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58)] 현장 위주형 조영호 사단장과 선영제 군단장의 멋있는 우정

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4.15 10:26 ㅣ 수정 : 2025.04.15 10:26

조영호 사단장, 15사단 GOP대대장과 장군 진급후 203특공여단장 시절에 대간첩작전에서 간첩을 사살 및 생포하는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 받아
수행 참모를 노모가 계시는 친가에까지 데리고 가서 점심을 챙겨주는 소탈한 사단장
멋있는 우정은 결국 나중에 조영호 장군이 9군단장으로 부임하면서 결실을 맺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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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사단장을 마치고 함참 민심부장을 거쳐 9군단장으로 취임한 조영호 장군(학군7기)과 금모으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사단을 대표해서 사단인사참모 김기영 중령(삼사15기)이 언론에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대대장 취임후에 정신없이 3년을 달려 이제는 조영호 사단장 휘하에서 사단 정보참모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대대장 근무 기간동안에 강릉무장공비침투 사건이 발생했었고, 또한 ‘IMF사태’로 불리는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는 한국을 포함한 무려 40여개국이 대기업의 파산이나 대량 실직 등의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우리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여 이 어려움을 극복했다.

 

이는 2008년 미국발 대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으나,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역사바로세우기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던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사고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의 수많은 사건사고와 더불어 현재도 저평가받는 주원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IMF사태는 김영삼 대통령의 재임기간중인 1997년 말에 발생하여 김대중 정부의 2001년 말까지 약 4년간 지속되었으며, 이후에도 ‘IMF사태 이후로 힘든 시기’나 ‘IMF사태보다 힘든 시기’ 같은 표현으로 경제적 고난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IMF사태가 발생한 그해 11월 말에 대기업 부도와 금융불안, 증시폭락,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국가부도의 총체적 위기에서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한 범국민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를 위해 해외여행을 줄이는 등 ‘달러 아끼기’와 ‘금모으기 운동’이 활발히 시행되었다.

 

그때 사단장은 국가부도 위기를 바라만 볼 수 없다며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그동안 결혼식과 진급시 등 각종 행사에서 받은 금반지와 금붙이 선물들을 당시에 전개된 ‘금모으기’ 범국민운동에 동참하여 육군 최초로 기증하였다.

 

이에 따라 위 사진에 사단인사참모가 언론 인터뷰한 모습처럼 사단의 전간부들도 ‘금모으기’ 범국민운동에 함께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우리 군인들도 힘을 보태는 계기가 되었다.

 

조영호 사단장은 충북대학교를 졸업하며 학군 7기로 임관하여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직업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빠른 상황판단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현장을 전투지휘해 호평을 얻었으며, 15사단 GOP대대장과 장군 진급후 203특공여단장 시절에 대간첩작전에서 간첩을 사살 및 생포하는 전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다. 

 

사단장을 마치고 합참 민심부장 재직시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 9군단장(위의 사진)을 역임했으며, 전역후에는 군인공제회 9대 이사장(2006~2008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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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베기 및 수해복구 대민지원 중인 병사모습 [사진=연합뉴스] 

 

■ 친가에 가서 점심을 챙겨주는 소탈한 조영호 사단장, 모든 업무는 현장에서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부대 업무를 유도하는 조영호 사단장의 정무 감각은 국방부 지침에 따른 벼베기 대민지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전군에서 우리 사단이 제일 많이 홍보되었다.

 

어느날 사단장은 대민지원 현장을 돌아보고 싶다며 필자보고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충청북도가 광범위한 지역이라 많은 곳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살펴보다가 필요시 대민지원 현장에 착륙했다. 이때 되도록 많은 병력이 지원하는 곳을 찾아 격려하며 홍보 영상도 찍었다.

 

사단장은 필자에게 특이한 가르침을 주었다. 모든 업무는 현장에서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벼베기 지원도 지원할 모든 장소에 각각 소수를 배치하는 것보다 지원할 순서를 정하여 장소별로 한번에 많은 인원이 투입하여 완료시키고 타지역으로 이동해 지원하도록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것은 홍보를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알려주었다.

 

헬기 운영시간이 오전으로 한정되어 벼베기 현장에서 헬기는 복귀하고 다시 차량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사단장은 “정보참모, 우리 점심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며 괴산군 청안면 부근으로 차를 돌렸다.

 

그곳은 사단장의 친가였다. 허리가 굽은 노모가 장성이 된 아들과 필자를 반겼다.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에 그릇 위에 그릇 높이 만큼 고봉으로 담긴 밥을 주시며 “고생하는데 많이 먹어라”하고는 반찬을 일일이 챙겨주셨다.

 

새벽부터 바쁘게 뛰어다닌 덕분에 허기도 있었지만 따사한 어머니 손맛을 느끼니 더욱 꿀맛이었다. 사실 필자는 식사량이 많지 않은데 어머니 정성이 담긴 고봉이 넘는 밥을 남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친히 수행 참모를 노모가 계시는 친가에까지 데리고 가서 점심을 챙겨주는 소탈한 사단장이 너무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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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꽃동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명박 대통령을 안내하는 오웅진 신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 조영호 장군, 임관 동기로 사단장 근무를 함께 했지만 직속상관으로 부임한 선 장군에게 극진하게 예우 

 

필자를 자신의 친가에까지 데리고가 점심을 먹여주던 조영호 사단장도 임기가 다되어 곧 떠날 시기가 다가왔다. 10월이 되자 장군 인사가 속속 발표되며 신임 군단장으로 필자의 대대장 초기에 보인 군사령부 예비군 훈련장 시범시에 인접 사단장으로 참석했던 선영제 장군이 중장으로 진급하여 부임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6~227)] ‘군사령관 지시로 예비군 훈련장 시범식 견학 시행’ 참조) 

 

당시 9군단장 안성용 중장(육사 23기)과 각 사단장 등 장군 9명을 포함한 100여명의 지휘관, 참모들이 동시에 대대 예비군 훈련장 시범에 참석했는데, 생도시절 훈육관이었던 선영제 장군은 필자보고 “야, 김희철, 너 우리사단으로 전입오지 왜 이곳으로 왔어?”하며 농담을 던졌으며, 합참 대간과장 시절에도 수방사 여군 특공대 창설을 추진하던 필자를 도와주었던 존경하는 선배였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40~141)] ‘지휘관의 구상을 실현하는 난제·고충 해결이 참모의 책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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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제 전 전쟁기념사업회장(전 육군참모차장, 예비역 중장)이 그동안의 경험과 강의를 정리하여 발간한 ‘리더십이 답이다’ 책자[사진=김희철]

 

선 장군(육사 25기)은 군단장 부임후에 사단을 초도 방문했는데 조영호 사단장(학군 7기)과는 임관 동기임과 동시에 얼마 전까지 인접에서 사단장 근무를 함께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직속 상관으로 부임한 선 장군에게 사단장은 금의환향(錦衣還鄕)을 축하한다며 진심으로 극진하게 모셨다.

 

사단에서 업무보고를 마치고 사단장이 수행하여 근처의 예비군 중대를 현장 확인 후에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다. 오웅진 신부님은 신자이자 세례명 요한까지 같은 선영제 군단장을 환영하며 반겼고, 신임 군단장은 성스러운 봉사 현장을 방문하면서 깊은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함께했던 사단장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는데, 선영제 군단장은 떠나면서 흐뭇한 미소를 띄우며 “김희철, 잘해라...!”라는 한 마디를 사단장을 수행하던 필자에게 남겼다. 현장 위주의 지휘를 실천한 두 선배의 멋있는 우정은 결국 나중에 조영호 장군이 9군단장으로 부임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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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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