이로 박보영이 꽃향기를 맡으며 걸어 다닌다 박보영 : 으~음 좋다 언덕에서 사람들이 박보영에게 손을 흔들며 “좋아마시”를 외치며 인사한다 바닷가 버스정류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도 박보영에게 손을 흔들며 “좋아마시”를 외치며 인사한다 항구를 떠나는 배 위의 어부들도 박보영에게 손을 흔들며 “좋아마시”를 외치며 인사한다 (자막) ‘좋아마시’는 제주도 방언으로 ‘좋아요’라는 뜻입니다 박보영 : (어부들에게 인사하며) 저두요~ 좋아마시 (삼다수를 마시며) 다들 나처럼 ‘좋아마시’는구나 믿으니까 삼다수 좋아마심 (자막) 우리가 믿는 물 제주 삼다수 박보영과 만나는 제주의 이웃들이 ‘좋아요’를 뜻하는 제주 방언 ‘좋아마시’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광고의 참신성(Originality)을 높였고 제주 방언을 광고에 그대로 사용한 것은 친근감을 높이며 동시에 삼다수와 제주의 연관성(Relevance)을 강화한다. 좋다는 뜻의 ‘좋아마시’로 시작해서 좋아서 마신다는 의미의 “좋아마심”으로 마무리된 메시지 또한 그 브랜드를 구매(사용)해야 하는 이유인 RtoB(Reason to Buy)를 담고 있는 절묘한 카피다. 영상 측면에서도 삼다수의 핵심자산인 “제주”를 강화하기 위해 제주의 가장 아름답고 대표적인 모습인 노란 유채꽃과 초록의 줄기 그리고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편안하게 솟아 있는 한라산을 담은 풍경을 시작으로 제주의 다양한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주며 광고의 임팩트(Impact)를 높였다. 물론 과거 모든 삼다수 광고 역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그러나 과거 광고에서 활용된 제주가 촬영 장소가 제주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잘 알려진 명소를 중심으로 또한 모델을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운 배경에 가까웠었다면 새로 온에어 된 광고에서는 학생, 마을 주민, 어부 등 제주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제주에 놀러 온 외지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 사람 사는 제주, 사람들과 어우러진 사람 맛 나는 제주를 담아내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 광고는 Creativity를 평가하는 주요 항목인 R.O.I. 즉, 연관성(Relevance), 참신성(Originality), 임팩트(Impact) 측면에서 매우 잘 만든 광고다. 모델 캐스팅측면에서도 맑고 깨끗함 그 자체인 박보영은 누가 봐도 맑고 깨끗한 제주 삼다수를 떠올리게 하는 탁월한 선택이다. 광고를 평가하는 모든 기준과 항목에서 새로 온에어 된 삼다수 광고는 크리에이티브 그리고 모델 캐스팅 모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남는다. 최근 화제가 된 제주도를 배경으로 절경과 사투리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폭삭 속았수다”와 콜라보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콜라보까지는 아니어도 드라마 온에어 시기와 광고 온에어 시기를 고려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모델 캐스팅에 대해 조금 더 폭넓게 합목적적으로 생각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 말이다. 드라마 배경도 제주 광고 배경도 제주, 드라마에서도 제주 사투리를 쓰고(사실 드라마는 제목에서도 대놓고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주 방언을 썼고 드라마 내내 주요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사투리로 이루어짐) 광고에서도 제주 사투리를 쓰고, 드라마에도 아이유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광고에서도 아이유가 나왔다면 소비자의 인식속에 강력하게 자리잡은 [삼다수 = 제주 = 광고 모델 아이유 = 제주 방언(폭싹 속았수다, 좋아마시) = 드라마] 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환상적 시너지, 다시 말해 대박을 이루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광고 외적 요인들, 즉 광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단지 삼다수 모델이었던 아이유가 이런저런 이유로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고, 공교롭게도 그 드라마가 제주를 배경으로 사투리를 쓰는 스토리고, 운 좋게도 그 드라마가 대박을 쳤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신재훈 프로필 ▶ (현)BMA 전략컨설팅 대표(Branding, Marketing, Advertising 전략 및 실행 종합컨설팅) / 현대자동차 마케팅 / LG애드 광고기획 국장 / ISMG코리아 광고 총괄 임원 / 블랙야크 CMO(마케팅 총괄 임원)
-
- 이야기쉼터 > 칼럼 > 신재훈의 광고썰전
-
- [최환종의 스쿠버 다이빙 시즌 5] 태국, 시밀란 리브어보드(8) Pineapple bay 그리고 Koh Che 포인트
- [태국(시밀란)/뉴스투데이=최환종 전문기자] 일몰 시간이 다가오는지 주변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산호 위에 그루퍼 한 마리가 앉아있는데, 이 녀석이 앉아있는 산호가 그루퍼의 몸통에 있는 무늬와 비슷하다. 부근의 말미잘 속에서는 흰동가리 가족이 노닐고 있다. 언제봐도 귀여운 녀석들이다.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어느덧 출수할 시간이 되었다. 딩기 보트를 타고 모선에 돌아와서는 여유있게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고는 저녁 식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첫날 다이빙을 모두 마쳤다. 저녁 식사 후에 일행은 잭 강사와 같이 상부 데크에 모여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이 배는 배 자체가 크다 보니 상부 데크의 공간도 무척 넓었고 다이버들이 앉거나 누워서 쉴 수 있는 선베드도 많이 있어서 매우 쾌적하게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오늘 다이빙을 하면서 겪었던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필자는 작년의 처참했던 수중 시정과 이에 따라 정말 열악했던 다이빙 경험과 비교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수중 시정의 요정”인 윤 교수와 같이 오기를 잘했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다. 한편, 잭 강사는 필자의 공기 소모량이 많은 것을 언급하면서 필자가 수중에서 호흡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이러이러한 점을 수정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면서 리브어보드 다이빙 기간중에 용량이 큰 공기탱크(15리터, 압력은 11.1리터인 일반탱크와 동일하게 200바임) 사용을 권했고, 필자는 이에 동의했다. 다음날부터 필자는 15리터 공기탱크를 2일간 사용했고 용량이 큰 공기탱크를 사용하니 출수할 때 공기 잔량이 잭 강사나 윤 교수와 비슷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리브어보드 4일차)은 일반 공기탱크로 교체하여 사용했는데, 잭 강사가 알려준 호흡법을 연습한 효과를 보았다. 출수할 때 필자의 공기 잔량이 잭 강사나 윤 교수의 공기 잔량과 비슷하거나 약간 적은 정도였다. 약 한 달 후에 필리핀의 아닐라오에서 다이빙할 때에는 잭 강사가 알려준 호흡법에 익숙해져서 공기 소모량이 전에 비해서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저녁은 몸이 피곤하기도 했고 내일의 다이빙을 위해서 가볍게 차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가지고 간 위스키는 내일 저녁에 마셔야지... 다음 날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전날 저녁에는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잠에 빠졌다. 푸켓에 도착한 이후로 예정에 없던 ‘day trip 다이빙’과 선착장에서 이 배까지 고속 보트로 이동하면서 쌓인 피로 등등이 있어서 몸이 매우 피곤했을 것이다. 그리고 숙면을 취할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작년에 탑승했던 배와 달리 이 배는 객실에서 엔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엔진 소음에 대비해서 필자가 현역일 때 공군에서 지급 받았던 소형 고급 귀마개를 가져왔는데, 배에서 기거하는 동안 이 귀마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서 간단한 음식을 먹고는 모두 모여서 오늘 입수할 다이빙 포인트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하였다. 이날 첫 번째 다이빙은 ‘코체(Koh Che)’, 나머지 세 번의 다이빙은 ‘리셸리우 락(Richelieu Rock)’ 포인트에서 했다. 리셸리우 락 포인트는 이곳 시밀란 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포인트인데, 작년에는 정말 처참했던(우리나라 서해안과 같은 또는 그보다 못했던) 수중 시야 때문에 그 진가를 못 보았던 포인트이다. 지난 이틀간의 훌륭했던 수중 시야를 생각하면 오늘은 매우 기대가 되는 곳이다. 브리핑을 마친 일행은 장비를 착용하고 딩기 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코체(Koh Che) 포인트에서 입수(입수 시간 07:20). 다이빙 시간은 40분, 최대수심 22.0m(평균 수심 13.5m), 수온은 28도. 시정은 바다속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이 인간 세계를 떠나 신선들이 사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매우 환상적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깃대돔 여러 마리와 ‘5줄 스내퍼’들이 보인다. 바닥에 있는 큰 바위 밑에 뭔가 시커먼 녀석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고 가까이 가서 보자 엄청나게 큰 곰치다. 잠에서 깨어났는지 천천히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모습이 ‘나 건드리지마’ 하는 것 같았다. 약간 먼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광량이 부족해서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여단장,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現 국립한밭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
- 이야기쉼터 > 칼럼 > 최환종의 스쿠버 다이빙
-
- [기자의 눈] 국립임실호국원, 상징만 남고 실질은 실종…관리감독 실태 도마 위
- [전북/뉴스투데이=구윤철 기자] 13일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영령이 잠든 국립임실호국원에서 상식 밖의 음주 행위가 벌어졌음에도 관리주체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방관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동안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성지”라는 구호 아래 정비와 확충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점을 고려할 때, 운영 실태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3일 본지 카메라에 포착된 현충문 앞 음주 장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닌 전반적인 관리 부실의 단면이다. 해당 장소는 호국원 내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로 조문객과 유족, 일반 국민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 예절에 반하는 음주 행위가 수 분 이상 지속됐고 직원들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임실호국원 관계자는 “우리가 계속 계도 방송을 하고 있는데, 제가 나가서 다른 데도 아니고 이런 데서 하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소주병 두 병이 있더라고요. 제가 제지를 해서 바로 정리를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현장 대응이 있었음을 주장했지만 제지 시점이 한참 뒤였다는 점에서 초기 통제 실패와 현장 순찰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단순한 ‘한순간의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날 현장을 지나친 국립임실호국원 직원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술 자리 현장을 지나쳤고 이후 자신들의 업무를 현충문 입구에서 수행했다. 국립임실호국원 측은 방문자 통제, 질서 유지 등 기본적인 운영 매뉴얼조차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최근 신축된 제3충령당 시설이 늘어난 만큼 관리 인력의 충원과 교육, 운영 매뉴얼 개선이 병행돼야 함에도 기존 인력만으로 모든 구역을 관리하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임실호국원의 운영 실태는 국가시설이라는 위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시설의 상징성과 그간 투입된 막대한 공적 예산을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은 느슨한 운영 체계로는 성역으로서의 품격과 공공성 모두를 지켜내기 어렵다. 국립임실호국원은 매년 6·25, 현충일, 한식 등 특정일에만 ‘의전행사’에 치중하고 평상시에는 참배 환경 관리나 시설 통제에 허점을 드러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국립묘지관리법 제23조에 따라 음주, 취사, 소란 등의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통제·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임실호국원은 이제라도 성역으로서의 품격을 회복하기 위해 전면적인 관리체계 점검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고 시설 규모에 맞춘 인력 확충, 정기 순찰 시스템 도입, 입장객 질서유지 규정 마련 등 전반적인 운영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 이곳이 ‘추모의 공간’으로 남을 것인가, ‘방치된 공간’으로 전락할 것인가는 이제 전적으로 운영 주체인 국립임실호국원의 책임에 달려 있다.
