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야기](17) 대형유통업체 파견 '판촉사원' 13만명의 '비애'

강이슬 기자 입력 : 2018.02.01 14:43 ㅣ 수정 : 2018.02.01 16:56

대형유통업체 파견 '판촉사원' 13만명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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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 뉴스투데이


모든 직업에는 은밀한 애환이 있다. 그 내용은 다양하지만 업무의 특성에서 오는 불가피함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때문에 그 애환을 안다면, 그 직업을 이해할 수 있다. ‘JOB뉴스로 특화된 경제라이프’ 매체인 뉴스투데이가 그 직업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공정위 ‘2017년 유통분야 서면 실태조사’ 발표, 납품업체 불공정거래 1위는 ‘종업원 파견’
 
근무는 대형유통업체에서, 인건비는 납품업체가 모두 부담하는 대표적인 ‘을의 눈물’

납품업체 직원 혹은 납품업체 계약사원이 '판촉 직원'으로 파견되면 서로 다른 '비애' 느껴

판촉사원 규모, 이마트 등 3개 대형마트 약 3만4000여명...롯데백화점 등 5개 대형백화점 8만6000명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어묵 납품업체 소속인데, 대형마트로 파견 나가서 어묵 판매했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더 힘들다. 내가 여기서 왜 어묵을 팔고 있어야 하나 싶더라고요. 회사에서는 판촉사원을 새로 채용하기에는 부담이 되니 당분간 판촉업무를 대신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소 납품업체 직원 A씨는 대형마트에서 판촉사원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곤혹감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러나 또 다른 납품업체 대표인 B씨는 이렇게 속사정을 설명한다. 직원들의 반감을 감안해 대형마트 판촉사원을 임시직으로 고용해서 파견하고 있지만,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려면 판촉비를 내게 하거나 판촉사원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대형마트에 납품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판촉사원을 보냈다. 판촉사원 인건비 부담이 늘어 회사 운영이 걱정된다.”

대형유통업체로 파견되는 납품업체 직원은 "내가 이런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납품업체에 고용된 계약직 사원은 인건비 부담을 느끼는 납품업체 사장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판촉사원'은 나름의 '비애'를 느껴야 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납품업체에 대한 대형유통업체의 판촉사원 파견 요구는 정부의 개선유도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7년 유통분야 서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납품업체가 겪은 불공정행위 1위는 ‘종업원 파견’이었다. 2110개 유통분야 납품업체 중 12.4%가 지지난 1년간 대규모유통업체와 거래하면서 자사의 종업원을 파견하는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백화점협회에 따르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개사가 납품(입점·협력)업체로부터 상시 파견을 받고 있는 판매사원은 약 3만4000여명 수준이다. 또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AK플라자 등 대형백화점 5개사의 경우 8만6000명에 달한다.

8개 대형유통업체에 파견되는 판촉사원은 연간 12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이들의 인건비는 3조원으로 추산된다. 인건비 부담은 고스란히 납품업체에게 지워지고 있다.
 
국회에서도 납품업체에 대한 대형유통업체의 판촉사원 요구 관행을 없애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국회의원(안산상록갑)은 대규모유통업체에 파견돼 근무하는 납품업체 판매사원 인건비를 분담하는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상 대규모유통업체가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종업원을 파견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납품업자 등이 서면으로 요청하는 경우 파견조건을 서면으로 약정하고 납품업자의 상품판매 등에 종사하게 하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악용해 대규모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게 매년 요청서를 강요받아 상시적으로 파견직원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개정안은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등의 종업원을 파견받는 경우 파견받는 분담비율을 포함해 파견조건을 서면으로 약정하도록 하고 ▲파견비용의 분담비율은 해당 파견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에 따라 정하되 납품업자등의 분담비율은 100분의 50 이하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공정위의 ‘2017년 유통분야 서면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납품업체의 84.1%가 대규모유통업법이 시행된 2012년 1월 이후 유통업계의 거래관행이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조사대상 납품업체 98.7%가 대규모유통업체와 거래하면서 표준거래계약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종업원 파견을 비롯해 여전히 불공정거래행위가 남아있다. 조사대상 납품업체의 7.8%는 판매촉진비용을 부담했고, 7.2%는 상품판매대금을 늦게 지급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온라인쇼핑몰(13.2%), 백화점(10.2%), TV홈쇼핑(5.7%), 대형마트(SSM포함)/편의점(5.4%) 등의 순으로 납품업체에게 판촉비용의 부담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철저하게 분석해 유통분야 거래관행 개선을 위한 정책추진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특히, 납품업체 종업원 사용, 판매촉진비용 전가, 상품판매대금 지연 지급 등 많은 납품업체들이 최근에도 경험하는 것으로 파악된 행위들에 대해서는 향후 직권조사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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