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이긴 연예인 (2)] ‘트바로티’ 김호중을 울렸던 5가지 고난, 때론 무릎 꿇었다
항상 이기진 못했지만 결국은 이겨 / 아이돌 제조기 용감한 형제와 닮은꼴?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최종순위 4위. 김호중은 미스터트롯을 통해 ‘트바로티’로 거듭났다. 트바로티란 트로트와 유명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합친 말로, 김호중이 원래 파바로티를 꿈꾸던 성악가 출신으로서 트로트 가수가 됐음을 의미하는 별명이다.
김호중은 한국의 아이돌 시대를 열었던 스타 작곡가 용감한 형제와 닮은꼴이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길고 긴 방황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다. 용감한 형제는 17살에 구치소에 2년간 수감 당했을 정도로 어두운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수많은 유명 아이돌들의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이면서 춤 동작을 창조해낸 안무가이기도 하다.
김호중도 노래의 꿈을 이루기까지, 조폭 노릇까지 한 어두운 청소년기를 겪었다. 어린 김호중을 수렁으로 몰고간 절망적 상황은 대략 5가지이다. 그가 언제나 그 절망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때론 무릎을 꿇고 타락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겨냈다. 그게 중요하다. 항상 이기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에 이기는 게 중요할 뿐이다.

■ 초등학교 3학년 때 찾아온 '부모님의 이혼', 첫 시련 앞에 힘없이 무너져
김호중의 첫째 고난은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그는 1991년생, 울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할머니가 홀로 그를 키웠지만 외로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함께 놀거나 상실의 아픔을 나눌 형제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늘 혼자였고, 잠자는 일 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그는 문제아가 됐다.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공부는 놓았고, 대신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주먹 싸움에도 많이 끼고 다녔다. 첫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 셈이다. 당장의 고난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고 자신을 너무 자학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김호중처럼 결과적으로 이겨내면 되는 것이다.
■ '파바로티'를 꿈꾼 중학교 2학년 생, 고난극복의 동력은 '인내'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찾기
두 번째 시련은 중학교 시절의 타락이었다. 김호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공사장을 다닐 정도로 외모가 성숙하고 체격이 건장했다. 경호원을 꿈꿨을 정도로 운동을 잘했던 그는 울산에서 부산까지 원정 싸움을 다니는 불량학생이 됐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전환점을 찾는다. 성악가의 꿈을 처음 품게 된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러갔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듣고 돌연 감동에 빠졌다. "파바로티같은 성악가가 되겠다"고 속으로 되뇌였다.
음악의 길을 걷는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늦은 시작이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환경도 아니었다. 대신 성악을 하는 교회 지휘자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다. 짧은 연습 기간이었지만 놀랍게도 경북예술고등학교에 단번에 합격했다.
■ 예고생활이 만든 '상대적 박탈감', 자포자기하며 업소관리 '조폭' 생활에 빠져
셋째 시련은 가슴 가득히 설렘을 안고서 입학한 예고 생활에서 찾아왔다. 예고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너무 엄격했고, 생각보다 비싼 학비와 레슨비도 가정형편에 부담이 됐다. 집에 여유가 있는 다른 친구들은 오히려 레슨비를 추가로 내고 레슨을 더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됐을까. 어차피 난 쟤들한테 질 거야”라는 식의 좌절감에 빠졌다.
'상대적 박탈감'은 원망과 포기를 낳았다. 자신이 예고 입학에 대한 꿈을 품고 노력했던 순간들을 망각했다.
결국 김호중은 중학교 시절처럼 다시 나쁜 길에 빠져들었고, 성악의 꿈도 뒷전이 됐다. 폭력조직에 들어가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업소 관리를 하며 어린 조폭 노릇을 했다.
■ 퇴학위기 앞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운명적인 멘토의 도움으로 재기
네번째 시련은 퇴학 위기였다. 김호중은 불성실한 학교 생활로 아예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남은 희망도 산산조각이 날 위기였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 앞에서, 운명적인 멘토가 나타났다. 경북예고에 있던 후배에게 “소리가 기가 막힌 꼴통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온 서수용 선생님과 만난 것이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도 풀지 않고 거침 없이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엘 루 체반 스텔레(별은 빛나건만)’를 부르는 것을 듣고 재능을 알아봤다.
서 선생님은 “넌 노래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은 할머니가 남긴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라”는 유언과 함께 방황하던 마음을 돌려놓았다. 김호중은 서 선생님이 있는 김천예고로 전학을 갔다.
■ 폭력조직의 협박과 폭력, 굴하지 않고 음악과 함께하는 미래 선택
다섯번째 시련은 음악의 길을 택한 김호중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폭력조직의 위협이었다. 폭력배들이 찾아와 7시간동안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김호중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가혹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조폭과 인연을 끊었다.
서 선생님은 김호중이 조폭생활을 정리할 때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대신 6개월간 김호중을 차에 태워 함께 등교하면서 새로운 학교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음악 인생을 열어줬다.
이후 김호중은 2008년 제4회 세종음악콩쿠르에 출전해 1위로 입상했고, 전문 테너들도 어려워하는 네순도르마를 고등학교 3학년이 완벽하게 부르는 영상으로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다. ‘고등학생 파바로티’라 불리며 SBS ‘스타킹’에 출연해 그의 사연과 재능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스타킹을 본 RUTC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제안을 받아 5년간 독일에서 유학을 한 뒤, 마침내 성악가의 꿈을 이뤘다.