-
- 이야기쉼터 > 기자의 눈
-
- [기자의 눈] 백종원의 뒤늦은 사과...등 돌린 가맹점주·주주들 돌아설까
- [뉴스투데이=서민지 기자] 대한민국 주방을 평정했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올해 초부터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제품 원재료 함량 논란에서 시작된 잡음이 지역 축제 문제로 번지더니 급기야 사과문을 통해 방송 중단 선언까지 이르렀다. 뒤늦게 태세 전환에 나선 백 대표가 등 돌린 가맹점주와 주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백 대표는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하기 쉬운 요리법과 친근한 말투로 인기를 얻었다. 지역 농가와 전국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는 진심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되면서 진정성 있는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더본코리아 산하 식음료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백종원의 명성에 힘입어 규모를 확장했다.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는 빽다방·홍콩반점 등 총 25개, 매장 수는 전국적으로 2771개에 달한다. 실제 더본코리아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한 가맹점주는 이렇게 말했다. "전 국민이 아는 백종원. 백종원이 한다니까 믿고 시작했다." 백 대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지만 결은 확연히 달라졌다. 백종원과 더본코리아 브랜드들의 건실하고 진정성 있는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유튜브 등 각종 SNS에서는 백 대표의 과거 방송 중 논란이 될 만한 발언까지 끄집어내 재조명하고 있다. 심지어 매장에 붙어있는 백종원 사진을 떼고 싶다는 가맹점주들까지 나타났다. 더본코리아 상장 후 첫 정기 주주총회에선 백 대표를 향한 주주들의 날 선 질문들이 쏟아졌다. 지난주엔 경찰이 더본코리아의 원산지 허위광고 의혹과 관련해 백 대표를 형사 입건하자 주주들의 원성은 더욱 커졌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맹점주와 주주들이다. 한 가맹점주는 "기대와 달리 매장 출점 후 지속적으로 매출이 하락하고 있다"며 "더본코리아 본사의 지원책도 전무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초 불거진 논란이 계속되면서 더본코리아 시가총액은 1000억원 이상 증발했다. 더본코리아는 소비자와 맞닿아 있는 프랜차이즈 식품사이자 주주들의 투자를 받는 상장사다. 사업 특성상 가맹점 매출과 수익이 올라야 본사도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업 방향과 전략을 더욱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백종원과 더본코리아가 가맹점주와 주주들에게 실망을 안겼던 것은 사업 규모에 걸맞는 품격과 책임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단순한 요리 연구가가 아닌 8만5000여 명의 주주와 2700여 명의 가맹점주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인이다. 평소 보여준 직설적이고 털털한 화법보다는 정확한 상황 판단과 사업 비전, 주주 소통 능력 등 대중을 이해시킬 만한 책임감 있는 화법이 필요한 때다. 백 대표는 최근 가맹점주와의 상생을 강조하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백 대표는 "단 한 분의 점주님도 두고 갈 수 없다"며 "본사의 수익을 가맹점주님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대규모 지원 플랜을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더본코리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맹점주 상생 동반책으로 3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백종원을 믿고 더본코리아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선택한 이들에게 그의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
- 이야기쉼터 > 기자의 눈
-
- [김연수의 식탁이야기(49)] 영화 ‘더 저지’로 돌아보는 부모와 자식 관계…갈등과 치유 이야기
-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차례로 이어지는 이 시기엔 자연스레 가족이라는 이름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때로는 그래서 더 상처 주고 오해하기 쉬우며. 서로를 원망하거나, 무심히 살아가는 관계도 드물지 않다. 흔히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천륜(天倫)’이라 말한다. 하늘이 맺어준 관계이자, 인간의 뜻으로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서로를 의지하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가족도 있지만, 반대로 오랜 갈등과 상처를 껴안은 채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한 채 살아가는 가족도 많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DNA는 외모나 건강뿐 아니라 성격, 감정, 행동의 패턴까지도 복사된다고 한다. 결국 우리 안에는 부모의 말투, 사고방식, 두려움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누군가 부모를 미워하고 끊어내며 살아간다면, 이는 곧 자신 안의 일부분을 밀쳐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부정은 삶 전체를 무겁게 만들고,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기 어렵게 한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은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저수지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그 저수지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거나, 흙탕물처럼 뒤흔들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물이 마르기 전에, 고맙다고 한마디 전하거나,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시작일 수 있다. 가정 안에서 형성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 자존감, 감정 조절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애착 이론’을 창안한 존 볼비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안정적 애착 경험이 이후 삶의 심리적 건강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 보았다. 특히 어머니 뿐 아니라 아버지와의 유대도 감정적 안정, 사회성,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가족 구조와 역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 1인 가구 확산, 비혼과 비출산의 가치관 등이 복합되며 부모와 자식 간에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고, 정서적 거리는 더 벌어지기도 한다. 자녀는 디지털 기기와 더 친숙하고, 부모는 변화된 세상에서 자녀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며 갈등이 생긴다. 이런 맥락에서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더 저지(The Judge)’는 부모 자식 관계의 애증과 회복을 그린 드라마다. 성공한 변호사 헨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부와 명예는 가졌지만, 가족과는 단절된 채 살아간다. 어머니의 부고를 계기로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 그는 아버지와 재회하지만, 그 관계는 이미 증오에 가까울 만큼 멀어진 상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고, 헨크는 마지못해 아버지의 변호를 맡는다. 법정에서의 충돌과 갈등 속에서, 두 사람은 수십 년간 묻어 두었던 오해와 상처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알고 보니, 젊은 시절 사고를 쳤던 헨크를 아버지는 직접 소년원에 보냈고, 그 죄책감은 또 다른 재판에서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졌다. 이 선택은 비극을 낳았고, 아버지는 이후 아들에게조차 마음을 닫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함께 부딪히고 도우며 보내는 시간은 헨크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된다. 영화는 낚싯배에 나란히 앉아 있던 부자의 장면으로 절정을 맞는다. 아버지는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변호사는 바로 너다” 그것이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헨크는 그 한마디로 마침내 자신이 바랐던 사랑과 인정을 비로소 얻게 된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골이 아무리 깊어도, 이해와 회복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것. 하지만 그 회복은 대화와 용기, 진심 어린 마주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정이란 때로는 익숙함 속에 숨어 있는 침묵의 공간이다.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존재들이 어느 날 사라지고 나서야,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흔하다. 특히 부모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착각 속에 자식을 품지만, 그 침묵이 오해가 되기도 한다. 자식은 “아직 기회가 있겠지” 하며 무심히 흘려보내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5월은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기에 좋은 시기다. 미워했던 마음, 참아왔던 감정, 전하고 싶었던 고마움. 그 어떤 것이든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단 한번뿐인 천륜이다. 인생이라는 시간표 안에서 너무 늦기 전에, 서로를 돌아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길이 아닐까 싶다. ◀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 [데스크칼럼] 대형마트 규제 13년…온라인 쇼핑시대에 효과 없다
- [뉴스투데이=이정석 산업2부장] 윤석열 정부에서 논의돼 오던 대형마트 규제 완화가 파면과 조기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관련 논의도 중단될 공산이 크다. 최근 업계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가운데, 유통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면서 대형마트는 월 2회 공휴일에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새벽배송 금지 등 영업시간도 제한을 받게 됐다.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130만 건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휴업일에도 전통시장의 매출은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의 일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의무휴업일 기준 610만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의 630만원보다 낮았다. 오히려 영업 규제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등으로 온라인 구매는 가속화됐다. 2015년과 2022년을 비교해보면, 의무휴업일의 전통시장 구매액은 1370만원에서 610만원으로 55% 감소한 반면, 온라인 구매액은 350만원에서 8170만원으로 급증했다. 대형마트의 판매지수도 떨어져 2011년 1분기에 114.2를 기록했지만, 2024년 4분기에는 92.0으로 대폭 하락했다. 반면 인터넷쇼핑의 경우 2011년 1분기 21.8에서 2024년 4분기 135.3으로 급등했다.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온라인으로 옮겨간데다, 오히려 역차별로 인해 전통시장은 물론 대형마트마저 위축되는 효과를 가져온 셈이다. 이에 따라 최근 10년간 대형마트는 52곳,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202곳이 문을 닫았다. 대형마트 2위인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돌입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통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의 영업규제 폐지 정책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웃나라 일본은 1973년부터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2000년 폐지했다. 캐나다와 영국, 독일 등도 대형마트의 일요일 영업시간을 제한했지만, 이는 골목상권 살리기가 아닌 종교활동 보호가 주된 목적이었다. 온라인 쇼핑시대가 도래한 지금, 전통시장을 포함한 대형 오프라인 유통산업을 살리기 위해선 네거티브의 규제가 아닌 포지티브의 상생안 논의가 더 시급하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데스크칼럼
-
- [기자의눈] 정권 관계없이 '주택공급' 계속돼야
- [뉴스투데이=김성현 기자] ‘공급 부족’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단어였으며 정치권과 시장의 시각은 엇갈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의 주택 공급량은 부족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공급은 충분하다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시장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고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더 멀어졌다. 정부가 공급 부족을 인정하지 않고 규제로 대응했을 때, 시장은 더 요동쳤다. 노무현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각종 규제를 도입했지만 공급 확대에는 미흡했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공급 위축을 불렀고 그 사이 수요는 쌓였다. 집값은 두 배 넘게 올랐다. 공급을 막으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무주택자들의 기회는 줄어든다는 단순한 원리가 작동했을 뿐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여야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공급 부족 문제는 반복됐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도 같은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존 당론과는 다른 방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좌파가 집권하면 집값이 오른다는 공식과는 반대되는 행보다. 이 후보는 최근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고 용적률을 상향하며 분담금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주택 100만호’와 같은 공공 중심 공급 방안은 뒤로 밀리고, 민간 중심의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 방안이 전면에 섰다. 그간 민주당이 보여온 기조와는 분명 다른 행보다. 그러나 시장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급 부족을 부인했고, 결과적으로 수요 억제에만 집중하다 시장을 잃었다.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해외의 시각도 같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는 “주택 공급 부족은 집값 상승과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공급 확대가 시장 안정과 사회적 효율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해왔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공급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장 공급이 부족하지 않더라도 공급은 끊기지 않아야 한다. 공급이 멈추는 순간 시장은 다시 긴장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은 커진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비슷한 길목에 서 있다. 대선이라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어떤 정당이 승리하든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공급만큼은 멈춰선 안 된다. 공급을 멈춘 정부마다 집값은 올랐고, 무주택자는 좌절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여유는 없다. 대선 공약과 정책은 정권마다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공급 확대라는 기본 원칙만큼은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유지돼야 한다. 공급 확대는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일이고 세대 간 형평성을 맞추는 일이며 무주택자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다. 공급 없이는 또 시장에 질 뿐이다. 집을 가진 이들은 죄인이 아니고 집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반드시 주택 매입을 시도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선이 다가온다.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이 쏟아진다. 공급이 빠진 부동산 정책은 의미가 없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공급은 계속돼야 한다. 공급은 시장과 국민의 안정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
- 이야기쉼터 > 기자의 눈
-
- [명동 백작(들)의 영화이야기①]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처럼, 시대를 찾아 명동을 떠 돈 박인환
