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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책홍보연구원, 인병택 고문 위촉
    [뉴스투데이=이상호 기자] 사단법인 한국정책홍보연구원은 18일 인병택 전 도미니카공화국 주재 대사를 고문으로 위촉했다.   인병택 고문은 행정고시 23회 출신으로, 문화공보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국장, 국정홍보처 홍보협력국장과 단장,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인병택 한국정책홍보연구원 고문(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인 고문은 2018년부터 대한축구협회 국제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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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부음
    2020-05-18
  • [CEO리포트] ‘소통 리더십’ 삼성전기 경계현 대표, 전장용 MLCC 양산으로 실적반등 이룰까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LG이노텍과 국내 전자부품 업체 양대산맥을 이루는 삼성전기의 사령탑 경계현 대표이사 사장(57)이 신성장동력을 확보해 실적반등을 이뤄낼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10년 이상을 몸담은 반도체 전문가인 그는 지난 1월 20일 삼성그룹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기의 새 사령탑으로 기용됐다. 당시 이윤태 전 삼성전기 사장(61)의 뒤를 잇는 세대교체형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경 사장은 임직원과의 소통반경을 넓히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왔으나,  주력상품의 시장가격 하락과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인해 실적 하락이라는 부담을 안게 된 모습이다.   경계현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사진제공=삼성전기]   ■ 삼성전기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646억원,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주력 사업 MLCC 평균판매가격 하락 요인   삼성전기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2조2245억원 영업이익 164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직전 분기(1조8456억원)와 비교해 21% 증가했으며, 전년 동기(2조623억원) 대비로는 8% 증가했다. 1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1387억원)와 비교해 19% 증가했지만, 전년 동기(2423억원)와 비교해 32% 감소했다. 회사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Multi-Layer Ceramic Capacitor)의 평균판매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MLCC 사업이 포함된 컴포넌트솔루션 사업부의 매출은 삼성전기 전체 매출에서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의 주력 사업부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컴포넌트솔루션의 매출이 줄고 있다. 2018년 컴포넌트솔루션의 매출액은 3조5501억원이었으나, 2019년 3조2198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3303억원 줄었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사업부여서 경 사장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MLCC가 반도체처럼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여서 조바심을 낼 필요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빠른 시일에 삼성전기의 MLCC 기술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 사장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을 담당하는 임원 시절, 세계 최초 3차원 입체 형태의 V낸드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어서 기술집약적인 MLCC 개발에 적임자라는 평가다.  V낸드는 이전까지 단층으로 배열하던 메모리셀을 3차원 수직 구조로 쌓아 올려 집적도를 높인, 미세화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제품이다.   ■ 삼성전기, ‘선택과 집중’…중국에 밀린 HDI PCB 떼고 전장용 MLCC 등 사업 올인 지난해 12월 삼성전기는 HDI PCB(스마트폰용 고밀도 인쇄회로 기판) 사업을 철수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같은 해 무선충전사업부를 켐트로닉스에 매각하고, PLP(패널레벨패키지) 사업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 사업부에 양도했다. 이는 이윤태 전 사장이 조치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에 필요한 경영 토대가 마련된 만큼 경 사장은 수익이 나는 사업부를 주축으로 실적 반등에 나설 것으로 풀이된다. 그중 하나가 ‘전장용 MLCC’이다.  전장용 MLCC는 자율주행차와 전기자동차에 탑재되는 부품이다. 전기차 1대에 1만3000개의 MLCC가 탑재된다고 한다. 스마트폰 1대에는 1000개의 MLCC가 탑재된다. 쌀 한 톨보다도 작지만, 이 작은 부품이 와인잔 300ml에 절반 정도 담기면 약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전장용 MLCC는 이보다 3~10배가량 높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기가 전장용 MLCC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삼성전기는 2018년 부산과 중국 톈진(天津)에 전장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해 전장용 MLCC 사업을 본격 육성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전장용 MLCC 제조사는 일본의 무라타(시장점유율 34%), 삼성전기(24%), 다이요유덴(14%) 등 손에 꼽을 정도다.   3개월 간 삼성전기 주가 변동추이 [자료=네이버증권]   ■ 공대 출신이 보여주는 소통 리더십   경 사장은 서울대에서 제어계측공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대학원에서 제어계측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해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 상무, 플래시설계팀장 상무·전무, 플래시개발실장 부사장 등을 거쳐 삼성전자 솔루션개발실장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공대생 이미지와 달리 경 사장이 취임 이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임직원과의 소통을 위한 자리다. 그는 매주 목요일 ‘임직원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이와 관련 삼성전기 관계자는 1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인재와 소통을 위해 만든 자리”라며 “경 사장님의 옷 스타일 등 개인적인 질문을 비롯해 회사와 관련된 여러 질문을 받고 사장님께서 답을 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기의 지난 11일 주가는 전날보다 -2.1%(2500원) 내린 11만6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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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리포트
    2020-05-12
  • 농심켈로그, 정인호 신임 대표이사 사장 선임
    [뉴스투데이=김연주 기자] 농심켈로그가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정인호 켈로그 대만·홍콩 지사장을 선임했다고 11일 밝혔다.   농심켈로그 정인호 대표이사. [사진제공=농심켈로그]   정인호 대표이사 사장은 한양대학교 졸업 후 1996년 유한킴벌리에 입사해 세일즈 실무를 익혔다. 그 후 니베아, 유세린 등의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 화장품 기업 바이어스도르프, 스웨덴 종합가전기업 일렉트로룩스 세일즈 이사직을 역임하며 비즈니스 모델 발굴 및 기획, 서비스 등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키워나갔다.   지난 2012년 농심켈로그 영업팀에 합류한 정인호 대표이사 사장은 영업팀 이사와 2014년 영업팀 상무를 역임하며 영업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입증했다. 2018년부터는 켈로그 대만·홍콩 지사장으로 해당 시장의 사업을 총괄했다.   정인호 대표이사 사장은 “켈로그의 여러 글로벌 시장 가운데 특히 성장 가능성이 높아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한국 시장의 농심켈로그 대표이사로 부임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이다”라며 “지난 8여년간 한국·대만·홍콩 켈로그에서 쌓아 올린 비즈니스 경험과 경영감각을 바탕으로 농심켈로그의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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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1
  • [뉴스 속 직업 : 경찰대 출신 변호사]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대 출신 변호사 ‘몸값 급등’ 추세
    [뉴스투데이=김한경 기자] 올해 들어 경찰대 출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생이 처음으로 50명을 넘었다. 지난달 28일 사법시험준비생모임에 따르면, 출신학교 현황 공개를 거부한 중앙대를 제외한 전국 24개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졸업생은 최소 57명에 달했다. 매년 경찰대에 100명이 입학하는 것을 고려하면 절반이 넘는 숫자다.   최근 5년간 경찰대 출신 로스쿨 입학생 추이를 보면 2016년 17명, 2017년 13명, 2018년 25명, 2019년 27명이었다가 금년에 57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경희대 로스쿨에만 경찰대 졸업생 11명이 올해 입학했다. 로스쿨이 첫 입학생을 받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졸업생은 모두 270명에 이른다.   경찰대 4기인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수사권 조정 법안 통과에 따른 후속 조치 관련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학비·기숙사비 등 1억 원가량 국민 세금 쓰고 먹튀 논란   이번에 급격히 로스쿨 입학이 늘어난 이유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앞으로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진 독립적인 수사 주체로 인정받게 되자 대형 로펌들이 경찰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제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린 사건은 검찰의 판단을 받지 않고 불기소 의견으로 수사를 종결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찰대 출신의 로스쿨 진학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며,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사표를 낼 경찰관들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직 경찰관이 휴직하거나 업무를 병행하며 로스쿨에 다니기는 법규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어떤 부서에서 어떤 형태로 근무하던지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는 로스쿨을 졸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편법으로 로스쿨에 진학했다가 2015년 감사원에 적발된 인원은 39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경찰대 출신들의 지나친 로스쿨 진학이 드러나자 정치권에서는 경찰대생 1명이 입학 후 졸업까지 4년 간 학비와 품위유지비, 기숙사비, 식비 등 약 1억 원가량의 국민 세금이 쓰이는데 ‘먹튀 아니냐?’라는 식의 비난도 쏟아졌다.   ■ 총경 이상 간부 과반수 점유…치안감 이상 고위직 55.8%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럴 거면 경찰대가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냐?’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경찰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국가기관인데, 정작 졸업생들이 기회만 되면 다른 곳으로 진출하려고 하니 설립 취지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거의 대부분이 직업 군인이 되는 육·해·공군사관학교 등과도 비교된다.   2013년 말 기준, 경찰 내 고위직인 총경 계급의 45.6%, 경무관 계급의 53.5%가 경찰대 출신이다. 이후 자료가 공개된 바는 없지만 경찰 고위간부 중 경찰대 비중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여서 현재 총경 이상 간부 중 절반 이상은 경찰대 출신이라고 볼 수 있다. 2018년 1월 기준 치안감 이상 고위직 34명 중 55.8%가 경찰대 출신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경찰대는 경찰 수뇌부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주요 요직들은 소수의 고시 출신을 제외하면 거의 경찰대가 과점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대 초창기 기수들의 고위직 싹쓸이와 순경출신 경찰의 근속승진 도입으로 경찰 간부의 진급 정체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초창기 7~80%에 달하던 경찰대 출신의 총경 진급률은 현재 기수 당 30%를 겨우 웃돌고 있다.   ■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 엘리트 그룹의 비전 변질시켜   이렇게 직업적 만족도가 과거보다 떨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졸업생들이 로스쿨 등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 과연 비난만 받을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대는 여전히 경찰간부를 배출하는 최고의 교육기관이고 경찰 내 입지도 매우 좋지만, 현재 받는 대우에 비해 상당히 과도한 역차별과 견제를 받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20년 경찰대 입학생의 경쟁률을 보면 47대 1로 아직까지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18년의 68대 1과 비교하면 갈수록 경쟁률이 떨어지고 있으며, 경쟁률이 점차 상승하는 사관학교와도 대비된다. 전액장학제도가 부분장학제도로 바뀌었고, 의무경찰 소대장으로 병역을 대신하던 제도도 없어진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경찰대는 엘리트 경찰을 키워내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경찰대 출신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는 총 140명으로 전체 인원의 0.6%를 차지하며, 현재 약 300명가량의 경찰대 출신 변호사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약 13%가 대형 로펌, 10%가 판사, 4%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개혁 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경찰 조직 내 엘리트 그룹의 직업적 전망을 변질시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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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7
  • [CEO리포트] 다시 맛있어진 ‘빅맥’…한국맥도날드 앤토니 마티네즈 대표의 ‘고객 중심’ 리더십
    [뉴스투데이=김연주 기자] 한국맥도날드의 새로운 대표 앤토니 마티네즈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철저히 '소비자'를 중심으로 한 경영전략을 내세우며 맥도날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는 평가다.   앤토니 마티네즈는 지난 1월 29일 한국맥도날드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소비자 중심 경영을 지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티네즈 대표는 "맥도날드는 지난 수년 간 혁신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한국에서 강력한 성장을 거듭했다"며 "우리는 탄탄한 2020년 계획이 있으며, 고객에게 더욱 집중함으로써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취임한 이후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햄버거의 '맛'이다. 한국맥도날드는 '베스트 버거'를 도입해 메뉴의 맛과 품질을 향상시키고 있다. '베스트 버거'란 식자재, 조리 프로세스, 조리기구 등 전반을 개선하는 맥도날드의 글로벌 정책으로,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최초다.   '베스트 버거'도입으로 번(버거 빵)의 고소한 풍미가 향상됐고, 패티는 육즙이 풍부해졌다. 치즈는 부드럽게 녹아 패티와 조화를 더했고, 빅맥의 경우 소스를 50% 늘려 맛을 더했다. 채소의 경우 식감 보존을 위해 보관 시간을 단축했다.   인기메뉴를 개선하는 한편, 수익성이 낮은 프리미엄 메뉴인 ‘시그니처 버거’는 단종시켰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메뉴는 정리하고, 주력 메뉴의 품질 강화에 노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다. SNS에서는 햄버거 인증샷과 함께 '확실히 전보다 맛있어졌다', '특히 번이 쫄깃하고 맛있다'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위생과 맛 문제로 고개를 돌렸던 소비자들이 다시 맥도날드 버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 매장 직원 출신 대표…‘고객 중심 경영’ 적임자 될 듯 마티네즈 대표 취임 전, 한국맥도날드는 큰 위기에 봉착해있었다. 외식업계 불황으로 실적은 하락세였고, 햄버거병 논란, 가격 인상, 품질 저하 등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는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티네즈 대표가 취임하면서 새 대표가 한국맥도날드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돼왔다.  마티네즈 대표는 2000년 호주 맥도날드 매장의 시간제 직원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2016년 1월부터 호주 남부지역의 총괄디렉터로 일하며 300여 개 매장의 운영·마케팅·교육을 총괄하고 80여 개의 가맹점을 관리했다.  매장 경험이 풍부한 대표로서 그 누구보다 고객 중심의 경영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치열해진 버거 시장…맛과 비대면 서비스로 승부수 대표 교체 이후 맥도날드의 행보가 실적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외식업계의 불황이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햄버거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도 예고된다.  국내 주요 햄버거 브랜드에는 롯데리아, 버거킹, 쉐이크쉑, 노브랜드버거 등이 있다. 국내 매장 수 1위인 롯데리아는 지난 2월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식물성 패티와 빵, 소스로 만든 ‘미라클 버거’를 출시하며 ‘비건시장’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다. 버거킹은 맥도날드가 주춤하던 사이 매장 400개 돌파를 앞두며 맥도날드와 비슷한 매장 수를 보유하게 됐다. ‘사딸라’ 등 CF가 화제가 되면서 소비자들 사이 인지도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쉐이크쉑 버거도 일부 매장에서만 시범 운영하던 배송 서비스를 전체 매장으로 확대하며 소비자 확보에 나섰다. 신세계푸드가 지난해 8월 내놓은 ‘노브랜드 버거’는 빠른 속도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브랜드 론칭 9개월 만에 30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버거의 가격대가 1900~3500원으로, ‘가성비’를 내세우며 소비자들의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맥도날드는 비대면 서비스를 꾸준히 확대하며 차별성을 두고 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더 많은 고객에게 양질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드라이브스루, 맥딜리버리 등 다양한 플랫폼의 투자를 통해 더 많은 고객들이 편리하게 매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도날드는 현재 전체 매장의 60%의 매장을 맥드라이브 매장으로 운영하고, 전국 대부분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한 상태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맥도날드의 비대면 서비스 시스템은 빛을 발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맥드라이브와 맥딜리버리 비중이 둘 다 합쳐 50%도 안 됐는데, 이번 사태로 그 비중이 60%를 넘겼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이 더욱 급격하게 비대면 형태로 변화하면서, 맥도날드가 갖춘 비대면 서비스 시스템은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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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6
