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예술가' 강병인 작가, "한글의 현대적 재해석 통한 문자의 다양성과 예술성 추구"
■ 방송 : 유튜브 '텔 더 스토리' 4월 9일 방송본 ■ 진행 : 뉴스투데이 박진영 기자(굿잡뉴스팀) ■ 출연자 : 강병인 작가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국내 유명 영화와 드라마에 자신의 글씨를 뽐내고, 유명 식음료 브랜드에 광고 서체를 제공해 유명세를 탄 강병인 작가가 문자회화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었다. '캘리그래피 대가'로 평가받는 강병인 작가는 지난 3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서울 중구 N2 아트스페이스(ARTSPACE)에서 '획의 변주, 해체로부터 문자회화로 건너가는 첫걸음'이라는 개인전을 개최한다. 강 작가는 영화 '의형제'와 '엄마가 뿔났다', '대왕세종', '미생' 등의 드라마에 자신의 작품을 내걸었고, '참이슬', '열라면' 등의 브랜드에 광고 서체를 제공했다. 이 같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멋글씨 작가가 문자회화에 도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강 작가는 최근 N2 아트스페이스에서 <뉴스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문자회화에 도전하게 된 배경부터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작가, 독자들이 작품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내용은 유튜브 채널 '텔 더 스토리'에 올라온 '강병인 작가가 말하는 획의 해체와 변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강병인 작가와의 일문일답. Q. 강병인 작가는 멋글씨, 캘리그라피로 유명한데, 문자회화 전시회를 연 계기는 무엇인가. "90년대 말부터 전통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멋글씨를 써왔다. 현대 한글 서예를 바탕으로 글이 가진 뜻과 소리를 글씨로 형상화함으로써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예술성을 알렸다. 지난 2023년부터 새로운 작품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동안 25년간의 작품을 정리하고, 출판을 마쳤다. 지난해부터 문자회화라는 나만의 새로운 형식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이번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서예의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회화성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뒀다. 한글은 하늘과 땅, 사람으로 나눠졌다. 모든 만물은 해체로부터 다시 조합된다. 한글은 소리를 나누고 합하는 원리로 글자가 된다. 이번 전시회는 해체로부터 획의 변주, 다양성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개최됐다. 또, 서예가 어떻게 미래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기존 서예의 본질을 그대로 끌고 가면서도 새로운 회화 양식을 취함으로써 저의 작품 세계로 지평을 넓혀가는 계기를 만들고자 이번 전시회를 마련하게 됐다." Q. 이번 전시회에서 관객에게 특별히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변주1은 '해체', 변주 2는 '모아 쓰는 것', 변주 3은 '뜻글씨'로 구성했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자연의 이치를 끌어왔다. 하늘과 땅, 사람을 문자와 소리의 바탕 체계로 삼았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첫 소리와 가운데 소리, 끝소리를 나눠 놓으면 소리도 나지 않고, 문자가 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ㅇ', 'ㅜ', 'ㅅ'을 풀어쓰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모으면 '웃'이라는 소리가 나고, 글자가 된다. 이렇게 먼저 해체를 해서 봐주시고, 그다음에 모아서 글자가 되는 과정 순으로 작품을 봐주시면 된다. 변주3의 경우, '뜻글씨'에서 문자에 포함된 뜻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꽃'을 살펴보면 첫소리 'ㄲ'은 이파리, 모음 'ㅗ'는 가지, 'ㅊ'은 뿌리로 나눌 수 있다. '똥'은 똥을 누는 행위가 포함돼 엉덩이를 연상시키고, '춤'은 춤추는 듯한 모습이 표현됐다. 이번에 옻 칠, 나전에 일가견이 있으신 장춘철 장인과 협업했다. 열라면의 '열'이라는 글자도 나전으로 치환했다. 한글은 자연의 이치, 인간의 삶, 소리를 분석했기 때문에 문자에 뜻도 포함돼 있다. 말과 꼴과 뜻이 하나다. 이것을 (장준철 장인과의 합작품에) 표현했다. 저의 작품 '꿈'을 감상하면서 꿈꾸면 이뤄진다는 생각을 하고, '웃'을 보면서 삼성 이병철 회장이 말한것처럼 '힘들어도 웃어라, 절대자도 웃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를 세겨보고, '춤'이라는 작품을 통해 즐겁게 살자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Q. 문자회화 작품을 준비하는 데 영향을 준 작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글 서예의 길로 인도해주신 김인수 담임 선생님, 중학교 때 조선시대 정치가이면서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만났다. 그때부터 제 인생이 서예의 길로 들어섰다. 작품의 구조나 형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온 삶과 정신,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단순한 기술로는 좋은 글씨를 쓸 수 없고, 학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추사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했다. 스페인의 추상 표현주의 화가 안토니 타피에스의 영향도 받았다. 이분은 동양의 선불교 영향을 받아서 획들이 살아 있고, 선이 선으로 이뤄진 작품이 많다. 추상적이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작업을 하시는 분이다. 호안 미로라는 작가는 기존의 간섭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했다. 우리나라의 문자 추상의 거장인 이응노 선생, 일본의 전위 예술가 이노우에 유이치 선생께도 영향을 받았다. '서예는 죽었다'고 외치며 먹에 계란을 더해 가난함이 묻어나는 '빈'자를 만드는 등의 노력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Q. 해체된 획들이 포근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작품 활동을 하며 어디서 영감을 받나. "문자회화의 세계는 무위, 인위적인 것은 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구도를 미리 잡거나 구상하기보다는 붓이 가는 대로 정말 부드럽게 붓을 내려놨다. 서예가 요구하는 서법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붓이 나가기 전에 거꾸로 들어가는 '역입', 가다가 잠시 쉬는 '절' 등과 같은 과정들이 굉장히 부드럽게 진행됐다. 또, 이번 작업은 혼자만 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먹이 나를 많이 도와줬다. 글씨를 쓸 준비가 됐냐고 먹이 나한테 물어보고, 나는 그에 답해 붓을 들었다.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을 일필휘지로 썼다. 일필휘지다 보니까 작업의 시간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영적인 기운을 받아야 하고, 30~50년의 필력, 붓을 잡은 시간이 요구된다. 공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찰나에 이뤄진 것 같지만, 작가의 철학, 삶에 대한 질문, 그 안에서 얻은 결과라는 것을 살펴봐 주셨으면 좋겠다." Q. 일반인이 강병인 작가의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글의 핵심적인 제작 원리를 이해하면서 작품을 살펴보면 좋겠다. 변주1의 해체는 공간을 여는 과정이다. 한글은 초성과, 중성, 종성 사이에 넓은 공간이 존재한다. 영어의 알파벳이나 일본의 히라가나에는 이런 공간이 없다. 획의 해체를 먼저 살펴보고, 모아서 완성된 글자를 보면 좋겠다. 획이 해체가 됐다고 해서 고립은 아니다. 독자적인 위치에서 엄연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N2 아트스페이스 1층의 두 작품을 자유1‧2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번 주제는 '자유'다. 작품을 통해 남과 비교하고 의식하는 문화가 바꼈으면 좋겠다. 이 과정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 작품을 보고 용기도 얻었으면 좋겠다. 또, 글이 다시 모이기 때문에 고립되고 외롭지 않다.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봐주시면 좋겠다." Q.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작품은 "지금 전시된 작품이 모두 새로 도전하는 작품이다. 다음으로 건너가기 위한 첫번째 시도를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문자가 가진 존재적인 가치, 그 속에서 서예가 회화로 넘어감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도전을 하고 싶다. 서예가 회화라는 양식을 빌려와서 문자를 재해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