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 '조호바루' 한달살기 (4)] 싱가포르의 부엌 '호커센터(Hawker)'
싱가포르에서 '호커센터' 120곳이 영업 중...미슐랭 1스타를 받은 곳도 있어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시끌벅적하게 먹고 마시는 거대한 잔칫집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싱가포르의 호커 센터는 약 120곳이 영업 중이라고 한다. (노점상이지만 미슐랭 1스타를 받은 곳도 있다) 그 중 우리는 위치상 가까운 맥스웰 푸드 센터를 가기로 했다.
차이나 타운을 구경하다가 불아사에 들어가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기도하는 것을 무심히 구경하다 보니 길 건너편에 맥스웰의 간판이 보였다.
Tian tian이라는 식당의 치킨라이스가 리뷰가 좋았다. 소문대로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기에 가방을 던져 자리부터 선점하였다. 파라솔 아래 플라스틱 의자가 있는 단촐한 노점석이었다. 기다리다 보니 옆 가게 아주머니가 굵은 나무줄기를 기계에 넣어 즙을 짜고 있었는데 물어보니 사탕수수 쥬스라 하여 한 잔 사서 마셨다.
연초록의 사탕수수즙은 달콤하고 향긋했다. 인공향료와 설탕을 넣어 캔에 봉합한 음료수와는 비교 불가한 단아하고 기품있는 맛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보니 사탕수수 주스 자판기도 있어서 길을 걷다가 가끔씩 사마시게 되었다.

이윽고 치킨라이스가 나왔는데 안남미 쌀밥에 삶은 닭고기를 올린 단촐한 음식이었다. 닭고기는 미지근했는데 쫄깃하고 부드러워 굉장히 맛있었다. 별다른 반찬 없이도 쌀밥과 어우러져 차진 단맛을 제공했다.
옛날에 외할머니 살아계실 적에 외갓집에 가면 압력밭솥에 닭을 쪄서 식혀서 손으로 뜯어주고는 하셨는데 그 맛이 어찌나 좋든지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생각나곤 했다. 티엔티엔의 치킨라이스는 프루스트 효과처럼 어린시절 외갓집 밥상의 기억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인간은 자신의 결핍된 곳이 충족될 때 편안함을 느낀다. 내게는 호커 센터의 떠들썩함이 정답게 다가왔다. 말레이 사람, 중국 사람, 인도 사람, 그리고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시끌벅적하게 먹고 마시는 거대한 잔칫집 같은 풍경.
이 속에서 익명으로 존재하는 나.
혼란스러워 보이나 배려와 질서가 암묵적으로 녹아 있고 소박한 음식의 온기는 내 위장과 마음을 따스함으로 채워준다. 이 한 그릇으로 충만하다.
우리는 화려함을 부각시키는 상업지배 세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게 단조롭다며 불만족에 빠진다.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고민이 우리를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알랭 드 보통 – 영혼의 미술관中)
식사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몰리기에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하는 일도 종종 있다. 안경 쓴 남자가 치킨라이스가 담긴 그릇을 들고 와 맞은편 의자에서 퍼먹는다. 우리도 말 없이 라이스를 열심히 떠먹었다.
맛있는 한끼를 해결하고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오전부터 많이 걷고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수영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수영하러 갈 거냐고 물어보았더니 안가겠다고 하여 내심 안도하였다.
잠시 쉬다가 커피도 고프고 하여 호텔 뒤편에 있는 호커센터에 구경 겸 간식을 먹으러 나갔다. 인도 위에 천막과 플라스틱 의자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이 북적였다.
생필품을 파는 가판대와 과자가게, 꽃 가게, 과일 가게, 즉석에서 구워주는 사떼, 치킨라이스, 락사와 첸돌, 그리고 카야 토스트. 적당한 곳을 골라 커피와 카야토스트 세트를 주문했다.
확실히 공기의 흐름 때문에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먹는 것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카야토스트와 곁들여 나오는 커피는 매우 쓰다. 원두를 다크 로스트로 세게 볶아 추출하였기에 기름기가 돌고 농축된 쓴맛이 느껴진다. 이런 상태는 보통 연유나 우유크림을 섞어서 마시면 풍미가 더욱 깊어진다. 버터와 카야쨈을 바른 토스트와 잘 어우러지는 커피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자주 보이는 현지 커피숍 Kopi tiam은 커피도 마시면서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주력메뉴는 Kopi(커피)와 Teh(찻잎에 설탕이나 우유를 믹스)인데 떼타릭(Teh tarik)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기에 마셔보기를 추천하다.

떼타릭은 두 개의 그릇에 차를 번갈아가며 여러번 옮겨 담는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해 공기 유입이 많이 되어 차 맛이 부드러워진다.
Tarik은 당긴다는 뜻이다.
현지 마트에도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떼타릭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타릭도시고 카야토스트도 먹고 과일 행상에서 만다린 비슷하게 생긴 과일도 한봉지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동물원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우리는 이내 잠 속으로 곯아떨어졌다. 피로는 잠을 부르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다. <5화에 계속>

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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