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김원중 “모델킹?…기억되는 모델이고 싶어요”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저는 어렸을 때 그냥 조용하고 평범한 애였어요.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누구나 그렇듯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때는 건축쪽을 꿈꿔서 대학교 건축학과에 진학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적성에도 안맞고 제가 싫어하는 물리를 배워야 해서 1학년 때 과감히 대학을 그만뒀죠.”
학교를 그만두고 지하철 택배, 편의점‧주유소 아르바이트 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그는 일명 ‘모델킹’, ‘모델왕’, ‘원중킹’으로 불리는 톱모델 김원중이다.
김원중은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동대문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에이전시 디렉터의 눈에 띄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사실 원래는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그 당시 디렉터의 유혹에 넘어갔던 거예요. 제가 모델이 되면 옷을 사 입지 않아도 되고, 여러 옷을 다 입어볼 수 있다는 유혹이었죠. 모델 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이런 유혹을 못 이겨 결국 모델의 길을 걷게 됐어요.”
디렉터에게 발탁된 그는 2010 서울패션위크 S/S컬렉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한민국 런웨이를 꽉잡고 있는 톱모델로 거듭났다.
■ ‘원중킹’이 되기까지…

-첫 패션위크 때 어떠셨나요?
“2010 S/S컬렉션이 첫 무대였어요. 그때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모든 것이 어색했었어요. 팔도 원래는 자연스럽게 흔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흔든 것 같고요. 지금은 여러번 해봐서 좀 나아졌지만 무대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뭐가 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불과 데뷔한지 3년 만에 우리나라 최고의 모델, 톱모델로 꼽히고 있어요. 비결이 뭘까요?
“저 톱모델 아니에요. 음, 톱모델 중 한명이 더 나은 것 같네요. 글쎄요. 딱히 비결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해야할 일 하다보니까 이렇게 되었어요. 저는 어깨가 넓어서 몸이 말라도 옷이 다 잘 맞는 것처럼 보여요. 그게 제 장점이 아닐까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김원중씨는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나요?
“글쎄요. 운동도 많이는 안해요. 워킹연습도 그렇게 많이하는 편도 안하고요.”
-포즈 연습은 따로 안하시나요?
“포즈 연습 대신 저는 잡지를 봐요. 보면서 재미있다 싶은 것은 사진을 찍어놔요. 그리고 나중에 심심할 때 그것을 돌려보면 ‘아 이런게 있었구나’ 하면서 되새김질하는 거에요. 그러다보면 그게 기억이 나고요. 물론 그런 포즈들을 똑같이 해보는 것도 좋지만 약간 변형한다던가 제 것으로 바꿔보죠.”
-많은 노력없이도 어느덧 정상의 자리에 서있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노력이 없으면 말이 안되죠. 모델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프로포션(비율), 이미지, 끼, 노력 네가지인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프로포션은 좋은 것 같고요, 이미지는 연예인이 아니니까 잘생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저는 모델처럼 특색있게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끼는 남들만큼 있다고 생각하고, 연습은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런웨이에서 김원중씨의 아우라가 대단해요.
“저도 누나랑(앨컴퍼니 정진희 대표) 그런 얘기 많이 해요. 누나가 제게 ‘어떤 무대에서는 너가 아우라가 많이 나오더라, 어떤 무대에서는 아우라가 별로 없더라’ 이런식으로 얘기해줘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 그래요?’ 이렇게 말해요. 하는 데로 하는데 저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나봐요. 저는 가공되지 않고 드라이한 사람이고, 그렇게 생활하기 때문에 그런 아우라가 나오는 것 같아요.”
-김원중씨는 패션쇼가 없을 때에는 주로 어떤일을 하나요?
“매달 매거진 촬영을 하고 트렁크쇼(소수 VIP만을 초청해 신제품을 보여 주는 행사)가 있으면 트렁크쇼를 하고 개인 일인 온라인 쇼핑몰을 하는 게 전부에요. 일단 잡지사는 마감기한이 있다보니까 20일전 후 부터는 한 일주일 정도 쉬어요. 그 다음부터는 하루에 촬영이 두세개 있을 때도 있어요. 사실 모델들은 시장이 너무 좁아서 한달에 하나 두 개 매거진 찍기를 소망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 친구들에 비해서 저는 너무 꿈같고 황홀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모델이 런웨이 무대에 서기 전에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고 들었어요. 김원중씨도 오디션을 본 적 있나요?
