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용서는 없다, 연극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뉴스투데이=오소연 기자) 망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유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불륜현장을 목격한다. 충격에 빠진 그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용서해라"라고 말할 뿐, 자신의 아내를 탓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한 채 그저 용서한다.
낯익은 이야기다. 그렇다. 연극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는 우리나라 고전 '처용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현대로 옮겨온 처용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택시기사 오가리는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자신이 죽였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망상들과 거리의 지저분한 간판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동남아시아 출신인 아버지와 바람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가리는 술이 취해 밤마다 바람난 엄마를 찾아다니던 아버지와의 기억이 전부다.
그는 엄마를 용서하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용서하지 말라는 검은 존재를 직면하게 된다. 이윽고 그 검은 존재는 오가리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오가리를 망상의 늪으로 이끈다.

최지언 작가는 이번 작품에 관해 "처용이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체념에서 오느냐 아니면 대인배적인 덕에서 오느냐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술에 취해 밤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한국 남자들의 모습에서 체념과 용서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투하고 있는 인간적인 처용의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최작가의 말을 십분 반영하듯 극 속 오가리는 내내 술과 마약에 빠지며 현실 속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분노를 표출한다. 그의 망상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은 모두 그의 불안한 감정을 보여주듯 어느 한 곳이 삐뚤어져 있다. 그들은 오가리의 기억 속에서 머물기만 했던 이들이 아니라 토대가 되어 망상 속 근원적인 이유를 찾아간다.
오가리는 용서하라 했던 아버지의 말을 수용하지 못한다. 억눌러왔던 그의 감정이 격하게 표출되는 순간 그는 "용서하지 마라. 나는 너의 아들이다. 처용의 아들이다"라고 소리치며 처용가에서 미련했던 '처용'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극은 진행되는 내내 '양'의 의미와 '마켓'의 의미를 관객에게 묻는다. 어째서 '마켓'은 오가리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을 주지 못했으며 '양'들은 오가리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는 각각 다양한 내용으로 정의된다.
또한 연극계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번 공연은 '오가리'의 망상과 현실을 오가는 혼돈스러운 감정기복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이남희 배우와 마약중독자의 연기를 현실성있게 표현한 배우 유연수콤비의 연기가 돋보인다.
연극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는 오는 14일부터 28일까지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02)-327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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