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이긴 연예인 (6)] ‘허무개그’ 손헌수, 재입대 아픔→‘드림북’과 인생전환점 삼아
염보연 기자
입력 : 2020.05.25 10:21
ㅣ 수정 : 2020.08.27 13:32
한국에서 성공한 연예인은 고수익을 올리는 권력계층으로 굳어졌다. 유명대학 총장보다 인기 연예인의 발언이 갖는 사회적 파장이 훨씬 크다.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통적 인기직업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을 희망직업으로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경우 깊은 아픔이 숨어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거나, 좌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전력투구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손헌수는 MBC출신 개그맨이다. 혜성같이 등장해 ‘허무개그’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전성기는 짧았다. 병역 문제에 연루되어 군대를 두 번 가기도 하고, 영화제작, 연예기획사 등 사업에 실패해 억대 빚을 지기도 했다. 타고난 긍정마인드로 시련을 이겨내고 코미디 크리에이터와 트로트 가수 등 여러 분야에 다시 도전 중이다.
■ 가난했지만 밝았던 어린시절.. 효심 깊고 ‘끼’있던 아이
손헌수는 1980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원래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세 살 무렵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집안이 무너졌다. 좁은 단칸방에서 부모님, 형과 함께 네 식구가 살게 됐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가난하지만 밝았던 어린시절이었다. 손헌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로 번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다.
끼도 넘쳤다. 50원, 100원씩 입장료를 받아, 박스로 만든 무대에서 스스로 연출한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가정형편 상 미대진학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자 포기했다.
■ 행운 함께한 데뷔 초.. 초스피드 데뷔에 ‘허무개그’로 전성기 맞아
고등학교 2학년 때, 형이 신문에서 ‘코미디 모델 아카데미’ 광고를 봤다. 키가 184cm였던 형은 모델을 꿈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손헌수도 하고 싶어져 덩달아 다녔다. 형제가 함께 막노동으로 한 돈으로 학원비를 대면서 연예계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좌절이 찾아왔다. 수능점수가 낮아 원하는 대학교의 연극영화과에서 모두 떨어진 것이다. 막막해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자신이 MBC 개그맨 공채 오디션을 보는데 도우미 역할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친구는 경험이 없었지만 손헌수는 학원에서 배운 가락이 있었다.
결국 친구는 떨어지고, 손헌수는 2000년 MBC 공채 11기로 합격했다. 6개월 만에 동기 이진환과 함께 한 ‘허무개그’가 대박이 터지면서 무명시절 없이 최고 개그맨 자리에 올라섰다. 2001년 신인상은 물론 백상예술대상 인기상까지 수상했다.

■ 막막했던 재입대..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겠다” 결심
‘허무개그’는 무언가 할 것처럼 기대감을 올리다가 ‘어, 그래’로 마무리지어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개그였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스타일이 대중에게 먹혀들었지만, 달콤했던 인기는 빨리 지나갔다. 드라마 ‘야인시대’에 ‘눈물의 곡절’ 역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도 했지만, 개그맨으로서는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못하며 암흑기가 찾아왔다.
심지어 방위산업체 부실 복무 논란에 휩싸여 현역으로 재입대 하면서 ‘군대 두 번 간 연예인 1호’라는 불명예까지 얻었다.
당시 그는 공고 디자인과를 나와 자격증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도 오산 방위산업체에서 기술직 요원으로 복무 중이었다. 하지만 서울권에 있는 요원들이 부실복무를 했다는 논란이 터지면서 같이 조사를 받게 됐다.
“조사를 받기 전부터 연루됐다고 기사가 쏟아졌어요. 연루라는 단어만 됐는데 막 9시 뉴스에 나오고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 거예요. 너무 수치스럽고, 죄송스럽고... 저는 특히 개그맨이니까 저를 보는 사람이 불편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조사 한 번 받고 두 번째 조사 받기 전에 그냥 현역 재입대를 해버렸어요”
방위산업체에서 있던 기간도 없어지고 처음부터 군 생활을 다시 하게 된 것이 2007년이었다. 그는 재입대 둘째 날부터 남몰래 매일 울었다. 막막한 군생활과, 사람들에게 잊히고 재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다 독기를 품었다. 이 힘든 시기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재입대 기간을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군대에서 300권의 책을 읽고, 미래의 목표를 상세히 적은 ‘드림북’을 쓰며 제2의 인생을 계획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점, 단점과 장점, 저축 계획, 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콘텐츠들을 할 건지도 1안부터 4안까지 상세하게 적었다.
이때부터 그는 드림북에 세운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 제대 이후에도 시련 이어졌지만 ‘트로트가수’로 새 도전 시작
그는 군 제대 후 꿈꿨던 일들에 도전했다. 기획사를 차려 공연 제작자로 나서기도 하고, 영화감독에 도전해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가수에도 도전했다. 이렇게 다양한 도전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실패한 도전이 많았다. 심지어는 영화 제작자로 사채를 써 억대의 빚을 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있던 공연기획 회사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공연취소가 이어지면서 정리하게 됐다.
하지만 손헌수는 여전히 초긍정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이번에는 ‘디스코맨’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가수에 도전했다. 그의 트로트1집 ‘전기뱀장어’는 신나고 구수한 멜로디에 “오빠는 너의 전기뱀장어야”라는 코믹한 가사를 담고 있다.
손헌수는 단순히 트로트 붐에 탑승하려는 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원래 가수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40살부터는 트로트를 하려고 계획했다고.
또, 작년에 유튜브 활동과 관련해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제가 8년 전에 유튜브 세상이 올거라 예상했어요. 그래서 PPT를 돌렸는데 다들 거절했죠. 그런데 작년에 한달 만에 회사 세 군데에서 연락이 온거예요”
이번에는 직접 대표를 하지 않고 공연 기획 역할만 담당할 예정이다. 다음 사업에 나서기 위해서는 빚을 갚아야하기 때문에 행사를 많이 나가려고 팔을 걷어부쳤다고 했다.

유튜브를 통해 개그 콘텐츠 기획에도 다시 도전 중이다. 작년에 ‘손헌수 특집’ 채널을 개설하여 동영상 크리에이터로 변신했고, 지난 4월 ‘재믹스 스튜디오’라는 신규 채널을 만들었다.
“작년에 또 회사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책에서 봤던 말이 떠올랐어요. 꿈꾸고 도전하고 행하면 우주의 기운이 바뀌어서 나를 돕는다는 그런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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