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 '조호바루' 한달살기 (2)] 싱가포르 입성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1.06 05:15 ㅣ 수정 : 2024.03.04 14:59

국제공항에서 그랩으로 호출한 택시가 도착하기 직전에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돼 낭패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카야 토스트 가게로 달려갔으나 "클로즈"라는 허탈한 대답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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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Coleman Street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듣던대로 싱가포르 국제공항은 거대했다.

 

식물원과 인공폭포, 세계 유명 음식점들과 쇼핑센터 그리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는 여행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아 공항에서 체류할 시간을 최대한 늘려놓았다.

 

그만큼 규모도 거대했기에 엄마 놓치지 말고 잘 따라오라고 아이들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음료를 시켜주고는 인근에 있는 ATM을 찾아 트래블월랫으로 싱가포르 달러를 출금했다.

 

예전에는 여행에 앞서 은행이나 공항에서 미리 달러를 환전해 놓고는 했는데 트래블월랫 카드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사용이 가능하니 해외 여행하기가 점점 편리해졌다.

 

출금은 Visa표시가 있는 ATM에서 출금하면 500달러까지는 수수료가 무료이다. 출국장 나오자마자 빨간색 UOB가 보이니 미리미리 출금해놓자.

 

돈을 찾고 스타벅스로 와서 Grab앱을 깔았다. 한국의 카카오택시라 생각하면 편하다. 기사호출과 배달서비스 마트 장보기가 가능한 편리한 앱이다.

 

사용자 이름을 등록하고 창이공항 내 위치로 택시를 호출했다. 후훗 껌이네. 간단하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마트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한달 살기를 하면서 최대한 짐을 다이어트 시킨다고 필수적인 것 외에는 모조리 제외시켰던 것이다. 심지어 비행기에서는 배터리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당장 충전을 시켜야 할 판이다. 이럴수가. 아무리 줄인다고 한들 보조배터리를 빼먹다니. 내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었다.

 

아이들은 오전부터 움직인 탓에 피로에 지쳐 의자에 널부러져 있었다. 싱가포르 스타벅스에만 판매한다는 멀라이언 인형을 사주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해보았지만 “못생겼어.” 한 문장만 되돌아왔을 뿐이다.

 

여러개의 짐가방을 카트 위에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았다. 왼손으로 밀면서 오른손으로는 여섯 살 둘째의 손을 잡았다. 입이 도널드덕처럼 튀어나온 첫째는 의자만 보이면 자석처럼 이끌려가 널부러졌다.

 

제발 그랩이 올 때까지는 배터리가 버텨주기를 바라며 택시 라인에 서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다. 기사가 출발했다는 메시지가 뜨고 나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렸다.

 

나는 실눈을 뜨고 내 행동을 못마땅하게 주시하는 첫째의 눈총을 애써 못 본척하며 태연함을 가장했다. 핫팩도 아닌데 스마트폰을 자꾸 흔들어보고 두드려 보았다.

 

내가 탈 택시의 번호판이 기억나지 않았다. 둘째는 짐 위에 엎드려 코를 골았고 큰애는 플라스틱 의자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난감했다. 여행의 시작부터 공항택시를 타고 바가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린애들을 데리고 시간을 더 끌어봤자 무리였다.

 

줄 지어 있는 택시로 다가가서 그 중 첫 번째 택시를 타고 페닌슐라 엑셀시어 호텔로 가자고 했다. 우려가 너무도 무색하게 기사는 미터기를 정확히 누르고 탑승한지 20분 후 호텔 로비 앞에 세워주었다. 그렇지! 여기는 태국이나 필리핀처럼 택시 요금 사기에 목숨 건 기사들이 판 치는 곳이 아니야. 수많은 벌금으로 사람들의 도덕성을 옥죄는 싱가포르 잖아.

 

나는 안도했다. 땡큐를 연발하며 아이들을 깨워 호텔로 입성했다. 여행을 할 때 숙소는 여행 전체의 질을 좌우할만큼 중요하다. 내가 호텔을 선정하는 기준은 휴양지는 풍성한 조식부페와 커다란 수영장이다. 도시여행은 위치와 쾌적성을 따진다.

 

도보 십 분 이내에 식당과 편의점과 교통수단이 있어야 하고 침구가 깨끗하면 합격이다. 그 모든 점에서 페닌슐라 엑셀시어는 내가 정한 기준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숙소 옆에 커다란 복합쇼핑몰이 몇 있었고 번화가인 시빅 스트릿에 위치해 있어 걸어서 주변 관광지로 이동이 용이했다.

 

싱가포르 비즈니스 호텔들이 대부분 협소한 점을 감안하면 룸도 꽤 넓었고 에어컨도 추울만큼 빵빵했다. 한국에서 낮 1시에 비행기를 탔는데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8시.

 

피곤해하는 아이들을 달래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카야 토스트 먹고싶지? 여기 건물 지하에 엄청 유명한 카야 토스트 가게가 있데. 맛있는 카야토스트 먹자.”

 

짐짓 명랑하게 목소리 톤을 높였지만 사실은 나도 피곤했다. 애써 밝음을 가장하지 않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컵라면만 한 개 사서 대충 먹고는 침대에 쳐박혀 아침까지 자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K마더이다. 아이들을 첫날부터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호텔 바로 옆이 Funan Mall이고 그 곳 지하에 야쿤 카야 토스트가 입점해 있었다.

 

뚱한 표정의 아이들을 닥달하며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눈 앞에 야쿤 카야 토스트 가게가 있었으나 범죄현장처럼 라인을 쳐놓고 런닝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카야토스트?" 라고 하자 "클로즈" 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밀대질을 계속했다. 애들이 시무룩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 썅.....) 급히 구글지도를 뒤졌더니 한층 아래에 딤섬집이 있었다. 9시까지 영업 중이라고 했다.

 

또 다시 애들을 구슬려 딤섬집으로 갔더니 카운터의 안경 쓴 여자가 하품을 하다가 입을 접고는 빈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애들의 눈꺼풀이 점점 다시 내려오기 시작하여 메뉴판을 자세히 볼 시간이 없었다.

 

소룡포 한판과 파인애플 볶음밥, 양념이 올려진 튀김 비스무레 한 것을 주문했다. 나의 애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둘째는 식탁에 얼굴을 전면으로 박고 잠이 들었고 첫째는 시큰둥하게 두어 번 숟가락질을 하다가 의자에 기대 잠이 들어버렸다.

 

계산서를 보니 한화 약 6만원이 넘는다. 평소에 합리적인 가격을 중시하는 나는 울분을 참으며 비쩍 마른 소룡포와 기름에 잠겨있는 볶음밥을 입에 쓸어넣었다.

 

그리고는 애들의 손을 잡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아이들은 각자의 침대에 누워 외출복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도착했다. 싱가포르.

 

내일은 눈 뜨자마자 카야토스트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배터지게 먹을거라고 다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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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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