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싱가포르·조호바루' 한달살기 (22)] 딤섬, 그리고 바퀴벌레

윤혜영 전문기자 입력 : 2024.06.29 05:15 ㅣ 수정 : 2024.06.29 05:15

딤섬은 주재료가 이름...샤우마이는 새우나 고기, 소룡포는 고기와 육즙, 하가우는 피와 새우
현지인도 찾는 추천 딤섬집 찾아 갔더니...메뉴는 평범했고 종업원은 무표정에 공기는 습습
돌아오는 그랩 운전석 등받이에 도사린 거대한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공포의 시간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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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ixi hogh kong 딤섬 /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전문기자] 딤섬(点心) 마음에 점(点)을 찍는다. 중화권에서 발음하기로는 '디앤신' 차와 함께 나오는 곁들임 음식으로 얌차((飲茶)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아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고기와 생선을 망라하여 과일에 이르기까지 카테고리가 무궁무진해졌다. 육해공군의 온갖 재료를 포괄하며 양념하여 밀가루나 쌀가루 반죽으로 감싸서 대나무 찜기에 쪄내는 방식이 기본이다. 재료에 따라 굽거나 튀기는 조리법을 쓰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음식인 만두와 비슷하다. 만두는 고기와 채소, 두부, 당면을 넣어 얇게 편 밀가루 반죽으로 감싸서 찌거나 기름에 지져서 먹는다. 지역에 따라 김치나 선지를 추가하기도 한다. 대중적이며 호불호가 뚜렷이 없는 음식이다.

 

딤섬은 재료나 조리법이 곧 이름이 된다. 빠오(둥근 만두) 까오(떡) 투안(경단) 쥐앤(말이) 빙(부침개) 판(밥) 쑤(과자) 티아오(국수) 차슈(돼지고기) 가우(전분으로 만든 투명한 ) 마이(윗 부분이 뚫려 재료가 보임) 동(젤리)

 

즉 '샤오롱빠오'는 작은(샤오) 롱(대나무 통) 빠오(둥근 만두) 라는 뜻이다. 이름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가면 좀 더 자신있게 나에게 맞는 메뉴를 고를 수 있다.

 

딤섬 전문점들은 각자 내세우는 시그니처 딤섬들이 있어 그것을 맛 보러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조호바루에는 중국인들이 많으니 분명 맛있는 딤섬집들이 포진 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립어드바이저를 찾아보았더니 딤섬집들이 꽤 있었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현지인들이 자주 방문한다는 저렴하고 맛있는 추천 딤섬집이 있었다. 상호는 ‘TASIXI HONG KONG DIM SUM’ 에코 보타닉과 부킷인다 지역에 본점과 지점이 있었다. 에코 보타닉이 훨씬 가까웠지만 영업시간이 맞지 않아 그랩을 호출해 부킷인다 지점으로 출발했다. 거리는 그랩으로 약 20분.

 

빌딩들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진 한 낮,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주인 없는 허름한 개들이 건물의 음지 아래에서 하품을 하거나 목적 없이 어슬렁거렸다. 신도시를 벗어나니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은 황폐한 벌판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누렇게 말라붙은 메마른 땅에는 초록의 생동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햇빛에 폭삭 삭은 낡은 주택들과 시멘트로 대충 마감해 간판만 올린 상점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갈색으로 그슬리고 깊고 큰 눈을 가진 남자들이 그 건물들을 드나들었고 히잡을 착용한 여인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 한무리가 스쳐 지나갔다.

 

여인의 노출 정도에 따라 여성의 권리를 짐작할 수 있다는데 결혼식때 조차 히잡을 벗지 못하고 그 위에 티아라를 올린 여인들을 생각하면 이슬람에서 여성의 존엄은 어떻게 다루어질까?

 

어른들은 표정이 없었다. 웃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 허공을 응시하며 어딘가로 걸어갔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려 소리를 지르며 왁자지껄하게 쏟아져 나와 골목으로 흩어졌다. 문득 이 아이들도 자라면 이곳의 어른들과 같은 표정을 짓게 될지 궁금해졌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단층의 건물들이 다시 나타나고 길다란 회랑이 뻗은 상점 아케이드 앞에서 차는 멈췄다. 식당은 실내와 실외의 경계 없이 탁자와 토넷 의자들이 노천까지 점령해 있었고 순백의 한낮과 대비되어 본래보다 어두워 보이는 내부에는 사람들이 잔뜩 앉아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몇 개의 선풍기가 벽에 붙어 더운 공기를 왼쪽오른쪽으로 밀어내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아무도 반기지 않기에 다소 쭈뼛거리며 내부로 진입했다. 어서오라는 인사 따위는 없었고 종업원들은 요리를 나르고 빈 접시를 치워가느라 매우 분주해 보였다.

 

우리는 알아서 세 명이 앉기에 적당한 식탁을 찾아가 의자 위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실내의 한쪽 끝에는 커다란 주방이 있었고 전면에 뚫린 구멍으로 허연 김이 펄펄 새어나왔다. 동그란 대나무 찜기를 안쪽에서 탕탕 내던지면 종업원이 그걸 빠르게 받아 커다란 사각 쟁반 위에 담아서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보여주고 손님이 고르게 하였다.