  • [역경을 이긴 연예인 (4)] 외로운 소년 임영웅의 멘토가 된 ‘사범님’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임영웅이 무명가수 시절이던 2017년, 어릴 적 태권도 사범이었던 김종천 전 시장과 함께 시장실서 찍은 사진[사진제공=포천시청]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역시 임영웅이다. ‘감성장인’ 임영웅은 짙은 감성, 그러면서도 맑은 음색과 시원한 가창력, 스타성으로 방송 내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진’의 자리에 올랐다.   1991년생 임영웅은 경기도 포천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영웅이 되라’는 뜻을 담아 아들의 이름을 준 아버지는 5살 때 돌아가셨다. 임영웅에게 어린이날은 각별하다. 어린 영웅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라고 다짐했던 만화영화 주인공 캔디처럼 자신을 다독여야 했을 것이다.   ■열살 소년 임영웅이 만난 태권도 사범   30대에 혼자가 된 어머니는 미장원을 차려 아들을 키웠다. 그리고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던 임영웅을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때 미장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태권도장에 넣었다,   이때 임영웅을 맞은 포천시 송우리 태권도장의 관장이 김종천 전 포천시장이다. 북한 땅인 철원 북방 김화 출신 실향민 아들인 김 전 시장은 한국체대를 졸업하고 한국체육관이라는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김종천 전 시장은 포천시 송우리에 있는 송우초, 송우중, 동남고를 졸업했는데 임영웅이 초 중 고교 후배인데다 영웅이 처럼 자신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바 있어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김종천 전 시장은 임영웅의 첫 인상을 “어린 나이지만 키가 크고 예뻤다”고 기억했다. 같은 건물 5층에 태권도장이 있고 미장원은 1층이어서 임영웅의 어머니와 가족사정을 잘 알았던 김 전 시장은 영웅을 걱정했지만 생각과 달리 “성격이 쾌활하면서도 착하고, 반듯했다”고 말했다.   임영웅의 밝은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11살 때 양동이에 얼굴을 긁혀 작지 않은 흉터가 생겼다. 어린아이 얼굴의 흉터 때문에 콤플렉스가 생기지나 않을까 성형수술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오히려 영웅이 위로했다. 어머니에게 “내 얼굴에 나이키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종천 전 시장과 임영웅의 인연은 중 고등학교와 대학생, 무명가수 시절을 거쳐 트롯황제가 된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예체능에 소질을 보였던 임영웅이 고교 및 대학생 때 까지 태권도를 계속해 인연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김 전 시장은 “영웅이에게 착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지겨울 정도로 타일러도 돌아오는 말은 늘 공손하게 ‘네’ 였고, 토를 달지 않았다”고 말했다.   ■ 어릴적부터 ‘끼’ 보였던 임영웅, 예체능에 두각   임영웅은 어린 소년 시절부터 태권도 뿐 아니라 예체능에 두각을 보였다. 김종천 전 시장은 “태권도장 관원들인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장기자랑을 하면 당시 유행하던 임창정이나 코요테 같은 가수들 노래를 부르는데 잘하니까 혼자서 여러곡을 불렀다”고 기억했다.   임영웅은 태권도 뿐 아니라 축구도 아주 잘해서 태권도장 간 시합은 물론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합 때도 대표로 뛰었다고 한다. 어린시절부터 그의 몸속에 감출 수 없는 예체능 DNA가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꿈은 노래보다는 운동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선수를 꿈꿨고, 중학교 때는 태권도 교육 쪽으로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학교 시절 3년 간 반장을 맡기도 했다.   음악쪽으로 진로가 바뀐 건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야간자율학습에 싫증을 느껴 친구를 따라 실용음악학원에 발을 들였다. 친구는 학원 시험에 떨어졌지만 임영웅은 B등급으로 붙었다고 한다.   결국 경복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진학했다. 처음엔 발라드가수가 목표였지만, 가요제에서 계속 탈락했다. 그러다 2015년 포천 시민가요제에 참가했을 때는, 행사 분위기상 트로트를 불렀는데 최우수상을 받았다.   임영웅은 2016년 전국노래자랑 포천 편에 일반인으로 참가했다. 맑은 목소리로 ‘일소일소 일노일로’를 열창하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트로트의 길을 걸게 됐다.   ■ 시장이 된 태권도 사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   김 전 시장은 2년 전부터 암과 싸우고 있다. 2017년 4월 보궐선거로 시장이 된 김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이 유력했지만 선거를 앞둔 어느날 병원의 암 진단서를 받고 출마를 접었다.   김종천 전 시장은 두 번의 시의원을 역임한 뒤 시장에 당선됐다. 태권도 관장으로서 성실하고 바른 자세 때문에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은 것이 정치로도 성공한 비결이었다.   올초 ‘미스터 트롯’ 경연이 한창일 때, 김 전 시장은 강화도에서 요양 중이었다. 두 사람은 경연 중에도 격려를 보내고 안부를 묻는 카톡을 주고 받았다. 임영웅은 김 전 시장의 하루하루 건강이 어떤지 걱정했고, 김 전 시장은 “실력은 네가 최고니까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해라”고 응원했다.   [사진제공=임영웅 인스타그램]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 1위, 진에 오른 것에 대해 김 전 시장은 “착하고 바르게, 성실한 노력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진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웅이 무명가수 시절 김 전 시장은 “꿈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격려했다.   또 “무명가수 시절 영웅이가 군고구마장수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어긋난 길로 가지 않고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을 보고 내가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전했다.   임영웅은 지난 3월14일 우승을 하자 “엄마만 남겨두고 떠난 것이 미안해 아버지가 준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릴적의 불행을 떨쳐버린 ‘착하고 반듯함’을 보여준 소감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류 공통의 명언이 있다. 스타는 스스로의 힘 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종천 전 시장은 트롯의 부활, 범세대적 인기를 만든 영웅을 도운 진정한 멘토이다. 임영웅[사진캡처=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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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5
  • [CEO리포트] 삼성전자 출신 최창식 DB하이텍 대표, '신뢰경영'으로 올해 영업이익 2000억원 정조준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 상승 등 깜짝 실적을 기록한 기업들이 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공장 가동 중단으로 경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실적반등을 이뤄냈다는 것은 기업의 '위기대처 능력'과 '안전성'을 방증한다.   DB그룹 내에서는 DB하이텍이 올해 1분기 실적 상승이 예상된다. 지난 2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이 예상한 DB하이텍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50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223억7000만원)의 2배 이상이다. 초반 과도한 투자로 인해 적자의 늪에 허덕이던 DB하이텍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바꾼 인물로 최창식 DB하이텍 대표(67)가 꼽힌다.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 사장[사진제공=DB하이텍]   ■ 글로벌 팹리스 고객사 180곳 확보해 매출과 영업이익 증대 전기 마련   DB하이텍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처럼 데이터를 처리하는 비메모리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의 1위는 대만의 TSMC이고 2위는 삼성전자이다. 따라서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기업이 고객사이다. 파운드리업체가 어떤 상황하에서도 팹리스기업이 원하는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보안을 엄수할 수 있다는 신뢰를 제공하는 파운드리 기업만이 시장에서 생존 및 발전할 수 있다.   최장식 대표는 바로 그런 역할을 했다. 내부 직원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팹리스기업들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실적 개선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최 대표는 중국과 미국 중심으로 국내외 고객사 180곳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수출 비중은 2016년 40.8%에서 2018년 80.2%까지 급상승했다. 글로벌 시장판로를 개척함으로써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려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2012년 영입된 최대표, 만성적 적자구조 털어내고 흑자기업으로 전환시켜    비메모리반도체는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며, 시스템반도체로도 불린다. 그 외에도 DB하이텍은 파운드리 서비스와 디스플레이 구동, 센서 집적회로(IC) 등의 제품을 설계하고 판매한다.   1997년 동부전자 설립으로 시작됐다. 본격적인 사업은 2001년 시스템반도체를 주력산업으로 택하고 집중투자를 하면서 성장했다. 2017년 현재 사명인 DB하이텍으로 변경했으며, 현재 한 달에 8인치 웨이퍼를 13만장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임직원은 총 2000여명에 달한다. 등기이사는 최 대표를 포함해 단 2명이다.   최 대표는 DB하이텍이 시스템반도체에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백억을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입된 인물이다. 삼성전자에서 20년간 쌓아온 기술과 경영스타일을 DB하이텍에 접목해 흑자를 거두는 기업으로 탈바꿈화 시켰다.   최 대표의 2019년 보수총액은 10억9100만원이다. 이 중 상여금은 지난해 3억2600만원으로, 2018년(2억2200만원)과 2017년(2억6600만원)보다 많이 받았다. 이는 기업의 목표를 초과했을 시 경영실적 평가에 따라 지급되는 특별성과급에 의한 결과이다. 최 대표는 지난해 DB하이텍의 목표치를 초과달성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표=뉴스투데이]   ■ 재료공학과 학·석사, 전자공학 박사 출신의 공학도 경영인   최 대표는 전형적인 공학도 출신 경영인이다. 1954년 1월6일 출생으로, 1977년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곧바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같은 학과에 진학해 1979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기술개발 관련 실무경험을 쌓다가 1990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DB하이텍의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을 이끌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공학도이다.   최 대표는 1981년 동부산업(현 동부메탈) 기술개발실에 입사했다. 이 때 처음으로 DB그룹과 연을 맺었다. 2년 후인 1983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이직해 D램 개발팀장으로 근무했다. 최 대표는 △1995년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장 △2001년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IC개발팀장 및 LDI사업부장 △2006년 시스템LSI 제조센터장 △2008년 파운드리센터장 △2010년 태양전지사업부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30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입지를 넓혀갔다.   2012년 DB하이텍 각자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돼 동부그룹에 복귀했다. 그 이후 오명 대표가 물러나면서 2014년 단독대표에 올랐다.   ■ 최 대표의 ‘실용 경영’과 ‘미래기술 통찰력’도 흑자전환의 원동력   최 대표는 ‘실용성’을 강조해왔다. 즉 DB하이텍의 기술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면서도 수익성 극대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왔다. 2012년 DB하이텍의 본사를 강남에서 부천의 반도체공장으로 이전하는데 최 대표의 의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 신속 대응으로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생산라인에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함이다.   공학도·연구원 출신답게 미래기술의 흐름을 읽는 시각도 뛰어나다. 최 대표는 지난 2016년 3월25일 주주총회를 마친 뒤 “회사의 매각 이슈에도 독자생존을 위해 모두가 뭉쳐 경쟁력을 높이며 우량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며 “사물인터넷(IoT)과 웨어러블기기 등 신성장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 4년이 지난 현재 실제로 DB하이텍은 신성장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IoT, 빅데이터, 5G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구현하는 전력반도체(CIMC)와 CMOS 이미지센서(CIS)의 수요가 증가했다.   ■ 2014년 첫 연간 흑자 기록한 DB하이텍, 2020년 영업이익 2000억원 달성할까   DB하이텍은 2001년 본격적으로 시스템반도체를 주요 사업으로 택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그러나 10년 넘게 적자의 늪에 빠져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당시 기업 내외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최 대표가 취임한 지 2년 만인 2014년 영업이익 456억원으로 첫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 과거 월간 및 분기 흑자를 뛰어넘는 의미있는 성과였다.   2015년부터는 본격적인 성장세에 올랐다. 동부하이텍의 영업이익은 △2015년 1250억원 △2016년 1724억원 △2017년 1432억원 △2018년 1130억원 △2019년 1813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과 2017년 영업이익 하락세가 2019년에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지난해가 반도체 업황의 불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가 깊다. 지난해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 경쟁으로 인해 이미지센서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제가 얼어붙은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 동기 대비 2배 이상의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DB하이텍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할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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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4