“동대문 유어스에서 단체 캐스팅을 해요. 디자이너 선생님들 모셔놓고 회사마다 단체캐스팅을 하는데 약간 부끄럽지만 저는 그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요. 제가 회사를 총 세 번 바꿨었어요. 첫 번째 회사는 남자 모델만 있었어서 오디션을 충분히 볼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저희 회사의 프라이드가 ‘우리는 디자이너에게 직접 찾아가겠다’는 식이어서 오디션을 못봤어요.”
“그리고 두 번째 회사는 한달만 있었어서 쇼를 안했었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 회사인데, 저희 회사는 남자모델이 두명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두명으로는 참가를 못해요. 그래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죠. 사실 에스팀(Esteem), 디씨엠(DCM), 케이플러스(Kplus) 등 대형 회사같은 경우는 모델이 워낙 많기 때문에 모델들을 데려다가 엣지있게 워킹을 시킬 수가 있는데 저희 회사는 그게 안되요. 그렇지만 저희 회사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고, 저만이 가지고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쇼를 할 수가 있죠.”
-그럼 첫 번째 회사에 있었을 때는 디자이너를 일일이 찾아갔나요?
“신인 때는 선생님들께 일일이 인사드리러 갔었어요. 커피 한잔 마시면셔 ‘안녕하세요 신인모델 김원중입니다’ 이런식으로 인사드렸죠. 그렇게 인사드리고나면 따로 연락이 온다던가 그랬었어요. 그런데 사실 대게 디자이너 선생님의 무대는 20명이 필요한데 그중 15명이 정해져있어요. 나머지 5명을 보기위해 캐스팅에 가시는 거죠.”
-캐스팅 자리에 못 가본 것, 경험해보고 싶지 않나요?
“오디션을 못 봤던 점은 저도 되게 아쉽죠. 그래서 저도 한번쯤 해보고 싶어요.”
-이제는 패션쇼 시즌이 되면 디자이너 측에서 연락이 오나요?
“저도 연락을 드리고요,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연락을 주실 때도 있죠. 일단은 워낙 편하게 몇 번 뵙다보니까 디자이너-모델 관계가 아니라 통상적으로 많이 보는 분들이 있어서 크게 문제가 없이 진행이 되고 있어요.”
-친분이 있는 디자이너가 많으신가요?
“네, 꽤 있는 것 같아요. 서룡 선생님(김서룡 디자이너)도 있고 동준이형(강동준 디자이너)도 있고, 태용이형(고태용 디자이너) 등 다양하게 있는 것 같아요.”
■ 모델, 김원중

-올해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어떤 디자이너의 무대에 섰나요?
“김서룡 디자이너, 이주영 디자이너, 강동준 디자이너, Steve J & Yoni P, 박승건 디자이너, 홍혜진 디자이너, 이상봉 디자이너 등 총 12개의 무대에 섰어요.”
-6일간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총 12개에 무대에 서려면 하루에서 여러번 무대에 설때가 있는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었죠. 죽을뻔했어요. 특히 첫날이요. 많은 무대를 소화 하느라 특별한 콘셉트가 있었던 쇼들을 100%소화를 못 해냈던것 같아요. 약간 그게 아쉬웠어요. 잘하고 싶었는데 잘 못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무대에서 특히 그랬나요?
“동준이형 쇼가 굉장히 아쉬웠어요. 마술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100% 해내지 못했어요. 연출진과 저희 팀과 동준이형팀이랑 톱니바퀴 맞물리듯 다 맞아야 되요. 그런데 그게 완벽히 안 맞았던거에요. 저랑 (김)우빈이랑 했던 것도 사람들은 못 알아보시지만 저희 내부적으로는 약간 실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연출진들이 조명을 쏴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희가 빠지고 나서 이은결씨가 마술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서 조명이 잘못 나온 경우가 있었어요. 보는 사람들은 잘 못 느끼셨지만 저희는 아는거죠. 저희 스텝들만의 욕심이잖아요. 그런데 잘 못해서 아쉽긴 한데 쇼가 나쁘진 않았어요.”