-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이 남긴 1950년대 영화 평론을 중심으로, 그가 살았던 명동 일대의 풍경과 전후 한국의 문화생활상을 추적한다. 짧은 생애 속에서 박인환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며, 시와 영화 너머의 시대를 들여다보는 일종의 탐사 역사 에세이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오동진 영화평론가] 일행과 강원도 인제를 향해 출발을 했을 때는 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고 날은 유난히 화창했던 때였다. 정치사적인 일력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이 결정이 난지 3주쯤이 지났을 때였다. 모두들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 피크닉을 가는 기분 같은 것이 차 안 내내 흘렀다. 서울에서 인제까지는 2시간 안쪽이면 충분하지만 그렇게 놀러 가는 기분은 차를 중간중간 휴게소에 꽤나 멈추게 했다. 그리고 살짝 길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산채촌이라는 산채정식 집에 들른 것은 운전을 하던 L의, 고집보다는 충고때문이었다. 도착해서는 먹으면 너 무 허겁지겁이 될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인제군 원통리 입구에 있는 음식점 ‘산채촌’을 들른 이유였다. 여기는 사실, 산채보다 능이백숙이 더 눈에 들어 오는 곳이다. 거기에 자신들이 재배하는 온갖 산채를 내놓는다. 꽤나 유명한지 주말에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하는데 찾는 사람들이 대체로 강원도 외지 사람인 모양이다. 노부부 주인도 강원도 사람이 아니다. 각각 충청도와 전라도 출신이라고 했다. 강원도 인제의 박인환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닭 백숙의 곡기가 마음을 채운다. 박인환과 관련된 글을 쓰겠다고 SNS를 통해 비교적 만 천하에 공지를 했을 때(?) 인제를 다녀오라는 댓글은 인디 라이터이자 문필가인 명로진 씨가 권했다. 그제서야 박인환 시인이 인제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거기에 그의 생가가 있겠군, 하고 생각했다. 박인환에 대한 글의 시작은 그렇게 미약한 것이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었다. 차원이 아니다. 그냥 시작 자체가 미약한 것이었다. 마치 어느 일요일의 여행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 이것이 창대하게 끝을 맺어야 하는 매우 괴랄한 프로젝트라는 깨달음의 물결이 뇌리를 덮쳐 왔다. 무엇보다 1950년대라는 시대의 벽을 넘는 것이 가장 큰 이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박인환이 불꽃처럼 살다 간 27살과 서른 살의 사이, 곧 1953년~1956년의 시대사를 궤뚫어야 한다는 자각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결국 이것은 꽤나 방대한 일이 될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박인환의 개인사에 맞추고 그가 거기서 어떤 반응을 했으며, 그래서 어떤 시어들이 나왔고, 그 과정에서 왜 그렇게 술을 마셨으며, 그런 그와 함께 시대와 문학을 한탄했던 사람들은 누구들이었으며 등등을 추출해 내야 한다. 이건 저널이 담당할 몫이 아니라 학계 일원이 해야 할 일이다. 이건 벌집이야!, 벌집을 건드린 셈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 둘까, 라고도 생각했다. 박인환의 흔적을 좇자고 생각했던 건 한국에 새롭게(새롭게라니?) 쿠테타가 일어나고 앙샹 레짐의 반동이 전국의 먹구름으로 뒤덮일 때, 그의 그 유명한 시 <목마와 숙녀>를 새삼 다시 들여다 보게 되면서였다. 박인환은 1955년 전설의 시 <목마와 숙녀>를 썼다. 한국인이라면 몰라서 안되는 시이지만 그가 이루어 만들고 다듬어 낸 시구의 어디메쯤 곳곳에는 전후 지식인의 통음이 들리듯 한 구절 한 구절이 하나같이 절절함이 느껴진다. 그 기이한 시대정신, 내가 직접 겪지 못했던 1950년대 명동의 대포집 은성의 막걸리 맛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은 남북 모두 피폐하고 빈곤하며 비루하기 그지 없을 때였다. 그는 당시의 시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시 <목마와 숙녀>는 역설적으로 사회참여적인 시, 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또 이렇게도 썼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목마는 하늘에 있고 /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 목메어 우는데』 작가 심아진은 언제가 박인환처럼, 어느 술집의 쓰러진 술병 안에서 목이 메인 채 이렇게 물었다.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니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작가 심아진이 궁금했던 것은 어떤 문학적 본능을 가져야 저런 시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자신에게는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은 시절이 왜 오지 않았었느냐를 자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 아니겠는가. 박인환의 시는 근 70년 넘게 사람들에게 기이한 판타지의 열패감을 준다. 생각해 보면 그건 꽤나 공정한 일인데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열등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인환처럼 한 줄도, 단 한 줄도 저런 시어를 내뱉지 못한다. ‘열등의 공정주의’는 박인환 시의 매력이다. 박인환의 시가 처했던 시대적 문제를 생각하면서 엉뚱하게도 네기시 키치타로 감독이 2009년에 만들었던 영화 <비용의 처>를 떠올렸다. 네기시 키치타로는 일본의 준 메이저 영화사 닛가츠의 로망 포르노 감독 출신이다. 영화 <비용의 처>는 1946년, 패전의 일본 사회,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내용이다. 다자이 오사무 원작의 소설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패전 직후 일본사회의 우울한 시대상이 잘 그려져 있으며 다자이 오사무의 그 유명한 염세주의가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마츠 다카코(<4월의 끝> <고백> <라스트 레터>)가 나오고 아사노 타다노부,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온다. 아사노 타다노부가 다자이 오사무이다. 제목의 '비용'은 중세말기 프랑스의 시인 프랑수와 비용을 의미하며 다자이 오사무 스스로가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다. 극히 퇴폐적이고 의도적으로 방탕함을 추구했던 인물이라는 얘기이다. 하여, '비용의 처'란 결국 '다자이 오사무의 처, 사치(마츠 다카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오오타니(아사노 타다노부)는 사치가 아닌 딴 여자(히로스에 료코)와 동반자살을 하려 한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참으로 기구한 과거들을 지녔지만 그들이 어울렸던, 삼각 사각으로 엇갈렸던, 사랑의 모습은 진실로 아름답다. 반면에 지금은 아름다운 척,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하면서도 사실은 살아가는 모습들이라는 게 비루하고 비겁하며 그렇게 위선적일 수 없는 때이다. <비용의 처>는 왜 영화가 종종 과거로 거슬러 올라 가고 고전을 뒤적이는 지를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1955년 시인 박인환이 느꼈던 6.25전쟁 전후의 비루함과 그 피곤함은 1946년의 다자이 오사무가 겪었던 그 마음과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2025년에 때아닌 군사 쿠테타를 겪었던 지금의 우리와 같은 것일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인제 박인환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찬란한 태양과, 능이백숙과, 상남면의 마트 풍경과, 무엇보다 이상한 시대적 우울감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박인환에 대한 추적의 이 글은 그리고 그 맥락은 그의 59편에 이르는 영화 평론을 중심으로 들어 왔다 나갔다를 반복할 것이다. 박인환은 놀랍게도 영화 평론을 썼다. 그건 뒤늦은 발견 같은 것이며 결국 이 원고 ‘명동백작(들)의 영화 이야기’를 쓰게 되는 단초가 됐다.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를 벗어나지 말며 여기서 끝내자,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공연히 시작을 창대하게 하지 말고 영화평론에 국한하는 미미한 시작으로 발을 떼자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이 2021년에 안양대 국문과의 맹문재 교수에 의해 책으로 묶여져 나와 있다. 박인환의 영화평론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시대의 이슈에 민감한 청년이었는 가를 깨달았다. 또 한번 삼천포로 빠지자면 박인환에 대한 후세의 평가라고 하는 것은, 쿠바에 갔을 때 체 게바라의 동상이 왜 수도인 아바나에 있지 않고 거기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산타 클라라에 있는 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동지 피델 카스트로는 사회주의 나라 쿠바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체 게바라가 현실 정치의 화신이 되기 보다는 영웅적 신화의 서사, 그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내다 봤을 것이다. 1965년 체 게바라가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아프리카 콩고로 떠났을 때 카스트로가 그를 잡지 않은 것은 게바라를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남겨 놔야 ‘자신만의’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닌 판타지의 인물로. 마찬가지로 전후 한국의 시단, 문학계는 박인환의 사회참여적인 면모보다는 그의 낭만성, 서정성을 앞으로 내세우는 게 전후 반공의 남한 사회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자신들이 생존해 내기에 더 편리할 것이라 내다봤을 확률이 높다. 박인환 시에 대한 기억을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에 가둬 놓고 그의 영화평론 글을 은폐시켰다. 그의 다른 시, 영화평론 글들이 다시 한번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한 우리는 1950년대의 박인환, 그가 겪었던 통음의 나날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명동백작(들)의 영화 이야기’의 연재가 박인환 영화평론과 그 시대의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박인환은 1955년 6월 잡지 <신태양> 4권6호에 1954년 외국영화 베스트 텐을 뽑아 기록했다. 영화평론을 같이 했던 허백년, 유두연, 이진섭, 이정선, 박태진, 이청기, 이철혁, 김소동, 오영진, 이봉래 등과 투표로 결정한 모양이다. 이들 모두 박인환과 함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들이었다. 1954년 한국 평론가들이 뽑은 외화 10위의 목록을 보고 있으면 기시감이 든다. 이들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음을 새삼, 생경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된다. 1위는 오손 웰즈의 <제3의 사나이>, 2위는 빈센트 미넬리 감독, 진 켈리 주연의 <파리의 아메리카인>, 3위는 장 콕토의 <오르페>, 4위는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주연의 <햄릿>, 5위는 <밤마다 미녀>, 공동 6위는 <챔피언>과 <심야의 탈주>, 8위는 ,물랭 루즈>, 9위는 <하이눈>, 10위는 <애상의 나그네>이다. 그 유명한 영화,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한 <하이눈>에게 왜 그렇게 박한 점수를 줬을까. 이들 외화를 수입했던 불이(不二)무역이나 국제영화, 동남영화사 등은 어떤 영화사들이었을까. 이들 영화는 대체 어느 극장에서 주로 상영됐던 것일까. 1950년대 전후의 황량했던 서울 도심가에는 어떤 극장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 참혹했던 빈한의 거리의 극장에서 명동의 백작(들)은 무슨 영화에 울고 웃고 했을까. 앞으로 연재 ‘명동 백작(들)의 영화 이야기’가 추적해 나가야 할 사안들이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빅 슬립>의 주인공 탐정 필립 말로우처럼 중절모를 쓰고 비오는 명동 거리를 헤집고 다녀 볼 참이다. 1950년대의 시인 박인환이 2025년의 우리를 살려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 늘 그런 법이다. ◀ 오동진 프로필 ▶ 고려대학교 사학과 학사 / 前 연합뉴스 기자 / 前 YTN 기자 / 前 <필름2.0> <씨네 버스> <엔키노> 영화 전문 기자 및 편집장 / 前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 前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 前 부산 동의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 /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 저서로 '작은 영화가 좋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등 다수가 있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 [최환종의 스쿠버 다이빙 시즌 5] 태국, 시밀란 리브어보드(7) Pineapple bay... 다이빙 중간에 일몰시간이 다가와
- [태국(시밀란)/뉴스투데이=최환종 전문기자] Turtle bay에서의 다이빙을 마칠 무렵 다양한 종류의 석산호 군락이 보였다. 맑고 깨끗한 바다물 속에서 석산호 군락과 그 주변에서 몰려 다니고 있는 치어 무리들을 보고 있으면 디즈니 만화 속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는 듯하다. 수중 시야가 너무 좋다보니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경치다. 산호 주변에서 처음 보는 녀석 한 쌍이 뭔가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녀석들은 이름도 거창하다. “Magnificent Rabbit fish”. 우리말로 하면 “멋진 토끼고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려나. 이 녀석은 머리는 흰색이고 주둥이에서 등지느러미까지 검은 띠가 있다. 마치 군인들이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른 듯 한 모습이다. 또 다른 특징은 몸 윗면은 검은색이고 아랫면은 옅은 색이며, 뒷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는 노란색이다. 주로 한 쌍으로 다니며 시밀란 섬이 있는 안다만해(海), 미얀마 등지에 분포해 있다고 한다. 두 번째 다이빙이 끝나가고 있었다. 출수 후에 보트로 돌아와서는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배정 받은 방으로 짐을 옮겼다. 두 번째 다이빙을 하는 동안 기존의 다이버들이 육지로 철수하였고 그들이 철수한 빈방은 보트의 스텝들이 청소를 해놓은 상태였다. 배정받은 방은 복도의 가장 끝 방(2인 1실)이었고 첫날은 필자 혼자만 사용했다. 여행 기간 중 혼자 사용했으면 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2명이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작년 초에 이용했던 배는 객실의 출입문이 바다쪽을 향했고 침대가 2층 침대라서 여러모로 불편했는데, 이번 배는 객실의 출입문이 모두 복도 안쪽을 향하고 있었고 침대는 개인 침대 2개가 따로 배치되어 있어서 사용하기에 훨씬 편했다. 욕실도 온수 공급, 수압, 배수 등이 양호해서 배 위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배정받은 방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는 이날의 세 번째 다이빙 준비를 했다. 입수 포인트에 대한 사전 브리핑 이후, 딩기 보트를 타고 입수지점으로 향했다. 세 번째 다이빙 포인트는 Pineapple bay. 다이빙 시간은 44분, 최대수심 20.6m(평균 수심 11.1m), 수온은 28도. 시정은 첫 번째 다이빙과 마찬가지로 매우 양호했는데, 입수 시간이 17:18이라서 다이빙 중간에는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일몰 시간이 다가올수록 시야는 조금씩 어두워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조류는 거의 없어서 편안하게 다이빙을 즐길 수 있었다. 입수하자마자 작은 녀석들의 무리가 지나간다. 여기서는 이 녀석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특징은 몸통에 황금색 띠가 있고, 갈라진 꼬리 끝에는 검은색 반점이 있다. 이름은 Fusilier(우리말로는 넓적퉁돔). 몸통의 황금색 때문인지 눈에 잘 띄고 귀여워 보인다. 이 녀석들은 최대 35cm까지 자란다고 하고, 이곳 안다만해(海)와 마이크로네시아, 프렌치 폴리네시아 등에 분포해 있다고 한다. 앞으로 나가는데 잭 강사가 바위 밑을 가리키며 손짓을 한다. 바위 밑을 보는데 처음에는 뭔지 식별이 안되었다. 랜턴을 켜고 보니 몸통이 보였고 크기와 무늬가 대왕 곰치 같았다. 몸통을 따라가며 시선을 머리 쪽으로 옮기자 대왕 곰치의 머리가 보인다. 정말 큰 놈이다. 대왕 곰치를 지나자 두 번째 다이빙 포인트(Turtle bay)에서 보았던 것 같은 녀석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무늬가 그 녀석과는 다른 것 같아서 촬영했다(위쪽 사진). 나중에 보니 전혀 다른 녀석이다. 이 녀석은 Blackened Butterfly fish로서 나비고기의 일종이며 안다만해(海)와 인도네시아 군도의 서쪽 끝까지 분포해 있다고 한다. 위쪽 사진은 이날 두 번째 다이빙에서 보았던 녀석으로 완전히 다른 녀석이다(Emperor Angelfish).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여단장,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現 국립한밭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
- 이야기쉼터 > 칼럼 > 최환종의 스쿠버 다이빙
-
- [신재훈의 광고썰전 (235)] 변우석의 팔도 vs 유재석의 배홍동 vs 최화정의 진비빔면 vs 이정재의 더미식, 비빔면의 계절을 알리는 반가운 광고 (하)
