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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방순 칼럼] 트럼프의 강대국 간 거래 외교, 일본과 협력 증대로 대응해야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국제정세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한 미국 우선주의와 강대국 간 거래 외교가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서 당사국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동맹국 NATO를 소외시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동북아에서 ▲북한의 비핵화 원칙 ▲한·미·일 안보협력 ▲중국 억제(남중국해의 현상 변경 반대, 대만해협 안정) 등의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유럽과 동북아에 대한 대외정책은 접근 방법이 다를 뿐이지 미국 국가이익 극대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미국의 일관된 목표는 중국의 도전을 억제하면서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익을 증대해 미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가 핵심 문제다. 필자는 우리와 입장이 비슷하고 안보 이해를 공유하는 일본과 협력 증대가 하나의 대응책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 러시아와 러-우 전쟁 종전 협상 시작하며 우크라와 NATO 패싱 미국의 국무장관 루비오와 백악관 안보보좌관 왈츠, 중동특사 윗코프는 2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 외무장관 라브로프, 외교보좌관 우샤코프와 미-러 장관급 회담을 했다. 미국은 회담 후에 러시아와 “러-우 전쟁 종전 협상 개시를 합의했고,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의견 교환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 NATO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조차 참석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와 NATO는 미국이 러시아의 종전 방안을 수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서방언론도 4시간 반 동안 진행된 회담에서 미국-러시아 간 모종의 거래가 논의됐을 것이라며 러-우 전쟁 종결과 제재 해제를 대가로 다음 세 가지를 얻으려 한다고 분석한다. 첫째, 미-러 결속으로 중국 억제, 둘째, 러시아와 교역 및 투자확대로 경제적 실익 증대, 셋째,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6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지원 없이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NATO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며 전쟁을 종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긴다. 트럼프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종전을 압박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러 협상의 종속변수로 전락하고 NATO는 패싱 당하고 있다. ■ 미국, 동북아에선 기존의 안보정책 지속 입장 밝히며 친대만 행보 이어가 미국은 유럽과 달리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는 기존의 안보정책을 지속하려는 입장이다. 미국의 루비오 국무장관은 2월 15일 뮌헨에서 개최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으며, 대북 공조, 확장억제 등 안보 분야와 조선 및 원자력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자는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이어 개최된 한·미·일 3국 외교부 장관 회담에서는 3국 안보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재확인했으며, 남중국해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일본은 2월 7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의 힘과 강압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하다”라고 명기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만난 최초의 G-7 국가의 수반이며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에 이은 두 번째 정상회담이었다. 미-일 관계의 돈독함을 알 수 있는 상징이다 미국은 기존의 동북아 대외정책을 지속하는 가운데 친대만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 국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대만과의 관계에 관한 팩트 시트’라는 문건에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양안(중국과 대만) 중 어느 쪽이든 현 상황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미 공화당 하원의원 24명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고 대만과 외교 관계 수립’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도 낮지만, 미국 정가의 중국견제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국제기구에서 대만의 의미 있는 참여를 지지한다”라는 문구를 반영했고 한·미·일 외교부 장관 회담 공동성명에서도 ‘대만의 적절한 국제기구 참여지지’를 표명했다. ■ 트럼프, 유럽에서 보듯 조건 충족되면 언제든지 중국 및 북한과 거래할 듯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는 중국의 도전 억제이다. 현재는 트럼프가 이러한 정책목표를 위해서 우리 입장의 고려 없이 중국 또는 북한과 일방적으로 협상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 이유로 첫째, 동맹국 한국과 일본의 이탈 우려 때문이다. 유럽과 달리 한국과 일본은 중국과 근접해 있어 중국의 영향력이 바로 확대될 수 있다, 그 경우 한국과 일본이 흔들릴 수 있어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는 불가피하다. 둘째, 중국과 거래할 품목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요구하는 대만과 남중국해의 중국화를 수용할 수 없다. 더욱이 태평양을 반으로 나누자는 중국의 제안은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또한,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현상 유지도 중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은 통상 분야에서와 달리 안보 분야에서는 주고받고 할 수 있는 거래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 보듯이 트럼프 정부는 조건이 충족되면 언제든지 중국 및 북한과 거래할 것이다. 그 조건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중국의 도전을 억제할 수 있는 범위일 것이다. 우리는 한미동맹 75주년이라는 시각으로 미국 트럼프 정부를 보아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강대국 거래의 관점에서 우리를 ‘money machine’으로 보고 있다. (미국-북한 거래에 대한 필자 칼럼 참조 : 트럼프와 김정은이 향후 관계개선을 통해 얻으려는 것들, 2024.11.8) ■ 안보 이해 공유하는 일본 주목하면서 미국에 내밀 중국 카드 준비해야 트럼프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우리는 서로 입장이 비슷하고 안보 이해를 공유하는 일본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도 미국과 동맹 관계이고 미군이 주둔해 방위비 분담금도 낸다. 북한 핵 위협을 받으며,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부심한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주요 교역 국가이며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과 조선 등 핵심 제조업의 협력 관계이며, 관세 부과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일본은 미국의 안보 공약을 재확인했고, 경제 분야도 협력하기로 합의했는데, 이 흐름이 한·미·일 협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가 일본과 다른 점은 중국과 관계이다.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 영토분쟁이 있고,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 미일동맹 유사’라는 입장이나 우리는 그 정도로 중국과 적대적이지는 않다. 우리가 한·미·일 협력에 참여하지만,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나름대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중국과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는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대미 카드임에는 분명하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미·중 패권경쟁 승자와 손잡아라’, ‘한국과 중국, 대등하다’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5-02-25
  • [정요안 칼럼] 군사정보 입문(3) 셔먼이 공개한 미국의 정보 능력, 정보 자주화 필요성 일깨워
    777 사령관과 국군정보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한 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이 군내 다양한 정보기관과 정보업무를 쉽게 풀어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 12.3 내란사태 당시 MBC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과 인터뷰한 브레드 셔먼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계엄령은 한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국가안보를 위한 미국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했다. 이후 진행자가 셔먼 의원에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이번 비상계엄 선포 1주일 전에 남북 간 국지전을 유도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지만, 합참의장이 이를 거부했다고 하는데 한국군 당국의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나”라고 질문하자 셔먼 의원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 미 정보당국의 한국에 대한 도·감청 역사 오래됐으며 역량도 뛰어나 “이건 분명히 조사해 볼 일이다. (중략) 미국 역시 미국만의 정보수집 능력이 있다. 그리고 만약 한국군이 남한 내 어느 장소를 공격해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미국은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이를 공개해 당시 북한이 그런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국과 미국 국민에게 알렸을 것이다.” 미국의 정보력을 강조하면서 시작된 인터뷰에서 셔먼 의원은 대한민국 영토에서 한국군에 의해 북한국 소행으로 둔갑한 폭력사태가 벌어진다면 미국은 해당 사건이 북한군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이를 한미 양국 국민에게 공개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런 출처의 정보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중요통신을 도청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1993년 비밀 해제된 ’마법의 가로채기(Magic Intercept)’라고 불리는 미국 정부의 문서에는 당시 미국 첩보원들이 적국과 우방국을 가리지 않고 중요 전신을 가로챘음을 보여준다. 6.25 전쟁에서도 감청이 이뤄졌다. 1950년 6월 16일 평양주재 소련 대사 스티코프는 북한군의 남침 일자와 남침 방법에 관해 모스크바와 전문을 주고받았고, 이 같은 사실을 미국이 감청했다. 예비역 공군 대장인 김두만 장군의 평전 ‘항공징비록’을 보면 당시 한국공군 정보 부서의 정보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6.25 전쟁 발발 일자와 시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6월 16일 스티코프가 모스크바와 주고받은 전문 감청을 통해서였으리라. 미국은 6.25 전쟁 발발 상황과 관련해 오랫동안 공산 측의 진행 상황을 어항 속의 금붕어를 쳐다보는 것처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같은 정보에 근거해 일사천리로 6.25 전쟁 발발에 대비한 것이다. 이런 능력은 미국 정보기관의 뛰어난 도·감청 역량에 근거한다. ■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 정보기관 중 INSCOM 예하 501정보여단 주목돼 미국은 18개의 정보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CIA, FBI, NSA, NGA, NRO, DIA 등 6개의 국가급 정보조직과 INSCOM(육군), ONI(해군), 25AF(공군), MCIA(해병대), CGI(해안경비), 우주군 등 6개의 군 정보조직 그리고 5개의 행정부 정보조직인 마약청(DEA), 국토안보부(I&A), 국무부(INR), 재무부(TFI), 에너지부(OICI))에 이들을 통합하는 국가정보국(ODNI)이 그것이다. 이들 중 한반도에 전개해 정보수집을 하는 기관은 CIA의 한국지부, NSA의 SUSLAK(신호정보)이 있고, 미 육군소속의 정보보안사령부(INSCOM) 예하의 501정보여단(신호정보)과 미7공군 예하의 감시정찰전대(신호·영상정보)가 있다. 이들 가운데 신호정보(전자감청·도청)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관은 501정보여단으로 정식명칭은 ‘501st Military Intelligence Brigade’이다. 501정보여단은 신호정보만이 아니라 인간정보, 영상정보, 공개정보 등까지 망라하며 CIA의 안전한 활동공간으로 이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편성을 하고 있다. 이들이 생산하는 정보들은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G2), CIA 한국지부, SUSLAK과도 공유된다. 501정보여단은 6.25 전쟁 이후 한반도 전구에서 주한미군의 정보작전을 총괄해온 전통 있는 부대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 뒤인 1950년 10월 한반도 전역에 전개한 육군 보안국(ASA)을 통제하기 위해 제 501통신정찰단을 창설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1978년 보안국이 정보보안사령부(INSCOM)로 대체돼 지금의 501군사정보여단에 이르고 있다. 501정보여단은 5개 대대로 편성된다. 3정보대대(RC-12(신호감청), RC-7(통신영상정보)), 532정보대대(징후경보 정보수집 분석, 지리정보, 방첩, 징후계측정보, 사이버 작전 등), 719정보대대(전략 및 전술정보), 524정보대대(인간정보, 대정보 및 방첩), 368정보대대(전시증원대대) 등인데, 우리나라의 정보사령부와 777부대, 방첩사령부, 사이버작전사령부를 합쳐놓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이다. 3정보대대는 정보수집 항공기인 RC-12와 RC-7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항공기들은 신호 감청 및 전자통신정보와 영상정보를 수집하며,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해 전장 상황을 가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첩보처리 및 분석작업을 거쳐 ‘적에 대한 표적 정보’로 제공된다. 532정보대대는 징후경보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담당한다. 예하에는 신호정보, 화생방, 지리정보(GEOINT), 징후계측정보(MASINT), 사이버 작전 등을 담당하는 소대급 기능부대들이 편성돼있다. 북한군의 도발 및 전쟁준비 징후에 대한 첩보수집을 지시하고 수집해 전투부대가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한미연합훈련 시 연합사를 지원한다. 524정보대대는 한국 내 방첩과 인간정보(HUMINT)를 담당한다. 휴민트는 흔히 스파이, 정보요원, 내부 협조자 등 주로 사람을 통해 상대편의 정보를 캐내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한국 측 정보사령부 공작 요원들과도 협업하며 필요한 정보를 공유한다. 북한 주민의 대량 탈북 등 북한 급변사태나 전시를 대비하며 국내외 탈북자나 북한 전문가들을 접촉해 북한 관련 정보를 축적하기도 한다. ■ 미국, 한국을 핵심 정보수집 대상에 포함해 엿들을 수 있는 것 모두 들어 지난 2013년 11월 4일자 뉴욕타임스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에서도 정보수집 활동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폭로한 내용인데, NSA가 지난 2007년에 우리나라를 핵심 정보수집 대상 국가에 포함했다는 것이다. 