-소화를 잘 못했다고 했는데 디자이너마다 콘셉트와 스타일이 달라서 그 스타일에 맞게 무대 위에서 연출해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피팅갈 때나 캐스팅갈 때 선생님들이 미리 말씀해주세요. ‘이번 쇼는 이런거다’ 이렇게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두고 있 다보면 크게 어려움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새 쇼같은 경우에는 백그라운드 뮤직과는 다르게 슬프거나 신나는 뮤직이어도 일반적인 워킹을 원하세요. 음악 타지않는 워킹이요. 그런 차이가 있을 뿐 스타일에 맞추는 것이 크게 어렵진 않아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디자이너 스타일이 있나요?
“제일 기분좋게 하는 쇼는 동준이형 쇼랑 태용이형 쇼죠.”
-그 두 브랜드는 정말 상반된 스타일 아닌가요?
“일단은 남성복을 가지고 꼬는 것은 맞는데 분위기가 다르긴 하죠. 하지만 두 쇼 모두 제가 해보고싶었던 쇼인데 두 번째 시즌부터 운이 좋아서 하게 됐고, 제일 친분이 있는 쇼에요. 그리고 동준이 형같은 경우는 옛날에는 밀리터리 베이스로 많이 가셨던 형인데 지금은 룩이 많이 바뀌셨어요. 포멀은 아닌 것 같고 약간 아방가르드한 수트 느낌이에요. 그게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느낌이라 되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태용이형 같은 경우는 테일러를 가지고 굉장히 타이피하고 위트있게 해석을 하잖아요. 대한민국에 그런 옷을 하는 사람이 태용이형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귀엽고 타이피하게 하는 사람은 태용이형 밖에 없어요. 그런게 웨어너블하기도 하고 재밌죠. 콘셉트도 재밌고요. 그리고 동준이형이나 태용이형 두분 다 모델에게 맡기는 식이에요. 리허설 할 때도 ‘너네 마음대로 해’ 이런식이기 때문에 재밌어요. 막 걸어도 쿨해보이잖아요.”

-강동준 디자이너가 연출력이 뛰어난 모델로 김원중씨와 김우빈씨를 꼽았어요.
“이번 컬렉션에서 오프닝이 비욘드클로젯이었기 때문에 동준이형이 저를 컨택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출력이 뛰어나서를 떠나서요. 비욘드클로젯의 메인이나 오프닝을 제가 그동안 했었기 때문에 제가 필요하시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는 현장에서 오프닝 무대에 서기 싫다고 했어요. ‘제가 이걸 왜 해야되냐고. 다른애 시키라고, 연습 할 시간없다고’ 했었죠.”
-시간이 없으셨나요?
“원래 잡혀있던 스케줄이었긴 했는데, 생각보다 마술이 너무 복잡했어요. 컨텐츠를 보니까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했어요. 시켜서 하기는 했는데 제가 연출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형이 컬렉션을 찰리채플린 콘셉트로 한 적이 있었는데 다들 희한하게 걷고 찰리채플린처럼 행동했었어요. 그때 제가 재밌게 하긴 했었죠.”
-김우빈씨한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김원중씨가 연출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하하, 우빈이가 뛰어나네요. 우빈이가 훨씬 뛰어나요. 근데 우빈이가 워낙 착해요. 겸손이 지나쳤던 것 같아요. 저보다 우빈이가 낫죠. 디그낙 안에서만 얘기하자면 원래 디그낙의 뮤즈는 제가 될 수가 없어요. 동준이형은 워낙 마초같은 애들을 좋아했어요. 현중이(우빈이)가 디그낙에서는 1등이지 저는 여기서 1등할 생각이 없어요. 다른데서 제가 더 잘나가면 좋죠. 근데 얘는 이미 배우로서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사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수가 없어요.”
-선호하는 의상 스타일이 따로 있나요?
“그런 건 대중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입고 싶은 거 입어요. 레이어드 하는 거를 좋아하긴 해요. 캐주얼해보기도 하고 약간 하이엔드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저한테 어떤 장르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걸 제가 계속 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재밌게 봐주세요. 오프 더 런웨이, 즉 스트릿에서 굉장히 많이 좋아해주세요. 근데 좋아해 주시는게 정도가 없어서, 답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 되게 ‘아사모사’하게 말하죠? 근데 이게 맞는 것 같아요. 틀린말을 할 수 없잖아요.(웃음)”
-그럼 데뷔하기 전부터 그런 스타일을 추구했나요?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죠. 항상 레벨업을 해요. 아니, 레벨업이 아니라 트랜스폼을 하는거죠. 추구하는 스타일이 바뀌면서 지금의 스타일로 온거에요. 동대문에 있었을 때는 완전히 힙합이었어요. 고등학교때는 카고바지와 데님을 따라하기도 했고요. 유행을 따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것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김원중씨는 후배 모델들에게 어떤 선배인가요?