- [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반가운 비빔면 시즌을 가장 먼저 알린 최화정의 진비빔면 광고다. [오뚜기 진비빔면] 이제 비빔면도 손~크게! 양도 맛도 120% 만족 편 최화정이 젊은 커리어 우먼 역할로 등장한다 딸 최화정 : 엄마는 늘 말했어 최화정이 나이가 지긋한 전업주부 엄마 역할로 나온다 엄마 최화정 : (비빔면을 푸짐하게 비비며) 먹는 건 푸짐해야지 최화정 : (커다란 비빔면이 화면으로 쓱 들어오며) 손 큰 진비빔면 (엄청 많은 양의 비빔면을 손으로 열심히 비비며) 아낌없는 재료로 맛은 벅차고 / (비빔면을 크게 한입 맛있게 먹으며) 양은 그득해 오뚜기 진비빔면 / (입맛을 다시며) 아~후 매력 있다 푸짐한 재료에 넉넉한 양에 맛까지, 한 마디로 가성비 끝판왕 비빔면 컨셉이다. 신뢰감 듬뿍, 전달력 탁월, 맛 좀 아는 알뜰 주부 이미지의 최화정 캐스팅이 돋보인다. 특히 이 광고의 신의 한 수는 최화정의 역할이 단순히 먹는 역할이나 설명을 하는 나레이터가 아닌 비빔면을 직접 만드는 엄마 역할이다. 세상 엄마들의 수만큼 가장 맛있는 음식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좋은 식재료를 푸짐하게 사용하여 특유의 손맛으로 아낌없이 퍼주는 생각만 해도 입맛이 도는 엄마표 음식을 떠올리게 한다. 한 마디로 엄마 하면 떠오르는 모든 좋은 이미지를 다 담았다는 얘기다. 물론 아주 드물게 음식을 맛있게 못 만드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또한 엄마와 딸을 오가는 1인2역의 연기 변신 그리고 비비고 먹고 연기하고 나레이션하고 열 일하는 최화정의 투혼이 광고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다음으로 온에어된 이정재의 더미식 비빔면 광고다. [The미식] 매콤, 새콤, 깔꼼! 거봐, 아는 맛보다 더 맛있으니까! 편 세련된 하얀 스카프와 블루 정장을 시원하게 입은 이정재가 폼 나게 등장하고 매콤, 새콤, 깔꼼이 중독성 강한 리듬에 맞춰 계속 반복된다 카메라가 점점 더 빠지며 완전 화이트와 블루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세트를 배경으로 이정재와 젊고 세련된 옷을 입은 남녀들이 음악에 맞춰 감각적인 어깨춤을 춘다 이정재 : (비빔면을 맛있게 먹으며) 매콤, 새콤, 깔꼼하게 거봐, 아는 맛보다 더 맛있다니까 / 더미식 비빔면 음식 광고의 뻔한 공식을 파괴한 파격적인 광고다. 마치 명품 패션이나 화장품 여름 광고를 보는 듯하다. 깔끔을 매콤, 새콤의 은율에 맞춰 깔꼼으로 표현한 카피 센스도 돋보인다. 이 광고의 탁월한 점은 “아는 맛보다 더 맛있다”는 핵심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지속하는 브랜드 전략에 있다. 후발 브랜드로서 효과적으로 존재감을 알리는 방법은 정치에서 뒤처진 후보들이 가장 지지율이 앞서는 No. 1 후보를 공격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소비자에게 가장 익숙한 No. 1 브랜드와 싸우는 모습을 통해 No. 1과 싸우는 대등한 No. 2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No.1인 팔도비빔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먹어 온 그 익숙한 “아는 맛(팔도비빔면)”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 간 길들여진 익숙한 맛의 높은 벽을 광고 카피만으로 넘기는 어렵다. 설사 제품 자체의 맛이 뛰어나더라도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그들의 저서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언급한 “마케팅은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다” 라는 법칙처럼 더미식 비빔면이 팔도비빔면보다 더 맛있다는 소비자의 인식을 단기간에 만드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는 팔도 비빔면, 배홍동의 신작 칼빔면, 맛은 벅차고 양은 그득한 오뚜기 진비빔면, 아는 맛보다 더 맛있는 더미식 비빔면 등 광고하는 비빔면 종류가 많아진 만큼 어떤 비빔면을 먹을지 고민도 덩달아 많아진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3장 1막에 나오는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처럼 “어느 비빔면을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되었다. 햄릿처럼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어느 비빔면을 먹을지 정도의 가벼운 문제는 너무 복잡하게 고민 말고 심플하게 일단 한번씩 다 먹어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 비빔면 브랜드들의 노림 수 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신재훈 프로필 ▶ (현)BMA 전략컨설팅 대표(Branding, Marketing, Advertising 전략 및 실행 종합컨설팅) / 현대자동차 마케팅 / LG애드 광고기획 국장 / ISMG코리아 광고 총괄 임원 / 블랙야크 CMO(마케팅 총괄 임원)
-
- 이야기쉼터 > 칼럼 > 신재훈의 광고썰전
-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61)] 진급은 치열한 보직 쟁탈전의 승리자에게 우선(상)
-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하늘을 제패하는 공군은 조정, 정비, 방공, 기상, 헌병 등으로, 바다를 호령하는 해군은 항해, 기관, 통신, 해병대 등으로, 지상의 육군은 보병, 포병, 기갑, 공병, 정보, 정훈 등의 병과로 구성되어 제 병과가 협동작전을 수행한다. 각 병과에서 다시 인사, 작전, 군수, 동원, 기획 등의 주특기로 분류하여 기능별로 전문화된 보직에서 인사 관리를 한다. 진급은 각 병과와 보직에서 정상적이고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주특기별로 공석을 할당하고 각군 본부에서 삼심제 심사를 통해 우수자원을 선발한다. 필자는 육군의 보병 병과에 작전(530) 주특기이었다. 당시에 중령이었던 필자는 작전(530) 주특기의 필수보직인 사단 작전참모 보직을 반드시 마쳐야 대령 진급이 유리해진다. 따라서 대대장 근무를 마친 작전 주특기의 장교들은 어떻게 해서든 사단 작전참모 보직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돌이켜보면 전임 사단장 조영호 장군이 대대를 방문할 때마다 “대대장 근무가 언제 끝나냐...? 빨리 대대장 마치고 사단에 들어와 정보참모로 사단장을 보좌해야지..”라고 차후보직을 선발해주어 일단은 안심하고 있었다. 왜냐면 정보참모를 마쳐야 바로 이어서 작전참모로 근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단 인사참모 김기영 중령이 사단 참모 보직을 검토하면서 필자에게 연락하여 다른 부대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타진을 해왔었다. 아마도 그가 개인적으로 인연이 닿은 다른 장교를 염두에 두었기에 필자에게 스스로 사단 참모 보직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길 종용했던 것 같다. 필자는 인사참모에게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사단장은 필자에게 사단 참모로 들어오라고 몇 번을 이야기 했는데 인사참모의 의견이 사단장 뜻이냐며 필자가 사단장에게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자, 그는 당황하며 “아니, 필자가 유능하니 더 좋은 곳으로 보직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시했다”며 뱉은 말을 급하게 정정했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진급을 위한 살벌한 보직 쟁탈전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 사단 정보참모로 보직된 후 계속된 타참모들의 견제와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다음 만남을 위한 이별 사단 정보참모로 보직된 후에도 타참모들의 견제는 계속되었다. 이 역시 우수한 평정을 받기위해서 본인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참모들이 실수하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특공여단에서 충주대대장 근무를 마치고 사단 작전참모 근무중인 구인회 중령(삼사14기) 만이 후배인 필자를 아끼며 감싸줘 감사했다. 한편 신임 사단장 김선필 장군은 절실한 크리스찬으로 본인은 술을 한잔도 못했지만 회식이 있을 때에는 본인은 청량음료를 마시면서도 참모들에게는 술을 권했다. 그래서인지 모임에서 과도한 음주를 지양하면서 가벼운 회식을 지속적으로 열게 되었다. 어느날에는 사단장의 지시도 없었는데 참모들만의 회식도 추어탕 한그릇으로 1시간만에 종료되며 점점 지휘관을 닮아가는 참모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역시 군대는 지휘관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집단이라 참모 보직의 절대적인 결정권은 사단장에게 있었다. 정보참모를 시작하면서 어느덧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고 12월이 되자 많은 외부 기관 및 주요인사들의 격려 위문이 계속되었다. 마침 전 국방부 차관이었던 이정린 장군이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인근 꽃동네 방문을 요청하여 참모장은 사단사령부에서의 환영행사를 마치고 천주교 신자인 필자에게 사단장을 수행하여 이 국방차관을 안내하도록 조치했다. 오웅진 신부는 이미 이 차관과 안면이 있는 상태라 매우 반갑게 맞이하면서 꽃동네를 안내했다. 고(故) 최귀동 할아버지는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하며 일반 민가에서 얻어온 밥을 데리고 있던 장애자와 고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오 신부님의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감동을 받은 이 차관이 복귀하자,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별로 한일이 없이 수행했던 필자에게 사단장은 수고했다고 격려를 보냈고, 이런 결과도 타참모들에게는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연말이 되자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처럼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많은 전우들이 보직을 옮겼다. 조영호 사단장을 비롯하여 김현석, 우종문, 김유봉 참모장과 대대장 시절에 각별하게 챙겨주었던 권재모 감찰참모도 타부대 전출과 전역을 위해 모두 출발했다. 그리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청원군수에게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했던 당시에는 공병대대장이었고([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5)] ‘민관군통합작전체계를 빛낸 변종석 청원군수의 애군심(愛軍心)(하)’ 참조) 이어서 사단 군수참모 보직을 마친 권태환 중령도 떠났다. 하지만 치열한 보직 및 진급 전쟁 속에서도 동기생인 권 중령은 필자에게 “너는 장군될 사람들만 모셨고, 네가 모신 사람들은 대부분 장군이 되었다. 아마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며 희망을 심어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
- 이야기쉼터 > 칼럼 >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
-
- [데스크칼럼] '한국 제조업 공동화' 트럼프 탓만 할 텐가
-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전쟁'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뉴노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화려한 슬로건 뒤에는 한국 등 주요 교역국 경제를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정책(Beggar thy neighbour)'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그는 미국 경제가 교역 대상국 때문에 망쳤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피아 구별 없이 관세 폭탄을 매몰차게 떨어뜨리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때 세계 정치 경제 무대에서 뚜렷한 리더십과 1등 국가 면모를 보여준 시절은 지나가고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 'G-제로'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지 않는가. 막말과 기행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달인'이라는 꼬리표에 걸맞게 협상전략도 모두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든다. 그는 교역국이 미국에 맞서는 공동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미국 눈치를 보며 협상해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는 협상국 운신의 폭을 좁혀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모두 얻으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중국처럼 예외도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경제 대국 'G2'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은 미국과의 정면충돌이라는 치킨게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세다. 미국과 중국 양측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면서 두 나라 가운데 누가 먼저 벼랑 끝에서 핸들을 돌릴지 모른다. 게임이론에서 파생된 치킨게임은 '해피엔딩'이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치킨게임은 '신뢰의 비대칭성' 때문에 공생이 아닌 공멸이라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미-중 갈등은 '21세기판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 잡은 맹주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급부상에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두 나라는 경제·정치 패권을 놓고 무려 30년에 걸친 지리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휩싸였다. 그 결과 두 나라는 모두 패망의 길을 걷게 됐다.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긴 자가 어느 날 자신을 추월했을 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전철을 미국과 중국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근간 MAGA의 핵심은 결국 미국 제조업 경쟁력의 복원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으름장을 놓은 행태는 미국 제조업의 근본적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베리 앨런 블루스톤(Barry Alan Bluestone)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베넷 해리슨(Bennett Harrison)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1982년 함께 발간한 저서 '미국 제조업 공동화(The Deindustrialization of America)'를 읽어보면 트럼프 분노가 대부분 왜곡됐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제조업 공동화는 미국 강성노조 등장에 따른 제조업 임금 급등과 금융-서비스업 집중 육성이라는 미국 경제정책의 결과물이다. 1970~80년대 미국 기업은 강성노조의 출현과 높은 인건비, 노동생산성 저하에 미국 내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때 미국 제조업 메카였던 오하이오주(州),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미국 북동부 지역은 제조업 몰락으로 녹슬어 버린 공장을 묘사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상징물이 됐다. 미국의 예가 보여주듯 기업이 수익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는 과도한 임금 상승은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똑같은 해법이 나온다. 제조업 기반을 외국으로 옮기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제조업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미국 근로자 임금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한 국제무대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와 함께 국제분업 장점도 트럼프가 간과한 대목이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 '비교우위이론'은 한 국가에서 모든 상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품을 상호 교역하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를 통해 세계 경제는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열매를 나눠 가졌다. 리카도 주장처럼 제조업체가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을 하려면 수익 구조 개선이 절대적이며 이를 위해 저렴한 해외 생산국에서 만든 부품을 활용하는 게 기본이다. 미국 역시 세계화에 중국 등 해외 시장을 활용해 가장 혜택을 많이 누린 국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트럼프는 이 모든 것을 바꾸려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외치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가 현실이 되면 미국산 제품 가격은 현재보다 최소 2배 이상 치솟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 소비자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가격정책이 과연 미국을 위대하게 하고 미국에 경제적 편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트럼프 관세 정책은 우리나라 제조업계 발등에도 불을 떨어뜨렸다. 이른바 '트럼프 발(發) 제조업 블랙홀' 현상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그룹이 앞다퉈 짐을 싸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국내 제조업 기반은 더욱 취약해지고 국내 고용을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최근 10여 년간 국내 제조업 현황을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국내 제품이 중국산 저가 제품에 추격당하고 선진국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현상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가운데 8개가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업 경쟁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국내 주력 제조업이 트럼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한국판 러스트 벨트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제조업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상황에서 제조업 위기는 산업 공동화와 경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뇌관이다. 이에 따라 현 정부는 물론 오는 6월 3일 새롭게 탄생하는 새 정부는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국내 기업 흐름을 관리하고 국내 고용 창출을 더욱 늘리도록 하는 게 최대 경제 현안이 됐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국내 제조업 기반이 어려운 상황에서 강성노조가 맹위를 떨치고 반(反)기업 정책이 춤을 추며 강자는 나쁘고 약자는 옳다는 '언더도그마', 공산주의 중국에도 찾아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반기업 정책이 속출하면 제조업의 탈(脫)한국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급증할 것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를 위협해 제조업 기반을 흔들고 있지만 한국은 트럼프 정책만이 제조업 뿌리를 송두리째 훼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복합 위기 파도가 밀려오는데 기업이 투자를 늘려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고 고용 창출에 적극 나서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진보세력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분배정책을 펼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기반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 제조업의 해외 엑소더스를 막는 해법의 열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쥐고 있는 셈이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데스크칼럼