공개된 문서를 보면 NSA는 정보수집 대상국을 미국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초점지역(Focus Area)’과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인정된 위험(Accepted Risk)지역’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외교정책과 정보기관 활동, 미군 주둔지역, 전략기술 등 4개 부문에서 미국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초점지역으로 분류됐다. NSA는 영국과 호주, 한국, 일본 등에 있는 미군 기지와 공관에 SUSLA(Special US Liaison Advisor)를 설치하고 정보수집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 설치된 지부는 ‘서슬락(SUSLA-Korea)’이라고 부른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엿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듣는다’는 원칙하에 정보를 수집해온 NSA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2008년 8월 해외 정보활동에 대한 감청에 대해서도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이 법안은 여러 사전징후를 포착하고도 정보기관 간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못해 9.11 테러를 막을 수 없었다는 반성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정보공동체 간의 상위기구를 만들고 칸막이 된 정보기관 사이의 정보 교류와 협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렇듯 정보기관 간의 협조와 통합이 강조되면서 법원도 그런 흐름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 미국이 감시하는 세상에서 피·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정보수집 이뤄져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NSA에서 가져온 수천 개의 극비파일 중에는 비밀지도도 있었다. 한눈에 보는 스톰브루(STOTMBREW) 7개 접속지점 즉, 해외 초크포인트가 표시돼있다. 이 지도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NSA가 시행한 여러 감시 프로그램 중 하나로, 미국을 거쳐 가는 해외 케이블 트래픽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수십억 회 오가는 클릭, 이메일, 통화를 선별해 유용한 전략 정보를 얻는 임무를 수행한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Microsoft, Google, Facebook, Youtube, Yahoo 등)의 중앙서버에 PRISM이라는 프로그램을 심은 후 감시대상이 되는 사용자들의 인터넷 통신기록, 이메일, 메신저, 통화기록들을 수집하고 분석해서 프리즘 프로그램이라고 부른다. 미 정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50여 건이 넘는 잠재적 테러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일반인도 언제든 도청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클라우드(Cloud)는 말 그대로 구름을 의미하나 그 실체는 미국 애쉬번 등지에 위치하고 에어컨이 돌아가는 건물에 빽빽이 들어선 고밀도 서버랙을 뜻한다. 미국 정부는 프리즘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에게 특정 인물이나 주제에 대한 유용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앞서 셔먼 의원이 인터뷰에서 ‘한국군의 남한 공격(자작극)’을 언급한 것과 그것을 ‘미국 정부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 것은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정보로 평가할 수 있다. 출처는 밝히지 않았지만, 관련 대상자들을 주요 감시대상으로 선정 시 원격도청 및 인터넷 도청 등을 통해 수집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피·아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정보수집 상황과 의도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 국가이익 제대로 정의하고 미국 의존 벗어난 정보 자주화 역량 필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국가이익이라고 하는 타산과 거래만이 존재하는 비정의 세계에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제대로 정의하고 미국이나 주변국들의 국가이익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주권국이고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이다. 연합사의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라는 구호는 한미연합군의 피로 맺은 우정을 기리고 표현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동맹의 가치는 상호존중 속에서 지켜질 수 있다. 아직도 대다수 한국인은 미국을 수호천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조금이라도 불편할 것으로 생각하는 내용을 들으면 미국 이상으로 불편해하기도 한다. 한미간의 역사적으로 이어온 ‘정보 불균형’이 만들어낸 폐해일 수도 있는데, 이제는 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정보 자주화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 정요안 프로필 ▶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준장), 前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 前 777사령관 직무대리, 前 육군본부 정보처장, 前 국군정보사 참모장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5-02-06
  • [정요안 칼럼] 군사정보 입문(2) 정보사 소속 블랙요원, 국가와 국민이 보호해야 하는 소중한 전략자산
    777 사령관과 국군정보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한 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이 군내 다양한 정보기관과 정보업무를 쉽게 풀어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지난해 8월 8일 국군방첩사령부가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블랙요원’들의 신분 등 군사기밀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군무원에게 ‘간첩혐의’를 적용해 군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구속·송치했다. 군 출신으로 전역 후 정보사 해외공작 부서에서 일하던 그는 중국 정보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포섭돼 자료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사는 해외에 파견된 현직 요원들의 신분이 노출됐을 수 있다는 판단에 상당수 요원을 급히 귀국시키고 대외 활동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수년간 공을 들인 정보원과 협조자들을 포함한 공작망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작전 담당해 노출되거나 잡혀서는 안 돼 블랙요원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간첩, 즉 우리가 흔히 아는 공작관, 공작원, 첩보요원, 비밀요원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신분이다. 외교적으로나 국제법상 마찰이 예상돼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비밀작전인 흑색 작전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원이나 정보사 공작여단 소속의 공작원(Agent)과 공작관(Agent Handler)을 말한다. 이들은 몰래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기밀을 빼내고 첩보를 수집하는 요원들부터 극히 위험한 일을 수행하는 요원들도 있다. 불법이기 때문에 절대 들키지 않게끔 몰래 활동하는 것인데, 블랙요원을 잡아낸 측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실토하게 하며 처벌도 엄중하다. 블랙요원 중 본인이 직접 임무를 수행하면 공작원이고, 제3자를 조종 매수해 임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자국에서 파견된 공작원들을 지원하고 지휘하면 공작관에 해당한다. 다수의 블랙요원들은 공작관과 공작원의 경계를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들은 본인의 신분을 감추어야 하므로 점조직처럼 운용되며, 사령부에 근무하는 간부들도 이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 만약 블랙요원이 타국에서 공작활동 중 체포될 경우, 보낸 국가는 공식적으로 당연히 보내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따라서 임무 수행 중 붙잡히면 본국의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으며 처벌도 온전히 상대국 재량에 달려있다. 따라서 이들은 철저하게 신분을 위장하는데 초점을 기울인다. 어떠한 경우도 노출되거나 잡혀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특별한 능력자 선발하고 다양한 교육과 훈련 거친 후 공작 임무 부여 블랙요원은 군 출신으로 특수부대 경험자이거나 정보 병과의 위관급 장교 중에서 선발하며 언어 능력 등을 고려한다. 지원자에 대해서는 사전 철저한 신원조사와 국가기밀을 다룰 수 있는 보안 자격, 신뢰성 등을 평가한다. 체력은 특수부대 수준의 체력을 요구하고, 심리적으로도 강인해야 하며, 실제 공작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작전능력들을 평가한다. 선발된 요원들은 여러 단계의 교육과 훈련을 거치며, 정보수집과 분석기술, 심리파악 및 대화기술, 공작기술, 위장 및 생존기술, 무기 취급 및 전투기술 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소정의 기간 HID의 팀장 역할을 경험한다. 이 기간이 끝나면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공작대로 보직돼 공작원 혹은 공작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블랙요원의 임무는 해외와 국내로 나뉘는데, 해외의 경우 활동대상은 북한 등 적대국 및 제3국이고, 우방국 정보기관과는 연합 작전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한다. 국내는 전략적 차원의 정보작전 및 심리전 활동에 집중하되 위기 및 특수상황 대응 공작도 수행하며 필요할 경우 민간 정보망과도 협력한다. 이들의 활동은 정보수집, 대북공작, 심리전 등으로 구분되며 여건공작과 특수공작이라는 방식으로 수행한다. 정보수집은 해외 공작망 구축 및 운영을 통해 이루어지며 해외 군사, 정치, 경제, 외교 관계 및 국제정세 등을 대상으로 한다. 대북공작은 북한 내부 동향 파악 및 정보수집 활동으로 북한 관련 인사와의 접촉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북한체제의 혼란을 유발하는 활동을 한다. 심리전은 대상 국가의 심리적 혼란을 유도하기 위한 작전 수행으로 정보 왜곡, 루머 확산 등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 다양한 방법으로 협조자 포섭해 전 세계 대상으로 공작망 구성 공작망 구성이란 자신에게 협조할 만한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포섭하는 것을 말한다. 포섭대상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과 흑색 작전을 도와줄 현지 협력자,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으나 장기적으로 활용 가능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공작망 구성은 단순히 적국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포섭에 쓰이는 방법은 대상에 따라 다양하다. 자발적 협조자는 이념, 종교, 국적, 인종 등의 영향으로 내면에서 우러나온 신념에 기반한 협조자로 공작관 입장에선 가장 좋은 대상이다. 이 경우 이들로부터 신뢰를 받을만한 공작관의 높은 도덕성과 자질이 요구된다. 조건부 협조자는 돈이나 망명, 새로운 삶 등 원하는 것이 있는 경우로 그것을 제공하고 거래한다. 비협조자임에도 포섭을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방법들이 사용된다. 일반에 알려진 대북공작 활동으로는 ‘공작’이란 영화의 소재가 됐던 흑금성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1990년대 말 대한민국의 대북공작 활동과 관련된 논란으로, 박채서(암호명 흑금성)의 대북공작이 한국 내에서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이 되면서 그의 신분이 공개됐고, 공작은 실패하게 된 사례이다. ■ 흑금성 사건, 정치적 목적에 오용되며 대북공작의 민낯 보인 실패 사례 박채서는 1977년 소위 임관 후 1990년 정보사에 들어와 공작계획분석장교, 1991년 한미합동공작대 공작관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군 내에 침투한 북한 고정간첩들의 눈을 속일 목적으로 일부러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군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으며 1993년 4월 진급에 실패하고 소령으로 예편당했다. 이런 사정은 예상대로 북한 고정간첩에 포착됐고, 북한은 박채서를 정보기관의 배신자라고 파악하게 됐다. 장교 시절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1994년 북한 보위부의 영향력 아래 사업을 하던 조총련의 시바다 아리요시(서재호)에게 접근했다. 이 공작이 ‘여건조성’ 단계에 진입하자 안기부는 박채서를 4급 공무원으로 정식 채용하고 비밀 방북을 승인했다. 이후 대북 광고사업을 기획하던 민간인 친구를 포섭하기 위해 그의 옆집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했고 자녀도 같은 유치원에 보내 친구를 만들었으며, 아내들끼리도 친해졌다. 박채서는 기업인의 신분으로 북한의 고위층과 접촉하며 경제협력 사업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체제정보와 군사적 동향을 탐지해 보고했다. 1997년 박채서는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관련된 특정 메시지가 오갔다고 주장했다. 이는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도록 북한이 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는 의혹으로 연결됐다. 박채서는 기밀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이후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국 정보기관의 대북공작이 얼마나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인지를 보여준 사례이며, 단순히 정보 공작의 실패를 넘어 정보기관의 활동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오용될 가능성을 경고하는 사건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서의 투명성과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다. ■ 블랙요원, 공작에 성공해도 사실 드러낼 수 없고 실패하면 홀로 싸워야 공작원 개인의 관점을 보면, 우회 공작을 위해 자신의 직업적 실패와 신용불량자라는 사회생활의 치명적인 평판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가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공작에 성공하더라도 그 사실을 드러낼 수가 없으며, 실패했을 때는 홀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지난 12.3 내란사태 시, 정보사 소속의 HID 및 블랙요원들이 깊숙이 가담했다는 기사들이 연이어 보도됐다. 그리고 12월 23일에는 이광희(청주 서원구) 의원을 통해 정보사령부 소속 HID 블랙요원들이 복귀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2월 3일에 출동해 2주 넘는 기간 동안 권총과 C4 폭탄을 휴대하고 대기 중이라면서 블랙요원들의 예상 임무 등이 방송됐다. 이들은 지난해 6월의 블랙요원 신상 유출과 12.3 내란사태에 연루된 HID 및 블랙요원에 관한 보도들로 인해 제대로 된 임무 수행이 어렵게 됐으며, 향후 정상적인 공작망을 유지하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공작망을 유지하고 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의 보이지 않는 암묵적 성원과 국가적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12.3 내란사태 같은 것에 동원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최정예 요원이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전략자산이다. 이들이 노출되는 것은 곧 임무 실패와 생명의 위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현재와 미래에 ‘무명(無名)’으로 남도록 국민과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 정요안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준장), 前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 前 777사령관 직무대리, 前 육군본부 정보처장, 前 국군정보사 참모장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5-01-21
