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JOB채](19)LG유플러스 하현회 부회장의 ‘화웨이 동맹’, 예상밖의 ‘축복’ 될까
LG유플러스 하현회 부회장의 ‘화웨이 동맹’

옅은 정치색은 LG그룹의 전통, LG유플러스는 ‘국제정치 리스크’ 과소평가?
[뉴스투데이=이태희/편집인]
하현회(63) LG유플러스 부회장의 ‘화웨이(華爲) 선택’은 21세기 경영학의 연구대상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국제정치 리스크’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 리스크를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결실을 거둘지, 아니면 상당한 내상을 입을지는 미지수이다. 그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지 간에 경영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사례 연구대상이 될 것 같다.
사실 LG그룹은 다른 국내 재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색이 옅은 편이었다. 이는 때때로 장점이었다. 바람을 덜 탔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는 국제 정치적 변수를 가볍게 여길 경우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화웨이 죽이기’ 본격화, 미중무역갈등 포석 혹은 차세대통신망 기술전쟁
5조원 투자한 하 부회장, 화웨이 보안성 논란 적극 반박
그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 공급체 보호’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긴박해졌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기업이 제조한 통신장비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이 조치는 ‘화웨이 고사(枯死)작전’의 신호탄이 됐다.
명분은 화웨이의 ‘보안성 문제’이다. 화웨이의 5G장비를 사용할 경우 백도어를 통해 사용자 정보를 대량 유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 부회장은 지난해 말 불거진 화웨이의 보안성 이슈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해왔다. 당시 그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전세계 170개국에서 어떤 보안 문제도 제기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이후에도 LG유플러스 측은 화웨이와의 파트너십엔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 부회장 판단이 맞을 가능성도 있다. 독일, 영국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여전히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화웨이의 전체 매출 중 미국 비중은 0.2%에 불과하고 유럽이 28% 정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텔, 퀄컴 등 화웨이에 부품공급 중단 선언
이통 3사 중 LG유플러스만 서울 수도권 기지국에 화웨이 장비 사용
하 부회장, 경쟁자들과 달리 뚝심 있게 ‘효율성’ 논리 밀어붙여
그러나 구글, 인텔, 퀄컴, 브로드컴, 마이크론, 코보 등과 같은 미국의 주요 IT기업들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하고 나섰다. 화웨이의 핵심부품 공급업체 92개 중 33곳은 미국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부품 수혈을 중단한다면 화웨이는 악성 빈혈에 시달릴 것이다. 특히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의 반도체 공급 중단은 화웨이의 5G장비사업에 직격탄을 날리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유플러스가 잠재적 리스크를 인지하면서도 화웨이를 차세대 통신망 파트너로 화웨이를 고른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에 있다. 하 부회장은 지난 연말 기자들과 만나 “투자결정은 정말 어렵다. 5G사업에 5조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갔다”고 언급, 화웨이의 가격 경쟁력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화웨이(중국. 지난해 기준 시장점유율 31%)는 에릭슨(스웨덴.시장점유율 27%), 노키아(핀란드.시장점유율 22%) 등 다른 5G 빅3업체에 비해 20~30% 정도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이통 3사 중 ‘만년 3등’이라는 불명예의 늪에 빠져 있는 LG유플러스로서는 차세대 통신망에서는 승부수를 던지는 게 당연한 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구가 밀집된 서울 및 수도권 5G기지국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는 삼성전자와 에릭슨을, 경상도와 수도권 남부에는 노키아를 각각 채택했다. 반면에 SKT와 KT는 서울과 수도권 기지국에 삼성전자 장비를 넣고 있다. 다른 지역 기지국에도 화웨이 배제 원칙을 고수했다.
경쟁자들은 우선적으로 삼성전자를 선택함으로써 ‘애국주의’라는 국민정서에 부응함과 동시에 화웨이를 배제해 국제정치 리스크를 피해간 것이다.