-
- [민병두의 이슈산책] 국민통합은 무엇인가, 이재명의 국민통합은 가능한가?(5) 이재명의 국민 통합
-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⑥ 이재명-“민주주의 복원이 국민 통합의 길이고, 성장 회복과 격차 완화가 국민 통합의 길”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국민통합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우뚝 설 것인지,파괴적인 역주행을 계속해서 세계의 변방으로 추락할 지가 결정되는 역사적 분수령입니다….이념과 사상 진영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시간이 없습니다.더 큰 퇴행과 역주행으로 30년, 50년 후의 국가미래를 망칠 여유도 없습니다. 트럼프 2기가 불러온약육강식의 무한대결 세계질서,AI 중심의 초 과학기술 신문명시대 앞에서,우리 안의 이념이나 감정 이런 것들은 사소하고도 구차한 일입니다.어떤 사상과 이념도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상과 이념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 앞에서는 무의미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모방 능력’을 넘어 주도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한 걸음만 뒤처져도 추락 위험을 안은 추격자 신세지만,반 발짝만 앞서도 무한한 기회를 누리는 선도자가 됩니다….우리가 함께 하면,무질서와 분노, 상처와 절망은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이 피어날 것입니다.우리가 함께 손잡으면, 불의와 거짓, 분열은 멈추고 정의와 통합의 강물이 흘러넘칠 것입니다.온 국민이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가면, 추락하던 이 나라는 광대한 세계로 날개 치며 솟구칠 것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 수락연설에서 인상깊은 부분이다. 깊은 고민에서 나온 언어의 배열이다. 국민통합이, 잘사니즘이 국민행복으로 가는 최고의 길이라는 선언인데 저 정도 표현을 했으면 국정철학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박정희 박태준 묘역도 찾고, 윤여준도 선대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석연 권오규를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내란세력만 제외하고 전 국민이 함께 가자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통합의 개념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은 화려한데 결과는 엉터리가 될 수 있다. 국민통합을 정치제도, 정당간 대결로 볼 것인지, 경제적인 것으로 볼 지에 따라 다르다. 사회적인 것까지 확대하면 다문화, 혐중, 은둔청년등 더 복잡해진다. 국민통합을 분열을 최소화하고 에너지를 모으자는 쪽으로 한정하면 또 접근방법이 달라진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외완위기 금모으기, 태안반도 기름유출 자원봉사같이 위기시에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사회자산을 뜻하는 것인지 집권자의 입장에서는 뚜렷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 정치보복하지 않는 것이 국민통합이다! 김대중은 박정희를 용서했고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했다. 노무현은 불법선거자금 수사를 하면서 경쟁자였던 이회창까지는 건드리지 않았다. 노무현 수사를 방조한 이명박, 이재명을 탈탈 턴 윤석열과 비교된다. 이재명은 보복할 대상이 사실상 없어졌다. 이미 윤석열은 내란 우두머리가 되었다. 남은 것은 군과 검찰 경찰에 있는 내란 동조세력뿐이다. Ⓑ 적폐청산과 내란 진압 문재인은 적폐청산의 대상과 기간에 대한 정확한 전략이 없어보였다. 이재명 시대에 윤석열을 처단한다고 해서 국민통합에 저해된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내란에 가담한 핵심세력들을 얼마나 핀셋처럼 축출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문재인은 박근혜를 사면했다. 이재명은 윤석열을 사면하지 않아도 공격받지 않을 것이다. 김건희는 글쎄, 지지자들은 V1을 처단하고 싶을 것이다. 끝장을 내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내란의 원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적당한 선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냥을 즐기는 듯한 태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 내란세력이 국정운영의 동반자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 정당이 되었다. 문재인은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생각했다. 이재명은 그래도 협조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이재명정부가 입법부도 완전 장악해서 독재를 하고 있다는 역공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할 것이다. 그러다가는 또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속도를 내면서 야당의 협조를 얻는가가 고민이 될 것이다. 야당에서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중에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관계 형성도 달라질 것이다. Ⓓ 통합의 제도화 이재명은 민주주의의 복원이 국민통합이라고 했다. 윤석열이 교도소에 있고,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복원된 것은 아니다. 12.3 비상계엄에서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우리 민주주의의 허점을 발견했다. 이제 개헌을 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 2026년 바로 다음해에 지방선거가 있다. 이때까지 개헌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집권자에게는 두가지 유혹이 있다. 하나는 시기 조정이다 2028년 총선으로 늦추고 싶을 것이다. 과거에는 개헌논의가 모든 것을 빨라들이는 블랙홀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시대이다. 2028년으로 가면 또 시기를 놓친다. 다음은 개헌의 주체다. 집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개헌안을 내놓고 싶겠지만 그것은 여의도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거버넌스를 고쳐서 7공화정을 여는 것만으로도 다음 대통령은 큰 업적을 남기는 것이다. 국회가 했어도 그 물길을 열어준 것은 대통령으로 인식된다. 1987년 이후 정착된 승자독식의 체제를 수정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다당제 연합정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내각제 개헌이다. 내각제와 다당제가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완전한 지역정당 극우정당의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협치는 제도적으로 강제된다는 장점이 있다. 소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혼합, 국회의원 정수 증원을 통한 비례대표 의석 비율 대폭 확대 등 논의해야 할 것이 많다. 대통령제로 간다면 분권형 대통령제 및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 Ⓔ 인사가 만사다 대통령의 처음 100일은 중요하다. 첫 100일이 1년의 성패를 좌우한다. 이명박이 첫 100일에 휘청거린 사례가 있다. 첫 100일을 성공적으로 보낸 것은 문재인이다. 인사로 덕을 봤는데, 그런 인기영합적인 첫 조각이 그 다음에 문제가 됐다. 탕평인사를 하면 정부가 동질성을 잃고, 거국내각을 구성하자면 참여를 구하기 어렵고, 순혈인사를 하면 보은인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중심은 확고하게 하되 동심원을 넓히는 것이 마땅한 방향인데, 자리가 제한되어 있다. Ⓕ 영수회담의 정례화 미국에서 9.11테러는 초유의 국가위기다. 당시에 대통령 부통령 상하양원 여야 원내대표, 하원의장까지 7명이 수시로 모여서 위기타개책을 논의했다. 그 시기를 제외하면 21세기 미국 역사에서 민주 공화양당은 늘 싸웠다. 노무현은 “정치란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이므로 정치인은 항상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직업이다”이라고 했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부분을 대표한다. 대통령은 전체를 대표할려고 하지만 자신의 방향이 있다. 갈등할 수 밖에 없다. 다음 집권을 노리는 야당과 정부는 궁합이 맞지않는 것이 근본적인 특성이다. 영수회담은 합의를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만나는 것이 되었다. 정부와 야당의 긴장이 최고점에 달할 때 만나는데 합의가 될리 없다. 영수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 대표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정세균은 ‘영수회담의 날’을 만들어 수시로, 정례적으로 만날 것을 제안했다. 좋은 제안이다. 만남을 정례화하면 갈등이 줄어들지 않겠냐는 기대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영수회담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떨어진다. 야당 대표가 선명성을 잃어버렸다는 소리가 나온다. 당에서 외면당한다. Ⓖ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국민 지금 우리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국민으로 살고있지 않다. 태극기와 응원봉으로 나뉘어 있다. 서로 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통역이라도 두고서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태극기부대는 이재명이 당선되면 우리나라가 공산화되는 것이고, 곧 공산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해서 100일이 지나도 배급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그들은 뭐라고 그럴까?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북한 공산당이나 중국공산당이 우리나라를 공산화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통합에 대한 고전적인 정치적 견해를 선보인 이는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다. 정치가이자 소설가였던 디즈레일리는 1845년 발표한 <시빌 또는 두 국민>이란 소설에서 영국의 ‘두 국민(two nations)’, 즉 부자와 빈자를 ‘한 국민(one nation)’으로 통합해야 함을 역설했다. 디즈레일리는 토리당(현 보수당) 출신의 제국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였다. 그가 통합을 내세웠던 것은 19세기의 만연한 불평등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하여, 당시 보수가 변화와 변혁을 앞세운 진보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기득권 옹호를 넘어선 통합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요구됐다. 이처럼 서구사회에서 통합은 진보라기보다 보수의 가치였다.”(김호기 교수) 그때는 유럽에서 공산당이 자본주의 모순을 격렬하게 비판할 때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고 했다. 이들이 급진세력을 포섭하려고 한 것이 통합이고,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안전망이었다. 지금 국민통합은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정부에서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성장회복과 격차완화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 사회갈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다른 믿음을 가진 집단에 대해 그 믿음이 틀리다고 지적하는 것은 올바른 설득의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매일 매일 그들의 소리를 경청할 시간도 없다. 전광훈은 고립이 되게 놔두고 손현보 목사 세력까지를 포용의 최대한으로 상정할 수 있을까? 김대중이 집권 후 이후락 보고 맘편하게 국내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한 것처럼, 전한길이 부정선거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유럽국가들처럼 허위사실을 선동하는 유튜브에게 책임을 묻게 하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 성장 회복과 격차완화 이재명이 정의한 대로 성장회복과 격차완화가 국민통합이다. 양극화의 그늘에서, 소외의 뒷켠에서 극우파시즘과 음모론이 성장한다. 그것을 생산해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다.그것을 소비하면서 존재가치를 느끼는 집단이 있다. 결국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이재명은 수락연설에서 “약육강식의 무한대결 세계질서,AI 중심의 초 과학기술 신문명시대 앞에서,우리 안의 이념이나 감정 이런 것들은 사소하고도 구차한 일입니다.어떤 사상과 이념도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상과 이념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 앞에서는 무의미합니다.”라고 했다.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가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면서 52시간 노동을 갖고 벽에 부딪히자 노사 양쪽을 불렀다. 사용자 측은 정말 아주 극소수의. 연구직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노동자 측은 저렇게 예외를 허용하면 전체 둑이 무너진다고 했다. 이재명은 이것이 이념과 진영이 만든 벽이라고 생각했다. 공개토론을 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생기고 진영논리가 허물어지고 스몰딕 빅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역대 어느 정권도 양극화해소를 통한 국민통합을 원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5년 이내에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는 없다.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들면 그것이 자산이 되어 크고 작은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이재명의 공론장과 정부의 조정자 기능에 기대를 해본다. 그렇게 할려면 지금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이상의 사회적 타협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끝)
-
- 이야기쉼터 > 칼럼
-
- [민병두의 이슈산책] 국민통합은 무엇인가, 이재명의 국민통합은 가능한가?(4) 문재인의 국민 통합