  • [정요안 칼럼] 군사정보 입문(1) 정보사령부 소속 HID, 국가를 위해 목숨 거는 부대
    777 사령관과 국군정보사령부 참모장을 역임한 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이 군내 다양한 정보기관과 정보업무를 쉽게 풀어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북파공작원으로 알려진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소속인 HID가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북파공작원이란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휴전 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돼 활동한 무장첩보원이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 있던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할 목적으로 양성됐다. 적 생포 및 사살, 적군 진지 주요시설물 파괴,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 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이 주요 임무였다. 이들은 조선인민군 복장을 위장 착용하고 보급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했고 미숫가루, 생식, 칡뿌리, 소나무 껍질을 주식으로 했다. 임무 수행 중 부상당하면 자결이나 자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작전에 투입돼 살아 돌아 온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북파공작원 보상을 위해 정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951년 HID가 창설된 뒤 94년까지 양성된 북파공작원은 1만3000명이며, 임무 수행 중 7987명이 사망·실종됐다. ■ HID, 정보사에서 특수작전 임무 수행하는 육상특임대 ‘설악개발단’ 지칭 HID는 북파공작원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과거 북파 작전을 수행했던 부대는 여럿 존재했다. HID의 전신은 1948년 1월 미 군정청 국방총사령부 정보과다. 이후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정보국 안에 첩보수집을 담당하는 공작과가 신설됐는데, 이 부서가 영문자 HID로 표기됐다. 육군첩보부대가 이 같은 명칭을 사용한 기간은 1950년 7월부터 1961년 7월까지이다. 이후는 HID라는 명칭이 육군정보부대(AIU: Army Intelligence Unit)로 변경됐다. 그러다가 1968년 1.21사태 이후 응징보복부대로 설악개발단을 비롯한 특수부대들이 여럿 창설됐는데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등 화해 분위기를 타고 폐쇄와 통폐합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설악개발단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 1972년 AIU가 육군정보사령부(AIC: Army Intelligence Command)로 확대됐고, 1990년 11월 육군과 해군 등의 정보부대가 합쳐져 오늘날의 국군정보사령부(DIC: Defence Intelligence Command)가 만들어졌다. HID는 현재 정보사령부 산하에서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육상특임대인 설악개발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 50년 대 첩보전, 육군 정보국·방첩대와 미군의 켈로·동키 부대 등이 주축 대북공작대의 뿌리는 한국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10월 편성된 국방부 제4국은 대북공작과 한국군 내부로 침투한 북한 간첩을 잡던 곳이다. 그러나 국방부 4국은 1949년 미군이 철수하면서 미국 측의 요구로 해체됐다. 그리고 생겨난 것이 육군본부 정보국이며 48년 10월 터져 나온 여순반란 사건에 관여한 군내 좌익분자를 척결하면서 위상을 굳혔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의 첩보 및 방첩 조직은 일시적으로 무너졌다. 이 시기 북한을 상대로 첩보공작을 벌인 것은 미 극동군 산하 한국인 첩보부대 KLO 2710이었다. 1949년 미군은 한국에서 철수하며 한국(Korea)에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를 두었는데 이것이 KLO다. KLO는 북한의 정보를 구하기 위해 이북에서 내려 온 한국인 청년들을 고용해 대북 첩보원으로 활용했는데 이들을 가리켜 속칭 ‘켈로(KLO) 부대’라고 했다. 한국군이 정보부대를 재건한 것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북진할 때인 1950년 10월 21일로, 이날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인 육군 방첩대가 창설됐다. 1951년 1·4후퇴로 다시 밀리면서 일단의 한국군 패잔병이 황해도 구월산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구월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백령도에 포진한 미군(당시는 KLO부대가 주둔)의 지원을 받으며 유격전을 펼쳤다. 구월산 유격대로 불린 이들은 1953년 정전을 앞두고 백령도로 철수했는데 미군은 이들을 모아 ‘동키(donkey·당나귀) 부대’를 창설했다. 인천을 거쳐 서울에 들어온 동키 부대는 곧 북한에 들어가는 첩보부대의 중추세력이 되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이북에는 한국에서 투입한 고정간첩이 있었고 해상과 육상으로 침투해 첩보수집 및 타격 임무를 수행했다. ■ 1.21사태 계기로 선갑도, 장봉도, 684, 마니산 까치 등 4개 부대 창설 1968년 1.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124군부대)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는데, 청와대로부터 300m 떨어져 있는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침투한 31명 중 사살 29명, 미확인 1명, 투항 1명(김신조 소위)의 전과를 올렸으며, 이때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비군과 5분대기조, 그리고 육군 3사관학교가 창설됐다. 을지 연습과 유격훈련이 이 사건을 계기로 생겨났고, 육군 방첩대가 국군보안사령부로 개칭하고 조직을 개편했다. 이 사건의 보복을 위해 창설된 4개 부대가 바로 선갑도부대(육군), 장봉도부대(해군), 684부대(공군, 실미도) 마니산 까치부대(해병대)였다. 첩보조직들도 김신조 일당의 침투 이후 이에 대응하고자 보강했다. 이때부터 특수공작부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전략목표·전술목표·훈련계획 등을 정하고 조직도 개편했는데, 설악개발단 창설기획자인 이춘국 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선갑도부대가 803대로 변경됐고, HID 기능을 이어받은 설악개발단이 909대로 확대 편성됐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 간 첩보 전쟁이 일시 중단 됐다가 재개됐다. 이 시기 첩보전에 참여한 남북의 공작원들은 상상을 불허하는 힘과 기지로 난관을 돌파했다. 북한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공작원의 희생이 있었다. 이들은 비밀스러운 공작의 세계만큼이나 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0년 하반기부터 북파공작원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말로만 듣던 북파공작원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 HID 요원,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란 가치 믿기에 목숨 걸고 임무 수행 얼마 전 MBC PD 수첩에서 ‘전직 HID 요원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었다. HID가 어떤 부대이며 계엄 동원 및 임무 지시에 대한 수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자기 군번도 모르고 그냥 훈련만 받다가 나중에 기간이 끝나면 (급여)통장 받고서 집에 가는 시스템 입니다. 계엄 동원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거기(HID) 인원들은 사회와 아예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 이잖아요, 뉴스나 신문을 볼 수도 없습니다.” 만약 국내 정치인 사살 명령이 있었다면 실행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그냥 저 사람 죽이라면 안 죽이겠죠. 그런데 ‘저 사람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어떤 간첩 활동을 하고 있어’라고 잘 포장을 해놨으면 죽였을 수도 있겠죠. 북파공작원들은 그런 거에 조금의 머뭇거림이 없거든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선택(명령)을 내린 분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HID 부대원들의 역사와 훈련과정을 보면 참으로 혹독하고 견디기 힘든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내가 죽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가치와 명예를 믿기 때문이다. ‘강철부대3’에서 압도적인 기량과 팀워크를 선보이며 우승한 HID 출신 강민호 팀장은 ‘진짜 영광은 현역 분들께’라며 겸손과 성원해준 국민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HID는 존재 그 자체로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 전력으로서 의미가 있는 부대이다. 국가의 고급자산인 HID가 12.3 내란 사태로 반란과 테러에 동원되는 부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HID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가치 있고 명예로운 일에 쓰일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정요안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준장), 前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 前 777사령관 직무대리, 前 육군본부 정보처장, 前 국군정보사 참모장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5-01-14
  • [김희철의 위기관리] 1월의 6‧25남침전쟁영웅, 연천군 두매리 고지 전투의 특공조장 ‘안병섭 육군 이등상사’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경기도 연천군 두매리 고지 전투에서 특공조를 이끌고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해 고지 점령에 기여한 안병섭 대한민국 육군 이등상사(전투당시 일등중사)를 ‘2025년 1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4년 2월6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서 출생한 안병섭 이등상사는 1949년 10월18일 자원입대했다. 이후 국군 제1사단에 배치돼 38도선에서 경계 임무 중 6‧25남침전쟁이 발발했다. 1951년 10월29일 국군 제1사단 12연대장은 임진강에서 중공군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고 두매리 고지 일대의 방어를 위해 2대대 5중대를 배치했다. 두매리 고지는 임진강 북안 대덕산 동쪽에 있는 해발 140미터의 요지로, 적의 활동을 감시하기에 적합하고 향후 공세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지형이었다. 12월28일 오후 4시 중공군 제188사단 523연대는 박격포 지원 아래 두매리 고지에 기습공격을 감행, 3일에 걸쳐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아군은 적의 압도적인 파상공세에 12월30일 고지를 넘겨주고 물러나야 했다. 제1사단 12연대는 다음 해 1월3일, 고지 탈환을 위해 반격에 나섰으나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했다. 사단장 박임항 준장은 예비대로 대기 중이던 제15연대에 탈환 임무를 부여했다. 제15연대 9중대 2소대 선임하사관으로 공격부대의 선두에 선 안병섭 이등상사는 4명의 특공조를 편성해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던져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활약으로 15연대는 기세를 몰아 공격에 나섰고, 두매리 고지에 이어 122고지, 148고지를 연이어 탈환할 수 있었다. 안병섭 이등상사는 이후에도 임진강 방어전과 지리산 지구 무장공비 토벌 작전, 연천군 왕징면 일대 전투에 투입돼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1952년 11월28일 야간 수색 작전 중 적의 기습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했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5-01-03
    • [정요안 칼럼] 계엄군 장병과 가족이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관심 필요하다
      [뉴스투데이=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2.3 비상계엄 사태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물론 자녀들까지 반란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했던 1공수여단 여단장(이상현 준장)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부하의 자녀가 최근 겪은 상황을 예로 들면서 눈물을 흘리며 참담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는 “제 부하가 가족을 데리고 외식하러 갔다가 주민들이 ‘반란군 자식들아 꺼져라’라며 욕을 해 식사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면서 “특전사는 ‘절대복종 절대충성’의 마음으로 등에 화약을 메고 국가가 부여한 임무에 과감히 뛰어들어가 순직을 하는 그런 집단인데, 이들에게 반란군의 오명은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명령에 따라 계엄사태의 일선에 배치됐던 장병들이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방에 있는 군단급 부대들도 다 가담된 것으로 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병력이 출동한 부대로 국한하는 노력을 국방부가 해달라고 했다. 유용원 국민의 힘 의원 또한 특전사 장병을 비롯해 다수의 장병은 피해자라며 트라우마에 당분간 시달릴 가능성이 많다고 언급했다. 부당한 명령을 ’절대복종 절대충성‘이라는 생각으로 이행해 자신이 지켜야 할 국가를 해롭게 하고 보호해야 할 국민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것에 가담한 장병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앞서 사례에서 보았듯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알프레드 드 비니(1797~1863, 프랑스)는 ‘군인의 굴종과 영광’이라는 책에서 ‘붉은 봉랍’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1815년 3월 나폴레옹 군대에 쫓기는 루이 18세의 군대를 뒤따라가던 한 늙은 병사의 얘기다. 그는 행군할 때도 싸움터에 나갈 때도 계속 한 대의 포장마차를 끌고 다녔는데, 그 마차 안에는 한 미친 여인이 타고 있었다. 여인은 그가 선장이었을 때 카이엔느로 유배 가도록 명령받은 한 젊은 유형수(유형살이를 하는 죄인)의 아내 ‘로레트’였다. 그 유형수는 정부를 풍자하는 노래를 지었다는 혐의로 체포돼 17세의 어린 아내를 데리고 카이엔느로 유배를 떠났고, 이송을 맡은 선장은 유배지에 도착해 붉은 봉랍으로 봉인된 정부의 편지를 뜯었다. 그런데 편지에는 유형수를 총살형에 처하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선장은 정부의 명령을 위반할 수 없어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에 유형수를 바다 한가운데 데리고 나가 총살했고, 이를 숨어서 지켜보던 젊은 아내는 정신이상을 일으켰다. 정부의 명령으로 유형수의 총살형을 집행한 선장도 정신적 충격을 받아 결국 배를 버리고 보병이 되었다. 그리고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정신이상이 된 유형수의 젊은 아내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리라고 굳게 결심했고, 그 결심을 열여덟 해나 지켜온 것이었다. 늙은 병사의 신상 이야기를 들은 근위 사관은 “당신은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라며 그의 손을 힘껏 쥐었다. 