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군인들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윤석열은 충성을 바치는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으로 앉힌 후 거칠 것이 없었다. 김용현의 취임과 함께 계엄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윤석열의 특명을 받은 김용현은 두 축으로 계엄을 준비했다. 한 축은 여인형 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등 6월 17일 윤석열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룹이다. 다른 한 축은 ‘계엄의 막후 설계자’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성호 정보사령관이다.
전자는 주로 국회의원들을 연행 구금하여 수사하고, 후자는 중앙선관위를 수사하는 수사2단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했다. 방첩사는 양쪽에 다 관여했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전자의 그룹과 10월 1일 국군의 날 만찬을 기점으로 하여 만남의 빈도 수를 늘려갔다. 김용현은 취임 이후 계엄일까지 노상원과 22회나 만났다. 4일에 한 번씩 만난 꼴이다.
10월 1일 국군의 날
2024년 2년 연속해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했다. 유난히 퍼레이드를 좋아한 윤석열은 대로에서 군인들과 함께 행진했다. 광화문 월대에 있는 어도(왕의 길)을 따라 단상에 올라섰다. 선글라스를 썼다. 군인들이 모두 다 자기를 지지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 행사에 2023년 99억원, 2024년에 79억원을 썼다.
군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윤석열은 국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다. 적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의 뇌피셜로 보면 부정선거로 당선된 집단에 불과하다. 윤석열은 9월 2일에 열렸던 22대 국회 개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4년마다 한 번 있는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대신에 그는 이날 저녁 한국을 방문한 미국 상원의원단들과 함께 만찬을 하면서 김건희 생일파티를 했다. 김건희는 생애 처음인 글로벌 생일파티에 감격했다고 한다.
국군의 날을 앞두고는 9월 17일 육군 15사단을 방문했다.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을 인터넷으로 직접 구입해서 맛을 봤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격오지에 있는 부대들에 통조림이나 전투식량 등을 충분히 보급하라고 했다. 평상시 먹는 군용 식량이 아니라 전투식량을 언급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의문은 비상계엄 때 풀렸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0시 30분에 찍힌 사진을 보면 병사들이 갖고 있는 통조림에 ‘즉각 취식형 전투용 1식단’이라고 품명이 적혀있었다. 전투식량이었다. 이 전투식량의 유통기한은 2021.9.17.- 2024.9.16.이라고 되어 있었다. 윤석열이 아쉽게도 세계 최고의 전투식량은 커녕 유통기간이 지난 전투식량이었다. 윤석열이 전투식량을 직접 구입하고 맛을 본 것은 계엄을 상상하면서 ‘계엄놀이’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윤석열은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김용현과 그의 장군들을 불렀다. 여인형 사령관, 곽종근 사령관, 이진우 사령관. 이날은 윤석열이 그동안 비상조치, 비상대권을 언급했던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계엄령’이라는 세글자를 처음 언급했다. 곽종근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해 말한 기억이 있고, 민주당과 언론계 민주노총 부정선거 등에 대해 언급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김용현의 공관에 들려 차를 마셨다. 김용현이 계엄령이 발동되면 국회 선관위 민주당사 등을 확보해야 할 장소로 지정했다. 곽종근은 김용현에게 이견을 말했다고 했다. “비상계엄을 할 수도 없고, 우리 대원들은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김용현은 그에 대한 답 대신에 “대통령이 대대급 이하 낙하산 강하 훈련 수당을 빨리 올려주라”고 했다고 당근을 제시했다. 곽종근이 후에 국회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10월 중순- 국정감사 직후
국정감사에서 김용현과 여인형은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수거 대상들을 보는 듯이 모멸하는 언사를 내뱉었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승리한 계엄군이었다. 윤석열이 국정감사에서 수고했다는 취지의 자리를 마련했다. 김용현 그리고 계엄 3인방이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비상계엄 얘기가 다시 나왔다.
그리고 11월 초순,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던 무렵에 11월 페루 리마에서 있을 APEC 총회(11월 14일)에 참석하지 않고 이 시기에 계엄령을 발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김용현이 장군들에게 윤석열의 의중을 전했다. 여인형은 11월 계엄을 만류했다고 한다.
여인형은 8월에서 10월에 이르는 시기에 여러 차례 극우 유튜버의 부정선거 의혹 영상을 보내며 검증해 보라고 방첩사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윤석열이 김용현에게서 전달받은 것들이다. 방첩사 요원들은 “부정선거 의혹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었다. 대부분 실현되기 어려운 주장”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만들었다.
