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 보톡스전쟁 다시 읽기 ①] 국내시장 판도 뒤흔든 8년간의 소송전쟁
신성장 부문인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 한국의 빅3 기업 경쟁력 주목돼
국내 톡신시장 개척한 대웅제약과 국내 최초 톡신 제제 개발한 메디톡스 간의 갈등이 변수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대표적 신성장 부문으로 주목되고 있다. 고령화와 아름다움 추구 성향 등이 성장동력이다. 현재 7조원 규모이지만 2025년 15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균주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이지만 한국의 빅3 기업이 국산 제품으로 글로벌시장 형성에 기여해 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웅제약(나보타, 수출명 주보), 메디톡스(메디톡신, 수출명 뉴로녹스), 휴젤(보툴렉스, 수출명 레티보)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톡스 기업은 지난 8년 동안 ‘보톡스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의 고강도 소송전에 휘말려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상대적 불이익을 겪어왔다. 경쟁 승리를 위한 수단인 소송이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 ‘소송의 역설’도 발생했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간의 대화”라고 규정했다. 이 대화의 목표는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심층기획: 보톡스 전쟁 다시읽기’도 한국 빅3의 보톡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보톡스 역사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소위 ‘보톡스’는 미국 메디컬 에스테틱 기업 ‘엘러간’(현 애브비)이 상품화한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이름이다. 톡신 상업화에 성공한 대표적 해외 기업은 미국 엘러간(보톡스), 프랑스 입센(디스포트), 독일 멀츠(제오민), 중국 란주연구소(BTX-A. 헝리) 등이다. 소위 글로벌 빅4 보툴리눔 톡신 기업이다.
국내시장의 경우, 지난 2008년까지 보톡스 원조 기업 엘러간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후 '휴젤·대웅제약·메디톡스' 등의 3강 체제가 형성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3개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자국 톡신 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경우는 찾기 힘든 사례이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국산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해외에서도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뛰어난 글로벌 시장 중의 하나가 보툴리눔 톡신 부문이다.
■ 대웅제약, 1995년 엘러간과 손잡고 국내 톡신 신시장 개척...2014년 자체개발 ‘나보타’ 출시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이라는 신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적 기업은 대웅제약이다. 1995년 엘러간과 손잡고 국내에 보톡스를 공급했다. 국내에 상륙한 보톡스는 대중들에게 빠르게 전파됐다. 대웅제약은 이와 관련해 연매출 200억원 이상을 올릴 수 있었다. 이때부터 한국인들은 ‘보톡스 맞았다’는 말을 쓰게 됐다. 대웅제약이 도입한 엘러간 제품이 보툴리눔 톡신의 대명사로 승격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시장이 커지자 엘러간은 지난 2009년 대웅제약과 보톡스 판권이 1년 남은 상황에서 계약을 파기했다. 한국 시장에서 직접 판매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때 대웅제약이 엘러간으로부터 받은 위약금은 190억원이었다.
메디컬 에스테틱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대웅제약이 피땀으로 일궈놓은 보톡스 시장을 하루아침에 엘러간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는 자금력과 기술력을 앞세운 다국적 기업들의 갑질과도 같은 현지화 전략이다.
그러나 대웅제약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발휘했다. 5년 간 120억원을 투자해 지난 2014년 4월 자체 개발한 보톨리눔 톡신 ‘나보타’를 국내 출시했다. 출시 당시 나보타의 인기는 뜨거웠다. 미국과 유럽, 남미 등에 7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때 파트너 관계를 형성했던 미국의 에볼루스사(社)와는 지금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메디톡스, 2006년 국내 최초로 보톨리눔 톡신 제제 개발 성공...2009년 엘러간 제치고 한국시장 점유율 1위 기록 / 대웅제약과의 소송전 시작한 2016년 휴젤에게 점유율 1위 내줘
하지만 국내 최초로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개발했던 기업은 메디톡스다. 또 메디톡스가 자체 개발해 출시한 ‘이노톡스’(2013년)와 ‘코어톡스’(2016년)는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당시 글로벌시장은 엘러간의 보톡스를 비롯해 중국 란저우생물학연구소의 ‘BTX-A’와 프랑스 입센의 ‘디스포트’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 메디톡스의 승부수는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었다.