늙은 병사는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이것이 나의 의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나는 무척 오래전부터 나라고 하는 것을 매장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붉은 봉랍에 담긴 정부의 명령이 부당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없었던 노병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평생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이 노병처럼 군인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명예로움으로 일상의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한 군인들이 반란군이 되었을 때의 참담함과 굴종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시위장 근처 ‘남대문 커피’에 ‘아침이슬로 만난 어느 계엄군 딸의 고백문’이란 글과 함께 커피 1000잔을 선결제한 분이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에 있는 한 미술 갤러리에서 ‘그리다’라는 이름으로 큐레이터를 하고 있는데, 5.18 계엄군 당시 여군 정보병이었던 어머니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평생 지켜보면서 자란 딸이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엄마는 광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곳에 모인 빨갱이를 척결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엄마가 그 도시에서 본 것은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다. 정보병이었던 엄마는 거리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함성과 총성, 찢어질 듯한 비명과 통곡, 매캐하고 기분 나쁜 연기, 그리고 끌려오는 무고한 사람들의 부서진 몸과 당황한 얼굴들, 그 모든 것이 지옥처럼 엄마를 짓눌렀다. 홀로 진실을 찾을수록 더욱 혼란만 깊어갔다. 그 와중에도 엄마의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 해’.” 딸이 어릴 적 보았던 엄마는 설거지하며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부르다가 노래 끝자락에 이르면 언제나 목이 메던 엄마의 뒷모습이었다. 긴 세월 동안 외로웠을 엄마에 대한 이해와 함께 역사의 한 가운데서 그들 곁에 있지 못했던 죄책감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계엄군이었던 엄마는 45년이 지났음에도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옳지 않은 일에 가담했었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5.18 아픔이 딸의 12.3 1000잔의 커피 선결제로 승화된 것이다. 한강 작가가 말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운 것일지도 모른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투입된 특전사 장병의 자녀들에게 ‘반란군 자식들아 꺼져라’라는 비난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1공수여단 여단장은 “여러분들은 책임이 없고 이걸 지시한 나의 책임이다. 나와 내 상관들의 책임이다”라며 지휘관들의 지시를 따라야 했던 부하들은 무슨 작전을 수행하는지도 모르고 그날 출동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출동했던 계엄군 가운데 상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순히 출동했거나 현장에서 상황판단을 해서 국민을 바라보고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리고 사전 반란 모의 및 의도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이들까지 반란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일은 없도록 정부와 군이 노력해야 한다. 정요안 프로필 >>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준장), 前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 前 777사령관 직무대리, 前 육군본부 정보처장, 前 국군정보사 참모장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2-23
    • [임방순 칼럼] 2024년 한·중 관계 회고와 2025년 전망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2024년 한·중 관계는 ‘대화를 하자’라는 합의는 있었지만, 진전은 없었다. 2025년 한국 국내정치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의미 있는 관계 발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는 중국이 무역수지와 첨단기술에서 한국을 앞서가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2025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중국, 올해 초반부터 강압적 자세 완화하며 한국과 대화 분위기 조성 중국은 올해 초반부터 우리에 대한 강압적 자세를 완화하면서, ‘대화하자’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한국은) 독립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라는 발언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고, 사드 포대 철수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지난 11월 1일 우리나라를 비자면제국으로 발표했다. 중국의 이러한 우호적 조치는 대화하자는 신호이다. 중국의 신호에 호응해 지난 5월 26일 개최된 윤석열 대통령과 중국 리창(李强) 총리의 회담은 안보 분야에서 ① 외교 국방 2+2 안보 대화를 개최하고, ② 민·관 1.5 트랙 대화와 외교 차관 전략대화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①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재개하고, ② 공급망 협력 강화를 위한 수출 통제 대화체를 출범시키며, ③ 투자협력위원회를 13년 만에 재개하는 한편, ④ 한·중 경제협력 교류회 2차 회의를 올해 하반기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간 합의로 지난 6월 18일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열렸다. 그리고 11월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환영한다”라고 언급하면서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2단계 협상을 조속히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올해 두드러진 성과는 없었다. ■ 한·중 무역에서 적자 폭 확대되는 추세이며 광물자원의 중국 의존도 높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 3월 ‘2023년 중국 대외무역의 특징과 한중 무역에 대한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의 대중국 수출 경쟁력이 점차 약화해 무역수지가 매년 지속 하락함으로써 2023년에 1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2021년부터 대중국 무역에서 적자를 나타냈다고 한다. 주요 원인은 중국이 우리로부터 수입하던 중간재를 국산화해 자체 조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 통신설비, 화학 원료 및 제품, 전기기계 등이며, 이제 오히려 우리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가전제품이 글로벌 시장뿐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도 우리를 앞서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는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광물자원인 텅스텐, 바나듐, 마그네슘, 안티모니, 비스무스 등에서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높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2월 29일 개최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2022년도 기술 수준 평가 결과안’을 발표했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우리가 미래 산업인 인공지능(AI), 차세대 통신, 양자, 우주항공 및 해양 분야에서 중국에 현격히 뒤처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근소한 우위를 점하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수소, 디스플레이 등도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 한국은 중국의 핵심이익 인정하고 중국은 한국의 주권과 정체성 존중해야 2024년에 한·중 대화와 교류에 진척이 없었던 이유는 양국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는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해서 신중해야 한다. 내년에 한미동맹 또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대만과 남중국해로 작전 범위를 넓힌다면 중국은 이를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여기고 반발할 것이므로 중국과 대화를 이어가려면 이 문제를 가급적 자제하거나 회피해야 한다. 중국도 우리에 대해 다음 세 가지를 존중해야 한다. 첫째, 우리를 과거 중화질서의 종주국-번속국 관계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 이 문제는 우리 주권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둘째, 한미동맹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 진영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며, 북한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안보정책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북한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문제이다. 한국인들이 친구라고 여겼던 중국이 우리 편이 아니라고 충격받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북한이 2010년 자행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행위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중국은 UN의 대북제재를 우회해 간접적으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탈북자를 그들의 의사에 반해 북송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전에는 이들이 한국으로 왔다. 이런 문제에 대해 중국은 한국의 입장과 한국인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2025년에 우리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하고 중국은 우리의 주권과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안보 특수성인 한미동맹을 수용하는 중간지점 어디에선가 한·중 전략적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내년도 한·중 관계 불확실성 크지만, 미국과 신뢰 바탕으로 관계 증진해야 한국의 국내정치는 2025년의 한·중 관계 전망을 어렵게 하는 변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그동안 역점을 두었던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야당이 현 정부의 한미동맹 편향 및 일본과 협력을 비판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 북한과 관계개선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한국정부는 중국으로부터 ‘대화와 교류를 하자’라는 제안에 답을 주어야 한다. 중국은 트럼프 2기에 대한 대책으로 우리를 포함해 우호국을 확대하는 중이다. 중국과 대화 및 교류 확대는 우리에게 바람직하지만, 미국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도 2025년에는 우리에게 시련을 줄 것이 예상된다. 트럼프 차기 대통령은 우리를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지칭하며 방위비 분담금 10배 증액을 호언하고 있고,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도 협상 카드로 사용할 태세이다.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대한 혜택도 폐기하겠다는 분위기이며 고율 관세 부과 문제도 잠복해 있다. 한미동맹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증대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호적인 한·중 관계를 형성하려면 공고한 한미 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는 미국 트럼프 2기와 협의·소통을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한 다음 중국과 관계를 증진해야 한다. 내년은 한·중 관계에서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미·중 패권경쟁 승자와 손잡아라’,‘한국과 중국, 대등하다’의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2-23
    • [정요안 칼럼] 국가와 국민 위태롭게 만드는 계엄군의 명령복종 면죄부 될 수 없어
      [뉴스투데이=정요안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의 김현태 단장(대령)이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707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다.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라며 “부대원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무능한 지휘관의 지시를 따른 죄뿐”이라고 강조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도 “도대체 그 상황에서 왜 그랬냐고 하는데 맞고 틀리고를 떠나 위기 상황이잖아요. 군인은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해요”라며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12.3 비상계엄 사태에 군 병력을 투입했던 지휘관들의 한결같은 설명은 ‘군인은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군 형법은 상명하복을 강제하고 있다. 명령을 거부하면 처벌받는 4개 조항이 있다. 항명(제44조), 집단항명(제45조), 상관의 저지 불복종(제46조), 명령위반(제47조) 등이다.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항명과 집단항명은 상황에 따라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군인복무기본법 역시 제25조에서 ‘명령복종의 의무’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 명령은 ‘정당한’ 명령이어야 한다. 정당한 명령이 아니면 따르지 않아도 처벌할 수 없다. 군인복무기본법 제24조와 제36조에서도 “명령은 계통과 법규 등에 따른 것이어야 하고,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권한 밖의 사항을 명령해서는 안 된다”라고 제한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12.12 군사반란에서도 참여했던 부하들이 상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판결문에서 허삼수(당시 보안사령부 인사처장), 박종규(당시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 15대대장), 신윤희(당시 육군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 등은 전두환 등 상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 정당방위(형법 제20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상관의 적법한 직무상 명령에 따른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해 위법성이 없어진다고 할 것이나,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위법한 명령에 복종해 이뤄진 불법행위는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인식도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이들이 전두환과의 반란을 모의하거나 적법하지 않은 계통을 통한 지시 및 체포행위에 대해 이미 알면서도 가담한 것으로 봤다. 결국, 허삼수는 징역 6년, 박종규와 신윤희는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따라서 상명하복이 분명한 군이라고 해서 위헌·불법적인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707특수임무단장은 기자회견에서 “내란죄를 인정하느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당시에는 상황을 몰랐기 때문에 행동했다. 