방첩사 관계자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 “턱도 없다. 믿으면 안된다”고 했지만 여인형은 반복해서 검증 지시를 했다. 한 간부는 “말도 안되는 걸 여러 번 시키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같은 영상을 노상원이 정보사 관계자들에게 돌렸는데, 이들은 신빙성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10월 27일
김용현이 여인형에게 전화로 지시했다. 여인형은 저녁 7시 33분경에 지시받은 내용을 휴대전화에 메모했다. “점령과 출입 통제, 현장 보존-이후 군검경 합동수사” 여인형은 선관위 점령을 뜻하는 것이라고 기억했다. 실제로 방첩사는 12월 3일 특전사 정보사 등과 함께 중앙선관위, 관악구 선관위 사무실에 투입됐다.
11월 5일 – 여인형 메모
여인형이 이날 오후 4시 45분, 밤 10시 53분 두 차례에 걸쳐 휴대폰에 메모를 작성했다, 여인형은 이날 아침 8시 27분에 이진우와 31분간 통화했다. 저녁 8시 50분쯤에도 이진우 곽종근과 통화했다. 이너써클끼리 통화한 내용을 정리한 듯해보인다.
이 메모에는 회합은 ‘ㅌ ㅅ ㅂ’으로 한정한다고 했다. 원래 6월 17일에는 삼청동 안가에서 김용현이 4명의 장군을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 장군”들이라고 소개했다. 여인형 곽종근 이진우 외에 육군의 절반을 지휘하는 강호필 지상작전사령관(4성장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강호필이 계엄에 반대한다며 전역하겠다고 했다. 그 전의 경기특수 모임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다. 경기특수는 경호처 기무사 특전사 수방사를 합친 약칭이다. 메모에는 “강호(강호필)의 사례 참고. 고통스러운 과정. 보안 위험. 이너(이너 써클)로 들어오면 안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계엄사령관이 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음”, “아무것도 모르고 감정은 앞서는 사람” 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인형 측에서는 박안수가 대통령이 잘못된 선택(계엄)을 하면 그에 맹종을 할 것을 우려해서 계엄에 반대하는 취지로 적었다고 해명했다. 또 메모에 “오판하지 않도록 직언드림”이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무릎 끓고 반대했다고 주장했으나 메모의 전반적인 취지를 보면 계엄 모의임을 알 수 있다.
방첩사는 이 시기에 ‘계엄사-합동수사본부 운영 참고자료’를 작성했다. 계엄선포 계엄법 계엄사령부 합동수사기구 등의 항목 별로 법령 체계와 주요 쟁점을 다뤘다. 추미애 의원이 확보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 시 대통령 거부 권한이 없다”고 되어 있다. 후에 윤석열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면 제2, 제3의 계엄을 발동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런 보고서 등을 사전에 검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는 이 문간에 대해 을지훈련에 대비한 실무편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11월 9일
윤석열의 마음은 조급했다. 속이 바싹 바싹 타들어갔다. 명태균이 정권 붕괴의 트리거가 되었다. 명태균이 윤석열 부부를 장님무사, 앉은뱅이 주술사라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온 국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대선여론조사 조작, 김영선 전략공천 개입 등 초대형급 폭탄이 차례로 터져나왔다. 집권여당 대표인 한동훈도 야당의 주장에 동조했다. 믿을 것은 군대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려갔다. 11월 7일 대국민담화를 했으나 국민들의 마음을 돌이키지는 못했다.
윤석열이 9일 김용현과 장군들을 저녁 자리에 불렀다. APEC 정상회담과 브라질 순방(14일~21일)을 다녀올 터이니 차질 없이 계엄을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비상대권이라고 써서 나라를 정상화시키면 주요 우방국들도 지지할 것”이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소고기 안주와 함께 소맥을 많이 마신 것으로 여인형은 검찰에서 진술했다. 다른 장군들은 부대원들의 진급이나 수당 문제 같은 민원도 했다고 한다.
자리가 파하고 김용현의 공관에서 다시 핵심 3인방이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여인형은 여론조사회사 꽃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그들의 머릿속에서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병력 투입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여인형은 트럼프 취임(2025.1.20) 이후에 주변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김용현은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11월 24일 “이게 나라냐”
윤석열은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결심을 굳혔다. 야당은 감사원장과 김건희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검사 3인에 대해 탄핵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은 이를 거론하며 “이게 나라냐, 정말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느냐.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주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석열이 실제로 계엄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1부에서 상술했기에 여기에서는 계엄일지 중심으로 서술)
김용현은 곧바로 계엄 선포문, 대국민 담화문, 포고령 등을 작성했다. 행동 개시에 들어간 것이다. 박근혜 시절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을 참조했다.
