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그림읽기] (22) 아름다운 포로 : 좋은 그림이란?

(뉴스투데이=김준홍 객원기자) 어떤 음식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기 위해 굳이 미식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혀에 닿았을 때 즐거우면, 그러니까 맛있으면 좋은 음식이며 맛이 없으면 나쁜 음식이다. 좋은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을, 좋은 향수가 코를 즐겁게 하는 향수를 의미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혀만의 사정이 아니다. 이처럼 많은 예술에서 '좋음'은 '감각기관의 만족'을 뜻한다.
하지만 '좋은 그림'의 기준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위대한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대단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눈이 즐거울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기 좋은 것이 좋은 그림의 필수 조건이었다면 우리가 아는 걸작들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은 현실을 얼마나 잘 모방하는가에 오랫동안 집중해왔다. 실제처럼 그릴 수 있다면 그 그림이 얼마나 심미적으로 아름다운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날아온 새가 벽에 부딪혔다는 솔거의 이야기, 그림을 가린 휘장인줄 알았는데 휘장 역시 그림이었다는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그림들은 진짜 같다는 점에서 대단하지만, 감탄할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다. 우리가 세상의 실제 사물들을 보고 감탄하는 일이 흔치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실을 정교하게 모방하는 그림들은 18세기까지 그려졌고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가진 화가들을 칭송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사진이 등장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제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사진만큼 현실을 정확히 모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은 살아남기 위해서 새로운 목표를, 즉 좋은 그림의 새로운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그림에 현실을 초월한 추상적인 관념을 담기 시작했다. 오늘날 어떤 그림의 대단함은 그것에 적용된 미술적 기교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백지에 점 하나를 찍은 그림이 수억 원에 거래되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경향은 초현실주의에서 정점에 달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아름다운 포로>
는 그 모범적 사례다. 풍경화로는 낙제점을 받을 불편한 구도, 정교하지 못한 채색이 거슬린다. 하지만 그건 이 그림의 대단함을 훼손하지 못한다. 그 모든 단점들마저 장점으로 승화시킬 정도로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리한 마그리트는 일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김준홍 객원기자
=lookane@gmail.com)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를 재미있어 하는 20대 청년. 2014년에는 정치 팟캐스트 '좌우합작'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흡연문화 개선을 위한 잡지 '스모커즈'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http://www.thesmoker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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