모르는 것 또한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절대 충성, 절대복종을 강조하는 특수부대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대해 정당한 명령인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명령이 정당하고 적법한지를 반드시 묻고 확인하는 것은 모든 지휘관(자)의 의무이다. 군에서는 모든 훈련과 작전 시 작전명령을 하달한다. 작전명령 5개 항목은 상황(적상황, 아군상황), 임무, 실시(팀·지역대별), 전투근무지원(휴대 장비, 탄약 등), 지휘 및 통신, 협조 및 제한사항 등으로 구성되는데, 작전명령을 제대로 검토하고 하달했다면 이 과정에서 정당한 명령인지 확인이 가능했을 것이다. 즉 작전명령의 상황설명에서 ‘국회점령과 국회의원들의 출입통제’ 등이 제시되고 팀별 개인별 임무가 하달됐을 것이며, 협조 및 제한사항에서 ‘국회 보좌진, 사무처 직원들은 물론 시민과의 충돌로 인한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최강부대가 제대로 된 작전명령 하달 없이 출동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군 지휘관은 기계적인 명령복종 이상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 위치임이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재확인됐다. 이번 사태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 이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도 구속됐다. 검찰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등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더 많은 관련자들이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만드는 명령에 대해서는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명령복종 및 항명에 관한 것은 군 형법 및 군인복무기본법과 관련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 및 권리 보호와 관련되는 것은 헌법의 가치에 기반한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최상위 규범으로서 군 형법이나 군인복무기본법은 이를 위배할 수 없다. 향후 사관학교를 비롯한 군 교육기관에서 이런 관점에서의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모든 군인이 헌법과 군 형법, 군인복무기본법 등을 공부해야 하며 “법인지 감수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 정요안 프로필 ▶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예비역 육군 준장), 前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 前 육군본부 정보처장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2-17
    • [뉴투분석]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비뚤어진’ 충성심, MZ 세대 계엄군이 바로잡아
      [뉴스투데이=김한경 시큐리티팩트 편집장]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4시간 전인 3일 오후 6시 쯤 윤석열 대통령을 만났으며, 윤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하고 해당 의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윤 대통령이 평소 자신의 말에 “맞습니다”를 외쳐온 김 전 장관과 계엄을 긴요하게 논의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됐다. 김 전 장관도 4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김 전 장관이 국군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벌어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군인의 충성심은 국가를 위한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 이것을 혼동하면 이번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 김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의원들의 계엄령 관련 질의에 “(계엄령 발령 시) 우리 군이 안 따를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김 전 장관 자신도 군 병력을 동원해도 임무 수행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윤 대통령이 원하니 따른 것 같다. 국가를 위한 군인의 충성심이 빛을 발한 사례는 1987년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은 6·29 선언이 나온 과정에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간선제 호헌 조치에 맞서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6월 19일 계엄사 운용과 군 동원을 골자로 한 육군참모총장의 ‘작전명령 제87-4호’를 하달한다. 이때 내전 상태로 번질 수 있는 유혈 사태를 우려한 민병돈 당시 특전사령관은 고명승 보안사령관을 통해 명령 취소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전 대통령과 같은 하나회의 일원이었고 전 대통령이 제3공수여단장 시절 예하 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돈독한 관계였으나 민 사령관은 ‘군의 정치개입은 안 된다’는 평소 소신에 따라 작전명령이 취소되지 않으면 707특임대대로 청와대를 점령하겠다는 쿠데타까지 염두에 두고 맞선 것이다. 군내 반발 여론을 전달받은 전 대통령은 결국 군을 출동시키지 않았고, 이후 6·29 선언이 탄생한다. 막후에서 군의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했다. 김 전 장관이 1987년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처럼 군의 정치개입은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대통령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한 충성심을 보였다면 윤 대통령을 만났을 때 비상계엄 선포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다행히 계엄군으로 출동한 MZ 세대 군인들이 현장에서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물리적 충돌이나 유혈 사태로 발전하지 않았고, 김 전 장관의 ‘비뚤어진’ 충성심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됐다. 당시 헬기와 차량을 이용해 국회로 진입한 계엄군은 육군의 최정예 병력인 특수전사령부 예하의 제1공수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 수도방위사령부 제35특수임무대대 등으로 밝혀졌다. 국회 사무처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이들은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건물 유리를 깨면서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지만, 그 이상의 물리력 행사는 망설이는 모습이었고, 지휘자로 보이는 군인이 의원 보좌진, 사무처 직원들과의 물리적 충돌을 자제시키는 장면도 보였다. 한 야당 보좌진은 “계엄군이 의원들의 출입을 묵인한 듯 보이기도 했다”며 “결국 본 회의 개최를 막으려던 계획은 허사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들은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현장에서 철수했으며, 온라인상에는 철수할 때 시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진도 나왔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해제 담화는 3시간 이상 흐른 뒤 나와 정부가 받아들이기 전에 계엄군이 먼저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장에 출동한 군인들뿐만 아니라 일부 간부들도 이번 계엄령 선포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사령부에서 주요 보직을 부여받을 것이 예상됐던 몇몇 인원들은 다가올 전역 시기 등을 언급하며 거절 의사를 표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전 장관의 비뚤어진 충성심에서 시작된 계엄 선포였지만 MZ 세대 계엄군들이 현장에서 지혜롭게 행동함으로써 김 전 장관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2-05
    • [김희철의 위기관리] 12월의 6·25남침전쟁영웅, 백마고지 사수에 목숨 바친 이성덕 육군 중위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국가보훈부는 6‧25남침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에서 수차례 적의 공격을 막아낸 이성덕 대한민국 육군 중위(당시 소위)를 ‘2024년 12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29년 1월 출생한 이성덕 중위는 육군갑종사관후보생 제9기로 군사교육을 받고 1952년 1월5일 육군소위로 임관, 국군 제9사단 30연대 3대대에 배속되어 11중대의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백마고지(395고지)는 강원도 철원 서북방 12km 지점 고암산과 효성산이 교차해 남쪽으로 흐르는 능선의 끝자락에 위치한 야산으로, ‘철의 삼각지(철원, 김화, 평강)’ 중에서도 철원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물자 보급로로 국군에게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1952년 10월6일, 첫 전투가 개시되고 395고지를 지키던 제30연대는 다음날까지 중공군의 공격을 4차례나 막아냈다. 특히, 이성덕 중위는 중공군이 395고지로 남하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395고지의 북쪽 전초진지인 ‘화랑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중공군은 화랑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켰지만, 이성덕 중위가 소속된 11중대는 거듭된 공격을 막아냈다. 중공군은 후퇴하던 일부 병력을 화랑고지 공격에 투입하며 10월7일부터 다시 공격에 나섰다. 이에 탄약과 식수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고지를 사수하던 제11중대는 포위되었고, 이성덕 중위는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적의 공격을 막던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했다. 이후로도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한때 화랑고지를 포함해 395고지를 적에게 내주기도 했으나, 제28연대가 10월 15일 395고지를 되찾은 데 이어 제29연대가 화랑고지 선상의 전초진지를 확보하면서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리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395고지를 놓고 열흘 동안 12번에 걸친 공방전이 벌어지고, 고지 주인이 7번이나 바뀔 만큼 6·25남침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이며 중공군이 패배를 자인한 전투이기도 하다. 전투 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돌가루와 흙더미만 남아있는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정부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활약한 이성덕 중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소위→중위)을 비롯해 을지무공훈장(1952년)과 화랑무공훈장(1954년)을 추서했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2-04
    • [김희철의 위기관리] 혼외자도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최근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가 혼외자를 출산한 것이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년 전 출생아 43만7000명의 전반 수준인 약 23만명이 2023년에 태어났고, 이중의 4.7%인 1만900명이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13년 9300명에서 2020년 6900명까지 줄었다가 2021년 7700명, 2022년 9800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혼외 출생율인 41.5%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의 위기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110년만에 최대로 많이 내린 첫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던 그날 저녁에 어릴적 친구와 소주한잔을 들이키며 건배를 하다가 우리가 철없는 강아지처럼 첫눈을 즐기는 삶을 아직도 영위함에 감사드리며 외친 말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였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60~90세대들이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암송문을 5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1968년 12월5일 선포된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기 때문이었다.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역대 최대를 기록한 2023년의 1만900명를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국민교육헌장의 가치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국민교육헌장은 민족 주체성 확립, 새로운 문화창조, 복지국가 확립 등을 393자로 표현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경제개발 계획을 밝히면서 경제개발 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당시 권오범 문교부장관에게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 정립과 시민생활의 건전한 윤리 및 가치관 확립”을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총 망라해 교육장전(敎育章典)을 제정할 것을 지시했다. 문교부는 헌장 제정을 위해 26명의 헌정 기초위원과 48명의 심의위원을 위촉해 3회에 걸친 초안작성 준비회를 개최했고, 7월엔 제 1차 심의위원회를 마련한 뒤 박종홍, 이인기, 우형진 등이 헌장 초안을 다듬었다. 이후 국무총리가 주관한 소위원회를 4회,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전체회의를 4회 개최한 후, 11월 정기 국회 본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드디어 1968년 12월5일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했다. 이 헌장의 제정 소식을 들은 대만의 총통 장제스는 “기선을 빼앗겼다”고 부러워하며 김신 주한국대사에게 자료수집을 당부했으며, 독일의 볼노브도 “독일 청년의 정신적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헌장 제정에 고심하던차”라면서 찬사를 보내왔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의 주체성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문화창조, 개인과 국가의 일체감을 통한 복지국가 확립을 내용으로 해 총 393자로 쓰여졌다. 첫 문단은 우리 국민이 한민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높은 긍지와 그에 따른 투철한 신명의식을 밝혔다. 가운데 문단은 국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개인윤리, 사회윤리, 국민윤리 순으로 국민 개개인이 지키고 실천해야 할 규범과 덕목을 명시했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반공민주주의 정신으로 조국통일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철학을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체 내용은 민족 주체성에 입각한 국민교육에 초점을 맞춰 자주독립과 창조와 개혁, 협동정신, 애국애족, 통일 등 우리나라 교육의 핵심 요소를 기본이념 속에 강조해 왔다. 국민교육헌장 선포 이후 정부에서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그 실현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은 국가 및 학교의 각종 행사에서 반드시 봉독하게 됐다. 