 

코팅된 메뉴판도 있었는데 그것은 딤섬 외 별도의 요리를 주문하는 용도인 듯 했다. 잠시 후 우리에게도 딤섬을 담은 쟁반이 당도했고 눈치껏 샤오마이, 샤오롱빠오, 하가우 등등을 내려놓았다. 행위는 매우 단순하여 대화는 양측 모두에게 필요 없었다.

 

딤섬 맛은 특별히 각인될 만큼 맛있지도 않았고 맛 없지도 않은게 그저 평범하였다. 종류는 쟁반이 올 때마다 바뀌었고 달콤한 팥이 든 떡도 있었고 생선이 들어간 딤섬도 있었다. 샤오롱빠오와 차슈빠오를 비롯한 대표 딤섬들은 모양과 맛이 균일한 것이 어딘가에서 납품을 받는 공장표 딤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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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딤섬들 / 사진=윤혜영

 

쟁반이 다섯바퀴 정도 돌고나니 비슷한 메뉴가 반복되었고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실내를 꽉 채운 사람들의 열기와 찜통에서 뿜어지는 열기로 인해 식당 안은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대여섯 명의 종업원들은 익숙하고도 권태로운 무표정으로 기계적으로 홀을 돌았다. 마지막 하나 남은 딤섬을 의무적으로 입 안에 쑤셔넣고 서둘러 계산을 치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랫동안 숨을 참은 해녀처럼 숨비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더운 날씨에 무더운 곳에서 뜨거운 요리를 먹고 나니 정신이 아득하니 한바탕 롤러코스터를 타고 착지한 기분이었다.

 

다음부터는 에어컨이 이빨까지 얼릴만큼 차가운 실내 음식점 외에는 천하일미라도 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였다. 그랩을 호출해놓고 어슬렁거리니 이웃한 가게가 과일 상점이었다. 달콤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잭 프룻과 두리안, 오렌지, 청사과, 서양배 등이 오와 열을 맞춰 누워 있었다.

 

개나리꽃 색깔의 크고 말랑한 망고를 골라 한 봉지 가득 채웠다. 계산은 링깃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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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 과일가게 / 사진=윤혜영

 

잠시 후 그랩이 도착하였고 숙소에 도착하면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후식으로 망고를 먹자고 이야기를 하며 그랩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한숨 돌리는 우리.

 

부른 배를 안고 차창 밖의 경치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고요한 풍경 속에 어딘가 수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그랩 운전석의 등받이를 타고 참새 만한 바퀴벌레가 천천히 기어오르고 있었다. 마호가니처럼 반들거리고 윤기가 흐르는 단단한 갈색의 등딱지. 조금씩 움찔거리는 날개, 길고 섬세한 더듬이가 탐색하듯이 움직였다.

 

단단하고 매끈한 갑옷 아래에 가리워진 수십개의 작은 다리를 재빠르게 놀려 위로위로 조금씩 올라오더니 중간지점에서 딱 멈춰 가만히 있었다.

 

더듬이가 신호를 탐색하듯 좌우로 흔들렸다. 이 자식이 달콤한 망고향을 맡은것 같았다.

 

바퀴를 목격한 직후부터 공포심에 얼어붙은 나는 제발 목적지까지 그랩이 빨리 달리기를, 바퀴가 제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기를 바라며 ‘그대로 멈춰라’가 되어 눈알만 겨우 움직였다.

 

고온다습한 열대의 기후와 사계절 풍성한 먹거리는 바퀴가 창궐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조호바루의 에어비앤비를 알아보며 바퀴벌레가 출몰한다는 후기를 유독 많이 보았다. 방역을 철저히 하는 곳을 수소문한 끝에 바퀴가 없다는 현재의 레지던스를 선택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침묵한 나의 안색을 살피다가 이내 바퀴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올빼미 눈이 되어 말문을 닫았다. 그렇게 우리는 메두사를 만난 돌처럼 굳어져 바퀴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숨죽여 있었다.

 

이윽고 호텔에 도착, 최대한 몸을 조신히 놀려 문을 살짝 열었는데 기척을 감지한 그것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푸르륵 날아올랐다. 순간, 나는 심장 깊은곳 에서 뿜어져나오는 비명을 지르며 차 밖으로 뛰쳐 나갔다.

 

“꽤애액~~” 소리를 지르며 본능이 시키는대로 어딘가로 달렸고 망고 봉지가 손에서 튕겨나가며 럭비공처럼 날아갔다. 호텔 앞에 서있던 도어맨 두 명이 “What’s Happen?”이라며 뛰어왔고 나는 ‘벌레’라고 소리치며 스카이콩콩을 타는 것처럼 거칠게 제자리뛰기를 했다. 혹시 몸에 바퀴가 붙었을까봐.

 

도어맨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망고를 하나씩 수습해 봉지에 담았다. 아이들도 놀랐지만 어른인 내가 제일 놀란 것 같아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큰 애는 그 일 이후로 나를 보면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내 모습을 흉내 내었다. 벌레는 크기에 상관없이 모두 무섭지만 그 중 갑 오브 갑은 바퀴벌레다.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놈이다.

 

그 뒤로는 그랩을 호출할 때마다 바퀴가 있는지 꼼꼼히 둘러보고 타는 버릇이 생겼다. <2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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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프로필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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