이에 맞서 하 부회장이 뚝심 있게 ‘경제성 논리’를 관철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중무역갈등의 충격파를 과소평가한 측면이 존재한다.
21세기는 ‘기술전쟁’의 시대, 디지털 냉전시대 도래 가능성도 점쳐져
'전쟁'보다 '기술전쟁'의 채산성이 높아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인류의 적이었던 ‘전쟁’이 사실상 소멸되고 있는 이유로 ‘채산성 하락’을 꼽았다. 부의 원천이 영토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부의 지도는 기술력 지도와 일치한다. 따라서 강대국들은 대량살상을 초래하는 재래식 전쟁대신에 기술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 죽이기에 나선 것은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길들이기’ 효과가 있다. 인민해방군 출신인 화웨이의 런정페이(任正非·74)회장은 시 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런정페이를 궁지로 몰고 가는 것은 시 주석에게 미중무역협상에서 ‘백기투항’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차세대 통신망의 리더인 화웨이를 무력화함으로써 미중간 기술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도 적지 않아 보인다. 런 회장이 “화웨이 기술력이 2~3년은 앞서 있어 미국이 따라잡을 수 없다”고 단언한 것도 트럼프의 이런 의중을 겨냥한 발언이다.
뉴욕에서 잔기침을 하면 서울이 독감이 걸리는 글로벌 경제체제서 사업을 하려면 향후 이런 국제정치 변수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일(현지시간) “향후 기술냉전이 펼쳐진다면 미국의 구글이 중국 화웨이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않은 것은 ‘디지털 철의 장막’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외부 세상을 계속 거부할 것이고 미국과 다른 국가들은 반대로 중국의 기술을 차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런 회장도 21일 CCTV 등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화웨이의 5G는 절대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화웨이가 미국과 똑같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갈등이 장기화된다면 반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부품을 자체 생산할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뉴욕타임스가 언급한 ‘디지털 냉전시대’의 도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둘째, “미국 반도체의 공급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한 백업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산 부품 공급이 중단될 때를 대비한 비축 물량이 있다는 설명이다. 화웨이는 미국의 거래중단 조치가 지속될 경우, 3개월~1년 정도 버틸 부품을 확보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냉전시대 도래하면, 작렬하는 트럼프의 뒷끝 감당해야?
트럼프와 시진핑 화해하면, 하 부회장은 런정페이에게 ‘어려울 때 친구’
운명의 칼자루는 하 부회장이 아닌 미중의 지도자가 쥐고 있어
만약에 뉴욕타임스의 다소 과장된 상상력의 산물인 ‘디지털 냉전시대’가 실제로 도래한다면 하 부회장의 ‘가성비 논리’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화웨이 장비의 추가 도입 및 보수작업 등이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뒤끝이 작렬하는 스타일이다. 적은 응징하고 친구에게는 심장이라도 내줄 듯이 살갑게 군다. 미국에 거액을 투자해 화학공장을 지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백악관에 불러서 ‘한미동맹의 승리’라고 외쳤을 정도이다.
이런 트럼프 행태를 기준으로 볼 때, LG유플러스 혹은 LG그룹의 미국 비즈니스는 유리한 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하 부회장이 행운을 거머쥘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언제 싸웠냐는 듯이 화해한다면, 중국 입장에서 하 부회장이나 LG유플러스는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가 된다.
중국인은 ‘장사꾼’으로 폄하되지만, 고난기에 ‘꽌시(关系)’를 맺은 사람에게는 관대한 후원자로 돌변한다고 한다. 화웨이 런회장이나 시주석이 이번 위기를 극복한다면, 마치 트럼프가 신 회장을 백악관에 초대했듯이 하 부회장을 ‘환대’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화웨이 사태가 LG유플러스의 5G사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여부에 대한 칼자루는 하 부회장이 잡고 있지 못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패권 게임’에 의해 좌우된다. 바로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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