-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④ 문재인-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문재인은 2017년 대통령 후보로서 첫 행보는 역대 모든 대통령의 묘역 참배였다. 문재인 후보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은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서거 순서대로 참배를 마쳤다. 전날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했던 ‘국민통합’의 의지를 담은 동선이다. 2012년 대선 때는 “형식적인 참배는 하지 않겠다”며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묘역을 찾지 않았었다. 그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저는 전국에서 고르게 지지받는 지역통합 대통령, 청년·중년층·노년층에서 고르게 지지받는 세대통합 대통령·보수·진보를 뛰어넘는 국민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취임식(2017년 5월 10일)에서도‘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통합을 강조했다. 1호공약인 적폐청산과 촛불이라는 단어는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 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드리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우리 국민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켜 마침내 오늘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 진보 갈등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문재인은 취임식이 끝나자 약속한 대로 야당 당사를 방문했다. 대선 경쟁 당시 '적폐' 발언으로 날을 세웠던 자유한국당 당사를 찾아서는 '동반자'라는 표현을 썼다. 적폐 청산의 대상이냐, 국정의 동반자냐 하는 규정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시간과 야당을 적폐집단으로 보는 시간이 상당 기간 겹쳤다. .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2017년 10월 16일, 법원의 구속기간 연장 결정에 대한 박근혜) 박근혜가 정치보복을 당했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박근혜가 구속되어도 적폐청산은 계속되었다. 2017년 11월 6일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변 아무개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은 검찰 내부에서 적폐청산 출구 전략을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검찰총장 문무일은 적폐청산 수사를 년내에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적폐사건 수사팀장 윤석열이 반발했다. 청와대도 연내에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때 마침 이명박이 연루된 다스 비자금 수사가 검찰에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이명박은 얼마 안있어 퇴임후 6년만에 포토라인에 섰다. “다만 바라는 것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다는 말씀드린다"(2018년 3월 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이명박) 검찰은 횡령과 뇌물 혐의로 이명박 구속 영장을 청구했고 2018년 3월 22일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친노 친문 진영의 숙원이 해결된 순간이었다. 청와대는 스스로에게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겠다는 다짐을 깊이 새긴다‘라며 짐짓 표정관리를 했다.“(검찰국가의 탄생. 서해문집, 이춘재 지음) 문재인은 취임식에서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적폐청산은 임기 내내 이루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촛불혁명의 면에서 볼 때 적폐청산은 정의이고, 정의이기 때문에 국민통합으로 보여졌다. 현실정치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가 야당을 방문해서 동반자라고 한 것은 현실인식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적폐청산을 하고,어떤 목표를 세우고, 야당과는 어떤 관계를 수립하겠다는 전략이 분명하지 않았다. 적폐청산과 동반자관계는 방향이 다르다. 어느 시점이 되니 적폐청산으로 인한 적대감은 문재인에게 쌓이고, 그로 인한 호응은 윤석열에게 돌아갔다. 집권 2년이 되던 시기에 문재인은 사회원로를 초청해서 간담회를 가졌다.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고 있다. 가장 힘들게 생각되는 것은 정치권이 정파에 따라서 대립이나 갈등이 격렬하고 또 그에 따라서 지지하는 국민 사이에서도 갈수록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들이 가장 걱정스럽다…과거 어느 정부보다는 야당 대표들, 원내 대표들을 자주 만났지만 야당의 비협조로 협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개탄했다. 반대로 야당은 적폐집단으로 몰아놓고 무슨 대화며 협치냐는 입장이었다. 문재인은 취임식에서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차 있다,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한다”고 말했다. 그 청사진이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였다. 성장은 혁신으로, 사회적 최저한은 소득주도로,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것이 공정경제였다. 문재인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했다. 그대로 되면 국민통합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았다. 문재인은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을 열겠다고 했다. 첫 번째 문은 '일자리 혁명의 문'이다. "일자리가 민생이고, 성장이고 복지"라며 "범정부적인 일자리 혁명 추진"을 약속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서 정부가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두 번째 문은 '복지국가의 문'이다. "민주정부 10년은 복지국가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이 모자랐다"면서 "격차 해소가 국정의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는 '힐링대통령'이 될 것"이라면서 "한 번의 실패가 낙오로 이어져선 안 된다. 재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세 번째 문은 '경제민주화의 문'이다.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경제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경제 분야부터 '공평'과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많은 약속을 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은 난도질을 당했다. 자영업자들이 먼저 반발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는 취임식에서 "대통령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발전이 될 것이다. 불가능한 일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했다. 윤석열과 갈등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사과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⑤ 윤석열- 말로만 5.18 정신 헌법 전문 윤석열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그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고 했다. 2022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보수 정당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민주묘역 정문인 민주의 문을 통해 입장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새로 꾸린 내각과 대통령실 비서진이 대통령 특별열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왔다. 박근혜가 한사코 제창을 거부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도 따라 불렀다. 이 역시 보수정당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의힘도 처음으로 당 차원에서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6월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승리한 것은 물론이고 호남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광주시장 선거에서 주기환 후보는 15.90%, 전남도지사 선거에서 이정현 후보는 18.81%, 전북도지사 선거에서 조배숙 후보는 17.88%를 얻었다. 15% 이상을 득표하면 선거비 전액을 국고에서 돌려받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호남에서 이같이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박근혜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광주 9.83%, 전남 10.0%, 전북 13.22%를 얻어 10%를 돌파한 기록을 깼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의 2022년 3월 광주 12.72%, 전남 11.44%, 전북 14.42% 기록도 가볍게 넘겼다. 국민통합의 관점에서 5.18을 대한 것이 아니라 서진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마저도 식언을 했다 . 취임사에서 통합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그는 반지성주의와의 싸움을 얘기했다. 결국 조국 추미애와 맞선 1차 쿠데타에 이어 군을 동원한 2차쿠데타로 나라를 극심한 분열로 몰아넣었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 [민병두의 이슈산책] 국민통합은 무엇인가, 이재명의 국민통합은 가능한가?(3) 박근혜의 국민 통합
-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③ 박근혜 –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국민통합 박근혜는 ‘독재자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 박정희’라는 두가지 유산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의 캠페인 전략은 어두운 면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2012년 9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시절에 박정희 시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박근혜는 그동안 박정희 시대에 대해 "공도 있고 과도 있기 때문에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다급해졌다.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는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 뱉는 것을 원하는 원하시는 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며 말문을 열 때는 눈이 충혈되고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경제발전을 위한 아버지의 고뇌는 진심이었지만,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사과했다. 부모를 잃은 자신의 입장을 거론하면서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저의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를 비롯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 과거사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인권 침해로 고통을 받았고 현재도 그 아픔이 아물지 않은 이들이 당장은 힘들더라도 동참하면 국민대통합에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국민대통합 100% 대한민국, 국민행복은 저희 가장 큰 비전"이라며 "100% 대한민국은 1960~70년대 인권침해로 고통을 받았고 현재도 그 아픔이 아물지 않은 분이 동참할때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인혁당 피해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2012년 대선을 앞둔 12월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The Dictator’s Daughter)이라고 표지에 소개했다. 타임은 애초 커버 사진에는 영문으로 The Strongman’s Daughter라고 썼으나 한국에서 실력자와 독재자 해석 논란이 일자 인터넷판 제목을 바꿨다. 100% 대한민국은 박근혜가 출마를 하면서부터 시종일관해 온 말이다. 2012년 7월 10일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박근혜는 야당과 진보 진영이 내세우는 ‘99%를 위한 정치’도 분열이라고 단정했다. “야당은 이번 총선을 1%대 99%의 대결로 몰아가고 표를 얻기 위해 노골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나 우리 새누리당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국민을 편가르거나 선동하지 않고 100%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 “어떤 국민도 홀로 뒤처져 있지 않게 할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같이 갈 것이다.” "국민대통합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한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모든 세대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높여 계층 간 갈등과 양극화 문제를 완화하겠다" 세상에 100% 대한민국은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가능하지 않다. 구호로 가능할 뿐이다. 박근혜는 이것이 현실로 들리게 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들고 나왔다. 상대방 진영의 주장을 가로챘다. 선점했다. 박근혜가 당선되었다. 박근혜는 당선 기자회견에서도 "모든 지역의 성별과 세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여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통합의 시작은 지역균형발전과 차별 인사 철폐라고 강조했다. 박근혜는 대통령 직속 기회균등위원회를 설치해 성별과 학력, 출신지역,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인사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당선된 후에는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노무현은 국민대통합연석회의, 이명박은 사회통합위원회를 만들었섰다. 박근혜는 동교동계 정치인 한광옥을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첫 회의에 직접 참석했다. ”국민통합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기본토양이라고 생각한다.” 그 뿐이었다. 박근혜 100일 인사는 실패했고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이 드러났다. 유신공주 얼음공주는 얼음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째려보면 얼어붙었다. 아는 사람만 쓰는 수첩인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수첩공주가 수첩대통령이 되었다. 학계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가장 독선적인 정부라는 소리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때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국가가 없었다. 경제민주화는 야당에 의해서 허가 찔렸다. 당시 민병두 의원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가 공히 얘기했으니 시대정신이나 다름없다며 공통공약을 이행하자고 했다. 패자인 야당이 승자의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가 받았다. 이때부터 경제민주화 입법에 속도가 가해졌다.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하도급법) 법안,상장회사 임원 보수 공개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법, 대리점 사업법, 부당특약을 금지하는 하도급법,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등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경제 민주화는 우선순위가 가장 앞선 공약이었다. 박근혜 당선자는 2012년 12월 26일,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단체연합회를 방문해 “경제가 살려면 중소기업이 잘돼야 한다. 중산층 70% 복원 약속도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이 중심이다”라고 했다. 그러다가 2013년 4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에 대해 “내 공약 내용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는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속도 조절론을 들고나왔다. 그해 7월에는 “경제 민주화 주요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돼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투자하는 분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까지 했다. 경제민주화 종료선언을 해버렸다. 박근혜는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꿈도 얘기했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0세에서 5세까지 영유아 보육 국가완전책임제와 우리나라의 심각한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연금 도입(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등은 최우선 공약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대부분의 공약이 흐지부지해졌다. 2015년 4월 유승민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는 유승민을 문중에서 내보내다시피 했다. 그렇게 박근혜의 국민 통합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 [민병두의 이슈산책] 국민통합은 무엇인가, 이재명의 국민통합은 가능한가?(2) 노무현의 국민 통합
