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명작의 비밀] 반 고흐의 ‘낡은 구두 한 켤레’

정승원 기자 입력 : 2013.10.08 11:21 ㅣ 수정 : 2013.10.1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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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하고 낡은 이 구두의 주인은 누구일까? 논쟁에 앞서 이 구두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886년 반 고흐는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한 켤레의 낡은 구두를 샀다. 그는 이 구두를 몽마르트 구역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로 가져왔다. 그가 이 구두를 왜 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이 구두가 필요해서 구입한 듯하다. 그는 이 구두를 신으려 했지만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반 고흐는 이 구드를 신는 대신 회화를 위한 소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이 구두는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찬양받는 구두가 되었다.

이 구두에 대해 철학자, 미술사학자간 논쟁이 벌어졌다.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이 구두를 그린 회화를 1930년 암스테르담 전시에서 보았다. 하이데거는 예술이란 문화 속에서 진실의 요소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 예술 창조 방식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논쟁을 시작했다. 예술가와 예술작품은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각각은 서로를 드러낸다. 하이데거는 이 관계 속에서 예술작품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 구두는 농부 여인의 것이라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근원’(1935)에서 “낡은 구두의 어두운 내부로부터 힘든 작업자의 모습이 보인다. 완고하고 강인하게 생긴 구두의 단단함에는 여성의 터덜터덜 걷는 고집이 묻어난다. 구두 밑창에는 흙과 축축함이 묻어 있다. 해가 질 때처럼 밑창은 밭고랑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땅의 조용한 부름이 구두 속에서 진동한다. 이 도구는 땅에 속한 것이며, 농부 아내의 세상에서 보호받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구두를 말하는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 고흐는 구두 그림을 8점이나 그렸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한 인물은 미술사학자 메이어 샤피로(Mayer Schapiro)이며, 그는 ‘개별 오브제로서 정물화’(1968)에서 샤피로는 하이데거가 잘못이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샤피로는 반 고흐의 편지들을 자세히 검토하며 이 신발은 농부 아내의 신발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 고흐가 농부 아내의 나막신을 묘사할 때, 꽃병과 같은 테이블에 정물화처럼 깨끗하고 닳지 않은 신발로 묘사했다” 따라서 샤피로는 이 구두의 임자는 반 고흐 자신이라 주장했다.

이제 철학자와 미술사학자간의 논쟁은 구두를 소유한 이가 누구인가하는 문제와 함께, 어느 구두를 말하는가하는 문제가 덧붙여져 구두를 둘러싼 논쟁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메이어 샤피로는 하이데거가 언급한 ‘속에 검은 그늘이 드리운’ 구두 그림은 여덟 점 가운데 석 점이라고 밝히며, 여전히 어느 구두 그림인가를 집요하게 묻고 있다. 샤피로는 이 구두 그림은 단순히 구두를 그린 정물화 개념이 아니라 반 고흐의 자화상이라고 밝혔다. 반 고흐는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아이덴터티와 함께 그린 적이 있어 반 고흐의 구두는 자화상으로 볼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반 고흐에게, 이 낡은 신발 한 켤레는 고된 예술가 생활의 일부이며 상징인 셈이다.

(이미경 숙명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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