■ 영화 '파파로티'의 개봉과 미스터 트롯 출전은 삶을 바꿔준 2가지 행운
김호중의 삶은 2가지 행운을 거머쥐면서 달라졌다. 우선 2013년 김호중의 학창시절을 소재로 한 영화 ‘파파로티’가 개봉했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에 대한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다. 자신의 이야기로 조폭의 삶이 미화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어두운 과거의 꼬리표가 영영 따라붙을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자신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국 수락했다.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깜짝 출전했다. 김호중은 유학시절부터 ‘대중성 있는 성악가’를 꿈꿨고, 성악, 재즈, 트로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미스터트롯’은 그 꿈을 펼치기에 딱 알맞은 무대였다.

첫 곡으로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불러 압도적인 가창력을 드러낸 이후, ‘이대팔’ ‘무정부르스’ ‘희망가’ 등 무대를 멋지게 소화했다. 특히 본선 3차전 에이스 대결 ‘천상재회’는 마스터들이 나쁜 평가를 내렸지만 시청자들이 ‘어떻게 더 잘하냐’고 들고 일어나 판정논란이 일어 화제가 돼기도 했다.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미스터트롯 결승전도 피해를 봤다. 결국 가족만 초청한 무관중 무대로 열렸는데, 김호중은 7명의 결승 진출자 중 유일하게 혼자 결승을 치르게 됐다. 이혼한 부모님은 각자 새 가정이 있고, 서수용 선생님은 확진자가 많은 대구에 있어서 서울에 오지 못했다.
김호중은 결승전에서 조항조의 ‘고맙소’를 선곡했다. 방황하던 시절 손을 잡아준 서 선생님을 위한 곡이었다. 비록 서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지만 훌륭한 무대를 펼쳤다.
“막상 선생님이 오셨다면 긴장도 더 되고 떨렸을 겁니다. 경연하면서 연락을 자주 하고 응원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너무 고생 많았고 기분이 좋다. 너는 성악이라는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노래만 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이 납니다”
김호중은 최종 순위 4위로 마감했지만, 미스터트롯을 통해 좋은 동료들과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을 얻었다.

그는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고 가장 만족하는 점으로 “청중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리아’는 외국말로 불러 알아듣는 청중이 적지만, 트로트는 한 소절을 불러도 100% 함께 공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또 팬들과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팬카페에 일상적인 얘기들을 많이 올리고, SNS도 배우는 중이다.
새로운 분야를 향한 욕심은 여전하다. 요즘에는 ‘미스터트롯’을 통해 만난 윤대만 씨에게 민요와 소리를 배우고 있다. 윤대만 씨는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경기소리를 하는 가수로, 주현미의 ‘짝사랑’을 연습할 때도 도움을 받았다. 국악을 배우면서 몰랐던 발성을 익혀 새로운 무기가 생긴 기분이라고 한다.
김호중이 새로운 발성법으로 더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가 이겨내지 못할 좌절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중의 솔직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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