-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② 노무현 – 지역주의 타파와 지역균형발전이 국민통합 “지역 대결의 정치가 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지역구도 때문에 영남 대통령이 호남에 가면 구 의원도 안 되고, 호남의 대통령은 이 부산에 오면 구 의원도 되지 않는 이런 정치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나라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의 반쪽 지도자가 아니라, 전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과 화합의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노무현은 부산으로 향했다. 2000년 총선에서 노무현은 정치적 사지였던 부산에 출마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부산에 내려온 이유가 통합과 화합이라며 표를 호소했다. 부산 시민은 그를 외면했다. 노무현은 부산 시민을 탓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노무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를 두고 희망을 얘기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인터넷에선 자발적 팬클럽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가 탄생했다. '바보 노무현'을 좋아하게 된 사람들은 모임을 만들었다. 2000년 6월 6일, 대전대학교 앞 조그만 PC방에 60여 명이 모였다. 그곳에서 시작했다. 2000년 5월 24일, 총선에서 패배한 지 얼마 안 지나 노무현은 차기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결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부산에서의 당선을 딛고 부산 시민의 지지를 모아 차기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여 성공함으로써 동서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늘 그는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을 입에 달고 다녔다.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국민통합을 말했다. “정치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이 주인인 정치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당리당략보다 국리민복을 우선하는 정치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대결과 갈등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푸는 정치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저부터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겠습니다.”(2003년 2월 25일)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탄핵에 부딪혔다. 한때 직무도 정지되었다. 야당과 대화하고 협치하겠다는 그의 소망은 애초부터 벽에 부딪혔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원내 1당이 됐지만, 다음 해 4월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면서 2당으로 전락했다. 노무현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원래부터 그가 생각한 바였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내각제 수준의 연정을 하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이 반발에 부딪히자 그는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2005년 7월 28일)을 통해 대연정 제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응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야당도 함께 참여하는 대연정이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제안은 두 차례의 권력이양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입니다. 굳이 중대선거구제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어떤 선거제도이든 지역구도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당장 총선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 합의만 이루어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고 그리고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하여 만들면 됩니다. 우리 정치의 많은 문제가 지역주의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지역구도 하에서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기는 길은 끊임없이 상대방 지역과 상대 당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자극하고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의정활동도 오로지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를 중심에 놓고 대결하게 됩니다. 지역으로 편을 가르고 대결이 심화될수록 지역민심은 더욱 단결하는 구조이니 정책정당도 대화정치도 설 땅이 없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구도는 끊임없이 우리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매우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지난날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가 국난을 당할 때마다 분열이 있었습니다. 지도층의 분열, 지도층과 국민의 분열이 국난을 불러왔고 또 분열 때문에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여 국난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일을 하자면 우리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 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하기만 하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대연정 제안은 여야 모두로부터 거부당했다. 독재의 후신, 차떼기당과 연정을 할 수 없다는 열린우리당의 반발이 거셌다. 한나라당에서도 반대했다. 중대선거구제를 하면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진출이 가능하지만,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진출이 어렵다고 계산을 했다. 또 야당 입장에서는 연정에 참여해서 얻을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다. 게다가 양당제이다. 정부가 실패하면 그 책임이 연정에 참여한 야당에게도 돌아간다. 정부가 성공하면 야당의 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노무현은 2007년 9월 6일 아펙(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면서 김경수 연설기획비서관에게 메모를 건네며 기록용으로 남겨두라고 지시했다. *대연정과 관련하여-대통령의 생각은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이상은 높은 곳에 있었고 정치 현실은 여소야대 일방통행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또 한가지, 노무현의 국민통합은 지역균형발전이다. 그는 충청 지역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했다. 그의 꿈은 절반만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있다면서 제동을 걸었다. 다음 정부에서 개헌으로 세종시에 대통령실과 국회가 이전을 하게 되면 노무현의 이 꿈은 완성된다. 하지만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의 변경이 이루어질지는 불분명하다. 대구 경북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어 민주당이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이 의원을 배출하여 꼴통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지역주의가 타파되면 정당의 일극화를 막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해질 수 있다. 그는 사후에 발간되 회고록에 이런 말을 남겼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노무현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국민통합이고, 지역주의 타파이다. 노무현은 정권을 넘겨주었다. 그의 검찰개혁은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다. 이명박은 취임사에서 “여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 국회와 협력하고 사법부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뜻을 존중한 이명박에 의해 노무현이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 노무현이 추진해왔던 국민통합은 물거품이 되고 치유하기 힘든 분열과 증오의 시대가 열렸다. 2007년 11월 초에는 측근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이므로 정치인은 항상 상대를 쓰러뜨려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니 공격하는 나 자신도 공격받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견뎌내기에는 어려운 일이라 삶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쉽지만, 발을 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시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민주주의가 뭔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많이 깨쳤고 누구도 할 수 없는 많은 경험을 했다. 정치와 역사에 대해 많은 깨침이 있었는데 시민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뭔지, 우리 역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대화하면서 정치를 논한다면 좋겠다. (중략) 그 또한 기회가 없으면 조용한 개인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에서 재인용) 정치는 검투사의 세계이다. 그는 검투사(글래디에이터)가 되는 것이 삶을 황폐화시킨다며 발을 빼고 싶어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더 큰 검투사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했다. 혼자 싸우는 것의 한계를 느끼고, 더 많은 사람을 검투사로 만드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검투사라고 깨달았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남으로써 수많은 검투사들이 만들어졌다. “양심이 부끄럽지 않으려고 작은 행동에 참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자존심 상하고, 분노하는 사람, 지난날 저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 듯 싸움꾼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저는 직업 선수가 되었고, 대표선수 자리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자는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역사라는 안목으로 보면 승패라는 것이 분명한 것도 아니거니와 정치에서의 승부라는 것도 조금만 길게 보면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폭과 깊이에 달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선수를 키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싸움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9년 3월 19일)
-
- 이야기쉼터 > 칼럼
-
- [민병두의 이슈산책] 국민통합은 무엇인가, 이재명의 국민통합은 가능한가?(1) 김대중의 국민 통합
-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역대 대통령이 모두 국민통합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결이 약간 달랐다. 김대중은 정치보복 없는 정치를 국민통합으로 생각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와 지역균형발전을,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통해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했다. 문재인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는 국어사전까지 찾아봤다고 한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국어사전을 뒤져서 찾아봤다.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라는 의미가 있더라. 계모임 계주든 동창회장이든 대표는 그 공동체가 깨지지 않게 화합하며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의무이다. 일단 동창회장으로 뽑히면 어느 마을 출신이든, 자기를 지지한 회원이든 지지하지 않았던 회원이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공동체 자체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상대와 경쟁은 하더라도 대표 선수가 선발되면 작은 차이를 넘어 국민을 하나의 길로 이끄는 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갈가리 찢어지지 않도록 통합을 해 나가야 한다. 저는 민주당의 후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온 국민의 후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정치는 상대와 다른 점을 찾아 경쟁하면서도 함께 지향할 공통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은 하되 공동체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이고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통합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 가인데 그는 명확하게 정의했다. “민주주의 복원이 국민 통합의 길이고, 성장 회복과 격차 완화가 국민 통합의 길”이라며 “불평등과 절망, 갈등과 대결로 얼룩진 구시대의 문을 닫고 국민 대통합으로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피력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고, 사회경제적으로는 성장회복과 격차 완화라는 것이다. ① 김대중 –정치 보복하지 않는 통합의 정치 구현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인동초, 김대중은 화해와 용서를 신앙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적, 박정희를 용서했다. 자신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씌워 사형을 하려했던 전두환 노태우도 사면했다. 피해자인 그가 나서서 가해자들을 용서할 때 국민통합이 된다고 보고 직접 실천했다. 김대중은 199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분명하게 단언하고 약속했다. 어떠한 정치보복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취임 직후 자신을 도쿄로 납치한 뒤 바다에 떨어트려 수장시키려 했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해외망명할 필요가 없다며 한국에서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라고 전했다. ”저는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다짐하는 바입니다. 국민의정부는 어떠한 정치보복도 하지 않겠습니다. 어떠한 차별과 특혜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무슨 지역 정권이니 무슨 도 (道) 차별이니 하는 말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김대중은 1980년 9월 13일 육군본부 군사 재판정에서 그와 함께 구속된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최후진술을 했었다. 사형 구형을 받고 나서 담담하게 말을 했다. 그 자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 정치보복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나는 여기서 이 기회를 빌려 공동 피고인 여러분께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 판단으로 머지않아 198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걸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 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내 마지막 유언입니다." 김대중은 사형수 시절인 1980년 12월 3일, 서울구치소에서 쓴 옥중 편지에서 박정희·전두환에 대한 용서를 강조했다. "나는 나의 그리스찬으로서의 신앙과 우리 역사의 최대 오점인 정치보복의 악폐를 내가 당한 것으로 끝마쳐야겠다는 신념을 1976년의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된 후 굳게 하며 그 이후에 일관했다...지금 나를 이러한 지경에 둔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어떠한 증오나 보복심을 갖지 않으며 이를 하느님 앞에 조석(朝夕)으로 다짐한다“ 그의 용서와 화해에 대한 철학은 단순한 정치 수사가 아니다. 미국 망명중인 1983년 3월 5일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에서 ‘민중의 한과 우리 세대의 사명’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을 동원해서 한의 승화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민중의 한은 원한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로써 풀리지 않습니다. 그 소망의 성취로써만 풀립니다. 우리 민중의 한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 판소리입니다. 이 판소리는 가장 우리 민중의 한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춘향전을 보면 춘향이의 한은 결코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고 감옥에 들어가서 곤장을 때리고 수청 안 든다고 해서 박해한 신관 사또 변 사또에게 보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암행어사 출두해서 이몽룡이가 춘향을 석방시킨 후에도 변 사또에 대해서 춘향이로 인해서 보복하지 않습니다. 다른 탐관오리로서의 조건 때문에 봉고파직 하는 것입니다. 춘향이의 한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 도령과 맺어짐으로써 풀립니다. 보복으로써 풀린 것이 아닙니다. 심청이의 한은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들어가지만 하늘의 옥황상제가 이것을 기특히 여겨가지고 심청이를 구출합니다. 황후가 되게 만듭니다. 황후라면 여자로서는 최고의 부귀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심청이의 한은 풀리지 않습니다. 왜, 심청이의 한은 아버지가 눈 뜨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봉사 맹인잔치를 해가지고 아버지가 눈을 뜰 때 비로소 심청이의 한은 풀립니다. 흥부는 자기가 배고팠던 그 생활로부터 해방돼서 제비가 갖다 준 박에 의해서 부자 됨으로써 족합니다. 자기가 부자가 되고 나서 자기를 그렇게 박해했던 형에 대해서 보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재산을 나눠줍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국민의 한은 좌절된 소망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성취하도록 노력해서 그 성취를 통해서 풀리는 것이지 결코 보복이라던가 원한으로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민중이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을 집약하면 국토의 분단과 독재정치인데 우리의 한은 우리 땅에서 독재정치를 종식시키고 갈라진 두 동강의 나라를 하나로 합쳐서 남북이 통일될 때만 우리 민중의 한은 풀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다섯 가지 한. 통일에 대한 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독재에 대한 한, 군인들의 정치개입에 대한 한,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현실에 대한 한, 그리고 민권기관의 좌절에 대한 한. 이 한을 풀어야 합니다. 이 한을 푸는 것이 오늘의 우리 민중이 구원받는 길이고 이 한을 푸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인 것입니다. 