또한 모든 국정교과서의 첫 장에는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게재했으며, 각 급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무조건 암기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한 때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닐때였으니 헌장의 전문을 모두 외운 것은 당연지사이다.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고 뒤이어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면서 국민교육헌장은 새마을 교육의 정신적인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은 곧 새마을 정신의 밑바탕이 됐다. 즉 새마을 교육은 국민교육헌장의 이념 아래 국민들에게 새마을 정신을 함양시킴으로써 국가발전에 공헌하는 실천적 인간을 육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새마을 운동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면 국민교육헌장은 새마을 운동이 성공적으로 전개되는 데 있어 정신적인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포일은 1973년 3월30일에 대통령령으로 정부주관 기념일이 됐다. ■ 권위주의 잔재라며 교과서에서 삭제, 2003년 대통령령에 의거해 선포된지 35년 만에 폐지 국민교육헌장은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반공과 민족중흥이라는 집권세력의 통치이념을 사회적 이상으로 삼고 그 실현을 지표로 삼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게 된다.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교육헌장이 일본의 메이지시대에 제정한 군국주의적 ‘교육칙어’와 이념이 매우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의 철폐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됐다는 의식이 확산됨에 따라 1994년부터 기념식 행사를 개최하지 않았으며, 이후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잔재라는 미명 아래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되더니 급기야 2003년에는 대통령령 제18143호에 의거해 선포된지 35년 만에 폐지됐다. 구시대의 잔재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선현들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현재의 교육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몹시 흔들린다. 학교 교육은 붕괴됐으며 가정교육 또한 엉망이 됐다. 얼마 전에 학생이 학교에서 체벌을 받은 데 대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부모는 교사의 멱살을 잡는 사건까지 벌어졌으니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땅에 떨어진 교권에 대해 토로하고 학생들은 인권침해를 호소한다. 교육환경이 엄청나게 변했으나 우리의 교육계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더구나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까지 썩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는 국민들이 교육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나 지표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적 요소이다. 비록 국민교육헌장이 권위주의적, 국수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우리나라가 중진국으로 진입할 때 국민들의 의식 개혁에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재론할 여지가 없다. 60~90세대들 중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우둔한 탓에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의 어느 부분이 비민주적인 내용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모름지기 국민교육이란 국민이 행복하고 나라가 부강해야 하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따라서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서게 된 것은 국민교육헌장이 국민들의 의식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다. 항간에 “우리의 교육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이 종종 들린다. 요즘처럼 사회가 혼돈스럽고 교육계가 엉망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시대상황에 적합한 교육이념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국민교육헌장에 나온 문구처럼 ‘인류공영에 이바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가치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바뀌어 간다. 특히 출산율 급감에 따른 인구절벽 시대가 도래해 군에 입대할 청년들 마저 부족한 안보위기를 초래하게 될 상황에서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1만9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을 포함해서 이 땅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에게 국민교육헌장은 반드시 기억할 가치가 있다. 이제는 정말 국민교육을 위해 시대에 부합된 새로운 국민교육헌장이 나와 우리사회가 걸어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더불어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를 정신없이 달려온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단지 “구시대 역사의 잔재로 간주되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 김희철 프로필 ▶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2023년)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2-04
    • [김희철의 위기관리] 잊혀진 6‧25남침전쟁 상기시킨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의 달력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 기습남침이 있자, 그해 4월 22일 취임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문산축선에서 3일간 방어하다가 철수해 수원, 충북 음성, 경북 함창 일대를 거치며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했고, 결국에는 낙동강 최후 방어선인 다부동지역까지 이동했다. 8월부터 치루어진 한반도 방어의 마지막 보루였던 다부동지구 전투에서 백선엽 장군의 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 격멸하여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38도선을 넘어 10월 19일 대동강교 동측에 최초 진입하며 평양 탈환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이미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불법 진입한 중공군이 10월 26일 운산전투에서 유엔군과 최초 교전한 이후 인해전술에 밀려 남북통일을 할 수 있었던 북진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듬해 1월까지 수원~원주~삼척에 이르는 선까지 축차적으로 철수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중공군 9병단 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섬멸전에 맞서 미 10군단 1해병사단 약 3만명이 1만7천여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치룬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4만8천여명을 사살하며 포위망을 돌파했고, 중공군의 공격을 지연시킨 덕분에 약 20만명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피난할 수 있는 흥남철수도 있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는 사회적 환경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남침전쟁은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이런 이유중에 하나는 문재인 정부시절에 국민 안보교육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쟁사 교육이 선택 과목으로 전환되어 졸업생 30% 정도만이 6‧25남침전쟁사 교육을 받는 상태까지 되자 당시 신원식 의원(현 국가안보실장) 등 여러 국회의원들과 많은 안보전문가들의 맹렬한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다. ■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 교육 강화로 국민적 안보 공감대 형성 필요 사실 요즈음 많은 신세대 시민과 어린이들은 학교 및 가정에서 74년 전에 발발한 6‧25남침전쟁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90세가 넘은 일부 6‧25남침전쟁 참전용사들만이 아직까지 생존해 그때를 회상하며 몸서리 칠뿐이다.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이는 전쟁을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 굴복하기보다는 전쟁에 맞서 방어하라는 의미이다. 굴종은 평화가 아니다. 전쟁은 평화주의자를 노린다. 강력한 군사대비 없이 입으로만 평화를 떠드는 사람은 무책임하다. 전쟁이 발발해 침략을 당하면 평화고 뭐고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보다는 비겁한 평화가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따라서 남녀노소 모든 국민, 특히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남침전쟁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전쟁에 대비해 평화를 지키려는 국민적 안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그래야 비참하게 피 흘리는 전쟁 발발의 비극을 사전에 막아내 평화를 지키며 행복한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 ■ 백선엽기념재단의 내년 달력은 국민 안보의식 고취 계기와 촉매제 될 것 확신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정권에서 육군사관학교에서 조차 전쟁사 교육이 약화되어 6‧25남침전쟁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바닥까지 떨어지며 안보의식이 희박한 안타까운 상태가 됐다.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국민 안보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북한군의 불법 남침부터 낙동강 방어작전, 유엔군 북진, 중공군 불법 개입 및 휴전에 이르는 6‧25남침전쟁 경과와 백선엽 장군의 애민 사상에 따른 활동과 육군재건 및 현대화를 위한 노력 등을 해당 월별로 표현한 2025년 달력을 제작했다. 지난 14일 전쟁기념관 429호실(생전에 백선엽 장군이 사용했던 곳)에 위치한 기념재단 사무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김관진 이사장(전 국가안보실장)과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 방기봉 회장 등 이사회 참석자들은 팽준호 사무총장의 2025년 달력 설명을 듣고, 한결같이 6‧25남침전쟁에 대한 충분한 교육자료가 될 수 있는 잘 제작된 달력이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때마침 방위산업공제조합에서 조합 홍보용으로 대량 구매를 결정했고, 방기봉 회장의 협조로 어린이들 교육을 위해 색동회와 한화그룹 같은 방위산업체에서도 홍보 및 국민 교육용으로 구매해 분배할 것을 검토중이다. 백선엽기념재단의 2025년 달력은 친일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잘못 알려진 6‧25남침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잊혀져가는 6‧25남침전쟁의 동족상잔 비극이 이 나라에서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와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2023년)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1-20
    • [임방순 칼럼] 시진핑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 통해 한국, 북한, 미국에 보내는 신호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지난 16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우리의 정상회담 개최 요청을 거절했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 측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와 달라진 상황은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해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된 것이고, 미국에서 2025년 1월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국에 대화와 교류 활성화를 제안하면서 동시에 한국 대통령과 마주 앉아 정상회담하는 모습을 통해 북한과 미국 트럼프 차기 정부에 전하려는 신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대화와 교류 활성화 신호보내며 중국이 경제와 안보 분야에 적극성 보여 필자는 ‘비자 면제국에 한국 포함한 중국의 결정, 분명한 대화 신호로 긍정적 검토 필요하다’ (뉴스투데이, 2024, 11.4)란 칼럼에서 중국이 우리에게 보내는 대화와 교류의 신호를 언급한 바 있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신호를 더욱 분명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더 많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환영한다”라고 언급하면서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2단계 협상을 조속히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중 정상은 양국 경제협력, 문화, 인적 교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라고 밝히면서, “금년 5월 윤석열 대통령-리창(李强) 중국 총리 회담 이후에 한·중 간 고위급 대화 채널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한·중 관계 활로를 적극적으로 모색해보자는 중국 당국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안보 측면에서도 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2022년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역할을 요청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북한 관계 개선이 우선이다”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으며,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정책 지지 요청에 대해서도 “북한이 호응할 경우 지지한다”라고 역시 거부했다. 그렇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중국은 역내 정세의 완화를 희망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정치적 해결을 위해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라고 다소 완화된 발언을 했다. ■ 중국의 북·러 밀착 견제는 우리의 정책 목표와 일치돼 협력 확대 가능 중국은 북·러 밀착에 대해 ‘이는 러시아, 북한 두 국가 간 문제’라는 모호한 입장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북한의 러·우 전쟁 참전으로 형성되는 북·러 혈맹관계가 기존의 북·중 혈맹관계를 희석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을 이전받아 동북아 안정을 위협하는 것도 부담이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철수에 중국이 역할을 하라는 미국과 유럽의 요구도 중국을 곤란하게 한다. 중국은 북한군의 러시아 증파를 억제해야 하고 러시아의 민감한 첨단군사기술 북한 이전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는 북한의 행동에 대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달라”라는 윤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 “지역의 평화, 안정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역할을 함께 해나가겠다”라고 언급했다. 북·러 밀착 견제는 우리의 정책 목표와 일치하기 때문에 중국과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분야이다. ■ 중국과의 대화와 교류 활성화는 트럼프 2기에 대한 제한된 ‘협상 카드’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국제 자유무역체제를 수호하는 데 함께 힘써야 한다”라고 하면서 “글로벌·지역 산업 공급망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고,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더 많이 수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 정책과 보호무역주의를 겨냥해 함께 대응하자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은 트럼프 2기가 동맹 관계를 비용과 편익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기존의 동맹체제가 약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 틈을 활용해 중국의 활동영역을 넓히고자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한국이 트럼프 2기의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와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단, 주한미군 감축·철수 등의 압박 조치에 반발하면서 한미동맹이 이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일본, 유럽 등을 끌어당겨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향후 예상되는 미국 트럼프 2기와 협상 및 거래에서 중국과의 대화와 교류 활성화는 하나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카드는 중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미국의 국익에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한된 카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내는 신호는 긍정적이다. 우리는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대화와 교류를 확대하면서 북·러 밀착도 견제하고 트럼프 2기에 대한 ‘협상 카드’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에게 우리는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미·중 패권경쟁 승자와 손잡아라’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1-18
