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진으로 만나는 '한여름 밤의 꿈'...2024 부산국제사진제 르포

[부산/뉴스투데이=강지원 기자] 사진과 부두의 만남은 다소 이질적으로 보인다. 부두는 습기가 많고, 사진은 습기에 약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장소를 부산항으로 한 2024 부산국제사진제는 그 자체로 과감한 실험처럼 보여진다.
2024 부산국제사진제의 테마는 '한여름 밤의 꿈'이다. 테마에 맞게 스트레이트 사진부터 무대연출, 다양한 촬영기법으로 태어난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150여 점의 사진 작품과 영상 작업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로저 발렌, 안드레스 베르테임, 리사 암브로시오, 김용호 등 세계적인 사진 작가 8인이 주제전으로 참가한다.
2024 부산국제사진제의 전시기획을 맡은 석재현 전시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꿈을 그려보는 시간과, 완성도 높은 작품과 사진 예술성에 대해서 마주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로저 발렌은 이번 전시에 연작 <Asylum of the Birds (새들의 수용소)> <Roger the Rat (로저, 혼돈의 쥐)>를 전시하고, <Theatre of Apparitions (환영들의 무대)>를 설치했다.
특히 부산항 제 1부두 창고의 철골 트러스에 설치된 <Theatre of Apparitions (환영들의 무대)>는 트러스가 가지는 차가운 이미지와 어울려 초현실적인 느낌을 배가한다. 이 시리즈는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폐쇄된 여성 교도소에서 발견된, 검게 칠해진 창문 위에 그려진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석재현 전시감독은 <Theatre of Apparitions>의 전시에 대해, "실제로는 사진 연작이지만, 작가와 논의하여 전시장소에 어울릴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밝혔다.
연작 <Asylum of the Birds> 중 Take off는 이번 부산국제사진제의 키 비쥬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는 버려진 물건들이 흩어져 있고, 다른 동물들이 존재하는 공간, 흐릿하고 유령 같은 그림들이 특징인 환경에서 새들을 촬영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로저 발렌은 ''이곳 전시회에 온 사람과 나가는 사람은 아마 다른 사람일것"이라며, 이번 전시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전시장의 메인에 자리하는 것은 안드레스 베르테임의 <The Museum's Ghost>다. 다중 노출을 활용하여 사진을 편집 프로그램의 레이어처럼 연출했다.
작가는 연속된 노출로 예술 작품 속 인물과 전시 공간, 살아있는 관람객을 융합하여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다. 각 촬영에서는 스트레이트한 방법으로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기록하지만, 이미지를 겹치는 과정으로 일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새로운 의미를 전달한다.
제 1부두 창고의 열려진 벽면과 어울리는 요하네스 보스그라의 <Requiem Avis (새들을 위한 진혼곡)>도 주목할만 하다.
고래를 연상하게 하는 실루엣은 백만 마리의 찌르레기 무리를 촬영한 것으로, 복잡하게 조화된 패턴으로 추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는 새들을 지면과 분리시키고, 푸른 하늘을 캔버스로 활용했다.
제 1부두 창고의 열려진 벽면으로는 부산항과 바다가 보이고 있어, 작품의 푸른 하늘과 조화를 만든다.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넘어 보더레스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김용호 작가는 영화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를 일반에 최초 공개한다.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는 라틴어 풍의 조어로 '서울 벌레에 대하여'라는 의미다. 4,585장의 사진을 편집하여 완성됐다.
영화에는 호랑이와 토끼의 가면을 쓴 배우가 등장한다. 그해의 동물을 의인화한 시사적 사진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김용호 작가는 2022년의 '호랑이'와 2023년의 '토끼'를 배우로 캐스팅했다.
현대카드 <우아한 인생>, 현대자동차 <절차탁마, 브릴리언트 마스터피스> 등 수많은 광고사진과 인물사진을 시도해오며, '포토랭귀지'를 형성한 김용호 작가는 지난 2023년에 <데 베르미스 서울리스>를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도 데뷰했다.

부산의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도 기획된다.
2023년부터 열리고 있는 특별전 'Re & Discovery'는 부산 사진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부산 사진의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2024년에는 원로 작가 최부길과 중진 작가 이계영이 선정되었다.
최부길 작가는 "젊음이라는 패기 하나로 열정을 쏟아 부었던 결과, 그때의 순수하고 낭만적이었던 장면들을 담을수 있었다"며, "옛날 추억들을 회상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국에서 촬영한 일상의 모습들이 소개된다.
이계영 작가는 부산을 시작으로 경주, 제주 등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를 지속적으로 촬영하며, 관광지화되어 소비의 공간이 된 도시의 민낯을 고발한다.

그 외에도 공모로 선정된 작가들이 자유전으로 출전했다. 자유전에는 개인 16개, 단체 7개의 부스가 준비되어 사진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경험할수 있다.
자유전에도 부산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안윤욱 작가의 <이른 아침에 애환이 깃들다>는 주민들이 모두 떠난 재개발 지역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프레임에 기록하고 있다. 허승도 작가는 오염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들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메시지를 준다.

청소년전은 <시각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준비되었다.
올해의 청소년전은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생각과 시선, 외딴섬의 어린아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대립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작품은 강렬한 콘트라스트가 특징적인 이승찬 작가의 <가면> 이다. 작가는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사람의 형상과 선명하게 강조되는 제품, 브랜드 등을 대비하면서 현대인의 모습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부산관광공사가 세븐브릿지를 테마로 한 부스를 출전했다. 부스에는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세븐브릿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또한 세븐브릿지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 팝업북과 팜플렛 등이 준비되어, 관람객들이 세븐브릿지에 대한 흥미를 가질수 있도록 했다.
세븐브릿지는 부산의 해안을 연결하는 7개 다리를 브랜드화하는 사업으로,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영도다리, 을숙도대교, 신호대교, 가덕대교를 포함한다.

부산국제사진제가 부산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수영구의 F1963 (구 고려제강) 에서 열렸다.
부산국제사진제 백성욱 준비위원장은 전시장소를 부산항으로 한것과 관련한 본지의 질의에 "경제가 발전하면 문화적 수준도 향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한국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부산항을 전시장소로 선정하게 되었다. 또한 사진은 부산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부산과 사진, 부산항과 사진은 더욱 큰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조명이 작품을 직접 향하지 않아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것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작품이 제대로 강조되지 않는다는 것이 관람객의 목소리다.
부산항 제 1부두 창고는 창업 허브에의 리모델링을 예정하고 있어, 2025년 부산국제사진제부터는 새로운 공간에서 열리게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에는 사진 관련 기업의 참가도 눈에 들어온다. 메인 스폰서를 맡아온 후지필름에 더해, 소니코리아가 파트너로 참가한다.
소니코리아는 현장에 부스를 개설했지만, 제품의 판매나 홍보 등은 하지않는다.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 (SWPA) 수상작의 전시와 카메라 공식 유튜브 채널 '알파 유니버스 코리아'를 통한 작가 세미나 등만 진행한다.
소니코리아는 본지의 질의에 대해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행사 취지에 악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을수 있어 제품 판매나 홍보는 하지 않는다"며, "좋은 아우라를 보여주는 뜻깊은 공간 (부산항 제 1부두 창고) 에서 부산국제사진제가 열린다는 것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2024 부산국제사진제는 8월 22일의 개막을 시작으로 9월 22일까지의 한달간 부산항 제 1부두 창고에서 열린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10시부터 18시까지 관람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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