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人] 김창환 배우, 아역배우서 독립영화계 스타가 되기까지…

(뉴스투데이=박수연 기자) 아역배우 출신 김창환이 독립영화계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립스타상을 받은 소년(?)배우 김창환은 현재 28세 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립영화에서 고등학생 역할을 주로 맡아 왔다. 교복이 잘 어울리는 그가 올해 교복을 벗고 ‘1999 면회’에서 군복을 입었다. 올해 2월에 개봉한 1999년도를 배경으로 세 남자의 군대 면회기를 다룬 ‘1999 면회’는 그에게 많은 상을 안겨 주었다.
그는 ‘성실한’ 배우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방송국을 다니며 연기를 처음 시작하였고 성인이 된 후 스스로 배우의 길을 개척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배우 김창환의 연기인생을 들어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곧 있으면 아홉수가 되는 28살 김창환입니다. 색깔이 많지만 아직까지 주로 학원물, 교복 입은 역할을 많이 하는 안타까운 배우입니다.
-배우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여섯 살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MTM이라는 연기학원을 가게 됐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연기를 하게 됐고 얼마 안돼서 뽀뽀뽀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공중파에서 주말드라마나 월화, 수목 드라마에서 아역배우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방송일과 학업을 동시에 했어요. 어머니가 방송국에 던져놨는데 그렇게 적극적이시진 않았어요. 그러다 점점 일이 안 들어왔어요. 간간히 일을 하면서 사춘기도 오고 변성기도 오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러다 스무 살이 되어서 영화에 대한 매력을 크게 받았어요. 드라마보다 영화가 재밌고 좋더라고요. 학창시절에 봤었던 영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영화는 선물이라는 영화에요. 그 영화에 대한 꿈을 저도 모르게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남들처럼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 했어요. 뜻대로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극영화과를 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교를 늦게 갈 것인가 아님 군대를 늦게 갈 것인가 라는 기로에 놓였었는데 많은 생각 끝에 군대를 먼저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서 21살에 군대를 갔죠.”

-그럼 제대하시고 바로 연기 일을 다시 하신건가요?
“일단 별 생각 없이 전역을 하게 됐어요. 전역을 하고 군대 안에서 적어놓은 영화, 드라마 목록들을 나와서 다 보게 됐어요. 김상경 대왕세종, 일본 영화들을 봤죠. 그렇게 한 달을 혼자 드라마, 영화를 보며 충전 했던 것 같아요. 사회에 나온 기념? 스스로 주는 선물이었어요. 그리고는 연기와는 무관한 일을 했는데 역시나 안 맞더라고요. 쉽게 흥미를 잃고 틀에 맞게 사는 것이 안 맞았어요. 그렇게 1년에서 1년 반을 지냈어요.”
“친하던 형님이 이렇게 생활하는 제가 안타깝다고 하셨어요. 연극 무대 감독님이셨는데 그 분이 일본에 가시면서 일을 넘겨주셨어요. 6개월을 기계적으로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선배님들의 연기를 뒤에서 보고 또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뭔가 꿈틀꿈틀 거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박철민 선배님도 만났고 ‘차이무’라는 극단이여서 ‘차이무’선배님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다시 연기에 대한 불이 붙더라고요. 그러다 2010년 1월 2월쯤에 스물다섯이 됐을 때. 그 때 치아교정이 끝나는 시점에 다 그만둬버리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
-다시 배우가 되고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어릴 때와는 다르게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니까 두렵고 그랬어요. 처음이라는 것이 두려운 것이 많잖아요. 그렇게 처음 하게 된 것이 ‘UFO’라는 학원물이었어요. 그렇게 영화를 처음 하게 된 것이에요. 그렇게 첫 시작을 하게 됐죠. 되게 설렜고 주인공으로써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호흡을 끌고 간다는 것이 부담이 많이 됐는데 준비를 많이 했죠. 그 곳에서 정영기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제 멘토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단편영화를 또 처음 하게 됐고 그렇게 다양한 역할들을 많이 했어요.”
-어떤 영화들을 하셨나요?
“영화 ‘고지전’에 들어가 하루하루 배움의 현장을 느꼈고 아카데미 장편 ‘밀월도 가는 길’을 했어요. 쉴 틈 없이 정말 소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영화제라는 것도 가보게 되고 정말 재밌는거에요. 영화를 하는 것도 다람쥐 챗바퀴 구르듯이 똑같을 수도 있는데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점점 더 욕심이 더 생기고.”
“그러다 1999면회라는 영화를 하게 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어요. 제일 가고 싶은 영화제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심지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자배우상을 주셨어요. ‘1999 면회’ 남자 세명이 공동 수상을 했어요. 정말 너무 놀랐어요. 감사한 사람들한테 전화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연기를 앞으로 더 해도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또 어깨도 많이 무거워 졌어요. 연기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던 시기였는데 상도 받고 또 그 당시 하고 싶던 작품 ‘학교2013’에서 연락도 왔어요.”
-독립영화를 주로 하시다가 드라마를 한 후 배우생활의 변화가 있었나요?
“공중파를 나오다 보니 ‘방송했던 사람이 독립영화를 하겠어?’라는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저는 전혀 아니거든요. 같이 작품을 하기로 얘기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과 했고 이미 끝났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제가 너무 바쁜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학교2013’ 끝나고 그런 오해를 많이 풀러 다녔던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은?
“가장 최근에 한 작품은 이송일 감독님 작품이에요.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고 읽어보니 물론 학생 역할이긴 했으나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와는 완전 반대였어요. 그래서 너무 좋았죠. 그렇게 바로 촬영에 들어갔어요. 저는 제 나름대로는 흡족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촬영이 끝났어요.”