“저는 되게 퉁명스러워요. 그렇다고 절대 무섭진 않아요.”
-혼내지는 않으세요?
“혼내지 않나고요? 저는 혼내지도 않아요. 혼내는건 군대에서 다 했는데 밖에서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왜 얼굴을 붉히면서 살려고 하겠어요. 언제 또 보겠다고. 좋게좋게 지내면 좋잖아요. 둥글게 살아아죠.”
-잘못을 하면 지적을 해야하지 않나요?
“저는 되게 방식이 나쁜 것이 아니다 싶은 친구들한테는 무관심으로 대해요. 혼내는것보다 더 무서운 게 무관심이거든요. ‘그냥 너 하고싶은대로 해라 나는 안 본다’ 이런식이죠. 근데 사실 그런 친구들 거의 없어요.”
■ 해외무대를 누비다

-동양인 최초로 프라다 모델로 섰는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원래는 해외진출에 대한 꿈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 누나(대표) 만나면서 그 꿈을 키웠고, 밀라노 에이전시를 잡고 나서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랬더니 6개월 뒤에 오라고 하더라고요. 가서 영어도 잘 못했는데 어쩌다보니 캐스팅을 당했죠.”
-왜 밀라노였나요?
“처음엔 파리를 생각했는데 제가 잘 안 먹히더라고요. 에이전시도 못 찾고 좌절하고 있다가 밀라노로 건너간거에요. 그곳에서 에이전시를 구하고 프라다, 에뜨로 등의 컬렉션 무대에 섰죠. 이게 효과가 있엇는지 한달 뒤에 뉴욕을 가니까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빅쇼는 없었지만 많은 무대에 서고 왔어요.”
-그 이전에 해외활동 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그게 처음이었는데 첫 무대가 마침 프라다였어요.”
-밀라노가 김원중씨의 어떤 매력에 매료됐을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프라다 컬렉션 할때는 문신을 좋아해줬어요. 그런데 외국인이 보기에 저는 그냥 동양인 같았나봐요. 주근깨 있는 것은 신기한데 굉장히 동양애 같다 이런거죠. 옛날에 장윤주 누나같은 아시안 뷰티가 지금은 없어진 것 같아요. 동양인이어도 예쁘고 잘생겼다 이런 인식인데 그런거에 저는 좀 벗어난 케이스인거죠. 아시안 뷰티가 많이 사라진 상황에서 제가 어쩌다 보니 프라다 컬렉션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감사하고요.”
-프라다 무대에 설 때 우여곡절이 있다고 들었어요.
“네, 거기서 짤릴 뻔 했어요.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5명 중 3명이 짤리고 2명은 다른 옷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됐는데 그 중 한명이 저였어요. 겨우 살아남은 거죠.”
-살아남은 비결은?
“주님? 기도? (웃음) 기도를 엄청 많이 했어요. 하고 싶다고. 주님께서 제게 말씀을 주셨죠.”

-김원중씨가 워킹, 표현력이 뛰어나서 무대에 설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외국은 워킹 실력을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외국모델들은 아카데미가 없기 때문에 워킹실력은 별로에요. 말이 안될정도로요. 근데 그런 친구들도 다 좋은 쇼 하고 그래요. 워킹은 진짜 상관이 없어요. 프로포션,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해외랑 서울이랑 이 점이 많이 다르죠.”
-파리에서도 컬렉션 무대에 섰었나요?
“파리는 지난시즌이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파리는 제가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곳인데 항상 잘 안되서 고민이 많아요. 다른 친구들은 캐스팅 기간 동안 40개를 다니는데 저는 열 몇 개 밖에 못 다녀요. 이유를 물어봤더니 파리는 아시아인을 안 좋아한데요. 제 생각엔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시즌동안 쇼를 3~4개 밖에 못했어요. 제가 가고 싶었던 쇼는 하나도 못 가서 정말 아쉬워요. 그래서 다음에는 어필을 제대로 해서 꼭 가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꼭 소망하는 건 안되더라고요. 차분히 기다려야할 것 같아요.”
