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명작의 비밀] 다빈치 ‘최후의 만찬’: 유다 왕따 시키기

[뉴스투데이=강이슬 정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495-98)은 서양미술사에서 원근법을 가장 잘 적용한 예로서 소실점은 그리스도의 머리 바로 위에 위치하게 된다. 소실점은 관람객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머리로 향하게 함으로써 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그려진 종교화로서 가로, 세로 880cm x 460cm의 크기의 벽화이다.
다빈치는 당시 유행하던 벽화 기법인 프레스코 대신 템페라 기법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프레스코, 즉 이탈리아어의 ‘fresh’에 해당하는 이 용어는 14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벽화 장식에 많이 사용된 방식 중 하나이다. 프레스코 기법은 그날 그날의 작업을 위한 영역을 축축한 회반죽 상태로 만들어 거기에 안료와 물을 함께 섞어 바르는 기법이다. 회반죽이 천천히 마르면서 색채들은 화학적 반응으로 벽 자체와 통합된다.
그러나 회반죽 벽에 스며들게 하는 프레스코 기법은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잘 견디는 반면, 계란과 안료를 원료로 쓰는 템페라 기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감의 박락이 심해져 다빈치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 훼손 진행과정을 지켜보아야 했을 정도였다. 다빈치는 왜 이런 단점을 지닌 템페라 기법을 사용했을까? 이는 아마도 천재의 호기심과 실험정신 때문이었으리라. 이러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은 ‘최후의 만찬’의 유다의 배치에서도 발휘되었다.
요한 복음 13장 21절에서 말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옮긴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식사하면서 제자들 가운데 그리스도 자신을 배반하는 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조용히 말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즉 놀랄만한 소식을 담담하게 전하는 그리스도와 그 소식에 동요하는 제자들을 대비시키고 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담담한 말에 12명의 인물들이 제각각 보이는 놀라움과 충격의 표정과 제스처의 다양함에 있다.
오른쪽 그룹은 ‘결백’ 증명, 왼쪽은 ‘상심과 두려움’
자 이제 다빈치가 이끄는 대로 그림 안으로 들어가 보자.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베드로, 요한, 유다, 그리스도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후에 연구를 통해 인물들의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최후의 만찬’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에 유다, 요한, 베드로를 비롯해 6명을, 오른쪽에 야고보와 도마를 비롯해 6명을 배치했다.
이 그룹은 다시 각각 3명씩 그룹지어 나뉘게 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 끝에 있는 그룹 가운데, 오른쪽 그룹은 왼쪽 그룹에 비해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스승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의 좌우에 있는 중심 그룹 중 오른편 그룹은 자신들의 결백함을 과도한 몸짓과 손짓으로 증명하려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왼편 그룹은 스승의 말에 상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인물을 섞어 놓았다.
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이 그림의 중심 인물은 그리스도와 스승을 배반하는 제자 유다가 될 것이다. 화면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는 자연스레 그룹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유다의 자리 배치만 남았다. 다빈치 이전의 르네상스 화가들 역시 ‘최후의 만찬’을 즐겨 그렸는데, 그들은 별 고민 없이 유다를 반대편 테이블에 배치했다. 때로는 유다만 제외하고, 그리스도를 비롯한 11명의 제자들 모두에게 후광을 씌웠으므로, 관람자는 유다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다빈치는 유다를 어느 곳에 배치할까 고민했다. 선배 화가들처럼 남들이 한눈에 다 알아볼 수 있도록 건너편 자리로 배치할까. 아니면 한쪽 구석에 둘까. 노란 옷을 입혀 한눈에 띄게 할까. 그러나 다빈치는 남들과 다르게 제작하고 싶었다. 다빈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유다를 교묘하게 왕따시키기로 결정한다.
다빈치, 유다 가장 낮은 곳에 위치 시켜 ‘배신’ 예시
다빈치는 유다의 위치를 신중하게 계획했다. 그리스도 가까이에서 그리스도의 말을 전해들은 젊은 사도 요한에게 나이든 베드로가 무슨 일인가 물었으며, 요한은 베드로에게 살짝 기대어 말을 전해준다. 이 장면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를 자연스럽게 관람객 앞으로 내밀었다. 그로 인해 유다는 식탁의 거의 끝까지 내몰렸다. 유다가 어느 정도 앞으로 나왔는가는 왼편 끝에서 식탁넓이로 팔을 벌린 바르톨로메오와 오른편 식탁의 한쪽 끝에 앉은 시몬과 비교하면 식탁의 폭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앞으로 밀려난 유다는 그로 인해 이 식탁에서 유일하게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의 머리는 13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그리고 관람자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세와 위치로 인해 그는 이 많은 인물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주는 빵을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빠르게 건네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다.
이는 곧 요한 복음서에서 말한 그리스도가 주는 빵을 건네 받는 자가 그리스도를 배신할 인물이 된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교묘하고 복합적이고 사건의 앞뒤 순서에 맞춰 계산된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보이는 배치, 이것이 다빈치가 구사한 왕따 전략이었다.
다빈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전성기의 작가로서 회화, 조각, 건축 등의 예술뿐 아니라 해부학, 천문, 무기 제작,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실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더 큰 호기심에 양보를 해야 했으며, 그 결과 그가 완성한 회화는 20여점에 불과하다. 싫증을 자주 내고 끈기 없는 그의 제작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빈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유다의 전략적 배치와 같은 그의 창의적인 시도들이 그가 제작한 작품의 숫자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미경 숙명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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