-본인과 가장 닮았던 캐릭터가 어떤 것인가요.
“1999면회 였던 것 같아요. 다 제 모습들이 조금씩 있긴 한데 가장 많이 닮았어요. 감독님이 잘 끌어내 주신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캐릭터는?
“다 엄청난 고민과 시간을 쏟기는 하는데 유독 힘들었던 것은 학교2013에서가 가장 힘들었어요. 원래 말이 많은데 말수도 적고 계속 책상에만 앉아있고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끝나고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마지막 촬영을 끝내자마자 아프기 시작했어요. 말도 못하겠어서 바로 집에 가서 몇 일동안 앓았어요.”
-좋아하고 닮고 싶은 배우가 누군가요.
“어렸을 때 조승우, 조인성, 양동근 이런 배우들을 좋아했는데, 독립영화를 하면서 박철민 선배님, 정인기 선배님이 눈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박철민 선배님의 그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관객들을 재밌게 하는 그런 연기와 정인기 선배님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하시면서 본인을 알리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박철민 선배님은 사회 공헌활동을 남들 모르게 정말 많이 하세요. 배우로써, 인간으로써 배우는 것이 정말 많아요.”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첫 번째로는 이 글이 나를 당기는지 안 당기는지. 내가 할 만한 역할이 없더라도 이 시나리오가 주는 감정 같은 것들이 나를 잡아당기면 하는 것 같아요. 시놉시스랑 캐릭터 설명만 봐도 느낌이 오는 것이 있거든요. 단편영화 ‘리코더 시험’이 있었는데 제 비중이 크지도 않았고 주요 역할도 아니었지만 그 영화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최근에 한 이송일 감독님의 ‘야간비행’시나리오를 다른 영화 촬영 중에 받았어요. 저를 확 끌어당기는 그런 시나리오였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몇 개의 독립 장편과 단편 영화들을 할 것 같고 내년에는 회사(소속사)를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알게 모르게 사회적으로 많이 배풀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어요.”
“저는 지원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로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큰 고민 없이 현실적이 것에 부딪힘 없이 꾸준히 연기를 하고 싶어요.”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