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그림읽기] (19) 이미지의 배반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뉴스투데이=김준홍 객원기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 1929
이에 대해 미쉘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그림’일 뿐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말하고 있는 문장이고,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은 ‘파이프’가 아니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며, 그림, 쓰여진 문장, 파이프의 그림, 이 모든 것이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의 잘못인지 아니면 미쉘 푸코의 잘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실 마그리트는 실제의 파이프와 그림의 파이프는 다르다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사실을 전하려 한 것 같다. 제목을 보면 이 심증은 더욱 확고해진다. 미쉘 푸코의 대단한 점이라면 이런 단순한 주장을 저토록 어렵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마그리트는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아쉬웠나 보다. ‘어? 이게 파이프가 아니면 뭐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몇 년이 지난 1952년에 다시 말한다.

"이것은 계속해서 파이프가 아니다."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 1952
실제 파이프는 뻐끔거리며 피울 수 있지만 그림 속 파이프를 피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해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의 명료함과 단순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그리트가 정말 이 의도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면, 그는 자신만 똑똑한 줄 아는 멍청이였거나 당대의 사람들을 무시했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마그리트의 두 그림이 언어의 한계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한계에 대한 주장은 기원전 3세기 경 중국 공손룡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손룡은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이다. 이 문장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마그리트의 주장과 완벽하게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마그리트의 주장은 두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 ‘이것’과 ‘파이프’이다. 여기에서 ‘이것’은 [눈앞에 있는 그림 속 파이프]이다. 그리고 '파이프’는 세상의 모든 파이프에 붙여질 수 있는 포괄적 범주다. 공손룡의 ‘백마는 말이 아니다' 역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백마'는 [눈앞에 있는 하얀 말]이며 '말'은 세상의 모든 말에 붙여질 수 있는 포괄적 범주다.
즉 마그리트와 공손룡은 언어가 구체적인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일상 속에서도 언어로는 명확한 구분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수없이 많다. ‘그걸 청소라고 한 거냐’라는 나무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청소와 청소 아닌 것의 경계는 모호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언어는 세상을 완전히 구분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한강’이라는 단어, 즉 범주 속에 어제 본 한강, 오늘 본 한강, 그리고 내일 존재할 한강을 모두 집어넣는다. 하지만 그 강들은 같은 강이 아니다. 양적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매 순간 한강에 다른 이름을 붙여줬다가는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는 인간의 유한한 사고능력 때문에 사용되고 있을 뿐,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는 믿을만한 도구가 아니다.
자기가 그린 그림에 대한 평론가들의 해석이 굳어지는 것이 두려웠는지, 혹은 말년에 소싯적의 그림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냈는지 마그리트는 또다시 파이프가 등장하는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66년에 그린 ‘두 개의 신비 The two mysteries’
그는 ‘신비 Mystery’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그림에 대한 모든 해석들은 이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 것이 되었다. 결국 후세 사람들은 난해한 숙제를 떠맡게 되었지만, 나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김준홍 객원기자

심리학과 철학, 그리고 정치를 재미있어 하는 20대 청년. 2014년에는 정치 팟캐스트 '좌우합작'을 진행했으며 지금은 흡연문화 개선을 위한 잡지 '스모커즈'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http://www.thesmoker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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