엘러간의 보톡스는 분말 형태라 희석해서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으나 이노톡스는 액상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 높이 평가한 엘러간은 메디톡스의 이노톡스 제제 MT10109L을 사들였다. 또 메디톡스의 프리미엄 제품 코어톡스도 당시에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 출시 2년만인 지난 2008년 국내 시장 점유율 26%를 기록했는데 당시 1위인 엘러간은 38%의 점유율이었다. 이듬해 메디톡스는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휴젤이 2010년에 보툴리눔 톡신 제제 ‘보툴렉스’를 출시하면서 메디톡스는 새로운 경쟁자를 맞이하게 됐다. 휴젤은 해마다 100억원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메디톡스는 350억원 규모의 매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메디톡스가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 1위 자리를 휴젤에게 내준 것은 2016년이다. 공교롭게도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균주를 불법 취득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시작했던 시기이다. 휴젤이 메디톡스의 매출을 두 배 이상(55.4%) 앞선 지난 2019년도 변곡점이다. 이 때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美 식품의약국(FDA) 품목 승인 허가를 받았다. 같은 시기에 메디톡스는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대웅제약을 제소했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도용했다며 소송을 벌이면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휴젤에게 내주고 그 격차도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휴젤의 반사이익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소송 타격이 적은 후발 주자 휴젤은 국내 매출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중국 당국 승인을 받은 글로벌 4개 기업에 포함된 상태이다.
■ 보툴리눔 톡신 시장 점유율을 결정하는 경쟁력,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공략하는 ‘가공 기술’에 있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벌이는 소송전쟁의 원인은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에 있다. 전 세계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 업체는 한국을 제외하면 미국과 중국, 독일, 인도, 일본, 이란, 프랑스, 러시아, 스위스 등 30개 내외다. 국내 기준으로는 4개 업체가 개발해 판매 중이고, 현재 연구개발이 진행 중인 기업을 포함하면 14개 정도다.
메디톡스는 미국 위스콘신대의 ‘HALL A’ 균주를 분양 받았다고 한다. 분양 과정이 복잡한데 요약하면 양규환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위스콘신대 유학 시절 균주를 이삿짐에 넣어 가져왔고 이를 제자인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에게 줬던 게 원료가 돼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상업화할 수 있었다.
제테마는 지난 2019년 코스닥 상장 직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소송전을 의식해 균주의 염기서열까지 모두 공개했다. 대웅제약은 용인시 포곡읍 개천변의 토양에서 균주를 추출했다고 밝혔다. 메디톡스는 양 전 처장이 국내에 반입한 균주를 공여 받았다고 밝혔지만 두 업체 모두 전체 염기서열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눔균’이 만들어내는 신경 독소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로 알려졌다. 복어의 독인 ‘테스트로도 톡신’ 16mg에 성인(70kg기준)이 노출되면 반나절 만에 사망한다. 하지만 보툴리눔 톡신 0.00005g(극소량)으로도 사람이 즉사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보툴리눔 톡신은 관리‧통제가 까다롭고 무엇보다도 정제해 제품화하는 과정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상업화에 있어서 핵심 경쟁력은 무엇인가. 왜 국내 최초 개발자인 메디톡스가 후발주자인 휴젤과의 점유율 경쟁에서 밀려났을까.
‘균주의 취득’과 ‘가공 기술’ 중 현실시장 점유율을 결정하는 최종적 경쟁력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공략해서 충족시키는 ‘가공 기술’이라는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원조 보톡스 기업 엘러간도 메디톡의 ‘이노톡스’를 라이선스 인...가공기술의 ‘안정성’ 리스크도 톡신 시장의 변수
엘러간도 지난 2013년 메디톡스의 ‘이노톡스제제 MT1010L’을 약 4000억원 주고 라이선스 인(기술 수입)했다. 원조 보톨리눔 톡신 기업이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액상형 보톨리눔 톡신 제제를 사들인 것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가공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액상형으로 가공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노톡스의 품목허가가 지난 2021년 1월 취소됐다는 점이다. 당시 식약처는 메디톡스가 이노톡스를 품목허가‧변경허가 하는 과정에서 안정성 시험자료를 위조했다고 보고 품목허가 취소 명령을 내렸다. 독성이 강한 보툴리눔 톡신을 상품화할 경우 ‘안정성’ 확보가 관건인 것이다.
엘러간은 지난 2021년 9월 MT10109L의 라이선스 인(기술 수입)을 반환했다. 2021년 1월 안정성 시험 자료 위조로 식약처가 이노톡스의 품목허가를 취소한지 8개월 후다.
