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8.11 05:05 ㅣ 수정 : 2020.11.21 16:03
‘민식이법’이 만들어짐에 따라 차량 운전자들의 주의의무가 한층 강화됐다.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수많은 교통사고 사건을 처리했는데,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 정도는 정말 천차만별이다. 어떤 피해자는 외형상 식별이 안될 정도로 경상을 입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 장애가 남는 중상을 입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물론 사망사고다.
■경미한 과실로도 천차만별의 피해가 발생하는 교통사고
반면 가해차량 운전자의 과실은 비슷비슷하다. 잠깐 부주의한 탓에 앞을 못봐서 사고가 났는데, 살짝 부딪칠 수도 있고 엄청난 충격으로 부딪칠 수도 있다. 과실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교통사고는 아주 경미한 과실로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망사고처럼 심각한 피해가 났을 경우에는 당연히 엄중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김민식 군 사건’처럼 운전자가 나름대로 주의의무를 기울였는데도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운전자가 제한속도도 지키고 조심하면서 운전을 했는데도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렇게 교통사고 가해자도 전과 한 번 없이 살아온 사람이고, 난폭운전이나 음주운전, 신호위반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피해가 클 경우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수원 영통대로서 일어난 버스와 오토바이 충돌…‘스퀴드 마크’가 남긴 의문
수원지검에 근무할 때 일이다. 왕복 8차선 영통대로에서 승객을 태운 광역버스가 달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던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버스 바퀴에 오토바이 운전자가 깔려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쓰러진 이유가 본인 스스로의 과실인지, 혹은 버스가 부딪혔기 때문이었는지를 따져야했다. 두 번째는 버스 바퀴가 오토바이 운전자를 한 번 지나가고 나서 다시 후진하면서 재차 역과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됐다.
차량이 급정거할 때 생기는 타이어 자국을 스퀴드 마크라고 한다. 오토바이 때문에 버스가 급히 멈춰서면 앞바퀴와 뒷바퀴 뒤쪽에 스퀴드 마크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희한하게도 스퀴드 마크가 버스의 앞바퀴가 멈춰선 지점부터 1~2m 정도 뒤에까지만 있었다.
사망한 오토바이 운전자의 유족들은 “버스가 바로 섰으면 스퀴드 마크가 앞바퀴 끝까지 있어야한다. 스퀴드 마크가 없는 지점에 차가 서있다는 것은 운전자가 차량을 급정거 한 이후에 다시 움직인 증거 아니냐” 이렇게 의문을 제기했다.
승객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버스가 정지한 다음에 다시 움직였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유족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현장검증을 해봤다.
당시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사고 차량과 똑같은 버스, 사람을 대신해서 옷을 넣은 포대자루를 가져오게 하고 영통도로의 교통을 통제한 뒤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해봤다. 사고 당시와 유사한 속도로 달리던 버스가 급정거를 하면 오토바이 운전자를 깔고 지나가게 되는지, 또 스퀴드 마크는 어떻게 생기는지를 살펴봤다.
결과는 반전이었다. 버스가 급정거를 할 때, 마지막 멈춰서는 순간에 차체의 일부가 위로 ‘붕’ 떴다. 그래서 현장에 있던 모습처럼 스퀴드마크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 것이었다.
결국 버스가 오토바이 운전자를 다시 후지하거나 전진하면서 피해자를 역과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른 승객들이 “오토바이 운전자가 차선을 바꿀 때 버스 운전자가 충격한 건 맞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버스 운전자를 주의의무 위반으로 기소했다. 버스 운전사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보험금 등을 다 지급해서 실형은 살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난 교통사고 모습으로 기사와 상관없음 [사진제공=연합뉴스]
■10%의 과실에도 전체 책임 물어야 하는지 고민
이 사건처럼 교통사고에서 사람의 과실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차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사고는 차에게 과실이 많이 있지만, 차와 차가 서로 부딪치는 사고도 있다.
버스 운전자와 오토바이 운전자 사이에서 사고가 났을 때, 민사적으로는 오토바이에 90%의 과실이 있고 버스 운전자가 10%만의 과실이 있어도 오토바이 운전자는 죽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실상 모든 과실이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있는 사고에 대해서도 버스 운전자를 처벌하것이 맞는지 고민이 된다.
요즘은 CCTV도 있고 차 내부에 설치하는 블랙박스도 있어서 예전보다는 사실관계 규명이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이런 것이 객관적 증거가 없고 서로의 주장 밖에 없거나 상대방이 사망한 경우에는 과실을 구별해내기가 여전히 어렵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기억력은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자신이 신호위반한 교통사고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점점 기억이 흐려져서 자신이 신호위반을 하지 않은 것처럼 기억이 변화된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기억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법원 검찰의 무조건 진단서 인정이 ‘돈 많이 못 받으면 손해’ 교통사고 문화 조장
요즘은 조금 변화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통사고가 나면 경미한 사고에도 차량을 막아놓고 싸우고, 범퍼가 살짝 긁혔는데 범퍼 교체 비용 전체를 청구하고. 페인트칠이 조금 벗겨졌다고 전체 도색작업을 받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살짝 뒤에서 ‘콩’ 부딪쳤는데 전치 진단서를 내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왜 교통사고만 나면 상대방에게 보다 많은 비용을 청구하고, 병원에 가서 드러눕고, 무조건 진단서를 끊는 풍토가 만들어졌을까? 사고가 났으면 그만큼만, 잘못한 것 만큼만 배상하고 끝나면 되는데 굳이 대인 피해를 만들어서 형사사건으로 끌고 가려는 경향이 생길걸까?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진단서만 내면 거의 무조건 상해로 인정해주는 우리나라 법원과 검찰의 잘못된 일처리 관행도 일조하였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병원에 가서 아프다고 전치 2주짜리 진단서를 끊어달라고 하면 의사 입장에서는 안 끊어주기 어렵다. 과연 이런 상해를 진짜 교통사고의 상해로 볼 수 있을까?
물론 교통사고 상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갑작스럽게 근육이 놀라서 겉으로만 보면 알 수는 상해도 있지만, 사실 ‘콩’하고 받았는데도 진단서를 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은 사실 형사사건으로 갈 문제는 아니다.
애당초 법원이나 검찰이 정말로 교통사고에서 말하는 상해라고 볼 수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고 상해로 보기 어렵다고 볼 진단서는 인정해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충분한 검토 없이 진단서만 내면 상해로 인정해주니까 사람들이 교통사고만 나면 무작정 진단서를 내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의료인이 아닌 법조인이 의사가 발급해준 진단서를 어떤 것은 상해로 인정하고 어떤 것은 상해로 인정하지 않을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너무 경미한 상해까지 대인 사고로 인정해 주다보니 이런 결과가 빚어진 점에 대하여는 법원과 검찰이 제도 개선을 통해 변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통사고가 나기만 하면 상대방에게 돈을 많이 받아내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문화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