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눈] 한국경제의 경기순환, 어떻게 변해왔나? (5)
[기사요약]
제5순환기 - ‘주택건설 200만 호 개발계획’ 등 건설 비롯한 대형 국책사업과 대규모 설비투자 등 내수 주도로 회복
이후 내수 부문 과열 막고 물가안정 위해 경제 안정화 대책 실시, 이는 내수 둔화와 경기 위축으로 이어져..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 직접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자본시장 개방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경제가 처음으로 내수주도 경제성장 시험한 기간
안정적 성장 위해서는 내수와 외수의 균형 중요하다는 것 체감한 시기
경기는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중심으로 바다의 파도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이를 경기순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경기순환은 경제라는 바다에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계, 기업, 그리고 정부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는 이러한 주기적인 환경변화 속에서 적합한 방법으로 헤엄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을 구분하지 못한 채 무작정 수영을 시도하면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현재 경기국면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지혜로운 대비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과거 한국경제에서 나타난 경기순환의 양상과 주요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1972년 3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한국경제에서 발생한 총 11차례의 경기순환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범식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이번 편에서는 제5순환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제5순환기는 1989년 7월부터 1993년 1월까지 지속한 경기순환이다. 이 시기의 경기 확장국면(1989년 7월~1992년 1월)은 30개월, 수축국면(1992년 1월~1993년 1월)은 12개월 지속했다.
제5순환기 확장국면의 지속 기간은 한국 경기순환의 평균 확장기(33개월)보다 약간 짧았고, 수축국면은 평균(20개월)보다 8개월 짧았다. 이는 역대 한국 경기순환에서 제7순환기(11개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지속 기간이었다.
당시 경기는 건설경기를 비롯한 대형 국책사업과 대규모 설비투자 등 내수 주도로 회복되었으나, 이후 내수가 위축되면서 경기도 둔화했다.

• 제5순환기: 주택 200만 호 개발 등 내수주도의 경제성장
1987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정부는 선거공약으로 ‘주택건설 200만 호 개발계획’을 내걸었다. 이 계획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5년 동안 20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주택건설 200만 호 개발계획’은 처음에 서울 시내와 외곽에 주택을 공급하는 데 집중했으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자 개발제한구역 밖의 값싼 토지로 눈을 돌려 1989년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사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25㎞ 내외에 위치한 베드타운 성격의 5개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었다.

5년 동안 200만 호를 건설한다는 것은 매년 40만 호씩 건설하겠다는 의미였으며, 이는 과거의 2배 수준으로 당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91년까지 이미 214만 호를 공급해 계획보다 1년 앞당겨 목표를 달성했고, 1992년까지는 272만 호를 건설해 목표를 36% 초과했다.
이 개발계획을 통해 주택가격이 30∼40% 정도 안정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며, 처음으로 공공 임대 주택 정책을 시도해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
• 내수 부문 과열 막고 물가안정 위해 경제 안정화 대책 실시.. 외국인에 자본시장 개방
한편, 이 시기에 철도와 같은 대형 국책사업들이 추진되었다. 이전 정부 시기에는 도로 위주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철도의 용량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경부 및 호남 고속철도와 같은 대형 국책사업들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고, 1992년에는 경부고속철도 사업과 인천 신국제공항 착공이 시작되었다.
또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가 집중되었고, 주로 철강, 석유화학, 조선, 정유, 전자 등 핵심 산업에서 투자가 이루어졌다.
< 제5순환기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추이 >

그러나 소비자물가는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8.6%, 9.3%로 크게 상승하며 국민 생활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1991년 1월, 내수 부문의 과열을 막고 물가안정을 위해 경제 안정화 대책을 실시한 결과, 과열된 건설경기가 진정되고 소비도 둔화했으며, 1992년에는 국내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특히 건설투자 증가율은 1990년에 30.0%까지 급등했다가, 1992년에는 0.3%로 대폭 떨어졌다. 건설업은 1990년에 23.8% 성장했으나, 1992년에는 –1.7%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민간소비도 1989∼1990년에는 10% 이상 증가했으나, 1991년에는 9.1%, 1992년에는 7.2%로 둔화했다. 그 결과, 1990∼1991년 중 10%대였던 경제성장률도 1992년에는 6.4%로 떨어졌다.
< 제5순환기의 건설투자 증가율과 건설업 성장률 추이 >

한편, 이 시기에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을 직접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규제중심의 금지법 체계인 ‘외국환관리법’을 원칙 자유 체계로 전환하는 등 경제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당시 산업 측면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 등의 성장이 두드러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산업은 성장기(1982∼1991년)와 성숙기(1992∼1996년)에 걸쳐 있었으며, 주력 산업에서 기술 혁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제5순환기는 수출 주도형 경제인 한국경제가 처음으로 내수주도 경제성장을 시험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경제는 ‘나홀로 내수’나 ‘나홀로 수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내수와 외수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한 시기였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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