  • [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 ⑤ 인터뷰 : 보청기 거부하는 복합소재 대가의 성공 철학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2일 한국화이바 창립자인 조용준 회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 본사가 있는 밀양으로 출발했다. 기자가 11시30분경 밀양역에 도착하자 안내차량이 나와 있었다. 회사로 가는가 싶었는데 도착한 곳은 인근에 있는 중식당이었다. 식당에는 조 회장이 큰아들인 조문수 한국카본 대표와 함께 직접 나와서 기자를 맞이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식사를 하며 대화가 시작됐다. 조 회장은 수수한 옷차림에 평범한 외양이었지만 행동과 말투는 단호했다. 그 모습에서 독창력을 경영 철학으로 삼아 복합소재 기술의 국산화를 이뤄낸 저력이 느껴졌다. 조 회장은 91세의 고령이어서 보청기 없이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으나, 조문수 대표는 “아버님이 보청기를 사용하기 싫어하신다”고 말했다.   집무실에서 복합소재 개발 과정을 기자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조용준 회장. [사진=김한경 기자]   ■ “100억원의 손해는 용서해도 1억원의 추가 실수는 질책”   조 회장이 잘 알아듣지 못해 대화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정확한 기억과 빛나는 눈매, 그리고 자기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역력했다. 그는 비교적 또렷한 어조로 자서전에서 언급했던 창업과 기술개발 과정을 얘기하면서 “돈을 벌려는 생각보다 일본을 기술로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개발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돼지고기와 조개에 대한 알레르기가 심해서 외부에서 식사를 꺼렸다. 그런 체질 때문에 영업보다는 회사 안에서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이로 인해 영업 활동은 주로 큰아들인 조문수 대표가 도맡아 수시로 국내외 출장을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조 회장이 영업을 잘 모르고 개발에만 몰두하는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조 회장은 “돈이 되지 않으면 기술이 아니라는 지론을 갖고 평생 기술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그 기술로 얼마나 시장의 단가를 낮춰 제품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 생각했고,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영업 마인드가 있었기에 조 회장은 오늘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다.   조문수 대표는 “아버지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 투자를 잘못하거나 개발에 실패해 커다란 손실을 봐도 ‘잊어버려. 가슴에 담고 있다간 몸만 상해’라며 상황을 끝내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하게 최선을 다했다면 100억을 손해 보더라도 나무라지 않았지만 이후 판단을 잘못해 추가로 1억을 손해 보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다”고 덧붙였다.   식사를 마친 후 한국화이바 본사로 이동했다. 조 회장은 회사에 들어서자 그가 직접 나무를 심고 돌을 옮겨 가꾼 정원인 ‘녹산원’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인 ‘독창력’이란 글이 새겨진 자연석 앞에서 기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전격 회동은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라고 말한 사실을 언급하며 서로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 담배 한 갑 사주고 하루 종일 책방에서 전문서적 독학   이어 조 회장은 조문수 대표에게 시설 안내 순서를 정해주면서 기자와 함께 직접 공장을 돌아봤다. 밀양 공장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이뤄낸 산물의 일단이 내부에 펼쳐져 있었다. 그라스페이퍼 생산시설과 LNG화물창 설치 판넬 제작공정 등을 둘러봤는데, 모든 설비와 내부 배치는 그가 직접 구상하고 설계했으며, 시험장비 등 일부 설비만 해외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설비와 내부 배치를 조 회장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그라스페이퍼 생산라인. [사진제공=한국카본]   조문수 대표가 대부분의 설명을 이어갔지만 조 회장도 함께 둘러보면서 일부 공정은 자신이 직접 설명하거나 조 대표에게 설명하도록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마주치는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한 중견 책임자에게는 “20대 청년 때 입사했는데, 이제 50대 중반이 넘었다”면서 환한 미소로 격려하고 대견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공장 시설 견학에 이어 한국카본 본사에 마련된 한국화이바 및 한국카본의 역사관을 돌아봤다. 역사관에 들어서자, 두 회사가 성장해온 과정을 연대별로 설명한 전시자료에 이어 창업주인 조용준 회장의 흉상과 그의 의지가 담긴 어록을 전시한 공간이 나왔다.   흉상 좌측 공간에 자리한 어록에는 한글과 영어로 “나는 평생 복합소재 한 분야만 매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내 머릿속은 오로지 복합소재 하나로 세계 최고기업이 되겠다는 꿈만이 있었을 뿐이다. 기술 개발은 언제나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에야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고 기록돼 있었다.   이처럼 조 회장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세워지면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서 독학으로 해결했다. 낚시대를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주로 중고 서점에서 찾아낸 일본 전문서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중고서적도 살 형편이 아니었던 그는 “책방 주인에게 담배 한두 갑을 사주고 양해를 얻어 책방 구석에서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복합소재에 대한 공부는 일본에서 매월 발간하는 ‘공업재료’란 전문잡지와 관련 협회가 발간하는 자료 등을 40년 이상 탐독하는 등 일상이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전문지식을 토대로 그는 세계적인 전문가조차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기술까지 개발에 성공하는 등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다.   ■ 병원 사환으로 일하며 의사 되려고 독학해 치질약도 개발   조 회장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자신이 평생 동안 이룬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한국카본에 마련된 집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지난해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인 “독창력만이 살 길이다”란 책에 ‘한국화이바, 한국카본 회장 조용준’이라고 직접 서명해 기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40년 이상 읽었던 공업재료 잡지 전체를 꽂아놓은 서가를 찍은 사진 뒷면에도 서명해서 주었다.    마침 기자의 눈에 일본어로 깨알같이 적어놓은 오래된 서류가 보였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초등학교 졸업 후 병원의 사환으로 일할 때 의사가 되겠다고 독학하면서 개발한 치질약 설명서라고 했다. 그가 목표를 세우면 독학으로 뭔가를 이뤄낸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를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보관한 것도 대단했지만, 그 방법이 당시 상당한 효과가 있어 돈도 꽤 벌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렇듯 조 회장은 한국에 변변한 기술 하나 없던 시절에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꿈을 쫒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의 ‘한국화이바’와 ‘한국카본’을 만들어냈다. 두 아들이 맡아 이끌고 있는 이 회사들은 복합소재에 관한 한 한국 최고의 기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특히 LNG운반선 화물창 설치 패널의 핵심인 가스 차단용 복합재 알루미늄시트는 세계 유일의 독점 기술이다.   유리섬유강화우레탄 폼과 복합재 알루미늄시트로 구성된 LNG화물창 설치 패널 생산라인. [사진제공=한국카본]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이면에는 조 회장이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들여 개발했지만 회사에 이익이 될 만큼 실용화되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직접 사업화하지 못하거나 사장된 기술들도 상당했다. 조 회장은 “그런 현실이 안타깝지만 기술을 개발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 회장은 카본 섬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때 테니스 라켓과 골프채를 만들었다. 그러나 완제품에 너무 신경을 쓰면 소재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자신의 의지가 약화될 소지가 있어 결국 테니스 라켓은 개발한 기술과 시설을 ‘한일 라켓’에 넘겨줬다. 골프채도 품질은 외제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홍보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일본에 수출하는 길을 택했다.   조 회장은 상·하수도 및 폐수 처리장의 바닥에 쌓인 슬러지를 제거하는 슬러지 수집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은 그의 제품을 신뢰하지 않아 미국 엔바이어스사 제품을 수입해 사용한다. 안타까운 점은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이 회사가 자사 제품보다 우수하며 생산가격도 저렴한 조 회장의 슬러지 수집기를 구매해 자사 브랜드를 붙여 역수출하기도 했다.    ■ 틸팅열차, 굴절버스, 초저상버스도 조 회장 개발 작품   조 회장이 개발한 ‘틸팅(tilting)열차’는 세계 최초로 복합소재를 이용하여 거대한 차체를 한 덩어리로 제작한 것이다. 틸팅이란 원심력을 줄이기 위해 기존 철로의 곡선구간에서 안쪽으로 열차를 기울게 만들어 제 속력을 내는 기능이다. 조 회장은 자체 기술로 만든 대형 성형기(오토 크레이브) 안에 복합소재를 넣고 고온과 고압으로 마치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듯이 틸팅열차 1량을 한 번에 뽑아냈다.   이렇게 제작된 6량의 틸팅열차는 2007년 3월부터 시험 운행에 들어갔고, 기술적 하자는 전혀 없었다. 차량이 가벼워 전기로 운행할 때 에너지 절감 효과도 있고 철로 마모를 줄이면서 지반을 보호하는 등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이 열차는 시장성이 형성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생산이 중단됐고, 시범 제작한 틸팅열차는 지금 철도기술연구원 창고에 보관돼 있다.    조 회장은 이후 건설교통부의 제안으로 도로와 궤도 양쪽에서 모두 운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인 ‘굴절버스’도 제작했다. 네덜란드 APTS사와 기술 제휴로 차체와 내장재 일체를 자체 제작하고 엔진의 조립까지 한국화이바가 맡아 2009년 출시됐다. 이 버스는 동력원을 연료전지나 천연가스를 사용해 대기오염이 없는 차량이지만 역시 시장성이 없어 생산이 중단됐다.   이 버스를 개발하는 도중에 ‘초저상버스’를 개발하라는 추가 과제가 주어졌다. 장애인·노약자 들이 승하차가 편리하도록 기존 저상버스보다 바닥을 낮게 하고 승차감을 높인 버스다. 설계에서부터 차제제작 및 내부시설까지 한국화이바가 만들어 국가 표준형저상버스로 과천정부청사에서 공개 시승식까지 가졌으나, 회사 내부사정으로 기술과 생산설비를 타 업체에 넘겨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와 같이 조 회장은 자신의 의지나 시장 상황 또는 회사 내부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다양한 제품을 계속 개발하면서도 회사에 이익을 가져올 만큼 실용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소재 분야에서는 그라스페이퍼, 유리섬유 파이프, LNG화물창 설치 패널 등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면서 계속 확장되는 추세이다.   ■ 조문수 대표, “아버지의 천재성, 통찰력, 추진력은 대체 불가”   조문수 한국카본 대표는 “아버지의 천재성과 통찰력 그리고 추진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고 대신하기 어렵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는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이제 큰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뒤로 물러선 입장이다. 자신처럼 직접 기술 개발은 어렵지만 경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평생을 복합소재만 연구한 조 회장은 이날 대화 중에 핵폐기물 저장과 관련된 해결책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유리섬유 용융로 기술을 이용하여 “유리 속에 핵폐기물을 넣으면 빠져나오지 못해 안전하다”며 “이런 방식으로 처리해 바닷물 속에 저장하면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방법의 효용성을 신뢰하지 않아 프랑스가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조 회장은 복합소재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해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했고 세계적 수준의 제품들을 생산해 국익 창출에 기여해왔다. 그가 평생 동안 독학으로 이뤄낸 기술적 성과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것이며, 사람들은 복합소재 산업의 선구자인 그를 가리켜 ‘진정한 한국의 보배’라고 말한다.   조 회장의 인터뷰는 청력의 문제로 원활히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고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는지는 회사 곳곳에서 느껴졌다. 조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조용히 당부했다. “우리 아들 좀 잘 도와 달라”고. 아버지의 도움이 아직 필요하다는 아들과 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기자는 밀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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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7
  • [CEO리포트] 코로나19위기 속 빛 발한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의 ‘유비무환’ 전략
    [뉴스투데이=김연주 기자] 유소년층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유제품업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매일유업이 피해를 최소화하며 어려움 속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는 제품군을 다양하게 확대하며 흰우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유소년층뿐 아니라 고령층까지 타깃층을 확대하는 등 꾸준히 새로운 먹거리를 개발해 온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의 ‘유비무환’ 전략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제공=매일유업 / 그래픽=뉴스투데이   현재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판매가 감소하고, 급식 우유 납품이 중단된 상황에서 몇몇 유제품업체는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짧은 원유를 빨리 처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인데, 또 한쪽에선 과열경쟁, 판매가 훼손 등의 우려가 나온다.   전체 급식 우유 시장에서 매일유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지만, 유제품 업체가 하나둘 할인행사를 진행하면서 매일유업도 과열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매일유업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소화가 잘 되는 락토프리 우유, 커피, 치즈 등 다양한 제품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년층을 겨냥한 영양식 등 미래 성장성이 큰 제품군에도 진출해 코로나19 피해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매일유업의 사업 부문은 크게 분유, 시유(우유), 발효유, 유음료, 기타(셀렉스, 두유, HMR)로 나뉘어 있다. 시유(우유) 부문에서도 소화에 걸림돌이 되는 유당을 제거한 락토프리 우유인 ‘소화가 잘 되는 우유’, 상하목장 유기농 우유 등 ‘틈새 고수익 시장’을 공략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현재 매일유업은 국내 락토프리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유기농 우유의 매출은 전체 기업 매출의 8%를 차지하고 있다.   ■ 김선희 대표, 2016년 업계 매출 1위 탈환 비결은 ‘틈새 고수익 시장’ 집중 결과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는 1964년생으로, 유제품업계 최초 여성 CEO다. BNP파리바그룹과 크레디아그리콜은행, 한국씨티은행 등을 거친 금융인 출신이다.  김 대표는 김정완 매일홀딩스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2009년 재경본부장으로 영입돼 2014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오너가(家)지만, 사실상 회사 주식은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아 전문경영인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2009년 매일유업 전무로 영입된 그는 재경본부장을 맡아 2010년에 매일유업과 자회사 상하를 합병하며 경영효율화를 꾀했고, 2013년에는 폴바셋을 키우기 위해 사업부를 독립해 자회사 ‘엠즈씨드’를 설립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2014년 매일유업 대표가 된 이후 2년만인 2016년에는 회사 매출을 업계 1위인 서울우유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 해, 김 대표는 유당을 제거한 우유인 락토프리 우유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개선해 시장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연간 10% 이상씩 성장하는 락토프리 제품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연구·개발에 집중 한 결과다.  이처럼 일찌감치 출산율 감소, 유소년층 감소로 인한 유제품업계의 한계를 인지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해 온 매일유업의 기조를 이어 김 대표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김 대표 관심은 ‘성인영양식’ 사업…‘중장년층’까지 전 세대 아우른다 현재 김 대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중장년층을 소비층으로 확대하기 위한 성인영양식 사업이다.  지난해 선보인 ‘셀렉스’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셀렉스가 포함된 유가공식품 외 기타부문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7.4% 증가한 2356억원을 기록했다.  김 대표도 지난달 정기주총에서 “성인영양식과 상하목장 부문에서 수익성을 견인해 실적이 개선됐다”며 셀렉스의 매출 성장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도 셀렉스에 대한 전망은 밝다. 김정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매일유업의 고수익 제품군 가운데 신제품 셀렉스는 매일유업의 연간 목표치를 웃도는 매출 기여를 하고 있어 조제분유를 대체할 차세대 주력상품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평했다.  현재, 성인 조제분유시장의 상위 개념인 실버푸드시장 규모는 14조 원 정도로 6년 동안 연평균 14% 정도 성장해왔다. 우리나라의 성인 조제분유시장이 태동 단계에 불과한 것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시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  김 대표가 시작한 신사업에는 가정간편식(HMR) ‘슬로우키친’과 디저트 브랜드 ‘데르뜨(D'ertte)’도 있지만, 성공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HMR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고, 디저트 브랜드 데르뜨는 냉장젤리가 주력이어서 소비자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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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7
