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이야기] 아이유 논란으로 본 ‘술 광고’ 규제 움직임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술 광고에 대한 규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2세 ‘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한 소주회사 광고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국회에서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배와 다른 법안과 형평성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반대 속에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지만 이 법안을 발의한 이에리사 의원(새누리당)은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법안의 본래 취지가 퇴색됐다며 논의 재개를 요구하고 나서, 술 광고 규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른바 ‘아이유 법’ 혹은 ‘연령제한법’으로 불리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술 광고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놓고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취급되고 있다.
■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발의한 이에리사 의원, 성인과 청소년의 나이 기준 달라 혼선
탁구스타 출신의 이에리사 의원은 올초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된 내용은 운동선수, 연예인 등 어린이와 청소년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만 24세 이하의 사람을 주류 광고에 출연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면서 국회 본회의 상정에는 실패했다. 특히 올해 만 22세인 가수 아이유가 주류 업체 광고 활동을 하고 있는 사실과 맞물려 일부에선 이 법안을 ‘아이유 술 광고 금지법’(아이유법)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에리사 의원이 굳이 24세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청소년 기본법에서 정한 청소년 나이가 만 9~24세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법상 ‘성인’의 기준은 19세로 정해져 있어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민법은 만 19세 이상이면 성인으로 인정한다.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휴대전화를 개통하거나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나이다. 술도 누구의 허락 없이 마실 수 있다.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는 당연한 권리다. 두 법안에서 정한 나이 기준이 달라 아이유는 ‘성인’인 동시에 ‘청소년’ 모두에 해당한다. 법안의 논리대로라면 아이유는 “술을 마실 수 있는 성인이지만, 청소년이기 때문에 술 광고에는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에리사 의원 측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건강과 올바른 인식 변화를 위해 개정안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어린 청소년’인 모델이 술 광고에 나오면 청소년들의 술에 대한 호감이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주류광고 휩쓰는 영파워, 아이돌 전성시대

사실 이 법안은 2012년 피겨스케이팅 요정 김연아 선수가 한 맥주 광고에 출연하면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만 21세였던 김연아 선수가 맥주 광고에 등장하면서 청소년의 음주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만9~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보는 청소년 기본법에 따라 이에리사 의원이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톱스타, 아이돌스타의 술 광고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90년대 말부터 톱스타는 예외없이 술 광고에 출연했다. 광고업계에선 술 광고를 찍지 않으면 진정한 톱스타가 아니라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이영애, 김정은, 최지연, 김태희, 성유리, 남상미, 이효리, 김아중, 김민정, 하지원, 유이, 이민정, 문채원 등이 그 예다.

원조 ‘국민요정’ 이효리는 한 소주회사 광고에 장기출연, 광고출연 기간동안 해당회사의 매출을 10%이상 올린 효녀(?)로 꼽히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현아, 구하라, 효린, 빅뱅, 유이, 아이유 등 청소년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까지 줄줄이 술 광고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이돌스타들의 광고 출연이 잇따르자 서울시는 2012년 해당회사들에 공문을 보내 아이돌 스타의 광고출연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얘기가 약간 다르지만 톱스타 전지현은 임신 상태에서 맥주광고를 계속 출연키로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롯데주류 측은 자사 클라우드 맥주의 전속모델인 전지현에 대한 계약 유지 방침을 밝혔다. 대신 앞으로 촬영할 전지현의 맥주 광고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 등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내용을 빼는 한편 전지현의 건강상태와 스케줄에 따라 촬영 일정을 정하는 등 배려와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임산부와 맥주광고는 확실히 안어울리는 컨셉이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 술 광고에 관대한 사회분위기
일명 ‘아이유법’이 논란이 되자 인터넷에는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이유가 술광고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올해 만 22세인 가수 아이유가 소주 광고에 출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전국의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질문한 결과 60%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문제가 된다'는 의견은 33%에 그쳤고 7%는 의견을 유보했다.