톡신의 상품화 과정에서 안정성과 관련법의 법률적 리스크도 변수이다. 청주지검은 메디톡스 정현호 대표를 지난 2020년 4월 기소했다. 메디톡스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메디톡스 임직원들이 임상시험이 완료되지 않은 무허가 원액으로 메디톡신을 생산했고, 이 제품의 국가출하승인을 받기 위해 약품효능 시험 결과를 조작하기도 했다는 혐의다.
따라서 메디톡스의 시장 점유율 하락에 보툴리눔 톡신 ‘가공 기술’의 안정성 논란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대웅제약의 균주 불법 취득 혐의에 대해 검찰과 민사 1심 재판부 판단 달라...민사 항소심 지속 / 균주 도용 인정한 미 ITC판결은 3자합의에 의해 무효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소송전 핵심은 ‘균주의 불법 취득’이다. 퇴사한 직원이 대웅제약으로 입사하면서 균주와 관련 정보를 넘겼다는 게 메디톡스의 주장이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7년 1월 대웅제약 등을 상대로 산업기술유출방지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2017년 10월에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또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수출을 위해 FDA 품목허가 심사를 받자 지난 2017년 미국 법원에 대웅제약을 제소했다. FDA가 품목허가를 승인하자 메디톡스는 나보타의 미국 판매를 막기 위해 지난 2019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파트너사인 엘러간과 함께 대웅제약과 에볼루스를 제소했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기관이 얽혀 있다보니 법원 판결이나 검찰 판단 내용도 엇갈린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2부는 2017년 1월 메디톡스가 제기한 고소 건에 대해 2022년 2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양사 제품이 비슷한 원천 기술에 기반한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메디톡스 고유의 보툴리눔 균주나 제조공정 정보가 대웅제약으로 유출됐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기술 유출로 인한 것인지는 불명확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동일한 사안에 대한 민사 소송의 판결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의 소에서 메디톡스의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의 균주 도용을 인정하고 나보타의 제조 및 판매 금지와 균주 인도, 생산된 톡신 제제의 폐기, 메디톡스에 400억원의 손해배상금 지급 등을 명령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대웅제약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대웅제약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을 제기한 상태이다. 향후 상당 기간 민사소송이 지속될 전망이다.
ITC도 처음에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했다고 봤다. 이에 ITC는 예비결정에서 균주 도용에 대한 미국내 제품 수입금지 10년을 선고했으나 최종 결정에서는 이를 철회하고 기술 도용만 인정해 지난 2021년 1월 미국 내에서 21개월 간 나보타의 수입 금지 및 판매 중지‧회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ITC의 결정이 대웅제약을 제외한 메디톡스‧엘러간‧에볼루스의 3자간 합의를 통해 무효화 됐다. ITC가 최종 결정을 스스로 무효화함에 따라 ITC 최종 결정의 효력이 사라지면서 소송 시작 이전 시점으로 회귀했다.
3자 합의에서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가 나보타를 미국 내에서 수입해 판매하되 일정 부분 로열티를 메디톡스와 엘러간에 지불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대웅제약의 또 다른 미국 파트너사 ‘이온바이오파마’도 메디톡스에 로열티를 주기로 합의했다. 3자 합의 당시 대웅제약은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 항소를 진행하던 상황이었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며 소송에 매달렸지만 최대 승자는 엘러간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시리즈의 2회와 3회에서 ITC소송이 엘러간의 시장 방어 전략이라는 점을 분석할 예정이다.

■ 국내 빅3의 매출 변화 분석하면 보톡스 전쟁의 '실리' 향배 알 수 있어
국내 빅3 기업의 매출 변화를 분석해보면 8년 간의 보톡스 전쟁에서 누가 실리를 챙겼는지를 알 수 있다.
휴젤은 지난 2020년 국내에서 103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수출은 867억원이었다. 지난 2021년에는 국내 시장 1130억원, 수출 110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1312억원과 수출 1452억원을 기록했다. 수출 비중을 보면 지난 2020년 41.09%와 2021년 47.57%, 2022년 52.58%로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현재 내수와 수출이 1대1의 균형을 맞추며 안정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대웅제약은 3년 간 세 배 이상의 매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웅제약은 나보타로 1421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 펜데믹이 영향으로 504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2021년은 796억원의 매출이다.

메디톡스도 그간의 실적 부진을 딛고 올해 최대 매출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2022년 1951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 467억원으로 성장했지만 ITC 소송이 있었던 지난 2020년에는 매출 1408억원에 영업이익은 –371억원으로 적자였다. 지난 2019년 2059억원의 매출에 비해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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