  • [역경을 이긴 연예인 (3)] 정우성, 몸 눕힐 자리조차 없던 청춘→대한민국 대표 남신으로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정우성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정우성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남신’ 배우다. 잘 생긴 외모와 완벽한 기럭지로 1990년대를 풍미했고, 오늘 날까지 연기, 제작자, CF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우성은 있는 집 자식 같은 품격 있는 외모와 달리 여러 역경을 겪었다. 몹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일찍 홀로서기를 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때로는 유혹의 검은 손길이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앞길을 개척했다.   ■사당동 판자촌에서 보낸 유년기 “가난했지만 불행하지 않았다”   정우성은 1973년생으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집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재개발 지역의 판자촌에 있었고, 부엌과 방 하나가 전부인 공간에서 5명의 가족이 생활했다. 퇴거명령이 떨어지고 매일 불도저가 다른 집을 밀고 다녀도 마지막까지 버텼다. 옆집이 허물리면 그제야 짐을 쌌고, 아직 무너지지 않은 다른 판자촌의 빈 집으로 들어갔다.   정우성의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늘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나쁜 길을 걷지 않도록 보살폈다.   정우성은 유년기의 가난함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가난은 부모님의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이미 키가 180cm를 넘었기 때문에 성인인 척 거짓말을 하고 여고 앞 햄버거 가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어린 나이에 돈벌이를 한 것은 좋은 경험이 됐다. 손님을 끄는 뛰어난 외모와 햄버거 굽기 실력으로 사장에게 인정을 받았고, 스스로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베풀면서 성취감도 느꼈다.   이 무렵 TV를 보다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연했다. 대신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고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교실에는 폭력을 일삼는 불량학생이 많았고 선생님들은 부모님의 재력, 성적, 사는 곳을 두고 노골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했다.   설상가상으로 친구와 얽힌 폭력서클 선배들이 정우성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결국 정우성은 고등학교를 1학년만 마치고 자퇴했다. 중졸의 학력으로 사회에 뛰어든 것이다.   ■중졸의 학력으로 시작한 모델일과 검은 유혹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배우의 꿈이 다시 떠올랐지만,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몰라 모델부터 시작했다. 옷가게 아르바이트로 수강료를 벌며 모델 센터를 다니고, 프리랜서로 CF 모델도 찾아서 했다. 하지만 당시 모델 일은 보수를 3~6개월 뒤에 주는 데다가 막상 돈을 받으러 가면 회사가 없어지는 등 불안정했다.   방송국 공채 탤런트 시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배우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모델 센터가 요구하는 장기계약을 하지 않았더니, 모델로서 쇼쪽의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세상에 자기 몸 눕힐 자리 하나 없는 것 같아 막막함을 느낄 때, 어두운 제의가 오기도 했다. “돈은 물론이고 아파트, 차까지 줄 테니 호스트바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유혹했다.   정우성은 거절했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무엇이든 잡고 싶었지만, 아무거나 잡더라도 꿈에 다가갈 수 있는 무언가를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구미호   ■영화 ‘구미호’ 주연 발탁, 안방극장 오가며 스타 반열에   그러다 기회가 왔다.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잘 생긴 남자애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연예계 관계자들이 정우성을 보러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1994년 개봉한 영화 ‘구미호’의 남자주인공 오디션을 보고 주연으로 발탁됐다.   영화배우 데뷔를 앞두고 찍은 ‘센스민트’ 껌 광고도 대박이 났다.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를 배경음악으로 한 CF가 화제가 되면서 주목받는 신인이 됐다.   ‘구미호’에서 정우성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1997년 SBS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로 그해 ‘모래시계’ 이정재와 SBS 신인상을 공동수상했다.   영화 비트   이후 1990년대 청소년들의 로망이 된 ‘비트’의 ‘이민’ 역으로 절정에 오른 외모를 뽐내 강한 존재감을 남겼으며, 이정재와 출연한 ‘태양은 없다’로 대표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배우 데뷔 후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 ‘러브’와 ‘무사’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2000년대 초반에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흥행 성공보다 실패작이 더 많았다. 정우성을 두고 “외모가 전부인 배우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그의 연기가 꽃피기 시작했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2011년에는 배우 이지아와 스캔들에 휘말려 잠시 쉬다가 2012넌 JTBC 창사 드라마 ‘빠담빠담’을 통해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후 영화 ‘감시자들’, ‘신의 한 수’, ‘아수라’, ‘더 킹’, ‘강철비’ 등에서 절정의 연기력을 보였다.   영화 증인 포스터  2019년에는 영화 ‘증인’으로 배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백상예술대상 대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싹슬이했다. 2020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태영’이라는 호구캐릭터를 연기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감독 제작자로 활동 넓혀...“아직도 나를 완성하는 과정”   최근에는 배우를 넘어 영화배우와 제작자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우성이 감독을 맡은 상업영화 데뷔작 ‘보호자’가 지난 2월 크랭크인했다. 자신이 주연을 맡고, 김남길 박성웅 등이 출연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 제작자로 참여한다는 소식도 있다. ‘고요의 바다’는 전 세계적인 사막화로 인해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미래의 지구에서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정예대원들의 이야기다. ‘우주 SF 스릴러’라는 흔치않은 장르를 어떻게 담아낼지 관심이 모인다.   정우성은 현재의 삶에 대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스스로를 계속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다. 지금 주어진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9년 찍은 커리어의 정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직업배우로서, 자신에게 상을 안겨준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들을 꾸준히 연기하고 싶다.   [사진제공=정우성 인스타그램]   정우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기로도 유명하다. 2015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2018년에는 예멘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공격을 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점점 커질 때 “사명감과 열정으로 혼신을 다하고 계시는 질병관리본부, 전국 보건소, 전국 의료시설 등의 의료진과 관계자, 봉사자 모든 분들께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는 글을 남기며 1억 원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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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2
  • [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 ④ 철학 : 시장의 승자는 학력 이긴 ‘독창력’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조용준 회장의 인생은 ‘독창력’이란 단어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독창력을 무기로 복합소재 분야의 다양한 기술들을 개발하면서 평생을 살아왔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 독창력만이 살 길이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조용준 회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이 걸어온 90년 인생을 반추해보는 ‘독창력만이 살 길이다’란 제목의 자서전을 발간했다. 1999년에 처음 발간했던 책의 증보판 같은 성격인데, 이 책에서 그는 복합소재와 관련된 여러 기술과 생산설비 개발에 도전하여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공에 이른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조용준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낚시대를 만들던 은성사 시절에 근무했던 동료들과 녹산원의 ‘독창력’ 자연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 쌀 한 가마 값 낚시대 사는 병원장 보며 복합소재에 호기심 가져   이 책의 서문에서 조 회장은 1962년 어느 날  쌀 한 가마 값을 주고 낚시대를 사는 병원장을 보면서 갖게 된 낚시대 소재에 대한 ‘호기심’과 그 소재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막연한 ‘꿈’이자신이 복합소재 분야에서 성공하게 된 동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남보다 특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험난했던 그 길을 가야만 살 수 있다는 절박감이 그를 사로잡아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노력한 결과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회사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조 회장은 “IMF를 맞아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한국화이바는 지속적인 성장의 발걸음을 내딛었다”면서, 그런 행운의 배경에는 “오직 복합소재라는 한 영역만을 고집하면서 독창력을 발휘한 기술 개발로 선진국들의 기술과 차별화시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조 회장이 복합소재라는 대단히 생소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뛰어들어 평생을 바치면서 독창력을 삶의 철학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이를 위해 1960년대 방위산업 초창기에 그가 경험했던 사례가 답이 될 듯하다.   ■ 나이키 유도탄 탄두 생산권한 빼앗긴 뒤 독자적 기술 개발 다짐   1969년 조 회장은 알고 지내던 방위산업연구소 관계자로부터 FRP 소재가 없어 대전차지뢰를 미국에 의존한다는 말을 들었다. 샘플을 얻어 해체해보니 외관은 플라스틱인데 뇌관을 치는 격발장치인 스프링이 FRP 소재였다. 2주 만에 스프링 견본을 만들어 보내자 그 관계자는 깜짝 놀라며 방위산업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이후 선진국에서 쓰는 플라스틱 헬멧 개발도 요청했다. 조 회장은 한 달 남짓 연구를 통해 나일론 섬유에 자신이 개발한 수지를 결합시켜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뛰어난 플라스틱 헬멧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헬멧을 직접 도끼로 찍어보고 이상이 없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플라스틱 헬멧은 60만 국군이 사용했고, 이란에도 수출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화이바는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대전차지뢰, 소총·유탄발사기 개머리판, 헬멧 등을 만들어 국방부에 납품했고, 후에 나이키 유도탄 탄두까지 개발했다. 하지만 유도탄 탄두 생산 권한을 힘이 없어 다른 업체에게 빼앗기면서 조 회장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독자적인 기술 개발의 길을 열어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그가 스스로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회사 임직원들에게 수시로 ‘독창력’을 강조하고 ‘독창력만이 살 길’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해온 배경에는 이와 같이 방위산업 초창기에 겪은 아픈 추억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함이 조 회장의 평생 철학이 된 ‘독창력’을 태동하게 만든 근원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화이바는 복합소재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몇몇 제품들을 갖고 있다. 유리섬유 파이프와 LNG화물창 자재가 대표적이며, 아직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초저상버스와 틸팅열차 등도 이에 해당한다. 특히 복합소재를 이용해 일체형으로 만든 틸팅열차는 세계의 기술자들이 놀란 불가사의한 기술로서 오로지 그의 독창력이 성공시킨 프로젝트다.   ■ 독창력의 출발은 초등학교 졸업 학력, 독학으로 남다른 기술 개발   2006년 9월 조 회장은 일본 복합재료학회 초청으로 고베에서 열린 행사에서 특별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복합소재 공부를 위해 일본에서 발간된 책자와 관련 잡지를 40여 년 동안 빠짐없이 탐독했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기술 원천이 일본임을 솔직히 시인했다. 하지만 독창력으로 일본의 기술과 차별화시켜 세계 유수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당시 조 회장의 강연 내용은 언론에 자세히 보도됐고, 이후 세계적인 복합소재 학자인 한또 박사가 밀양의 회사로 찾아와 그와 장시간 얘기를 나눴다. 얘기가 끝날 무렵 한또 박사는 “어느 공과대학에서 공부했느냐”고 물었고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라고 밝히자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참으로 놀랍다”며 그의 독창력에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밀양에 있는 한국화이바 본사에는 공장 중앙에 200여 평 규모의 작은 정원이 조성돼 있다. 조 회장은 이 정원에 자신의 호인 녹산(鹿山)을 붙여 ‘鹿山苑’이라고 이름 지었다.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머리를 식히는 휴식 공간인데, 이 정원에 들어서면 2미터 이상 높이의 자연석에 한자로 ‘獨創力’이라고 크게 새겨져 있다.   조 회장은 직원들이 이 정원을 드나들 때 독창력이란 글자를 보면서 의미를 마음속에 새기길 기대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실제로 그 글자를 바라보며 독창력을 발휘하겠다고 다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직원들이 퇴근한 이후 가끔 녹산원을 찾아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과연 나는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가?”라고 자문해 본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이 질문에 자신이 답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평가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카본을 맡고 있는 큰아들 조문수 대표는 “아버지의 독창력은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특히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감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독창력을 발휘한 기술의 결과물들이 이런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란 얘기다.   ■ 개발 실패로 인한 손실은 잊어라…지금도 신기술 연구 중   게다가 넓은 가슴을 가진 분이란 말도 했다. 조 회장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엄청난 손실을 보았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내 잊어버리곤 했다. 또한 직원들이 실수를 해도 정당한 방법이면 나무라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도 여러 번 큰 손실을 봤지만 그 때마다 “잊어버려. 가슴에 담고 있다간 몸만 상해”라며 한 마디로 상황을 끝내버렸다.        이와 같이 조용준 회장은 자신이 정한 삶의 주제인 독창력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자신의 평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복합소재라는 한 분야에서 세계의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업을 달성했다. 아직도 그의 머리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고, 조문수 대표에게도 가끔 기술에 대한 조언을 하신다.   그와 40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일본인 용융로 제작 전문가(이노우에 히로요시)는 “조 회장님은 몇 달 만에 만나면 항상 새로운 연구결과를 내놓곤 해서 작업복을 걸치고 연구실에서 골몰하는 모습을 뵈면 ‘저 양반이 또 무슨 깜짝 놀랄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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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0