    • [김희철의 위기관리] 11월의 6·25남침전쟁 영웅, 미국판 강재구 소령인 ‘발도메로 로페즈 미국 해병 중위’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서 고(故) 강재구 소령처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자신의 목숨을 던진 고(故) 발도메로 로페즈(Baldomero Lopez) 미국 해병 중위를 ‘2024년 1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5년 8월23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난 로페즈는 1947년 6월 6일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에 지원했다. 한국에 도착한 로페즈는 미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 1대대 A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소대원들과 함께 해안에 상륙한 로페즈 중위는 선두에서 사다리에 올라 해안 방벽을 넘은 후, 전방의 북한군 벙커를 향해 수류탄을 던지던 중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우측 어깨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기어 수류탄을 다시 집어 던지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멀리 던질 수가 없었던 로페즈 중위는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수류탄을 끌어안으며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러한 공로로 미국 정부는 1951년 8월 30일 미합중국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4월 25일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1-14
    • [임방순 칼럼] 트럼프와 김정은이 향후 관계개선을 통해 얻으려는 것들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미국에서 내년 1월 20일부터 트럼프 2기가 시작된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에 수차례 김정은에 대해 호의적 발언을 했는데, 필자의 관심을 끄는 내용은 “김정은은 좋은 부동산을 갖고 있다”라는 언급이었다. 여기서 부동산이란 원산 해변의 휴양지가 아니라 중국 수도권과 근접한 북한의 위치를 의미한다. 한국으로 귀순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 리일규는 지난 8월 2일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북한에 있어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것은 천년에 한 번 있을 기회가 될 것”이라며 “김정은은 트럼프와 핵 협상 재개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트럼프와 김정은의 대화가 시작되고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이 예견된다는 얘기다. ■ 트럼프 : ① 중국 견제, ② 미국 위협 차단, ③ 동북아 안정 등 원할 듯 트럼프가 북한과 관계개선을 통해 얻고자 하는 3가지가 있다. 첫째, 중국 견제이다. 트럼트 2기는 1기에 비해 더욱 강력해진 중국의 도전을 맞이하면서 무역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이 지정학적 분야로 확대돼 본격적인 패권경쟁의 시대로 돌입한다. 미국의 안보정책 1순위는 중국의 도전을 저지해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베이징 등 중국 수도권과 마주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에 착안해 관계개선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을 협상으로 폐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핵을 현 수준으로 동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억제해 위협을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발사한 북한의 화성-19형은 대기권 재진입 가능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사거리는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15,000㎞로 추정돼 미국은 조만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셋째, 북한의 호전성을 완화해 동북아 안정을 달성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포함해 장사정 포병 등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고, 최근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핵추진 잠수함과 정찰위성 기술 등 첨단 군사과학기술을 이전받을 것이 예상돼 더욱 위협적이다. 트럼프는 관계개선을 통해 김정은에게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 분위기 조성을 요청할 수 있다. 이 지역이 안정되면 미국은 주한·주일미군을 대만과 남중국해로 전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정은 : ① 대북제재 해제, ② 핵보유국 인정, ③ 경제 지원 등 바랄 듯 김정은이 트럼프 2기와 관계개선을 통해 얻고자 하는 3가지도 있다. 첫째, UN의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하는 것이다. 북한은 제재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김정은도 민심이반을 막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필요하다. 미국은 UN의 대북제재를 주도하면서 자체적으로 북한을 제재하고 있고 유럽과 일본 등도 동참하고 있다. 미국이 제재를 해제해야 북한은 서방국들과 무역을 할 수 있고, 국제기구로부터 필요한 자금 도입도 가능하다. 둘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만이 자신들의 안보를 지켜주고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로 한국에 열세인 재래식 군사력을 일거에 역전시켰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핵 폐기를 요구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한다면 UN 제재가 해제될 수 있고 북한의 국제적 위상도 달라질 수 있어 북한의 발전 여부는 미국에 달려 있다. 셋째, 중국을 움직여 경제 지원을 받는 것이다. 중국은 트럼프 1기 때 5차례 북한과 정상회담을 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 추이를 확인하고 자신들의 국익이 침해받을 여지가 있다면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중·소 분쟁 당시 북한의 소련밀착을 저지하기 위해 김일성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던 중국이기에 북한에 다른 나라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허용하기 어렵다. 미북 정상회담이 추진된다면 중국은 다시 북한에 접근해 김정은의 요구를 받아줄 가능성이 크다. ■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도록 대비 필요 이처럼 미국과 북한은 서로 관계를 개선할 이유가 충분하다. 기존의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령부의 임무가 북한의 남침을 억제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었다면, 미·북 관계가 개선될 경우 미국은 한미동맹 임무를 ‘북한 남침 억제’에서 ‘중국 견제’로 전환할 수도 있다. 중국 견제를 우선시하는 미국의 정책에 부합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주한미군의 감축과 부분 철수 등 모종의 밀약을 맺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우리의 동맹인 미국이 중국 견제를 앞세우고 자국의 안전을 중시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때, 우리는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북한의 반대로 회담에 참석하지 못하고 별도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사례도 있다. 우리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에서 주연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미중 패권경쟁 승자와 손잡아라’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1-08
    • [임방순 칼럼] 중국,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 전략적 모호성 유지할 듯
      [뉴스투데이=임방순 前 국립인천대 교수]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는 북한이 전투병력 선발대 약 1,500여명을 러시아에 파병했고 곧 2진도 파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가 해군 함정으로 약 1,500여명의 북한군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지역으로 수송했으며 이들은 현재 러시아 군부대에 분산 수용돼 적응훈련 중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북한 군인들이 러시아 군복을 받는 동영상을 공개했으며, 시베리아 동양계 주민의 위조 신분증도 발급받았다고 밝혔다.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고 있음에도 중국은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중국은 일단 상황을 주시하는 듯하다. 당사국인 북한이 아무런 해명이 없고, 러시아는 ‘가짜 뉴스’라고 부인했다가 최근 “북한과 관계 발전은 우리의 주권적 권리”라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 북한군, 우크라이나 후방지역에 침투해 지휘소 타격 등 특수작전 수행 예상 미국과 NATO에서는 북한군 파병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중국을 포함해 각국은 북한군이 아직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파병 자체만을 거론하기에는 상황이 유동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러시아에 제공한 장비와 무기 운영 기술을 전수하는 군사교관, 그리고 공병 등 전투 지원병력을 러시아에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은 지난 18일 “러시아로 파병 준비 중인 부대는 소위 폭풍군단으로 알려진 제11군단 예하 4개여단 약 12,000명 규모”라고 밝혔다. 폭풍군단은 우리의 특전사와 같은 특수작전 부대이다. 이들은 상대방 후방으로 침투해 지휘소 타격, 군사시설 파괴, 전차부대 등 기동부대 기동로 확보, 후방 교란 등의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한다. 이처럼 폭풍군단의 특성상 러시아군이 지금까지 수행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의 후방지역에 침투해 지휘소를 타격하고, 공군 기지와 전투기, 그리고 해군 기지와 함정 등을 파괴하며, 탄약고와 유류고, 산업시설들을 공격하는 특수작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북한군의 특수작전으로 미사일과 포격전, 무인기 위주였던 기존의 러-우 전쟁 양상은 바뀔 것이며, 북한군의 전투 성과에 따라 전쟁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다. ■ 중국, 미국·유럽 등 서방국과 갈등 우려해 북한군 파병에 찬성하지 않을 듯 중국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찬성하거나 지지한다면 미국 및 유럽 등 서방국가들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북한군의 참전으로 우크라이나가 패색이 짙어질 경우, 서방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거쳐 계속 유럽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안보를 위협할 것으로 판단해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따라서 서방국가들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와 탄약 등을 지원할 것이며 병력 파병도 고려할 수 있다. 이렇게 러-우 전쟁이 격렬해지고 국제전으로 비화하면 서방국가들은 “중국은 러시아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종전의 요구를 더욱 강하게 주장하며 중국에 압력을 가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찬성하거나 지지해선 서방국가와의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반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준동맹국인 러시아와 전통적 우방국인 북한과의 관계 악화가 예상되는 북한군 러시아 파병 반대에는 러시아의 어려움을 방치할 수 없는 데다, 북한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등의 이유로 신중할 것이 예상된다. ■ 러시아·북한과 향후 관계 고려하면 북한군 파병에 중국이 반대할 수도 없어 첫째, 러시아의 어려움을 방치할 수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단기전을 예상했으나 전쟁은 2년 6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도 예상외로 강했고 특히 서방국가들의 지원이 우크라이나를 2년 6개월 동안 버티게 해주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러시아는 중국에 전투 장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시진핑 주석은 서방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거부했다고 한다. 대신에 비전투 물자와 민군 겸용 물자를 지원하고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구입 등 간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에 대해 불만이 크다. 더욱이 중국이 북한군 러시아 파병마저 반대한다면 러시아는 중국과 우호 관계를 재고할 것이며, 이는 중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미국과 패권경쟁에서 러시아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북한과 중국 사이가 소원한데, 북한이 중국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대북제재 해제에 나서 달라는 요구에도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중국 대신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병에 반대하면 북한은 중국을 더욱 멀리하고 러시아와 결속을 강화할 것이며, 자동적으로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이 약화하면서 북·러 밀착은 중국과 대립하는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찬성하거나 반대해도 모두 부담이 있다. 중국은 서방국가와 갈등을 원하지 않는 데다, 러시아와 관계도 중요하고 북한을 자신의 세력권에 잔류시키길 원한다. 따라서 북한군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해 러-우 전쟁에 변화가 생길 때, 서방국가의 반응을 살피면서 찬성도 반대도 아닌 일반적 수준의 모호한 논평 즉 “각 당사국은 자제해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정도의 입장에 설 것이 예상된다. ◀ 임방순 프로필 ▶ ‘어느 육군장교의 중국 체험 보고서’, ‘미·중 패권경쟁 승자와 손잡아라’ 저자. 前 국립인천대 비전임교수, 前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무관, 前 국방정보본부 중국담당관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2024-10-22