11월 25일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8일 앞둔 11월 25일 ‘현대판 군인의 길은 어디로 가고있나’는 제목의 글을 저장했다. “박정희 장군, 전두환 장군 같은 군인은 영원히 없는가”, “질 낮은 국회의원들에 맞서는 군 출신은 김용현과 신원식 밖에 없다”, “군에도 갔다오지 않은 정청래(국회 법제사법위원장)가 사단장을 호통친다” 이 메모는 보수성향 유튜버 손상대의 방송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손상대는 평소 “윤석열 대통령이 입법 독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우는 이 내용을 전달받은 것뿐이라고 했다. 결사의 의지를 다지면서 이 메모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1월 28일
김용현이 6시35분경 양재웅 국방부 국회협력단장(준장)과 보안성이 강한 메신저 시그널로 소통을 했다. 검사 탄핵안 발의와 진행 상황을 물었다. 양재웅 단장은 11월 25일에 국회 파견 명령을 받았다. 29일자 인사 발령인데 본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28일부터 하게 됐다. 김용현은 2003년부터 2년간 국회연락담당관을 지낸 바 있어 그 역할을 잘 안다. 국회협력단은 12월 3일 국회 단전의 길라잡이와 수방사 길 안내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11월 30일
김용현은 여인형을 장관 공관으로 불렀다. “조만간 계엄을 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결정하실 것이다. 더 이상 이 난국을 두고 볼 수 없다. 계엄사가 선거관리위원회와 여론조사 꽃 등의 부정선거와 여론조작의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들도 찬성할 것”,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헌법상 가지고 있는 비상조치권, 계엄 같은 것을 이제는 할 수밖에 없다. 계엄령을 발령해서 국회를 확보하고, 선관위의 전산 자료를 확보해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헌법상 비상대권의 일환이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시는 일이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득했다.
윤석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용현은 여인형과 함께 자리를 옮겨 윤석열과 술자리를 했다. 윤석열이 야당의 감사원장 탄핵과 예산삭감을 비판하며 ‘난국’을 헤쳐 나가자고 몇 번을 다짐했다. 여인형의 수행 부관은 인근 한남동의 교회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귀가하는 차량에서 “사령관이 술이 굉장히 센 편인데 그날은 어느 순간 보니 주무시고 계신 것을 봐 많이 드셨구나하고 생각했다”고 검찰 참고인 조사에서 밝혔다.
이진우·곽종근 등은 후에 헌법재판소 등에서 진술하면서 윤석열과의 술자리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남들이 보면 3성 장군이니 편하게 함께 식사하겠거니 하고 생각하지만 군 통수권자와 만난다는 것이 어려운 자리였다고 한다. 2023년 11월 중장 진급을 시켜주고 그 해 12월 한남동에서 술자리가 있었다. 이진우·곽종근이 국방컨벤션 건물에 모여서 카니발로 옮겨타고 관저촌으로 이동했다. 윤석열이 처음으로 장군들을 모아놓고 비상조치를 언급했던 시기이다. 술자리가 파하고 나왔을 때, 곽종근이 토했고 이를 지켜 본 이진우가 “쉽지 않다”고 했을 정도로 힘들어 했다고 한다. 이렇게 1년 간 술자리를 자주 하면서 장군들은 윤석열의 부하가 되어갔다. 하지만 여인형 등은 계엄이 실패로 끝난 후에 윤석열과 김용현에게 이용당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12월 1일
윤석열은 오전 11시 김용현을 불러 “지금 비상계엄을 발동하게 되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재차 확인했다. 김용현은 준비된 계엄 선포문, 담화문(일종의 대국민 해설서), 포고령 등의 3개 보고서 초안을 보고했다. 윤석열은 그 중에서 ‘야간 통행금지’ 부분을 삭제하는 등 보완을 지시했다. 윤석열은 직접 법전을 뒤져가며 초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법전을 살펴본 뒤 “국회 패악질이 이 정도면 사법과 행정 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된 게 맞다. 국가비상사태에 준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고 김용현이 진술했다. 윤석열이 계엄 공부를 많이 했고, 계엄 요건도 확인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헌법 제 77조에 계엄은 전시, 사변, 혹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발동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당시의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는 황당한 해석을 한 것이다.