  • [CEO리포트] SK그룹의 디지털 전환 책임지는 박성하 SK대표이사 사장, 신성장 동력 발굴이 과제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국내외 대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미래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클라우드, 화상회의, 보안 등 언택트 체제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SK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인물은 바로 박성하 SK대표이사 사장(55)이다. 박 사장은 지난해 12월 ‘2020년 SK그룹 임원인사’에서 SK C&C 사업부문 사장으로 내정된 후 조직개편, 사업부문 신설 등 단행하고 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코로나19이후에도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SK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책임지는 박 사장의 어깨는 무겁다.    박성하 SK대표이사 사장[사진제공=SK]   SK㈜ C&C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에 대한 전문 기술력과 금융, 제조, 통신,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디지털 사업을 꾸리는 회사이다.   SK㈜ C&C는 박 사장의 선임으로 2017년부터 이어진 장동현 대표이사 단독 체제에서 투톱체제로 전환했다. 지주 부문인 홀딩스는 장 대표가 계속 맡는다. 이 같은 각자 대표 체제는 디지털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SK C&C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748억2000만원으로, 전년(547억8000만원)보다 36.6% 증가했다. 7대 IT서비스 기업 중 매출 대비 4% 연구개발비는 SK C&C가 유일하다.   박성하 SK대표이사 사장 학력&경력[표=뉴스투데이]   ■ 경제학 및 경영학 석사 출신의 투자 전략 전문가   박 사장은 1965년 10월4일 출생이다. 젊은 CEO로서 SK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책임지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독어독문과에 입학해 1989년 졸업했다. 곧바로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1991년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기도 했다.   박 사장은 SK그룹에서 전략기획·투자 전문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1993년 SK텔레콤에 입사해 △2008년 SK텔레콤 C&I 기획실C&I 전략팀 담당인원 상무 △2008년 SK㈜ 정보통신담당 상무 △2010년 SK C&C 기획본부장 △2012년 SK텔레콤 사업개발전략본부장 △2013년 SK㈜ 포트폴리오관리부문장 전무 △2015년 SK㈜ 프로젝트관리(PM)1 부문장 등 주요 요직을 거치며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지원팀장(부사장)으로 일했다. 전략지원팀은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직속조직으로, SK그룹의 인수합병(M&A) 투자와 관련해 핵심역할을 하는 부서이다. 당시 쌓아온 경력을 토대로 SK그룹의 디지털 전환과 딥 체인지(근원적 변화) 적임자로 불리고 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SK C&C 사업부문 사장으로 선임됐다. 또한, 지난달 25일 열린 SK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가결됐다. 이로써 SK㈜ 사내이사는 최태원 회장,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장동현 사장, 박성하 사장 등 총 4명이 됐다. SK㈜ 사외이사는 염재호 의장을 포함해 5명이다.   ■ 소통 강조, 소그룹 미팅의 ‘캐쥬얼 회의’ 활성화까지   박 사장은 직원들과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활발한 소통과 자발적인 업무 환경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추구하는 소통 문화와 결을 같이 한다.   박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구성원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의 자리를 자주 마련하겠다"면서 "일방적, 형식적인 의사전달이 아닌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소그룹 미팅을 활성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SKC&C 사장에 취임한 직후 임직원들과 편한 장소, 편한 시간, 편한 복장으로 소통하기 위한 ‘캐쥬얼 회의’를 만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다.   ■ 디지털 전환 방점, 클라우드 부문 신설과 원스톱 서비스 구현   SK C&C는 지난해 박 사장의 내정과 함께 조직개편에서 ‘클라우드 부문’을 신설했다. 이는 클라우드 사업과 관련된 마케팅·기술·인프라 조직을 하나로 묶어 대내외 디지털 전환 사업 수행 일원화를 목표로 한다.   클라우드 전환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중요도가 급격히 상승한 분야이다. 재택근무를 포함한 원격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면 장소·시간의 제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원스톱 서비스’ 구현에 집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기존 비즈니스 모델(BM)혁신추진단을 BM혁신추진총괄로 확대했다. 데이터 기반의 그룹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플랫폼 기반의 디지털 사업 발굴을 맡도록 했다.   SK그룹은 지난해 10월 2022년까지 전체 계열사 시스템의 80%를 클라우드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의 국내 클라우드 관리 서비스기업(MSP)인 클루커스의 지분 18.84%를 인수했다.   ■ 디지털 전환 속 매출 증가·영업이익 감소, 신성장 사업 확보가 관건   SK C&C가 올해부터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돌아선 만큼 전문성을 살려 수익 창출 과제를 떠안게 됐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다양한 미래 사업에 투자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현재 SK C&C는 클라우드 산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4분기 SK C&C의 영업이익은 340억원이다. 전년 동기(390억원)대비 13% 가량 감소했다. 반면, 지난해 4분기 매출은 4970억원으로, 전년 동기(4530억원)보다 약 10% 늘었다. 이는 SK C&C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연구개발 비용의 증가로 인한 결과로 분석된다. 아직 수익창출이 부족한 모습이다.   박 사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익구조도 개선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회사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중심의 사업모델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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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0
  • [미래직업 인터뷰 (18)] 반려동물장례식장 ‘펫 오케스트라’ 안채현 부사장, 무용학도의 ‘간판 없는 맛집’ 도전기
    4차산업혁명시대에 기존 직업에 종사하는 인간은 ‘상실 위기’에 봉착해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의 미래산업 종사자들이 '신주류'가 되고, 산업화시대의 직업들은 소멸된다는 예측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미래 주류직업의 실체와 인재상은 무엇일까. 뉴스투데이는 신주류 직업 종사자들을 만나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펫 오케스트라 대표가 16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뉴스투데이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만이 미래산업은 아니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고 저출산이 대세가 되면서 반려동물 시장은 또 다른 성장산업으로 꼽힌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반려동물 푸드 뿐만 아니라 호텔, 미용, 장례식장 등 다양한 시장이 커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추세를 살펴보면서 창업을 꿈꾸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만만치 않다. 까다로운 인허가 조건을 충족시키고 상당한 초기 자본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특히 반려동물 장례식장 사업은 그렇다. 죽은 반려동물을 화장해야 하므로 주변에 인가가 없어야 하고 상당한 규모의 토지도 매입해야 한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위치한 ‘펫 오케스트라’는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무용과 작곡을 전공한 자매가 지난 해 설립한 반려동물 장례식장 및 문화기업이다. 안현경 사장(29)과 안채현 부사장(27)이 그들이다. 안 사장은 작곡을, 안 부사장은 발레를 각각 전공했다.    안채현 부사장은 지난 16일 뉴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펫 오케스트라가 만들어가는 반려동물 장례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펫 오케스트라 안채현 부사장은 발레 전공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펫 오케스트라]   ■ 언니는 작곡, 동생은 발레 전공한 예체능 자매...'비전'보고 반려동물 사업 도전   예·체능 계열을 전공한 자매가 반려동물 관련 사업을 창업하고, 그 중에서도 장례식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안 부사장은 “어릴 때부터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 때 매일 같이 놀던 옆집 강아지가 있었는데 이 아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단순한 생각부터 시작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더불어 안 부사장은 “무용을 전공했지만 반려동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는 미래 산업이라 판단했다”면서 “반려동물 사업 중 가장 어려운 장례부터 시작해 앞으로는 반려동물을 위한 사업으로도 확장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 부사장의 판단은 맞는 것일까.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해 기준으로 미국의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91조 6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반려동물이 먹고, 입고, 잠자고, 죽는 과정에서 인간이 지출하는 비용이다. 중국은 34조원, 일본은 14조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시장은 2027년에 6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 음악과 춤을 반려동물 장례문화에 접목   안 사장과 안 부사장은 지난 2018년부터 본격적인 ‘펫 오케스트라’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사업부지 선택, 차별화된 서비스, 정부 허가 등을 위해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며 1년 넘게 사업을 준비했다. 차별화를 위해 연관성이 적어보인 음악과 발레를 사업에 접목해 펫 오케스트라만의 색깔을 짙게 했다.   안 부사장은 “음악과 춤은 사람의 여러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준다”며 “그 중 상실로 인한 마음을 치유하는데 이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바로 이 점이 펫 오케스트라의 차별화된 서비스이다. 안 부사장은 “사업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음악이 어디서든 들리기 때문에 보호자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보호자를 위해 지루하지 않고, 잔잔하고, 마음이 치유되는 음악을 선정하는데 상당한 고심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보호자를 고려하는 서비스인 것이다.   더불어 노래를 통한 마음 치유 행사를 개최한다. 안 부사장은 “일년에 두 번, 가족을 잃은 반려인들이 슬픔을 표현하고 공감하는 자리인 추모 연주회를 진행한다”며 “또한, 앞으로는 강아지와 보호자가 함께 춤을 추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례절차가 끝나고 나서도 보호자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행사이다.   사업장 이름인 펫 오케스트라에도 안 자매의 ‘문화적 취향’이 담겨있다. 오케스트라 구성원들이 서로 마음과 호흡이 잘 맞아야 하는 것처럼 장례지도사, 보호자, 반려동물의 시너지를 담겠다는 다짐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펫 오케스트라의 회사 로고에 있는 8분 쉼표는 ‘한 박자 쉬어가라’는 음악 용어를 의미한다.   ■ 최장 5시간 동안 보호자 맞춤 서비스를 위한 한 가정 한 장례사 전담 체계   또 다른 차별화는 1대1 맞춤 서비스이다. 일반적으로 보호자는 사업장을 방문할 때 슬퍼하고 경황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획일화된 절차보다는 보호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서비스가 중요하다. 하지만 고객 맞춤 서비스는 보호자를 향한 상당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펫 오케스트라는 전담 서비스를 구축했다. 한 명의 장례지도사가 상담부터 염습·추모식·화장·유골 인도·안치·추모까지 약 3시간 동안 한 가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 화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대형견의 경우 5시간이 소모된다.   안 부사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이 전담 마크하다보니 어느 순간 보호자 입장에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래서 무리한 장례를 절대 강요하지 않고 보호자 입장에서 최우선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보호자를 위한 장례 절차 또한 늘려나갈 계획이다. 현재 펫오케스트라는 염습, 단독 추모실, 생활 꽃장식, 개별화장, 기능성 황토 유골함, 조각보 유골함 싸개를 제공하는 ‘오케스트라’가 기본이다. 다음 단계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 패키지에 포인트 수의와 최고급 오동나무관이 추가된다. 패키지는 보호자 상황과 성격에 맞춰 변경될 수 있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위치한 펫 오케스트라 건물 [사진제공=펫 오케스트라]   ■ 경쟁치열한 반려동물 장례시장에서 ‘간판 없는 맛집’으로 승부수   안 부사장에게 펫 오케스트라는 대학 졸업 후 첫 창업인 만큼 의미가 깊다. 그러나 창업에는 항상 어려움과 예상치 못한 고난이 있기 마련이다.   안 부사장은 “외부에서 보시기에 허가를 취득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해 부를 누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동종업계 상황 등을 감안한 실제 내부 상황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동물병원을 둘러싼 영업경쟁이 과열되어 있고, 반려동물 장례식장 업체가 과다해 가격출혈 경쟁이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안 자매는 펫 오케스트라만의 색깔을 찾아냈다. 이를 ‘간판 없는 맛집’으로 표현했다. 안 부사장은 “현재 진행 중인 반려동물 아트 클래스, 전문가 심리상담, 음악을 통해 펫 로스 ‘치유’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사업을 더 확장해 반려동물과 함께 레크리에이션, 여행, 야외음악감상, 미용선발대회 등 반려동물 전용 이벤트 사업을 도전해 색깔을 짙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 반려동물장례지도사,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는 사랑과 체력이 요구돼    반려동물장례지도사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했다. 안 부사장은 “반려동물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있으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려동물에 대한 마음가짐이다”며 “단순히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지는 사랑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안 부사장은 반려동물장례지도사가 되기 전 놓칠 수 있는 부분으로는 유동적인 스케줄을 꼽았다. 안 부사장은 “장례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보호자를 상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정기적인 출퇴근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그 예시로, “반려동물이 죽는 시간이 새벽인 경우 혹은 보호자의 추모식이 길어져 밤에 끝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강한 체력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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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9
  • [CEO리포트] LG이노텍 정철동 대표, 애플 의존도 낮추기와 전장부품사업 흑자전환이 과제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LG이노텍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정철동 대표이사 사장은 코로나19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대충격 속에서도 실적 걱정을 덜하는 CEO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회사의 매출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부품 업체 LG이노텍의 사업부는 △광학솔루션(카메라 모듈 등) △기판소재(포토 마스크, 반도체기판 등) △전장부품(차량 모터·센서·통신 등) △LED(차량용 발광다이오드) △기타(전자부품 등)이다. 카메라 모듈 등을 제조하는 광학솔루션사업부가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이상으로 가장 크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 사업부의 매출액은 5조4257억원(내부매출 제외)으로 전체 매출에서 65.4%를 차지했다. 이 주력사업은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사진제공=LG이노텍]   ■ LG이노텍, 아이폰SE 등 초도 생산물량 확보로 올해 1분기 실적 컨센서스 상회 예상   코로나19의 충격파로 인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1분기 실적 하향이 전망되는 가운데, LG이노텍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회사의 최대 카메라 모듈 공급사로 알려진 애플의 중저가 스마트폰 아이폰SE 2020 초도 생산물량 등이 확보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0일 한화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LG이노텍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7000억원 983억원으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4월 출시를 앞둔 북미고객사의 중저가 스마트폰 초도 생산물량 반영과 우호적인 환율 효과 때문으로 추정됐다. 북미고객사는 애플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시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이노텍은 작년에 ‘주요 고객 A사’로부터 거둔 매출은 5조1261억원으로 전년대비 5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이 A사가 애플일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는 가운데, 실적 증가 전망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는 특정 기업 한군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그에 따른 리스크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사장이 지난해 1월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LG이노텍을 오랫동안 영속할 수 있는 ‘근본이 강한 회사’로 만들고 싶다.