    • [김희철의 위기관리]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 뛰어난 정보력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남제평 경감’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1950년 7월29일,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벌어진 ‘압록 전투’에서 적의 이동 경로를 사전파악 후 매복 작전을 통해 적 정규군을 섬멸하여 북한군 남진을 지연시킴으로서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기여하는 놀라운 전공을 세운 남제평 경감(당시 경위)을 ‘2024년 10월의 6‧25남침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918년 10월25일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출생한 남제평 경감은 1948년 11월15일 경찰 경위로 임용됐다. 1950년 곡성경찰서 정보참모로 재직 중 발발한 6‧25남침전쟁 1개월 만에 전라남도 곡성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300여 명의 곡성경찰서 대원들은 북한군의 남하 저지와 관할지역 사수를 결의하고 작전지휘소를 태안사로 옮겼다. 1950년 7월29일 북한군이 경상남도 하동에서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곡성군 죽곡면 압록교를 통과할 예정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남제평 경감은 주변에 매복한 후 적 대열을 기습했다. 약 4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적군 52명 사살, 생포 3명, 트럭 4대를 포함한 장비 70여 점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적군의 이동을 일주일 이상 지연시킴으로써 아군의 낙동강 방어작전에 크게 공헌했다. 압록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북한군은 보복을 위해 8월6일 08시경 곡성경찰서 주둔지인 태안사를 포위 공격했다. 1개 연대에 달하는 적을 상대로 남제평 경감과 47명의 경찰관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살신보국(殺身報國)을 실천했다. 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50년 12월,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하였다. 한편, 전라남도 경찰국은 1985년 8월 곡성군 죽곡면에 태안사 전투에서 전사한 경찰관 48명의 넋을 추모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찰충혼탑을 건립하였으며, 전남경찰청에서는 매년 8월6일을 전후해 경찰충혼탑에서 태안사 작전 전몰경찰관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0-18
    • [김희철의 위기관리]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최초의 한국계 장군 19지원사령관으로 금의환향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국계 미군 장군이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46년만에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해 화제다. 1970년대는 미국이 닉슨 독트린, 베트남 철수 등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을 철수, 방위력을 최소화시키는 조치가 연속된 시대였다. 대한민국 역시 1972년 주한 미 육군 7사단의 철수를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에, 유엔사 해체 결의안 통과를 시작으로 주한미군 전체가 철수하는 최악의 안보 공백 시나리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 베트남의 적화는 큰 이슈였다. 그때 한미연합사의 모체라 할만한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한미혼성 제1군단이었다. 군단장은 미군, 부군단장은 한국군인 현행 체제와 비슷했고 휘하 미군 사단을 지휘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유엔사를 대신해 유사시 한국군과 미군을 총괄 지휘하는 기구의 필요성을 미국 측에 역설했고, 이 결과로 1978년 11월7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1976년부터 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던 존 베시 미 육군대장이 임명되었고, 한미연합사는 오늘날까지 46년째 이르고 있다. 지난 6월5일 프레드릭 크리스트(Frederick L. Crist) 준장 후임으로 진H 박(Jin H.Pak, 52세, 한국명 박진형) 준장이 대구 남구 캠프헨리에 소재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으로 부임해 대한민국 남부지역 작전 유지와 지휘, 물자 수송 등을 책임지고 있다. 제19지원사령부 지휘관으로 취임한 박 준장은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 및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 이래 최초의 한국계 장성급 사령관이다. 1972년 태어난 그는 춘천에 거주하는 조부모 손에서 유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난 후 약사였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게 됐다. 6살 되던 해인 1978년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박 사령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하늘에 비행기가 보이기만 하면 ‘와...! 비행기가 미국으로 간다’고 말했다”며 “언제나 부모님이 보고 싶은 어린아이였고 늘 미국에 가고 싶어 했다”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그는 뉴욕에서 성장해서 1994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수송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독일과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 전투지역에 파병돼 활약했고, 한국에선 주한미군의 주축이자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부대인 미 2사단에서의 근무 경험도 있으며, 2012년 제19지원사령부 예하부대 대대장과 한미연합사령부 기획참모부 연합계획과장을 지내는 등 30년째 미 육군에서 복무 중이다. 금의환향(錦衣還鄕)한 박 사령관은 취임사에서 “여섯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19지원사령부와 같은 환상적인 부대의 지휘관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19지원사와 같이 갑시데이(갑시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친근감을 표시하며 한국계 미군 장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 홍준표 시장과 환담한 박 준장과 박 준장 부임 이전 근무했던 한국계 류선 미육군중령 한편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지난 7월11일 오후 2시30분 대구시청을 방문한 주한미군 제19지원사령관 박 준장과 환담했다. 진 H.박(Jin H.Pak) 준장은 홍준표 대구광역시장과의 환담에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근무했던 대구에 다시 돌아와 근무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고 말했다. 이에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최초로 한국계 사령관이 부임한데 대해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대구에서 근무하는 동안 상호 우호 관계가 증진되고 임무 수행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장군이 부임한 미 19지원사령부에는 한때 한국계 미국인인 류선 육군중령이 498전투유지지원대대장으로도 근무했었다. 류선 육군중령은 2023년 3월 부임 당시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에게 ‘또 하나의 조국’이기도 하고요. ‘우리의 한미동맹(Our ROK-U.S. alliance)’이 오늘날처럼 강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다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한미동맹 강화에 일조하게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거의 20년 전, 저는 이곳 한국에서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한국에서 제 경력을 시작한 것에 늘 감사하고 있죠. 그리고 지금 저는 멋진 조직을 지휘하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제가 받은 환대는 정말 각별했죠”라고 언급했다. 이어 “저는 엄격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한미 연합훈련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현실적인 훈련은 장병들에게 더 큰 효과를 주죠. 저와 저희 대대 장병 모두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의 상시 임전태세를 유지하고자 합니다”라며 완벽한 연합대비태세 유지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도 밝혔었다. 미 19지원사령부는 미 육군서 유일하게 전진 배치된 군수야전사령부로 ‘한반도 안보·평화 유지’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 19지원사령부에서 다시 근무하게 된 신임 사령관 박 준장도 미국 이민자 집안 출신이 최초로 주한미군 장성급 지휘관으로 부임하는 것이어서 관심이 모아지며, 보다 강력해진 한미연합방위 태세 공고화가 기대된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0-15
    • [김희철의 위기관리] '日 독도침범 격퇴' 독도대첩 70주년 기념식 개최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일본의 독도 무단 침범을 격퇴한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회장 최완근) 주관으로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히어로즈 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이날 오후 2시 개최된 독도대첩 70주년 기념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기념사업회 회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념식 외에도 학생들과 함께하는 기념공연, 독도의용수비대 소개 영상 시청 및 활동상 전시,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및 독도 지형 체험, 게임·퀴즈, 독도의용수비대 캐릭터 이름 짓기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진행됐다. 독도대첩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가 1954년 11월21일 독도를 무단 침범한 일본에 맞서 승리한 전투다. 당시 대원들은 일본 해상보안청의 무장순시함 헤쿠라호와 오키호를 M1소총과 가늠자 없는 박격포 등 열악한 무기로 격퇴했다. 이는 독도의용수비대가 일본과 싸워 가장 크게 승리한 전투로, 일본이 다시는 독도를 불법 침범하지 못하는 계기가 됐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독도대첩일’은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에 무단 침범한 일본과 맞선 전투 중 가장 크게 승리한 1954년 11월21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지난 2013년부터 ‘독도대첩일’로 명명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투혼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독도대첩 7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페스티벌을 통해 서른 세분의 독도 영웅분들이 일궈낸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기억·계승하는 의미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10-10
    • [김희철의 위기관리] 경남 ‘사천 국군묘지’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보훈부는 지난 11일 경남 사천지역 출신 6·25남침전쟁 전몰군경 등이 안장되어 있는 ‘사천 국군묘지’를 국가가 직접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했다. ‘사천 국군묘지’는 경북 영천 보현산 일대 공비소탕작전과 강원 횡성북방지구 전투 등 각기 다른 전투에서 투혼을 발휘하다 전사한 사천지역 출신 6·25남침전쟁 전몰군경 등 44명을 정전협정 후인 1953년 10월15일, 사천시(당시 사천군)에서 사천공항 인근 사천읍 구암리 야산에 안장하면서 조성한 후 지금까지 관리해왔다. 하지만, 비행기 소음과 묘지 앞 철로로 인한 접근 불편으로 인해 유족들의 묘소 이전 건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사천시는 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예우와 유족들의 의견을 고려하여 2021년 사천 국군묘지 이전계획을 수립, 묘지 조성 71년 만인 올해 8월, 사천시 종합장사시설인 사천 누리원 내에 별도의 묘역을 조성해 이장했다. 이후 국가보훈부는 사천시와의 협의를 통해 새롭게 조성된 사천 국군묘지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하고 안내판과 조경을 비롯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설 계획이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셨던 분들에 대한 예우로 양지바른 장소에 새롭게 묘역을 조성한 사천시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국가보훈부는 국가관리묘역으로서 품격있는 묘역 유지·관리는 물론, 묘역을 방문하는 유족분들에 대한 편의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관리묘역은 국립묘지 외의 장소에 안장된 국가유공자 등 합동묘역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지정해오고 있으며, 이번 경남사천국가관리묘역을 비롯해 현재 서울수유국가관리묘역과 거제장승포국가관리묘역, 충북괴산국가관리묘역 등 전국적으로 16곳이 지정되었다. 한편, 지난 15일 JTBC에서 ‘매년 성묘하는데 ‘소재불명?’ 독립유공자 묘소 파악 못 하는 보훈부‘라는 보도가 있었다. 김교영 선생의 묘소는 JTBC가 유족을 통해 확인하기 전까진 어디 안장돼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백영촌 선생(1990년 애국장)도 대전현충원과 대구신암선열공원에 각각 안장되어 보훈부는 “어디가 진짜 묘인지 확실하지 않다”며 “전체 독립유공자의 절반, 묘소 위치조차 파악 안된다”고 밝혔다. 이에 JTBC는 “보훈부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나온다”라고 보도했다. 국가보훈부는 2015년부터 매년 국립묘지 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전체 독립유공자 1만 8,000여 명 중 8,500여 명은 묘소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는 후손 미확인으로 인한 미등록이나 유족이 묘소를 모르는 경우 등의 이유로 묘소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권 세대(손자녀) 이후 후손과의 연락체계를 만들고 유관기관과 협업을 통한 국민제보 확대, 그리고 정기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독립유공자 산재 묘소가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국가보훈부는 대책을 제시했다.
      • 시큐리티팩트 > 소통시대 > 김희철 칼럼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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