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27일 오전 세종시에 있는 한 공유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상황 및 요청사항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김종효 기자]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정부가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적극 권유하고 있지만, 정작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상황도 녹록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HUG의 보증배수는 올해 말 52.9배를 기록했다. 보증배수는 자기자본 대비 한도사용액의 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HUG의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주택도시기금법에 따르면, 공사는 총액 한도를 자기자본의 60배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HUG의 보증배수는 내년 말 59.7배까지 치솟을 것으로 산출되는 상황이다. 2024년엔 보증배수가 66.5배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정책 전문가는 "보증배수가 주택도시기금법 기준을 초과하게 되면 어떤 보증상품도 공급할 수 없다. 현재 정부가 권유하고 있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에 대해서도 전세금 반환보증이 중단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1조6841억원 이상 자본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HUG 측은 "내년 예산안에 HUG에 출자하는 예산이 별도 편성되지 않아 출자를 받을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HUG의 전세반환보증 거절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전세보증보험 가입 후 지급 이행이 거절된 건수는 총 97건으로, 거절 보증금액은 191억2900만원이다. 전세반환보증 이행 거절 내역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0년 12건(23억3900만원), 지난해 29건(68억8200만원), 올해 56건(99억800만원)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HUG는 전세반환보증 거절 내역 대부분이 가입자 과실 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거절 사유는 △임차인의 전세계약 기간 무단전출 등 대항력·우선변제권 상실과 △전입 미신고 등 보증효력 미발생이 각각 29건이었고, △사기·허위 전세계약이 18건, △전세보증금에 대한 금융기관 담보제공 등이 4건, △보증사고 미성립 등이 5건이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세보증보험 가입 후 지급 거절은 많은 부분 가입자 책임이나 실수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고 인정하면서도 "제도 취지로 볼 때 보험금 반환이 최대한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험금 반환 요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HUG의 전세보증보험 제도에도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신축빌라와 오피스텔 240여채로 주택임대사업을 해오다가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지난 7월 사망한 정모씨의 경우, 사망한 뒤 보증보험신청서에 전자서명을 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보증보험 제도가 만능은 아니다. 또 현재는 '의무'라는 말 하에 임대업자들이 가입하도록 돼 있지만, 가입하지 않더라도 강한 처벌이 아니라 과태료 부과만 받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증금 반환이 너무 길거나, 보증 비율도 전액이 아닌 경우도 많아 맹신하긴 힘들다. 무엇보다 임대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없이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HUG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한 공인중개사는 "현재 시점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선 전세보증보험 제도 가입이 가장 안전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전세 가격이 더 하락해서 나중에 매매가를 넘어서는 '역전세' 문제가 장기화되면 전세금 반환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은 미리 인지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