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이야기] 가장 센 놈과 붙어 이기려는 ‘2등전략’ 광고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개그콘서트에서 박성광이란 개그맨이 유행시켰던 말이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유행어처럼 모든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기억되고 싶은 1등을 꿈꾼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기 때문이다. 검색엔진 포털의 경우 1등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일반적으로 70%를 넘는다. 그 나머지 시장점유율을 놓고 수 십개 업체들이 치열한 생존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스스로를 1등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2등이라고 밝히고 광고를 하는 기업들이 있다. 이른바 2등기업 마케팅 전략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2등기업이라고 주장하는 광고를 낸 기업은 미국의 렌터카회사 AVIS다. AVIS는 1962년 “우리는 렌터카업계에서 2등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합니다”라는 카피를 앞세운 광고를 대대적으로 일반에 선보였다.

당시 렌터카업계 부동의 1위는 Hertz였다. 나머지 업체들이 고만고만한 시장점유율을 형성하고 있던 상황에서 적자에 허덕이던 AVIS가 스스로를 2등이라고 밝히는 파격적인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광고가 처음 나갔을 때 AVIS는 업계 2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2등임을 자처한 AVIS 광고가 무척 신선했을 터이고, 동시에 머리속에 Hertz 다음의 기업은 AVIS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을 것이다. Hertz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1등이라고 추켜세웠으니 기분 나빴을리 없는 광고였고, 다른 경쟁업체들 입장에선 “사실 우리가 2등이다”라고 반박하기도 우수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AVIS의 이 같은 2등전략 광고는 나오자마자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Hertz는 AVIS의 2등광고를 활용하여 왜 자신들이 1등일 수 밖에 없는지를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AVIS의 2등광고는 결과적으로 Hertz보다는 AVIS에게 큰 이득을 안겨주었다. 소비자들에게 2등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것이란 AVIS의 광고카피는 큰 호소력을 나타냈고, 그 결과 AVIS의 시장점유율은 급속도로 올라갔다. 광고가 나오기 직전만 해도 32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AVIS는 광고출시 첫해 120만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 2014년 현재 전세계 렌터카업계 시장규모는 390억달러이고 이 가운데 미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4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돈 27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미국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곧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미국 공항 렌터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AVIS가 1위를 차지했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토렌탈뉴스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세계 시장점유율은 알라모, 엔터프라이즈, 내셔날 등의 회사를 이끄는 엔터프라이즈 홀딩스가 98만대의 렌터카로 압도적 1위이고, Hertz가 32만대로 2위, AVIS는 28만대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AVIS의 2등광고 시리즈는 2012년까지 50년을 이어져왔고, 지금은 더 이상 2등광고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AVIS의 2등광고가 효력을 발휘하지 이를 패러디한 유사광고들이 잇따랐다. 인도의 광고대행회사 스캐어크로우(Scarecrow)는 AVIS의 광고를 그대로 카피하여 “올라갈 곳이 있는 2등이 행복하다”라는 광고를 내보내 호응을 받기도 했다. 스캐어크로우는 AVIS의 2등 광고 탄생 30주년이 되는 1993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광고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대표적인 것이 대한생명의 2등광고이다. 삼성생명이 보험업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생명이 스스로를 2등이라고 밝힌 이 광고 역시 AVIS의 광고에서 착안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대선주조의 “우리는 2등입니다”라는 소주광고가 선을 보였고, 오뚜리 진라면은 배우 차승원을 모델로 “이렇게 맛있으면 언젠가는 1등이 되지 않겠어”라는 카피로 라면업계 1위인 농심 신라면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또 팬택은 배우 이병헌을 모델로 앞세워 베가 제품을 선전하면서 “17년간 한번도 1등인 적이 없었다”는 광고카피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2등광고 전략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2등기업이 1등기업을 추월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2등기업 광고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1등기업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서는 바위처럼 단단하게 고착된 시장점유율 구조를 깨부수기 어렵기 때문이다. 1등기업과 직접 제품을 비교하는 비교광고를 시도하는 것도 결국은 시장점유율을 어떻게든 흔들어보겠다는 기업들의 마케팅전략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싶으면 가장 센 놈을 골라 싸우라”는 속언이 광고업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효과가 있을지의 여부는 별개의 일이지만 말이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댓글(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