이 한을 푸는 거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광주에서 죽은 우리 영령들의 한, 광주 한은 이제는 광주에서 죽은 광주사람만의 한이 아니라 한국 국민 전체의 한이오, 양심을 가지고 있는 온 세계의 한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도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한을 푸는 것도 이 모든 것이 광주 한을 푸는데 우리가 집중함으로써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광주의 한을 푸는 것은 광주의 사람들에게 총질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까 내가 한에 대해서 여러분께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광주의 민중들이 가슴에 품고 죽었던 그 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 살고 싶다, 인간이 인간 대우를 받는 나라에 살고 싶다, 내 자식들을 위해서 이런 죄악된 나라를 후손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죽어간 그 광주 한을 민주회복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만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정부와 국민 모두가 다 같이 구원받고 서로 화목하고 서로 단결하고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싶습니다" 김대중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200억원을 지원했고 박정희기념사업회 고문도 맡았다. 김종필은 회고록 ‘소이부답’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대해 증언했다. 김종필이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을 지원할 때도 약속받은 사안이었으나 김영삼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반면에 김대중은 대통령 재임 중 200억 원을 책정해 기념관 건축공사에 착수했다. 김대중은 1992년 대통령선거에 나서면서 박정희 묘역도 참배했다. 뉴DJ플랜의 일환이기도 했지만 진정성도 있었다. “1997년 10월 27일 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한광옥 부총재를 데리고 청구동 우리 집을 비밀리에 찾아와서 ‘김 총재님, 대선에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따지고 보면 총재님(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수모와 박해를 당한 사람 아닙니까? 내가 그 원과 한을 다 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첫째, 내각제 개헌을 꼭 해주십시오. 또 국민화합 차원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하나 세워주십시오.’ 디제이는 ‘아, 여부가 있겠습니까’라며 흔쾌히 약속했다.”(김종필 회고록에서) 김대중은 1999년 5월 13일 박정희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방문해 대구·경북 핵심 인사 30여명과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면담에 앞서 할 얘기를 노트에 정리했다. 1. 10·26 사태 시의 나의 소회 – 생전에 대화 못 한 것 2. 79년 봄의 나의 (박정희) 면담 요청 - 성공하는 대통령 3. 누구나 생전에는 찬반의 대상 - 나의 입장은 반대 무 4. 우리는 한국 정치의 두 축 5. 박 대통령 이룬 경제적 근대화 부인 못해. 국민적 공감대 6. 전직 대통령은 부정의 대상, 이제 처음으로 존경과 평가의 여론이 우세, 하면 된다는 자신감 7. 기념사업 위해 애쓴 기념사업회에 감사 8. 정부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5조의 ‘기념사업의 지원을 할 수 있다’에 의거 지원 불석(不惜·‘아끼지 않는다’는 뜻) 9. 92년 출마 시 묘소 참배해서 화해, 그때는 선거 시, 이제는 출마 없다. 진정한 화해의 심정, 오늘 저녁 참으로 뜻깊은 밤 10. 서로 미워하고 싸우던 적대 - 과거를 훌훌 털고 화해 11. 여러분도 화해의 대열에 동참 -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에 보고하자 (‘산 김대중’은 ‘죽은 박정희’를 어떻게 용서하고 화해했을까. 박찬수의 DJ 국정노트에서 재인용) 김대중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인 2004년 8월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했다. 박근혜는 김대중에게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 드린다. 재임 중 기념관 문제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에 감사드린다"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김대중은 "내 속에 있는 무슨 응어리가 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시대 맺혔던 원한을 따님이 와서 풀고 한 것에서 우리가 인생을 사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대중은 2006년 3월 21일 박정희가 세운 영남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김대중 비서관을 지낸 국회의원 최경환이 쓴 '김대중 리더십'에서 이날의 모습을 가리켜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라고 표현했다. 넬슨 만델라는 과거사 문제를 다루면서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원칙을 내걸었다. 그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흑백통합이 필요하고, 백인들의 지식·기술·자본을 끌어안고 관료체계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흑인들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백인 세력을 끌어안았다. ‘진실과화해위원회(TRC)를 세웠다. 진정한 화해는 진실 규명 위에서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진실을 파헤쳤다. 한국과 중남미 국가에서 진실 규명의 모델이 되었다. 목적은 처벌에 있다기 보다 화해에 있었다.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고 해서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은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했다. 재임 기간 중에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관저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했다. 전직 대통령을 모두 모아서 식사를 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노태우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그의 아들도 사과했다. 전두환은 사과를 하지않고 세상을 떠났다. 윤석열의 망상계엄을 접하고 다시 전두환의 사면 복권에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김대중은 국민통합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나는 역사 안에서 절대로 국민은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사실 이렇게 민주화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한 것은 나 자신의 용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다. 그러나 국민을 믿는 신념이 있었기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명박이 집권한 지 얼마 안되어서 노무현이 서거했다. 일생동안 정치보복을 반대해 온 김대중은 노무현 소식을 들은 후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 김대중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일기장 마지막에 한마디로 삶을 정리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
- 이야기쉼터 > 칼럼
-
- [신재훈의 광고썰전 (234)] 변우석의 팔도 vs 유재석의 배홍동 vs 최화정의 진비빔면 vs 이정재의 더미식, 비빔면의 계절을 알리는 광고 (상)
- [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지난 글에서 비빔면의 제철인 여름이 되기도 전부터 광고를 하는 이유는 취식 기간을 늘려 비빔면 시장 자체를 키우기 위한 것이고 이러한 비빔면 브랜드들의 이른 광고 활동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했었다. 이번 글에서는 각 비빔면 브랜드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광고를 만들고 집행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비빔면 시장의 원조이며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변우석의 팔도 비빔면 광고다. [2025 비빔면의 근본, 팔도비빔면 편] 비빔면의 근본이라는 자막이 보이며 변우석이 한 손에 비빔면을 들고 폼 나게 서있다. 비빔면 면발을 반으로 쪼개 끓는 물에 넣고 건져내고 야채와 양념 그리고 계란을 올리며 정성껏 조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변우석 : 비빔면의 근본 팔도비빔면 비빔면을 다양한 레시피로 조리하는 모습과 완성된 다양한 비빔면들의 모습들이 지나간다 변우석 : 팔도비빔면과 함께 라면 매콤, 새콤, 달콤 다 맛있으니까 (맛있게 비빔면을 먹으며) 맛있게 비비자 / (팔도비빔면 Song)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변우석 : 팔도비빔면 지난해 40년 광고에서 사용한 “비빔면의 근본”이라는 컨셉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근본의 사전적 정의는 “초목의 뿌리,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이라는 명사와 “처음부터 애당초부터”라는 부사로 사용된다. 따라서 비빔면의 근본이라 함은 “비빔면의 뿌리이자 본질”, “처음부터 있던 바로 그 비빔면”을 의미한다. 이는 팔도비빔면이 최초이자 원조이고 그 이후에 출시된 경쟁사의 비빔면들은 원조를 모방한 짝퉁 비빔면을 의미하게 된다. 비빔면의 원조이며 No. 1 브랜드라는 강점을 담은 “근본”이라는 컨셉을 계속 사용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광고상에서 팔도비빔면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비빔면 요리를 보여줌으로써 다양하게 변형되어도 흔들리지 않는 근본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또한 친근한 브랜드 송인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를 통해 비빔면하면 팔도비빔면을 떠오르게 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습관까지도 고려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조건반사 실험처럼 “오른손, 왼손, 비비고” 라는 단어만 들어도 팔도비빔면을 연상할 만큼 말이다. No. 1 브랜드가 해야 할 그리고 가장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인 것이다. 다음은 유재석의 배홍동 칼빔면 광고다. [올 봄을 강타할 배홍동의 신작, 비빔면의 확장판 칼빔면 편] “배홍동 칼빔면 2025년 3월말 대개봉”이라는 자막과 함께 마치 신작 영화를 광고하는 포스터처럼 유재석과 모델들이 폼 잡고 있다 유재석 : 배홍동의 신작 칼빔면 넓어진 액션, 강화된 매콤함, 압도적 피날레 새로운 칼빔면을 경험하라 이 맛에 안 넘어가? (징글) 배홍동 칼빔면 배홍동 칼빔면은 후발 브랜드로서 단기간에 비빔면 시장의 No. 2로 등극한, 그것도 No. 1 팔도비빔면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한 배홍동 비빔면의 브랜드 파워와 면류 No. 1 기업인 농심의 후광 효과(Halo Effect)를 적극 활용한 브랜드 확장(Extension) 제품이다. 신제품 이름인 “칼빔면” 또한 칼국수 면발을 사용한 비빔면이라는 제품의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을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광고에서도 면발의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비주얼과 씨즐에 많은 공을 들였다.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도 배홍동 칼빔면의 특성을 “넓어진 액션, 강화된 매콤함 압도적 피날레” 라는 마치 신작 영화를 알리는 영화 예고 광고처럼 차별화함으로써 신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칼국수와 비빔면 모두를 좋아하는 면 마니아들이라면 빨리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우 유혹적인 광고다. 신재훈 프로필 ▶ (현)BMA 전략컨설팅 대표(Branding, Marketing, Advertising 전략 및 실행 종합컨설팅) / 현대자동차 마케팅 / LG애드 광고기획 국장 / ISMG코리아 광고 총괄 임원 / 블랙야크 CMO(마케팅 총괄 임원)
-
- 이야기쉼터 > 칼럼 > 신재훈의 광고썰전
-
- [기자의 눈] 교육·복지기관이 장애인 채용률 0%대, '채찍'과 '인센티브'를 함께 강화해야
-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장애인 고용률이 매년 향상하고 있으나 공공 분야에서 기관별 격차가 크고, 의료·교육 등 복지 분야에서 장애인 채용이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대책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28일 '2024년 장애인 의무고용현황'을 발표했다. 지난해 장애인 고용률은 전체 평균 3.21%로 전년 대비 0.04%포인트(P)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14년 2.54% 대비 0.67%P 오른 수치다. 지난해 공공부문 장애인 고용률은 3.9%, 민간부문은 3.03%로 각각 전년 대비 0.04%P씩 증가했다. 공공부문 장애인 고용률은 지난 2021년 이후 법적 장애인 의무 고용률(3.8%)을 지속적으로 넘기고 있으며, 민간기업 고용률은 법정 의무고용률(3.1%)과의 격차가 0.07%P로 좁혀졌다. 반면, 지난해 장애인 공무원의 고용률은 2.85%로 전년 대비 65%P 감소했다. 특히, 장애인 공무원의 고용률은 부문별로 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행정기관의 장애인 고용률이 각각 3.68%, 3.53%로 높게 나타난 반면, 교육청에 근무하는 장애인 비율은 1.90%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사업장 명단'에 따르면 지자체 중 음성군(2.32%)과 화천군(2.62%), 영암군(2.63%), 연천군(2.64%) 등 총 15곳이 법정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채우지 못했으며, 남양주시복지재단(0%)과 경상북도여성정책개발원(1.41%), 대구의료원(2.19%) 등 의료·복지 기관에서도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곳이 다수 발견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관계자는 28일 <뉴스투데이>에 "국가, 지자체 공무원 부문은 민간에 비해 선도적인 역할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의무고용을 미이행 하고 있다"며 "장애인 고용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공단은 인사혁신처와 협업해 장애인 고용 미이행 부처에 장애인 고용 컨설팅을 늘리고, 고용 확대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의 경우에도 의료·교육 기관 등 장애인의 치료와 취업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곳이 많았다. 연세사랑병원(0%)과 열린의료재단(0.25%), 성균관대학교산학협력단(0.28%), 학교법인 우송학원(0.63%),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0.67%), 인하대학교 산학협력단(0.68%), 서산중앙병원(0.82%), 순천대학교 산학협력단(0.96%) 등의 기업이 장애인 의무 고용을 위반했다. 이와 같이 분야별로 편차가 큰 공공 부문과 민간의 교육·의료 분야에 대한 장애인 고용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먼저, 종업원수 100명 이상인 사업체가 장애인 의무 고용률에 미달할 경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납부하는 장애인고용부담금의 비중을 늘릴 수 있다. 장애인고용공단은 지난해 기준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기업에 1인당 209만6270원의 부담금을 부과했다. 장애인 의무 고용률도 높일 필요가 있다. 매년 높은 부담금을 내는 기업들은 장애인을 채용하는 것보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기업 경영에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제제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치료나 교육, 취업을 담당하는 기업·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고, 사회에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사업에도 투자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의료법인 등 표준사업장 설립이 어려운 경우 의료업과 관련 없는 제조·서비스 분야에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만들 수 있도록 독려하고, 정책 지원금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을 논의할 수 있다. 교육 기관은 장애인이 근무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고, 일자리를 보급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 이들 기관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설립할 경우 이를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펼칠 수도 있다. 또한, 중소기업도 장애인 고용 지원을 강화하고,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무를 개발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컴투스 그룹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인 컴투스그룹의 이현주 단장은 "장애인 고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장애인 고용 지원을 다각도로 높인다면 다양한 기관이 고르게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책임 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직무를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부담금 같은 '채찍'과 고용지원 같은 '인센티브'를 함께 강화해야 장애인 고용이 선순환 궤도에 오를 것이다.
-
- 이야기쉼터 > 기자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