김용현은 곽종근에게 국회, 민주당사, 꽃, 그리고 선관위 3개소 등 6곳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김용현은 국방부 국회연락단 양재웅 단장에게 검사 탄핵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다. 2일 검사 탄핵안이 상정되면 언제 표결되는지, 김건희 특검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양재웅은 “상기 사항은 수시보고”라는 메시지와 함께 여야 원내 대표들의 발언을 요약 보고했다.
여인형은 12월 1일 오후 3시 44분 휴대폰에 메모를 남겼다.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확보한 메모에는 ‘합동 체포조’ 관련 내용이 들어있었다. 메모는 ‘반국가세력 수사본부, 김OO’로 시작했다. △경찰/조본(국방부 조사본부), 30명 위치 파악, 합동 체포조 운용 △특전사, 경호대, 경호팀 운용 △수방사, 조본, 문서고 구금시설, 국군 교도소 구금 운용 준비 △합동팀 편성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합동팀 편성'과 관련해서는 △방첩 5, 군사경찰 5, 경찰 5, 경호 5 기준 20명 1개 팀·장비, 차량 등 정밀 편성 △합동 체포조 작전 개시 △출국 금지 등의 내용이 발견되었다.
12월 2일
김용현이 담화문 포고령 등 3개 문건의 수정안을 윤석열에게 보고했다. 윤석열은 별 다른 수정을 하지 않고 “됐다”고 했다. 윤석열은 2025년 2월 14일 헌법 재판소에서 “국회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부주의로 걸러내지 못한 실수”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윤석열은 “김용현이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었던 군사정권 당시 예문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부주의해서 문건을 그렇게 작성했다면 실제 상황은 주의를 해서 군대를 보내지 않았어야 논리적으로 맞는데 모순되는 말을 주저없이 하고는 했다.
양재웅은 검사 탄핵 관련 언론 보도와 국회법상 근거를 정리하여 김용현에게 보고했다. ‘윤 정부 출범 이후 野, 탄핵만 문재인 정부 때의 3배’라는 제목의 기사도 보냈는데 김용현이 팩트체크를 부탁했다. 양재웅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탄핵 시도가 총 22번이었고, 22대 국회 개원 이후에 11번의 탄핵 시도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다음 날 윤석열의 담화문에 반영되었다.
이진우의 후대폰 메모도 발견되었다. “의명(명을 받들어) 행동화 절차를 구상해 보았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최초 V(대통령)님 대국민 연설 실시 전파 시 △전 장병 TV시청 및 지휘관 정위치 지시 △전 부대 장병 개인 휴대폰 통합보관 조치 및 영내 사이버망 인터넷망 폐쇄 지시 △출동 OOOTF 병력 대상, 흑복 및 안면마스크 착용, 칼라태극기 부착, 야시장비 휴대, 쇠지렛대와 망치, 톱 휴대, 공포탄 개인 불출 시행 △특정경비구역 경계병력(1경비대대) 의명 출동 준비 △사령부 포함 사여단급 부대 위병소 폐쇄 시행 △외부 언론들의 접촉 시도 차단” 흑복 및 안면마스크 등은 계엄 당일 국민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본 그대로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군인들은 휴대폰을 지참했는데, 계엄 당일에는 이 메모 그대로 휴대폰을 통합 보관했다.
왜 12월 3일이었을까? 일각에서는 12(十二)월 3(三)일, 10(十)시 30(三十)분을 합치면 임금 왕(王)자가 여러 개 나온다고 해서 역술적인 선택이라고 하는데 계엄일지를 보면 그렇지는 않다. 윤석열이 ‘안보 휴가’를 다녀오고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으로 앉힌 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APEC 순방을 취소하고 계엄을 할 계획을 세웠다. 명태균 게이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데 장기간 나라를 비우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 이후의 국제상황을 보자는 건의가 있었다.
순방을 하고 돌아오니 자신은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데 야당은 여전히 명태균 게이트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화가 났다. 2025년 1월 트럼프 취임 이후로 시기를 보자는 신중론은 검토에서 제외되었다. 감사원장과 검사들의 탄핵안이 본회의에 보고(12월 2일)되고 표결하기 전을 날짜로 잡았다. 명태균 황금폰이 곧 터진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명태균 황금폰이 공개되고 난 후 계엄령을 발동하면 결국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래서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안을 명분으로 잡기로 했다. 야당의 탄핵안이 국회에 보고되자마자 계엄령을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