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주류업계 '신의' 사라지는 '신의성실'의 원칙, 누굴 위한 건가

서민지 기자 입력 : 2023.12.12 10:40 ㅣ 수정 : 2023.12.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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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서민지 기자] "국내 주류 유통사들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나, 사실상 이들을 지켜줄 법적 테두리는 없죠"

 

한국주류협회 관계자는 최근 주류 유통사들에 걱정이 많다. 국내 주류 유통사가 해외 제품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의 계약 불공정 만행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세계적 기업의 갑질에도 국내 유통사를 보호하거나 해외 생산 업체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제재할 법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유통사는 계약 이행을 신의에 따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존할 뿐이다.

 

최근 칼스버그의 맥주 제품을 국내에 유통해 왔던 골든블루가 "불공정 계약의 피해자"라고 밝혔다. 골든블루는 "칼스버그가 국내 유통사인 우리(골든블루)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인 뒤 돌연 계약을 해지하고 현지 법인을 설립한 것"이라고 했다. 

 

골든블루에 따르면 칼스버그는 자사 제품이 한국 맥주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진입해 실적 성장세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직접 판매 전략으로 바꿨다. 또 칼스버그는 골든블루에 비상식적인 계약 조건을 제시하면서 1~2개월의 단기 계약만 진행했다. 골든블루가 알지 못하도록 조용히 국내 법인을 설립한 것도 알려졌다.  

 

이같은 칼스버그의 불공정 계약 행위는 골든블루에서만 보인 것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칼스버그는 골든블루 이전 파트너십을 체결해 온 '비어케이'에게도 비슷한 행태를 보이며 불편하게 계약을 종료했던 이력이 있다"면서 "국내 유통사들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준수해도 괜찮을지 걱정만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의성실의 원칙' 이외엔 이들을 보호할 수단은 없는 것일까. 해외 업체를 규제하면서 국내 유통사를 보호하겠다고, 해외 기업을 국내법으로 구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주류협회 관계자는 "해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을 대한민국 국내법으로 규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내 유통사가 해외 공급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면 어떨까. 업계는 거래 관행상 독점 유통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 편이다. 보통 공급사와 유통사는 주류 계약을 3∼5년 체결한다. 이때 독점 계약을 체결했으나 제품이 국내 소비자에게 외면받아 매출을 올리지 못한 경우, 공급사는 계약 기간만큼 억지로 국내에 유통시켜야 하고 유통사 또한 손실을 감내하며 비인기 제품을 구매해야 된다. 

 

같은 맥락으로 피해만 늘어가는 꼴을 지켜보는 것이 최선일까. 국내 유통사를 향한 해외 주류 업체들의 만행이 계속 된다면 국내는 더이상 긍정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하기 불편해질 것이다. 국내 유통사들이 추후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더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면, 과연 어느 해외 주류 공급사와 신뢰 관계 속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까. 주류 유통 관계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이 온당한 법적 규제인지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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