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수익 중심 사업 운영을 해나가자”라고 한 것도 매출 비중 쏠림현상을 해소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표=뉴스투데이]   ■ 전장부품 사업 매출은 상승세지만 지난 해 영업손실 기록, 흑자전환이 당면 과제 그러나 신성장사업의 전망은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물론 업계 안팎에서는 B2B에 대한 경험이 많은 정 사장이 신규사업 수주 등으로 회사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 사장이 언급한 ‘사업구조 고도화를 통한 수익 중심 사업’ 중 하나가 전장부품사업(자동차 전자부품)이다. 이는 실적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LG이노텍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장부품사업부의 전체 매출은 1조1319억원(내부매출 제외)으로 전체 매출 8조3021억원의 13.6%를 차지한다. 2018년 전장부품사업부 전체 매출(9630억원, 12.1%)과 비교해 그 비중이 1.5% 증가했다.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과 달리 제품 수명주기가 길고, 무엇보다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 전장부품이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이 전장산업이다. 때문에 완성차를 만드는 업체와의 신뢰가 사업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요인이다. LG이노텍 전장부품사업부의 실적 호조는 생산기술 전문가인 정 사장의 B2B에 대한 높은 경험치와 깊은 통찰력이 더해져 나온 결과라는 평가다.  그러나 전장부품사업부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519억59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9% 증가해 정 사장은 이를 올해 흑자로 전환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LG반도체 입사한 'LG맨'   정 사장은 경북대에서 전자공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충북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수료했다. 그는 LG반도체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생산기술담당 상무, LG디스플레이 생산기술센터장 상무 등을 거쳐 LG디스플레이 최고생산책임자(CPO)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또 LG이노텍 CEO로 선임되기 직전에 몸담은 LG화학에서는 유리기판과 수처리필터 등 회사 신규사업 조기 안착에 중요 역할을 해 LG화학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사장)에 올랐다.   [표=뉴스투데이]   실적 전체를 견인하는 광학솔루션, 애플에 대한 실적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전장부품사업부의 흑자전환이 정 사장의 우선적인 과제로 꼽힌다. 안정적 수익기반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LG이노텍의 지난 13일 주가는 전날보다 5.24%(6500원) 내린 11만7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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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4
  • [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③ 성과 : 기술 국산화 통해 복합소재 분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우뚝 서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조용준 회장은 복합소재 분야에서 관련 기술과 필요한 생산설비까지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모두 국산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복합소재 기술을 토대로 지금까지 연관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성과를 이뤄내며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우뚝 섰다.   조 회장은 부산에서 밀양으로 회사를 옮겨 본사와 제1공장을 건립했고, 이어 인근에 밀양 제2공장도 완공했다. 2006년에는 함양 공장을 짓고 계속 증설하면서 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해외 플랜트 수출, 그라스페이퍼 및 유리섬유 파이프 개발, 철도 차량 내장재와 LNG화물창 자재 개발 등에 성공해 관련 사업들은 순항 중이다.     지난 2007년 10월 16일 거행된 함양 지방산업단지 조성사업 기공식(왼쪽 열 번째가 조용준 회장). 이 날 행사에는 추병직 전 건교부 장관, 공창석 경상남도 행정부지사, 천사령 함양군수, 채남희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등 2천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1987년 가을, 조 회장은 인도네시아 G.F.I.사로부터 유리섬유 플랜트 수출 제의를 받았다. 처음 겪는 일이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그는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중역들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수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988년 1월 체결된 계약에 따라 연간 4,500톤의 유리섬유를 생산하는 공장 건설과 기술자 교육까지 2년 만에 완료했고, 플랜트 사업의 성공으로 상당한 달러를 벌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 그라스페이퍼 국내 시장서 일본 누르고 아시아 시장으로 약진   1998년에는 아르헨티나에 유리섬유 원사 1만 4천 톤을 수출했다. 국내 H그룹의 무역상사가 가 수주한 물량을 납품한 것인데, 이 과정에 해프닝도 있었다. 최초 물량 1천 200톤을 보내자 불량률이 75%에 이른다는 말이 나왔다. 급히 기술진을 파견해 원인을 알아보니 아르헨티나 관수로 프로젝트의 파이프를 만드는 이탈리아 설비에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자 아르헨티나 정부 담당관이 직접 회사를 방문해 설비 운용기술의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유리섬유로 만드는 종이인 그라스페이퍼도 개발했다. 90년대 초부터 국내 비닐장판 제조업체들은 온도에 따라 팽창·수축하는 비닐장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에서 그라스페이퍼를 수입해 고급 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그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라스페이퍼를 개발했고, 1999년부터 생산 라인을 설치해 훨씬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더 싸게 팔았다.   그러자 일본 제품을 수입하던 국내 업체들이 조 회장이 만든 그라스페이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내에 생산 공장까지 건설해 호황을 누리던 일본 업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일본으로 철수했다. 그가 생산하는 그라스페이퍼는 이후 인도네시아, 터키,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어 외화 획득에 기여하고 있다.   1998년 10월 코엑스에서 오스트리아의 호바스, 미국의 오웬스 코닝 등 세계적인 유리섬유 파이프 제작업체들이 참여한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제작기술을 확인하던 조 회장은 유리섬유 파이프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호바스사를 직접 방문해 제작기술을 확인했고, 미국과 일본 회사에서 기계 도면 등을 구해 설비 및 공정 개발에 착수했다.   ■ 세계적 수준의 유리섬유 파이프·맨홀 생산해 내수 시장 평정   하지만 처음 2년 간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물줄기의 거센 압력을 오랜 세월 견딜 수 있는 상·하수도 파이프를 유리섬유로 만드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백 번의 테스트를 거쳐 시제품을 완성하고, 생산설비까지 독특한 기술로 제작하여 2005년 직경 150㎜에서 3,500㎜까지 각종 크기의 유리섬유 파이프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함양 공장에 갖추었다.    조 회장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는 시설에서 뛰어난 유리섬유 파이프를 생산한데다, 파주 신도시 등 일부 지자체의 상·하수도관과 영산강 농업용수관에 이 제품이 사용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져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7년 11월 정부는 상·하수도 분야에 신기술을 적용한 공적을 인정하여 조 회장에게 상·하수도인상 중 최고 영예인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2006년 어느날 3,500㎜ 유리섬유 파이프를 절단하고 남은 자투리가 공장 한 구석에 나뒹구는 것을 본 조 회장은 맨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맨홀은 콘크리트로 제작돼 무겁고 방수처리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물이 새는 단점이 있는데, 유리섬유 맨홀은 가볍고 물도 새지 않으며 설치 과정에 콘크리트 양생시간이 필요 없어 설치도 쉬웠다. 곧바로 제작에 들어갔고 6개월 동안 미비점을 보완해 유리섬유 맨홀 제품이 만들어졌다.   유리섬유 맨홀은 울산시에서 최초로 시공해 호평을 받았고, 이후 여러 곳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이제는 새로 시공하는 맨홀은 물론 보수 작업을 하는 곳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선진국조차 유리섬유 맨홀이 실용 단계에 이르지 않아 외국에서 구입도 늘고 있다. 맨홀에 이어 기름 유출로 인한 토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파이프 제작 공법을 이용한 유리섬유 복합재 저장탱크도 개발했다.   ■ 가볍고 불타지 않는 철도 차량 내장재 개발해 국내외서 호평   조 회장은 1998년 현대정공(현 현대로템)이 수주한 홍콩 지하철 차량 제작에 참여하면서 철도 차량 경량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홍콩 측은 차량 내장재로 당시 가장 까다로운 영국 지하철 기준(BS)의 불연 소재를 사용하고 상당히 경량화된 차량무게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 현재정공은 차체는 물론 여러 부품들이 무거운 금속으로 돼있어 무게를 줄이기 어려웠고, 특히 내장재의 불연성에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정공은 이탈리아 등 외국 회사를 전전하다가 한국화이바의 뛰어난 기술력을 알게 돼 내장재를 부탁했고, 조 회장은 철도 차량 사업부를 신설해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수십 번의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항공기의 경량 내장재 기술을 접목하여 기존 차량에 장착된 1.25톤의 무게를 0.65톤으로 줄이면서 불연성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내장재를 개발할 수 있었다.   이어 현대정공의 추가 요청에 따라 복합소재를 이용한 공기제동탱크 경량화 개발에도 착수했고, 난해한 8가지 테스트를 거쳐 홍콩의 까다로운 인증을 받아냈다. 차량 1량에는 스틸강으로 만든 공기제동탱크가 4개 장착돼 있고, 1개의 무게는 40㎏이나 됐다. 하지만 조 회장이 개발한 탱크 1개의 무게는 14㎏에 불과했다. 결국 홍콩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지하철 108량을 제작하는 사업은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조 회장은 지하철 차량 내장재를 생산하는 와중에 차량에 부착된 도어와 에어컨 제작 기술도 자체 개발했다. 2002년 로템(구 현대정공)은 인도의 철도 차량 사업을 추진하면서 호주에서 수입하던 도어 패널에 문제가 생기자 조 회장에게 도어 제작을 의뢰했다. 이렇게 도어 사업을 시작한 그는 도어 엔진과 차량 에어컨까지 개발해 인도 철도 차량 240량 내부 일체를 턴키로 수주해 장착했다.    이후 기술과 실적을 인정받은 한국화이바는 광주와 대전 지하철에도 납품했고, 캐나다·유럽· 브라질 등에도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 회장이 개발한 내장재를 쓰지 않은 대구 지하철에서 2003년 2월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했고, 내장재가 불에 타며 내뿜는 유독성 가스가 참사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후 대구 지하철도 조 회장의 내장재로 전면 교체했다.   ■ LNG화물창 자재 개발로 LNG 운반선 소재서 세계시장 석권 조 회장은 2000년 LNG 운반선의 LNG화물창 자재 개발에도 착수했다. LNG는 주성분이 메탄가스로 상온에서는 기체이나 섭씨 –162도 이하에서만 액화된다. LNG 운반선은 이러한 극저온의 액체를 해상 운송하는 극한 조건에서 완벽한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따라서 국내 조선소들은 그동안 프랑스 GTT사로부터 최첨단 복합소재로 만든 제품을 수입해 LNG화물창을 만들고 있었다.   이에 한 평생 복합소재에 매달려온 조 회장은 자존심이 상해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최고의 재료와 초정밀 기술이 필요해 개발 과정에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LNG화물창 설치 패널인 ‘유리섬유강화우레탄폼(R-PUF)’이 나오기까지 그는 10여 년의 시간과 엄청난 테스트 비용을 들였고, 초도 제품에서 불량품이 나와 5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기도 했다.   게다가 이 제품은 품질 검사가 대단히 까다롭고, 설사 검사를 통과해도 LNG화물창에 사용된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그동안 숱한 시련을 넘어 끊임없이 품질 향상에 노력한 결과, 한국화이바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유리섬유강화우레탄폼을 생산하며 LNG 운반선 소재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한국화이바는 유리섬유로 만든 파이프와 맨홀, 건축용 보강재 등을 생산하기 위해 2006년 5월 함양 공장을 준공한데 이어, 2007년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인 TTX 열차, 경전철, 초저상버스, 굴절버스 등을 생산하기 위해 함양 지방산업단지에 공장을 증설하면서 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들고자 주력하였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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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3
  • [CEO리포트] 2년만에 매출 2배 키운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강신봉 대표, 배달의민족 '빅딜'이 어깨 위에
    [뉴스투데이=김태진 기자]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을 주도하는 ‘딜리버리히어로(DH) 코리아’의 사령탑인 강신봉 대표이사(51)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배달 수수료 정책을 두고 배달앱 기업들과 소상공인 간의 갈등을 빚는 가운데 DH가 국내 1위 배달앱인 배달의 민족을 인수하는 과정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달 앱 시장은 지난 2013년 3000억 원대 규모에 불과했지만 2018년 3조 원으로 10배가량 증가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5조 원 규모를 형성했다는 분석까지 나올 만큼 급성장하는 시장이다.   DH 코리아의 모기업인 DH는 지난해 12월13일 국내 시장 점유율 55.7%의 1위 기업 ‘배달의민족’을 40억 달러(약 4조8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수합병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DH가 운영 중인 요기요(33.5%)와 배달통(10.8%)을 더해 앱 간 중복 사용자를 제외하면 국내 전체 배달 앱 이용자의 98.7%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게 된다. 강대표는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과 함께 인수합병의 실무적 과정을 진행해야 할뿐만 아니라 향후 경영전반에 걸쳐 역할 분담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수합병과정에서의 '독점 논란'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소상공인들과의 상생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 등은 만만치 않은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강신봉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3월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본사에서 열린 첫 번째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연세대 경영대-듀크대 MBA출신, 배달의 민족 인수합병 과정에서 강점 발휘 기대감   DH 코리아의 모기업인 DH는 스웨덴 출신 니클라스 외스트버그가 2011년 30살에 창업한 음식 배달 서비스 회사이다. 현재 DH는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운영되며 25만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파트너를 맺고 있다. 2018년에 3억6700만 건 이상의 주문을 처리했다.   DH는 2011년 한국에 ‘알지피(RGP, Restaurant Growth Partner) 코리아’를 출범했다. 이듬해 요기요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국내 배달 업체 ‘배달통’과 ‘푸드플라이’를 차례로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2018년 12월 지금의 사명인 DH 코리아로 변경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의 명문대인 듀크대 경영학석사(MBA)출신인 강신봉 대표는 글로벌 기업인 이베이코리아에서 잔뼈가 굵은 온라인상거래 전문가이다. 이공계 출신이 다수인 IT업계에서 흔치 않은 경영학도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것이다. 한국 특유의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상대로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표=뉴스투데이] ■ 예고 바이올린 전공자에서 경영학도로 변신한 IT기업 CEO   강 대표는 전형적인 경영학도 출신이지만 의외의 학력을 갖고 있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서울대 음대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낙방했다. 그 후 인문계로 바꿔 재수와 삼수를 시도했지만 실패 후 군 전역 후 다시 도전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예술가 기질'을 갖고 있는 CEO인 것이다.   강 대표는 DH 코리아의 채용 면접을 볼 때 매번 지원자에게 도전 정신을 확인한다.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실패했을 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강 대표의 도전 정신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97년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보스턴컨설팅그룹(BGF)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듀크대에서 경영대학원(MBA) 석사 과정을 밟았다. 당시 전 세계 151개국에서 매년 6000명의 인재들을 위해 지원되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별됐다.   강 대표는 2006년부터 DH 코리아에 영입되기까지 약 10년간 글로벌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 ‘이베이’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강 대표는 △2006년 이베이 코리아 전략실장 △2009년 이베이 차이나 최고 보안 책임자(CSO)·최고 마케팅 책임자(CMO) △2014년 이베이 아시아태평양(APAC) 국경 간 거래(CBT) 사업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주요 직군을 맡아왔다. 당시, 대표적 성과로는 이베이 코리아의 지마켓 인수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 경영인으로서 학력과 경력을 쌓아온 강 대표는 2016년 1월 DH 코리아에 COO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서비스운영본부와 세일즈본부를 총괄하면서 2016년 요기요가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주문 성장을 이룬 강 대표는 공로를 인정받아 DH 코리아 입사 1년여만인 2017년 7월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 요기요와 배달통, 강 대표 합류 2년 만에 매출 2배 이상 성장 DH가 발표한 한국 지역 매출 자료에 따르면, DH 코리아의 2018년 매출은 9440만 유로(약 1233억 원)이다. 전년(7300만 유로) 대비 29% 증가했다. 강 대표가 DH 코리아에 부사장으로 합류한 2016년(약 4100만 유로)과 비교하면 2년 만에 2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또한, 지난해 데이터플래폼 기업인 아이직에이웍스는 요기요와 배달통의 11월 사용자 수가 각 490만3213명, 42만7413명이라고 보고했다. 지난해 12월13일 40억 달러에 인수한 배달의민족까지 합하면 DH 코리아의 국내 배달 앱 시장 점유율은 98.7%에 달한다.   성장하는 국내 시장에 따라 DH 본사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강 대표는 지난해 3월 기자간담회에서 “독일 본사에서 한국시장을 중요하고 큰 시장으로 보고 있습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맞춰 강 대표는 국내 배달 앱 시장의 성장을 위해 올해 인재 채용과 마케팅 관련 투자를 2배 이상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DH 코리아의 사원 수는 70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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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3