-기대를 별로 안 거시는 건가요?
“기대는 내심 하죠. 기대는 하는데 그것을 밖으로 내비치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인지라 욕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시아 모델에 대한 대우는 어떤가요?
“옛날부터 조금씩 나오긴 했는데 제가 해외 무대에 나오고 난 뒤로 많은 아시아 모델들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제는 당연한 일부분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모델라인을 구축할 때 아시아 모델이 없어서는 안될 부분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요. 대우도 나쁘지 않고요.”
-김원중씨에게 해외 무대는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에서는 2년쯤 됐을 때 회의감을 느껴서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해외 나갔다와서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게 된거죠. 욕심도 생기고 더 큰 것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서울에 있다는 것이 작은 것이 아니라 여기와는 또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프레시(refresh)하게 되는거에요. 외국에 있어도 서울이 그리워서 서울에 와서 또 리프레시를 하고. 그런식으로 순환 되는거죠.”
-한국과 외국무대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크게 차이는 없어요. 그런데 외국 같은 경우에는 하우스브랜드들이 돈이 많기 때문에 독립적인 공간에서 독립적인 쇼를 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빨리빨리 쇼를 진행하죠. 둘다 장단점이 있어요.”
-해외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요? 국내와 많이 다른가요?
“차이점이 있어요. 외국은 유명한 프레스 바이어들만 모아놓고 쇼를 진행해요. 약간 안좋은 것은, 반대로 서울은 모델에 대한 팬덤이 너무 커요. 그래서 쇼를 할 때 패션학도면 상관없는데 일반친구들이 많이 와서 쇼를 봐요.”
“그런데 서울패션위크는 서울만의 축제가 아니라 해외프레스, 바이어들도 많이 오세요. 이들한테 민폐를 끼친다는 건 대한민국의 이미지에 손해가 될 수 있어서 안 좋을 수도 있는건데 지금 상황에서는 모델이 연예인이 아니면서 연예인처럼 되버리니까 이들에게 너무 생소한 거에요. 외국인들에게 말이에요. 그들은 ‘이게 무슨상황이지?’ 이렇게 되버리는거죠. 모델은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예쁘게 보여주는거고 주인공은 디자이너인데 그게 반대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건 아니죠 솔직히. ‘좋아하지 마세요’ 라고 말리는 것은 아닌데 약간 예의를 지킨다던가 행동을 한번만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당분간 해외활동 계획은?
“항상 가던데 가고, 가능하면 런던을 가보고 싶어요. 지난번부터 맨즈패션위크가 새롭게 생겼어요. 단 하루밖에 안하긴 하는데 가보고 싶긴 해요. 사실 런던이라는 곳은 일 뿐만아니라 여행으로도 가보고 싶어요.”
■ 오로지 한 길만…

-모델 중에서 방송 일을 병행하면서 굉장한 인기를 구가하는 분들이 많아요. 부럽진 않으세요?
“많이 알려져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안하는 거 뿐이에요. 굳이 안가도 저는 여기서 충분히 잘 할 수 있거든요.”
-공중파에서 출연제의가 오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제의가 온 적은 꽤 있어요. 근데 저는 연기자로서의 방송은 안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실 몇 개월 전에 독립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선을 위한 영화였고, 그래서 찍었었어요. 그리고 방송패널을 한적도 있었는데, 이것은 그저 패셔너블한 모델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한거에요. 방송인이 아니라 패셔너블한 모델이고 싶고 그런 모델이다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던거죠. 앞으로도 방송에는 생각이 없어요.”
-언제까지나 모델로 남을 순 없잖아요.
“박수칠 때 떠나야죠. (짝) 저는 그거 때문에 온라인숍도 운영하고 있고, 그것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럼 김원중씨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부자에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것은 패션디자인이고 모델이니까 이걸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모델로서 수명이 끝나고 나면 패션 디자이너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패션계에 종사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활동 펼치실 계획이신가요?
“꾸준한 활동이요. 잊혀지는 모델들이 많아요. 모델 휘황(윤휘황)형있잖아요, 그런 식이었으면 좋겠어요. 한마디로 모델 아카이브에서 한 주석이 되고 싶은 거에요. 모델로서 ‘이런 사람이 있었다’라고 기억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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