세대별로 보면 40대 이하는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 60%를 넘었고 50대는 양분됐고 60세 이상에서만 '문제 된다'(53%)는 응답이 '문제 될 것 없다'(32%)보다 많았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아이유가 술 광고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을 보인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만 24세면 술도 마시고 결혼도 마음대로 하는데, 술 광고만 못한다는 건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이 많았다. 술은 마셔도 되고, 광고는 찍으면 안된다는 논리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우리사회가 술 광고를 비롯해 음주 자체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은 다른 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발표된 보건사회연구원의 ‘음주정책통합지표와 OECD 국가간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음주정책 평가 지표(점수)는 7점(21점 만점)으로 조사 대상 30개 나라 가운데 22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평가는 ▲생산(증류주·와인·맥주 생산 국가 독점 여부 등) ▲유통(소매점 유통 국가 전매 여부, 주점·식당 주류 판매일수·시간제한 등) ▲개인(소매점·주점·식당 주류 구입 규제 연령) ▲마케팅(주류 광고·후원 관련 규제) ▲사회환경적(음주운전 규제 등) ▲공공정책(국가 음주 예방·교육 프로그램) 등의 기준을 통해 이뤄졌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점수는 전체 평균(9.7점)보다 약 3점이나 낮았고 평가 순위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73.3% 수준이었다. 역으로 말하면 음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아이돌 스타의 술 광고 등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게 많은 국민들의 인식이다.
■ 선진국에선 술 광고 엄격 규제, 청소년스타 출연, 업계 스스로 자제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술을 담배, 도박과 마찬가지로 유해제품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고에 대한 규제도 매우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주류업계 자율규제로 만 25세 미만은 광고모델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특히 와인 같은 경우는 미성년자에게 특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연예인 및 스포츠스타 기용을 아예 금지하는 등 연령제한 뿐 아니라 직업제한까지 실시하고 있다.
실제 덴마크·핀란드·아이슬란드·아일랜드·뉴질랜드·노르웨이·스웨덴 등에서는 일정 기간이나 시간이 넘으면 더 이상 술을 팔 수 없으며 미국조차도 와인과 도수 높은 술의 경우 소매점 판매시간이 자유롭지 않다.
또 공영TV·라디오의 맥주 광고 역시 한국은 부분적으로 제한하는데 비해 프랑스·헝가리·아이슬란드·노르웨이·스웨덴·스위스·터키·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아예 광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류판매 연령 기준의 경우 아이슬란드(20세)·일본(20세)·노르웨이(20세)·스웨덴(소매점 20세)·미국(21세) 등은 보다 엄격하게 젊은층의 음주를 막고 있다.
술에 대한 조세정책(주류 세금 대상·수준)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서는 순위에서 바닥을 길 정도로 관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정영호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음주 관련 규제가 약할수록 음주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 업계 자율규제 약속했지만…
사실 주류업계는 오래전에 이미 술광고 자율규제를 약속했다. 진로, 롯데를 비롯한 10개 소주사와 하이트, 오비 2개 맥주사, 페르노리카코리아 등 3개 위스키사를 포함한 주류 제조업체 16개사는 지난 2010년 11월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주류광고 자율규제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①청소년, 임산부 등 음주에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행위금지, ②대학교 캠퍼스 및 온라인에서의 지나친 광고금지, ③모든 주류광고에서 과도하게 선정적인 광고금지 ④미성년자 모델의 광고등장금지 등이 포함되고 ⑤초·중·고등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로 50미터 이내의 고정된 장소에서 광고를 금지하는 등 알코올 오남용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규제사항이 포함됐다.
주류제조업체는 한국주류산업협회와 자율규제추진위원회를 구성, 주류광고 내용을 심의 및 모니터링하고 내용이나 표현이 지나친 광고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가하는 등 금번 체결된 광고자율규제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물론 이 약속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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