  • [CEO리포트] 매출 10배로 키운 펄어비스 정경인 대표, 장기적 성장 위한 사회적 책임경영 주목
    [뉴스투데이=임은빈 기자] 게임업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펄어비스의 정경인(39) 대표는 게임업계 내에서 실적개선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온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이공계 엘리트 출신이면서 벤처캐피탈인 LB인베스트먼트에서 게임기업에 대한 다양한 투자를 진행했던 경력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 등에 대한 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벤처캐피탈에 근무하면서 게임업계 전반에 대한 '내공'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펄어비스의 창업자인 김대일(40) 이사회 의장과 인연을 맺었고, 김 의장의 영입제안을 받아들여 2016년 6월에 펄어비스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정 대표는 운영, 투자 등과 같은 회사경영 전반을 담당하고 김 의장은 신작게임 개발에 전념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경인 대표는 2016년 6월 펄어비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2년 만에 영업이익 7배, 매출액 10배 이상 증가시키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픽=뉴스투데이]   ■ 창업자인 김대일 의장의 '사람 보는 눈' 입증, 2년 만에 영업이익 7배로 키워   정 대표는 취임 이후 김 의장의 사람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실적을 개선했다. 펄어비스의 야심작이라 불리는 '검은사막'이 출시됐던 2015년 매출액은 217억원에 불과했다. 펄어비스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2017년에는 524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4048억원,  2019년에는 5359억원으로 고속순항했다. 정 대표가 경영을 책임진지 2년여 만에 매출액이 10배 이상 증대된 것이다.   영업이익도 보조를 맞췄다. 2년 만에 7배 정도 늘었다. 2015년 117억원에서 2017년 217억원, 2019년 1506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상을 받기도 했다. 2017년 323명이던 임직원 수가 2018년 638명, 2019년 9월 기준 697명으로 증가하는 등 고용 인력을 늘린 공을 인정받아 ‘2019 일자리 창출 유공 정부 포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대구·경북 지역 소외계층과 의료진을 돕기 위해 5억원을 기부하며 주목받았다.   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펄어비스 직원 평균 연봉은 7281만원이다. 31명인 남성 관리직 사무원의 평균연봉은 1억 366만원에 달한다. 펄어비스는 여러 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될만한 일류 직장이라고 볼 수 있다.   ▲ [그래픽=뉴스투데이, 자료출처=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저성과자에 대한 권고사직 인정...솔직하고 유연한 사고방식 드러내 / 장기적 성장 위한 조직문화 재검토 필요성 대두   ‘효율성 높은 일자리 창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오던 펄어비스가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은 지난달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오전에 출근한 직원이 오후에 짐을 싸서 퇴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면서부터다. 전현직 펄어비스 직원이라고 밝힌 블라인드 이용자 다수가 “원칙적으로는 권고사직 서류에 사인하지 않아도 되지만 게임업계가 좁아서 이직하기 어려워질까 봐 거부하기 쉽지 않다”면서 “일주일에 한 자리씩 팀 내에 빈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신작중단에 따른 권고사직 논란은 상당수 게임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게임업계가 전반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사회적 책임의 이행에서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경인 대표는 지난달 19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이달(3월) 들어 징계해고와 10여명의 권고사직이 이뤄졌고 특정 부서에서 자진 퇴사까지 겹치며 꽤 많은 인력이 한꺼번에 퇴사한 것으로 인식됐을 수 있다”고 논란이 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펄어비스가 임직원에게 업무와 게임에 대한 열정, 성과에 대한 높은 기준을 요구해왔으며 성과가 부진하거나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인력은 가능하면 빠르게 조직을 떠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 대표는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사자가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를 인지하면서도 절차를 충분히 개선하지 못한 것은 모두 경영진의 불찰이다. 앞으로 인사정책과 기업문화를 개선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대규모 권고사직으로 인해 신작 개발이 중단됐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정했다. 한번 시작한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사명을 갖고 있으며 지금 개발 중인 새 게임 모두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 대표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한다는 태도로 풀이된다. 이는 정 대표가 유연하고 솔직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낳고 있다. 정 대표가 이 같은 내용을 공지한 이후 펄어비스 측은 저성과자와 업무방식 부적응자 관리 방안 마련, 권고사직 대상자가 받는 복지 혜택 중단 3개월 유예 등을 개선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불거진 노무문제의 핵심에 대한 대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게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경제적 양극화가 글로벌 경제의 화두로 굳어지면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효율성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유지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 수행은 한국적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기업이 지속적 발전을 하기위해서는 숙명과도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게임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인 정 대표가 일자리와 관련해 어떤 사회적 책임경영을 펼쳐나갈지 주목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기업들은 신작 경쟁의 성패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 레드오션에서 생존하고 있다"면서 "저성과자 및 업무 부적응자를 가급적 조직에서 빠르게 떠날 수 있도록 했다는 정 대표의 설명은 게임업계 내에서는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반 대기업의 관점에서는 '무리한 해고'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저성과자에 대한 빠른 퇴출을 요구하는 조직문화 자체를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게 조직안정 및 장기적 성장의 관점에서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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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3
  • [역경을 이긴 연예인 (2)] ‘트바로티’ 김호중을 울렸던 5가지 고난, 때론 무릎 꿇었다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김호중 [사진제공=인스타그램]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최종순위 4위. 김호중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바로티’로 거듭났다. 트바로티란 트로트와 유명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합친 말로, 김호중이 원래 파바로티를 꿈꾸던 성악가 출신으로서 트로트 가수가 됐음을 의미하는 별명이다.   김호중은 한국의 아이돌 시대를 열었던 스타 작곡가 용감한 형제와 닮은꼴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길고 긴 방황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용감한 형제는 17살에 구치소에 2년간 수감 당했을 정도로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수많은 유명 아이돌들의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이면서 춤 동작을 창조해낸 안무가이기도 하다.   김호중도 노래의 꿈을 이루기까지, 조폭 노릇까지 한 어두운 청소년기를 겪었다. 어린 김호중을 수렁으로 몰고간 절망적 상황은 대략 5가지이다. 그가 언제나 그 절망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무릎을 꿇고 타락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겨냈다. 그게 중요하다. 항상 이기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에 이기는 게 중요할 뿐이다.    [표=뉴스투데이]   ■ 초등학교 3학년 때 찾아온 '부모님의 이혼', 첫 시련 앞에 힘없이 무너져   김호중의 첫째 고난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는 1991년생, 울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할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지만 외로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놀거나 상실의 아픔을 나눌 형제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늘 혼자였고, 잠자는 일 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문제아가 됐다.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는 놓았고, 대신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주먹 싸움에도 많이 끼고 다녔다. 첫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셈이다. 당장의 고난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고 자신을 너무 자학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김호중처럼 결과적으로 이겨내면 되는 것이다.    ■ '파바로티'를 꿈꾼 중학교 2학년 생, 고난극복의 동력은 '인내'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찾기   두 번째 시련은 중학교 시절의 타락이었다. 김호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공사장을 다닐 정도로 외모가 성숙하고 체격이 건장했다. 경호원을 꿈꿨을 정도로 운동을 잘했던 그는 울산에서 부산까지 원정 싸움을 다니는 불량학생이 됐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전환점을 찾는다. 성악가의 꿈을 처음 품게 된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러갔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듣고 돌연 감동에 빠졌다. "파바로티같은 성악가가 되겠다"고 속으로 되뇌였다.    음악의 길을 걷는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늦은 시작이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환경도 아니었다. 대신 성악을 하는 교회 지휘자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짧은 연습 기간이었지만 놀랍게도 경북예술고등학교에 단번에 합격했다.   ■ 예고생활이 만든 '상대적 박탈감', 자포자기하며 업소관리 '조폭' 생활에 빠져    셋째 시련은 가슴 가득히 설렘을 안고서 입학한 예고 생활에서 찾아왔다. 예고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너무 엄격했고, 생각보다 비싼 학비와 레슨비도 가정형편에 부담이 됐다. 집에 여유가 있는 다른 친구들은 오히려 레슨비를 추가로 내고 레슨을 더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됐을까. 어차피 난 쟤들한테 질 거야”라는 식의 좌절감에 빠졌다.    '상대적 박탈감'은 원망과 포기를 낳았다. 자신이 예고 입학에 대한 꿈을 품고 노력했던 순간들을 망각했다.   결국 김호중은 중학교 시절처럼 다시 나쁜 길에 빠져들었고, 성악의 꿈도 뒷전이 됐다. 폭력조직에 들어가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업소 관리를 하며 어린 조폭 노릇을 했다.   ■ 퇴학위기 앞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운명적인 멘토의 도움으로 재기   네번째 시련은 퇴학 위기였다. 김호중은 불성실한 학교 생활로 아예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남은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 위기였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앞에서, 운명적인 멘토가 나타났다. 경북예고에 있던 후배에게 “소리가 기가 막힌 꼴통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온 서수용 선생님과 만난 것이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도 풀지 않고 거침 없이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엘 루 체반 스텔레(별은 빛나건만)’를 부르는 것을 듣고 재능을 알아봤다.   서 선생님은 “넌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은 할머니가 남긴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라”는 유언과 함께 방황하던 마음을 돌려놓았다. 김호중은 서 선생님이 있는 김천예고로 전학을 갔다.   ■ 폭력조직의 협박과 폭력, 굴하지 않고 음악과 함께하는 미래 선택   다섯번째 시련은 음악의 길을 택한 김호중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폭력조직의 위협이었다. 폭력배들이 찾아와 7시간동안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김호중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가혹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조폭과 인연을 끊었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조폭생활을 정리할 때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대신 6개월간 김호중을 차에 태워 함께 등교하면서 새로운 학교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음악 인생을 열어줬다.    이후 김호중은 2008년 제4회 세종음악콩쿠르에 출전해 1위로 입상했고, 전문 테너들도 어려워하는 네순도르마를 고등학교 3학년이 완벽하게 부르는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고등학생 파바로티’라 불리며 SBS ‘스타킹’에 출연해 그의 사연과 재능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스타킹을 본 RUTC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제안을 받아 5년간 독일에서 유학을 한 뒤, 마침내 성악가의 꿈을 이뤘다.   영화 파파로티 포스터   ■ 영화 '파파로티'의 개봉과 미스터 트롯 출전은 삶을 바꿔준 2가지 행운   김호중의 삶은 2가지 행운을 거머쥐면서 달라졌다. 우선 2013년 김호중의 학창시절을 소재로 한 영화 ‘파파로티’가 개봉했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에 대한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다. 자신의 이야기로 조폭의 삶이 미화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어두운 과거의 꼬리표가 영영 따라붙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수락했다.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깜짝 출전했다. 김호중은 유학시절부터 ‘대중성 있는 성악가’를 꿈꿨고, 성악, 재즈, 트로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미스터트롯’은 그 꿈을 펼치기에 딱 알맞은 무대였다.   [사진캡처=TV조선]   첫 곡으로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불러 압도적인 가창력을 드러낸 이후, ‘이대팔’ ‘무정부르스’ ‘희망가’ 등 무대를 멋지게 소화했다. 특히 본선 3차전 에이스 대결 ‘천상재회’는 마스터들이 나쁜 평가를 내렸지만 시청자들이 ‘어떻게 더 잘하냐’고 들고 일어나 판정논란이 일어 화제가 돼기도 했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미스터트롯 결승전도 피해를 봤다. 결국 가족만 초청한 무관중 무대로 열렸는데, 김호중은 7명의 결승 진출자 중 유일하게 혼자 결승을 치르게 됐다. 이혼한 부모님은 각자 새 가정이 있고, 서수용 선생님은 확진자가 많은 대구에 있어서 서울에 오지 못했다.   김호중은 결승전에서 조항조의 ‘고맙소’를 선곡했다. 방황하던 시절 손을 잡아준 서 선생님을 위한 곡이었다. 비록 서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지만 훌륭한 무대를 펼쳤다.   “막상 선생님이 오셨다면 긴장도 더 되고 떨렸을 겁니다. 경연하면서 연락을 자주 하고 응원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너무 고생 많았고 기분이 좋다. 너는 성악이라는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노래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이 납니다”   김호중은 최종 순위 4위로 마감했지만, 미스터트롯을 통해 좋은 동료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을 얻었다.   김호중[사진제공=인스타그램]   그는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고 가장 만족하는 점으로 “청중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리아’는 외국말로 불러 알아듣는 청중이 적지만, 트로트는 한 소절을 불러도 100%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또 팬들과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팬카페에 일상적인 얘기들을 많이 올리고, SNS도 배우는 중이다.   새로운 분야를 향한 욕심은 여전하다. 요즘에는 ‘미스터트롯’을 통해 만난 윤대만 씨에게 민요와 소리를 배우고 있다. 윤대만 씨는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경기소리를 하는 가수로, 주현미의 ‘짝사랑’을 연습할 때도 도움을 받았다. 국악을 배우면서 몰랐던 발성을 익혀 새로운 무기가 생긴 기분이라고 한다.    김호중이 새로운 발성법으로 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이겨내지 못할 좌절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중의 솔직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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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1
