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진=서울의소리 동영상 캡처]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김건희 여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김건희의 사람(천공 이종호 명태균), 김건희의 혐의(주가조작, 명품백), 김건희의 공간(관저), 김건희의 학력(논문 표절), 김건희 가족과 관련된 정부 사업(서울-양평 고속도로)과 재산 축적 과정 등 현직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이미 현직 대통령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주간지 시사IN은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획(2024년 10월 30일)을 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공적 통제가 없을 때 생기는 국정의 난맥상을 다루었다.
그렇다. 김건희는 윤석열 집권 내내 아킬레스건이었다. 그 수많은 김건희의 스캔들 중에 명품백 수수는 2024년 총선 참패를 불러온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고, 명태균 게이트와 함께 12.3 비상계엄을 촉발시켰다.
명품백 수수가 정권의 뇌관이 된 것은 대통령 부인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아직 김건희가 한남동 관저에 입주하기 두 달 전이다.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의 개인사무실을 방문했다. 최재영은 김건희에게 10차례 면담을 신청했는데 명품 선물을 준비한 두 번만 면담이 성사되었다.
최재영이 앉자마자 선물을 내밀었다. 김건희는 ”이 걸 자꾸 왜 사 오느냐“, ”자꾸 이런 거. 정말 하지 마세요. 이제“ ”이렇게 비싼 거 절대 사 오지 말라“면서도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다. 최재영은 윤석열 취임 직후인 2022년 6월에도 180만 원 상당의 향수와 화장품 세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국민들 눈높이에서는 고가 선물 수수도 불편했지만, 선물을 받으면서 김건희가 쏟아내는 언사가 심히 거슬렸다. 품격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그의 삶의 이력에 대한 연상과 상상을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서울의소리’는 총선을 앞두고 2023년 11월 27일 이 영상을 공개했다. 김건희는 대화 중에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객관적으로 정치는 다 나쁘다고 생각해요.“ ”막상 대통령이 되면은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는 등의 발언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정치공동체로서 남편을 옆에서 지켜 본 소회일 수도 있지만, 김건희의 위상이 역대 영부인과는 다른 것으로 비쳐서 파문이 커졌다. 2022년 1월에 공개된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 김건희의 7시간 51분 녹취와는 파장의 수준이 달랐다.
한동훈이 법무장관을 그만두고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12월 26일, 총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김건희 리스크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여의도 문법이 아니라 동료 시민의 언어로 얘기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윤석열과 거리를 두는 듯했다.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던 12월 9일 “법 앞에 예외는 없다”라고 했다.
김건희는 이때 역술가 유 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저 감옥 가나요”라며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김건희는 혼자 사는 길을 택했고, 한동훈은 국민의힘이 사는 길을 택했다. 두 길은 상충했다.
절박한 김건희는 1월 15일부터 한동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옛정을 생각해달라고 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신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다.”(1차 문자) “한 번만 브이(V)와 통화하시고 만나면 어떠실지요”(2차 문자) 절박했다. 한동훈은 문자에 답을 하지 않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직접 지명한 김경률 비대위원이 1월 17일 “프랑스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 폭발한 것 아닌가. 지금 이 사건도 국민 감성을 건드렸다”라고 했다. 친윤계가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사과하지 말아야 한다. 왜 피해자보고 사과하라는 거냐”(장예찬)
한동훈은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다고 저도 생각한다”(1월 19일)고 했다. 다급한 김건희는 “사과해서 해결되면 천번 만번이라도 사과하겠다”(1월 19일 .3차 문자)라고 했는데 한동훈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는 김건희의 문자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다른 복선이 있다고 보았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1월21일 한동훈을 만나 비대위원장 사퇴하라고 통보했다. 김건희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동훈은 서천화재 현장에서 눈을 맞으며 윤석열을 한 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90도 폴더인사로 맞이했다. 그는 그렇게 고개를 숙였다. 동료 시민의 언어는 사라졌다. 20년의 우정, 그들의 '화양연화'는 이렇게 사라져갔다.
김건희는 “생사를 함께 걸어온 동지”(4차 문자. 1월 23일) 아니냐며 “두 분 식사하시면서 오해 푸셨으면 한다”(5차 문자. 1월 25일)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건희는 총선 이후 한동훈이 자신의 특검법을 수용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불안했다. 한동훈은 윤석열과 식사를 하게 됐다. 결과는 빈손이었다. 157분의 식사가 끝난 뒤, “마리 앙투아네트는 승리하고, 한동훈과 국민의힘은 패배했다‘(고민정 민주당 의원)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열은 새해 신년 기자 간담회 대신에 KBS와 특별 대담(2024년 2월)을 했다. 실정 책임을 묻는 질문이 부담이 되어 KBS와 ‘약속 대담’을 했다. “외국회사의 조그만 백을 어떤 방문자가 그 앞에 놓고 가는 영상"(박장범 앵커, 후에 KBS 사장이 됨)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윤석열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기 어렵다", "시계에다가 이런 몰카까지 들고 와서 이런 걸 (촬영)했기 때문에 공작이다", "또 선거를 앞둔 시점에 1년이 지나서 이렇게 터뜨리는 것 자체가 공작이라고 봐야죠"라고 답했다.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총선 결과에 어떤 정도의 영향을 주었을까?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손열 연대교수)은 총선 직후 4월11일-15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유권자 153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선거를 결정지은 요소에 대한 조사는 통상 선거 바로 직후에 한다. 시일이 지나면 기억이 변질되고 다른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응답자의 74.5%는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했다. 10.1%는 선택을 바꿔 민주당을 지지했다. '대선-윤석열, 총선-민주당’을 선택한 스윙보터인 이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이슈는 명품백 논란이었다.
영향을 미친 정도를 5점 척도(1=전혀 영향 없음. 5=매우 큰 영향)로 물었다. 명품백 논란이 3.95로 가장 높았고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실언(과거 정보사가 1988년 언론인을 식칼 테러한 사건을 언급하며 MBC기자를 위협)이 3.88, 물가 상승(대파 한 단 875원)이 3.85, 의대 정원 확대와 의료계 반발이 3.54의 순이었다.
국민의힘이 2024년 10월 공개한 총선백서(총 271페이지)에서 김건희를 총 27차례 언급했다. 설문 조사도 공개했는데 패배 요인 중에서 김건희 여사 이슈는 8.51점(10점 만점)으로 이종섭 황상무 이슈(8.90점) 대파 논란(8.75점)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백서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여부 및 대응은 지난 총선에 매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에 대해 사과를 포함한 적절한 대응이 없다는 사실도 부정적 여론을 증폭시켰다”라고 지적했다.
총선 패배를 접한 윤석열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2024년 5월 9일 73분 간 기자회견을 했다.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 사과드린다”라고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나. 당신이라면...자기 여자를 제 자리 유지하겠다고 하이에나떼들에게 내던져 주겠나. 그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 상남자의 도리다. 비난을 듣더라도 사내답게 처신해야 한다.”(홍준표 2024년 5월 14일 페이스북)
상남자? 결국 검찰은 상남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명품백 수수사건과 관련해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에게 면죄부를 내주었다. ‘최재영 목사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공소제기를 권고한 지 8일 만에 2024년 10월2 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럴수록 김건희의 위상은 확인되었다. 우리나라 VIP(통상 대통령을 호칭)는 김건희, 권력서열 1위 V1은 김건희, V2는 윤석열 등등이 조롱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심지어 1김시대, 김이 곧 국가다, V0 등의 비유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