  • [CEO 리포트] 한글과컴퓨터 부활시키는 '마이더스 손' 김상철 회장, 27개 계열사는 AI부터 코로나 마스크까지 진출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자수성가형 M&A 투자가 김상철(67) 한컴그룹 회장이 ‘매출 1조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호전기 영업사원 출신으로 IMF 외환위기 시절부터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키운 다음 되파는 ‘차익 실현’이 주특기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에 대한 전략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단기적인 재매각 기회를 노리는 대신 한컴그룹의 사업영역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IT기업의 효시격인 한글과컴퓨터를 완벽하게 부활시키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 구상은 실적을 통해 실현되는 중이다. 김 회장은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도저'와 같은 공격적 경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내 ‘맏형’ 위치인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연결기준 3192억 555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사상 첫 3000억원 매출을 돌파했다. 김상철 당시 소프트포럼 회장이 한컴을 인수했던 2010년 연간 매출 472억 8201만원 대비 575% 성장한 수치다. 영업이익도 10년간 119억 7914만원에서 332억 723만원으로 177% 늘었다. 직원 수는 65% 늘어난 415명, 평균연봉은 184% 많아진 1억 2800만원이다.   지난해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오른쪽)이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과 '공공기관 서식 아래아한글' 공급 협약을 체결한 모습 [사진제공=한글과컴퓨터]   ■ 자수성가형 M&A 특화 사업가…한컴그룹에 ‘말뚝’ 박고 외연 확장 중   그렇다면 김 회장이 90년대 IT기업의 대명사였던 한컴을 되살린 경영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공격적인 외연확장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각 분야 선도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다. 둘째, 사업영역을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신기술 쪽으로 이동시켰다.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과 접목해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김 회장은 "10년 전의 한컴오피스와 지금의 한컴오피스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 인수합병은 샐러리맨 출신인 그의 경력 전반에 깔려 있는 단어다.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재학 중이던 그는 1978년 금호전기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학교는 1982년에 졸업했고 금호전기에서는 19년 동안 일했다. 금호전기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계량기 부문 자회사 금호미터텍을 매물로 내놓자 이를 상환 5년 기한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M&A 사업가로서 김 회장의 경력이 시작됐다.   [표=뉴스투데이 이원갑]   ■ 이종간 M&A로 한컴 키워내, 문어발식 경영?...4차산업혁명의 경쟁력은 이종간 융복합    2004년에는 LCD장비 기업 두레테크를 인수했고 2005년에는 소프트포럼(현 한컴위드)을 인수해 회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캐피탈익스프레스의 김정실 회장과 결혼해 소프트포럼 아래 캐피탈익스프레스를 두는 구조를 만든다. 이후 소프트포럼과 그 자회사를 거점으로 인수합병과 경영 참여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매각으로 이어지는 사업 과정을 이어 왔다.   이후 지난 2010년 한글과컴퓨터 인수 컨소시엄의 구성원이기도 했던 소프트포럼은 현재 ‘한컴시큐어’를 거쳐 ‘한컴위드’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과컴퓨터 지분 16.32%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소프트포럼은 계열사로부터의 투자 등을 통해 670억원을 조달해 IBK캐피탈 등 다른 투자사들과 소프트포럼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지분 28%를 매입하면서 한컴그룹의 초석을 얻었다.   인수 후에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사회관계망(SNS), 정보보안, 디지털포렌식 등 이종간 M&A를 연달아 실행했다. 지난 2017년에는 마스크를 비롯한 안전장비 업체 ‘산청’도 인수해 ‘한컴라이프케어’라는 이름으로 편입시켰다. 이로써 한글과컴퓨터는 김상철 회장의 인수 이후 지난해 기준 계열사 27개를 거느린 기업집단 한컴그룹으로 거듭났다.   이 같은 경영전략은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융합과 이종간 교배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강점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표=뉴스투데이 이원갑]   ■ ‘1세대 IT 기업’ 한컴, IMF 이후 우여곡절...김 회장 인수 이후 평균 연봉 1억 2800만원으로 솟아    한컴그룹의 출발점인 한글과컴퓨터는 1990년 10월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서 시작한 소프트웨어 개발사다. 이찬진 초대 사장, 김택진 현 엔씨소프트 대표 등의 창립자들이 모여 한글 워드프로세서 제품군을 만들었다. 초기 대표작 ‘아래아 한글 3.0b(1995년 7월)’, ‘한/글 97(1997년 7월)’ 등이 자리잡고 1996년에는 코스닥에 원년 멤버로 상장했다. 창립자들은 1998년 무렵 한글과컴퓨터를 떠났다.   한글과컴퓨터는 2000년 닷컴 버블을 타고 시작한 포털 사업이 좌초하며 경영난이 시작됐다. 회사는 10년간 대주주 교체가 반복된 끝에 2009년 당시 TG삼보가 주축이 된 셀런 컨소시엄으로 넘겨졌다. 이후 지난 2010년 김 회장이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기업집단으로 성장하면서 워드프로세서 외의 사업에도 발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달 24일 중국 드론제조사 DJI와 계약을 맺어 ‘드론 아카데미’를 국내에 도입하기로 했고 안전장비 계열사 한컴라이프케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마스크 증산에 들어갔다.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계열사 한컴MDS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교육 사업자로 선정돼 자율주행 인재 양성에 나설 예정이다.   김 회장 인수이후에 매출과 영업이익만 급증한 게 아니다. 직원 수와 평균 연봉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한컴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10년만에 직원수는 251명에서 두 배 가까운 415명으로 늘었다. 평균연봉도 4500만원에서 1억 2800만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견기업에서 최상위권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수준으로 비상한 것이다.     ■ 한글과컴퓨터 소유구조 눈길, 김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한컴위드가 대주주    한컴그룹의 소유구조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한글과컴퓨터의 지분 구조는 지난해 말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주주 한컴위드(전 소프트포럼)는 지분율을 21.62%로 늘렸고 3대주주였던 김상철 회장의 부인 김정실 씨는 5.94%로 지분이 줄었다. 김상철 회장 개인 지분은 1.49%에 머물렀다. 대신 투자운용사 헤르메스홀딩스 유한회사가 7.61%까지 지분율을 올려 새로운 3대주주가 됐다.   한컴위드는 사실상 김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법인으로 지난 3월 말 기준 김상철 회장이 15.77%, 김 회장의 딸 김연수 씨가 9.07%, 김정실 씨가 4.45%의 지분을 보유하는 등 김 회장 측 특수관계인 지분이 31.46%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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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8
  • [인물탐구]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② 도전 :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복합소재 국산화의 선구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조용준 회장은 복합소재 분야의 세계 최초 기록을 다시 쓰면서 필요한 생산설비도 모두 국산화했다. 제품과 수단을 국내 최초로 동시에 직접 개발하여 생산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처럼 전방위적인 혁신을 이뤄낸 기업가는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화이바는 1986년 밀양 공장을 건설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유리섬유 용융로를 개발하여 설치했다. 이른바 가스와 전기의 장점을 살려서 함께 에너지로 사용하는 복합연료 시스템 기반의 용융로가 그것이다.   조용준 한국화이바 창립자가 2002년 9월 27일 복합소재 개발과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제공=한국카본]   복합연료 시스템은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이론상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불가능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이 시스템을 개발하다가 어마어마한 재해를 입고 포기한 사례도 있어 그만큼 위험이 큰 기술이었다. 하지만 조용준 회장은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감하게 불가능에 도전했다.   ■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한 복합연료 시스템…백금 가공한 노즐도 개발   그는 복합연료 시스템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용융로가 터져 용액이 흘러서 공장 안이 아수라장이 되는가 하면, 엄청난 불량품이 발생해 전량 폐기처분하는 손실도 입었다. 하지만 갖가지 실패를 겪은 후 성공한 복합연료 시스템은 유리섬유 원가를 낮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조 회장은 이어 백금으로 가공하는 노즐 개발에 도전했다. 용융로에서 유리가 녹아 실의 형태로 나오게 만드는 미세한 구멍이 백금 노즐로 되어 있는데, 유리섬유의 품질은 노즐 가공 실력이 1차적으로 좌우한다. 제품 종류에 따라 노즐 규격이 달라져야 하므로 선진국들도 노즐은 별도의 전문업체가 제작하여 유리섬유 생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노즐 제작을 외국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고, 국내에 노즐 전문업체도 없어 자신이 직접 개발에 나섰다. 비싼 백금을 가공하는 노즐 개발을 위해 돈도 많이 들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지금은 노즐 제작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노즐을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니 비싼 돈을 지불하며 장시간 기다릴 필요도 없고 품종이 다양해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용융로에서 노즐을 통해 유리섬유 실이 뽑아져 나오면 바인더(풀) 공정이 이어진다. 딱딱한 유리섬유 실이 매끄러우면서 끊어지지 않게 풀을 입히는 작업인데, 유리섬유 업체마다 바인더(풀)의 화학적 배합비가 다르고 이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화이바는 세계 유명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새로운 특성의 바인더(풀)도 개발했다.    이밖에 유리섬유 실을 감는 기계와 원단을 짜는 직조 기계도 국내 제품을 사다가 회사 실정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유리섬유 원단을 복합소재로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원단에 수지를 바르는 코팅’ 공정을 위해 독자적으로 코팅 기계를 개발해 왔다. 코팅 기계의 성능이 복합소재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 복합소재 품질 좌우하는 코팅 기계 개발…최초로 일괄 생산 시스템 완비   당시 조 회장은 일본에서 코팅 기계를 구입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격을 알아보니 30억원을 달라고 요구해 결국 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곧 개발에 착수한 그는 3억원 정도의 비용으로 코팅 기계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기계보다 성능이 뒤떨어졌으나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 것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화이바의 생산시설을 돌아본 영국 쉐필드 대학의 마크 로빈슨 박사는 “세계 각국의 복합소재 공장들을 방문했지만 한국화이바처럼 일괄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춘 곳은 처음 보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단순하게 제작된 기계들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저런 기계에서 제대로 제품이 나올까 의심이 들었는데, 품질 좋은 제품이 나오는 현장을 보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유리섬유는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규격 속에서 생산되지만, 한국화이바는 그런 규격을 무시하고 제품의 특성에 따라 규격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개발했다. 조 회장은 “외장이 화려한 외국 기계는 특별한 기능이 없어도 장치가 많아 가격이 비싸다”며 “우리는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핵심 기능 위주로 설계돼 제작비가 적게 들고 설비·보수·개선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한국화이바는 유리섬유에 이어 국내 최초로 카본섬유 보강시트도 국산화했는데, 이 보강시트를 개발하면서 건축용 자재 제작에 필요한 접착제까지 개발했다. 카본섬유는 비중이 철의 25%이면서도 인장 강도는 10배 이상이어서 교각 기둥과 터널 등의 건설 구조물 보강에 사용되는 신소재이다. 외부 환경에 대한 내구성이 강하고 부식이나 열화로 인한 노화를 방지해 보강 소재로 각광 받고 있다.   ■ 국내 유일의 카본섬유 보강시트 개발…건축물 보강 소재 국내 시장 40% 점유   한국화이바가 카본섬유 보강시트를 개발한 동기는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외국 바이어가 작은 보강 소재 샘플을 가져왔는데, 담당부서에서 팽개쳐두고 있었다. 그런데 두어 달 뒤 그 바이어가 조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거 한 번 해 보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그게 뭐냐”고 묻자 각종 건축물 소재로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조 회장은 바이어가 가져온 샘플을 자세히 살펴본 후 카본섬유 보강시트를 여려 겹으로 붙이는 접착제가 관건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가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가장 우수한 접착제는 전량 영국에서 수입해 왔다. 그는 카본섬유 보강시트 개발을 계기로 고급 접착제도 함께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1년여의 연구 끝에 조 회장은 카본섬유 보강시트 생산설비를 개발함과 동시에 고급 접착제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때 생산된 보강시트는 선진국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한 ‘무수지 일(한쪽)방향’ 시트이다. 기존 제품들은 시트에 수지를 바르기 때문에 시공이 불편하고 재료 손실도 유발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한 시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기 때문에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화이바의 계열사가 생산한 카본섬유 보강시트는 특히 일본제품과 차별화하여 특허를 출원했고, 건설교통부로부터 신기술로 인정받았다. 이 제품은 250여 개소의 구조물에 보강 소재로 활용돼 뛰어난 보강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건축용 보강 소재에 그치지 않고 고급 접착제 기술과 어우러져 건축용 외장 및 내장 자재로까지 발전했다.    2000년 당시 카본섬유 보강시트 소재의 국내 시장은 한국화이바 계열사인 한국카본이 40%, 일본 업체가 30%, 기타 업체가 30%를 점유했다. 그동안 일본 제품이 상당수 점유하던 국내 시장이 한국카본 제품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복합소재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 회장은 2002년 9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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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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